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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황제로 등극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폐하.”
새롭게 구성된 러시아 국민군은 11월초에 모스크바 클레믈린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폴란드군을
몰아내는데 마침내 성공하고 전국회의를 열어 미하일 로마노프를 그들의 새로운 황제로 선출했다.
로마노프왕조가 미약하게 태동하고 있었다. 불과 16세에 황제에 오른 로마노프가 귀족과 정교회간의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때 대한제국에서 보낸 특사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안드레이 고드노프는 강신승의 추전을 받아 대한제국의 특사가 되었다.
“그대는 안드레이 고드노프공이 아닌가. 듣기론 모스크바를 오래 전에 떠난 걸로 알고 있었는데. ?”
“그러하옵니다. 이번에 저는 대한제국의 특사자격으로 황제께 대한제국 황제의 친서를
가져왔습니다.”
고드노프가 미하일 로마노프 황제에게 대한제국의 친서를 들어 올리자,
누군가가 친서를 집어들어 황제에게 가지고 갔다.
“과거 모스크바 공국은 몽고제국의 속방으로서 몽고제국의 보호를 받아 왔으나,
어느 때부터 인가 내란에 휩싸여 속국으로서의 예를 취하지 못하고, 밖으로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리면서도 대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니 대국으로서 심히 민망하도다.
이제 로마노프가 왕에 올라 내란을 평정하였다하니, 몽고제국의 정통을 이어받은 대한제국이
그간의 일을 불문에 붙치고 또한 속방의 어려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그대들이 겪고 있는
외환을 물리쳐 줄 테니 그대는 내치에 힘쓰기 바라노라. 다만 속방으로서 예를 다하기 바랄 뿐이다. “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외교문서 형식을 완전히 배제한 친서였다. 대한 제국은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대제가 몽고제국에서 임명된 세금징수원 이였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싶어했다.
로마노프는 두 손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심각한 재정압박에 시달리고, 폴란드와 스웨덴의 침략으로 북쪽의 노보고로드와 서쪽의 스몰렌스크
주변지역을 강탈당한 러시아로서는 대한제국의 위협에 대처할 만한 실질적인 군사력이 없다.
하지만 정교회의 마지막 보루로서 자부심 강한 그들은 까자흐인들과 아스트라한에서 저들을
어느 정도 막아줄 것이라 믿고 있었고, 폴란드 군대를 모스크바에서 물리쳐 사기가 높아져 있었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친서를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대한제국은 그때 까지만 해도 러시아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였다.
안드레이 고드노프가 받은 답은 대한 제국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전국회의에서는 이번 일을 제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고 대한제국의 요구를 모두 거절했으며,
만약 침략을 받을시에는 전 러시아 국민이 똘똘 뭉쳐 응징하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지난 십여년동안 러시아는 폴란드와 스웨덴, 영국의 침략을 받고 있었지만아직도 대부분의 영토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서도 내란을 종결시켰기에 그들로서는 대한제국의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몽골인들은 이반대제에 의해 완전히 정벌된, 이제는 하등의 두려움을
느낄 필요 없는 민족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동란중에 심각한 피해를 본 일당들 특히 바실리 슈이스끼를 따르던 인물이나
가짜 드미뜨리를 칭했던 참칭자들의 살아남은 잔당들은 은근히 대한제국의 내침을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혼란의 시대가 좀더 지속되길 희망했다.
아시아의 대제국 대한제국에 대한 소문이 유럽에 알려진 것은 1600년 경 일본에서 탈출에 성공한
몇몇 포르투갈 상인들의 입을 통해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에 대해 얼마간의 허풍을 덧붙여
대한 제국을 완전히 신들의 나라로 묘사했다.
그 이후로 대한 제국의 소문은 아랍 상인들과 마카오에서 쫒겨난 네덜란드/포루투칼 상인 그리고
인도의 영국인들에게 의해서도 유럽으로 계속해서 전해졌는데 그 내용이 단편적인 것들이어서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러시아에 전해진 대한제국의 친서 내용이 각국의 첩자들에 의해 전해지자 유럽각국과
터키제국을 비롯한 제국들은 대한 제국의 팽창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1613 봄
들판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자 3월 15일 44군단 병력을 시작으로
3개 군단이 우랄강을 넘었다. 이번 작전은 대외적으로 고토 회복의 기치를 내걸고 내부적으론
한족의 이주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작년 겨울을 시베리아에서 보낸 십만의 병사들은 우랄시,
악도브 그리고 올렌부르그에 각각 군단 사령부를 설치했다.
그들은 각각 44/45/46군단으로 제 4군에 편입되었다. 총 12만으로 구성된 1차 원정군 뒤로
천인성에서 지원 나온 5만의 군대가 각 군단 후위를 보호하기 위해 그 뒤를 따랐다.
1차 원정군의 임무는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로마노프를 사로잡아 러시아의 영토를 효과적으로
인수하고 발틱해로의 진출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강신승 중장이 이끄는 일차 원정군이 각각의 주둔지를 떠나자, 그들의 출병을 알리는
첩자들의 전령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1차 원정군의 편제는 기존의 그것과 많이 달랐는데 각 군단은 소대/중대/대대 개념의 개념을
십인대/백인대/천인대로 각각 대체했다. 4개의 천인대를 묶어 연대를 구성하고 8개의 연대를
1개 군단으로 편성했다. 각 군단에는 포병여단이 한 개씩 있었고 황립무기제작소에서 제작한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2000명의 특수여단이 포병과 군단 사령부 보호 및 군 반란을 감시했다.
각 천인대장이상의 고위 장교는 한족들에게는 배제되어 있었다. 각 종족이 혼합된 이번 원정은
천군부로서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볼가강 까지만이라도 완벽히 확보하면 그걸로 족했다.
실질적인 천군부의 병력은 하나도 투입되지 않고 있었고, 그들이 투입되면 언제라도 모스크바는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의 병합보다는 한족의 관리가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볼가강 유역은 여전히 지방관의 독재가 계속되고 있었고, 모스크바 공국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지방 군소시들은 떠돌아 다니는 무리들에게 약탈되고 있어서 자위대를 조직하여 산발적으로
도적들과 대적하며 마을을 지켜나가고 있었는데, 대도시는 지방관이 농촌마을은 도적들이
휩쓸고 다녀 볼가강은 황폐해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44군단장 이제마소장은 8기병사단장을 맡고 있다가 지난겨울에 있었던 일로 44군단장으로 쫒겨나는
문책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이번 원정군의 고위 장교들은 대부분 88군단 출신이었으며,
그것은 천군부가 보내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이번 원정도 실패하면 그들은 모두 군복을 벗어야만 했다.
44군단이 우랄시를 떠난지 정확히 15일만에 그들은 볼가강에 도달했다. 그들은 강을 사이에 두고
사라토프를 마주하는 폭로브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하루에 40킬로를 행군하면서 왔지만
44군단 병사들에게는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는지 모두들 지친 기색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44군단이 도하를 준비하고 있을 때 군단 포병여단병력이 도착하여 강변에 포를 배치했다.
총 100문으로 구성된 그들은 말로 견인되어 이곳까지 왔다.
순수 보병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주변의 나무를 엮어서 뗏목 수백 개를 마련했다.
