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소닷 연재 * Written by. 검은양돌이
"흥! 과연 리안 헬르제라라는 이름은 그냥 알려진 것이 아니었군."
콧방귀를 뀌며 루시퍼가 비꼬는 어투로 중얼거리자, 옆에있던 벨제뷔트가 노트북 위의 손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그에게 말했다.
"…대단해. 하지만 이것도 힘을 다 쓴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차피 전멸당할 것은 예상하고 보낸 전투기들이었는데, 쪼잔하게 짜증부리지마 루시퍼."
"훗. 감히 나에게 훈계하겠다는 거냐? 벨제뷔트 페트미르."
"맘대로 생각하시지."
퉁명스럽게 벨제뷔트는 대답했다.
노트북 위로 아까 전의 그 용족 최강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영상이 플레이되고있었다.
그것을 보며 제트는 수치를 적어넣었다. 그래프가 뜨고, 바쁘게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한번 본 기술을 그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것. 그것은 마계가 발명과 연구에서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흥분 된 마음을 진정하며 루시퍼는 팔짱을 끼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오리플리스의 힘으로도 감히 보지 못했던 미래였다.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셀르도라와 오리플리스 왕국의 공주, 켈리는 분명 같은 미래를 보았다. 은해 일행은 바벨리아로 가서 루시퍼 일당에게 이끌려 마계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아니, 예정이라기에는 미리 정해져있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미래가 정확히 틀리고 만 것이었다.
은해 일행은 당당히 정령계의 소환구를 통해 마계에 출입했고, 아델은 그를 배신했다.
거기다 셀르도라는 리안이라는 자의 진정한 힘을 오리플리스의 힘으로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미래의 눈으로 보았던 그들의 앞이 뒤틀리고 말았다.
"익스플로드 에너지의 한 기술이랄까? 자체의 기운을 그대로 뿜어내어 상대를 완벽히 제거하는 학살적인 방법.
수준은 AV1위급. 최고의 기술임과 동시에 몸에 많은 무리가 가고, 기운이 많은 자는 그걸 이겨낼 수도 있다는 건가? 체력적으로 강해도 그런 부작용이야
상관없는 걸 테고.. 오히려 트리엠블보다도 그 에너지의 밀도가 커. 훗. 이거에 걸린 상대는 아주 산산조각이 나겠군."
그래프를 마우스 포인터로 이리저리 치수대로 옮기면서 벨제뷔트가 말했다.
"AV1위급이니까, 그 기운의 밀도량은 적어도 72%는 당연할꺼야.
데미지 치수는 그의 2배인 144%. 몸에 작용하는 부작용의 가능성은 60%이고, 체력이 강하거나 많은 기운을 갖고 있는 자는 적어도 30%정도."
"그게 무슨 기술인데 AV1위급이라는거야?"
언제 들어왔는지, 패스트푸드 점의 종이봉투를 품에 안은 제니가 레일리아를 데리고 그에게 다가오며 참견했다.
자동문이 자연스럽게 닫히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벨제뷔트는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마족의 간부 제니스는 기꺼이 봉투 속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집어주었고, 제트는 흔쾌히 그것을 받았다.
노트북을 그녀 쪽으로 돌리며 벨제뷔트가 말했다.
"방금 전에 루시퍼가 그냥 잠깐 시간이나 끌겸 예전에 해킹했던 레드포드의 전투기를 정령인들에게 보냈거든.
프리미엄 트렐로였나? 신형에다가, 굉장히 성능도 좋은 최고의 전투기였는데 헬르제라에게 한 방에 당했어."
"리안 헬르제라가?"
"덕분에 우리의 마스터께서는 지금 분노게이지가 상승되어계시지."
킬킬 웃으며 루시퍼에게 손짓하는 제트는 셀르도라가 기분나빠하는 모습이 재미있게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햄버거를 싸고있는 종이를 벗기며 레일리아가 오드아이를 제트에게 돌렸다.
