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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심 8:14~17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마술사 시몬의 오해 8:18~25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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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이들에게 안수하니 그들도 성령을 받습니다. 이를 본 시몬이 돈으로 그 권능을 사려고 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악함을 회개하라고 질책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마리아 여러 마을에 복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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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심 8:14~17
복음과 성령은 함께 갑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믿음과 구원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더 깊은 신앙 교육을 시행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 누구에게도 아직 성령이 임하시지 않았고 그들은 빌립을 통해 물세례만 받았을 뿐입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자 그들도 성령을 받습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하신 것과 스데반의 순교 이후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한 사건입니다. 성령 강림은 모든 민족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사마리아에서처럼,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성령이 임하실 것입니다. 유대인이 구원받았듯 사마리아인이 구원받고, 장차 이방인도 구원받을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성령이 어떤 분인지 내가 깨우쳐 줄 지체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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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시몬의 오해 8:18~25
드디어 마술사 시몬이 본심을 드러냅니다. 시몬은 사도들에게 그들이 행하는 권능을 돈으로 사겠다고 요청합니다. 그는 성령을 인격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초자연적 능력으로만 인식합니다. 더욱이 성령의 권능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기적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을 향해 준엄하게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에 시몬은 두려워하며 그 책망의 말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시몬처럼 눈에 보이는 ‘기적’에만 관심을 가지면 참된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순종하는 믿음으로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베드로가 마술사 시몬을 강하게 책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를 돈으로 계산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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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유사품을 주의하라
돈이 없는 사람이 명품을 사고 싶을 때 찾는 것이 바로 유사품입니다. 유사품은 명품에만 있습니다. 왜 기독교와 관련된 이단이나 사이비가 많을까요? 그건 기독교가 명품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복음에도 유사품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 노력해서 신을 감동시키고 그 결과로 신에게 무엇인가를 받아 내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수행을 쌓으면서 이렇게까지 섬겼으니 신이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잘못이라도 하면 하나님이 노하셔서 내게 벌을 내리실 것 같아,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신의 이름 대신 하나님을 넣었을 뿐, 실제로는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 감격으로 하나님 뜻을 따라 살려는 간절한 마음이 생기는데, 이것은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아닌 복음의 감격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내게 생명 주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 기초반 / 이규현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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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사도행전 8장 18~20절
베드로는 성령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여긴 마술사 시몬을 꾸짖습니다. 시몬은 성령을 사람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주신 이유는 그분의 백성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난 신비한 현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복음의 진리로 나아갑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로 오실 길을 여는 것은 노력과 행위가 아니라 통회하는 심령의 진실한 간구다. - 토미 테니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맡기신 사역을 제 명성과 이익을 얻기 위해 사용한 적은 없는지 엄중히 돌아봅니다. 항상 제 마음 깊은 곳을 살펴 하나님보다 앞서려는 악함이 있는지 살피고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소서. 성령의 권능으로 제 삶에 새겨진 하나님 말씀을 따라 하나님 이름만 높이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190 성령이여 강림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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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해
사마리아 사람들이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파송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는데(16절), 이런 상태는 정상적인 구원의 패턴에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두 사도는 기도하고 안수했고, 비로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합니다(15~17절). 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술사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내고 성령을 받게 하는 능력을 사려고 했습니다(18, 19절). 그는 사도들이 성령을 받게 했다고 착각했고, 자신도 그런 능력을 전수받는다면 훨씬 큰 인물이 되고,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악한 의도를 간파하고 책망합니다(20~23절). 성령은 믿는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를 가던지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이들에게 다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복음을 성실히 잘 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도록 하자!
그땅의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시고, 그들이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도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자
주님 앞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생각하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일꾼으로 한결같은 모습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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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시몬은 복음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겉모양을 보고 쫓았던 자였습니다. 그는 마술이 주는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자신의 능력 아래에 무릎을 꿇게 하는지 알았습니다. 마술사 시몬은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을 보여 주었던 빌립을 쫓게 되며,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 일어난 성령의 능력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 능력을 소유하게 되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영광과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마술사 시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깨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의 참 능력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복음을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낮아지심으로 의에 순종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과 연합하는 삶을 통해서 참 복음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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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시몬.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에 대해 오해했다. 하나님을 잘못 알았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 수도 있는 줄 알았다.