강 건너편 사라토프는 정교회 수사원에 들어갔다가 쫒겨났으나 우여곡절끝에 아스트라 한까지
흘러 들어와 러시아 동란시대에 드미뜨리에게 신임을 얻은 그레고리가 관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드미뜨리의 러시아 장악기도가 실패하자 그는 재빨리 로마노프를 러시아의 황제로 인정하고
계속해서 사라토프를 지배하고 있었고 사라하의 드미뜨리와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드미뜨리와는
다르게 대한 제국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그레고리는 대한제국의 아스트라 한 침공사실을 가장 먼저
모스크바에 알린 인물이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대군이 볼가강에 도착했다는 첩보를 접한 그레고리는 서둘러 사라토프에 있는 국민군을
소집하고 주민을 대상으로 징집활동을 벌여 삼천의 병사를 모았다.
더불어 성곽에 배치된 포대를 정비하고 석궁과 석포등을 추가로 설치하여 44군단을 막을 준비를
하는 것과 동시에 전령을 모스크바에 보내 지원군을 요청했다.
자신의 병력으로는 대한 제국군을 막을 수 없었다. 단지 며칠만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로마노프가 스몰렌스크를 비롯한 지역을 폴란드에 양도하는 대신에 폴란드의 군대를
좀 빌려달라 ?”
지그문트3세 폴란드왕은 지금까지 십여년동안 블라지슬라브를 러시아의 새로운 황제로 세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폴란드 군대가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여러 귀족들의
충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군대는 모스크바에서 쫒겨났고, 러시아 인들이 내세운 로마노프가 황제가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러시아는 폴란드의 숙적 스웨덴과 협정을 맺어 자신을 공격하기도 했었다.
“만약 블라지슬라브를 러시아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다면 한 번 고려해 보도록 하지.”
물끄러미 앞에 서있는 로마노프 황제의 특사를 바라보며 지그문트는 농담섞인 말투로 내 던졌다.
자신의 후보가 러시아의 황제가 되면 스웨덴은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폐하. 지금 몽고인들이 볼가강을 넘어 모스크바로 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러시아를 점령하면
폴란드는 새로운 강국과 국경을 맞대야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땐 스웨덴보다 더 강력한 군대와 싸워야 합니다.”
러시아 특사는 충분한 당근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폴란드왕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눈치였다.
‘도둑놈’ 속으로 지그문트를 욕하고 있었지만 내 비치치는 않았다.
“글쎄 과연 그럴까 ? 난 동양의 미개인들이 그렇게 강하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는데.
난 이미 할 말을 다 했으니 그리 알게.”
지그문트 3세는 그렇게 러시아의 특사와 헤어진 후 자신의 오랜 親舊이자 전략가인 고트하르트를
불렀다.
“자네는 이번 일을 어찌 했으면 하는가 ?”
“아마도 러시아가 급박한 가 봅니다. 이번 기회에 얻을 것을 많이 얻으면 되겠습니다.
일단은 저들의 제의를 수락하시되, 적극적인 군사 협력을 피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래 그렇지 !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스웨덴에서도 분명히 어느 정도의 군대를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대규모로 보낼 수는 없겠지요.
만일의 사태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저희 폴란드는 그 틈을 타서 대한 제국을 견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서 그곳을 점령하고 대한 제국과의 전투는 피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힘을 시험해 보기위해서라도 약간의 충돌을 감수해야 겠지요.”
“아주 좋은 생각이군. 이번 기회에 스몰렌스크에 대한 지배를 확보하고 흑해로 진출을 해야겠어
그러면 지금 이태리와 아랍친구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동양의 향료를 카스피해를 거쳐
우리 폴란드인이 독점할 수 있을 거야. 아주 좋은 기회야.”
그레고리의 두번째 전령이 모스크바에 다다른 것은 3월 30일 이다. 이미 열흘전에 대 부대가
우랄강을 넘었다는 소식을 접한 로마노프황제와 전국회의는 지금 폴란드와 스웨덴에 간 특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노프는 새로운 적을 맞이하여 싸우기 위해 우선 지금 적대관계인
폴란드와 스웨덴과의 전쟁을 중지해야만 했다.
그들 역시 이백 오십년전에 있었던 불행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에 휴전협상이 쉽게
성사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노프는 폴란드와 스웨덴에게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지금 각국이 점령한 곳을 할양하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다.
또다시 며칠이 지나자 스웨덴과 폴란드에서 돌아온 특사들은 로마노프가 원하는 답을 들고 돌아왔다.
그들은 모두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통지해 왔다. 폴란드의 왕은
우크라이나로 진격하여 대한제국의 배후를 치겠다고 통보해 왔으며 스웨덴의 왕인 아돌프는
노브고로드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러시아게 지원해 주기로 했다.
사라토프에서 모스크바의 지원군을 기다리던 그레고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후퇴를 하자니 자신의 기반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이고 대한제국과 싸우자니 승산이 없었다.
그가 후퇴와 사수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이제마 소장이 이끄는 44군단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볼가강을 넘어 사라토프로 천천히 다가왔다.
“전군은 급속 전개하여 사라토프를 포위하고 아무도 탈출 하지 못하도록 하라.
항복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인다.”
이번 원정은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가장 큰 것이 원주민에 대한 행위를 각 급 지휘관에게
일임한 것이었다. 이는 한 지역을 완전히 약탈하더라도 천군부에서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4군에게 주어진 유일한 특권이었다.
처음으로 전투에 임하는 그들 병사들은 훈련을 강하게 받았다곤 하더라도 실전의 경험이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무기가 빈약했다. 점령지에 대한 지배권이라는 달콤한 사탕이 없다면
효과적인 전투력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각 연대가 자신의 공격 지역으로 이동을 마치고 적의 정문을 치고 들어갈 돌격연대가 자리를 잡자
이제마 소장은 공격 대기명령을 내렸다.
“부관 전령을 보내 적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라.
전령이 돌아오는 즉시 공격할 수 있도록 전군은 대기한다.”
“네 알겠습니다.”
44군단 정보참모장이 이제마소장의 항복 권유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백기를 앞세우고
사라토프 해자 앞에 당도했다. 만일을 대비해 그는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고 철모를 푹 뒤집어 썼다.
그는 연신 투덜대면서 해자까지 천천히 다가왔다.
위험 천만한 일을 자신에게 시킨 군단장도 못 마땅했다.
부대내에 러시아어에 능통한 장교가 자기 밖에 없는 것도 아니였는데 말이다.
“젠장 난 군인이지 정치가가 아니란 말야. 무슨 야전군이 적에게 항복을 권유해 !
그런건 정치가 놈들이 미리 알아서 해야지. 화살 한 개라도 날아와 봐라 쑥대밭을 만들어 버릴 테다.”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마친 정보참모장이 휴대용 마이크를 대고 소리쳤다.
“대한제국 44군단의 사신자격으로 귀하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 다리를 내려주기 바란다.”
“…”
몇번을 더 외쳐 댔지만 상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가능하면 빨리 자리를 떠나고 싶어했다.
가능하면 다리가 아예 고장이라도 나서 내려오지 않기를 바랬다.
“다행이네. 어이 궁수 ? 활로 날리면 저기까지 날아가겠나 ?”
딸려온 궁수가 거리를 어림잡더니 가능하다고 대답을 해왔다. 어차피 적의 항복을 받기는 글렀다.
자신이 전달하려는 문서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협박에 가까운 것이고 하나같이 자존심 상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정말로 사령부에서 항복을 원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내용뿐이었다.
“자 이거 날리고 가자구”
정참이 문서를 돌돌말아 궁수에게 주자 궁수는 화살에 매달려 있는 통에 종이를 잘 접어서 넣고는
성안을 겨냥하여 날렸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멋지게 날아갔다.
화살을 쫒아가던 눈길이 성벽을 타고 넘자 정참은 미련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그레고리는 성벽을 넘어온 화살에 달려있던 통을 열었다.