"그래서? AV1위급 에너지는 헬르제라가 공격할 때 썼던 기운을 조사한거라는 거네?"
"잘 알면서 왜 물어?"
"AV1위급은 마계에서도 루시퍼나 나나 헬렌 밖에 없잖아. 오빠하고 아델하고 제니언니는 AV2위급이니까."
"너 그러면서 은근히 자기 실력 자랑하지마. 그거 생각보다 기분이 안 좋으니까."
콜라를 빨대로 쭉쭉 빨아먹으며 레일리아가 답했다.
"내가 기분 안 좋은거 아니니까 상관없어."
"재미없어."
한 입 베어물던 햄버거를 잡은 손으로 그 맛있기로 소문난 버거를 짓이겨뜨리며 제트가 무시무시한 어투로 중얼거리자,
금발의 12살 난 소녀 레일리아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싱긋싱긋 잘도 웃으며 감자튀김을 집었다.
가방에서 화장거울을 꺼내어 보며 립스틱을 한껏 바르던 제니가 물었다.
"그 정도 쯤 되면 이제 슬슬 헬렌이 와야되는거 아니야? 지하감옥에 있는 아델도 풀어주는 게 어때, 루시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인가, 프라데라."
"솔직히 말해서 아델도 빠질 수 없는 마계인이야. 헬르제라가 저 정도면 지금은 한 사람이 아까울 정도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텐데?"
팔짱을 낀 붉은 머리의 소년이 책상 위에 걸터 앉으며 제니스를 바라보았다.
이 다크엘프 계집에게 루시퍼는 비웃음이 담긴 웃음만을 날려줄 수밖에없었다.
"아델은 배신자다."
"의외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것도 한계였나보지. 배신자도 배신자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않겠어?"
"제이드 드 에이프릴. 예전 우리에게 투항하기 전의 이름은 아델 드 세리안느. 그 녀석이 살아있어서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배신한다는 보장 역시 없지."
"프라데라!!!"
분노한 루시퍼의 기색에 제니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자신의 심복이었던 아델을 잃은 프라데라에게 그보다 더 큰 상처는 없었다.
'칫!' 하고는 제니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앙다문 붉은 빛 입술을 꽈악 깨물며 다크엘프는 루시퍼의 시선을 피했다.
이건 불공평한 처사였다. 아델의 주인인 자신에게는 일체 동의하나 구하지 않고 그대로 지하감옥에 가둬버렸다.
이때까지 단 한번 임무를 실패한 것 뿐이다. 게다가 그가 맡은 목표물은 그 대단한 '정령의 아이' 가 아니었는가.
임무를 실행하는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었는가 싶었다.
"나는 아델에게 적절한 벌을 주었다. 분명히 그에게 경고했던 벌이었다."
"이봐!! 다른 놈들 실패할 때는 눈 감아주면서 왜 아델은 안돼는거야!"
"공사구분 못하는 자를 내 밑에서 부릴 생각은 없다."
"그는 내 심복이었어! 에델린에게 봉인된 폐하를 부활시키기 위해 봉인술까지 외운 녀석이었다고!"
"봉인되신 폐하를 구하려는 너의 충성심은 높게 사주겠다. 허나…"
그들의 블랙마스터는 책상에서 내려와 붉은 눈을 제니에게 돌렸다.
"…너에게는 주제넘은 행동이었다고 생각되는 군."
"이 전투에서 엘리시아의 주인을 죽이고 에델린을 잡아 봉인을 푸는 것만이 다는 아니잖아! 그들이 받은 신탁에서는…"
"제니."
자신의 행동을 인정받으려 루시퍼에게 호소하듯이 말하는 그녀의 이름을 레일리아는 차갑게 불렀다.
마족의 간부, 프라데르는 금발소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오드아이의 소녀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이제 그만하지. 셀르도라의 말 처럼 주제넘은 행동이었어."
"…메르바체."
"에델린에게 봉인되신 우리의 주인의 일도 생각해보지않은 것도 아니잖아."
