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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국
1597 겨울
만주벌판에는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 다행히 조생종 작물을 심은 농부들은 옥수수와 콩을 수확하여
그것을 국가에 전매하고 그에 맞는 화폐를 챙겨두고 있었다.
내년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이 있었으나, 이미 겨울이 다가와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오늘처럼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책이나 읽으면서 지내는 것이 속 편했다.
지난날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이곳에 유배되다시피 쫒겨난 사대부들은 울분을 삼키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더러는 화병으로 죽고 더러는 명으로 도망가기도 하였으나, 많은 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적응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하루하루 근근히 한해를 보냈지만, 어렵사리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거두어 드리니 마음이 풍족했다.
이제 저녁에는 책을 보며 천주학을 공부하고 낮에는 사냥을 나가거나,
친우들을 벗삼아 소일하는 것도 제법 익숙해져서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그들은 목숨이나마 보전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며칠 전에 조정에서 나온 관원의 말을 빌리며, 이곳에 학교를 열어 후진을 양성할 것이란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부분이 사대부의 자제들이라 한문을 다 깨치고는 있으나, 이미 세상이
변하여, 천주학을 공부하지 않고는 양명을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이다.
1598년
봄부터 가동이 시작된 동해의 시멘트 공장에서는 하루에 천톤의 시멘트가 생산되었다.
이미 1500년대에부터 지천으로 깔려있는 석회석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사람들에게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다.
이번에 준공된 공장은 공정을 단순화시켜 석회,실리카 알루미나를 함유한 원료를 적당한 비율로
충분히 혼합하여, 그 일부가 용융 소성된 클링커에 적당량의 석고를 가하여 분말로 만든 것이고,
앞으로 제철소 용광로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을 섞어 만드는 고강도 시멘트 및 기타 특수 시멘트를
생산할 예정이다.
원산에 만들어지는 조선소에서는 만재량 3만톤급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었다.
이미 선박의 표준 설계도를 가지고 있던 천인단에서는 호도반도 안쪽에 위치한 풍남제철소에서
철이 생산되는 대로 선박을 건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양철광이 본격적으로 채굴되기 전에는 철의 공급이 수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총포와 창칼을 만드는데도 철이 부족할 정도였는데 천연자원의 채굴과 운송에 막대한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전무한 것에서 유를 창출하는데는 앞으로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천군부에서는 더 이상 외부와의 전쟁을 자제하고 있었고 내실을 다지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이미 시작된 몽골원정과 시베리아 원정은 계속 진행되었다.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지만 천군은 언제나 승리했으며 천천히 그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계속 북쪽으로 전진하던 2기병사단 1연대 1대대병력은 잠시 아무르 강변에 머물며
땟목을 만들고 있었다. 대양하에서 명군을 격파하고 산해관을 넘을 때는 명을
완전히 정복하는 줄 알았던 대대장 김경환 중령은 경상도 김천 출신이다.
여러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고속승진하여 최정예중의 하나인 2기병사단 1대대장을 맡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지역을 무단으로 이탈한 왜인포로를 잡아들이고, 이 지역 일대에서 사냥하는 조선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추운 지방에서는 그들이 잡아온 짐승의 털가죽이 높은 가격에 매매되고 있어서
제법 담이 큰자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이곳에는 원주민들이 있어서 그들과의 마찰도 끊이질 않고 발생하고 있었다. 김경환중령은
그들을 가능하면 조선으로 감화시키라는 명령도 받고 있었는데. 여차하면 모조리 죽여버릴 생각이다.
뗏목을 타고 대대병력이 무사히 강을 건너자 광활한 초지가 나타났고 멀리 사냥꾼들이 사용하던
운막이 나타났다.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는 것으로 봐서 식사준비를 하는 것으로 생각한 그들은
대대전원이 말을 몰아 연기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먼저 앞서가던 초병 둘이 다가와 전방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초병의 보고는 그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 대대장님, 아마도 왜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저곳에서 생활을 한 모양인데 모조리 사살되었습니다.
생존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원주민의 습격을 받은 것 같은 흔적이 보입니다. 여기저기 화살촉이
박혀있고,…”
보고를 채 듣기도 전에 김경환은 대대원들을 중대별로 나누어 원형진을 만들어 방어 태세를 갖추고
현장으로 다가갔다. 여기저기 시체들이 널려있었고, 여자들은 알몸인체 내뒹굴었다.
“ 이곳을 정리하고 추격하여 섬멸한다. 수색대는 적들의 흔적을 찾고, 3/4중대는 주변을 수색하라.
나머지는 이곳을 정리한다. 서둘러라.”
대대장의 명령에 수색중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한 방향으로 말을 몰아 사라졌다.
불이 아직 꺼지지않은 것을 보면 가까운 곳에 그들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 비록 왜인포로지만 그래도 대한제국의 재산이다. 감히 대한제국의 재산을 강탈하고 이렇듯
벌판에 버려놓다니.”
시베리아의 밤은 빨리 찾아왔다. 아직 봄기운이 쓰며들지 않은 이곳은 한겨울을 방불케 했지만
막사를 만들고 바람을 피하니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아직까지 수색대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불안한 김경환 중령은 주둔지 외곽에 지뢰를
묻어두었다. 곳곳에 기관총을 거치하는 참호를 파고 초병을 세웠다.
수색대는 밤에는 진영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약속된 것으로 밤에 있을지 모를
적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한 아군의 매복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 였다.
진영 곳곳에 횃불과 모닥불을 밝혀두었으니 짐승들은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경유전에서 특별히 지급된 원유를 이용한 모닥불은 밤새 타올랐다.
순찰당직자에게 특별히 경계임무에 만전을 기하라는 명령을 내린 김경환중령은 기분좋게 소주를
한잔하고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이면, 수색대원들이 돌아와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정보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했다. 누가 자신의 부하를 공격하겠는가 말이야.
“ 김상병님 주무십니까. ?”
“ 그래 임마, 똑바로 보고 있어, 누가 올까 만은 괜히 토끼새끼가 지뢰 건들면 우린 바로 영창이야.
난 좀 자야 되겠으니까. 심심하면 별이나 세고 있어 알았냐 이이병 ?”
“ 네 이병 이상태 알겠습니다. “
“ 이런 새끼가 누가 초병이 관등성명을 대래 죽고 싶어 환장했나. 내가 미쳐 저런 신삥이와 근무를
서야 한다니. 에이 더 이상 깨우면 죽는 줄 알아 ?“
갓 입대한 이상태는 기병부대에 전입을 명 받고 거의 기절할뻔했다. 혹독한 훈련소를 거쳐서
일본에 가는 줄 알았는데 완전 오지로 와버린 것이다. 듣기로는 이곳은 죽는 자들도 많다는 곳이다.
무지 춥기도 하고..
지금도 그는 덜덜덜 떨면서 교대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정말
힘들었다. 처음으로 사지가 찢어진 시체를 보고는 토하고 난리가 아니여서 모든 중대원들이
그런 모습에 어이없어 하였지만 그는 밥도 못 먹을 정도였다.
이제 삼십분만 버티면 되는데 쏟아지는 졸음을 참느라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던 이상태이병은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며, 엄청나게 크게 들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전방의 지뢰밭으로 누군가
침입하다가 지뢰 선을 건드린 것 같았는데 갑자기 시커먼 것들이 앞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옆에서 자고 있던 김상병이 일어나 지뢰 격발장치를 누르고 기관총을 정면을 향해
난사했다. 처음에 터진 것은 자동식 지뢰였고 김상병이 터트린 것은 수동식 지뢰였다.
“ 꽈광 드드드드 드드드”
“ 야이 새끼야 탄피가 걸렸잖아 똑바로 안 잡아 ? “
정신이 하나도 없던 이이병은 김상병의 욕지거리에 정신이 들어 탄이 걸리지 않도록
옆에서 탄줄을 잘 받쳤다. 순식간에 200발이 나가자, 다른 탄 박스에서 탄을 꺼내 탄을 연결했다.
“이런 병신 새끼. 총렬을 바꿔야지 아이고 이런 꼴통”
갑자기 들려온 소음에 전부대에 비상이 걸리고 조명탄이 하늘높이 올라가 천천히 떨어졌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지원부대가 달려올 것이고 그러면 자신은 살 수 있다.
기관총을 포기한채 전방으로 소총을 갈기던 김상병은 옆 참호에서 지원사격을 하자
조금 여유가 생겨 전방을 주시했다. 전방에는 지뢰에 당한 순록떼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간간히 사람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점점 총성이 잦아들고 다시 조명탄이 올라가고 있었다. 총열을 갈아 끼우던 이이병을
김상병은 철모를 들어 냅다 갈겼다.
“ 이 개새끼가, 빠져가지고 잠을 자. 너 죽고 싶으면 혼자 죽지 나까지 죽일려고 그래.
너 오늘 나한테 죽을 줄 알아.”
1대대병력을 야습한 부족은 까략과 축치족으로 오츠크해 연안에 포유동물을 사냥하면서
2000여년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캄차카 반도에 이주해왔다.
순록떼를 기르는 것이 까략인들 사이에 점차적으로 발전한 시기는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이다.
그런데 포로무리에서 탈출한 일본포로들이 그들의 순록을 사냥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위한
싸움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치뤄지던 싸움이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조선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적들의 전투의지가 상실된 것을 간파한 대대장은 즉각 중대원들을 파견하여 그들을 잡아드렸고.
당시의 초병들을 불러 일계급 특진을 시켰다. 비록 그들이 그렇게 가깝게 접근하도록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문책을 해야 했지만 적절한 대응으로 대대원의 생명을 보호한 공로가 더 컸다.
잡아들인 포로들 중에는 축치족 족장의 아들인 아무르가 끼여있었다. 그를 심문하던 정보장교는
이번 싸움이 그들의 친족인 까락족의 순록을 보호하고 침략자를 응징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단은 왜인에 의해서 일어났지만 그 해결은 조선인이 해야만 했다.
아무르는 기습작전에 앞서 부족의 재산중 반절을 내놓은 까락족장에게 감사하며, 저녁에 있었던 적을
섬멸하는 전술을 다시 써먹기로 했다. 먼저 순록떼를 빠르게 몰고 가 적들의 정신을 빼놓고 전사들이
들이닥쳐 정리만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무척 쉬웠다. 적들은 무기력하게 쓰러졌고 포로로 잡혀
부족장에게 인계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더 많은 인원을 보강하여 적의 본진을 새벽에 기습공격 하였다. 사방에 꺼지지
않는 불을 피워놓고 사람들은 모두들 막사 안으로 들어가 잠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순록떼가 진영에
접근하자마자 굉음이 울리고 세상이 환해지면서 300마리가 넘는 순록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곧이어
생전 처음 들어보던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리더니 순록 뒤를 따르던 전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전설상의 파괴의 신 오그디가 강림한 것 같았다. 모든 전사들이 머리를 땅에 밖고 오그디의 처분만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더 이상 굉음이 나지 않았고 하늘에만 빛을 쏘아 올려져 주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 그대는 왜 우리를 공격했는가 ? ”
“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단지 우리의 순록을 지키기 위해 그랬습니다. 저희 부족을 살려주십시오.
신이시여. “
“ 나의 부하들을 만나지 않았는가. ?”
뜨끔해진 그는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거짓을 말할 수도 없었다. 저들이 정령 신의 화신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지만.. 아무르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하였다.
“ 신이시여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저희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신의 종들중 태반이 부상당하여
저희 부족마을에 있습니다만, 죽은 자는 없으니,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통역을 통해 전해 듣고 있던 김중령은 저들이 자신들을 신으로 생각하는지 의아했지만,
아마 자신들을 파괴의 신으로 생각하지 않나 하는 정보장교의 의견을 듣고는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사망자가 없다니 다행이지만 그들의 신변을 빨리 확보해야만 했다.
“ 우리들은 그대들의 삶을 간섭할 생각은 없네, 다만 우리가 필요하여 그대들의 땅을 잠시 빌리고
우리 일족이 들어와 생활을 했으면 하는데, 물론 다른 외적들로부터 그대들을 보호해주겠네.
너는 지금 즉시 부족 마을로 가 내 부하들과 함께 너희들의 답을 가져오기 바라네.”
그날 저녁 아무르는 수색 중대원들을 일부는 들것에, 일부는 순록이 끄는 마차에 태워
대대 진영으로 돌아왔고, 그들의 시베리아 진출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가장 골칫거리가 될 축치족을 아우르는데 성공한 1대대는 부상병 때문에 예정된 순찰을
그만두었다. 그는 그곳에 작은 주둔지를 만들고 한개 중대를 주둔시킨후 고 본영으로의 귀환 길에
올랐다.
