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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리의 토끼
1610 여름
우여곡절끝에 예정보다 열흘이나 더 걸려서 5월 초에 센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일차 원정대는
샌프란시스코만 입구에 포대를 설치하고 일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마을을 조성하고
동쪽의 끝이라 하여 극동이라는 현판을 마을 입구에 내걸었다.
사방 1킬로미터를 철책과 목책으로 둘러쌓고 중간 중간에 망루를 올려서 주변을 감시했다.
목축과 농사를 위한 초지와 농지를 개간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서 이제 겨우 옥수수를 비롯한
몇몇 작물을 파종할 수 있었다.
옥수수는 불과 3개월만 지나면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적합한 작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본토에서 수송되는 지원품과 수렵으로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주변에는 원주민들이 발견되지 않아서 한동안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차 원정대의 구성원은 대부분이 군인이었는데 보병 2개 연대 육천명과 해군 3천명과
기타 천인단원과 민간인 천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들의 임무는 항구 건설과 정착지 조성,
주변 정찰 및 정보수집 그리고 켈리포니아만까지의 도로건설에 있었다.
“예정보다 항해가 열흘이나 지연되어서 식량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수송선이 다시 오려면
앞으로도 한달이나 남았는데 이미 가지고온 곡식은 대부분 소모되었고, 현재는 사냥해서 잡은
짐승들과 물고기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달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육식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채소 섭취가 너무 적어서
병이 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된장에 시레기국으로 어떻게든 연명하고 있습니다만 큰일입니다.”
임시로 원정대 대장을 맡고있는 선임 연대장인 임동표대령은 역시 원정대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천인단원인 이상태 보급단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상태는 두달분의 양식을 가지고 석달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길어야 한달입니다. 수송선이 곧 도착할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아야겠지요. 식용할수 있는 자생식물을
찾는 것이 좋겠습니다. 천인단에서 좀더 수고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밖에 다른 일은 없습니까?”
주위를 둘러본 임동표 대령은 아무런 의견이나 발표가 없자 오늘로써 두번째인 월례 원정단회의를
마치고자 했다. 별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해군은 포함 두척만을 남기고 모두 일본으로 떠나버렸고
수색대대를 제외한 모든 인원은 도로건설과 기간시설 건설에 투입되어 있었서 안전사고만 발생하지
않으면 대체로 태평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만 회의를 마칩시다. 그럼 수고 하십시오.”
임동표대령은 회의를 끝내고 각 중대장이상 장교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일동 차렷. 원정대 대장님께 경례”
“천군.”
간단명료한 구호에 짧게 답례를 마친 임대령이 자리에 앉자 모두를 자리를 잡았다
“연일 계속되는 작업에 예하 장병들의 수고가 많다. 각 대대장들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대들을 잘 통솔해주기 바랍니다. 시간은 많으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더라고 확실하게
매듭을 짖고 다음단계로 나가도록 하란 말이다.
이곳에 온 사병들은 대부분이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니 서로 서로를 위할 수 있도록 장교들이
솔선수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의무복무를 마친 자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능력에 맞게 토지를 소유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다들 다치지 않고 좋은 세상을 살 수 있도록 각자가 조심하도록 하고.
무슨 일이 발생하면 숨기지 말고 즉각 즉각 보고해서 모두가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제대하면 나도 이곳에서 소나 키울 생각이다.”
기회만 있으면 거의 똑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던 임대령의 긴 훈시가 끝나자
각 대대에서 인원보고 및 중요사항을 보고했다.
“저희 해군이 이번에 남쪽으로 약 500킬로정도 해안을 따라 항해를 해보았습니다만,
이렇다할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다음달에는 위쪽으로 올라가볼 생각입니다.”
“이번에 동쪽으로 나간 수색대원들이 산맥에 막혀서 되돌아 왔습니다. 천군부에서 제공한 지도에
의하면 산맥이 남과 북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어서 동으로는 더 이상 진출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수색도중에 산속에서 촌락을 발견하긴 하였으나 원주민을 발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간 것 같습니다.
”
계속되는 각 부대의 보고는 원정대대장이 신경쓸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임대령으로서는 앞으로 3년만 이곳을 아무탈 없이 관리하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후에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이곳에서 여생을 마칠 생각이었다.
“원주민촌을 발견했다는 주변에 지점을 골라서 전초기지를 만들고 한 개 중대를 전담배치 시키도록
하고, 원주민을 만나면 공격 받기 전에는 적대행위를 하지 말도록 교육을 철저히 시키게.
원주민들은 대체로 다 순진한 종족들이니까. 모두들 그럼 수고하도록 이상.”
100만의 고정 소비집단의 형성은 대한제국의 산업을 크게 발전시키고 있었다.
100만이 소비하는 무기와 생필품을 조달하기위한 공장들이 조선 곳곳에 생기고 그에 파생하는
산업들이 발전하면서 잉여생산품은 민간으로 흘러 들어갔다.
모든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천군부에 제공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17세기에
걸맞는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일부 도시와 군 주둔지 주변 마을은 20세기 초반의 물품을 사용하는
이도 많았다. 그야말로 대한제국은 300년의 산업이 혼재되어 있었는데 어떤 이는 짚신을 싣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고무신을 싣고 다녔다.
여수에 건설된 석유화학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많은 유화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2기통엔진과 전동기의 생산은 기계공업을 가속화 시켰고 그에 따른 부품공장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회전반에서 기술 축적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산업기반을 착실히 쌓아갔지만 아직은 개별적으로
이루워지고 있는 경우가많아서 유기적인 산업기반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른 복합적인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시일이 더 필요했다.
우한은 우한이 생긴이래 최고의 호황을 맞이하고 했다. 왕윤이 끌고 다니던 북경의 백성들 중에서
도망쳐 나온 자들이 이곳에 정착을 하고 또 내륙물류의 중심으로 발전시키려는 천인단의 의도가
맞물려 대륙에서 가장 북적이고 있는 도시중의 하나가 우한이다.
우한은 내륙으로 천킬로미터나 들어가 있지만 강폭이 넓고 수심 또한 깊어서 대형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는 휼륭한 항구였다. 수시로 장강을 거슬러 올라온 선박들이 물건을 내리고 싣느라
부산했다. 조선에서 배가 들어올 때마다 포구에는 장사꾼들과 구경꾼들로 장사진을 이루웠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들이 들어오곤 하여서 선점하는 사람이 임자였다.
조선의 상인들은 대한제국 화폐를 금이나 은보다 더 선호하기 때문에 명에서는 대한제국 화폐가
본래의 가치보다 더 비싸게 취급되고 있었다. 화폐의 유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자
대한제국에서는 화폐발행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느라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금태환 화폐의 한계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서 재정경제부에서는 일찍부터 금태환을 포기하고
불태환 화폐로 전환하기를 건의하고 있었다.
“이번 회의의 안건은 이미 배포해드린 바와 같습니다. 이미 각 부처에 각 사항을 검토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드린 것으로 사료되기 때문에 바로 안건 심의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재경부에서 여러 차례 올린 화폐개혁안부터 시작 하겠습니다. “
매달초에 열리는 정기 국무회의가 김영철 국무총리주재로 열리고 있었다.
“대한제국 인구가 현재 약 2억정도 이고 실제로 경제에 참여하고 있는 인구가 5천만이 넘고 있으며
앞으로 일억까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화폐필요량이
앞으로 5년 안에 10조원을 상회할 전망이고 그에 따라 새로이 확보해야만 할 금만도 육만톤에
이를 전망입니다. 올해는 그럭저럭 화폐발행에 필요한 금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난관에 봉착할 것입니다. 아울러 금을 보관하는 데 만에도 매년 수천만원의 비용이
소요되고 있음을 상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상업은행을 만들어서 자금의 융통을 보조하면 어떻겠습니까 ? 장롱이나 땅속에 있는 화폐를
끌어내어 사용한다면 필요한 통화량이 형성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당장 붙태환 화폐로
전환한다면 많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어렵게 기반을 만들어 놓은 화폐경제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시기상조 입니다. “
상공부장관은 화폐개혁이 미칠 파장을 걱정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라의 경제가 빈약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물류를 맡고 있는 상인들의 몰락을 가져올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상업은행이 제 역할을 하기 전까지 몇 년이 소요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마냥 기다릴 수 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이미 몇몇 거상들은 자금의 융통과 보관을 위해서
자기들끼리 상호부금형식의 조합을 결성하여 상거래에서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잘 이용한다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격론이 있은 뒤 결정권을 의장에게 위임하자, 의장은 각부처의 각론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렸다.
“금광을 개발하는데 장비와 인력을 더 투입하도록 하고, 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지역에 은행을
만들어 운영해 보도록 합시다. 일단 천군부와 모든 관청의 경비를 모두 은행으로 집중시키고
은행을 통해서만 자금거래를 할 수 있도록 체제를 바꾸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금을 화폐로 징수하도록 하시고 더 이상의 현물 세금은 폐지하겠습니다.
물론 모든 세금도 은행에서 수납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각 가계에 숨어있는 화폐를
밖으로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세부사항은 각 부처에서 협의하도록 합시다.
아, 참 극동부에 여건이 허락하면 금광개발에 힘을 쓰라고 하세요”
이번 국무회의에서는 그밖에도 교육제도의 개편과 러시아기동군단에 대한 안건 및
신대륙 지원방안과 동남아아 호주에 대한 원정대 파견에 대한 안건이 협의되었으나.
교육제도의 개편만 시행안이 확정되고 나머지는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특히 러시아 기동군단의 편제에 대한건의 의견이 분분하여 의장으로서도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천군부에서는 군단의 희생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부대를 파견하길
희망하고 있었으나, 관련부서에서는 기술 노출과 보급로의 확장에 따른 어려움 등을 들어
난색을 표명하고 있었다.
현재에도 천인성에 대한 보급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각부처장들이
그보다 더 확장된 보급로를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너무도 많았다.
송상대방 박홍대는 정부고위 관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박홍대는 천군의 집권초기부터 발빠르게
움직여서 천군부와 천인단의 신임을 얻고 있었고 그 신임을 바탕으로 송상은 왜란의 피해를
극복하고 대한제국 제일의 상단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상단이 규모가 커지자 송상은 기존의 직제를 과감히 버리고 재경부의 조언을 바탕으로
최초의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게 되었다. 송상은 전국에 송상의 지부를 두고 육상과 해상을 통한
상권의 4할이상을 장악하고 있었고 하루에 움직이는 물동량만 해도 전국적으로
해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번에 재경부에서 상업은행을 개설할 생각입니다. 이미 송상과 한성의 경상이 손을 잡고
그와 비슷한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박홍대는 지금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물산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왜 상업에 뛰어들지 않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은 자신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가 일전에 제의한 시베리아에서의 벌목사업은 상당한 이문을 안겨 주었다.
황립조선소에서 필요로 하는 목재가 시베리아에서 벌목되어 두만강을 타고 내려와 바닷길을 따라
원산으로 수송되고 있었는데 그 일을 송상에서 황립 조선소와 독점계약을 맺고 전담하고 있었다.
사람만 사서 나무를 자르고 나르기만 하면 되었다.
겨우 인부들의 품삯과 운반비만 지불하면 되는 손 짚고 헤엄치는 장사였다.
다만 나무를 베고 난 자리에 어린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이 달려 있었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널린게 임자 없는 나무인데 굳이 힘들게 나무를 심으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수십년을 내다본다면 무용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천인들이 하는 일들은 대부분 백년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리께서는 저희들의 상계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상계라는 것을 좀더 확대시키는 것이 상업은행입니다. 사실 상계의 신용이
송상과 경상의 신용에 기초한 것이라 전국적으로 통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대방께서도 아시겠지만 이미 대한제국은행이 설립되어서 그 업무를 시작한지가 3년이 지났습니다만,
제국은행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와의 업무만 담당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는
없었지요. 제국은행의 업무를 상업은행으로 대폭 이관하고 제국에서 신용을 제공하여
모든 화폐의 흐름을 은행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끔 할 예정입니다.
그 효용이 상계과는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이번 일에 송상에서는 참여하실 의사가 있는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만.”
“얼마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하시는지요 ? 만약 송상이 참여하게 된다면 말입니다.”
“적어도 한 점포당 천만원은 필요하리라 봅니다. 미리 알아두실 일은 고리대금은 철저히 금지되고
설립 후 15년간은 정부의 철저한 관리하에 운영이 됩니다. 그 이후로는 운영권을 민간에 넘길
예정입니다. 물론 그때가 되면 감독원이라는 기구가 신설되어 각 은행들의 재정 및 운영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오랜 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지만 확실한 사업이기도 하지요.”