나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없는가 돌아본다.
돈을 주고 은혜를 살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소원하는 것을 들어주시겠지 하는 마음 역시 이러한 시몬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내가 묵상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하는 등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재정의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하는 사역이 잘 풀리고 남들에게 존경을 받게 해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 역시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을 사려고 하는 시몬의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내 행위로는 은혜를 살 수 없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지 내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값을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내가 어찌 지불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직 감사할 뿐이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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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노릇한다는 말처럼 진리가 없는 곳에 거짓이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목자가 없는 곳에 삯꾼이 호가호위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오기 전에는 마술사 시몬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며 호가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행8:9~10)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마술사에 불과한 자를 목자로 여기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칭송했을까요?
참 진리를 맛본적도 없고 참 목자를 만난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이 진리인 줄 알았고, 삯꾼이 목자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진리를 맛본적이 없기 때문에 거짓 선동 설교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고,
참 목자를 만난적이 없기 때문에 삯꾼을 하나님의 능력이라 칭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르치는 것만 붙들고 있으면 살 줄로 알았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멸망하는 비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부조리를 끝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령충만 받기 원합니다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8:14~17)
그때에야 삯꾼의 거짓됨이 만천하에 폭로되었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돈을 주면서,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해달라고 했을 때에 베드로가 엄히 꾸짖어 그의 거짓됨을 드러낸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행8:20~23)
우리가 참으로 진리의 말씀을 믿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줄 믿습니다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그러므로 참 목자이신 주 안에서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좌우에 무장하기 원합니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고후6:7)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검으로 항상 승리하기 원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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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탁월한 마술사였던 시몬은 성령이 임하는 듣도 보도 못한 사건들을 사도들 옆에서 보면서 지금까지 그가 돈과 권세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돈으로 사들였던 옛 습관을 따라 사도들에게 그 성령이 임하게 하는 능력을 요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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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경험했던 사도들은 성령을 거스르는 심령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아래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죄악으로 가득한 마음과 세상적 이익을 의도로 접근하는 시몬을 따금하게 주의시키고 그가 돌이켜 회개하여 구함을 받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가운데 틈을 내고 금을 긋게 하는 많은 행동들과 유혹들이 여전히 연약한 심령들을 흔들고 주님 안에 하나 됨을 망가뜨립니다. 시몬이 돌이켜 회개하였는지 아니면 자신의 옛 습관을 따라 심판의 길로 들어섰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더 증언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긍휼함을 구하는 기도를 사도들에게 대신 부탁하는 것보다 모든 옛것을 내려놓고 온전한 변화로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을 스스로 구했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날마다 우리 가운데 회개의 심령이 새로워지고 더 깊어지며 온전히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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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절과 19절에 라고 합니다. 마술사 시몬은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을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라고 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어떻게 말합니까?
20절에 베드로가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했느냐고 네가 돈과 함께 망할지어다고 합니다.
여러분 마술사 시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예수도 믿었습니다.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심을 다하여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시몬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이런 초신자가 있다고 하면 우리는 정말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시몬은 하나님의 성령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돈이면 성령도 살 수 있고,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래서 이후에 시몬주의(시모니즘)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시몬주의라고 하는 것은 돈으로 성직을 매매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18절과 19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
여기서 잘 보시면 지금 시몬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성령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능입니다.
그는 성령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권능입니다.
또 여기서 더 잘 보시면 정작 시몬은 자신이 성령을 받기를 소원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시몬은 그가 성령을 받는 것도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이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과 같습니까?
그가 예수를 믿기 전과 같았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기 전에도 마술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마술을 행함으로 큰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은 후에도 그의 관심은 성령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아닙니다.
그가 오직 관심을 가지는 것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시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예수를 믿었습니다. 세례도 받았습니다. 열심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돈을 드려서 성령의 능력도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몬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베드로는 시몬에게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시몬은 복음과 관계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실재로 역사에 보면 시몬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교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하더라도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고 직분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을 다해서 주님을 섬긴다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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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에게 행동이 중요합니다. 열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 마음의 중심입니다.
시몬처럼 아무리 열심히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되어야겠습니까?
첫째,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우리 마음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이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을 더 사랑합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더 사랑합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 부터는 능력을 더 사랑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물질을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이냐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을 더 사랑하느냐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빼앗아 가실 때입니다.