1대대가 작은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다른 대대원들은 바이칼호에 다다라 그곳에서 가장 큰 부족인
부리야트족을 만나 그들과 협약을 맺었다. 그들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조선인과 구별이 어려울 만큼
모양새가 비슷한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들의 보고가 한양에 도착하자 천인단에서는 일단의 조사단을 바이칼호에 파견하기로 하였다.
어쩌면 한민족의 원류를 만날 수 있을 지 모르고 그들의 역사를 알면 한민족과 또 다른 일파의
역사를 추적할 수도 있었다.
1599
한성의 영재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고 있는 이재성은 올해도 전국에서 올라온 10살미만의
아이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들 중 총명한 아이들 100명이 추려져 10년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며
천주학을 배우게 되는데 일년에 8월과 1월 한달간의 방학을 제외하면 10달을 오로지 천주학만을
배우게 되어 있었다.
올해로 4년째인 이곳에는 350명의 학생들이 짜여진 과정에 따라 학습을 하고 있었다.
100명의 천인단원들이 각자의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5년동안 기초학문을 배우고
2년은 고등과학을 배운다. 나머지 3년은 각자의 특성에 맞는 전문분야를 공부하게끔 되어 있다.
어린 학생들은 구구단와 주기율표를 동시에 암송하고 인문과학에서부터 천체과학까지 전분야의
학문을 배우게 된다. 그들의 학비는 전액 면제이고 얼마간의 용돈도 지급되었지만, 매년 실시되는
진급시험에서 탈락하면 유급되고 다음 진급에서 탈락하면 퇴학조치가 이루어졌다.
매년 100명의 학생들이 신입생으로 들어오는데 매년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퇴학을 당하고 있었다.
“ 그래 이름이 뭐냐 ?”
“ 네, 김영환입니다”
“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
“ 경기도 김포에서 농사를 지으십니다.”
“ 그래, 이 책 아무데나 펼쳐서 읽어보아라”
“ 또는 2백억년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 (대폭발)전의 우주는 손톱만했다고 한다. 폭발로 인해
팽창했고 그것이 바로 우주의 시작이다. 우리는 이것을 대폭발이라고 부른다...!
어째서 그와 같은 대폭발이 일어났는지 그것은 우리가 아는 한 최대의 불가사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주에 존재한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당시에는 지극히 고밀도형태로 한곳에 응측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팽창은 계속되고 있다.”
“ 그만 하거라 그 의미를 알겠느냐 ?”
“ 모르겠습니다.”
“ 그렇겠지. 하나에 하나를 합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해보아라. “
“ 물방울 하나에 물방울하나를 더하면 큰물방울 하나가 됩니다. “
소년의 대답에 이재성은 빙그래 웃음을 보였다.
“ 되었다. 너는 저쪽 오른쪽으로 가서 다음 절차를 밟도록 하여라. “
김영환이라는 꼬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 자리를 머리를 치렁치렁따고
온 여자 아이가 차지했다.
몽골지방과 시베리아에서는 지금도 소규모 국지전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었지만
그곳을 제외한 전국은 평화로웠다. 일본함대 이순신 사령관은 홋가이도에서 싹트고 있는 왜 잔당들의
근거지를 소탕하기 위해 함대를 이동하여 큰 어려움 없이 홋가이도를 점령하고 그 윗쪽의 사할린 섬도
점령하여 일본부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더불어 그는 시베리아로의 항로를 개척하였다.
경기도 김포평야에서 시작된 수로개량사업과 농지개량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었지만
그 수준은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각 하천 상류에 쌓아진 다목적댐의 공사 또한 진척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다. 특성상 농지개량사업은 휴농기에만 가능했기 때문에 대규모 인력이나
장비가 동원되지 않는 이상 적기완결은 불가능해 보였다.
10년계획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사업은 나라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도로가 완성되자마자 천인단에서
의욕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이제 겨우 경기도지역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얻어진 경험은
후일 다른 지방으로 급속히 전파되어 한결 쉽게 공사를 진행시킬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이번 사업의 목적은 수리개량에 두고있다고 홍보를 하고 있었으나, 그 진정한 의도는 정확한 측량과
농토의 수치화에 있었고 그로 인한 세수의 예측에 있었다.
포르투갈인들이 나가사키에 상관을 설치하고 일본부와 교역을 시작했다. 이번에 조선이 일본을
점령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면서 그 관계를 새롭게 하고 있었다.
그들을 통해 많은 정보를 입수해야만 했던 천군부에서는 나가사키에 역관을 설치하고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학교을 열었다. 천군부에서는 저들이 전하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인의 내륙여행은 철저히 금지되었으며, 입항할 수 있는 항구도 일본부에 설치된
나가사키 하나만을 허용하고 한반도와 그 외 지역에는 철저히 통제하였다.
이를 무시하고 들어왔던 포르투갈선박은 함포에 가루가 되어 사라질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실제로 승선했던 승무원 전원이 바다속으로 가라 않은 경우도 있었다.
천인단의 비밀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미 중국 광동과 마카오를 드나들던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서
동북아에 있었던 큰 전쟁과 새로운 강력한 국가가 건설되었다는 것이 이미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리던 유럽 제국들은 아직 인도차이나반도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동쪽으로 더 이상 확대할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정보수집과 무역로
확보를 위해 소규모 선대를 동쪽으로 계속해서 파견하였으나 단 한척도 돌아오지 못했다.
포르투갈선박을 제외한 다른 선대는 길을 잃고 헤매다 대부분 제주함대나 서해함대에 걸려 포로로
잡히거나 수장되었기 때문이었다. 포로로 잡힌 그들은 함경도북방 청진으로 이주되어 고립된 생활을
하였고 일부는 외교부에서 파견된 관리들에게 언어와 유럽정세를 가르치는 교사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외부와는 철저히 격리되었다.
바이칼호에서 1기병사단과 임무교대를 한 제 3기병사단과 5보병사단은 잠시 휴식을 취한후
서진하기 위해서 행군을 시작했다. 그들은 천군부 무기개발부에서 생산된 60MM와 80MM 박격포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견인포를 가지고 다니기에는 운송수단과 도로사정이 열악하여 부족한 화력을
지원하기위해 휴대가 간편한 박격포를 휴대하고 있었다. 60MM는 주로 보병사단이 80MM는 기병사단
포병대대에게 지급되었는데 사거리가 각각 2-3KM여서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이 오브강을 건넌 것은 6월 초순이었는데 자그마한 마을을 발견한 것은 6월 20일 이다.
그들을 처음 발견한 것은 3 기병사단 수색중대로 주둔지를 일본에서 시베리아로 옮겨
바이칼호수 근처에 주둔하고 있었다.
“ 저건 제정러시아 사형수들이 분명한데 이중에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자가 있던가.
에이 모르겠다. 일단 마을을 점령하고 사단에 보고한다. 통역관을 수배해서 지원해 달라고 해.
전부대가 마을을 포위하고 접근한다. “
멀리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우두머리격인 블라지미르공작은
은근히 두려움을 느꼈다. 마을로 다가오는 무리들이 축치족의 전사라면 이 마을은 한 사람도
살아 남기 힘들었다. 대부분이 1598년에 등극한 고드노프 짜르에 반대하다 무기형을 언도 받고
시베리아유형지로 쫒겨 온 그들은 죽을때까지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로 갈 수 없었다.
황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마을을 포위하며 다가오는 무리의 수가 얼추보아도 일백을 넘고 있었는데
마을에는 주민 전체가 50명이 채 되지 않았고, 그나마 싸울 수 있는 자들은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일단은 그들과 대화를 해야만 했다.
“ 중대장님 저쪽에서 누가 오는데요 “
백기를 들고 나오는 사람을 보며 화기소대장이 소리쳤다.
“ 이거 난감한데 누구 러시아어 할 줄 아는 사람. 아님 불어라도. 에이 “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는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하고 있었고 중대장과
일부 대원들이 말에서 내려 총구를 전방을 향해 경계를 취하며 그가 더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
“ 어이 안녕하십니까. 나는 조선국 제3기병사단 3연대 수색중대장 오지명입니다. “
그들이 조선말을 알 턱이 없지만, 일단 기선을 제압해야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블라지미르공은 자신의 앞에 있는 군인이 몽고인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몽고인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몽고어를 몰랐다. 블라지미르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있었다. 지금도 타타르족과는
러시아 남부에서 교전중이고 과거 몇세기전만해도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곳이 모스크바기
때문이다. 손을 내밀까 말까 망설이던 그때 갑자기 저쪽에서 프랑스어가 들려왔다.
“ 영어할줄 아십니까. ?”
“ 조금 할 줄 압니다. “
그는 영어로 대답했지만, 사실 프랑스어가 더 유창했다. 러시아 대부분의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애용하고 있었고 러시아어는 하층민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지명 중대장은 영어도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했다.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몇 마디 배운게 전부였다. 손짓 몸짓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마친 오지명대위와 블라지미르는
둘다 남모르게 안도의 한 숨을 쉬었고, 그들의 중대는 마을에 초대되어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사단사령부에서는 프랑스어에 능한 이를 통역관으로 딸려보내고 3연대 전 병력을
그 마을 주위에 전개 시켰다. 조선군의 러시아 정착촌 방문은 러시아 첩자에 의해 3연대 병력이
도착하기 전날 밤 에카쩨린부르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기병연대에 전달되었다.
이른 새벽에 첩자의 방문을 받은 알렉산드리아는 이 일을 모스크바의 고두노프짜르와 한창
카자흐족과의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자신의 상관 드미뜨리대공에게 보고를 올리고 명령을 기다렸다.
조선병의 숫자가 일백명이라지만 그들은 전초부대일 가능성이 높았고 뒤에 어느 정도의 후속병력이
오고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틀이 지나자 드미뜨리대공에게서 명령서가 내려왔다.
“ 귀관이 요청한 지원병은 불가하다. 지금 이곳도 어려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고 모스크바에서의
지원도 바라기 힘든 상태이다. 귀관은 귀관의 연대와 사형수들을 조합하여 현지점을 사수하고
적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주력하라.”
명령서를 받은 알렉산드리아는 일단 에카쩨린부르그의 성벽을 보수했다.
수색 기병대를 현지로 파견하여기로 하고 사형수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일단 보류했다.
아직까지 그렇게 어려운 상황도 아니며, 황제에게 반기를 든 자들에게 무기를 제공할 수는 없었다.
다음날 그는 자신의 연대에서 가장 강력한 친위부대인 소보르스키중대를 동진시켰다.
러시아의 정착촌에서 삼일을 머문 오지명중대는 현지를 1연대에게 인수하고 다시 서진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최종목적지는 우랄 산맥이다. 그 곳 적당한 곳에 주둔지를 마련하고 본대가 도착할때까지
지역을 유지하며 주변을 정찰하는 것이 주 임무다.
도중에 적을 만나면 교전을 회피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적지 깊숙이 들어가 교전을 벌인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오지명중대와 소보르스키중대의 충돌은 정착촌을 떠난지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먼저 적을 발견한 것은 소보르스키대원들이었며 돌격을 먼저 한 것도 그들이었다.
오지명 중대장은 그들을 발견하고 회피하려 했으나 이미 자신의 위치가 발각된 상태에서
회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 적들의 무장은 구식 화승총에 칼을 옆에 차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전투를 하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박격포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격병들은 말에서 내려
사격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른 대원들은 말을 탄 재로 소총을 장전하며 사격준비를 했다.
소보르스끼는 적과의 조우를 연대장에게 보고하고 대원들에게 전투준비를 명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앞에 있는 조선군은 타타르족과 다를 바가 없었고 카자흐족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 전 중대 돌격앞으로 “
중대장의 명령에 150기의 말이 조선군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갔다.
자신에게 몰려오는 적들을 보며 오지명 중대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들은 지옥으로 달려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쪽이 장거리 소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순식간에 서로간의 거리가 좁혀지자
오지명은 전 중대원에게 사격명령을 하달했다.
“ 적의 말을 겨냥하라. 사람은 나중에 잡는다. 전대원 일제 사격하라.”
“ 사격 ”
“ 탕탕탕탕탕 ”
수백발의 총탄이 무차별로 날아다녔고, 전방으로 밀려오던 러시아군은 말들이 고꾸라지면서
뒤의 병력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다. 앞발을 들고 날뛰는 말들은 총을 쏘는 입장에서는
커다란 포적이 되어 주었다. 조선군의 일제사격을 간신히 피한 몇기가 달려들었으나,
그들은 저격병에 의해 저격되었다.
“ 이럴수가. 저들은 도데체 누구란 말이냐 ?”
“ 전원 퇴각하라.’