“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지요. 한곳에 천만원이라면 백미 만석이 아닙니까.
여러곳에 개설한다고 한다면 엄청난 자금이군요.”
“그렇게 하시지요. 이것은 정부에서 마련한 은행 설립에 관한 안내 문건입니다.
송방이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이 같은 제의는 전국의 상단과
재력가들에게 모두 배포되었습니다. 기일 안에 재경부에 참가서를 제출하시면 재경부에서 심사하여
그 결과를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송상이 이일에 끼어들 것을 확신했다. 송상이 참여하지 않으면 그로서도 낭패였지만
지금까지 알아온 박홍대는 모험가기질이 다분해서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버님 저녁진지가 다 되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이런 저런 세상사는 애기를 나누던 중 문밖에서 여인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어서 드리거라.”
방문이 열리고 예쁘장하게 차려 입은 여인이 밥상을 들고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밥상에는 밥 두공기와 국그릇에 김치와 간장이 전부였다.
“이런 귀하신 손님이 오셨으니 귀한 술을 대접해야지 않겠느냐 ?”
짐짓 박홍대가 밥상을 들고온 여인에게 꾸지람을 했지만 목소리에는 전혀 노기가 없었다.
“미령아 가서 과하주한병과 닭한마리 삶아서 다시 내오도록 하여라.”
“네 아버님.”
여인은 들고 왔던 밥상을 다시 들고 나갔다.
부녀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성철은 빙그래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짠돌이가 닭한마리에 과하주를 내놓다니 오래살고 볼 일이었다.
“아니 자린고비 어르신이 왠 일로 이런 무리를 하십니까.?”
“그래도 쓸때는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성철은 언제나 박홍대를 자린고비라고 놀리곤 했지만 박홍대는 그의 말을 거의 무시하곤 했다.
“그런데, 나리께서는 어찌 그런 해박한 지식으로 상계에 뛰어들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이 궁금하였습니다.”
“저희 천인단원들은 관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에는 사사로이 치부를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랬다가 발각되면 그나마 있는 재산을 모조리 몰수하게끔 되어 있지요. 관직을 물러나서도
직급에 따라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는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
“아 그렇군요.”
잠시 뜸을 드린 홍대방은 슬며시 이성철에게 자신의 여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 여식이 올해로 열여덟입니다. 일찍이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집안일을
거들고 있지요. 이제 혼기가 다가오니 적당한 혼처를 찾아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나리께서 보아두신 청년이 있으면 말씀좀 부탁드립니다.”
“홍대방님이 저를 중매쟁이로 쓰실 요량으로 닭한마리를 선뜬 내놓으셨군요.
하지만 이 일을 어떻합니까 ? 제 주위에는 다 꽁생원들만 있어서 미령아가씨의 배필로는 적합하지
않은듯 하오만. 그리고 중학교까지 나오신 인재를 집안 일에만 쓰시다니 이건 국가적인 낭비입니다.”
“여자란 그저 남편 잘 만나서 살면 되었지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러십니까 ?
그러지 마시고 좋은 젊은이 있으면 천거좀 해주십시오.”
이성철이 홍대방의 집을 드나든 이유 중에 하나가 홍미령이라는 아가씨의 미모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항상 너무 초라한 밥상을 받더라도 기꺼이 저녁을 먹고 가던 그였는데
그런 자기에게 중매를 서라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헛기침을 몇 번 한 이성철은 용기를 내어서 머리를 처박고는 운을 떼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잘 아는 親舊가 있는데 그 행실이 참하고 또한 천주학이나 주자학에도
뛰어나고 온갖 세상 이치를 바로 보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만 흠이 있다면 가진 재산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그저 집 한 칸이 전부 거든요.”
말을 하고 나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힐끗 홍대방을 바라보았다.
“재산이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다. 친정이 조선의 갑부인데. 그래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신가요?”
“관직에 나가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바로 연통을 넣지요. 언제 한번 자리를 만들어주시지요.”
“그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홍대방은 뜸을 들이고 이성철을 바라보다 마음이 급해졌다.
“참내 엄청 뜸 들이네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 다리가 하나 없습니까 ?”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아니 왜 이렇게 뜸을 드립니까 ?”
“그게 그러니까.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만, 저는 사위감으로 어떠하신지요.”
“….”
“하하하 ! 나리께서요? 그 말씀이 참말이십니까?”
이성철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제가 마다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런 경사가 있나. 내 나리께서 우리 미령이라게 연심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미령아씨의 생각이 어떤지 모르겠씁니다.”
호탕한 홍대방의 웃음소리에 이성철은 입이 귀에 걸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만은 모르긴 몰라도 미령이도 나리께서 청혼을 하셨다 하면
싫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려.”
“애야 ? 미령아 아직 술상 안되었는냐. 빨리 들이도록 하여라.”
문밖에 대고 소리를 치는 홍대방은 아까 이성철이 내민 상업은행에 대한 생각은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다.
강신승 8기병사단장은 8기병을 후임에게 물려주고 러시아기동군단 야전 사령부를 오브강의
한 지류인 이리시강 상류지점에 마련했다. 원주민들은 그곳을 옴스크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현지 지명을 우선적으로 사용한다는 제국의 방침에 따라 옴스크라 불렀다.
러시아 기동군단은 아직 완편되지 않은 군단이다.
이제 겨우 한 개의 보병사단만이 배속되어 있었고. 앞으로 기병사단 하나가 더 이전 배치될
예정이었. 기갑사단의 배치는 상부의 결론이 미뤄지고 있어서 그 시일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 이거 미치겠구만 명색이 군단사령부인데 보병사단 하나 달랑 던져주고 기다리라고만 하니.
이렇게 늦어서야 언제 병사들을 교육시킨단 말야. 부관 ? 온다는 8기병은 언제 오는 거야 ?”
제국에는 기병사단이 15개가 있었고 그중의 최강이라고 꼽을 만한 곳은 1기병과 2기병사다.
설립시기며, 보유장비나 장병들의 능력등 모든면에서 월등한 사단이나, 강신승중장은 자신이
직접 만들고 키워온 8기병에 더 애착이 갔다. 그래서 조준옥 천군부 장관으로부터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8기병을 생각하고 있었다.
“8기병의 빈 자리를 메울 병력의 이동이 늦어져서, 앞으로 열흘 후에나 만주를 출발할 것이라는
보고입니다. 아무리 빨라도 한달 후에나 이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전사령부에서 동쪽으로 몇십키로 떨어진 곳에는 꽤 큰 호수가 있다.
강중장은 직속 본부 중대원들을 대동하고 그곳에 자주 낚시를 하러 갔다.
보병사단을 맡고 있는 이우열 소장은 강중장의 5년 후배였는데 이우열소장이 현재는
군단의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단에서 특별히 개입해야만 할 일이 없었다.
한여름의 태양이 반사되는 호수가 반짝거리고 주위에는 한가로이 바람들이 나 돌아다니는
한적하고도 신비로운 자연경관에 파묻혀 세월을 낚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수만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인간의 손길이 거의 묻지 않은 이곳 호수에는 그 크기에 비해서
많은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루종일 찌만 쳐다보고 있는데 이놈의 물고기는 어디로 간거야.?”
강중장 옆에서 낚시대를 늘여놓은 작전참모장이 투덜거렸다. 아직까지 중대 사병하나가
이상하게 생긴 꼭 서해안에서 서식하는 삼식이처럼 생긴 물고기를 잡아올린 것을 제외하고는
몇십명이 한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미끼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이놈들이 떡밥을 먹어보기나 했겠습니까?
차라리 이 삼식이 같은 놈을 잘라서 미끼로 쓰는게 어떨까요.?”
그래도 그 중에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병사에 끼어 들었다. 별들의 낚시터에 끼여들어 장성들을
무색하게 하는 쫄병을 물끄러미 바라 보던 강신승 중장의 귀에 무전기가 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직 여기는 울타리다. 안주인 나와라 오버”
한동안 잡담을 나누고 있던 본부 중대원들의 시선이 무전기로 쏠렸다. 지금까지 한번도 통신을
시도하지 않던 울타리에서 무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강중장을 경호하기위해서 경호대 1개 중대가 주변 1킬로미터이내로 흩어져
경계근무에 임하고 있었는데 지난 이틀동안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여기는 안주인이다. 무슨일인가?”
“지금 이쪽으로 민간인으로 보이는 무리가 접근하고 있다.”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 무장은 했는가 ?”
“무장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자둘 남자다섯에 마차가 두대다.”
“어떤 종족으로 보이는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곳을 지나칠 것 같은가?”
“현재 진행방향으로 본다면 안주인 주위를 지날 것으로 보인다.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
뜻밖의 상황에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지만 강중장은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무선상황을 옆에서 듣고 있는 강중장은 무전을 하고 있는 장교에게 짧게 지시를 내렸다.
“울타리들은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하고 10분마다 움직임을 보고하라.”
안드레이 고드노프의 가족은 동란의 시기를 피해 남부 러이아로 왔다가 다시 시베리아로 흘러들어왔다.
그는 한때 모스크바에서 꽤 세력을 얻은 인물이어서 대공의 위치에까지 오를 뻔 하였으나
모스크바에 들어온 폴란드군에게 쫒겨 간신히 모스크바를 탈출하였다.
그는 남부러시아 지방관인 이반과 안면이 있어서 그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이번에 물물교환과 인부들을 고용하기위해 이반을 찾아 가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작년 겨울에 모아놓은 모피들을 마차 가득 싣고 자신의 집이 있는 콜파세보를 떠났다.
오랜만에 집을 떠나는 것이라 큰딸 내외와 작은딸 그리고 하인들을 대동했다.
나타샤는 안젤로 호수를 얼마 남기지 않고 누군가 꼭 자신들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아버지 주변이 이상한데요. 누군가 저희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요.”
주변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한 둘째딸의 말에 안드레이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평범해 보였다. 멀리 숲이 보였고 초지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있었다.
특별한 것이라곤 보이지 않았지만. 최근에 이곳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대한제국의 병사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우랄산맥 동쪽의 땅은 그동안 버려진 곳이었다.
여러 소수 민족들이 널리 퍼져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을을 특별히 찾아가지 않는 이상
일년에 한번도 만나 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만큼 크고 넓은 땅이다.
대한제국군이 여러 곳에 성을 쌓고 군대를 주둔기키고 있었지만 그 영향력이 아직까지는 미미해서
자신들처럼 꼭꼭 숨어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 난 모르겠는데 ! 당신은 어때요 ?”
뒤에서 말을 타고 따라 오던 올가가 자신의 남편에게 다정한 눈빛으로 물어보고 있었다.
길게 드리워진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귓볼이 살짝살짝 보여서 상당히 아름다워 보였다.
“글세. 아무튼 처제의 말을 믿어서 나쁠 것은 없겠지요. 속도를 높이는 게 좋겠어요. 오늘밤 안으로
이리시강을 넘어야 안심이겠죠. 국경근처에는 대한 제국군의 수비대들이 돌아 다닐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포근한 눈길을 느낀 그는 올가를 바라보았다.
“앞에 있는 아가씨들이 아주 미인인데요. 아마도 슬라브족인 것 같습니다.
차림새로 봐서는 모스크바 귀족같군요.”
멀리서 지나가는 일행들을 감시하고 있던 조병기중사가 팀장에게 망원경을 눈에 붙인 채
말을 하고 있었다.
“일단 잡아서 신문을 해 봐야 되겠는데. 러시아 귀족이 호위병사도 없이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좀 이상하군. 일단 본부에 손님 맞을 준비를 하라고 전하게. 통역관도 준비하고.
잘 만하면 월척일지도 모르지.”
안드레이 고드노프는 자신들의 행렬을 가로막는 일단의 기병들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은 러시아의 기병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마갑이나 갑옷이 없었고 창도 들고
있지 않았다. 말에 안장을 얹고 칼을 하나 달랑 달고 다녔지만 손에는 긴 쇠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창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았고 끝이 뾰족하지고 않아서 무기라고 보기에도 이상했다.
마차가 멈추자 뒤쪽에서도 몇기의 기병이 나타났고 마차가 포위되어버렸다. 슬며시 숨겨놓은 칼을
찾고있던 고드노프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손을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돌발상황에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지만 나타샤만은 그동안 자기의 마음을 괴롭혔던 정체가 적의가 없음을 알고 안도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러시아인입니까 ?”
안드레이는 저쪽에서 러시아말을 구사하자 더욱 놀랐다. 이쪽에서 아무 대답이 없자.
저쪽에서는 똑 같은 말을 불어로 애기하고 있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타샤가 용기를 내어 러시아어로 애기를 시작했다.
“저희들은 모스크바인입니다. 그러시는 분들은 누구신가요 ?”