뭔가를 말하려던 제니는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라버리는 리아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결국 다크엘프는 또각또각 걸어가 소녀의 옆에 자리잡았다. 맞은 편에 앉은 벨제뷔트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조용히 웃었다.
레일리아 메르바체.
지금의 제트가 1500세라면, 레일리아는 2800세 정도의 나이를 가진 마족일 것이었다.
루시퍼와 헬렌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적은 나이었지만, 그녀의 전투능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이었다.
오드아이의 신비로움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레일리아는 비록 어릴 적 모습으로 변신하여 생활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마계의 자질구레한 일들에서부터 큰 사건까지 폭넓게 활동하는 마계인이었다.
제니스에게는 그녀에게 거부할 거부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마계에서는 그저 자신보다 강한자에게 무조건 복종이라는 말 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누구도 그 진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자는 없었다. 그것이 옳은 말이라 믿고 그것을 생활양식삼아 생활하는 사람이 다수였다.
루시퍼와 동등한 레벨로써 생활하는 레일리아의 면은 헬렌과 루시퍼 못지 않는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마계인들은 이들 세 사람에게 절대적인 복종만을 할 뿐이었다.
"프라데라의 만반의 준비도 물론 쓸모있기도 해. 하지만 지금은 그럴시기가 아니라는거라는 거지."
"흥!"
벨제뷔트의 말에 제니는 휙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아있던 메르바체가 자신의 금발머리카락을 배배꼬며 말했다.
"내가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줄까? 이건 우리도 지나쳤던건데, 저쪽 정령인들도 지나친 모양이야."
"뭔데?"
"신탁말이야. 엘리시아의 정령의 아이에게 내려졌던 신탁."
벨제뷔트의 물음에 리아가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의 모습에는 일체 주저함이 없었다. 제트의 노트북을 자신쪽으로 돌려 본부청에 접속해 암호를 입력한
레일리아는 자신이 예전에 저장해두었던 엘리시아의 신탁을 꺼냈다.
"엘리시아의 멸망으로 모든 정령의 저주를 받게된다.
두개의 달이 함께 떠 하늘엔 피빛의 구름이 생기며 정령들의 수호신이 사라진다.
두 개의 달 중 하나가 사라짐으로써 대 재앙이 끝날 것으로 마계와 정령계가 투명하게 변한다.
그로 붉은 빛을 가진 자여, 그 빛으로 앞을 내다볼 것이니 정령들의 수호신을 경계하라."
노트북에는 깔끔한 글씨체로 신탁의 내용이 잘 적혀있었다.
그들의 앞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 그 글씨가 뜨자, 붉은머리의 소년은 자신의 의자에 앉아 스크린 쪽으로 빙글 돌아 몸을 돌렸다.
리아가 말했다.
"우리가 예전에 시간의 거울로 본 것처럼, 정령계의 왕과 신탁의 드래곤까지 그저 '마계와 정령계가 투명하게 변한다' 라는 점에
주목하여서 그저 전쟁이 일어날 것에 의미를 두었던거야. 우리는 신탁을 듣기만 했지, 이때껏 예전에 계획한 대로 행동했을 뿐이잖아?
정령인들은 이때껏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그것을 막아야한다 라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겠지. 하지만 그들이 틀렸어.
전체적으로 보면 전혀 그 뜻이 아니거든."
'마계와 정령계가 투명하게 변한다' 라는 문장에 붉은 밑줄을 그으며 설명한 메르바체는
곧 콜라를 들어 한모금 마신 뒤 자신이 분석한 사실을 세세하게 말해주었다.
"일단 첫 줄에서부터 봐. '엘리시아의 멸망으로 모든 정령들의 저주를 받게된다.'
이건 과거에 우리가 봉인했던 정령의 아이를 의미해. 그것으로 탄생한 지금의 정령의 아이는 지난 저주를 받은 정령의 아이를
대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지. 엘리시아의 멸망 부분은 언젠가 지금의 정령의 주인은 엘리시아를 떠날 것을 의미하지.