허무하게 쓰러져가는 자신의 부하를 보면서 퇴각명령을 내린 소보르스끼는 자신의 애마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20여기의 기병이 뒤따랐고 100여기의 조선병이 총을 쏘면서
추격전을 펄쳤다.
기마술에 있어서 조선군을 당하지 못한 소보르스끼부대는 금세 따라 잡혀 전원 사살되었다.
현장을 수습하고 시체를 땅에 묻어버린 오지명대위는 자신의 중대원들을 챙기고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소부르스끼의 보고를 받은 알렉산드리아는 대대병력을 이끌고 교전지점에 도착했으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말들의 시체뿐 어디에도 자신의 부하들은 없었다.
쓰러진 말들이 전부 소보르스끼중대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전멸하거나 전원 포로로 잡혔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대원들을 풀어 주변을 수색하자. 금새 급조한 무덤을 발결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묻힌 곳을 파헤치고는 분노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단 한명도 살아 남지 못 한 것이다.
“ 연대장님. 소보르스끼중대원들의 시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
그때 시체를 살펴보던 한 군의가 말을 해왔다.
“. 뭐가 이상한가.?”
“. 몇몇의 시체들은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몇몇 시체들에게서는 특이하게도 검이나 창에 의한
상처가 아니라 총상에 의한 것 입니다. 저들은 총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파악하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그랬다. 조선기병들이 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연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할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에게는 대포도 없었다.
그들도 화승총을 가지고 있는데 저들이라고 총이 없을 리 없었다.
서둘러 현장의 시신을 수습한 알렉산드리아는 예카쩨린부르그를 향했다.
그는 드미뜨리 대공에게 보고를 하였으나 그 대답 역시 전번과 대동소이했다.
이번에는 사단이 보유한 한 개 포대를 지원해 준다는 약속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언제 이곳에 당도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8월에 시작된 3기병사단과 5보병사단의 예카쩨린부르그에 대한 포위 및 공격은 공격개시를 알리는
포격이 시작된 후 10일 동안의 일방적인 포격전과 총격전으로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지도 않은 채
끝이 났다. 이번에 배치된 박격포 포격 연습 겸해서 치러진 전투는 화력이나 병력면에서 우세한
조선군의 승리로 끝이 났고 알렉산드리아는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골을 평정한 다른 보병사단이 합세하면서 우랄산맥 동쪽을 완전히 장악하고 조선군은 그들의
동진을 멈췄다. 뜻하지 않게 시작된 러시아와의 충돌은 러시아에게는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예카쩨린부르그는 완벽히 포위되어 있었고 러시아 전령은 성을 나오나 마자 조선군에 걸려 사살되었다.
하지만 조선국으로서는 그들의 반격을 대비해야만 했다. 조만간 이곳에 누군가는 올 것이기 때문에…
1600
의주에 드디어 정제시설이 건설되고, 원유를 정제하기 시작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요를 충당
하기위해 여수에 대규모 정유소와 대단위 석유화학공업단지를 조성하기위해 기초조사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등유와 가솔린이 생산되면서 오리지날 천군소속사병과 하급 장교들이 모여 1기갑여단을
창설하게 된다. 여기엔 창고에서 썩고 있었던 온전한 장갑차 100대가 배치되었으며, 자주포 10문이
배속되었다. 최강의 육군이 창설되는 시기였다.
처음에 이땅에 올때는 장갑차가 300대가 넘었으나 200여대는 해체되어 주포와 기관총은 육군과
해군에서 포대로 사용하고 있었으니, 장갑차 생산라인이 건설되기 전에는 100대를 잘 운영해야만 했다.
여름에는 항공대가 다시 창설되었고, 가을에는 통합사령부소속 기동함대가 고구려함을 기함으로
구축함 양만춘함 프릿깃함 울산함 수송선 전진함, 고속정 5척으로 전환배치 되어 기존의
기동함대소속 함정은 제주함대에 배속되었다.
고구려함에는 전투기 대신 100문에 가까운 함포가 장착되었고 헬기도 5대 배치되었다.
의주에서는 정유소의 가동과 동시에 시범적이 2기통 내연기관이 선보였다.
오늘날의 오토바이에 장착되는 기관과 흡사한 것으로 이것을 기초로 자동차용 디젤엔진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곳 저곳에서 원유 정제 원료를 이용한 합성제품이 매일 생산되어지고 있었다.
석유 화학 공장이 정유소 건설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시설은 군의 보호하에
철저히 보안이 유지되고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5년간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계약하에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흥남에는 화학 비료 공장이 건설되었다. 이로서 천군부와 천인단은 필요한 화약을 충분히
공급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미루어 온 고성능 고집약 폭탄제조에 착수하게 되었다.
정유소와 비료공장의 가동은 많은 화학원료를 공급하는 계기가 되어, 천군부의 병력을 재무장시킬
토대가 되고 있었다. 철저히 이중적인 모습으로 성장하던 조선은 더이상의 확장을 피하고 내실에
온 힘을 쏟았다.
지난 일본전과 만주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싸운
이상훈병장은 날아오는 화살에 다리를 맞아 상의군인으로 제대를 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화살이 힘줄을 끊고 지나갔기 때문에 왼쪽다리를 절어야만 했다. 제대를 한 그는
천군부에서 마련해준 퇴직금과 위로금을 합쳐 부산에서 여객사업을 시작했다.
상이용사에게는 많은 특권이 있었어 관청에서 허가를 받는데도 일사 천리였고.
운 좋게도 마음에 맞는 동업자를 구할 수 있었다. 일본부에서 교사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가는 길에 부산의 한 허름한 주막에서 그를 만났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왔다.
김세진이란 사람은 옆에는 일본여자로 보이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성과 같이 주막에 들어셨다.
내이가 어려보였는데 임신을 하고 있어서 그는 여자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였다.
그 모양새가 주막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었다.
“ 조심조심 자자 여기 않자 응.”
못내 부끄러운듯 나중에 알게 된 아사꼬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김세진이 손으로
박박 문지르고 닦은 평상에 앉아 긴 숨을 내쉬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면서 귀밑에 숨어있는 보송보송한 솜털이 언듯 보였다.
“ 거참 되게 살갗게 구는 구만 민망스럽게.”
머리카락이 짧은 것으로보아 군인임이 분명한 한 사내가 농을 걸어왔지만 김세진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주막 아줌마에게 탁주 한 사발과 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던 이상훈은 실실 웃으며 그들이 앉은 평상으로 자신이 먹던 밥상을 들고
쩔뚝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뜻하지 않는 불청객에 김세진은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거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이상훈이라고 하는데 군대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되었소.
다리를 다쳐서 뭐 할일 없나 하고 부산에 내려오는 길인데. 댁은 일본에서 왔는가 보오.”
상이군인의 행패를 들어서 알고 있던 김세진은 이거 잘못 걸렸구나 하면서
이상훈이란 사람의 비위를 건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들과 시비가 붙으면 언제나 손해 보는 것은 일반인이었다.
관청에서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친 자들에게는 무척 관대하였다.
“ 저는 일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임기를 마치고 오는 길이지요.”
“ 아하 그래서 어린 학생을 꼬셨구만, 어쩐지 재주가 좋다라 생각했지 하하하”
그의 말에 일본여성은 얼굴이 더욱 빨개져 숟가락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 그래 어느 학교를 나오셨소 ?”
“ 황립사범학교 1회 졸업생이지요.”
내심 불쾌하던 김세진은 보란듯이 당당하게 황립에 힘을 주어 말을 했다.
아마 이 되먹지 못한 놈은 황립이란 말에 기가 죽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말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황립 사범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그 출세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일반 서민들로서는 꿈같은 자리였다.
“ 아하 그러셨구려 이거 놀랐소이다. 그럼 앞으로 관계로 진출하시겠구만.
이런 참. 내 좋은 親舊를 만난 듯 하여 동업을 할까 했더니 안되겠구만. 난 배를 하나 사서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돈이나 받아볼까 했는데. 그럼 난 이만 저리 갈라요.”
‘ 이 쫌생이 같은 놈이. 에이 참 아깝네.’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는 다시 밥상을 들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조자는 숟가락을 다시 놀리기 시작했지만, 김세진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그가 마지막에 한말은 자신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저놈이 먼저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었고 이제 슬슬 준비할 까 생각중이었는데
저놈은 아마 다 준비를 하고 사람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금새 입맛을 잃어버린 김세진은
탁주 한 사발을 다 비우고 다시 한잔을 더 시켰다. 이상훈은 다시는 이곳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등을 보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사꼬는 술만 마시는 남편을 보며, 저분이 술을 즐기지 않으시는데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며칠을 더 가야만 시댁에 갈수 있을 거라는데
큰일이었다.
“ 선생님 식사를 더 하시지요.”
조자의 말에 고개를 들어 김세진은 아까 그 이상훈이 있던 자리가 빈 것을 보고 문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주막을 막 벗어나고 있었다.
“ 여보시오 나좀 봅시다.”
헐레벌떡 신발을 신고 이상훈을 쫒아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는 못 들었는지 모퉁일 돌아갔다.
“ 야 임마 거기 서봐.”
그는 악을 썼다. 다행이 효과가 있었던지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 지금 나에게 그런거요.?”
“ 아 그게 말이요. 그건 그렇고, 아까 마지막에 하던 애기말요.”
“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요?”
“ 거 사람에게서 돈을 받는다는……”
말을 얼버무리던 김세진을 빤히 쳐다보던 이상훈은
“ 아 그거 말이요. 여객선 말하는 거요.”
“ 바로 그 여객선 말요 같이 합시다.”
뜬금 없이 아님 밤중에 홍두께식으로 처들어 오는 그의 말에 잠시 멍하던 이상훈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상해에 정박한 송상소속 상선인 대동강호는 돛과 증기선 특유의 굴뚝을 가지고 있었지마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고 있었다. 증기기관의 외부 유출을 꺼려한 천군부에서는 모든 외항선박에
군관을 승선시키고 증기기관의 운행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밤에만 허용하고 있었다.
대동강호는 상해에 정박한지 꼬박 이틀 만에 짐을 다 부리고 명 각지에서 사드린 비단이며 목화솜등을
다시 싣었다. 해가 뉘엇뉘엇 바다건너 조선땅으로 사라지고 있을 무렵 불도 켜지 않은 선실에는
일단의 사람들이 명 관원들의 감시를 피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오고 가는 말들이 너무 작아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 이번에 대명부에서 트로이목마작전을 더욱 강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소”
“ 지금도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데 여기서 더욱 강화하라면 우리의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가요 ?”
“ 아마도 상부에서는 몇 년안에 명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를 희망하는 듯하오만. 과거 정거정이
쌓아놓은 명 국고를 빠르게 소진 시킬 방법을 생각해보시고 관리들의 부폐를 교묘히 조장하도록
합시다. 아울러 천주학을 널리 전파해서 일반 백성 민심을 잡기위해 비둘기부대의 활동도
지원하도록 하고요.”
“ 관리들의 활동이 빈번해진 것이 아무래도 수상한데요?”
“ 그러게요 모두들 조심하시고, 모든 외부활동은 비둘기부대에게 맡기고 다른 요원들은 상인으로
위장하여 자신의 신분을 절대 노출시키지 말도록 하시오. 상부의 지시를 잊지 말고 다음 회합은
한달후 광동에서 봅시다. 그럼 이만. “
대명부소속 공작원들이 대동강호를 나왔을 때 해는 이미 사라지고 어둠만이 대지를 덮고 있었다.
군데군데 횃불이 피어 올랐고 선창가는 일을 마친 인부들로 가득찼다.
집으로 향하고 공작원들은 인부들 사이로 끼어 들어 사라졌다.
1601년 9월 발생한 이례적인 대 홍수로 장강이 넘쳐흘러 수백만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장강주변의
마을이 모조리 수마에 휩쓸려 내려갔다. 농지가 황토물에 뒤덮혀 일년농사를 모조리 망쳐버렸다.
명조정에서는 이재민 구난을 위해서 엄청난 자금을 주변성에 보조해주고 백성들을 구난하라 하였으나.
강소성, 안휘성, 호북성 성주들이 자금을 착복하고 그 일부만을 이재민들에게 풀었다.
이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강소성 백성들이 성주에게 달려가 항의하였으나 군사들에 의해 모조리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소식이 사방으로 전해지자 장강을 접하고 있는 모든 성에서
농민과 부랑자들이 합세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다행이 이 난은 중앙군의 투입으로 진압되었으나 명조정에 대한 민심의 이탈이 가속화 되었고,
수십만의 부랑자들이 중국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온갖 악행을 저질러 민심이 흉흉해졌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번 난을 쟝수이난으로 지칭하였고 명왕조가 이때부터 빠져 나올 수 없는
쇄락의 길로 들어섰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쟝수이난을 진압하기위해 조선의 확장을 경계하던 만리장성주위의 국경수비대가 오할 가까이 빠져
나가자 그로 인해 국경수비가 허술해졌다. 그 틈을 타고 일부의 부랑민들이 만주로 월경을 시작하였다.