욥기에 사탄은 욥에 대해서 욥은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들 때문에 하나님은 섬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때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니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아무 것이 없어도 우리 마음에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우리 마음의 동기가 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되어야합니다.
스가랴 7장 5절과 6절에서 “슥7:5-6.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만일 70년 동안 매년 5월과 7월에 금식기도하고 애통하는 삶을 살았다면 얼마나 대한 것입니까?
만일 우리 주위에 그런 분이 계시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분은 아주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 금식이 과연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그것이 겉으로는 나를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너희를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주님을 위하여 모든 일을 한다고 하지만 정말 우리가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를 위한 것입니까?
에스겔서에 보면 지성소로 들어갈수록 문이 좁고 방이 좁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 방에는 오직 하나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 방에 하나님도 들어가고, 돈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지성소에는 무엇이 들어가 있습니까? 과연 하나님이 들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들어가 있습니까? 과연 하나님이 들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돈이 들어가 있습니까? 과연 내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들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내 자아가 들어가 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에 오직 하나님이 들어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서 제일이 되고 싶으십니다.
내일 주일학교 성경학교를 하는데, 이렇게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말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여러 가지 것들을 말 할 것입니다. 친구, 장난감, 게임기, 등입니다. 그러면 제가 그 위에다가 동그라미 영을 칠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동그라미 영 더하여 영 더하기 영 더하기 영 하면 얼마냐고 볼 것입니다. 얼마가 됩니까? 동그라미가 아무리 많아도 0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동그라미가 큰 숫자가 되겠습니까?
영 앞에 1을 쓰면 됩니다.
그 1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리 영이 많이 있어도 영입니다.
그리고 또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제일 중요한 분은 누구냐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네 마음에 제일이 누구이냐고 하나님은 물어보십니다.
돈이 친구가 명예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의 경우에는 하나님보다 예전에 청년들을 더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청년들을 빼앗아 가셨습니다.
또 저의 경우에는 내가 가진 비전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비전을 빼앗아 가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 마음에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면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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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성령” 김소리 목사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보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하여 불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령을 체험한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내려갑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자 세례만 받은 그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이 성령을 받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성령의 축복을 받고 누리며 축복의 통로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신데 돈으로 사려고 베드로에게 부탁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 줄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 것이라고 책망하며 너의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면 혹시 마음에 품은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시몬이 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가 임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님의 권능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 어떻게 서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살펴보고 날마다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과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껍데기 믿음이 아니라 진실 된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껍데기 믿음이 아니라 진실 된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의 영혼과 믿음을 돌아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여나 나의 삶에 껍데기 믿음의 모습이 있었다면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 주시고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시 진실 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변화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이 임재하심으로 새롭게 변화된 오늘 이 하루가 될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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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은 사마리아인(8:14-17, 25)
큰 핍박에도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핍박으로 여러 지역에 흩어진 성도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집사 빌립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복음이 전해진 사마리아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복음을 받은 사마리아인들을
돕기 위해 찾아갑니다. 과거에 예수님이 제자를 두 명씩 파송하셨던 전통대로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로 향합니다. 이들의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졌던
사마리아인도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견고히 세워집니다.
- 묵상 질문: 유대인이 꺼리는 사마리아인을 돕도록 사도들을 보내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서 내려놓아야 할 편견이나 고집은 무엇인가요?
그릇된 동기, 잘못된 소망(8:18-24)
설교를 듣는 청중의 반응은 그들의 숫자만큼 다양합니다. 사마리아인들도 복음을 받고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쁨으로 복음을 받았지만, 잘못된 소망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술사 시몬은 빌립을 통해 복음을 듣고 ‘전심으로’(13절) 동행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열심에는 그릇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를 통해 사마리아 성도에게 성령이
부어지자 욕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성령을 주는 안수의 권능이 사도들에게 있다고 생각한 그는,
그 권능을 돈으로 사려 합니다. 아마 획기적인 돈벌이로 생각한 듯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은 값을 매기거나 매매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불의에 매인 바’ 된
마술사 시몬의 ‘악함’을 지적합니다. 물질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려는 것,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이용해 자기 욕심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중한 죄입니다.