자고로 대륙의 주인이 없으면 그 곳은 멸망만이 존재할 뿐이야."
노란색으로 첫줄을 그은 레일리아는 말을 이었다.
"두개의 달이 함께 떠 하늘엔 피빛의 구름이 생기며 정령들의 수호신이 사라진다.
두개의 달은 루시퍼와 지금의 엘리시아의 정령의 아이. 피빛 구름이 생긴다는 것은 곧 있을 전쟁.
정령들의 수호신이 사라진다는 것은 엘리시아의 정령의 아이가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정령의 수호자인 에델린의 존재가 사라진다는거지."
여기까지 말을 마친 마계인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는 노트북을 들어 자신의 무릎 위로 자리를 옮겼다.
설명을 듣고있는 셀르도라의 붉은 눈은 어느새 쓴 안경너머로 그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세번째 줄, 두 개의 달 중 하나가 사라짐으로써 대 재앙이 끝날 것으로 마계와 정령계가 투명하게 변한다.
라는 것은 루시퍼와 정령의 아이와의 전투로써 승패가 가려지고, 결국 둘 중하나는 멸망한다는 소리. 그 이후로 전쟁이 끝난다는 말이야.
정령인들은 이 부분에만 집중했어. 하지만 전쟁에서 이기고지는 승부가 갈라지면 전쟁이 끝나는건 당연한 이치잖아?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줄."
붉은색 글자로 표기되어있는 마지막 줄을 마우스 포인터가 밑줄을 그어 덧칠했다.
"그로 붉은 빛을 가진 자여, 그 빛으로 앞을 내다볼 것이니 정령들의 수호신을 경계하라.
처음엔 붉은 빛을 가진 자를 셀르도라라고 생각하고서 해석을 했는데, 말이 안돼더라고. 따라서 이건 엘리시아의 정령의 아이를 뜻해.
레드포드의 주인인 로웨로즈 카메론처럼, 엘리시아의 주인 역시 루시퍼와 싸울 때에는 활발함의 붉음. 다시말하면 강함을 붉은색을 갖고 전쟁을 치룰꺼야.
뒷 문장인 정령의 수호신을 경계하라는 말은ㅡ"
"결국 에델린에게서 봉인되었던 마계의 주인께서 풀려나실 것이니, 엘리시아의 주인에게 그를 경계하라는 말이군."
"정확해, 루시퍼."
셀르도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옳다고 말하는 레일리아는 다시금 콜라를 한모금 마셨다.
"그래서 루시퍼를 붉은 빛을 가진 자라고 해석하면 안돼었던 거야.
따라서 전체적으로, 해석해보자면ㅡ"
레일리아가 다시금 컴퓨터로 암호키를 입력하자, 방금 전까지 신탁이 올라와있었던 화면이 사라지고
하얀 스크린에 검은색 문자들이 쓰여졌다.
마지막 문자가 끝까지 입력되었을 때, 벨제뷔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 "다시금 있을 전쟁을 저주받은 정령의 아이는 겪게 될 것이다. 하나는 죽을 것이요, 하나는 승리의 함성을 받을 것이다.
부활할 마계왕을 경계하라. 정령의 수호자는 그대의 주위에 있다."...? 뭐야, 이건. 만약 처음에 이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ㅡ"
" 그래. 만약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ㅡ"
노트북을 닫으며 레일리아가 제트의 말을 이었다.
"…우리의 계획이 여기까지 실행될꺼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할 일이지.
정령계에서 예전에 엘리시아의 주인에게 <마족 경계령> 이라는 임무가 있었잖아? 그들은 이 신탁의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대충 넘겨짚었어. 물론 그 넘겨짚은 것도 아주 정확하게 우리 계획을 간파했지만, 그 <마족 경계령> 이라는 임무는
사실상 옆에 있는 정령의 수호자인 에델린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보내졌을꺼야. 앞으로 봉인이 풀릴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정령계의 날짜로 세자면, 예전에 엘리시아의 주인이 아나이스에게 들었던 것처럼 450일이라는 시간이 에델린에게 주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이 <마족경계령> 은 마계의 날짜로 세어진거야. 정확히 날아온 그날부터 마계의 날로는 64일 정도 남았다고 할까?