쟝수이난을 보고 받은 대명부부장은 흡족한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이번과 같은 난이 한번만 더
일어나면 명의 침몰은 더욱더 빨라질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도 외무부에 배정된 예산의 6할을
대명공작에 퍼 붇고 있었다.
대륙의 강은 너무 길기 때문에 대홍수는 피할 수 없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홍수는 치수를
확실히 하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이번과 같은 대홍수가 농민반란으로 이어진다면…… 흐흐흐”
말없이 미소를 짓던 그는 벽에 걸려있는 세계전도를 바라보며 중국의 남쪽을 응시했다.
마카오에 포르투갈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그들을 몰아내고 대만과 해남도를 손에 넣으면
중국은 완전히 외부와 단절되고 조선의 품안에 살포시 안기는 형상이다.
전통적으로 쇄국정책을 펴오는 명조정은 주원장의 유지를 너무도 충실히 받들고 있어서
만리장성 밖으로는 도데체 나오려 하질 않았고 들어오는 자들도 극히 경계하고 있었다.
조선의 힘이 지금보다 강했다면 이런 치졸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조선에 신식무기와 천군이 있다고는 하나 명은 인구 일억이 넘는 대국이고 하루아침에
무너뜨릴만한 나라가 아니다. 이제 민심도 흉흉하니 천주학이 저들의 저변으로 파고들어가
저들이 각성할 날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너무 각성하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원산앞 바다에서는 추진중인 해군증강사업의 결실로 이번에 새로 건조된 1000톤짜리 포함을
시험 운행중이다. 사업단 단장인 이종남 대령은 새롭게 개발된 105MM함포를 12문 장착한
이번 시험함에 승선중이었다. 이 함은 증기기관을 장착하고 있었고 우현과 좌현에 각각 5문 앞뒤로
1문씩 105MM 함포를 장착하고 전투를 전문으로 수행하는 증기선 최초의 전투함이다.
이번 시험항해는 울릉도를 거쳐 아키타에 입항하여 되돌아오는 것은 것이었는데. 자뭇 그 기대가 컸다.
원산앞바다에는 시험함의 증기기관에서 뿜어져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하늘높이 올라갔다.
“ 단장님 이제 함포 사격시범이 있겠습니다. 이것을 하시는게..”
함장인 김중모소령은 이종남단장에게 귀마개를 주었지만 이종남은 귀마개를 만지작거리기만 할뿐
귀에 꽂지는 않았다. 갑자기 좌현에 있던 함포 하나가 포를 쏘았다.
“ 꽝 ”
잠시후 멀리 표적으로 사용되는 낡은 목선 옆에서 물기둥이 올랐다.
“ 초탄 불발 우로 090 “
“ 꽝 “
“ 앞으로 030 “
“ 꽝 “
그렇게 계속 수정치를 내가며 쏟아진 포탄은 열발이 넘어서야 겨우 표적인 목선에 명중할 수 있었다.
처음 대하는 포이고 사거리가 기존의 판옥선포에 비해 20배이상이 나기 때문에 포병들의 솜씨를
재대로 선보일 수 없었다. 이종남 단장은 얼굴이 저절로 찌뿌려지고 있었고,
옆에 있던 함장은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몰랐다.
“ 꽈광 광광광 ”
일제사격이 개시되자 좌현과 우현에 있던 표적선은 침몰하고 있었다.
밝은 웃음으로 시험함에 승선했던 단장은 얼굴이 구겨질대로 구겨져 있었고 수화기를 들어
종선을 불렀다. 이제 그는 시험함이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원산항에 입항할 때까지
다른 배 건조를 감독해야만 했다.
“ 함장, 귀환할때는 모든 수병들이 새로운 함에 완전히 적응해 있기를 바라겠네.”
“ 네 알겠습니다. 단장님”
“ 단장님이 퇴함하신다. 일동 차렸 경례.”
종선에 사다리가 내려지고 단장이 천천히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부관이 먼저 내려가 종선을 단단히 붙잡아 두고 있어서 흔들림이 덜했지만 언제나 이런 일은
그에게는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단장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함장을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전포대원 갑판으로 집합하라. 일분이다.”
모든 포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갑판원으로 정렬하고 있었지만 모두들 겁에 질려 있었다.
이번 사격훈련은 자신들이 보기에도 너무 형편없었다.
더군다나 단장까지 합석한 자리에서의 형편없는 사격이다.
“ 포대장들 앞으로 나와.”
“ 귀관들은 이것밖에 못하겠나.”
“. 윽,”
함장의 발이 올라오자 한 포대장이 가슴을 붙잡고 쓰려졌다.
함장은 모든 포대장들에게 한발씩 골고루 공평하게 선물을 주자 좀 분이 풀렸다.
“ 울릉도에서 재사격이 있을 것이다. 그때도 이런 결과가 나오면 귀관들을 모조리 바다에
쳐 넣어 버릴거야 알겠나 ? ”
“ 네 알겠습니다.”
원산항을 벗어나자 눈앞에 망망대해가 펼져졌지만 갑판은 포대장들의 고함치는 소리와
포대원들의 함성소리로 떠들썩했다.
1605
꾸준히 시베리아로의 진출을 계속한 천군은 그 진출을 우랄대간에서 멈추고 그 입구에 큰 성을
구축하였는데 그 이름을 천인성이라 하여 러시아로부터 시베리아를 보호하는 전초기지로 사용하였다.
이로서 천인이 이땅에 온지 10년만에 우랄대간과 알타이 대간을 연결하고 남으로는 만리장성을 잇는
거대한 영토를 조선이 차지하게 되었다. 비로소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변경하고 치우천황은
태조로 등극하게 된다.
그때가 1605년 10월 3일이며, 이날을 기념하여 개천절이라하고 대한제국 최초의 국경일이 생기게
되었다, 이날 모든 죄인들의 죄를 경감해주고 왜인과 몽고인 만주인에게 대한제국의 국민임을
허가해주었다.
이때의 행정은 조선부/일본부/만주부/몽고부에 32도를 두고 시베리아부에 두개도를 두어 34도를
이루었다. 인구는 총 팔천3백만이었다.
천군부에서는 그동안 확장된 영토를 수호하고 앞으로 있을 정복전쟁을 위하여 1604년부터 100만대군
건설 프로젝트를 수립한다. 1602년에 육해공군 사관학교가 개교하고 초급장교를 교육시키기
시작했으며, 1603년에는 하사관 학교를 개교하였다.
1605년 전국의 20세이하의 젊은이들을 징집하기 위한 법령을 공포하고 대한제국의 국민이면
17세에서 20세의 젊은이는 영재학교 졸업생을 제외하고 누구나 4년간의 병역을 필해야만 되었고,
병역을 마치지 않은 자는 관직이나 국가에서 시행하는 사업에 동참할 수 없었으며,
국가의 허가를 맡아야하는 모든 일에 제약을 받았다.
첫해 징집된 젊은이는 총 대상자 백만중 오십만이였으나 그중 사십만 이상이 부적격자로 판명되어
현역에 편입되지 못하고 국가정책사업에 5년간 근무하게 되었다. 이 역시 군역을 필 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 현재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포르투갈/영국/프랑스/네덜란드들이 동인도/서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에서 어느 정도 견제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갹됩니다.”
“ 외무부에서는 요즘 외교관계가 진척이 되고 있습니까 ? “
확대 국무회의에서는 최근의 국제정세와 국내정세에 대한 정책 회의가 있었다.
천황이 주재하는 자리였으나 모든 실권이 국무위원들에게 위임된 상황였기 때문에
치우천황은 묵묵히 의자에 앉아 여러 대신들이 하는 애기를 듣기만 했다.
그도 요즘 천주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는데, 왕권의 유명무실 주장만을 빼면하나같이 대부분
천주학이 주장하는 것들에 동의 했다. 지금까지 고금의 책에서 민본주의를 접해보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권에 기초한 사상이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백성들을 요리하는가에 대한
사상이었지. 백성이 주인이 되고 백성이 스스로 참여하는 민본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회의는 꽤 진척이 되어 있었다.
“ 이번에 중등학교와 고등학교의 설립 건에는 너무 많은 자금이 소요되어 재정에 부담이 심각합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중등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일정금액의 수업료를 징수해야 될 걸로
생각되어지는 데요. 교육부에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 재정이 어렵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장학생 제도를 활용하여 한 반절 정도에게만 받는것이
좋을 듯 합니다. “
“ 현재까지 없었던 업종의 출현이 가속화 되고 있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 시점에서 미리 법을 제정하여, 회사 설립에 대한 규제가 필요할 듯 합니다만,
아직 우리는 제대로 된 헌법조차 없습니다. 지금까지 대동법을 약간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만,
사회가 복잡해지면 그에 걸맞는 행동규약이 필요합니다. “
“ 그 점은 우리 법무부에서 이미 연구하고 있고, 현재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습니다.
일단 기본법과 헌장은 마련되었고 그 세부사항은 조만간에 검토가 끝날 예정입니다만,
최대한 법률을 간단하게 하여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할 계획입니다.
너무 복잡한 법체계는 비 효울적이니까요.”
각부처간의 가장 시급한 현안을 토의하고 결정하는 이러한 정책회의에서는 언제나 재경부장관의
발언으로 시작하였다. 들어오는 세수에 비해 나갈 곳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세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조선에서는 거의 모든 재정을 만주와 몽고 명에 치중하고
있어서, 조선에서 시급한 건설공사가 일년에서 이년이상 뒤로 밀리고 있었다.
12월 25은 영재학교의 1회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탐스럽게 내리고있어서
겨울치고는 꽤 포근한 날이었다. 졸업식장은 많의 중요 요인들과 재학생 그리고 그의 부모들이
참석하고 천황도 참석했다.
“ 본인은 학교의 교장으로서 첫회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 것을 무안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 뜻깊은 자리에 참석하여 주신 치우천황폐하와 재학생 국민 여러분께 그 영광을 돌립니다.
여기 오늘 졸업할 80명의 학생들은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지난 십년 동안 이곳에서 오직 학문만을 공부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 지식을 대한제국의 국민을 위해 사용할 것을 엄숙히 맹세했습니다.”
주절이 주절이 이어지는 연설에 고개를 돌린 이인석박사는 부동자세로 서있는 80명의 졸업생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이제 항상 인력난에 시달리던 천인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저들은 아직 천인단의 지식을 반절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을 능가하고 자신들이 죽어 사라졌을 때 그 대를 이을 아이들이다.
“ 이번에 개발된 사륜구동엔진은 피스톤에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기통에서는 발생하지 않던 문제들인데 아마도 피스톤 링이나 실린더, 피스톤을 연결하는
축의 강도가 약하여 쉽게 마모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겨울에 분해된 엔진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디젤기관 팀원들은 지금 죽을 맛이다.
처음에는 쉬워보이던 디젤엔진을 만들기가 쉽지 만은 않았다. 대형 엔진은 이미 만들어져
시험운행을 하고 있었으나 자동차에 장착할 엔진은 계속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미 3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완전한 시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완제품을 완전히 분해하고 조립할 수는 있었어도 새롭게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마도 새롭게 만든 부품에 문제가 있는 듯 한데 수천 수만개나 되는 부품 중에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낼 길이 막막했다.
“ 일단 만들어서 사용하다가 계속 고쳐가면서 개량을 해야 되겠다.
이러다간 10년이 지나도 못 만들겠는데.”
“ 천군부에는 내가 그렇게 보고할 테니까. 고장 나는 부위를 세밀히 체크하고
시제품을 더 만들어서 시험을 해보지.”
영재학교 졸업식장을 다녀온 조준옥 천군부 장관은 요즘 젊은 마누라에게서 얻은 예쁜딸아이의
재롱을 보느라 일찍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오늘은 예솔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이제 막 6살을 지난 아이에게 조장관은 재미난 동화를 매일밤 애기해주고 있었는데 예솔이가 너무
좋아했다. 그는 나중에 은퇴하면 출판사를 하나 차려 동화책을 편찬할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 똑똑똑”
“ 들어와”
“장관님, 디젤기관팀에서 보고서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밤에 작은 회식자리가 있는데
시간이 되시면 …”
“ 어 미안하네 오늘은 예솔이에게 아라비안 나이트를 애기해줘야 하거든. 다음에 하지.
그래 무슨 회식이야?”
“ 노사모 모임입니다.”
“ 노사모 거 노총각모임 말야. 난 유부남이라고 나와는 안 어울리지. 돈이 필요하구만..