적국과 대화를 시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기도 전에 적국의 사신이 되돌아 가버렸다.
‘나는 대한제국군 4군 44군단장 이제마 소장이다. 귀하에게 살길을 열어주겠다.
오늘 정오까지 성문을 열고 도망치든지 항복하라. 어차피 너희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좋은 말로 할 때 항복하기 바란다. 너희들이 도망친다해도 우리는 너희를 쫓지 않겠다.
괜한 만용으로 아까운 목숨을 버리지 말길 바란다.
일단 우리의 공격이 시작되면 너희들은 전멸이다. 우리는 포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서 귀중한 목숨을 버리지 말고 대한제국의 품에 안기기 바란다.’
문서를 끝까지 읽어나간 그레고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내용으로
가득찬 문서는 저 미개한 까자흐인들 조차도 사용하지 않는 문체였다.
그는 종이를 양손으로 거칠게 구겼다 다시 폈다.
“종이 만드는 기술하나는 끝내주는 구만” 여러 번 구겼는데도 종이가 멀쩡했다.
“포대 사격 개시”
이제마 소장은 정오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자 직접 포병여단에게 포격을 명령했다.
포격소리와 함께 전군에 공격명령이 하달되었다.
“꽝”
100문의 포대가 공성탄을 일시에 발사했다. 공성탄이 적 성곽을 부수기 시작하자
돌격연대가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꽝 꽈 광…”
그레고리는 울려퍼지는 포성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성루는 성루를 지키던 병사들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무너진 성곽 양옆으로 계속해서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다
"적 보병들이 몰려온다 모든 궁수와 포병은 최대한 끌어드린후 일제히 발사한다.
너는 주민들을 더 끌어 모아 각 성곽에 배치하고 저들이 뚫고 들어올 것을 대비하라.”
아랍 상인에게서 비싼 돈을 치르고 구입한 망원경으로 적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그레고리는
급히 명령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적의 포탄위력이 생각보다 강해서 튼튼한 성곽도 무용지물이었다.
포병대는 예정된 지점에 계속적으로 포탄을 날려 돌격연대의 진입로를 확보했다.
진입로의 확보를 보고 받은 이제마는 지체없이 돌격연대를 투입시켰다.
“3연대 투입”
3연대를 상징하는 깃발이 오르고 명령이 전파되었다.
“3연대는 나를 따르라”
사천명의 3연대가 부서진 성곽 잔해 앞으로 일시에 몰려들었다. 성주위에는 깊게 파진 해자가
가로막고 있었다. 오랜 세월 볼가강에서 흘러온 물이 흘러 바닥은 펄에 가까웠다. 한번 빠지면
혼자 힘으로는 빠져 나오기 힘들 정도였다.
3연대병력은 각자 가지고온 모래포대를 해자에 넣자 마자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나자 5연대 병력이 달려와 해자를 메워 나갔다.
만여명이 순식간에 해자를 메워 통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해자 중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쯤해서 포를 사용하심이 ?”
그레고리는 부관의 말을 들으며 묵묵히 전면을 응시했다. 순식간에 성루와 성벽을 무너뜨린
적 포대가 잠잠했다. 필시 포탄을 재장전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던 그레고리는
우선 적들의 해자 메꾸기 작업을 방해해야만 했다.
“전 포대는 발사하라.”
잘 숨겨진 포대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그레고리의 포대 20여문이 일제히 발사를 시작했다.
“피우웅 꽝”
한창 모래포대를 나르던 5연대 병력위로 포탄이 떨어져 내렸다. 운 나쁜 병사들이 떨어져 내린
포탄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동료들의 팔, 다리가 끊어져 나가자 병사들이 제각기 살길을 찾아
우왕좌왕했다.
“겁먹지 마라”
“신속히 포대를 해자에 집어넣고 후퇴하라”
여기저기서 백인대장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장군 적들에게 포병이 있나 봅니다.”
5연대와 3연대의 해자 메우기 작업을 지켜보던 작전참모가 옆에 서 있는 이제마 소장에게 보고했다.
적의 포병은 이미 예상되어 있었지만 직접 당하고 보니 걱정이 앞섰다.
“그렇군 그럼 총병도 있다는 애긴데 의외로 만은 피해가 생기겠는걸. 어쩔 수 없지.
그나마 적의 포대가 몇 문 안되는 것 같아 다행이군. 포병대에 모자탄을 발사하라고 해.
가능하면 적 포대 추정위치를 파악해서 대포병 사격도 하고.”
“네”
잠시 보병들의 움직임이 주춤하는 사이 포병여단의 포가 다시 불을 뿜었다.
이번에 쏜 포탄은 산탄이었다.
알렉세이는 화약을 재고 탄을 포신에 넣었다. 자신의 포대는 지금까지 세발을 쏘아서 한발을 정확히
적들의 한가운데로 떨어뜨렸다. 네번째 포를 날리기 위해 불을 댕기고 있을 때 하늘에서 포탄이 터지며
자탄이 알렉세이를 휘감았다. 자탄의 폭발에 그의 육신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장전되어 있던 포의
방향이 바뀌어 탄이 발사되었다. 커다란 철탄이 근처에 있던 민가를 관통했다.
“신속히 움직여라. 오늘 중으로 사라토프를 점령해야한다.”
3연대와 5연대는 적의 포탄이 뜸해지자. 다시금 몰려들어 해자를 메워나갔다.
“군단장님 두개의 통로가 확보되었습니다.”
두 연대가 해자를 메워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제마는 지체없이 3/5연대를 뒤로 빼고
최강의 7연대를 투입했다.
“7연대 최고 속도로 진격한다.”
“우와 와 와”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4천명의 병력이 이천명씩 나뉘어져 해자를 건너 성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이미 무너진 성곽의 잔해를 타고 넘던 일부 병력이 우수수 쓰러졌다. 급히 목책을 세우고
해자를 건너오던 대한제국군을 향해 숨어있던 러시아 총병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돌격”
쓰러지는 병사를 뒤로 하고 창칼을 들고 목책으로 달려들었다. 여기저기서 화살이 날아왔다.
러시아 소총은 재장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미 장전된 총을 소비한 러시아 병사들이 재장전하고
있을 때 대한제국병들이 긴 창을 들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은 목책사이로 창을 밀어넣어 적을 찔렀다.
“죽어라 새끼야”
“헉”
“타타타탕”
또다시 장전을 마친 러시아 병사들이 총을 쏘아댔다.
전면을 맡은 백인대 하나가 거의 전멸의 위기에 처했다.
“화력 지원바란다. 전방에 적 총병이 있어서 피해가 극심하다.”
“좌표를 불러라.”
“현지점에서 앞으로 100미터”
“해자까지 후퇴하라. 포개시후 다시 돌격한다.”
“전 연대 후퇴.”
7연대의 돌격 전면에는 적의 총병과 포 2문이 배치되어 있었고 궁수들이 숨어있었다.
적지 않은 피해을 입은 7연대가 후퇴하자. 그레고리 군대는 일순 환호성을 질러댔으나
곧이어 들려오는 포성에 잠겨버렸다.
“엄폐하라. 포격이다. 엄페하라.”
연대장의 명령이 전방에 채 전달되기도 전에 하늘에서는 포탄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꽈 광”
100문에서 발사한 일제 사격으로 7연대 전방에 있던 십인대가 날아갔다.
그 모습에 놀라 7연대병력이 해자 뒤로 500미터나 더 후퇴하기 사작했다.
