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어두워져서 집으로 가는 길에
시간이 너무 늦어 부모님에게 혼날 것 같아 물레방앗간 앞에서
잠시 머리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물레방앗간 안에서 조그맣게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였습니다.
혹시 처녀구신? 머리가 쭈삣 섰습니다.
이마에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벌렁거리며 겁나고 무서웠습니다.
약간 벌어진 문틈으로 살째기 구다봤습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앗... 어제 뉴스에서 보던 그넘이다.
아이를 유괴해서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고 돈을 건네받을 장소에 나갔다가,
잠복중인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도주했다고 뉴스에 나온 그넘..
인상착의와 아이의 사진이 방송되어서 유심히 봤었는데...
그넘 옆에는, 사진으로 봤던 아이가 흐느끼며 누워 있었습니다.
입을 막아서 울음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 이를 워쩐다냐? 고민 고민...
좋아. 의젓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동안 갈고 닦은 무술로 제압하자.
그런데 할줄 아는 무술이 없는데???
끙끙~~ 그래 경찰을 부르자.
저런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넘과 정면대결을 벌일 수는 없는 거 잖아.
무슨 흉기를 들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살금살금 뒷걸음으로 물러나려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내 몸이 앞으로 달려갔습니다...(으잉?)
그리고 나를 당황하게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너 여기서 뭐해?" 그랬습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영희가 왔던 것입니다.
그녀는 내 등을 힘껏 밀면서 "야! 너 여기서 뭐해?"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뒤에서 힘껏 미는 바람에,
난 물레방앗간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간 꼴이었습니다.
그 유괴범 넘은 화들짝... 하고 놀라자빠졌습니다.
그넘과 나는 서로를 빤히 바라보며 이 순간을 어찌 대처해야할지 고민했습니다.
그사이 그녀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눈치 챈 그녀도 긴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세 명은 서서히 움직였습니다.
마치 레스링선수가 서로를 경계하며 링을 돌듯 서서히 자리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넘이 갑자기 그녀를 밀치고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땅바닥에서 제법 큰 돌멩이를 집어서 그놈을 향해 힘차게 던졌습니다. 홰~~ 엑~~~~~ 우잉?
근데 날아가는 돌멩이의 모양이 좀 이상했습니다.
암튼 그 물체는 정확히 그넘의 뒤통수에 맞았습니다.
아니 맞았다는 표현은 좀 이상하고 찰싹(?) 달라붙었습니다?????? 그넘은 몇 발자국 더 도망치다,
으~~~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버렸습니다.
그녀와 나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꿈벅꿈벅 거리다가,
얼른 달려가서 쓰러진 그넘을 꽁꽁 묶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마음에 뒤통수에 붙어(?)있는 돌멩이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오리 : 우잉?
그녀 : 잉?
우린 동시에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습니다.
알고 보니 그건 닭이었습니다.
돌멩이를 집어 던진다는 게 바닥에서 졸고 있던 닭을 집어 던진 것이었습니다.
마침 그곳에서 졸고 있던 닭은, 내가 집어던지는 바람에 깨어났고,
너무 놀라 눈을 부릅뜬 닭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날갯짓을 할 틈도 없이 그놈에게 부딪히면서,
두발에 힘을 꽈~ 악 줘서 목을 감싸 안으며 꼬집었고, 부리로는 뒤통수를 힘껏 콕~~ 찍었던 것입니다.
얼떨결에 그런 일을 당한 그 닭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고,
그넘도 닭에게 찍힌 뒤통수가 너무 고통스러운데다가,
닭이 두발로 목을 조이는 바람에 숨이 막혀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참내...
잠시 후 경찰이 왔고, 죽은 줄만 알았던 닭도 깨어났습니다.
그 나쁜넘은 경찰에 압송되었고,
아이는 경찰이 부모에게 데려다주기로 했습니다.
닭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봅니다.
난 닭의 충격을 덜어주고자 살포시 안아줬습니다.
닭이 코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미안하다. 내가 널 느닷없이 집어 던지는 바람에 이리 되었구나.
난 손수건을 꺼내 닭의 코피를 정성껏 닦아주었고,
손수건을 조금 찢어 콧구멍도 막아주었습니다 닭도 나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이제 그만 날 보내주세요"...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에 닭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납치범을 잡게 도와줘서 고맙기도 하고, 코피를 나게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무엇인가로 보상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지난번 낚시하고 남은 지렁이 통을 이곳에 숨겨둔 기억이 났습니다.
난 좀 아까웠지만 지렁이 통을 목에 걸어주며 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리 : 닭아! 약소하지만, 이거 집에 가서 식구들이랑 먹어라.
그리고 나중에 아픈데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내게 찾아와 알았지?
닭이 내 정성에 감복했나보더군요.