자네도 그러지 말고 빨리 결혼하라고. 노사모에서 월급 다 쓰지말고. 알았지.?”
그러면서 조장관은 100원짜리 몇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 그에게 주었다.
백두대간 어느 산자락
“ 헉헉헉”
“ 빨리 뛰어라 적들이 다가온다.”
“ 이하사 후방에 전초세우고 태백산까지 오늘안으로 가야하는데 이거 큰일이군.”
중대장은 열이 받을 데로 받아있었다. 보현산에서 시작된 이번 훈련은 원산까지 어느 중대가 빠르고
정확하게 도착하느냐에 따라 포상이 주어졌다. 단 민간인이나 대항군에게 발각되지 않아야 했다.
만약 발각되면 사살된 것으로 간주되어 훈련에서 자진 탈락하게 되었다.
주왕산자락을 돌아 갈때까지는 탈이 없었는데 그만 양양에서 길을 일은 한 병사가 대열을 이탈하여
민가에 침입했다가 매복한 대항군에 잡혀버린 것이다.
은닉이 최대의 무기인 침투대원으로서 자신의 위치가 노출된 것은 치명적이다.
이미 대항군은 전방과 후방에 포위망을 형성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민간인으로 위장하는 것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지금 자신들이 보기에도 우수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원산까지 가야만 했다. 민가로 내려갔다간 금방 들통이 날 게 뻔했다.
그만큼 그들의 복장은 특이했다. 얼룩덜룩한 위장복은 행동에 제약은 없었지만
요즘 같은 겨울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
앞서 달리던 이하사가 갑자기 손짓으로 대열을 멈추게 했다.
“ 전방에 초소가 있습니다. “
“ 몇 명처럼 보이나 ?”
“ 대략 4-5명정도 기관총 한정도 있는데요”
“ 뚫고 지나간다. 일분대는 우회하여 수류탄 투척하고 전령은 본대에 현 상황을 알린다.”
전령이 본대로 열심히 달리고 있을 무렵 우회한 일분대가 수류탄을 투척했다.
모의 전투였기 때문에 입소리로 그들이 수류탄 공격을 받았음을 대신했다.
“ 꽝꽝.”
“ 이런 멍청한 새끼들을 봤나. 본대는 현 지점을 최대한 빨리 벗어난다.
선두는 저 멍청한 새끼들을 크게 우회해서 태백으로 달린다. 아니 이미 늦었으니까.
백두대간을 버리고 내륙 깊숙이 충청도로 들어간다.”
“ 아니 왜 그러십니까 중대장님. 저들을 버리고 가다뇨.”
“ 이 바보새끼야, 기관총까지 있는데 거길 건들었으니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야.
이미 이지역은 완전히 포위된 거라고. 저건 미끼야 미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령의 뒤를 밟아온 대항군에 의해 그의 중대는 몰살당하고 말았다.
그 훈련의 특성상 단 한명의 대항군에게라도 발각되는 자들은 다 죽은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몰살당하고 만 것이다.
원산에서 부하들의 훈련과정을 시간마다 전해 듣고 있던 특전여단장은 표정이 안 좋아보였다.
방금전 한 개 중대가 몰살했다. 이제 겨우 훈련개시 이틀이 지났는데 그사이에 한 개 대대병력이
사라진 것이다. 멍청한 부하들은 포상에 눈이 멀어 최단거리를 택했고 최단거리를 택한 자들은
모조리 전멸이었다.
다행이 몇개 중대는 거꾸로 전라도나 충청도로 숨어 들어갔고 그들은 그만큼 생존확률이 높아 보였다.
내년 일월에나 이번 훈련이 끝날 것이지만 이대로 가다간 올해안에 전 부대의 몰살을 걱정해야했다.
서울/의주간 도로에는 때아닌 군인들의 행군소리로 가득찼다. 길가는 행인들은 길을 비켜줘야만 했는데
그들은 이번 훈련에서 사상자로 판명되어 원산까지 5일안에 도착하라는 여단장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도보로 이동해야만 했다. 관도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그들은 하루에 100KM를 주파하는
능력이 있었지만 원산가지 5일만에 도착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루에 5시간씩 자고 열심히 뛰어가야만
가능한 거리였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여단장의 무시무시한 얼차려를 당해야만 했는데 그건 너무도 싫었다.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5일안에 원산에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가사키군청에는 이른 아침부터 일본인들이 관청에 길게 줄을 서고 있었는데,
오늘부터 일본부 거주민들에게 예전의 호패 비슷한 주민증을 발급하고 있었다.
모든 주민들에게 발급되는 것은 아니고, 삼년간 한곳에서 국가에 세금을 낸 실적이 있거나
군대를 댜녀온 자들 중 17세이상과 한글을 알고있는 자에게만 발급이 되었다.
주민증을 제시하면, 그는 대한제국민으로 인정을 받게 되고 출신에 상관없이 조선인이 누리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이 일본부를 벗어나 몽고까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거나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물론 개인의 실력에 달려있지만...
지난 10년동안 꾸준히 천주학을 보급한 덕분에 많은 젊은이들은 한글을 다 읽히고 있었지만
나이 많은 이들은 그렇치가 못했다.
일본부 큐슈도를 10년동안 통치해온 유성룡은 요즘 들어 부척 근력이 약해지고 몸이 예전같지 않았다.
황립의료원에서 보내오는 약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지만 이제 그만 관직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는 지난 10년동안 일본인들의 생활개선에 무던히 노력하였고 일반백성들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의 사직서가 한성에 전해진 것은 그해 여름이였는데 갑자기 찾아온 여름 감기로 몸져 자리에 누어
더 이상 정사를 볼수 없었다. 임시로 혼슈부에서 관원이 나와 급한 용무를 처리하고 있었지만
후임을 빨리 정해야만 했다.
유성룡의 소식을 접한 일본부 부주 주경환은 자신의 앞날도 얼마남지 않음을 직감했다..
천군부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는 지난 10년간의 세월을 버티기에는 육체적으로 나 정신적으로
너무 쇄락해 있었다. 어쩌면 그는 천인중에서 장성급으로는 처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인물이 될지
몰랐다. 그는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내기 위해 유성룡과 같이 사직서를 한성으로 올려 보냈다.
두 거장의 사직서를 거의 동시에 받아 든 치우천황과 천인단에서는 난처했다.
일단 큐슈부는 대마도주 이항복을 승진 발령내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으나 주경환 후임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그만한 경력과 인품을 갖춘 사람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일본을 완전히 편입했다고 볼 수 없었기에 일본부는 무관 출신이 제격이다.
그렇다고 완전 무관 출신자를 보낼수도 없었다. 고르다 고른 천인단에서는 허상철 천군부 참모장을
천거했고 다른 대안이 없었던 국무회의는 그를 일본부 부주로 임명하여 일본부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허상철 중장은 일본부로 떠나기에 앞서 천군부장관을 만나러 갔다.
“ 어서오게 허중장 아니지 이젠 일본부주산가 ?”
“ 쑥스럽습니다. 장관님. “
“ 자네는 잘 할 수 있을거야.”
“ 이제 우리도 슬슬 물러날때가 오는 건가 !!”
1605년
여름에 광할한 영토의 효과적이고 계획적인 이용과 개발을 위해 천인단에서는 토지 개혁을 위한
입법을 예고했다. 그 골자는 토지의 이용에 대한 권한만을 인정하고 소유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토지 공개념을 골자로 했다. 모든 개인 소유의 토지를 국가에서 점차적으로 매입하고 사사로운 매매를
금지했다. 이를 총괄하기 위해서 토지부가 새로이 신설된다.
일정한 양의 토지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는 관청에 이용신청서와 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그 이용에 맞게 최고 한도가 정해져 토지를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었다.
임업을 포함한 농사를 목적으로 한자는 최고 99년, 공장건설 및 기타 건물 건설은 최고 30등의
기한을 정하고 기한이 지나면 갱신하도록 하였다. 원칙적으로 토지 이용권한의 임대는 금지되고
이용목적에 반하여 이용되었을 때는 권한을 몰수 하거나 이용변경 신청을 하도록 했다.
몇몇 토호들이 이에 반발하였지만 물리력으로 진압하기도 하고, 막대한 현금을 동원하여 반발하는
토호들의 토지를 강제로 매입하여 현금을 떠 안기는 것으로 무마하곤 했다.
경상도 영천부근의 한 관청에는 반신 반의 하던 심정으로 이용신청서를 내기 위해 s농민들이 길게
줄을 섰다. 먼저 신청서를 낸 농민들이 허가증을 받아 들고 마치 자신의 토지를 소유한 양 마냥
기뻐하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줄을 크게 두줄로 세워졌는데 한 줄은 관청으로
들어가는 줄이고 한 줄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신청서를 대신 써주는 대필가에게 가는
줄이었는데 대필줄이 훨씬 길었다.
마을에서 한글을 깨친 몇몇 젊은이들이 관청의 허가를 얻어 덕석 한장을 깔고는 그 위에 나무로 짠
밥상 하나를 탁 놓아놓고 신청서 한장당 일원을 받고 대필을 해주었다.
“ 아 거기 줄을 서세요 줄을 서지 않으면 신청서 대필를 오늘 그만 할 겁니다.”
막무가내로 밀려오는 사람들로 질서를 잡기에 애를 먹고 있는 이상벽이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다.
“ 아니 이사람 상벽이 아는 사람끼리 그럴 수 있는가 ? 나 좀 먼저 해주면 안되겠나 ?”
먼 친척 아저씨뻘인 할아버지가 신청서를 내밀자 이상벽은 난처했다. 뒤에서 몇시간째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면 그럴수가 없었고 친척인데 모른체 하기도 껄끄러웠다.
괜한 일로 일가 친척들에게 못 쓸놈으로 낙인찍힐 지도 몰랐다.
“ 안녕하셨세요 아저씨. 아직 신청 안하셨서요 ?”
“ 도통 나라에서 하는 일을 믿을 수 있어야지. 그래서 좀 지켜보다가 인제 왔는데 사람이 엄청 많구만
석달 열흘은 기다려야 되겠어. 자네가 좀 봐주게나 친척이 뭔가 응 ?
아저씨는 이상벽에게 때를 쓰고 있었지만 뒤에서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가만있질 않았다.
“ 거기 지금 뭐하는 거요. 난 아침나절부터 지금까지 기다렸단 말요. 빨리 저기 뒤에서 줄서시오
안그러면 재미 없습니다.”
뒤에서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할아버지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런 호로새끼를 봤나. 그래 너는 애비 어비도 없냐. 이 늙은이가 내 조카하고 애기좀 하겠다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아저씨 왜 이러십니까 이따 밤에 집에서 써드릴 테니까 내일 다시오세요 네 ?“
“ 그러다 다른 놈들이 좋은 땅 다 차지하면 어쩌나 꼭 오늘 해주게나 상벽이 “
“ 안됩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 에이 더럽다 더러워. 진작에 자식놈에게 한글인지 뭔지를 배우라고 했더니만
동네 처녀 뒷꽁무니만 따라다니더니 네 이놈의 자식을 그냥.”
어쩔 수 없었던지 할아버지는 자식놈 욕을 하면서 자리를 떴다.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돈이 될수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 다음 분 들어오세요 “
관청 입구에서 한 말단 직원이 소리치자. 건장하게 생긴 젊은이가 성큼성큼 관내로 들어서더니
심사관 앞에 신청서를 내밀었다.
“ 잘 좀 봐 주십시오 나리님”
“ 잘 봐 드리지요. 어디 봅시다. 이름이 개똥이. 개똥이. 이름이 이게 뭡니까.
개똥이가. 성은 없습니까 ?”
“ 성요 ? 그냥 다들 개똥이라고 부르는뎁쇼 나리님”
“ 참내, 대필해주는 사람이 이런 거 가르쳐 주지 안합딥까 ? 이거 누가 대필해줬습니까 ?”
“ 제가 직접 썼는뎁쇼 나리님”
“ 거 나리님자좀 빼십다. 듣기 거북하네요 “
“ 알겠습니다. 나리님 “
“ 참내 “
심사관은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쓴 신청서를 받자 흥미가 동했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할당된 토지가 자신의 앞에 있는 행운아를 끝으로 다 처리가 되었다.
이 행운아 뒤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차지할 땅이 없었다. 이 근방에는.
“ 그럼 어떤 성이 좋을까 ? 제 성이 소씨니까. 아저씨도 그냥 소씨 하세요. 괜찮죠 ?”
“그럼요 나리님. 그럼 전 소개똥이 되납뇨 나리님 ?”
“거참 말귀를 못알아들으시네. 나리님이 아니라니까 ?”
