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이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과의 우연한 조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처음으로 경주 현대호텔에서 기독교 라디오방송의 5개 지사 초청모임의 강사로 나서 강연했을 때 봤다. 호텔 연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전직 대통령의 강연 초대에 큰 흥분을 느끼며 지인들과 뷔페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마침내 강연 시간이 되자 이 전 대통령이 연회장에 들어섰고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연단에 선 이 전 대통령은 간단한 인사말을 전한 뒤 양복 안주머니의 메모지를 꺼내어 연설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형식으로 흘러갔다. 가난한 시절을 극복하고 부모님의 후원으로 대학에 들어가 기업에 입사해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이야기였다. 기업을 경영했기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국가 통치라는 개념보다 국가 경영이라는 개념을 따랐다고 했다. 4대강에 대한 소회도 피력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과의 일화도 언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울산 대왕암공원을 방문했을 때 먼발치에서 봤다. 당시 지역신문은 조선업의 침체로 어려운 울산에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대거 유입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나중에 청와대에서 배포한 사진에서 필자는 잊지 못할 한 장면을 보았고, 아직도 선연히 기억한다. 그것은 대왕암공원 울타리에 서서 먼바다를 하염없이 주시하던 대통령의 뒷모습이었다. 비록 쿠데타로 집권했으나 경제에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부친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역에선 관광객 대거 유입 기대에 들떠 있었는데 박 대통령은 혼자 쓸슬히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뭘 생각했을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전직 대통령은 이후 모두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조우한 인연의 탓인지 두 대통령이 영어(囹圄)의 몸이 된 뒤 한동안 울적한 심경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두 사람 모두 자유의 몸이 됐다. 그 중 박 전 대통령은 가끔 정치색을 드러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윤석열 정부의 출발을 응원하며 보수와의 협력을 당부했다.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했던 변호사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자 지지를 당부하는 말도 남겼다. 그래서인지 유영하 변호사는 지난 4ㆍ10 총선에서 당선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석방 후 자신의 치적으로 꼽히는 청계천을 거닐 때 `정치적 해석이 깃든` 집요한 언론의 질문 공세를 너털웃음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무엇을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가?" "눈이 있으면 보면 될 것이고, 귀가 있으면 들으면 될 것을"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되면 이제 탄핵당할 것인지 아니면 탄핵을 막아내고 차기까지 무사히 정권을 이양할 것인지가 관심사가 돼버렸다. 정치에서 낭만이 실종된 지 오래다. 정치쇄신을 빙자한 복수혈전이 넘쳐나니 국민만 불안하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을 지켜야 하는지 국민이 정치 지도자를 지켜줘야 하는지 궁금한 세태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