연신 꾸벅 꾸벅 인사를 하며 빠른 걸음으로 동네를 향하여 갔습니다.
모두 다 가고 그녀와 둘이 남았습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내게 사과 했습니다.
그녀 : 아까 뒤에서 갑자기 밀어서 미안해..
오리 : 아니야.. 그 바람에 유괴범도 잡았는데 뭘...
안 그래도 뛰어 들어가서 그넘과 결투를 하려고 하려던 참이었어.
난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나는 듯 가렵고 손바닥에 땀이 났습니다.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마음속으로 맹세했습니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예상 밖으로 용기가 있다는 듯 바라봤습니다.
난 어깨에 힘을 살짝 주고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좀 쑥스럽다...끙끙..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깨까시 씻고 누웠습니다.
잠이 안 온다.
생각이 유괴범 잡은 일에 미치자 나도 몰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비록 얼떨결에 그런 거지만 좋은 일을 해서 흐뭇했습니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어무이가 나를 깨웁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영희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닭을 소중히 품에 안고 있는 이장님을 비롯해서, 마을 유지 분들,
동네 아저씨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 다수..
몇사람은 사진을 마구 찍어댑니다.
눈치챘습니다.
난 어제 자면서 생각해두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을 했습니다.
오리 : 부끄럽습니다. 누구든지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참! 아이는 건강은 어떠한지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어제 숨바꼭질 하다가 넘어져 돌멩이에 부딪혀서 아픈 옆구리를 만지며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그러자 기자로 보이는듯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기자 : 옆구리는 왜 그러죠?
오리 : 예.. 별건 아닌데요. 사실은 어제 밤 격투 중에.....험험..
닭과 그녀가 동시에 째려봅니다. (에라모르겠다...) 몇 가지 질문이 더 오고갔습니다.
닭과 그녀의 눈빛이 아직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난 그들의 눈빛에 밀려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리 : 사실 어제 그 일은 저 혼자 한 게 아닙니다.
여기계신 이여자분과 그리고 저 닭..
이렇게 셋이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그녀와 닭.. 그제서야 눈빛이 부드러워졌습니다.......치...
셋이서 기념사진도....찰칵...
우리 셋은 다음날 시장님의 부름을 받고 시청에 가서 용감한 시민상과 용감한 닭상도 받았고,
카퍼레이드도 하고 신문에도 나고 tv에도 나왔습니다........ㅎㅎ
마을에서는 찬치를 열흘 동안 열어 자축행사가 크게 벌어졌고,
마을 회의를 거처 그날을 "닭 안먹는날"로 정했습니다.
통닭집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습니다.
마을입구에 큰 안내판이 생겼다. 안내판에는 나와 그녀가 닭을 던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닭 조심" 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회의에서 매년 9월 9일을 구구-day 로 정하여 동네축제를 열었습니다.
축제의 내용을 잠시 소개하자면..
사건의 그날.. 오리가 정성스레 닭의 코피를 닦아줬던 고운 심성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에서
가장 "콧구멍 큰 닭"을 선발하여 "제 수명대로 살수 있는 영광"과 "지렁이 한통"을 부상으로 주었습니다
축제 행사 중에는 개인전과 단체전 경기가 있었는데 개인전 경기중 제일 인기종목은 "닭 던지기"였다
규칙은 사람과 닭이 2인1조가 되어 참가해서 발이가 그날 물레방앗간에서 했던 것을 재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호루라기소리가 들리면,
땅바닥 퍼질러 앉아서 졸고 있는 흉내를 내는 닭을,
옆에 서있는 선수가 얼른 집어 던져 10미터 앞에 있는 허수아비의 뒤통수를 정확히 맞추는 팀이 우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단체전 경기 중 제일 인기종목은 암탉 대 수탉의 줄다리기였다.
가끔 시합전날 암닭들이 숫탉들을 잠을 안 재워서,
숫탉들이 줄다리기 시합 때 힘을 못 쓰는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공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축제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역시...
"바통" 대신 "닭"을 들고 달리는 "400 미터 계주"였습니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정말 숨 막히는 접전이었습니다.
달리는 선수의 손에 잡혀있는 닭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선수를 응원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날 하루만큼은 닭과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반목과 질시를 버리고 혼연일체가 되었으며,
닭장과 안방이라는 벽을 허물고 신명나는 축제의 마당을 열었습니다
우리 마을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성숙된 모습을 보였고,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하는 "특색 있는 좋은 축제"로 지정되어 해마다 일정금액의 보조금을 지원 받습니다.
오리의 동상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내가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무산되었습니다.
- 끝 -
첫댓글 진실인가요? ㅎㅎㅎ
읽으면서도 가상의 소설이 아닐 까 의심을 하고 있네요~ㅋ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올려주신 소중하고 좋은 작품 감상 감명 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