약 10분간의 포격이 끝나자. 다시금 돌격을 한 7연대는 죽어간 동료의 복수를 하듯
맹렬히 러시아군에 달려들었다.
“탕탕탕”
“으악. 퍽”
몇차례의 일제사격으로 또다시 선봉이 무너졌으나 손실에 무감각하듯 7연대 병력이 성안으로 들어와
교두보를 확보해 나갔다. 그 뒤를 이어 대기중인 1연대와 2연대 병력이 차례로 들어와 성안으로
흩어졌다. 10대 1일의 병력차를 극복할 만한 화력이 없던 사라토프는 44군단의 공격 개시후
5시간만에 완전히 점령되고 저항하던 3천여명의 군사들은 모조리 죽어 나갔다.
“역시 어려운 일이야. 모스크바에 도착하기 전에 44군단이 전멸하겠군 이거.”
이제마 소장은 사령부에 보내는 전투보고서를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비록 죽어간 자들이 한족이라지만 자신들의 부하들이었다. 죽어가는 부하를 바라보는 부대장은
누구나 가슴이 아팠다. 이번 짧은 전투에서만 천여명이 부상당하거나 죽었다.
과거 산해관을 공격했던 1군 사령관 김상철대장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사령부에 보내고 병력충원을 요청하도록. 3일간 휴식후 보로네쯔로 출발할 테니
그동안 사라토프를 말끔이 정리하도록.”
보고서를 통신병에게 건네주었다.
“2군 병력은 언제쯤 도착하나 ?”
“7일 후에나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래 ! 상당히 늦군. 이상하단 말야.”
2군의 행동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꼭 자신의 부대가 무슨 작전의 미끼로
사용되어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앞으로는 이런 전투보다는 평지에서의 전투가 더 많을 것인데.
포병이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4군사령부에서는 폴란드군이 우크라이나로 진격에 들어오자 신경을 곤두세웠다.
북쪽에서 오고 있는 스웨덴의 기병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폴란드의 기병은
자칫 러시아 원정군의 후위를 차단하고 원정군을 포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폴란드가 키예프로 계속해서 군을 증파하고 있습니다. 아직 까진 위협적이진 않지만 원정군이
모스크바에 다다르면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
“그 점은 나도 알고 있네.”
4군 사령관은 이번 원정을 상당히 못 마땅해 했다. 수십만의 병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지만
자신의 힘으론 막을 수 없었다.
“2군이 막아 주겠지. 그들의 임무가 그것이니까.!”
“원정군 사령부에 폴란드군의 움직임을 전하고 되도록이면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라고 해야겠군.
잘못하면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이 나뉘어질 수 있는데 천군부에서는 지원을 해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이거 참”
강신승중장은 4군사령부에서 온 전문을 받아 들고 한참 고민했다. 폴란드의 개입으로 자신의 좌군인
44군단의 행로를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45/46군단만으로 모스크바를 공격하기에는 불안했다.
“일단 44군단에게 폴란드를 경계하도록 해야겠군. 돈강을 넘지 말고 강을 따라 올라오면서
혹시 모를 폴란드의 후방교란을 방어하라고 하고. 중앙의 45군단의 진격속도를 올리라고 해.
46군단은 전면에 강력한 러시아군이 없으니까 별 문제가 없겠군.”
“사령관님 4군사령부에서는 병력 분할을 경계하라는 권고문이 내려와 있습니다만.”
“알고 있어 하지만 2군이 볼가강을 넘으려 하지 않으니 별수 있나 ? 우리가 몰살당한 판인데.”
로마노프는 시시각각으로 올라오는 전령의 소식을 들으며 대한제국군을 막을 장소를 물색했다.
전시에서의 명령계통을 일원화 하기 위해 전국회의에서는 그에게 군권을 집중시키고
그를 러시아 총사령관으로 추대하여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불과 17세의 나이에 총 사령관이 된
로마노프 였지만 지금까지는 잘 해 내고 있었다. 각지에서 올라오는 소식들은 실로 암울하기만 했다.
폴란드군은 우크라이나까지 군을 진격 시킨 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단지 삼천의 기병만을 돈강 주위로 파견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주 돈까자흐인들과 충돌을
이르키고 있었어 러시아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오히려 문제만 이르켰다. 전국회의에서는 폴란드의 저의를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뭐라고 제지를 가 하질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로마노프는 각지의 영주들이 보낸 병력과 모스크바에 있는 국민군 그리고 스웨덴 기병 팔천과 보병을
합쳐 도합 6만이 넘는 병력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들을 집결시키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 저기서 모집관들이 병사들을 모집하느라 뛰어다녔지만 성과는 기대를 훨씬 못 미치고 있었고,
그 중에는 모집관을 방해하는 세력도 적지 않았다.
“이곳이 좋겠는데 ?”
로마노프는 한 지점을 찍으면서 다른 이들의 동의를 요구했다. 그가 찍은 곳은 사란스크 대평원이었다.
정보에 의하면 대한제국군은 기병대가 빈약했고 자신은 스웨덴기병을 포함하여 이만이 넘는 기병을
가지고 있었다. 폴란드가 가세한다면 더 많은 수의 기병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기병은 평원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의견은 타당했다.
“하지만 폐하, 저들은 강력한 포병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칫 평원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스웨던 기사단장인 빌 헬름경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의 눈에는 17살짜리 황제가 미덮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적은 십만이 넘는 대병이야. 산간지방에서 싸운다면 기병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 아니요. 빌 헬름경의 막강한 기사단이 갹개 격파당할 수도 있단 말이지요.”
“그렇긴 합니다만”
빌 헬름은 로마노프의 생각에 반박할 만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의 기병대는 평원에서 적 진영 깊숙이 들어가 싸우도록 훈련되어 왔다.
강신승 사령관은 랴잔을 점령하고 모스크바를 향해 쾌속 진군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에 떠있는 봉황에게서 급전이 날아왔다.
“봉황이다. 전방에 대규모의 군대가 나타났다. 기병과 포병을 포함한 강력한 군대로 보인다.”
“적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
“아군 선봉으로부터 약 50킬로미터 전방. 직선으로 이동중이다. 엄청난 군대다.
대략 십만에 가까운 병력이다. 기병도 상당수다.”
급박한 통신은 바로 사령관에게 보고되고 전군은 경계태세에 돌입함과 동시에 진지 구축에 나섰다.
사령관이 사용하는 천막에서는 임시 작전회의가 열렸다.
“현재까지 적의 수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대략 기병 이만에 포병과 보병 육만정도 인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아군은 삼만 오천 정도로 병력에서나 화력에서 열세에 몰려 있습니다.”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참모는 일만오천대 1로 축소된 지도위에 부대들을 표시해 나갔다.
“44/46군단은 지금 어디에 있나 ?”
강신승은 묵묵히 전면 지도를 응시하며 좌군과 우군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44군단은 볼로네쯔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46군단은 블라지미르성에 거의 다다랐다는
보고입니다. 이곳과는 북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지금 가용한 봉황은 ?”
“현재 두척입니다만 무장이 되 있지 않습니다.”
“적이 너무 많은데 어디서 저런 군대가 나온거야, 혹 모스크바를 비워 놓은게 아닐까 ?”
작전참모부에 소속된 대령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도저히 러시아 군대의 숫자를 믿을 수 없었다.
“도대체 정보대 애들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이렇게 까지 가까이 올때까지 감지가 안되다니
말이 되냔 말이야. 지금 적들은 어찌하고 있는가 ?”
“계속 진군 중입니다. 아직 적들은 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겠지. 정면 돌파는 승산이 없다. 기병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해. 기병이라 ! 기병이라 ! 젠장.”