- 묵상 질문: 마술사 시몬이 정작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남에게 있는 영적 은사를 갖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교회가 흩어지는 절망적인 사건을 통해서도 사마리아 선교의 새 길을 열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제 가치관대로 임의로 판단하거나
제 유익의 재료로 삼지 않도록, 늘 순전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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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을 들은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게 된 것을 확인하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믿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하여 안수하고 기도하자, 오순절 성령강림 때처럼 그들도 성령을 받았습니다(17). 유대만이 아니라,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사마리아의 오순절로 불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순절 날 교회에 성령을 부어주셨지만,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확증시켜 주시기 위해서, 사도들 앞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똑같이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로써 누구도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사마리아로 확장되었습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 속에서도 거짓 역사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시몬을 통해 확인하게 하시고, 각성하고 주의하게 하십니다. 시몬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주술적 능력으로 사로잡던 마술사였습니다(9~11). 빌립의 전도를 통해 그는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녔다”고 말합니다(13). 그는 빌립을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에 놀랐습니다(13). 하지만 그의 관심은 복음의 진리가 아니라 표적과 능력이었습니다. 언제나 이런 태도는 위험하고 거짓된 것입니다(주님은 이것을 음란하다고 하셨다, 마 12:38; 16:4).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고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본 시몬은 돈으로 그 능력을 얻기를 원했습니다(18~19). 베드로는 그를 저주했고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20~23).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고 사도들이 살아있던 그 시대에도 거짓 신자, 거짓 회심이 있었다면, 이것은 모든 시대의 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더 조심해야겠습니까? 오늘날에도 거짓 선지자가 있고, 오늘날에도 거짓 신자와 거짓 교회가 있습니다. 복음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편승해서 개인의 야욕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을 깊이 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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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소식을 듣고 파송된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을 위해 성령을 구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매수하려던 마술사 시몬은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받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4,15절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합니다. 이전에 불을 내려 멸하기를 구하던(누가복음 9장 54절) 두 사도가 이제는 사마리아를 위해 성령이 임하기를 구합니다. 정통을 내세우는 유대인에게 사마리아는 가깝고도 먼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는 오랜 반목과 대립의 역사를 걷어내고 ‘성령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정한 능력은 시몬이 탐하던 ‘권능’(19절)이 아니라 ‘화평’에 있습니다.
15~17절 빌립의 전도로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마리아인들은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은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하자, 그들에게 예수님이 약속하신(1장 8절) 성령이 임합니다. ‘예루살렘 밖’에서도 성령이 임합니다. 유대인이 부정하게 여기던 땅 ‘사마리아’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 강림은 복음을 통해 예루살렘(2장 1절)에 이어 사마리아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음을 확증하는 ‘구속사적’ 사건입니다.
18,19절 마술사 시몬은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이런 권능을 돈으로 사려고 했습니다. 거룩한 성령을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높이려는(10절) 야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과거에 속한 사람입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와 은사마저 악용하여 사사로운 욕심(돈, 명예, 지위, 권력 등)을 채우려는 모습이 내게는 없습니까?
20~24절 베드로는 하나님의 선물을 매수하려 한다며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시몬을 질책합니다. 베드로의 책망은 구약에서 우상숭배하는 자에게 내린 저주를 연상시킵니다(신명기 29장 17~21절). 동시에 베드로는 그 악함을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하지만 시몬은 마음에 품은 불의를 버리기보다 그저 자신에게 무서운 형벌이 떨어지지 않기만을 구합니다. ‘중심의 변화’가 없는 세례(13절)는 개종일 뿐 회심은 아닙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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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과 은혜와 권능을 힘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냅니다. 두 사도는 성령 받기를 기도하며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습니다. 이에 시몬은 돈을 드려 두 사도가 가진 권능을 사려고 하자 베드로는 시몬을 저주하면서 회개하라는 베드로의 말에 순종합니다. 두 사도는 말씀을 증언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은 반목과 갈등을 해결하는 길을 열어 줍니다(14~17절).