마계의 하루는 저쪽의 일주일이니까, 우리 세계에 있을 때는 9일이 남은거야. 그걸 모르는 엘프대장 아나이스는 지금 긴장을 풀고 그와 다니는 거고.
그들이 에델린을 조심하라는 이 메시지를 잘 읽었더라면, 먼저 에델린에게 봉인되어져있던 마계의 주인을 완전소멸시키는 작업부터 들어갔을껄?"
장황하게 늘어놓는 리아의 말에 입을 떠억 벌리고 있던 제트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치자면, 오리플리스의 힘으로 바라봤던 미래는 은해일행이 이 신탁을 제대로 해독했을 때의 미래이고
신탁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 지금은 그 어떠한 힘으로도 그들의 미래를 볼 수없다는 말이 된다.
루시퍼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래를 볼 수 없다니..! 그들이 신탁을 제대로 해독하지 않은 것은 마계에게 있어서 엄청난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로 주어진 <미래>라는 것은 너무나도 큰 대가일 뿐.
조용히 듣고 있던 제니는 몸을 움직여 장식용 유리병 속에 있는 초콜렛 중 하나를 꺼냈다.
그 바스락거리는 포장지를 뜯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계획은 헛수고가 된다는 뜻이잖아."
"그런 셈이지."
"이런..!! 그 녀석들이 제대로 해독만 했어도 계획대로 됬을텐데..!"
계획되어진 대로 미리 모든 것을 짜두었던 벨제뷔트는 안타까움의 탄성을 내뱉었다.
안경을 벗으며 루시퍼가 일어났다.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안 것보다는 지금 안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잘 했다, 메르바체. 덕분에 중요한 것을 잊을 뻔했군."
"그렇게 말해주니 영광이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오드아이를 반짝이며 루시퍼에게 답했다.
"오리플리스의 힘은, 우리가 봉인시켜 탄생하지 못한 정령의 아이 대신에 나타난 새로운 주인은 언젠가 마계의 큰 위협이 된다 알려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의 주인을 되찾기 위해 에델린을 잡기위한 노력으로 그들 일행을 마계로 끌어내고,
조만간 위협이 될 엘리시아의 주인을 아델을 시켜 봉인시키려고하였다. 하지만 그 계획이 수포가 되버렸으니ㅡ"
아델의 이야기가 나오자 순간 움찔했던 제니스는 루시퍼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재빨리 고개를 숙였고, 그런 그녀의 행동에 셀르도라는 살짝 미소지었다.
소년이 말을 이었다.
"ㅡ일단은 계획이라 할 것없이 헬렌을 기다려야 일이 해결될 것이다.
오리플리스의 힘 역시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지금 다가오는 정령인들은 커다란 위협이다.
에델린은 생포하고, 다른 이들은 몰라도 엘리시아의 주인은 꼭 죽여야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계획이 되겠지만, 헬렌이 와야만 이 큰 문제가 해결될 것 같군."
"…호오. 루시퍼,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큰 인물이 된 듯한 착각에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단아하고 예의바른 목소리가 자동문이 열리며 들렸다.
붉은 머리의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앉아있던 일행도 이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놀란 제트는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에에엑?!!! 헬렌, 왜 이렇게 빨리왔어!!!"
*
"일단은 여기서 쉬는게 좋겠군요. 모두들 힘든 모양입니다."
"그러자고. 나도 배고프던 참이었으니까."
보조석에 앉은 로웨나가 동감하자, 헤롤드는 아까 리안의 공격이 지나지 않은 곳을 향해 헬기를 돌렸다.