“저희는 대한제국의 군인들입니다. 지금 지역 순찰을 돌고 있는 중입니다만 어디를 가시는 길이시며 어디에서 오시는 길이신지요 ?”
“콜파세보에서 카자흐지방으로 여행을 가는 중입니다.”
생소한 지명에 머리를 가웃뚱하던 대한제국 장교가 무척 재미있어 보였는지 나타샤가 깔깔대며 웃었다.
“처음듣는 곳이군요 하지만 그곳이 대한제국의 영토안이라고 생각되는데. 일단 저희 사령관님께서
당신들을 만나보고 싶어하시니 잠시 저희들과 동행해주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마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오늘 밤은 저희들과 보내시고
내일 이리시강을 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밤을 지새기에는 위혐할 테니까요.”
은근한 협박에 안드레이는 어쩔수 없이 저들을 따라가야만 할 것 같았다. 언뜻 보기에도 주위에는
오십명이 넘는 이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도망을 갈 수도 없었고. 저 장교의 말대로 초원에서
밤을 보내는 것도 위험했다. 이곳 주변은 카자흐인들이 무리를 지어 떠돌아 다닐 가능성도 많았다.
그들은 모스크바인을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모스크바인들이 그들을 탄압하고 있었고
아직도 지방에서는 그들의 반란으로 인해 전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1610 가을
안드레이 고드노프 일행은 콜로세보로 돌아가는 길에 옴스크에 들렀다. 나타샤가 하도 졸라대서
옴스크에 들렀지만 강신승 사령관을 비롯한 대한제국의 장교들과 안면을 터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특별히 주문한 제법 괜찮은 보드카를 10병이나 사가지고
옴스크로 들어갔다. 그들이 옴스크에 들어가자 처음 받은 느낌은 도시가 상당히 깨끗하고 활기차
보였다는 것이다. 곳곳에는 기병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주민들은 그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모스크바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러시아의 농노들을 비롯한 평민들은 기병이 지나가면
모두들 숨기 바쁘고 거리는 온갖 오물들로 지저분하기만 했다.
안젤로 호수가에서 만났던 장교를 우연찮게 길거리에서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나타샤 오랜말이야”
그가 먼저 일행을 발견하고 아는 체를 하였다.
“장교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셨나요.?”
나타샤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하며 장교에게 인사를 하였다. 나타샤가 옴스크에 들러 보자고
졸라댄 것은 앞으로 콜로세보에서 계속 살게 된다면 대한제국군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지금 앞에 있는 장교를 만나고 싶은 이유도 한 몫 했다.
“그저 그렇지요. 콜로세보에 가시는 길이신가요?”
“네. 필요한 것도 있고 사령관님을 뵙고 인사나 드리고 갈려구요.”
“그렇군요. 이를 어쩌죠. 사령관님은 지금 바쁘셔서 외부인을 만날 수가 없는데요.
천인성에서 회의가 있어서 그곳에 계시거든요.”
“아 그렇군요.”
더 이상 젊은 장교를 붙잡을 이유를 상실하자 나타샤는 금세 시무륵해져 버렸다.
그녀의 풀죽은 모습을 바라보던 젊은 장교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뭐 그렇다고 그렇게 낙심하실 것 까지야. 이럴게 아니라, 저희 집에 가셔서 애기나 나누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괜찮을까요 ?”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타샤는 반문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얼굴 표정관리를 실패해서 인지
장교는 안 된다고 할 수 가 없었다. 물론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젊은 장교의 집은 이층집이다. 흙벽돌로 지어진 집은 일층에 응접실과 식당, 부엌이 있고
이층에는 침실이 있다. 집에는 집안일을 거들어주는 아주머니가 한분 계셨고 다른 식구는 없어 보였다.
“누추해서 뭐 대접할 것도 없고.”
아주머니는 갑자기 들이닥친 러시아인들을 맞이하여 서둘러 둥글레차를 끓여 내왔다.
나타샤는 땔감도 없이 불이 일어나고 물을 끓이는 이상한 물건을 사용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신기해 했다.
예쁜 꽃무늬가 있는 도자기 차잔을 받아 든 고드노프 일행은 차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
했지만, 나타샤는 줄곧 젊은 장교를 바라보며 그와의 미래를 설계하느라 딴 이야기는 머리 속으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당시 러시아는 완전히 절망적인 곤경에 빠져있었다. 치열한 왕위 다툼에 폴란드와 스웨덴이 개입하고
지방곳곳에서 드미뜨리를 사칭하는 자들이 나와서 여러 공국들로 이뤄진 러시아는 분열 일보 직전에
있었다. 1610년 가을에 폴란드의 왕 지기스문트 3세가 보낸 폴란드 군은 러시아 서부지역과 모스크바를
장악하고 블라지슬라브라는 인물을 러시아의 짜르로 추대하려 하고 있었다.
이에 반대하던 스웨덴이 자신이 지지하는 필립공을 짜르로 옹립하기위해 폴란드를 지지하는
러시아 공국에 전쟁을 선포해 러시아 북부로 지격해 들어와 노브고로드를 위협했다.
대한제국이 내세운 가짜 드미뜨리 역시 남부에서 다시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어서 코사크지방과
아스트라 한 지방의 여러 지역에서 많은 지지자들을 규합하고 있었다.
제국 전체가 왕위다툼으로 휘말려 있을 때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진 많은 농노들과 부랑아인
그리고 까자크인들이 무리를 지어 소규모 마을이나 지방을 휩쓸고 다니면서 더욱 러시아 제국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불안한 정세로 인해 많은 까자흐인들과 러시아 인들이 아스트라한공국을 거쳐 시베리아나 몽고,
중국 신강등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일부는 터키제국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고 도읍으로 정했던 난징은 외지 사람들로 북적댔다. 그들은 대륙 곳곳에서
모여들고 있었으며 신대륙에 대한 푸른 꿈을 간직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에서는 신대륙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자들을 대거 모집하고 있었다.
초기 정착금과 원하는 만큼의 땅을 제공한다는 조건을 내 걸고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병역이 면제되고 세금도 정착후 5년동안은 면제되었다. 전국을 떠돌던 부랑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제국에서는 그들에게 1개월간의 교육을 시킨 후 상해와 극동을 연결하는 정기선을
이용하여 매달 천여명씩 극동으로 이주시켰다.
초기에는 불과 수십명이던 것이, 신분을 불문하고 희망자를 받아드리면서 멀리 청해에서도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죄를 짓고 도망다니는 자들도 많았다. 난징의 이민국은 제국에 하나밖에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던 것이다. 이유야 어쨓든 이민국은 앞으로 3년간 운영될 예정이고 그안에
극동이 안정화 되길 희망했다.
이주를 책임지고 있는 이민담당관은 난징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이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느라 정신 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일본에서 인력이 지원되고나서 부터는 한결 일이
쉬워졌지만 여전히 일거리는 많았다.
교육소의 생활은 극히 단순했다. 6시 기상해서 7시에 아침을 먹고 8시부터 12시까지 교육
그리고 한시부터 5시까지 교육 그후로는 자유시간이었지만, 난징에서는 길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면 뻐도 못추릴 정도로 치안이 살벌했기 때문에 해가 떨어지면 난징 시민들은
대부분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를 않았다.
그렇게 한달을 교육소에서 보내면 그들은 매달 초에 상해에 오는 배를 타고 극동으로
20일을 항해하곤 하였다. 물론 그 안에서도 매일 교육은 시행되었는데. 그들이 받는 교육은
한글과 수학이 전부였다.
1611 봄
한성은 올해 초에 이름을 서울로 바꾸였다. 서울의 모습은 10년 전과 비교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사대문안에 있는 집들을 철거하고 도시계획에 따라 정부조직이 사용하는 건물을 시작으로
콘크리트 건물이 세워지고 6차선대로들이 생기면서 현대적인 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다.
도로에는 이륜차들이 돌아다녔고 때때로 사륜차들도 보였는데 우마차의 통행을 금지시킨 후로는
서울의 거리가 한결 깨끗해졌다.
종로에 세워진 천군부 건물에는 정복을 차려입은 천군부직속 헌병대원이 부드러운 눈길로 정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있었고 주위 화단에는 기관총 진지가 양옆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천군부 건물 3층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조장관은 눈길을 종로 길거리에 고정한 채
지금 열심히 떠들고 있는 정보부장에게 말을 내 던졌다.
“그래서 ?”
“지금 러시아 사정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랴잔에서 라뿌노프가 국민군을 이끌고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모스크바에 다가갈수록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모스크바를 차지하고 있는 폴란드군은 기껏해야 2천명정도인데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괜찮아 그들은 패한다. 아직 때가 아니야, “
“하지만 폴란드가 무너지면 러시아는 다시 힘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지금 같은 혼란기에 러시아를
접수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만.”
“그렇지만도 않치 저들은 아직 까지는 버틸 힘이 있다. 더군다나 복명을 꾀하는 무리들이 아직도
산재해 있는데 후방이 안정되지 않으면 위험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자네는 사라진 대명 황실과
고관들을 추적하여 섬멸하는데 좀 더 신경을 쓰도록 해야겠어. 대 러시아건은 몽고부와 천인성에게
맡겨두고 말야.”
대륙을 안정화 시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구 황족을 찾아내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던가 아님
완벽한 통제하에 두는 것이 필요했다.
“다른 일은 어떻게 되가고 있나. 부장?”
“뭐 특별히 보고할 만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계속 수고하도록 하시게. 아 그리고 이번에 천인성에 한번 갔다 와야겠어.
강신승이가 뭐 러시아 귀족의 신변을 확보했다는데 뭐 대단한 귀족이라더군.”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창밖을 바라보던 조장관은 정보부장이 방을 나가자 중얼거렸다.
‘올 가을엔 카자스탄으로 진격해갈 수 있도록 강신승에게 준비하라고 해야겠군 내년 가을엔
모스크바까지 진출한다. 대명부 각성 군단장에게 명령을 내려 각각 일만명으로 구성된 구식보병부대를
신설하라고 해야겠군. 올 겨울안으로 몽골부에 집결시켜야 할텐데.’
사천성 성도에서 남서쪽으로 150km 떨어진 사천분지에 우뚝 솟아있는 아미산은 산세가 마치 가늘고
곱게 굽어져 모습이 여인의 눈썹 같다고 하여 아미산이라 불리운다.
아미산 중 최고봉은 만불봉으로 높이는 해발 3,099m나 되는 고봉이다. 산 전체 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여 예로부터 아미산은 천하절경이라고 칭송되고 있다.
산 전체에는 수백개의 사찰이 있었다. 만년사는 해발 1,000m 지점에 있으며 아미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북송시대인 서기 982년에 완성된 흰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의 크기는 7.4m이고, 무게는 62톤의 육중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
전당의 아래에는 작은 감실이 24개가 있고 각 감실에는 쇠로 만들어진 불상이 각각 1개씩 모셔져 있다.
위쪽에는 6층의 원형대에 동으로 만들어진 307개의 불상이 있다.
“엄청 쌀쌀하구만. 여름초입인데도 이러니 겨울엔 못살겠는데.”
만년사로 향하는 길옆에 매복한 제5특수여단 3대대 2중대병력은 일단의 복명을 꾀하는 무리들이
이곳 만년사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는 첩보를 접수하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8기병이 전담하던 명의 잔당 소탕은 8기병이 만주로 귀환하자 천군부에서는 그 임무를 5개의
특수여단에게 부여했다. 그들은 전 대륙에 흩어져 잔당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아직도 대한제국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점을 이용하여 명에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 세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사천성과 산서 협서성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 하고 있었다. 김성한대위는 너무 급히
달려오는 바람에 제대로 된 야간 방한복을 준비하지 못해서 이렇게 밤에 떨어야만 했다.
그것은 모든 대원들 모두 마찬가지지만.
“통통”
“통통”
각 소대별로 지급된 무전기에서는 정해진 시각에 신호를 보내왔다. 2번 두드리는 것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고 세번은 적 출현 그 후 울리는 소리는 적 인원수를 말했다.
“오늘밤에도 안오나 이놈들. 이거 정보가 잘못된 거 아냐. ?”
김대위는 신경질이 났다. 여단 정보부에서 알려오기로는 오늘 분명이 이곳을 적어도 수십명이
지나가야만 했다. 그런데 밤이 다 되도록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운 2 중대원들은 하루를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아침이 되자 각 팀별로 무리를
지어 주변 정찰을 나갔다.
“통통통”
해가 중천에 뜰무렵 만년사 좌측 3 킬로미터지점을 정찰하고 있던 2소대 3팀에서 신호가 왔다.