“ 죄송하구만요 나리님.”
심사관은 포기한듯 더 이상 나리님을 붙이는 순박한 청년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직접
써 왔다니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여서 이런 말은 뭐하지만 대견스럽게 보였다.
“ 주소는 배나무골 아래 마을이고 논 이만평 ?”
“ 신청하신 땅이 너무 많군요 이천평으로 바꾸겠습니다.”
심사관이 연필을 들어 신청서를 다시 쓰려하자. 소개똥이가 황급히 그 손을 잡았다.
“나리님 이천평이라니요. 안됩니다. 딸린 식구가 열명도 넘는데 한 이만평은 있어야 합니다.”
심사관의 소개똥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딸린 식구가 열명이라도 이만평은 한 가족이
농사짓기에는 너무 넓은 땅이였기 때문이다.
“아니 이만평이 얼마나 넓은지 아십니까 ? 자그마치 100마지기란 말요. 당신 혼자 100마지기를
농사지을 수 있소 ? 도데체 알고나 하는 말씀인지 엥 “
소개똥은 자신이 이만평이라고 적어놓고도 실은 그게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오지 않았다.
그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는 생각에 무작정 적어넣었는데 심사관의 말대로 100마지기라면
자신에게는 그 십분의 일도 힘겨운 땅이었다. 그는 머리를 글쩍였다.
“그렇게나 많은감요. 잘 몰라서요 죄송하게 되어 구만요 나리님”
“되었소 그만 나가 보시고. 이 종이 잘 간직하시오. 조만간 관청에서 사람이 나갈 테니
그때 보여 주시면 관청직원에 소개똥씨가 내년부터 지을 땅을 알려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리.”
소개똥이 관청을 나서자 관청 밖에 공고가 붙었다.
“ 농민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금번 농지 이용계획 신청서 접수가 마감되었습니다. 차후 변동사항이 생기면 각 마을 이장님을
통해 전달하겠으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한 농가당 이천평에서 삼천평정도의 농지가 할당되자 평야지대가 아닌 곳에서는
근근히 소작농으로 살아가던 많은 농민들이 농사 지을 농지를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비단 조선만이 아니라 일본부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는데, 토지부에서는 그들에게 만주로
이주하기를 강력히 권고하였고, 그곳엔 기름진 땅이 많아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선전했다.
물론 이주한 자에게는 얼마간의 정착금이 주어진다는 것도 덧붙였다.
고향을 등지고 떠난다는 것을 극히 꺼려하던 농가들이 가을 추수가 끝나자 일부 선구자들을
중심으로 하나 둘씩 만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특별히 수송선 이용권이 주어졌고
이동하는 동안의 비용을 토지성에서 부담하였다. 도보로 이동한다면 시간이 너무 걸리고 가는 도중
병을 얻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을 우려한 천인단의 배려였다.
각 항구로 이동한 이주민들은 해군에서 제공한 수송선에 올라타 의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다시 송화강지류를 이용해 만주로 흩어졌고, 일부는 연해주, 간도지방으로 들어갔다.
정착촌은 50가구를 기본으로 건설되어졌다.
하나둘씩 생겨난 정착촌들이 이주 3년이 지나자 수백개가 넘게 생겨났다.
대략 십만명의 사람들이 이주를 했고 계속해서 이주가 이루어 졌다.
1607
오랬만에 조준옥에 찾아온 親舊를 위해 술상을 마주앉은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였다.
조준옥천군부장관은 이년전의 주경환 일본부지사와 유성룡의 퇴임을 바라보면서
이제 천군1세대가 서서히 후배를 위해 물러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황권은 많이 약화되었다지만 여전히 경계해야만 할 세력이다.
지금은 웅크리고 있을 그들이지만 언제고 한번은 이몽학의 난을 더 일으키고도 남을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선조가 작년에 붕어하신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본격적으로 민중에 대한 힘을 키우고 교육에 힘쓴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그 힘은 미약하고
사회를 이끌어갈 만한 역량을 키우지는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백성들은 양반에 대한 신분차를 극복하지 못해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한번 더 이몽학의 난 같은 일대 혁신을 이룰만한 사건이 필요했다..
“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가 ?”
이런 저런 생각에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김영철이 침묵을 깼다.
“ 우리가 죽거나 현직에서 물러나면 과연 우리의 원대한 포부를 후손들이 잘 해 나갈수 있을까 ? “
“ 그 점은 천군부과 천인단에서 줄곧 염려해온 일이지. 그래서 그렇게 백성들의 힘을 키우기위해
노력하지 않았나. 앞으로 오년만 지나면 우리가 이땅에 온지도 20년가까이 되지.
그러면 한세대는 사라지는 거라구. 천주학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백만명이 저변에 생기는데
아무럼 그럴 만한 힘도 없을라구.”
이십년 가까이 거의 대부분의 힘을 문맹률 퇴치에 힘써운 천인단과 천군부의 노력으로 문맹률이
반절을 하회하고 있었다.
“ 하지만 그들이 이제 기껏해야 출사 초년생들이지. 겨우 이제 영재학교를 졸업한자들이 140명을
넘었고 중등학교를 졸업한 자들은 삼만정도야. 그들이 사회의 저변을 장악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아직도 자기 이름 석자도 못 쓰는 자들이 태반이야. 그들 대부분이 양반이라면 무조건
머리를 숙이는 것을 숙명으로 아는 자들이고”
“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 이번에 대명부에서 기획안을 제시했네. 명이 사라지면,
과거 명에 충성하던 사대주의자들도 대한제국을 새롭게 보게 될거야.
그리고 지금은 중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일선에서 국사에 뛰어든 자들이 적지만,
내년부터는 매년 십만에 가까운 인원이 보충 될거야. 그리고 천군부에서 제대하는 인원들도
그 정도 되고. 그들에게 힘을 조금씩 나눠줘서 사회를 받치는 기둥 역할을 하게 만들어야지.”
“ 저번 처럼 이몽학의 난을 한번 더 조장하는 게 어떻겠나. ?”
신진 세력에게 권력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력과 바뀌치기를 해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빈틈을 보여서 한번에 쓸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 그건 좀 위험해. 괜히 자충수를 둘 수가 있네. 아마도 일단 우리가 일선에서 물러난 후
그 추이를 좀 지켜보도록 하지. 저들의 세력이 어떻게 움직이나 한번 살펴봄세나.”
“.그거에 대해 천군부 정보부에 뭐 잡히는 것 없나 ? “
“ 분명이 있긴 있는데 저들이 너무 조심하더군. 요즘들어 늙은이들이 천황을 자주 만나는 눈치야.”
어느 정도 사회의 불만 요소를 무마하기 위해서 천인단에서는 사대부 자제들에게도 관직의 문을
열어 두고 있었고, 지난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지 않은 노신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노신들이 뭔가를 꾸미는 듯 보였다.
“ 음. 일단 지켜봄세나. “
“ 그러지.”
“ 적당한 때에 우리도 주경환 일본부지사처럼 물러나야지.?”
김영철 천인단장은 주경환 선배가 부러웠다. 그는 정치가보다는 한적한 곳에서 글이나 쓰며 지내길
언제나 소망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적당한 후임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맡기려고 하였지만
번번이 親舊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곤 했다.
“. 명과 러시아를 합친 다음에 그러세나. 그때가 되면 물러나도 되겠지.”
조준옥 장관은 자신이 없으면 천군부가 와해되지나 않을 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는 가능하면
오랫동안 현직에서 복무하고 싶어했는데 親舊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섭섭하기만
했다.
“. 대명작전은 언제쯤 할 계획인가. ?”
조준옥이 얼른 화제를 바꿨다.
“. 대명부에서는 1610년이나 가능할 것 같은데. 천군부에서는 언제나 준비가 끝날 것 같은가.”
“. 지금도 준비중이네. 일본부 부대가 3만정도 만주에 들어와 있네. 그리고 만주부와 조선부에서도
5만정도가 몽골과 만주로 이동 중이고. 워낙 보급로가 길다 보니까. 트럭이 생산되고 전선에 배치된
다음에나 가능할거야. 내년에나 트럭이 보급될 것으로 생각되는 군.
그후로도 한참 있었야 수송사단편성이 끝날 것 같은데”
“아직 전차나 장갑차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감당할 수 없는 피해가
날 수도 있어.”
김영철은 명의 인해전술에 맞서기 위해선 보다 강력한 화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조금만 기다려보게나 좋은 소식이 곧 올거야. 그보다 전지엔진이 먼저 실전배치 될 것 같으니
그거라도 이용해야겠지. 그러면 잠수함을 운용할 수는 있을 거야. “
“ 그거 반가운소식인데. 그런데 이 시대에 잠수함이 굳이 필요할까 ?”
그나마 다행이였다. 전동기를 만들어 낸다면 군의 현대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 동남아에서 서양상선이나 함대를 좀 공격할 생각이야. 바다속에서 오는 공포를 좀 전해주려고.
이곳에서는 필요가 없겠지뭐.”
“ 민간인분야의 산업발전이 더욱 가속화 되어야 하는데 인력이 모자라서 문제군.
농촌에서 끌어오자니 농사가 문제고 난감하군.”
“ 그래서 명을 빨리 흡수해야되 일억이 넘는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 “
“ 그만 그만 하세나. 아이고 머리야 .이거 너무 딱딱한 얘기만 했구만 술이나 한잔하지.”
조준옥은 짐짓 머리가 아픈 듯 왼손을 관자놀이에 대면 술잔에 술을 따랐다.
둘은 가볍게 술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털어 넣었다. 알싸한 알코올의 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짜릿해서 인지 김영철이 순간 몸을 살짝 떨었다.
오랫만에 조준옥집에서 환담을 나눈 김영철은 호위병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조준옥이 말한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긴 했으나 지금으로서는 뽀족한 방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군대와 민권의 확실한 성장만이 지구 역사상 통일된 제국을 건설하고 우주밖으로
태극기를 날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백성을 위한 정치가와 군대의 양성은 그의 유일한 꿈이었고
이 시대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 아버지 오셨다. 철민아 “
“. 아버지 오셨습니까.? “
어머님의 말씀에 자기 방문을 열고 나온 꼬마가 인사를 하고는 김영철에게 달려들었다.
“ 그래 철민이는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 ?”
집에 들어온 김영철은 올해로10살이된 아들이 마냥 귀여워 보였다. 조선에 와서 김해 김씨 딸
금주처자를 아내로 맞이한 영철은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다. 그가 커서 천인단의 일원으로 일을
하기전 까지는 그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예 아버님. 학교에서 요즘 미적분을 배우고 있는데 이것이 실생활에 어떻게 쓰이는지 그 용도를
알 수가 없어 고민중입니다.”
“ 그래 미적분의 원리를 알고는 있느냐.?”
10살짜리가 미적분을 공부하고 있다니 참 신기했다. 자신은 17살때에나 미적분을 대할 수 있었는데.
“. 그러하옵니다만.”
아들에게 천인단 단장이며 국무총리를 맞고 있던 김영철은 빙그레 웃었다.
“ 네가 지금 깨우치고 있는 것 보다 더 고차원적인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더 많은 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네가 배운 것은 겨우 일차나 이차원적인 문제를 푸는데 불과한 것이다.
삼차원의 문제를 풀려면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하지만 그것 또한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니
너는 더욱더 그것을 발전시키도록 하여라.
저 밤하늘을 보아라. 저 빛나는 별들은 각각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행성을 수십개씩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 거기에도 분명이 생물이 존재할터,
우리 천민의 자손들은 그 힘을 저 멀리 우주로 뻣어 나가야 한다. 지구는 너무 좁다.
저 우주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의 밑거름이 지금 네가 배우고 있는 것들이니 지금 당장 효용이
없다 하더라고 익힘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기초가 없이 지어진 집은 작은 바람에도 허물어진다.
알겠느냐.?”
“ 네 아버지 ”
철민이는 학자이면서 사상가이시고 시인이면서 소설가이시고 군인이시며 한 가정의 다정한
가장이신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존경했다. 요즘 아버지는 매일밤 책을 저술하고 계셨는데
그 내용이 하나같이 이해 못할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훗날 자신이 영재교육을 졸업하게 되면 아버지는 자신이 쓴 책들을 모두 이해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의주의 한 연구소
“ 목기료박사 드디어 우리가 일을 끝냈구려 “
지난 수년동안 연료전지를 개발하고 그 힘을 동력으로 이용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목기료박사와
백기창박사는 서로 얼싸 않고 좋아하고 있었다. 디젤엔진이 필요료 하는 강선철을 쓰지 않고도
그는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엔진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기관은 사용되고 있는 모든 증기기관이나 농업용 기계를 대체하는데 샤용 될 수 있었고,
특히 잠수함을 건조하는데 사용될 수도 있었다. 이로서 잠수함에 장착할 전동식 어뢰도
그 개발이 한창 쉬어졌으며 조만간에 실용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자 그만하고 내가 소주한잔 사지 가세나.”