사마리아는 우상 숭배의 대명사격인 지역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멸망 이후에 이방인과의 혼혈이 이루어진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같은 동족임에도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과 다름없는 개와 같이 취급하며 상종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곳에 빌립을 통해 복음이 들어갔고,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이 성령을 받기를 기도했고,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게 됩니다(17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쌓였던 해묵은 감정들 즉 반목과 갈등이 복음을 통해 무너져 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목과 갈등 관계 속에 있는 나라와 민족이 복음을 통해 화해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은 내 안에 있는 미움과 시기, 질투를 사라지게 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하는 그 사람마저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끔 역사합니다. 나와 보이지 않는 경쟁의 상대인 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마음이 여전이 내 안에 있는 걸 보면 난 아직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내려가 그들이 성령을 받기를 기도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나와 경쟁을 해야 하는 상대에 대해 이제 어떠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까?
복음은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어 줍니다(18~24절).
시몬은 사마리아에서 마술을 행하다가 빌립의 전도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의 행동을 보고서 돈으로 그 은사를 사려고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20절)라는 저주의 말을 듣게 됩니다.
마술사 출신인 시몬은 영적인 세계를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돈으로 사물의 가치를 좇는 구습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세상적 습관들과 신앙의 편견은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마저도 돈으로 해결하려는 타락한 모습들이 보면서 울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 자신은 그만큼 물질에 관해 자유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 앞에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말하지 못함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베드로는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저주한 후에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22절)고 시몬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아무튼 죄에 대한 용서함을 받는 길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존재하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즉각 즉각 행동으로 옮기는 못한 이유는 그 만큼 내 자신이 영적으로 무지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주님의 말씀에 민감해야 합니다. 머리와 지식적으로만 알고 깨닫는 말씀이 아니라 행함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실천이 있는 말씀 묵상이 되어지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마술사 출신 시몬이 베드로에게 책망을 들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나의 죄의 문제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합니까?
복음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하는 길을 열어줍니다(24~25절).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저주가 미치지 않도록 기도해 주기를 요청합니다(24절). 그러나 요청만 했을 뿐 자신의 입으로 죄를 고백하였다거나 기도하였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아 여러 의문이 남게 됩니다. 주님은 내 입술과 내 마음의 고백을 원하십니다. 죄의 문제는 다른 무엇으로도 누가 대신하여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나와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두 사도는 주의 말씀을 전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25절). 과거의 자신들의 나약한 모습들은 찾아 볼 수 없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오직 복음 전파에 온 몸과 마음과 시간을 쏟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데 항상 힘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책망과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들은 시몬이 취했던 행동은 무엇입니까? 나의 삶을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무엇입니까?
오늘도 복음의 능력에 힘입어 주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행 8:14~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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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의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지역에 파송되어 사역한 이야기입니다.
1.정통신앙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것을 예루살렘 교회에서 들었습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이 복음은 별도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로 이어진 전통속에서의 가르침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파송되어 그 내용을 살피는 것이 복음의 통일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Ac 8:16–17)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에 의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았는데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일입니다. 성령이란 예수님을 믿을 때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고백으로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기도 하였고
아니면 성령이 임함을 보고 세례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처럼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으나
성령이 임하지 않은 경우는 없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으나
여전히 성령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첫째, 가짜 믿음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은 믿음이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사실은 성령을 이미 받았다.
셋째, 복음의 통일성을 위해 성령임함의 지연이 있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세번쨰의 것을 많이 주장합니다.
그렇게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성령임함의 지연이라는 아주 특이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복음의 통일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다른 문화의 곳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다른 문화라 하여 다른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은 여전히 하나이며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중심이 되며 그것을 경험한 사도의 가르침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후에 교회사에서는 사도신경이라는 것을 확립하여 교회의 정통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음의 통일성으로서의 정통성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공교회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정통은 항상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이 핵심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벗어난 신앙
시몬의 행동은 '벗어난 신앙'(이단)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앞에서 그는 빌립을 따라 다니면서도 '말씀보다는 기적'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황당한 것같으나 실상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런 모습이 많습니다. 시몬의 행동에 대해 베드로가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Ac 8:20) 시몬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사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그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안수를 하였을 때 다른 이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베드로의 권능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베드로가 안수하는 행동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을 뿐이지 오직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성령이 임하게 하는 그 안수의 권능을 '자신의 힘'의 하나로 소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이 돈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거룩한 성령은 없어지고 인간의 욕심과 돈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Ac 8:21)
그러한 시몬의 모습은 겉으로는 믿었고 세례를 받았으며 성령의 권능을 사모하는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에 참여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사에 첫 이단으로 나오는데 아마 그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그렇게 이단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여러 은사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고 오직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조차도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단은 교리적인 이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시몬처럼 '마음이 바르지 못한 것'도 포함됩니다. 나는 그것을 벗어난 신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복음을 아는 것 같으나 아직은 복음이라는 중심에 이르지 못하고 복음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사(은사에는 많이 것이 포함됩니다)를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은사'라는 말 자체가 '선물'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진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그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사는 것이 정통신앙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믿음의 가장 중요한 중심에서 벗어난 신앙입니다.