그것을 신호로 무전기 곳곳에서 적 발견신호가 들어오자 중대장은 급히 각 무전을 통제해 나갔다.
“1소대부터 차례로 보고하라.”
“약 20명 무장 칼/ 약 10명 / 약 30명 무장 활,창,칼…….”
전체적으로 총 300명의 인원이 만년사로 향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무장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중대병력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지만 모두 사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만년사의 규모가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변 산세에 익숙하지 않은 대원들로서는
도망가는 저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여기는 만년사다 성도나와라”
“여기는 만년사다 성도 나와라”
산 속 깊숙히 들어온 2중대는 대대본부와 통신에 애를 먹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봉황이 원래는 지원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중대급을 지원할 만큼 한가 하지가 않았다.
“여기는 성도 만년사 말하라.”
“먹이로 보이는 수백명이 만년사로 향하고 있다. 지원바란다.”
어렵사리 대대본부와 통화한 중대장은 지원을 요청했다.
“알았다. 지원 보내겠다. 지원이 도착하기전 까지는 단독행위를 자제하라.
일단 만년사를 포위만 하고 적의 동태를 계속 보고하기 바란다. 이상”
“알았다. 이상”
무전을 마친 중대장은 각 소대와의 무선을 개방하고 각 소대장에게 몇가지 지시를 한 후
다시 매복에 들어갔다. 지나가고 있는 잔당들에게 자신들의 매복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지원요청이 있은지 6시간만에 주변을 지나고 있던 3 중대가 도착했고
어느새 하늘에는 봉황 한 마리가 높이 떠다니며 만년사 주위를 돌고 있었다.
“만년사 주위를 포위하고 소탕 작전에 들어간다. 주요 지휘관을 생포하도록 하고 반항하는 자는
사살하라. 3중대는 포위를 맡고 도망치는 자들을 사살하고 2중대는 사찰안으로 진입해 들어간다.”
대대장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1소대는 일주문을 지나 정문으로 들어가고 2/3/4소대는 다른 방향으로 진입한다. 작전개시.”
김성한대위는 1소대를 이끌고 일주문으로 접근해갔다. 모든 대원들이 왠만한 화살을 막을 수 있는
압축종이로 만든 조끼를 걸치고 양손에는 자동소총을 들고 있었다. 얼굴은 시꺼머케 위장을 하고
허리에는 대검과 수류탄을 찼다.
“이종범 저기 두놈을 조용히 처리해.”
중대장은 일주문을 지키는 두명의 중들을 발견하고 이종범중사에게 처리를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이종범은 날랜 범처럼 자리를 빙돌아 일주문으로 다가갔다.
양손에 대검을 하나씩 들어올린 이중사는 먼저 오른손에 있는 대검을 날려 한 놈의 목을 꽤 뚫고
번개처럼 달려가 쓰러지는 동료를 바라보던 승복을 입을 자를 덮쳐 갔다. 어느새 왼손에 있던
대검이 오른손으로 옮겨져 있었고, 달려드는 기세로 나머지 한명의 목을 그어 버렸다. 머리위로
손을 들어 신호를 하자 중대장과 1소대원들이 빠르게 다가와 시체를 치우고 만년사 안으로 들어갔다.
“윽.”
앞으로 나가던 한기종하사가 가슴에 화살을 맞고 신음소리를 냈다. 문지기들이 어떤 식으로든
사찰내에 경보를 울렸는지 사찰로 향하는 모든 문이 걸어 잠겨져 있었고
담에서 화살이 날라왔다.
“엄살부리지 말고 빨랑 뛰어”
뒤에서 다가오던 중대장이 한하사에게 한마디 한후 외쳤다.
“모두 산개하여 적 화살로부터 엄폐하라.”
중대장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전 대원들이 흩어져 바위틈에 엎드리거나 나무 뒤에 숨었다
“수류탄 준비. 안전핀 뽑아, 하나 둘 셋 투척”
세열수류탄 수십개가 담벽을 넘어가고 이삼초가 지나자 폭음소리에 비명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다른 소대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는지 아미산은 때아닌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틈을 타 대원하나가 수류탄 하나를 문 틈에 끼워놓고 냅다 제자리로 달려왔다.
“꽝”
“진입.”
중대장의 명령에 20여명의 소대원들이 엄폐물을 찾아 다니며 만년사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만년사안으로 진입에 성공한 80여명의 2중대원들은 칼과 활로 대응하는 적들에게 총알을
무더기로 쏟아 부으며 진압해 나갔다.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았다. 진입 30분만에 모든 적들이
사살되거나 포로로 잡혀 만년사중들과 함께 대웅전 앞마당에 엎드리게 되었다.
“각 2소대는 이들을 감시하고 3/4소대는 각 건물을 수색한다. 3중대에서는 아무소식 없나.”
“도망치는 적 10여명을 사살하고 대여섯명은 노친 것 같답니다.”
“그런 바보들 같으니라고.”
“포로들을 분류하고 이곳에서 야영을 준비하도록. 3중대는 철수 해도 좋다고 그래.”
어느 정도 주변 정리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마친 중대장은 이 절의 주지와 지휘관을 심문하고 싶어했다.
“그게 대부분이 반항하여 사살되었습니다. 포로들을 심문한 결과 모두 유생들 같습니다.”
아마도 도주한 몇 명중에 이들의 우두머리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들을 추적할 수는 없었다.
하늘에서 감시를 계속하겠지만 어둠이 짙게 깔리면 그것도 불가능했다.
지겨운 이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쉽사리 끝날 것 같지 만은 않았다.
김성한 중대장은 대대에 짧게 진압보고를 하고 부상병들을 후송한 후 다음날 아침
또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허겁지겁 만년사를 도망쳐온 주왕룡은 자신의 부하 서너명과 함께 금도협곡을 지나가고 있었다.
만년사를 빠져 나오때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들을 교란시키지 않았다면
자신은 저들에게 붙잡힐 뻔 했다. 주왕룡은 주변의 아름다운 폭포와 우람하고 뾰족하게 솟아있는
높은 석벽을 타고 오르고 있는 넝쿨들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명이 붕괴될 때 마침 주왕룡은 황제의 특명을 받고 화남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동의 기운을
감시하기위해 내려왔다가 전란에 휘말려 사천성까지 쫒겨 다니고 있었다.
왕윤이 사천성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협서성에서 그 뒤를 따라왔으나 끝내 만나지 못하고
왕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비록 자시의 삼촌인 황제를 보필하는데 있어서 민심을 잃었지만,
그의 정책들은 어찌보면 다 명을 위해서 였는지도 몰랐다.
어렵게 이루워진 만년사의 거사가 실패하자 이제 주왕룡은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전국에서는 대한제국의 소탕전이 한창이었고, 많은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주왕룡은 아무리 해도 대한제국의 무기를 당할 수 없었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
강신승 중장은 새로 배치된 자주포여단을 순시하고 있었다. 천군부에서는 천마1로 무장한 기갑사단
대신에 천포1로 무장한 포병여단을 배속시키고 한 개의 기병사단을 더 배치시키는 것으로 군댠을
조직했고 그들은 천군부 직속 군단으로 배속되었다. 8기병과 18기병, 8보병 사단, 4포병여단,
8특수여단, 봉황 1대대로 구성된 러시아군단은 정식명칭으로 천군특수군단 이였으나
군부내에서는 88군단으로 불렸다. 8이 많다는 이유에서 였다.
4포병여단의 주무기인 천포는 괘도차량과 트럭을 합쳐놓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발포를 위해서는
발사반동을 이기기위해 사방에 지지대를 땅속으로 박아야하는 불편이 따랐지만 기존의 견인포에
비해 발사 준비과정이 짧고 시속 40킬로로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포는 100미리 포가 장착되고 주로 대인 대마살상용인 모자탄을 발사한다. 때에 따라서는 공성탄을
발사할 수도 있었다. 모자탄에는 자탄이 열개정도 들어있어서 지상 10미터 상공에서 흩어지게
되어 있었다.
공성탄은 충격 지연신관을 이용한 고집적 작약탄이였다. 해군에서 사용하는 대함포탄은
철판 50미리를 관통할수 있었고 천포에서 쓰이는 공성탄은 30미리의 철판을 관통할 수 있었다.
천포의 사거리는 최대 5키로 최소 500미터였으며 500미터 이내의 적에 대해서는 포격이 불가능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위해 천포에는 기관총이 한정 달려있고, 운전병, 차장, 포수, 장전수 이렇게
네명이 천포의 정원이다. 차장은 발포나 이동시 기관총을 맡게끔 되어 있었는데 일개 천포여단은
1500명으로 포가 150문이 배치되었다.
천군부는 기존의 기병사단과 보병사단에 배치된 포를 모아 포병여단을 만들어 각 군단에 배속시켰다.
기존의 기병사단과 보병사단에 배치된 대부분의 견인포들로
무장한 포병들의 이동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오히려 부대의 진격을 막는 일이 많았다.
그 대안으로 구성된 것이 포병여단이었고 단위체계로 통합된 부대에 수송수단을 집중시켜
그것을 상쇄시키고자 하였다.
강신승중장을 태운 자동차가 150문을 끼고 도열해 있는 4포병여단 앞을 지나가자
포병여단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부대 군단장님께 향하여 경례
-. 추웅성
가겹게 오른손을 관자놀이에 대었다 내린 강중장은 자신의 포대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저들이 있으면 자신의 부대를 가로막는 적은 콩가루로 변해버릴 것이다.
기병대는 어쩌면 할 일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이번 임무는 너무 쉬운 것이 아닌가 싶었다.
4포병 사열을 마지막으로 강중장은 예하 부대를 모두 돌아 보았다. 기병사단이 포병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어찌보면 거추장스러운 것을 때어버려서 더 좋은 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기병사단이 보유한 포병을 제대로 써 본적이 없었는데도 항상 이동 중에 신경이
제일 많이 가는 부대가 포병이고 따라다니는 지원부대도 가장 많은 것이 포병이었다.
“이 정도면 대충 준비는 끝난 거 같은데. 천군부에서는 언제쯤 시작할 생각인지 모르겠군.”
여단장 및 여단 참모진들과 식사를 하고 있던 강중장은 포도주 한잔을 들이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막 잡아올린 물고기를 훈제한 안주가 제법 많이 있었다.
“늦어도 내년 봄안에 무슨 결론이 나지 않겠습니까 ? 러시아는 혼란의 극치를 달리고 있고,
다행히 몽고부에서 심혈을 기울인 드미뜨리가 제 역할을 아직도 남부 러시아에서 수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천군부에서도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식사를 마친 강중장은 차를 마시며 여러 참모들과 전술지도를 바라보며 대 러시아 점령전에 대한
전략 전술을 논의을 하고 있을 때 4포병여단 통신장교가 암호문을 들고 들어왔다.
“뭔가?”
“천군부에서 군단장님 앞으로 암호문이 들어왔습니다.”
“이리 줘봐”
통신장교로부터 받아 든 전문을 읽은 강중장은 표정의 변화가 없어 보였다.
“음, 드디어 기다리던 명령이 떨어졌다. 올 가을을 깃점으로 군단의 병력을 이동시킨다.
그동안 만만의 준비에 최선을 다하도록 어쩌면 겨울을 벌판에서 보내야 하는지도 모르니까.
작전참모는 예하부대에게 8월 15일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작전명 봉황의 진출 대기선에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라고 하게. 보급품과 보급로확보에 특히 신경쓰고 천인성의 협조를 받도록.
이만 난 사령부로 가봐야 겠군.”
“아참 7월 30일에 군단 지휘부회의에는 연대 참모들까지 다 모이라고 해. 그럼 여단장 수고하게.”
강중장은 자신의 앞에 놓인 포도주잔을 들어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여단장실을 떠났다. 4포병여단 참모진의 배웅을 뒤로한 체, 여단 정문을 나섰다.
그를 태운 자동차가 앞 뒤에 특수여단 병력을 태운 호위 차량 중간에 끼인 체 빠르게
옴스크 사령부로 달려갔다.
88군단이 옴스크에서 출정을 위한 준비로 바쁘고 있을 무렵 서울의 천인단 건물 꼭대기층 회의실에서는
확대 천인단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각원/부 책임자들과 그에 상응하는 지방관들이었는데
이번 회의는 전례가 없는 확대회의로 김영철 단장의 단독 요청에 의해 열리고 있었다.
주요안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참석자들 중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대한제국을
이끌고 있는 세력은 천군부와 천인단으로서 천군부는 군대를 천인단은 천군부 지원 및 모든 국가기관을
관리하고 있었다. 제국 조직상 최상층부에 천황이 있고 그 아래에 국무총리와 국무회의 있다.