“ 그러세나 그려 하하하하."
몽고부를 맡고 있던 김대성부지사는 카자크인과 러시아 농노들의 무단 월경으로 골치가 아파왔다.
어수선한 러시아의 국내사정으로 많은 농민들과 자유사상에 젖어있던 카자흐인들이 국경선을 넘어
대한제국 영토로 넘어오고 있었다.
정책상 그들을 환대하고 일정기간동안 교육을 시킨 후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정착하여 생활하는 것을
돕고는 있으나 때때로 교육을 받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자들이 나타나곤 하였다.
그들을 찾아내 처벌하는데 온 치안력이 동원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사로운 시비가 붙어 최근에 사병하나가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물론 그자리에서 총상을 입고 잡혀서 시베리아 공역장으로 끌려 갔지만
이번 사건으로 귀화한 러시아인들과 몽고부 백성들과의 사이가 나빠지고 있었다.
“ 그대들을 부른 것은 이번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기위해서요.”
김대성지사는 러시안인 촌락의 대표자들을 급히 불러모아 이번사태에 대해 몽고부의 입장을
그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 대한제국에서는 그대들에게 가급적 편의를 제공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하였으나.
거기에는 그에 상응하는 조건이 있소. 다들 아시겠지만. 이곳에 들어와 살기 위해서는
모두들 6개월간의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한 적정수준의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대한제국에서 보여주었던 그대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지사어른 그 일은 저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일부 몇몇 불량한 자들이 끼어 들어 지사어른의
심기를 어지렵혀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곳의 정착촌중 제법 큰마을의 촌장을 맡고 있던 춈스키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조선어 솜씨가 제법이었다.
“ 그래서 말인데. 그대들이 이런 일은 자체적으로 제어해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병사를 풀어
그들을 찾고자 하면 꼭 무력을 사용해야하고 그러면 서로가 원치 않는 사태가 벌어지니 자치대를
구성하여 스스로를 통제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두번 다시 대한제국의 법을 어기는 자는
무조건 사살하겠소이다. 아울러 그들을 받아들인 마을주민들을 모두 추방하겠으니 그리 아시오. “
김대성은 엄포를 놓았다. 자신은 지금 몽고인들을 대한제국민으로 흡수하는 일에 전념하기에도
시간과 인력이 부족했다. 이야기가 너무 강압적으로 흐르자 슬며시 김대성은 화제거리를 바꿨다.
“ 아 참 촘스끼촌장님 아드님이 중등하교에 입학했다지요 ?”
“ 네 그렀습니다 지사어른”
“ 잘 된일이요. 비록 그대들은 촌락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대들의 후손들은 어엿한 대한제국의
국민으로 모든 권리와 의무를 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구려. 자유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니까.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
김대성지사는 이제 그만 면담을 마치고 싶었다.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했으니
그 다음은 저들의 몫이었다.
“ 저 지사어른. 몽고부에서 의사를 지원을 해주셨으면 하옵니다.
병이 걸려도 치료할 만한 마땅한 약재나 의사가 없습니다. “
“ 그래요 내 그리하리다. 십년 안에 그런 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길 바라겠소이다. 그럼.”
서둘러 촌장들과의 면담을 마치고 난 김대성은 서둘러 관사를 벗어나 사막으로 달려갔다.
고비사막에 나무를 심겠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김대성은 지금 계획하고 있었다.
지금의 고비사막은 2003년 보다는 넓지 않았지만 여전히 광활한 모래의 바다임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의 생각은 간단한 것인데. 하나는 유목과 농사를 반반씩 하는 몽고인들에게 유목을 부분적으로
제한하고 목초지를 조성하게끔 유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목초지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었다.
마직막은 좀 어려운 일인데 사막에 일년 내내 물을 공급는하는 공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원리는 오늘날의 스프링 쿨러와 같은 것으로 파이프를 통해 사막에 물을 보급하는 것이다.
수경재배처럼. 물만 공급된다면 풀은 금세 펴져나가 100년이 흐르면 초원으로 변해갈 것이라
그는 확신했다. 그는 시험적으로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 반경 오백평방미터에 특별히 제작한
수도파이프를 쫌쫌히 깔고 각각의 파이프를 중앙에 세워놓은 커다란 물통에 연결하였다.
그는 천인들이 이라크 사막에서 실험하려 했던 작물 종자를 수소문하여 심기로 하였다. 특별히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되는 콩을 물이 떨어지는 곳에 심고 그 주위에는 목초를 뿌리채 뽑아다가 심었다.
목기료 박사가 의주에 있는 구석진 연구실에서 연료전지와 씨름하고 있을 때 한편에서는
또 다른 박사가 획기적인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성진 박사는 아직 박사라고 하기엔 경력이 많이 부족하였다. 그는 영재학교 1회 졸업생으로
물리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어서 요즘 핵물리학에 대한 기초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우라늄과 방사능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기 때문에 방사능노출이 생명체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연구실은 특별히 건설되었고 외딴 곳에 일개 중대의 단독경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의 실험은 천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라 핵폭탄의 기초자료가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진박사는 그래서 매일매일 모든 기록을 천인단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고 천인단에서도
핵물리학은 아니더라도 그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그에게 붙여두고 있었다.
“ 이제 겨우 105밀리야포와 기관총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생산되는 철의 강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연사 능력은 형편없이 떨어집니다. 케이투를 모방한 소총역시 그렇습니다.”
“ 이미 공정은 제대로 가동되고 있으니 양질의 주석합금이 생산되기만을 기다려야 겠군요.”
무기창을 책임지고 있는 수석연구원들은 오늘도 새로 개발된 200미리 야포를 시험하다가
포신이 깨져서 하마터면 인명사고가 날뻔했다. 다행히 사격 후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다음탄을 쏘는
방식으로 실험하던 중이였기 때문에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불과 2발을 쏘고 나서
시험포 5문중 3문에서 문제가 발생되어 버린 것이다.
“ 아마도 원산에 지어지고 있는 새로운 제철소가 완공되고 나면 좀 좋아지겠조. 코크스공법으로
생산되는 철에 주석을 섞어놓으면 우리가 원하는 강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원산의 제2 제철소가 완공되기전에는 이런 연구가 아무런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차라리 고체연료나 액체연료쪽으로 연구방향을 정해보는 것이 어떨런지요 ? “
“그럼 로켓을 만들어 보시겠단 말씀이십니까 ? “
“ 포에 대한 연구는 충분합니다. 이만한 자료면 후배들이 알아서 더 좋은 포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는 이쯤에서 로켓을 한번 만들어 봅시다.”
“ 그러지요, 우리팀에 주어진 과제중의 하나니까요. 우리가 죽기 전에 유도탄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글세요. 그사이에 반도체가 개발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이미 레이다는 만들어 졌고
실용단계에 들어가 있으니까요. 그런 일은 전자공학도들에게 맡겨야지요.“
김영철 천인단장은 몽고와 시베리아를 거쳐서 올라온 러시아관련 정보문서를 읽어 보았다..
러시아는 요즘 한창 어지러웠다. 가짜 드미뜨리의 출현으로 내란이 끝이지 않았고 유럽의 침공도
계속됐다. 작년에 새로 짜르에 등극한 바실리 슈이스끼는 적이 너무 많았다.
이미 남부의 많은 지방관들이 모스크바의 권력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몽고와 가장 가까운
아스트라한의 지방관인 이반 역시 반기를 들고 새로운 짜르를 인정하지 않았다.
권력의 암투가 계속되고 있는 모스크바는 그야말로 한치 앞도 모르는 안개 속 같았다.
천군부와 천인단에서는 대명공작을 꾀하고 있었고 여차하면 모스크바도 점령 하려 하고 있었다.
제2의 드미뜨리를 만드는 것도 나쁜진 않은 것 같았다.
러시아는 유럽을 도모하기위해서는 꼭 필요한 땅이다. 그곳만 점령하면 아라비아반도는 물론
지중해, 발틱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유럽을 감싸 않을 수 있었다. 영국은 함대만 전멸시키면
종이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겨우 개척하기 시작한 인도, 동남아, 남미는 일도 아니었다.
세르게이는 남부러시아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따따르인과 비슷하게 생긴 이방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그에게 자금과 무기를 지급할 테니 우글리티에서 암살당한 드미뜨리공이 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하고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한 국경감옥을 탈출하여 남부 러시아 사라이도시에 스며들어
온지 삼년이 되었지만 세르게이는 빈둥빈둥 노는 건달에 불과 했다. 그는 작년 이반 볼로뜨니꼬프의
국민군에도 참가하였으나 그가 북방으로 유배를 당하자 다시 사라이에 돌아 왔다.
“. 당신들은 누구시기에 그런 제의를 하는 것이요 ? 그리고 그대들에게 그럴 만한 능력도
없어 보이는데. 차라리 폴란드나 스웨덴 왕국에서 제의한다면 더 쉽게 믿을 수 있겠소만.”
“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린 그걸 드릴만한 충분한 힘이 있지요.?”
세르게이는 밑져 보았자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 사실 남부인들과 지방 관리들은 바실리를 좋아하지 않고 있고, 국민들과 귀족들은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고 있소. 남부인들이 특히 더 그렇지요. 자유분방함을 좋아하는 그들을 구속하려는
모스크바공국과는 끝임없이 투쟁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으니까. 지금 나타난 가짜 드미뜨리는
이미 그 정체가 탄로 났소 그리고 누가 진짜 드미뜨리인지 안는 사람은 바실리에 의해서 다 죽었고.
그들을 하나로 모을 자금과 이상만 있으면 되오.”
건달과는 다르게 제법 말솜씨가 있는 세르게이를 바라보던 이방인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보이더니
중얼거렸다.
“ 자금과 이상이라 자금과 이상이라 어려운 일도 아니군. 우리가 당신에게 계속적인 자금과 이상을
지원하겠소. 일단 당신은 폴란드로 들어가 이상가와 몽상가 탐험가들을 모으시고 이곳에서
조력자들에게 사람을 모으라 이르시오. 일차 자금으로 황금 1상자를 드리리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민족의 자유와 자유로운 왕래요. 그것은 충분한 이상이 될 수 있겠지. 귀족들과 평민의 지지를 얻을
수는 있을 거요 물론 농민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건 당신이 할 일이고. 일주일후에 다시 오겠소.”
이방인이 떠나고 한참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르게이는 두팔을 높게 치켜들고 외쳤다
“ 나는 드미뜨리공이다 하하하”
그해 팔월에 드미뜨리는 폴란드에서 많은 용병들을 거느리고 까자흐지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방인이 건네주는 막대한 자금과 몇몇 몽상가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일약 러시아에서
주목 받는 인물이 되었고 이반4세의 7번째부인이며 진짜 드미뜨리의 어머니인 미르타수녀가
자신의 아들로 선언하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진짜 드미뜨리의 약혼녀인 마리나 므니제치와 결혼까지 하였다. 그는 짜르의 명으로 농노해방을
전격적으로 선언하여 각지의 농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고 반대로 귀족들에게는 무서운 적으로
간주되었다. 농노해방은 그의 후원인인 대한제국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지만 드미뜨리는 빠른 시일 안에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그는 남부지방의 일부를 장악하고 남부인과 까자흐인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리투아니아에서 계속 용병을 모집했다.
공주에 자리잡은 공군사관학교에서는 한창 장교들과 생도들이 새롭게 개발된 일인승 쌍발비행기
이륙실험을 지켜보고 있었다. 개발된 이기통 엔진을 양쪽에 달고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려나가
떠오르는다는 것이 개발자의 이론이었지만 제대로 이륙할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비행기에 탑승한 이종호 중령은 실험기의 시동을 걸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양쪽에서는
두사람이 프로펠라를 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종호대령의 신호가 있자 세사람은 동시에 시동을 걸기 위한 첫번째 동작을 시작했다.
양 옆의 보조자들은 프로펠라를 힘껏 돌렸고 이종호대령은 기체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 부르 부르 부르릉.털털털 부릉”
단 한번에 시원스럽게 시동이 걸린 엔진이 소음을 내며 길게 뻗은 활주로 끝에서 서서히 움직였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속도를 내던 실험기가 마침내 최고 속도로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하더니
앞쪽이 들려 졌다가 내려왔다. 여러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던 실험기는 활주로 끝에 와서야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 비행기 조종에 잔뼈가 굵은 이중령이 실패한 걸 보면 비행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
실험을 지켜보던 공군사령관이 이번 실험기의 제작을 책임진 김진호박사를 바라보았다.