강신승은 모든 것이 못 마땅했지만 지금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두 군대가 부딪히면 자신의 군대가 지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러시아는 전방의 군대가 전부입니다. 저 군대만 깨면 이번 원정은 끝나는 것입니다.”
강신승은 말을 한 장교를 한번 쳐다 보았다. 소령 계급장을 단 회의 참석자중 가장 낮은 계급의
소유자다. ‘젊다는 것이 이런 건가?’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차 있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이기기 힘들어 방어하기도 벅찰 것 같군”
“그렇습니다. 일단 45/46군단을 합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물러나면
46군단은 보급로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46군단이 조금만 버텨주면 저들이 우리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 올 수도 있는데 말야.”
“밑에 있는 44군단이 올라오지 않으면 설사 45/46군단이 저들을 포위하더라고 역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전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지금. 무리수를 두기에는 위험합니다.”
여러 참모들은 제각각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최종결정은 강신승이 해야만 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시기의 결정권과 명령권은 권한이라기 보다는 무거운 책무였다.
수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거움이 강신승의 얼굴에 주름살을 하나 만들어 가고 있었다.
“46군단을 계속 진격시키고 우리는 천천히 진격한다. 적과 조우 후 바로 후퇴를 준비한다.
각 연대는 미리 준비를 하도록. 8연대부터 후퇴를 시작하고 최전방은 450여단이 맡고
그 뒤를 459여단이 맡는다. 1연대는 이곳에 남아서 후방을 경계하고 퇴각로를 보호하라.”
머리에 떠오른 온갖 상념을 지워버리고 강신승이 일사천리로 회의를 마감하는 명령을 내렸다.
“천군부에 지원 요청해봐. 얼마나 해 줄지 모르지만 말야.”
아무도 그의 명령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가장 현실적인 명령이었지만 최선은 아니였다.
이기기 힘든 싸움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후퇴할 수는 없었다.
“ 46군단에게 모스크바로 바로 들어가라고 해. 그 다음은 적들의 대응을 봐가면서 생각하자고.”
강신승은 46군단이 모스크바로 쳐 들어가면 저들이 병력의 전부나 일부를 후방으로 보낼지 모른다는
모험을 택했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몰랐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 로마노프는 정찰병에게서 적과의 조우를 보고 받았다.
“황제폐하 대한제국군이 나타났다는 보고입니다. 중앙군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대로 진격하면 모레 아침에는 서로 조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초의 보고를 취합한 한 장교가 로마노프에게 보고했다.
“그냥 밀고 들어온단 말이지.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알수가 없군.”
“북쪽에 있는 군대를 믿고 있는 게 아닐까요 ?”
“아니야 그들은 이곳까지 오려면 잠을 자지 않고 달려도 4-5일은 족히 걸린다.”
“북쪽의 군대가 모스크바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스크바는
대한제국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모스크바 수비군은 현재 이천명이 되지 않습니다.”
로마노프는 모스크바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군. 그걸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급히 모병관들에게 전령을 보내 모스크바 수비군을
증강시키라고 해. 스웨덴 왕에게도 지원군을 더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 좋겠어. 우린 전방의 적을
무찌르고 폴란드가 남쪽을 붙잡고 있는 동안 북쪽을 치면 쉽게 전쟁에서 이길 수도 있다.”
“스웨덴군이 모스크바에 들어오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자칫 대한제국을 몰아낸 댓가로
스웨덴을 끌어드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러시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칭송이 자자한 니콘 대교주가 스웨덴군의 모스크바 입성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마음속으로 스웨덴과 폴란드를 저주했다.
비록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번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꼭 저들을 몰아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 병력을 뺄 수는 없지 않는가 ?”
“차라리 기병과 보병 일만을 모스크바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스웨덴의 지원병은 이곳으로 보내달라 하심이 좋을 듯 싶습니다.”
로마노프와 니콘공의 설전은 일단 기병 오천을 북쪽으로 보내 적의 후미를 교란시키면서
적의 모스크바 진공을 늦추게 하고 그 사이 지방 병력을 끌어 모아 모스크바를 사수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여전히 불안한 니콘공은 노보그란드와 스몰렌스크에 급히 전령을 보내
스웨덴과 폴란드의 군대를 모스크바 근교로 이동시켜주길 희망하는 편지를 전하게 했다.
모스크바 수비대에겐 어느 나라든지 외국의 군대를 모스크바에 진입시키지 말라는 명령도 잊지 않았다.
1613 봄
빌 헬름경이 이끄는 기병대 8천은 북쪽으로 멀리 돌아 대한제국의 후미를 노리기 위해 야음을 틈타
우회 기동에 들어갔다. 기병 8천이상이 로마노프 진영을 빠져나가자
다음날 아침 봉황은 로마노프 진영의 변화를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적 기병의 우회기동이냐 46군단의 뒤를 쫒기위한 추격대냐를 고민하던 강신승은 부대의 진격 중지를
명령하고 현 지점에서 진지를 구축하도록 했다. 후미에 남겨진 8연대와 46군단에게는
적 기병의 내습에 경계를 철저히 하라는 명령을 내려놓았다.
“봉황에게 주위를 이 잡듯이 뒤져서 적 기병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해. 무엇보다 그들의 소재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정도 진지를 구축하고 휴식을 취하던 45군단 전면에 로마노프의 대군이 먼지를 앞세우고
지평선을 넘어왔다. 아직까지 적 기병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었서 답답하기만 한
강신승 중장은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대평원을 사이에 두고 대치중이던 러시아 원정군과
로마노프군대는 로마노프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려는 시각에 만여명의 기병들이 진격을 시작하고
그 뒤를 보병들이 천천히 따라왔다. 해를 등지고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령관님 적들이 드디어 움직입니다.”
기병 만여기가 한꺼번에 움직이자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말발굽에 짓이겨진 새싹들이 마른 대지와
함께 날아올라 희뿌연 먼지구름을 만들었다.
“아직까지 봉황에서는적 기병대를 찾지 못했나 ?”
적의 동태에 촉각을 곤두세운 강신승은 사라진 기병 때문에 걱정이였다.
“네 아직 없습니다.”
“ 450여단에게 포격 준비하라고 해. 사라진 기병을 위해 30문은 예비로 남겨놓는다.
도데체 그놈들은 어디로 간거야 이거.”
“봉황을 우리 머리위에 둔다.”
팔짱을 낀채 사령관은 전면을 응시했다. 45군단은 직사각형의 진형을 유지한 채 병사들이
각자 맡은 방어구역을 담당하고 있었고 지휘소 뒤쪽으로 450여단이 그리고 지휘소와 450여단을
중심으로 459여단이 빙둘러서 방어진영을 형성하고 있었다.
8연대는 본대와 20킬로이상 떨어진 곳에 임시 진지를 구축하고 본대의 후방을 지원했다.
러시아기병단장 미닌은 옆에 찬 칼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돌격. 중앙을 돌파한다.”
그가 받은 명령은 간단했다. 적 중앙을 치고 들어가 양분시키고 지휘부를 뭉개는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만여기가 일제히 속도를 내며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기병의 빠른 기동에 보조를 맞추어 보명들로
전진 속도를 올려 거의 뛰다시피 했다.
“전군 진격”
“따따르인을 무찌르자.”
“이반대제의 위업을 되새기자.”
기병들이 점점 접근해 오자 맨 선두에 있던 1연대병력이 십인대별로 넓게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있던 각 연대들도 각자의 위치를 정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각기 다섯명씩 무리지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전방이 크게 흔들릴 무렵 450포병여단의 100문중 70문이 일제히 포격을 시작했다.