천인단과 천군부는 각각 국무회의의 한 일부분으로 참여하고 있었지만, 천인단원이 국무위원을
겸임하고 국무총리가 천인단 단장을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무회의보다 천인단이 더 상위 기관으로
생각되어 지고 있었고 천군부는 그가 가진 힘에 비례하여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천인단이 해체되고 천군부가 국무회의 속으로 편입될 예정이었기에
현재와 같은 조직체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천인단원들은 이를 굳게 믿고 있었다.
다만 천군부를 어떻게 하부조직으로 편입시키느냐는 상당히 기술적이고 정치적인 역량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급하게 다룰만한 일이 아니어서 현재처럼 쌍두마차 체제로 끌고 가야만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두 마리의 말들이 서로 싸우는 일이 없었다.
오랬만에 만난 단원들은 지난 일을 애기하느라 회의장은 시클벅적했다. 그런 소란 속에서
회의실 문이 열리자 모두들 들어오는 김영철 단장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가겹게 목례로 서로의 인사를 대신한 단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마자 말문을 열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을 초청한 이유는 향후 천인단의 거취에 대한
논의와 다음 천인단장에 대한 선출방법 그리고 그 시기등을 논의 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타부타 서론을 빼버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단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조용히 하십시오. 우리가 이곳에 온지도 벌써 17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을 해 왔고 아직도 해야할 일들이 너무도 많아서 걱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 이룰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자손들이 그 일을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계신 분들이 이제 그만 관직에서 물러나 그 자리를 후임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천인단장과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고자 하였으나, 그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건강이 악화되어 노쇄한 몸으로는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국에는 젊은 피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나이가 60을 넘었거나
50대 후반입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나이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후임을 정하지 않고 갑작스레 우리가 사라진다면 제국은 혼란으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장님이 말씀이 옳습니다. 이미, 주경환 선배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후배들을 위해
일찍 자리를 양보하고 남은 여생을 제국을 위해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가 매진하고 있습니다.”
일본부지사가 단장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여기 저기서 그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 역시 격무에 몸이 따라가지 않아서 요즘은 대부분의 업무를 밑으로 권한을 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조치는 오히려 저들의 오판을 불러 이르키고 반란을 조장하거나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방지하기위한 대첵을 오늘 마련해야만 합니다.”
“이 일은 천군부와는 어느 정도 협의가 된 일입니까.?”
“큰 줄기는 이미 4년 전에 협의가 있었습니다, 천군부에서도 우리와 같은 조직개편이 몇 년 안에
이루어 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성상 천인단이 먼저 시행하고 완전히 정착되었다 싶으면 천군부도
같은 절차를 밟을 것 입니다. 모두들 생각할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오후에 다시 회의를 열겠습니다.
단 여러분의 회의실 밖으로의 출입은 통제됩니다. 이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끝으로 천인단장이 회의장을 떠나자 모두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번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오래전부터 자신의 거취에 대해 생각을 정리 해 놓은 사람도 있는 듯
담담해 하는 사람도 있는 가 하면 그렇지 못 한 사람도 있었다.
확대 지휘관 회의를 마친 강신승중장은 전 군단장에 배포된 천인단의 개혁안을 읽고 있었다.
천군부 특수기동군단의 봉황의 진출작전이 임박한 시점에 터져 나온 천인단 개혁안의 주요 골자를
살펴보던 강신승중장은 과거 서울에서 조장관과의 오찬이 떠올랐다.
-. 조선부 각 시,군의 지방 자치제
-. 민간인 언론기관 신설 허가제
-. 각부,원장의 임기 5년 연임제 및 정년제 확정
-. 헌법제정위원회 설립
그외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이 위의 네가지였다. 그밖에 정부조직이
확대 개편되었는데 경찰청,국도관리원,철도원,수로원등이 상황에 맞게 새로 신설되었다.
천인단에서 불고 있는 바람은 머지않아 천군부에서도 불어올 것이고 구세대는 시대의 흐름에 의해
밀려나고 새롭게 교육받은 인물들로 채워질 것이다.
이미 천군부내에는 많은 사병들이 제대를 하여 자신의 일을 찾았고 현재는 기존의 천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미비하기 때문에 이미 천군부의 개혁은 숫자면에서는 이루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0.1퍼센트도 안 되는 극소수의 천인들이 주요 요직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면에서는 전혀 그렇치 않았다.
그에 대한 조치가 얼마나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루워지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
이미 대세는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건 이거고, 우린 우리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되겠지. 오랜만에 몸 좀 풀게 생겼군.”
“각 군은 명령대기선에 모두들 대기하고 있나.?”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이미 봉황편대가 앞쪽으로 나가 정찰을 시작했고
각군이 사령관님의 진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작된 사륜구동 장갑차는 다른 천포에 비해 장축이 긴 것을 빼고는 다른 것이 없었다.
그 옆으로 1개 대대의 기병과 1개 중대의 천포들이 사령관을 호위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었다.
옴스크를 출발하여 천인성 부근에 집결한 88군단의 병력들이 사령관의 진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전쟁은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점 확보를 위한 전투에 국한 될 것이 뻔했다.
이 시대에서 전면전이란 단어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것에 맞춰 88군단의 전략은 최대한 빨리
적의 거점을 확보하고 후방안전은 뒤따르는 보병과 신설된 제 4군 병력에 맡길 예정이었다.
기동군단이라는 이름에 맞게 88군단에 주어진 임무는 주요지점을 점령하고 각 지점을 이어주는
교통로만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각군에 진격을 명한다. 봉황의 진출 1단계 작전을 이 시간 부로 시작한다.”
사령관의 명령에 오퍼레이터가 명령을 전파하자. 상공에 떠 있는 봉황에서 전문을 받아
각 예하 부대로 전송했다. 명령을 접수한 사단들은 각각 연대로 흩어져 자신이 맡은 지점을
점령하기 위해 일제히 서진을 시작했다.
이번에 시작된 원정은 우랄산맥을 남으로 돌아 우랄강을 넘어 볼가강까지 진격해서 사마라와 사라토프
그리고 사라이를 점령하고 볼가강을 도강하여 바로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약 4만명으로 구성된 88군단중 8기병와 18기병이 좌우를 맡아 진격해 나가고 중앙에는 8보병과
4포병여단이 움직였다. 군단의 진격로에는 8특수여단이 작전개시 5일전에 이미 천인성을 출발하여
주요 지점에 대한 정찰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들이 수집한 정보는 봉황을 거쳐 군단 사령부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하자르 족은 우리를 막을 만한 군대가 없습니다.
그들이 터키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해도 별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보병 일개 연대를
남쪽으로 전진시켜 배치하겠습니다. 4군이 지역을 접수하면 그들에게 남서쪽으로 계속 전진시킬
에정입니다. 사마라에서 최초의 전투가 벌어질 것입니다.”
88군단은 하루에 거의 100킬로미터를 전진하고 있었는데 8보병사단은 후미에 쳐저 보급로를 책임졌다.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8기병의 선두가 러시아와 하자르족의 국경 마을인 악도브에 다다를 수 있었다.
군단의 선봉을 맡은 3연대 3대대장은 망원경으로 악도브를 바라보았다.
많아야 인구수 1000명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마을이었지만 인근에서는 가장 큰 마을을 이루며
러시아로부터 하자르를 지키는 최전방 요새다. 이미 대한제국의 서진을 전해들은 악도브마을의
국경수비대 300명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자르 공국에서는 대한제국의 침략에
조직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유목민이며 부족으로 흩어져 생활하고 있던 그들은 과거 몽골의 영화를 잊은 지 오래고
대한제국에 맞설 만한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들의 맏형격인 몽고가 대한제국에 굴복한 뒤 의지할
데 없던 그들은 터키제국에 급속도로 가까워지곤 있었지만 그들의 힘을 빌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터키제국에서는 이일에 신경을 쓸만한 여력도 없었다. 아직 터키는 주변국과의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고, 보스포러스 해협에서도 긴장이 해소되지 않았다.
“대장님, 지금 조선제국의 군대가 마을 입구에 당도해 있습니다. 기병 약 300명으로 아마도
선발대인 듯 합니다. 후미에는 무수히 많은 군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 입니다만. 어제부터 정찰병들이 귀환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정찰병들이 적에게 발각되어 제거되고 있는 듯 합니다.”
국경수비대장을 맡고 있는 선임 백인대장 하짐은 자신의 부하 300명과 그의 가족들 300명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을 것 처럼 보였다. 이미 이곳에 도착한 300의 기병을 막기에도 그들에게는 벅차 보였다.
3연대장은 악도브를 가능한 평화적으로 접수하기위해 사자를 보내 최후 통첩을 하였다.
“우리는 대몽고제국의 후예들로 그대들과는 친척지간이다. 이곳에서 우리 형제와 같은 그대들의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 12시간안에 마을을 비우던지 항복하던지 택일하라. 12시간이 지난 후
우리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그땐 후회해도 늦는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하짐이 대한제국 연대장의 최후 통첩을 받은 것은 그날 늦은 오후였다. 적과 맞서 싸울 준비에
여념이 없던 마을에 최후통첩이 왔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했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들의 말을 믿는다면 저들은 내일 아침 일찍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하짐은 대한제국의 최후 통첩을 앞에 놓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들의 기병은 이미 수천이
넘어서 이곳을 포위하고도 남을 병력이 도착해 있었는 데도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모양인지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짐은 그날 밤 각 백인대장들과 부관들로 이루워진 회의를 소집했다.
“형제들, 우리에겐 우리 가족을 지킬 힘이 부족하오. 차라리 이곳을 버리는 것이 현명할 듯 합니다.”
하짐은 대장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하게 판단해야만 하는 책임자로서
악도브를 포기하고자 했다.
“안 됩니다. 대장. 이곳은 우리가 수십년 동안 러시아와 싸워서 지켜온 곳입니다.
우리 삶의 터전이기고 한 이곳을 단지 숫자만 믿고 까부는 저들에게 순순히 내어 줄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죽더라도 싸우다 죽겠습니다.”
“백인대장의 말이 맞습니다. 우린 여기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지원자를 뽑읍시다.
성의 주민이 다 같이 싸운다면 수만명도 두렵지 않습니다.
다른 백인대장들과 러시아와의 싸움에서 잔뼈가 붙은 부관들은 하짐의 의견에 강력히 반대했다.
“좋습니다. 형제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그렇게 합시다. 하지만 싸울 수 없는 노약자들과
떠나길 희망하는 자들을 밤에 남쪽으로 피신시키기로 합시다.
그들까지 이곳에서 죽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하짐의 의견은 만장일치로 결정되어 주민들을 아침이 오기전에 소개시켰다.
그렇게 밤을 보낸 그들은 수비대 300명에 자원자 100명을 더해 400명으로 이뤄진 부대를 이끌로
삼천여명으로 구성된 3연대를 맞이하기 위해 밤을 꼬박 세웠다.
기병이 침투할 수 있는 주요지점에 각각 매복하여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기병을 상대하게 하고,
마을 밖에는 어설프지만 목책을 세우는 등 나름대로의 준비를 마치자 새벽이 밝아왔다.
하짐의 노련한 지휘에 따라 대한제국의 막강한 3연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그 시각
이소화대령은 밤에 노약자들이 마을을 떠나는 것을 보고 받고 무혈 입성을 예상했지만,
곧이어 들어온 보고에 의해 그의 예상이 깨졌다.
“연대장님 아마도 적들이 항복할 생각이 없나 봅니다. 어설프게 목책을 세우고 함정을 파고 있는
것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수를 알 수는 없지만 대략 5.6백명이 남은 듯 합니다.
우리의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다면 전멸전이 벌어질 공산이 큽니다.”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예하 부대에게 이르게 우리에게는 포로는 필요 없다고.
도망가는 자를 쫒지 말라 전하고, 부상자는 남기지 말라고. 그럼 내일 아침을 위해 잠을 푹 자두라고,
혹시 모르니까 4대대를 전부 경계임무에 투입해서 적의 야습에 대비한다.”
가족들이 다 떠나버리자 썰렁하기만 한 작은 성을 지키던 수비대원들은 홀가분하게 적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른 아침에 새벽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포탄이 악도브 상공에 무수한 자탄을
뿌리며 떨어지기 전 까지는 말이다.
1611
“포대 모자탄 발사.”
임시로 3연대에 배속된 천포 5문이 악도브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들은 군단의 선봉을 맡은
3연대에게만 배속된 유일한 포대이기도 했다. 다른 모든 연대나 사단들은 포대를 갖지 못했다.