물론 그것은 그 공격이 지난 곳의 나무가 모두 가루가 되어버려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일단은 나무들 속에서 모습을 들키지 않게 몸을 은신하는게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헬기를 착륙시킨 일행은 땅에 내려와 답답하게 굳어졌던 몸의 긴장을 풀기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보슬비가 내렸지만, 그것마저도 시원했는지 일행은 피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시원해!!!"
에반이 탄성을 질렀다.
"타이밍 한번 끝내주는 군."
"그러게 말이야."
에델린이 축축해진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말하자, 옆에 있던 로웰이 머리를 부르르 털며 동의했다.
일단 조종한 사람들은 둘째 치고, 그저 앉아있던 사람이 피로에 질려 이렇게 비에 감사하는데 조종하던 사람들은 오죽했으랴.
헤롤드와 로웨나, 은해는 저쪽 나무 밑에 앉아서 연애라도 하는 듯이 오순도순하게 까르르거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나누던지간에, 기사들은 일단 이 행복의 비에 감격하는데에 정신이 없었다.
축축하게 젖어가는 옷에 아랑곳 않고 비가 떨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던 푸른 드래곤 리안역시 이 차갑고도 시원한 축복의 비를 만끽하고 있었다.
마계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지, 정작 리안의 눈에 보이는 마계의 하늘은 정말 푸르기 그지 없었다.
맑다 못해 깨끗하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거기다 저기서 떠다니는 구름은 어찌 저렇게 부드러워보이는가.
정령계와 마계는 다를 바가 없었다. 어째서 정령과 마 의 이름이 붙었는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리안은 더 깊이 생각했다가는 머리가 아프겠다 싶어 들었던 고개를 내렸다.
빗 물이 그의 얼굴을 타고 매끄럽게 떨어져내렸다.
옆에 있던 엔다이론은 늑대의 모습으로 변해서 빗 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물의 정령인 그에게 닿은 빗 물은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었고, 오랜만에 만난 물 구경에 늑대는 신난 모양이었다.
"에델린, 저희들이 챙겨온 식량이 어딨는 줄ㅡ 윽!!!"
"아?"
저쪽에서 짐을 들고 슬슬 걸어오던 아나이스는 비에 젖은 물의 기사의 모습에 들고 있던 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영문을 모르는 에델린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던 리안 역시 들고 있던 라이트위저를 떨어뜨렸다.
하나, 둘, 셋.
약속이라 한 듯 아나이스와 헬르제라는 타이밍까지 정확하게 맞춰 에델린을 손가락질 하며 외쳤다.
"물귀신이다!!!!!!"
"이 자식들이 보자보자 하니깐..!!!!"
"하하하하하!! 진짜 물귀신 같아!!"
옆에 있던 에반까지 합세하여 웃어대자, 요즘들어 리안과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내심이 줄어들었던 에델린은
곧바로 빠직마크를 달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검을 뽑아든 에델린은 리안에게 검을 휘둘렀고, 그 앞으로 나아간 기운은 헬르제라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순간적으로 몸을 피한 드래곤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은 채 검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는 에델린에게 항의했다.
"이봐!!! 저 녀석들도 놀려댔다고!!"
"시끄러! 네 녀석이 가장 마음에 안 들어!"
"그런 법이 어딨어?!"
"닥쳐!! 내 기필코 오늘에야말로 너를 이 곳에서 장사지내주마!!"
진심이었는지, 에델린이 검을 들고 리안을 향해 달리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가 한마리의 성난 황소처럼 보였던 리안은 맞설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도망치고 말았다.
쫒기고, 쫒는 두 사람의 모습.
저쪽에서 까르르 얘기를 나누고 있던 정령의 주인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눈을 껌뻑였다.
"쟤들이 지금 뭐하는거래?"
"제 관점으로는 그 유명한 '나 잡아봐라' 라는 놀이같습니다만..."
"나 잡아봐라?"
"예."
은해가 반문하자, 헤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사이에서 많이 사용하는 놀이입니다. 대부분 여성이 도망치며 '나 잡아봐라~' 라고 하면,
그녀를 쫒는 남자는 '하하하하하' 라는 아름다운 웃음소리를 내며 일부로 느리게 달리는 그녀를 잡는다는 유명한 놀이이죠."