“꽈광 꽝”
포탄은 러시아 기병대 중간에 떨어져 작렬했다. 곧이어 보병들에게도 떨어져 내렸다.
산탄이 터지면서 달려오던 보병들이 피해를 입고 쓸어졌지만 십여년동안
이어진 내란으로 무수한 전쟁터를 전전했던 병사들은 두려움을 잊은 채
앞서간 기병을 따라잡기 위해 달려나갔다.
“포병은 적 기병을 우선적으로 포격하라.”
사령관의 명령에 30문이 기병대 전방을 향해 포격 각도를 수정했다.
40문의 포는 보병을 저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시한번 포탄이 기병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리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봉황에서 연락입니다. 북쪽에 기병대 출현 장갑기병입니다. 아마도 사라진 스웨덴 기병같습니다.
예상도착시간 30분.”
드디어 숨어있던 스웨덴 기병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의 출현이 너무 늦게 발견되었지만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발견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최소한 적을 막을 준비를 할 시간을 번 것이다.
“드디어 나타났군. 4연대는 중앙을 비우고 북쪽을 맡는다. 예비포문을 그쪽으로 집중시켜 접근을
최대한 막아라. 적 기병이 1연대를 통과하면 전군은 예정된 순서대로 후퇴한다.”
최초 포탄 발사후 5분이 지나자 러시아 기병과 1연대 병력이 부딪혔다.
빠르게 질주하는 말의 속력과 힘에 압도당한 1연대 병력은 적들을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닌의 부대는 커다란 창과 칼로 무장하고 대한제국 진영 중앙을 가로질러 갔다.
보병과 기병이 뒤섞이자, 포격은 이제 전방의 러시아 보병에게로 집중되었다.
“창창. 으악”
한 병사가 긴 창을 대한제국군의 가슴에 깊이 박았다. 뒤에서 달려오던 대한제국병사가
창을 말을 향해 던졌다. 엉덩이에 박힌 창 끝에서 오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말이 몸부림치자
말 위의 러시아 기병이 굴러 떨어졌다.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달려들어 러시아 기병이
일어나기도 전에 목을 날려버렸다.
“꽈광”
“챙”
비명소리와 쇠붙이 붙이치는 소리가 곳곳을 메우고 있었지만 꾸준히 미닌의 부대는 진격을 계속했다.
드디어 러시아 기병이 1연대 지역을 통과하자, 1연대 병력이 러시아 기병이 훑고 간 자리를
되짚어가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보병은 기병과는 상당한 거리로 벌어져 있었다.
불행중 다행이였는지 적 기병은 포격을 피하기 위해 너무 빨리 달렸다.
그 짧은 시간을 틈타 1연대가 후퇴를 시작하자 2연대도 전열을 정비하고
후퇴를 시작했다. 그들은 뒤에 낙오된 기병들을 요리하면서 빠르게 전장을 이탈했다.
“사격 준비”
459여단장은 제국군의 보병진지를 유린하고 중앙돌파를 시도하는 러시아 기병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가 맡고 있는 곳이 뚫리면 바로 원정군 사령부가 기병대에 노출되게 되어 있어서
무슨 일이 있더라고 이곳에서 기병대를 막아야만 했다.
“사격 개시”
“탕”
“타타타타탕”
여단장의 신호탄을 시작으로 459여단 병력이 일제 사격을 가했다. 보병연대가 허구헛날 뜀박질에
칼싸움 연습을 하고 있을 때 459여단은 하루에 4시간씩 사격연습을 병행했다.
그 훈련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미닌은 적 포병대를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선봉이 우수수 말에서 떨어지자 깜짝 놀랐다.
보병의 미비한 저항을 받고 적 진영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때는 적들을 완전 섬멸시킬 것 같았는데
뜻밖에 전방에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대한제국의 신식 무기로 무장한 군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후퇴할 수는 없었다. 이미 너무 들어와 버린 것이다.
자칫 머뭇거리다간 포위되어 전멸할 수도 있었다.
“탕탕탕”
다시 한번 일제 사격이 있자. 수백명이 일시에 쓰러졌다. 이미 포병대는 후퇴준비를 마치고
459여단 병력과 합세하여 적 기병을 막고 있었다.
”붙으면 위험하다. 흩어져서 싸워라.”
“죽어라”
“억. 탕탕”
459여단장은 기병대가 점점 다가오자 병력을 소대단위로 전개시켜 각개전투를 지시했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총탄에 기병들이 하나둘씩 전장에서 사라져 갔다.
미닌은 자신의 부하들이 속절없이 죽어가자 전장을 이탈하기로 결심했다.
“북쪽으로”
미닌을 태운 말이 기수와 함께 45군단 중앙을 지나 좌측으로 빠졌다. 기병과 아군 보병이 섞이자
잠시 총격이 멈췄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미닌이 말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내 달렸다.
그는 북쪽의 빌헬름경 부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기병대가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4연대는 절망적이군. 전군 신속 후퇴하라.”
사령관의 신속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포병과 459여단을 제외한 모든 병사가 신속히 전쟁터를 이탈했다.
바야흐로 지난 겨울내내 받은 훈련을 성과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사령부는 직할대인 500명으로 구성된 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8연대 진지로 움직였다.
“적이 후퇴한다. 따라잡아라. 와 와”
후미의 러시아 보병들이 달려왔지만 그들은 459여단 병력에 의해 저지당했다.
한번의 일제사격으로 달려오던 병사들이 머리를 처박고 쓸어졌다.
“포병 후퇴”
포위를 염려한 포병여단장의 명령에 90문의 포가 후퇴를 시작했다. 적 기병대에게 한차례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기병대 진행방향에 있던 부대를 제외하곤 피해가 거의 없었다.
적들은 전투보단 진영을 벗어나는 것이 더 급한 것 같았다.
전방에 459여단을 지원나간 500명의 부하들이 걱정이었지만 이미 사령부가 후퇴한 마당에 포병이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말이 채찍을 가하자 포대가 서서히 움직였다.
그들 앞에는 대한제국군 병사들이 서로서로 도움을 받으며 후퇴하고 있었다.
“4연대 전멸. 봉황의 보고에 의하면 적 기병이 북서쪽에서 돌진 중입니다.”
“459여단을 후퇴시키고 기병대로 하여금 적 기병을 막도록 해. 잠시만 막으라고 해.
이럴 때 기관총이라도 몇 정 있었으면 좋으련만. 개새끼들”
강신승은 자신의 부대를 이렇게 죽음으로 내 몬 천군부를 행해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원정군 직속 기병대를 투입했다. 오백기로 팔천기를 상대해야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얼마간이라도 시간을 누군가는 벌어줘야만 했다.
빌헬름경의 기병대는 스웨덴 최강이다. 장갑과 마갑을 갖추고 있어서 보병에게는 천하 무적이다.
빌헬름은 전방에 나타난 대한제국군을 제압하였지만 저들의 전쟁방식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들은 항복이란 단어를 모르는 듯 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드는 대한제국군에게
자신의 부하 천여명이 부상을 당했고 그보다 많은 말들이 기동력을 상실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면 말을 공격하였다. 다행히 여분의 말들이 있어서 망정이지
자칮 잘못하다간 말없는 기병대이라는 조롱을 들을 뻔 했다. 전투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최초 전투개시 후 반시간이 채 되지 않아 대한제국군은 후퇴를 시작했고 이미 전장은 처음 지점에서
상당히 움직여져 있었다. 미닌이 이끄는 기병대가 적 중앙을 휘집고 다니다가 호되게 당하고
자신에게 온 것이 불과 10분 전이다.
