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피해자서 가해자로…
歷史의 복수, 무섭기 짝이 없다
이스라엘 과거와 현재를 보라
홀로코스트 희생자였다가
팔레스타인엔 가해자로
자신들도 민망했을까
자칫 나치와 겹쳐 보일까봐
‘蜂起 기념관’ 방문 금지한 적도
가해자의 자기정당화 안 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경계를
----10월 2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당한 한 남성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옮기고 있다----
< EPA 연합뉴스 >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추이가 심상치 않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도대체 누구 편을
들어야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홀로코스트의 가장 큰 희생자로 600만명을
잃은 유대인들의 고난과 희생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지금의 이스라엘을
지지하기에는 무언가 걸린다는 막연한
느낌이 많은 사람에게 있다.
이 막연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유대인 하면 당연히 홀로코스트를
떠올리지만, 이차 대전 직후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아랍의 수많은 적대 세력에 둘러싸인 채
강한 독립국가를 세우고 지켜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신생 독립국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보다는 바르샤바 게토 봉기를 더
높게 쳤다.
1943년 4월 19일 시작하여 5월 16일
막을 내린 바르샤바 게토 봉기는 처음부터
지는 싸움이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유대인 봉기
지도부는
“독일 작자들이 우리가 죽는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도록 버려둘 수는 없다”
는 결기 하나로 봉기에 임했다.
이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택한 장소에서 자신이
죽을 시간을 결정했다.
이스라엘 의회 크네세트는 1951년부터
이스라엘력 니싼 27일을
“쇼아 기념일”
로 정해 유월절에 일어난 게토 봉기를
기리고 있다.
그레고리력으로는 대체로 4월 말이나 5월 초가
되는데, 이는 유엔에서 정한 홀로코스트
기념일인 1월 27일과는 크게 다르다.
순한 양처럼 속수무책으로 나치에
끌려가서 변변한 저항도 못 해보고 대량
학살당한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 건국의
주역들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다.
이들에게는 유대인들의 용기와 저항의
표상인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더 소중한
기억이었다.
게토 봉기는 로마 군단의 압도적 군사력에
맞서 3년을 버티다가 항복 대신 집단 자결을
택한 고대 마사다의 유대인 영웅신화와
맞닿아 있다.
독립 직후 이스라엘의 공식 기억에서
게토 봉기의 영웅적 전사인 ‘시온주의자’나
‘히브리 청년’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인
‘유대인’과 뚜렷이 구분되었다.
나라를 잃고 유랑하는 유대인이나 히브리
전사들의 고난에 찬 역정은 식민지 시대부터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낳았다.
1962년 2월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는 가나안
농장을 방문해
“건국차”
를 마시며 김용기 장로와 환담했다.
군용 잠바에 ‘라이방’을 낀 채 김용기 장로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이교도’ 박정희 의장의
사진은 우스우면서도 처연하다.
박정희에게 이스라엘 키부츠는 애국적
농업혁명의 상징이자 한국의 빈한한 농촌
근대화의 모델이었다.
비단 박정희 의장뿐 아니라 근대화와 동참한
많은 한국인에게 이스라엘은 발전 모델이었으며,
시온주의적 민족주의는 모범 답안이었다.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이스라엘
저항운동이었던 인티파다 봉기가 한창인
1987년, 이스라엘 군부는 돌연 이스라엘
국방군 소속 병사들의 게토 봉기 기념관
방문을 금지했다.
바르샤바 게토의 어린 유대인 전사들을
학살하는 나치 군대의 모습에서 돌멩이를 든
어린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자화상을
발견할지도 모를까 두려웠던 것이다.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후손들이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처럼 비칠까 두려워하는 역사의 복수는
무섭기 짝이 없다.
가자지구를 맹폭하고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에게 서슴없이 총을 난사하는
이스라엘의 전후 세대인 젊은 군인들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바 없다.
그러나 홀로코스트가 끝나고 한참 후에 태어난
이 젊은 군인 중에는 자신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고 간주하는 비율이
80%에 달하기도 한다.
다시금 홀로코스트라는 절대적 비극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강력한 이스라엘
국가가 필요하며, 그를 위해서라면 팔레스타인
청소년 수천의 목숨 정도는 별것 아니지
않냐는 자기 정당화가 이들에게는 너무
강하다.
때때로 이 자기 정당화는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겠다는 욕망을 낳기도 한다.
비극의 역사에서 출발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또 다른 비극을 낳는 가해자의
이데올로기로 변모하는 것이다.