“ 역시 속도가 문제 인 것 같습니다. 이론상으론 80킬로가 되어야 하지만 정확한 계산을
할수 없었습니다. 더 빠른 속도가 양력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기통 엔진의 한계는 80킬로가 최고이니 아쉽습니다.”
지금까지 열번의 실험에서 모두 실패한 김진호박사는 풀이 죽어 있었다. 더 가벼운 합금을 만들거나
고성능 엔진을 장착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비행기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공사 생도들은 지금까지 헤리어 동체를 이용한 모의 비행기에서만 비행 훈련을 하였고
실제로 하늘을 난 경험이 너무도 부족했다. 기껏해야 열기구를 이용하거나 헹글라이더를 이용하여
하늘을 날곤 하였다.
비행과 공기의 흐름 그리고 바람을 이용하는 법, 비행이론등은 공사 3 학년이 되면
다 줄줄 외우고 있었으나 그것을 몸으로 느낄만한 방법이 없었다.
운용 가능한 헤리어는 2대가 전부였는데 한대는 연구용으로 이용을 할 수 없었고 한대를 가지고
공사생도 200명이 기껏해야 일년에 한번씩 헤리어기를 몰아보는 수준이었다.
“ 그나마 이번 것은 얼마간은 떠오르지 않았습니까. 엔진이 문제라면 육군에서 보관하고 있는
장갑차 엔진이나 건설장비엔진을 좀 빌려보는게 어떻겠습니까 ?”
“장갑차 엔진은 너무 무겁습니다. 이용하기엔 불가능합니다. 자동차 엔진이라면 해볼만 하겠는데.
자동차 엔진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군요. 일단 천군부에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실질적인 공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선 고출력 엔진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 그건 그렇고 비행선 제작은 어느정도 진척되어가고 있습니까.?”
“ 이미 여러가지 실험이 끝났고 그 결과를 분석중입니다. 내년에는 양산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비행기의 대용으로 30척정도 제작해서 운용해 볼 생각입니다. 어차피 비행선은
그 효용가치가 짧을 테니까요.?”
“ 오늘 저 실험기는 십여대 더 제작해서 생도들 훈련용으로 쓰도록 하지요.
명색이 공군사관생도들인데 비행기 비슷한거라도 몰고 있어야지 원.
이러다 기존 맴버들이 다 죽고나면 누가 진짜 비행기를 몬단 말입니까 ? 걱정이야 걱정.”
“ 너무 심려 마십시오 삼사년 안에 충분한 기술력이 축적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트엔진을 만들진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사령관님 이만 가시지요.”
부관이 사령관을 의로하며 사무실로 안내했다. 사령관이 몸을 돌려 사무실로 향하자,
참관인들도 하나 둘씩 그 뒤를 따랐다. 비행장에는 막 실험기에서 내린 이중령과 몇몇 생도들
그리고 김진호 박사만이 남아서 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1608년 봄 만주벌판
심양부근의 한 공군 부대의 활주로에는 비행기가 아닌 비행선 3대가 내려앉아 있었고
비행선에서 내려온 줄이 바닥의 고박 장치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일단의 병사들이 비행선으로 다가와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각 비행선마다 5 명씩 올라타자
준비 요원들이 분주히 비행선 주위를 돌아다녔다.
비행선은 유선형 모양을 하고 있었고 뒤쪽에 꼬리날개와 뒷편으로 길게 뻗어나온 프로펠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상승을 위한 프로펠라도 중앙에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헬륨가스로 내벽과 외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가득채우고 중앙의 프로펠라의 도움을 받아 이륙한 후
후미의 양옆에 달린 프로펠라 추진체의 추진력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설계되어 있는 비행선은
시속 100킬로의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바람의 힘을 빌리면 더 빠르게 나아갈 수도 있었다.
다만 강풍이나 돌풍에는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비행선의 적정고도는 2000미터로
최고 상승고도 3000미터를 자랑했다.
“ 가스 주입.”
비행선의 이륙을 담당하던 비행장 이륙 장교가 마이크를 대고 소리 쳤다.
비행선에 연결된 호스에서 가스가 주입되자. 비행선의 모양에 탄력이 붙었다.
압력을 체크하던 이륙장교가 다시함번 소리쳤다.
“ 가스 중단. 호스 이탈”
비행선이 서서히 떠올랐다.
“ 줄 풀어”
미리 준비하고 있던 십여명이 병사들이 각각 담당하던 줄을 잡아 당기자 줄이 고박장치에서
이탈하고 비행선으로 말아 올려져 갔다. 다른 비행선들도 장교의 명령에 일제히 줄이 풀리고
지면에서 비행선이 떨어져 나갔다.
“ 중앙엔진 가동”
엔진 돌아가는 소리에 중앙 프로펠라가 돌아가고 비행선의 상승속도가 점점 빨라져 하늘 높이
떠올랐다. 바람이 적은 날을 택해 떠오는 3대의 비행선은 1000미터의 고도에 오르자
중앙 프로펠라의 작동을 멈추고 추진엔진을 가동시켰다. 두개의 프로펠라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자
비행선이 천천히 심양 비행장 주변을 맴돌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 봉황의 처녀 비행이 반절은 성공한 듯 합니다.”
비행장 사령관인 이준희장군은 이륙을 통제하고 있는 부사령관의 말을 들으며 흐믓해 했다.
대한제국 최초의 공군이 실전 배치 되는 순간이었다.
“ 봉황이 이번에는 두만강까지 갔다 오는거지 아마.”
이준희 사령관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다시 물어보았다.
“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 만주를 가로질러 두만강상류까지 운항하면서 최고속도와 최고 고도 상승 그리고 정찰 및
폭탄투하 연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봉황의 진로는 대부분 민간인이 없는 곳입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각 지점에 기병대를 배치하여 봉황을 추적할 예정입니다.”
“ 여기는 편대장이다. 지금부터 비행 훈련을 시작하겠다. 우리가 돌아올 때 까지 둥지를
잘 지키고 있기 바란다. 이상.”
“ 잘 다녀와라. 봉황에 상처가 하나라도 생기면 착륙할 생각도 말아라. 이상.”
관제소와 마지막 교신을 마치고 봉황편대는 기수를 북으로 돌려 훈련 비행을 시작했다.
그들은 한동안 북으로 올라갔다 다시 남으로 내려와서 동으로 움직일 예정이다.
미리 정해진 항로를 항해 하게 될 봉황편대는 지상에서 자신을 추적하고 있을 기병대를 생각하며
땅개들이 잘 따라올까 하는 생각에 모두들 웃음을 지었다.
“ 여기는 편대장이다. 봉황의 고도를 2000미터까지 상승시키고 삼각편대를 유지한다.
충분한 이격고도와 거리를 유지하라. 선봉은 내가 선다. 이상”
편대장의 명령에 편대장기가 앞으로 나가고 양옆에서 조금 떨어져 두대의 봉황이 편대장기를 따라갔다.
이번 비행은 실전에 준하는 비행훈련이다.
각 시간마다 각 지점의 지역을 정찰하고 기병대가 설치해 놓은 시설물들을 파악해야만 했다.
이번 훈련을 위해 만주의 2개 기병사단이 보조를 마치고 있었는데. 각 중대별로 흩어진 기병사단은
크게 대항군과 추적군으로 나누어져 대항군은 요소요소에 가짜 진지를 마련하고 추적군은 봉황을
추적했다. 봉황의 임무는 대항군의 진지를 관측하여 기록하는 것이며 되도록이면 추적을 피하는
임무가 추가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추적군을 봉황의 추락이나 기타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하였으나 훈련의 재미를 위해 약간 변형을 주었다.
“ 관측실입니다. 아래에 추적군으로 보이는 기병 50기가 보입니다. 아마 산 허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 싶습니다. 우측에 적 보병진지로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 고도를 1000미터로 낮추어서 정밀 관찰한다.”
봉황이 잠시 고도를 낮추기 위해 내부에 장착된 기관을 가동하자 헬륨이 농축되어 비행선을
떠있게 하는 헬륨의 팽창력이 감소되자 서서히 내려갔다
“ 적병으로 보이는 허수아비 대략 500개 정도 막사가 30이상입니다.”
“ 되었다. 다음 지점으로 최고 속도 항진.”
추진엔진이 풀가동하자 봉황이 서서히 떠오르고 순항고도에 오르자 시속 100킬로에 육박한 속도로
나아갔다. 밑에서 추적하던 기병대는 추적을 멈추고 현 지점을 보고한 후 돌아올 때를 대비하기
위해 매복준비를 위해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기병대원들은 하늘높이 떠서 북동쪽으로 향하는
봉황을 잠시 바라본 후 사라져 갔다
.
“ 현재 봉황이 337지점을 통과했다는 보고입니다. 앞으로 한시간후 우리 대대가 맡고 있는 지역을
통과할 예정입니다. “
“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를 찾는 것이 어렵진 않을 거야. 어떻게 봉황의 눈으로부터 우리를
가리느냐가 중요한데. 벌판이라 이거 위장을 할 수 도 없고. 문제구만.”
지금까지 봉황이 거쳐온 부대는 모두 봉황에게 그 위치가 노출되어 기록되고 있었다.
자신의 대대가 만들어 놓은 대대진지 역시 안전하지 못했다.
일단 주변 잡초를 베어 지붕을 만들어 놓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 위에서 사물을 보면 사물이 평면으로 보이기 십상입니다. 지금 저희 대대의 진지는 막사가 대부분
삼각형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비록 위장을 하더라도 봉황에게는 입체에 가까운 모양을 보여줍니다.
일단 진지를 사각형이나 원형의 지붕으로 덮고 주변과 조화되도록 진지변화가 필요합니다.”
작전참모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지형지물에 대한 인식이 빠르고 공간개념이 탁월한 작전참모의
의견은 대대장이 생각하기해도 그렇듯해 보였다. 최소한 발각되는 막사의 수를 줄일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급히 전 대대원들이 가능한 한 넓게 지지대를 만들고 지붕을 만들어 올렸다.
못 다한 것은 아예 위장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어느 정도 진지위장이 끝나자.
1대대원들은 모두 말에 올라 봉황의 움직임을 잡기 위해 예정항로로 소대별로 흩어졌다.
각 기병대대에서 올라오는 봉황의 행적은 보고라인을 타고 심양비행장에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내려왔다. 상황판에는 봉황의 행적이 발견시점과 놓친 시점 재발견 시점등이 시간과 함께 자세히
기록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봉황의 속도를 예측하고 기록하였다. 나중에 귀환한 봉황의 항해 일지와
대조해보기에 유용한 자료였다.
“ 봉황의 정찰 능력이 의외로 뛰어나군 우리가 만들어 놓은 대부분의 병력배치도와 일치 하지
않는가 말야. 근데 337지점에서는 꽤 차이가 나는군. 이상한데. 337지점을 맡고 있는 대대장이
누군지 한번 알아봐.”
이준희 장군은 상황실에서 상황판을 들여다보며 봉황의 활약을 확인하고 있었다.
“ 2기병 3연대 1대대 서상묵중령입니다. 과거 시베리아 진출에 참가했고 만주에서 군생활을
대부분 보낸 사람입니다.”
정보참모가 서류철을 뒤적이며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 나중에 한번 불러 그만의 독특한 위장술을 배워야 겠군 대단히 휼륭해.
만약 적들이 서중령처럼 행동한다면 봉황은 그 가치가 현저히 줄어들텐데.
이번 훈련에서 얻어진 첫번째 수확이로구만. 아주 좋아. “
“ 그럼 난 이만 가서 쉬겠네 오늘 야간은 부사령관이 좀 수고해주게나.
24시간 훈련이 계속될 테니까.”
“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 그럼 수고하게. “
봉황은 훈련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삼일 후에 심양 비행장으로 돌아왔다.
봉황에서 대원들이 비행일지와 관측일지를 들고 두손을 번쩍 들며 환영인파에게 답례하고 있을 때
기술요원들은 봉황에 농축된 헬륨을 꺼내 다시 저장소로 옮겼다.
성공적인 훈련이었음을 자체평가한 평가단은 훈련결과를 천군부에 보고하였다. 준비진지 90퍼센트의
발견과 총 30시간의 추적회피를 기록했다. 회피에서는 밤이라는 취약점 때문에 그다지 만족할 만한
성과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주간에 있었던 5시간의 회피 기록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번 훈련에 참여한 기병사단과 심양비행장의 보고를 접수한 천군부는 봉황의 배치를 승인하고
심양에 1610년 까지 총 30대의 봉황을 배치하기로 승인했다.
봉황의 관측장비를 좀더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조언을 첨부했다.
첫댓글 감사해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