“바보 같은 놈들 저 깟놈들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쫒겨오다니.”
빌헬름경은 전방에 나타난 500기의 대한 제국기병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최초로 대하는 적 기병이지만 망원경에 잡힌 그들은 장갑도 마갑도 창도 없었다.
망원경 안에 잡힌 기병이 총과 비슷한 걸 들고 이곳을 조준하고 있는 듯 했다. 작은 연기가 보였다.
“탕”
소리는 연기를 본 후 몇 초 후에 들려왔다.
“젠장 빗나갔군 너무 먼거리 였나 ?”
한 2킬로정도 떨어져 있던 스웨덴 기병 중 지휘관처럼 보이는 사람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던
이기몽중사는 창피했는지 자문자답을 했다. 강신승중장을 8기병사단때부터 보호하던 기병대는
그에 걸맞는 사격술과 승마술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예외적으로 저격용 총이 지급되어 있었고, 1킬로미터의 동전도 놓치지 않는 사격술을
가지고 있었다. 저격용 총은 관통력이 상당해서 스웨덴의 장갑기병에게는 그만이었지만
연사 능력이 없다는 흠이 있었다. 그래서 일분에 5발이 거의 최대 발사 속도였다.
“대대 사격 준비”
대대장의 명령에 500명이 말을 멈추고 저격총을 들었다.
“발사”
“두두둥”
묵직한 총소리가 났다. 부하들의 사격술을 믿어 의심치 않은 대대장은 쌍안경에서 눈을 때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적 기병대는 장갑을 믿고 있었던지 허리를 숙이지도 않고
느긋하게 달려왔지만 일제 사격에 대략 3백여기가 쓰러진 것 같았다.
“노리쇠 후퇴”
“장전”
“조준”
“발사”
다시 한번 일제 사격이 이루어 졌다. 그사이 적 기병대가 1킬로미터 안으로 치 달렸다.
“대대 자유사격”
“탕 탕 타탕”
불규칙적인 음이 들리는 사이 간간이 다른 총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성급한 대원들이 총을 바꿔 반자동으로 사격하는 듯 보였다.
그들에게는 세자루의 총이 지급되었는데 저격용총과 자동 소총 그리고 권총이 그것이다.
그것들 중 누군가 소총을 꺼내든 것 같았다.
자동소총으로 바뀌어지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주인 잃은 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뒤로 후퇴하라”
빌헬름은 자신의 부대가 전멸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여 후퇴를 결정했다.
생전 처음 보는 무기에 앞서가던 자신의 부하들이 속절없이 당했다.
적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피해가 속출했다. 총탄이 갑옷을 뚫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확히 맞은
기병들은 하나같이 낙마를 했다. 그 중 상당수가 중대한 부상을 입었는지 일어나질 못했다.
빌헬름은 귀밑을 살짝 스치고 지나간 총알에 긁힌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어서
후퇴하면서도 한쪽 손으로 상처를 꾹 누르고 있었다.
“자식들 꽁지나게 도망가는데요. 쫓아가서 끝장내버릴까요.”
이기몽 중사가 마치 사격연습을 하듯 움직이는 표적을 따라가다가 방아쇠를 당긴 후
옆 소대장에게 농을 걸었다.
“그럴까 ?”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대대장이 끼어들자 모두들 킥킥대며 웃었다.
“그러다 알보병에게 당할 수도 있지. 그냥 똥침이나 몇 방 놓고 가자고.”
500명의 대원들이 일제히 똥침을 놓듯 적 뒷모습을 향해 사거리를 벗어날 때 까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 가자 알보병이 몰려온다.”
잠시 스웨덴 기병을 붙드는 사이 보병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45군단이 기병들에게 정신없이 쫒겨 제 2 진지로 후퇴를 하고 아침을 맡고 있을 무렵
46군단의 병력은 모스크바를 향해 행군을 지속했다. 산발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46군단은 민병들의
저항을 무시하고 오로지 모스크바를 향해서만 움직였다.
사령부의 명령을 접수한 조만식 소장 469여단 병력을 군단 중앙에 두고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1급 비상령을 내려놓았다. 언제 어디서 적 기병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봉황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46군단은 가급적 빨리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수성만 하면 되었다. 460여단의 포병만 있으면 방어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포탄의 보급만 제대로 이루어 진다면 말이다.
“장군님 화창한 날씨입니다.”
언제나 낙천적인 정보장이 말을 걸어왔다. 조만식은 해를 등지고 있었어 눈앞에 펼쳐진 자연광경에
매료되어 있었다. 초원이 머금은 이슬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서 보석을 깔아놓은 듯 눈앞이
반짝거렸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 다녔다. 한가로운 목가적인 분위기에 지금 자신이
전쟁터에 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을 지경이었다.
“그렇군. 중앙군은 지금쯤 어찌하고 있을지 걱정이군.”
“사령관님이 계신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 점심때면 소식이 올 것입니다.”
“하긴 그분이라면 별 일이 없겠지. 그보다 사라진 기병들에 대한 것은 아직 없나 ?”
조만식은 강신승을 오랫동안 알아왔다. 그가 전투지휘를 한다면 어느 누구도 이기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예 없습니다만. 만일 저들이 우리 뒤를 쫒는다면 오늘 중으로 후미 견시병에게 걸려들 것입니다.
아님 모스크바로 이미 들어갔을지도 모르죠.”
“갑갑하구만.”
그 말을 끝으로 조만식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하늘 위에는 아는지 모르는지 구름들만 흘러갔다.
서울 천군부
“강신승이가 꽤 고전하고 있구만 !”
전투보고서를 읽고 있는 조준옥은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폴란드와 스웨덴이 참전하는 바람에 힘겨운 싸움이
될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되었지만. 의외로 피해가 상당합니다.
지난 전투에서 두개연대가 소모되었습니다. 포병도 상당수 부상을 당했구요. 지원이 필요하겠습니다.”
원정군 위원회장이 조준옥장관을 거들고 나섰다.
천군부는 금년부터 인사 위원회/원정 위원회/신무기 개발 위원회/군기강확립 위원회/각 군
참모위원회를 중심으로 실무 조직을 개편하고 각 위원회 회장단 회의를 최고 의결기관으로 하는
조직 개혁법을 만들어 운영에 들어갔다. 조준옥 장관은 회장단회의 의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앞으로 5년 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권한이 각 위원회에게
위임되고 있어서 앞으로 그의 존재는 상징적인 면이 강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치우천황과
소일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전투보고서를 받고는 원정군 위원회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회의실에 들어가자 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모두 모여서 이번 전투 보고서를 분석하고 있었다.
“볼가강 근처에 있는 21군단을 보내는게 어떨가 싶습니다만.”
“21군단보다는 기병위주의 23군단을 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2군의 주요 병력이 대부분 빠져나가게 됩니다. 더군다나 천인성에서 전장까지는
너무 멉니다.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
원정군 위원들이 각기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설사 3개 군단이 2군 지역을 빠져나가도 신설되고 있는 4군 병력을
잠시 2군에게 맡겨놓으면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습니다.
강신승중장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지금 21군단을 빼내면
폴란드군이 후미를 공격할 경우 만을 방도가 없습니다. 44군단만으론 어림없습니다.”
“이도 저도 위험한 일이군요.”
4군에서 병력을 빼면 안정화되지 않은 하자르 지역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2군의 병력을 빼면 2군은 당분간 텅 비어있게 된다.