정통신앙인입니까?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을 바르게 아는 정통신앙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항상 말씀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또한 시몬의 경우에서 배우듯이 우리의 마음이 바르게 서야 정통신앙인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의 길을 간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이기주의적이고 돈이 최고로 중요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앙까지 이용하는 사람은 참으로 벗어난 신앙인입니다. 오직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이라는 것을 명심하여 그 선물을 값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를 그대로 사람들에게 반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영광하며 사는 사람이 정통신앙인입니다.
외적(교리적)인 정통신앙인도 참 부족하지만 내적(마음 중심의 문제)인 정통신앙까지 구비한 진짜 신앙인이 참으로 적은 것을 봅니다. 바른 지식과 바른 마음으로 정통신앙의 길을 가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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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시몬형 신앙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앞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시몬의 마술을 보고 놀랐다는 말과 시몬이 빌립의 전도를 듣고 놀랐다는 말이 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시몬형 신앙의 전형은 보고 놀라는 신앙입니다.
과거 예루살렘에 왔던 헬라파 유대인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심장이 터지는 아픔을 느끼면서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했던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야! 신선하다. 목사님 참 설교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다 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형 신앙은 호기심 신앙입니다.
뭔가 신선하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진리는 신선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슴을 받아들여서 삶을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형 신앙은 지적 동의 수준에서 머무르기를 좋아합니다.
뭔가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빌립 집사가, 사도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배워보겠다는 동기입니다.
시몬형 신앙은 뭔가 이적과 기사를 좋아합니다. 깜짝 놀라는 체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찢고, 주님의 십자가에 나도 함께 못 박히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시몬형 신앙의 감탄하고 맙니다. 야! 정말 멋있다. 야 정말 찬양 잘한다. 야! 화면 멋있다 하고 맙니다.
시몬형 신앙은 자신이 관심이 없는 분야에는 아예 딴 짓으로 일관합니다.
예배하러 왔으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삶의 새로운 방향을 발견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참신한 것에는 돈을 드려서라도 가지만 꼭 알아야할 진리를 배우는 것에는 시간을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몬형 신앙인은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사람들의 총칭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회개했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단절을 의미합니다. 과거 살아왔던 삶이 하나님 앞에 옳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돌아서는 turning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중생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영적 생명이 출생한 것입니다. 세례도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이 머리까지 찼다가 다시 살아난 것 말입니다.
사마리아에 임한 성령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막힌 담이 헐어지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이 한 몸 되어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서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지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나뉘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낮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우주적인 하나 된 교회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을 사람들의 파벌, 개인의 유익 때문에 분열과 상처로 얼룩지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는 언제든지 시몬과 같은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 사함을 받는 문제보다 자신의 문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를 무슨 사업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 모두가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똑같은 신앙 고백을 하며 오히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처럼 자신의 유익에 관계된 문제, 특히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그들은 여지없이 발가벗겨집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마술사 시몬으로서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마술사 시몬으로서의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알고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에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누구보다도 유창하게 기도하고 근엄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생존이라는 이름을 들어서 온갖 불법과 탈법을, 은혜라는 이름을 들어서 무 경우한 짓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시몬형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진실한 회개가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총칭이 시몬형 그리스도인입니다. 현대판 사이머니에 동참하는 사람들 모두가 시몬형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묵상은 시몬형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적 배타주의를 깨트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에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을 특별한 절차를 통해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거기에는 어떤 차별이나 편견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복음 앞에 우리는 다 구원 받아야 할 죄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있는 모든 편견과 잘못된 세계관들이 깨달아지고 해결되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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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변화되기 위해서
매 순간 구습을 떠나고 죄악된 마음을
그 십자가에 못 박는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권능에 순종하고 그 뜻에 합당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신앙의 여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아름다운 발걸음을
축복하시고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와 하나님을 거역하는 물결로부터 건져내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나라와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