“꽈 광 꽈꽈꽈꽈”
먼저 기병의 진출입로에 만들어진 장애물에 대한 제압포격이 시작되고 화망이 점점 악도프 성벽을
향해 움직여 갔다. 악도브의 국경수비대는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대한 제국의 포격을 두려움
가득찬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성문을 열고 나가기에는 자신들의 병력이 너무 부족했다.
하짐은 성루에 서서 밤새 만들어 놓은 함정 목책들이 적의 포탄에 여지없이 파괴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지난 밤에 야습이라도 한번 해볼걸’
하는 후회를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적이 이런 강력한 포대를 갖추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공성탄 준비”
포대장의 명령에 포원들이 일사분란하게 포탄을 장전했다.
“발사.”
공성탄 다섯발이 악도브성벽과 성문을 뚫고 들어가 박히더니 이내 폭발하며 성벽을 허물어 트렸다.
연속 발사된 공성탄 중 일부는 성문을 뚫고 들어가 성안에서 터졌다.
“모자탄 준비”
“발사”
이미 기병의 진출로를 개척한 포탄이 본격적으로 성루와 성안에서 터졌다. 포탄 수십발이 날아가
악도브를 불태우고 있었다. 집안에 매복하고 있던 병력들이 화마를 피해 거리로 나오다
그들의 머리에 자탄이 떨어져 내렸다. 우수수 쓰러지는 대원들을 뒤로하고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자들이 자리를 이탈하여 성벽쪽으로 달려갔다.
포탄은 이제 성벽쪽으로는 떨어지지 않고 있었고. 성안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1대대는 악도브성으로 진격해 들어가 성문을 확보하라.”
연대장의 명령에 대기선에서 준비중이던 1대대 병력이 마상에 올라 장총을 빼들고,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적들이 몰려 온다. 석궁과 석포를 준비하라.”
하짐이 큰소리로 소리쳤으나 포탄소리에 하짐의 명령이 묻혔다. 용케 살아남은 궁수대의 궁수들이
시위에 활을 재고 적 기병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 오기만을 기다렸다.
간밤에 만들어 놓은 석포는 이미 다 부셔져서 쓸모가 없었다.
수백기의 기병이 달려들자 이십여명의 궁수들이 화살을 날리기 위해 일어섰다.
그들이 화살을 날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기병대의 총이 불을 뿜었다.
달리는 마상에서의 사격은 조준이 상당히 어려웠음에도 1대대 병력들은 오랜 훈련에서
나온 동작인 듯 이십여명씩 짝을 이뤄 화망을 구성하고는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탕탕탕.”
총알이 궁수들의 몸을 꽤뚫고 지나가고 피가 튀었다. 여기 저기서 수비대원들이 픽픽 쓰러졌다.
일제 사격에 살아남은 궁수들이 머리를 쳐박고 화살을 날릴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윽”
재수없게도 김도일 상병은 날아온 화살이 자신의 허벅지에 깊숙히 박혔다.
화살과 자신의 운동에너지가 합쳐져 화살은 거의 관통되어 있었다. 다행히 중심을 잡은
김도일 상병을 피가 질질 흐르는 다리를 보면 성안으로 빨려 들어 갔다.
“탕탕탕”
여기 저기서 1대대 병력과 하짐의 군대가 충돌했지만 1대대의 일방적인 확살로 이어지고 있었다.
칼을 들고 달려오는 하자르 병사들은 모습만 보였다면 벌집이 되어 나가 떨어졌다.
간혹 골목을 돌 때를 기다려 기습을 해오는 병사들도 있었으나, 워낙 1대대 병력이 집중되다 보니
하짐의 유격술이 먹혀 들지 않았다.
“1대대가 잘 하고 있군 이제 2대대를 투입시키고 3대대와 4대대는 외곽을 경비하며,
혹시 있을지 모를 지원군을 경계한다. 남문과 서문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적들이 도망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둬라. 도망치는 자들을 쫓지 말고 내버려 둬라.”
“2대대 돌격.”
천여명이 단위 부대별로 흩어져 이미 확보한 진입로를 통해 악도브 성으로 들어가
잔당 소탕작전에 돌입했다.
성문이 뚫리고 성이 거의 완파 된 마당에 하짐은 더 이상 전투를 계속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열세인 이곳에서 적의 병력을 하루나 묶어둔 것을 위안으로 전군의 후퇴를 명령했다.
어젯밤 살기등등하게 싸우자고 외치던 사람들은 모두들 풀이 죽어 서둘러 도망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적들의 전진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기병대의 장점인 속도를 바탕으로 한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있었다.
성 중앙까지 숨가쁘게 치고 들어온 그들은 진격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확보한 지역에서의 국지적인 싸움을 계속했다.
“후퇴한다. 전원 서문 쪽으로 후퇴.”
하짐은 서문을 빠져 나와 북쪽으로 향한 길을 잡고 우랄강을 넘을 생각이었다.
여차하면 우랄 대간에 들어가거나 러시아로 도망갈 생각도 있었다
8기병사단의 본대가 악도브에 도착할 무렵 18기병의 선두가 우랄강을 넘어 올스크를 점령했다.
이제마 소장은 악도브를 대충 정리하고 반경 1킬로미터에 대한 경계선을 확보한 후 조금 있으면
도착할 천포의 도강을 위해 우랄강에 부선을 놓기 시작했다.
사단 공병단은 주위에서 수십 척의 목선을 징집하여 배교를 만들었다.
양쪽 강둑과 강 중간중간에 철봉을 박고 두꺼운 철선으로 연결한 후 배를 철선에 묶고 양 옆에
부력을 발생시키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풍선을 달았다.
그 위에 괘도차량이 지나갈수 있도록 철판을 깔았다.
부교가 만들어지자 3연대를 악도브 방어와 군단 후미 보호를 위해 남겨놓고, 천포를 시작으로
군단의 도하가 이루어 졌다. 천포의 중량 때문에 조심스레 이루어진 도강작전은 꼬박 하루가 걸렸다.
88군단이 봉황의 진격작전과 때를 같이하여, 천인성에 주둔중인 2군소속 20만의 병력중
5만의 병력이 남하를 시작했다. 그들의 임무는 88군단 후방의 안전을 확보하여
보급로를 유지하고, 하자르족을 편입하여 북위 45도선 까지 지배권을 확보하는데 있었다.
몽고족과 만주족 일본인이 특히 많은 것으로 유명한 2군 1군단 병력은 각 종족의 경쟁심리까지
겹쳐서 예상보다 빠르게 진격하였다. 하자르공국의 아스타나를 함락시키기 직전에 하자르 공국이
대한제국에 항복함으로써 대한제국의 영토를 카스피해까지 확장시키는데 성공했다.
1611 겨울
올해안에 사마라까지 진격할 예정이었던 88군단은 이미 시작된 메서운 동장군이라는
새로운 적 때문에 진군을 멈춰야만 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악도브를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88군단은 올렌버그를 점령했지만 그때 천포가 처음으로
말썽을 부렸다. 관리 소홀로 엔진이 추위에 파열되어 버린 것이다.
강신승 군단장은 즉시 군단의 진격을 멈추고 이 사실을 천군부에 보고한 후 새로운 장비 지원을
요청했다. 강중장의 보고를 접한 천군부는 더 이상의 진격이 무리라는 야전군의 의견을
받아들여 우랄대간 아래에서 겨울을 나도록 명하였지만 천군부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동장군의 맹위로 인해 악도브까지 다시 후퇴한 강신승은 요즘 울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자 12월에만 자신의 4포병여단이 보유한 천포중 80문의 엔진이 수리내지는
교체를 요하는 손실을 입었고, 병사중 천여명이 동상에 걸렸다. 비전투 손실이 군단 화력의 반이
넘었고 병력손실이 일 할이 넘었다.
그렇게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일렀는데 각 사단 보급 장교들이 그 임무를 소홀이 하여
사병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했다. 군단의 재편성이 불가피 했다.
군단장앞에는 군단 보급참모가 얼차려를 받고 있었다. 대령 계급을 달고 있는 보참은 땀을
뻘뻘 흘리며 군단장실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었다. 그 뒤에는 각 사단장과 여단장 그리고
보급장교들이 도열해 있었으나 누구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야 이 개새끼야.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너 때문에 내가 찍혀서 옷 벗으면
넌 죽은 목숨이야 알았어.?”
“기상. 동작봐라. 머리 박어 기상.”
“니들이 일을 제대로 못해서 불쌍한 병사 백여명이 죽고 수천명이 동상에 걸려서 후송됐다.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아. 그래 장병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방한복을 팔아먹어.
자기 전우를 팔아먹는 이런 개만도 못 한 놈들은 당장 총살을 시켜버려야돼”
강신승이 권총을 빼들고 길길이 날뛰자 참다 못한 사단장들이 그의 팔을 붙들었다.
“좋게 말할 때 저기 가서 서 있어. 이제마 이거 놔 ! ”
“고정하십시오 군단장님.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강신승은 눈이 내리는 허허 벌판을 내다 보았다. 주위엔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야 ! 헌병대장 들어와”
강신승은 아직도 화가 덜 풀렸는지 신경질적으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군단 직할 헌병대를 불렀다.
헌병대장 양승화대령이 들어왔다.
“여기있는 놈들 다 끌고가서 조사하고, 직무유기나 포탈이 발견되면 군법에 회부해.
그리고 각 소대단위까지 이번 사건을 조사해서 보고서 올려. 앞으로 두달간 시간을 주겠다.”
“알겠습니다.”
양승화는 군단장실에 있는 모든 장교들을 헌병대로 연행해 가고,
2군 헌병대의 지원을 받아 88군단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헌병대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져 나와 천군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천군부에서 보급된 많은 물품들이 각군의 장교들이 밖으로 빼돌려 치부를 한 사실이 알려졌고.
이러한 사실이 천군부에 보고되자, 천군부는 발칵 뒤집혀졌다.
대한제국의 최정예로 꼽히는 88군단의 예하 사단에서 벌어진 일은 곧 모든 군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한 조장관은 전군을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실사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1612 5월
천군부 장관실은 무거운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예상대로 전군에 걸쳐서 문제점이 도출되고 있습니다. 각 사단의 영관급에서 시작된 부패의
고리가 위 아래로 번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 지 모를 지경입니다.”
군의 정화를 위해 새롭게 창설된 천군 정화 사령부의 사령관인 양택주대장이 두툼한 서류책을 들고
조장관에게 지난 반년 동안 실사된 조사보고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적발된 자는 장군급이 10명 영관급 531명 위관급 84명 하사관급이 3215명 총 3840명입니다.
이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 지. 이들을 다 직위 해제 하면 지휘체계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만.”
“그게 지금 중요한게 아냐. 지휘체계는 시간이 지나면 잡힌다. 모두들 직위해제하고 지휘책임을
물어 상관을 문책해야만 하겠어. 관련자는 모조리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군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사형시킬 놈은 속결로 사형시켜버려 아니 공개 처형해버려 우리를 좀먹는 독버섯 같은 놈들이다.
이런 일은 오래 끌수록 잡음이 많이 생겨나니까.
재판은 가급적 신속하게 처리하라고 일러둘 테니 알겠나 ?”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사형은 좀 심한 것 같습니다.”
“뭐가 심해. 무능한 장교가 적보다 무섭다는 말 모르나 ? 그런 놈들에게 애꿎은 병사들만
당하고 있었던 거야. 알겠나 양택주 ?”
“ 하지만”
여전히 양택주는 사형을 반대하고 나섰다. 일이야 어찌 되었던 지금까지 사형을 한 전례가 없었다.
적군 포로도 사형시키질 않았고 이몽학의 난을 이르킨 주범도 사형시키지 않았습니다.
조장관은 묵묵히 양대장의 말을 들었다. 그들이 한 일을 생각하면 사형도 사치였지만
양대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렇겠지.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놈들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텐데.
그래 출신 성분과 부패유형에 대한 통계는 나왔나 ?”
한층 조장관의 마음이 누그러진 것을 확인한 양대장이 말을 이었다.
“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천인 출신도 상당수 입니다. 대부분은 조선인 양반이나 지방 중소 지주아들이나
귀화한 귀족 출신들이고 다행스럽게도 사관학교를 졸업한 1세대들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농민 출신도 상당히 소수입니다.”
“적발 내용은 ?”
“생필품을 규정대로 지급하지 않고 민간인에게 팔아 넘긴 것이 가장 많았습니다.
몇몇 간덩이가 부은 자들은 무기를 팔 계획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군 장비중 민간에서 유용한 장비들이 유출되기도 했습니다.”
“젠장. 완전히 웃기는 구만. 무기와 장비유출건은 좀더 세밀히 조사하고 다 회수하도록.
이러다가는 조만간에 우리의 기술이 유럽으로 넘어가겠군.”
