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4. 7. 28. 일요일.
오랜만에 아침부터 햇볕이 났다.
다행이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늘 고향에 내려가 있는 나.
등허리뼈가 활처럼 굽어졌고, 걷는 것조차도 벅찰 만큼 아프다.
2.
<한국국보문학카페> '감동 좋은 글방' 에 오른 글 하나를 보았다.
'무관심이 가장 무섭다'
현대에 이른바 '4무(無)' 병이 있습니다.
무목적, 무감동, 무책임 그리고 무관심입니다.
무관심이 가장 무섭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유대인 작가
엘리 위젤 박사는 현대 사회를 황폐케 하는
최고의 악이 무관심이라고 했습니다.
..... ...
내가 댓글 달았고, 퍼서 여기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내 댓글 :
내가 판단하기에는 별로이다.
무서운 것들이 이외에도 훨씬 많을 것이다.
무재산, 무권력, 무가족, 무건강(몸이 아주 아픔) 등.....
이 가운데에서 '무재산'은 더욱 혹독할 것이다.
돈이 없으니 '먹고 마시고 입고 움직일 수가 없을 터.'
사회범죄 가운데에서 돈(재산)에 관한 범죄가 특별히 많다.
도둑질, 강도질, 사기, 속임수, 폭리 등.....
돈이 없거나 부족해서 세금을 못내면..... 재산은 강제처분당하고, 더욱 심하면 징역살이도 한다!
덕분에 글감 하나 챙깁니다.
우리나라 경찰청에서 지정한 다섯 가지 강력 범죄를 이르는 말.
살인, 강도, 강간 및 강제 추행, 절도, 폭력이 이에 해당한다.
서민한테 가장 많은 범죄는 무엇일까?
내 아버지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문이 어디에 붙었나도 모르는 무학의 가난한 사람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동을 해서 어느 정도껏 돈 벌어서 나한테 학비를 대주어서 초중고교, 대학에 다니도록 했다.
나는 만나이 75살.
지금껏 남한테 굽신거리면서 '한푼만 줍쇼'라고 간청한 사실이 전혀 없다.
나는 정년퇴직한 지도 만16년이 넘었다. 쥐꼬리보다 조금 더 긴 연금이 다달이 나온다.
연금통장은 아내가 가졌기에 나는 내 연금에서는 단돈 10돈도 꺼내지 못한다. 아내가 알아서 살림하고.
때문에 나는 늘 주머니가 가볍다. 그래도 돈이 부족하고 아쉽다고 해서 '강도, 절도, 사기'등을 한 바는 전혀 없다. 내 손에 들어온 물건 하나라도 소중히 아껴서 용도가 다할 때까지 끝까지 다 쓰고, 다 쓴 물건이라도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려고 한다. 즉 물건을 새롭게 장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어린시절 산골마을에서 살 때다. 가난한 사람들(때로는 용천뱅이 문둥이)은 바가지를 들고서 아침 끼니 때면 어지간치 사는 집의 문, 싸립문에서 어리적거리며 '밥 좀 주세요'라고 크게, 길게 외치는 거지, 동냥아치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 동네 아이들도 바가지를 들고 밥 달라고 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전학을 간 대전시 중구 은행동에서도 동냥아치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가난한 사람한테는 무엇이 가장 절실할까?
내가 보기에는 배고픔이다. 우선은 무엇이라도 챙겨서 먹어야 한다.
내 어린시절...어떤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보인다. 서낭댕이 잿고개에 있는 우물샘. 깊이가 아주 얕은 샘물에서 올챙이를 건져서 바가지에 담는 아이를 보았다. 세상에나.
서낭댕이 잿배기에는 허름한 농가 4채. 모두들 가난했기에 동냥 얻어먹으려고 다니는 거지들은 때로는 밥 한 숟가락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게다.
그날 나는 어머니 등에 엎혀서..... 그 거지 아이를 보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올챙이를 바가지로 떠서.... 먹으려고 했을까?
70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사람은 배가 고파서 굶주리고 있을 게다.......
나한테는 '가난이 가장 무섭다'라고 여긴다. 나는 지금껏 배 고파서, 살려고 남의 먹을거리를 빼앗거나 훔쳐서 먹은 적은 없다. 내 기억에는 전혀 없다.
나는 대전으로 전학 가서 대흥국민학교에 다녔다.
가난한 학생들은 학비를 내지 못해서 결국에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자퇴하는 경우도 있었다.
1960년 대전 시내인 목척교, 중교 밑에서는 거지들이 우글거렸다.
......................
2020년대인 지금 모두가 최소한의 부자였으면 싶다.
적어도 밥 세 끼니는 제대로 먹었으면 싶다.
나는 1950년대, 60년대의 가난했던 시대상을 기억한다.
그때 그 당시를 기억하는 나는 말한다.
'천지가 개벽한 것인 양 모두가 잘 산다'라고.
물론 지금도 밥 얻어먹는 사람은 있을 게다. 정말로 가난해서 밥 굶는 것이 아니라 게으르거나 몸이 부실해서 등의 핑계와 이유는 있을 게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전쟁이다.
나는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도 목격하지도 않은 채 지금껏 산다.
나는 1949. 1. 말 생이다. 1950. 6. 25.에 터진 한국전쟁에 대해서 나는 아는 바가 없다.
젖먹이 아이였기에 한국전쟁의 참혹한 참상을 모른다.
전쟁을 뺀 나머지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나한테 묻는다면 나는 '가난'이라고 대답할 게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가난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금껏 배고프게 산 적이 없다. 보리밥일망정 나는 배부르게 양껏 먹고 살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내 고교카페에 올린 내 글에서 조금 인용한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 2020. 12. 26. 토요일)
오늘 종일토록 '조선의 노비' 제도를 살펴보고는 너무나 충격적이네요.
조선조... 세계에서 유례없는 노비제도를 운영했다네요.
수십 년 전 내가 배웠던 국사가 상당부문 가짜라는 것을 새삼 느끼네요.
유교의 대가인 이황... 노비가 367명... 노비 부자이군요.
이이도 노비가 100여 명 노비부자..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네도 노비부자.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 영웅대군은 각각 1만 명의 노비를 소유했다니...
화폐에 나오는 세종도 굉장한 부자네요.
나중에 보탠다.
잠시라도 쉬자.
지친다.
2024. 7. 28. 일요일.
매미가 시끄럽게 소락대기를 친다.
수컷매미가 암컷 매미를 유혹해서 짝짓기를 하려고 노래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이다.
여름이 자꾸만 무더워진다.
비가 아예 그쳤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