"그렇군요."
'나 잡아봐라' 는 저쪽세상에 있을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간단히 정의를 내리지는 못했기에
은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과 에델린의 모습에 헤롤드가 설명했던 연인의 모습을 대입시켜보던 은해는 순간 상상하던 것을 멈추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에델린의 손에 든 것은 검이었다.
꽃을 휘날리며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는 연인 두 사람이 서로 '하하하하' 라며 웃으며 놀고 있는데,
거기다 활짝 웃으며 쫒는 남자에 손에 위협적인 검이 들려있다고 상상한 로웨나는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헤롤드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에게 잠시나마 감돌았던 정적을 깨며, 은해가 조용히 말했다.
"…무시무시한 '나 잡아봐라' 군요."
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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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헬렌> 이라는 이름이 몇번 거론되기도 했었는데, 왜 당사자가 안 나오냐고 어떤 분께서 메일을 보내셨더라구요.
^^담편에 나옵니다! 기대해주시구요-
신탁의 모순이 해결되는, 그리고 <마족 경계령> 의 본 뜻, 아나이스가 거론한 날! 그리고 에델린과 만난 아나이스의 태연한 행동!
이 모든 것이 풀리는 해결방책을 제시한 82편이었습니다;;;;;;;;
항상 생각했던 건데, 막상 쓰려니 어쩜 해결하기가 힘들까요...ㅠㅠ
이 모순된 점들을 하나로 잇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군요.ㅠ 실력의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해가 안돼시는 분들이 계셔도 뭐라 할말이 없을 것 같아요ㅠㅠ
8월 30일에 개학하는 양돌이!
83편과 84편을 적어도 그 기간안에 끝내도록 노력하는 양돌이가 되겠습니다!!
ㅠ 이힝...또 새벽4시가 되버렸네요...ㅠ 양돌이는 이만 들어가서 잠을....;;;;;;;;;;;;;;;
첫댓글 새벽에 글쓰시느라 힘드실텐데... 평일은 방학끝났을테니 힘드실테고...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무리하지마세요!
낮에 올리도록 노력할께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학 늦게 하시네요.. 좋겠어요. 힝.. 잘보고 가요~ 그리고.. 새벽 4시에 쓰시다니..왠지 많이 혼날거 같아요. 소설도 좋지만 건강도 챙기세요~
;;하핫; 낮에는 잠깐 들를 시간밖에 없어서..;; ^^일찍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ㅋㅋㅋ 잘읽었엉 무리하지마셩~~
응응 정말 고마워~
재미있게 잘 읽었ㅋ 나도 어제 새벽에 잤는데..ㅠㅠ 영어숙제때문에 죽어나;;;ㅜㅜ ㅋ완전 신탁의 연구하는것 만같은;;;; 고생했어!
^^고마워요!
무서운 나잡아봐라라 ㅋㅋ 잼있네여
감사합니다~
ㅋㅋ 저도동감이요!
지금까지 눈팅만 하고 있었네요..죄송해요. 앞으로 코멘 쓸게요. 그리구요, 저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아군도 적군도 다요. 예언을 깬다면 왠지 멋질것 같아요.+_+;;월래 틀에 끼인 것을 싫어해서;;<-틀 아니야 [가지마에델린죽지말라구]
와- 좋으신 의견! ㅎㅎㅎ<<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아대단해요 굉장히심오하면서도 앞뒤가잘맞는해석이네요 <<악감탄했어욜 ^^;;담편도얼렁얼렁올려주세용
감사합니다!!
ㅎㅎㅎ 역시 재밌어요. 점점 복잡해지는게 아주 머리 터질거 같고 좋내요~!!!!
;;;핫 머리가터질거같고좋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ㅋㅋㅋㅋ무시무시한 나잡아봐라~~~꺄르르>_<!!!!!!!!!!!대박이당~~~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