조장관은 1594년에 이곳에 와서 다짐했던 우리의 맹세가 송두리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 적발된 자중 100여명이 넘는자가 천인 출신이라면 심각했다. 군의 기강이 문란해지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었다. 천인단에서는 일찍부터 이를 염려하여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워나갔으나,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던 천군부에서는 미쳐 그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급속 팽창에 따른 빠른 승진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군은 국민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였으며,
때론 군에 입대하기 위해서 뇌물을 쓰다가 적발되는 지방 지주들도 생길 정도 였다.
“천군부내에서 이제 천인세대들이 물러날 때가 된 것인가 ?”
자조적인 장관의 말투에 양택주 대장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실 천인들이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많은 치부를 하고 있음에도 눈감아 준적이 많았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맞이한 상이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려는 태도만으로도 서로
격려해주던 시절이 있었으니. 하지만 이젠 그렇게만 대응할 수 가 없지.
이러다가는 때를 놓칠수 있으니… 자네는 일단 전군의 헌병대를 통합하여 정군사의 조직을
새로 편성하도록 하고 군의 문제점을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도록 하게.
자네가 이 시대에 해야 할 마지막 임무라 생각하고 말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길어야 3년이겠군요. 그 안에 군 자체 정화시스템을 개발하고
정착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가지곤 안돼. 무조건 완성시켜야만 해.”
“네.”
정군으로 육군이 혼란스러울 때 해군은 늘어난 방어 해역에 걸 맞는 조직을 정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디.
판옥선은 원거리 항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현역에서 퇴역한 지 오래고, 원산에서 새롭게 건조된
일만톤급 원산급 전투함을 각 기함으로 하는 아래와 같이 7개의 함대가 재편되었다.
황해함대 : 모항 상해 – 황해 및 대륙해, 인천/대련/청도/홍콩 분함대
동해함대 : 모항 원산 – 동해 및 시베리아해 보스토치니/부산/아키타 분함대
제주함대 : 모항 제주 – 동남아해 대마도/대만/해남 분함대
태평양함대 : 모항 동경 – 일본동해 및 북태평양 아오모리/극동/오사카.
기동함대 : 모항 진해
잠수함사령부 : 모항 진해 – 천진/대만/ 해남도 분함대
해병대사령부 : 모항 서귀포
가장 강력한 함대는 해군사령부의 직속 함대인 기동함대로 광개토함을 기함으로 양만춘함과
새로 건조된 원산급 7번함 그리고 울산함과 4000천톤급 구축함등이 배속되어 있었고
무장도 원조 함포가 장착되어 있어서 최강의 화력을 자랑했다.
공군은 심양과 공주 제주 대마도 대만 해남에 각각 공군기지를 건설하고 쌍발형 폭격기개발에
성공했다. 항속거리 삼천킬로미터에 탑재폭탄 10톤을 자랑하는 폭격기인 천붕은 현존 최고의
비행기였다. 아직 제공기의 효용성이 필요하지 않은 대한 제국의 공군으로서는 대형 폭격기와
수송기에 중점을 두고 비행기 생산에 몰두하고 있었다.
1611년에 생산된 훈련기를 시작으로 매년 10기를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향후 생산 시설을 매년 50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체공시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는 봉황도 여전히 현역에서 운용중이었다.
정찰과 감시용에서는 봉황만한 비행체도 없었기 때문인데 그 안전성과 운항성을 더욱 향상시켜
적국이 대공포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운용될 예정이다.
1612년
임동표대령은 극동에서의 생활 2년이 되던 날 천군부의 대대적인 정군 작업으로 지휘관이
부족해지자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준장으로 승진하여 극동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계획대로라면 소장급 장성이 극동군 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되었으나, 현지 사정에 밝고 일처리에
있어서 깔끔한 임동표 대령을 승진시켜 준장급 사단을 편성하기로 하였다. 대단히 이례적인
인사조치 였으나, 극동이라는 특수사항이라는 점이 작용하였다.
오늘은 정식으로 임동표 준장이 사단장으로 취임하는 날이다.
그의 취임식에는 극동 행정책임자와 극동분함대 주요인사와 은하이족 족장과
많은 일반인들이 참석하여 그의 취임을 축하 하였다.
지난 이년동안 극동은 명에서 건너온 이주민을 포함하여 얼추 인구가 십만을 넘었고,
활동영역을 샌프란시스코만까지 넓혀 극동강에서 콜로라도강까지 세력을 넓혔다.
극동군이 원주민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작년 12월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은하오족이라 밝히고
피부색이 비슷한 대한 제국민에게 우호적이었댜. 은하이족은 네바다대간 동쪽의 땅을
주 활동영역으로 삼고 있었고 가끔 대간을 넘어 오기도 하였는데.
공병단이 네바다 대간 남쪽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중일 때 그들의 무리가 와 처음 접촉이 있었다.
처음 그들을 발견한 공병대원인 김삼수 병장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날도 계속되는 작업에 짜증이 났던 김삼수 병장은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한쪽에 짱박혀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캥 캥 탱”
오수의 맛을 음미하던 김병장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어디서 개소리 비슷한 소리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소리들과 함께 들려왔다.
‘가만, 무슨 소리지.’
김삼수 병장은 몸을 일으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십마리의 개들이 이끄는 수래와
함께 사람들이 천천이 대간을 넘어 자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생전 처음 본 복장의 사람들은 짐승 가죽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이 원주민이라는 것을 직감한 김삼수 병장은 본대쪽으로 내 달렸다.
“하필 이럴 때 총을 놓고 오다니.”
“적이다. 원주민이다.”
김삼수 병장은 죽어라 달리며 소리쳤다. 올 때는 몰랐는데 되돌아 가려니 꽤 먼 거리였다. 다행히 뒤에
있던 원주민들은 자신을 발견하지 못 했거나 자신을 잡을 생각이 없었는지 속도를 내지 않고 있었다.
뒤를 힐끔힐끔 보면서 달려온 김삼수는 눈앞에 본대의 진영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숨이 벅차 헐떡거리던 김병장은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한 뒤 소대장을 급히 찾았다.
“소대장님 저쪽에서 원주민 수십명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혹 잘못 본거 아니야. 이 덜렁아.”
“아닙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래 빨리가서 대원들 무장시키고 전투준비하고 있어. 난 중대장님에게 갈 테니.”
중대장에게 보고된 직후 전령이 대대장과 연대장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달려가고,
중대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며, 신대륙에 와서 처음으로 만나는 원주민에 대한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그들을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지평선 너머로 원주민들이 나타나더니 서서히 공병대 2중대앞으로 다가왔다.
중대장은 강심장인 대원들 십여명만을 노출시키고 나머지 대원들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매복 시켰다.
“모두들 침착해라. 저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면 저격병들이 저격할 테니 걱정 붙들어매고
명령이 없기 전에는 조용이 있어. 알았나?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우린 역사에 길이 남는 사건을
맞이하고 있는 거야. 이런 역사적인 사건에서 피보기 싫으니까. 알았서들 잘 하라고”
“네.”
모두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터벅터벅 걸어오던 원주민들은 2중대원들과 이십여미터를 사이에 두고 멈춰 섰다.
그러더니 한명이 다가왔다.
“우시랑 마어야 살라 맬라”
“뭐라는 거야. ?”
“하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극동연대 공병대대 2중대장 김소만대위입니다. “
중대장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는 않겠지.
저 쪽에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을 내밀어 어설프게 악수에 응했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안, 두 집단의 우두머리들은 손짓 발 짓에 그림을 그려가며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은하이족이다. 산너머에서 왔다.”
“우린 대한제국민이다. 바다건너에서 왔다. “
“물물교환을 원한다.”
“환영한다. 당신들을 초대하겠다.”
뭐 대충 그런 의미를 담은 손발짓이 교환되고 김소만 대위는 그들을 데리고 대대 본대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대대본대는 신부산에 있었고, 새롭게 마을이 형성되고 있는 곳이어서 주민이 많지 않았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대대장과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마중 나왔다. 만일을 대비해 곳곳에는 병사들이 배치되었고 마을 주민들은 건물 안으로
대부분 들어가 있었다. 또다시 어설픈 만남이 지난 후 환영잔치가 열렸다.
본시 손님접대에 최선을 다하는 민족인지라 원주민들은 꽤 만족해 하는 듯 했다.
며칠을 그렇게 신부산에 머물던 그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짐승 가죽과 식물의 종자를 내놓았고,
대대장은 그들에게 식량과 도끼, 시계 그 외 잡다한 물건들을 한 수레 가득 담아서 주었다.
극동인이 은하이족에게 배푼 가장 강력하고 실속 있는 것은 말을 선물한 것인데,
그때까지 그들은 말을 실생활에 이용하지 않았었다.
은하이족은 그 이후로 한달이나 두달에 한번씩 극동을 방문하였고 그때마다 한 수레씩 물물교환을
해 갔다. 은하이족은 부족인구 십만이 넘는 대부족으로 네바다 대간에서 록키대간을 넘어 대평원에
이르는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고 북쪽으로 콜롬비아 강까지 남으론 콜로가도강까지가 활동영역이었다.
대륙 서부에서는 가장 세력이 강한 부족으로 많은 군소 부족들을 지배했으나,
아직 부족국가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강신승중장은 아스타나에 있는 사령부에서 요즘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낙은 안드레이 고드노프와 바둑을 두는 것이었지만,
요즘들어 고드노프는 무엇이 바쁜지 얼굴보기가 힘들었다.
처음 그와 인연을 맺은 이후 그들은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강신승은 러시아 원정의 실패와
군 기강 해이의 책임을 물어 기동군단이 해산되고 군단장에서 해임된 후
몇 개월을 고드노프와 그의 딸들과 한적한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에 그 둘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을 죽이던 그는 러시아와 흑해 진출을 위해 신설된 제4군 41군단장으로 임명된 9월에
아스타나로 돌아왔다. 41군단은 아스타나에 사령부를 두고 있었고, 하자르족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41군단은 총 3개의 보병사단과 1개의 포병여단으로 이루워져 있었지만
군단 직할 타격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구식 무기를 소지하고 있어서 4군중에 가장 화력이 약했다.
4군은 총 10만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이 명에서 징집된 징집병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년에 새로이 10만의 병력이 추가될 예정이었지만 몽고/시베리아를 관활하는
2군의 1개 군단화력에도 못 미쳤다. 그나마 42군단은 터키제국과 맞닿는 국경을 수비해야 했기 때문에
형편이 좀 좋았으나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 했다.
만약 터키제국이 장갑 기병을 앞세우고 국경을 넘어온다면 4군으로서는 막을 재간이 없었다.
기껏해야 포병여단만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으나, 전쟁은 포병만으로 할 수 는 없었다.
“칼이나 휘드르고 활이나 쏴대는 병력을 지휘해야 하다니 정말로 한심하다.
제대해서 다른일이나 찾는게 더 좋지 않을까 ?”
자신의 집무실에서 녹차를 마시던 강중장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지만 뽀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군을 떠나자니 그동안 쌓아올린 것에 미련이 남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지금 사관학교에 있었다.
그놈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얼마간은 군에 남아 있어야 했다.
“따르릉”
상념에 잠겨있던 강중장은 전화벨 소리에 자세를 가다듬고 전화기를 들었다.
“강신승입니다.”
“충성 4군사령실 입니다. 사령관님께서 통화를 원하십니다.”
“그래 연결해줘”
잠시후 4군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신승이 잘 지내고 있나.?”
“충성 중장 강신승. 네 그렇습니다만, 어쩐 일이 십니까 ?”
“잘 지내긴. 좀이 쑤셔 미치겠지. 내 안봐도 알지. 하지만 말야 조금만 참아. 좋은 날이 있겠지.
내가 전화한 건 말야. 이틀 후에 천군부에서 손님이 오신다는 군. 손님 맞을 준비를
자네가 해 줬으면 좋겠어. 42군단은 삐기 힘들고 43군단병력은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야.”
“손님이시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극비라서 알려줄 수 가 없군. 상당히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보안에 최대한 신경을 쓰고
오늘부터 열흘동안 일급경계태세를 유지하도록. 전 병력을 동원해야 될거야. 그럼 난 자네만 믿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끝고 난 강신승은 누가 오는지 궁금했지만, 지금 급한 것은 이틀안으로 주변의 위험요소를
제거하는게 급선무였다. 시간이 빠듯했다. 군단병력이 3만이 넘었지만 지금 아스타나에서 실제로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은 만명이 채 되지 않았다.
“앞으로 한시간 후에 참모장회의를 열수 있도록 준비해.”