과거의 희생을 담보로 현재의 가해를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에서
한국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미래가
보인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일까?
임지현 연세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밥좀도
세계는 힘이 지배하는 정글이고 역사는 승자의
전유물이다.
끝 없는 외세 침탈과 어두운 식민 역사를 지닌
한국은 무엇보다도 부국강병에 매진해야 한다.
한가하게 정쟁으로 집안 싸움 펼칠 때가 아니다.
토벌자
나약함이 극에 달해 병적인 기사를 만든다.
이런 기사는 평화가 아니라 노예의 길이다.
공산당임이 의심스롭다.
불처럼
황새든 독수리든 새도 약한 새끼는 어미가
먹거나 차별을 극명하게 한다.
뻐꾸기는 얼에서 나온 새끼가 숙주 새가 낳은
알을 또는 빨간 아기새를 발가락 힘을 다해
진력으로 밀어 낸다.
침공자가 아닌 피해자로 국가는 적대국의 원적을
대적할 의무가 없다면 그 국가는 곧 생존하지
못한다.
새하고 다를 바가 있나,
국가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는것도??
생존은 윤리도 교과서도 아니다.
74965
교수님은 도둑이 갑자기 쳐들어와 교수님
가족을 죽이면 교수님이 그 도둑에게 보복하는건
교수님의 피해의식 때문인가요?
교수님이 도둑을 잡아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처단하는것은 과거의 피해의식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안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역사를 끌어들여 가해자에게 서사를 쥐어주고
피해자의 정당한 자위행위가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과도한것마냥 치부해버리는건 좌파들
종특입니까?
좌파들은 그래서 아주 신물이 나요.
자신들이 인류보편적 관점에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짓을 즈그들만의 정의로 잔인한 짓을 저질러
놓은것은 기억상실증 환자마냥 잊어버려놓고,
선량한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강하게 대응하는
정당한 행위는 독재니 피해망상이니 과도한것이니
이렇게 후려치기 하는게 정말 정나미가 떨어져요.
마치 지금 사법부가 범죄살인자들의 인권은 보호하면서
피해자의 정당행위는 잘못되었다는 그런 불의가
교수님 의식의 근원에 깔려있어요.
그건 범죄자와 가해자쪽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봅니다
반국가세력 척결
너희 집에 갑자기 하마스가 난입하여 네 부모를
죽이고 네 아내와 딸을 납치해갔다면 너는
어떡할 작정이냐?
흰구름
은근히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좌파적 시각의
칼럼이다.
이스라엘이 옳다.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공산당 빨치산 같은 행동이
화를 불러 일으켰다.
어느정도 희생이 따르더라도 빨치산은 무조건
소탕해야 한다.
아울이
스스로 잘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나라는 망하기
마련이다.
서방의 물질적 후원을 땅굴에다 쏟아버린 하마스를
정치지도자로 받드는 나라의 미래는 뻔하며
자업자득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시민들은 내부의 적부터 응징하길.
금과옥조
하고픈 얘기가 뭐요.
YAVUUZ KHA****
그렇다고 해서 하마스의 테러가 정당화 될수
없는법.
도대체 역사학자라는자가 무논리 역사 맞추기를
하면 어떻하는지.
폭력에 대한 응징/보복이 홀로코스트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대한민국 교수의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는지?
사상편향성이 의심된다!!!
?M필부
모호하게 ㅡ이스라엘 힘 빼는 소리 하는구먼.
그러나 중요한건, 살아남는 자 가 승리인 것은
확실함.
기쁨 기도 감사
기고자는 해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피해보복의 악순환을 감성적으로만 논 할 것인지?
작용에따른 반작용은 필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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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러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고 이팔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이 이기면 분명 3차대전이 발발하고,
북한과 중국이 러시아와 손을잡고 대한민국을
쳐들어오게 됩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발목잡혀
대한민국까지 살펴볼 여력이 없어지기 때문.
그러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이 이길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봅니다.
한가하게 이기는 편 우리편 이 OOO 하다간
그 다음은 대한민국임
해탈001
만약 북한군이 갑자기 내려와서 수백명의
국민을 사망케하고 수백명을 인질로 데려 갔다면
당하고만 있으라는 논리인가?
대한민국은 강대국에 둘러쌓여 그들의 침략에
국민들이 신음해왔다
외세의 침략은 몇십배 응징해줘도 부족하다 응징하는
것이 피해자 코스프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