인터폰으로 강중장의 명령을 받은 사령실 장병들은 어디에선가 짱박혀 있을 참모들을 찾기 위해
본부중대 전원을 아스타나에 풀었다.
정확히 이틀후 아스타나 상공엔 신형 봉황 4대가 나타나 그 중 3대가 사방으로 흩어져 경계를 취하고
한대가 천천히 4군사령부 연병장에 내려왔다. 줄이 단단히 고박 되자 안에서 자동 소총과 중화기로
무장한 십여명이 우르르 내려와 주위를 경계했다. 그들의 행동에 강신승을 비롯한 도열해 있는
4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눈쌀을 찌푸렸지만 4군 사령관만은 당연한 듯 아무런 반응이 없어 보였다.
주변의 안전이 확인되자, 봉황안에서 사람들이 걸어 내려왔다. 그들은 천군부 참모진들로
조장관을 비롯하여 천군부 참모부가 통째로 이곳으로 이사온 것 같았다.
내려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피던 강신승은 조장관의 모습을 보자 상당히 놀랐다.
조장관은 최고 군 사령관이였지만 세월의 힘을 이기지는 못 했는지 머리카락이 많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급히 자리를 이동했다.
“고생이 많구만”
조장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첫말을 꺼냈다.
“저희 4군을 방문해 주셔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장관님. 저희 4군은 현재 동으로 러시아와
터키 제국을 그리고 남으론 이란을 비롯한 여러 유목부족과 대치 중입니다. 각 군의 배치 현황은
지도에 표시된 바와 같이 카스피해와 우랄강에 집중되어 있고, 41군단이 넓게 퍼져
각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워낙 넓은 지역이다 보니 아직 대한제국의 힘이 국경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어서 남부지방에서는 하자르 잔당들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군사령관의 브리핑이 길어질 것을 우려한 조장관의 브리핑을 중간에서 멈추게 했다.
“모두들 잘 하고 있으리라 믿으니까. 그만 하면 알 만하네. 그건 그렇고 4군 본연의 임무수행을
위해서 어느 정도 준비되고 있습니까. 오다가 보니 천인성에서는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조장관의 질문에 일순 4군 사령관이 당황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지금 4군의 병력으로는 러시아와 흑해로의 진출을 생각할 수 가 없습니다.
10만으로는 지금의 지역을 방어하기에도 벅찬 실정입니다. 러시아는 몰라도 터키제국은 아직도
막강한 함대와 군대를 가지고 있어서 무리하게 흑해로 진출을 하게 되면 터기의 대군을 상대해야만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함대는 흑해로 진출할 수가 없습니다. 대한 제국 함대의 지원 없이
적 함대에 대응할 세력이 없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떤가. 그 쪽은 해 볼만 하지 않는가 ? 우린 대서양을 장악할 수 있는
교두보가 필요해. 그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말야. 신대륙은 아직 정착 단계라 대서양까지 진출하려면
몇 십년의 세월이 필요할 지 모르지. 차라리 유럽쪽으로 움직이는 게 빠르지. 안 그런가 ?”
“그렇긴 합니다만, 지금의 화력으로 유럽으로 움직이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우리는 겨우 창/포병뿐이지만 저들은 장갑기병대와 총병 그리고 미약하지만 포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적의 기병대를 구식 보병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산해관 전투에서 적 기병에 잠시 노출된
보병의 피해를 아시지 않습니까 ?”
강신승은 대화를 듣다 못해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님에도 끼어 들었다. 강중장의 돌발상황에
잠시 눈을 돌린 조장관은 다시 4군 사령관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내년에 증원군이 올거야. 그들을 잘 훈련시켜서 러시아로 보내게. 이건 이미 결정된 사항이야.
러시아라면 그리 힘든 일도 아니지 않는가 ? 포병을 잘 이용하면 말야.
어이 ! 강신승이 작년에 꺽은 가지를 새로 이어야지. 우수한 무기를 보유하고도 우랄강을 넘지 못한
군대에게 다시 무기를 지급할 수 는 없는 일 아닌가 ? 4군의 모든 병사가 창칼로만 무장한 것도
아니고 말야. 4군은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야. 안 그런가 ?”
조장관의 심하다 싶을 정도의 질책은 강신승이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패전 장군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떨구자 아무도 조장관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보급이라도 확실히 해주십시오.”
“2군이 알아서 하겠지만 가능하면 현지조달하면 좋겠군. 러시아 원정군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최초의 군대가 될 거야. 그 옛날 몽고군을 본받으라고. 그리고 2군에서 몇 개 사단정도는 빼낼 수
있을 거야. 알아서 잘 해주리라 믿고 오늘은 이만 하지.”
천군부에서 4군 장령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러시아 원정을 구식 부대로만 계획하고 있는 이유는
한족의 강제 이주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매년 오만이상의 한족 징집병을 까자흐롤 비롯한
중앙 아시아 및 러시아로 보낼 예정이었다.
거기에는 슬라브민족과 아랍 및 백인들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한족이 온몸으로 흡수하고
정화된 상태에서 조선족이 침투하기 위한 속셈이 숨어 있었다. 그 임무의 최전방에 4군이 서 있었고,
4군사령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만 했다.
2군의 지원병에게는 4군을 지원하는 임무보다는 볼가강 유역을 확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전달되었다. 그들은 4군과 별도로 작전을 전개해 나가면서 남쪽의 터키제국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론
흑해를 장악하는데 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4군 지원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들은 볼가강을 넘어 더 이상 진격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만일 4군이 패하여 후퇴하면 그 퇴로를 지키는 임무가 추가 되었다.
광동성
“요즘 조호르와 아체왕국이 포르투갈의 침략에 상당히 곤란한 처지라면서요 ?”
광동성주는 최근에 입항한 이슬람상인들을 접견하고 있었다. 천인단에서는 이슬람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그들의 인심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동남아로의 진출에 있어서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그들 역시 유럽인들에게 패해 말레이 반도에서 슈마트라 서북부 아체까지 밀려나 있었다.
그나마 이슬람 상인들이 명맥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제국에서 광주항 그들의 입항을
허가 하고 제국영해의 자유로운 항해를 허가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성주님. 조호르 왕조는 말라카를 포르투갈에게 빼앗긴 후 그 세력이 급격히
악화되었지요. 사년전에 있었던 네덜란드인과의 연합작전도 실패해서 이제는 거의 유명무실해진
상태입니다. 다행이 아체국은 그나마 상인들의 힘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힘든 상황입니다. “
마흐무드 이슬람 상인은 과거의 영화가 그리웠다. 동서양의 무역을 장악했던 아랍상인들은
무수한 모험담 만큼이나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무역을 하였다.
하지만 게르만족과의 계속되는 전쟁으로 터키제국의 힘이 약해지고 중동의 많은 아랍국들이
유럽의 침공을 받게 되자 아랍상인들의 입지는 계속 작아졌다.
유럽의 아랍땅인 이베리아반도가 완전히 기독교화 되면서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본격적인 팽창은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한동안 이슬람상인들과 환담을 나누던 광동성주는 무심코 한 마디를 던지듯 말했다.
“대한제국의 함대가 조만간 인도로 진출할 것 같은데….”
마흐무드는 지금까지 제국의 함대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지만 그는 그 소문만은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하지만 정착 그 실체에 대해서 아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 했다.
마흐무드는 마음속으로 대한제국의 함대가 동남아를 장악해 주길 바랬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지나치리 만큼 우호적이어서 그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말이다.
‘대한제국이 아랍의 무역로를 확보만 해주신다면 우리는 다시 힘을 길러 유럽인들을 몰아낼 수
있을 텐데, 그들의 함대가 가진 힘이 소문의 반만이라도 된다면 말야.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
마흐무드는 성주와 환담을 나누고 자신의 배로 향하면서 대한제국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이번에 그들은 향료를 가득 실고 와서는 온갖 희귀한 물건들을 사갔다.
그들이 취급하는 대한 제국의 물품은 시계와 옷감 라이터등 생필품이 대부분이었지만
바다를 건너면 그것은 희귀품이 되어 비싼 가격에 팔렸다. 하지만 그전에 동남에서 우글대는
백인들의 상선을 조심해야만 했다. 그들은 상선이라기 보다는 해적에 가까웠다.
특히 아랍배나 동양배에 대해서는 더욱 심해서 십중팔구는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자네는 대한제국의 함대를 본 적이 있는가 ?”
옆에 있는 자가 마흐무드에게 물었으나 그 역시 본적이 없었다.
“조만간에 보게 되겠지. 아무튼 광동성주가 말한데로 각자의 선박에 태극기와 아랍을 상징하는
깃발을 달고 다니자구. 그러면 대한제국의 함대가 최소한 공격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밑져봤자 본전이니 그리하지. 그리고 다른 상인들에게도 그렇게 전해 주게. 우린 모두 형제니까.”
파도와 강물이 만나는 강 하구에는 유난히 조각배들이 많이 떠 있었다.
이때가 가장 고기가 잘 잡히는 시각이라 어부들이 그물을 던졌다간 열심히 끌어올렸다.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하늘을 노닐고 다녔다.
어린애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어디 선가 바람에 실려왔다.
1612 가을
천인성에 도착한 징집병들은 각 중대별로 우랄대간 동쪽으로 흩어졌다.
아침 6시 4880부대라는 현판이 걸려져 있는 부대 정문을 지키는 위병들의 교대소리와 함께
기상을 알리는 흥겨운 쾌지나 칭칭나네 후렴구가 스피커를 타고 반복되어 들려왔다.
“충성”
“쾌지나 칭칭나네”
“쾌지나 칭칭나네”
“기 ~~ 준”
“하나 둘 셋 넷….”
우르르 달려나온 훈련병들이 오와 열을 맞춰 막사앞에 몰려들었다.
고요한 벌판에 외롭게 세워진 훈련소를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은 스피커 소리가 자자들자
이번에는 조교들의 고함치는 소리가 멀리 위병소까지 들렸다.
밤새 위병소를 지켰던 위병하사관 조재팔 중사가 위병일지를 옆구리에 낀 채
부대 본부건물을 걸어 갔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조교들이 훈병들을 인솔하며 절도있게 경례를 붙이며 옆으로 달려 갔다.
“충~성”
“충성”
가을이라지만 이른 아침은 초겨울 날씨를 방불케 해서 뜨거운 입김들이 훈병들 입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어설프게 제국말로 된 군가를 부르며 멀어져 가는 훈병들을 잠시 바라본
조중사가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충성. 고생 많으셨습니다.”
본부 중대원들이 난로를 피우다 말고 들어오는 조중사에게 인사를 했다.
아직 중대장은 나오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중대장님은 어디 계시나 ?”
당번병이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면서 대답했다.
“아침 일찍 대대장님실에 불려 갔습니다.”
“왜 ?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
“아닙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조중사는 얼른 위병일지를 결제 받고 간밤에 못잔 잠을 자야만 했는데 중대장이 자리를 비웠다.
지금부터 잠을 자도 6시간을 자기 힘들었다. 밀려오는 잠을 주채못한 조중사는 의자를 난로 앞으로
끌어당겨놓곤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다. 중대원들은 청소를 마치고 하루 일과를 준비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였다.
“탁. 조중사 일어나”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단잠에 빠져 있던 조중사가 벌떡 일어났다. 언제 왔는지 중대장이 앞에
서 있었고 중대원들은 아침 식사를 위해 다 나갔는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충성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조중사. 다 좋은데 사병들 있는데서 하사관으로서 체통을 좀 지키라구. 아무리 잠이 오더라고 그렇지
침까지 흘리면서 자나. 아예 난로를 꺼앉고 자지 그러나. 일지나 이리 줘?”
“네. 여기있습니다.”
계면쩍은 조중사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일지를 내밀자, 중대장이 사인을 하고 다시 주었다.
간밤에 특별한 일이 없었기에 일지에 기록할 것도 없었다.
“가봐 ! 그리고 오늘 오후에 부대장님의 특별 감찰이 있다니까 내무반 정리 확실히 하라고 해
자네 소대가 이번에도 걸리면 작살이 날 테니까”
조중사가 경례를 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연병장을 가로질러 식당으로 가면서 그는 연신 중얼댔다.
저번에도 부대장님의 감찰에 자신의 소대원중 두명이나 부식을 먹지 않고 숨겨두었다가 걸려서
전 소대원이 40킬로미터 구보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3명의 소대원이 구보도중 쓰러져
낙오되어 시베리아 횡단 철도 공사에 투입되어 버렸다.
4880부대와 같은 비슷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훈련병들은 빠른 행군과 근접전과
산악전 훈련만을 받았다. 대명부에서 징집된 징집병들은 하루 8시간이상 달릴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시베리아 벌판 곳곳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그 수가 10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즐독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