무엇보다 천인성에 있는 2군 병력은 전장에서 너무 멀었다. 지금 당장 지원 가능한 병력은
원정군 후미에서 폴란드와 터키를 견제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2군 병력중에서 일부만 가능했다.
“23군단 전체를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 기병사단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전력이라 생각되는 되요.”
“그럴까요 ? 기병사단만으론 좀 부족함이 있습니다.”
결국은 위원회 위원장이 절충안을 제시하여 통과시켰다.
“21군단에서 기병사단하나를 착출하여 러시아 원정군에 임시 배속 시킵시다.
그 공백은 23군단에서 사단을 하나 착출하고. 신설되는 4군 병력은 꾸준히 증원시키고요.
이번 원정에서 피해를 본 장병 가족들에게는 새로 획득된 토지의 일정 양을 불하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가족들의 이주를 적극 권장하시기 바랍니다. “
“천군부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21 기병사단이 이동을 시작했답니다.
늦어도 7일안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7일이라 그동안에 조만식이는 모스크바를 공격하고 있을 텐데. 음…”
잠시 생각을 정리한 강신승이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우린 방어전을 치른다. 21기병사단과 연락이 되는 데로 46군단을 바로 쫒아 가라고 해.
이곳보단 그곳이 더 중요하니까.”
지금 45군단이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전격적인 후퇴를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온다는
지원군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니. 참모진들이 받아드리기 힘든 명령이었다.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린 여전히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차라리 전면의 적을 물리치고 나서 가는 것이…..”
작전 참모가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모두들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눈빛을 사령관에게 보냈지만
강신승은 참모진의 의견을 무시했다.
“아니야 우리가 방어전을 펼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적이야, 여의치 않으면 우리는 뒤로
물러나면 되고. 그보단 적의 심장부를 점령해서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게 중요해.”
“알겠습니다. 그럼 전군에게 방어전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보급에 대한 불안감도 상시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은 너무 위험합니다.”
로마노프의 군대는 적을 물리치긴 했지만 승리라고 하기엔 너무 희생이 컸다.
기병 중 오천이 죽거나 다쳤고 스웨덴 기병도 삼천이 전투력을 상실했다. 상대적으로 보병들은
피해가 적었지만, 적을 만나지도 못하고 당했기에 두려움은 훨씬 심했다.
무기 성능의 차가 극명했다. 보병은 적에게 접근하기 전에 전멸할 것만 같았다.
“적의 중심세력은 기껏해야 이/삼천입니다. 특히 포병과 적 기병대는 가공할 만한 무기를
소지하고 있어서 대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저렇듯 저들이 전면전을 피하면
우리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포대는 포 한번 쏘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빌헬름경이 전장에서 주어온 대한제국군 소총을 만져보았다. 소총은 자신들의 화승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세공되었다. 지금 전장터가 아니라면 당장 분해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 소총을 휘두르며 로마노프와 다음 작전을 상의 중이였지만 적의 소수 병력을 깨부술 만한 작전이
떠오르지 않았다.
“폐하 지금 적들이 구축된 진지를 보강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회의실을 들어온 장교하나가 들어오자 회의가 잠시 중단되었다.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숫적으로 저희가 훨씬 유리하니 이번에 끝장을 보심이 어떨지요.?”
다친 곳을 붕대로 감고 있던 빌헬름경이 말을 이었다.
“지금은 모든 병사들이 지쳐있으니 오늘은 일단 진영을 정비하도록 합시다.
세부적인 공격계획을 세워서 내일 아침에 총 공격을 개시합시다. 모스크바에서는 연락이 없나.?”
“네 폐하 아직 없습니다.”
“불안하군 벌써 이틀이 지나가고 있는데.
각 영주들에게 지원병을 보내라는 명령문을 다시 한번 보내라.”
로마노프는 지금 쯤이면 모스크바에서 뭔가 전령이 오고도 남을 시간이였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모스크바를 떠나면서 각 지뱡에 나가있던 모집관에게 내린
명령에 대한 회신도 도착하지 않았다.
“네 폐하”
다음날 아침 로마노프는 각 부대장들을 소집하여 대한 제국군을 공격할 세부계획을 짜기 위한
작전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부대를 돌아보았다. 어제 있었던 전투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의
신음소리와 고함소리가 만들어낸 공포 분위기가 부대 전체를 휘감았다.
“으으 ! 마마”
한 병사가 엄마를 부르며 신음하는 모습을 본 로마노프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자신이 러시아 제국의 황제이지만 저 아픈 병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 병사의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로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질 않았다.
머리에는 어디서 찢어 냈는지 모를 더러운 천이 빙빙 둘려져 있었다.
아마도 그는 바닥에 아무 것도 깔지 않고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밤을 지샌 듯 했다.
“부상병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라. 남쪽에 있는 툴라로 보내는 것이 좋겠소 니콘공 !.”
연신 성호를 긋고 있던 니콘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지금 저희의 병력이 많다고는 하지만 적에 비해서 월등 한 것은 아닙니다.
부상병들을 호위할 호송병들조차 아쉬운 형편입니다.”
니콘이 현실적인 문제를 상기시켜 주었다. 하지만 대한 제국군이 후퇴하지 않는 이상 조만간 전투가
벌어질 것이고 다행이 자신의 부대가 이기면 모르지만 만약게 지거나 후퇴하게 되면
저들은 대한제국군의 화풀이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단 움직일 수 있는 자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이곳을 떠나라 하십시오.
일단은 살길을 열어 줍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니콘은 그것까지 반대할 수는 없었다.
부상병의 호송 문제는 작전회의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빌헬름경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빌헬름 역시 어제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자신도 부대를 이끌고
후퇴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하룻밤을 보내면서 어제의 전투를 생각하자 소름이 솟았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러시아를 위해 죽고 싶지는 않았다.
“폐하, 부상병을 후방으로 후송조치 한다는 것은 지당하신 결정이십니다.
저희 기병대 역시 적지않은 부상자가 발생해서 더 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만…..”
빌헬름의 발언이 끝나기도 전에 러시아 장군들의 고성이 오갔다.
“지금 그걸 말씀이라 하십니까 ? 당신은 지금 적이 무서워서 도망치겠다는 거요 ?
보병들이 무서워서 도망가는 기병대는 스웨덴 기병대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닌 장군이 소리쳤다.
“뭐요 ? 당신 지금 대 스웨덴 기병대를 겁쟁이라 생각하시는 거요 ? 전쟁터에서 도망다닌게 누군데
그럴 말할 자격이 있다고 보시오 ? 난 도저히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소 이런 모욕을 주다니…”
궁지에 몰린 빌헬름이 꼬투리를 잡아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버리자 로마노프가 안절 부절했다.
적을 앞에 두고 내분이 일어난 것이 자기 때문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황제의 마음을 읽었는지 니콘경이 그를 위로하였지만 여전히 마음이 뒤숭숭했다.
“황제 폐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빌헬름경이 말은 저렇게 해도 떠나지는 못 할 것입니다.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텐데 자국의 명예에 먹칠할 사람은 아닙니다. 일단 부상병들을 후송하는
문제를 매듭짓고 작전회의는 내일로 미루시지요. 제가 빌헬름경을 만나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풀이 죽은 로마노프가 대답을 했다. 17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지금 이 고비만 잘 넘기는 황제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굳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니콘의 중재로 러시아군 진영이 다음 공격 작전에 대한 합의를 본 것은 최초의 전투가 있은 후
삼일이 지나서고 미닌의 기병이 선봉을 서기로 했다.
시세말로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었지만 미닌이 한 말이 있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폐하 저에게 다시 한번 선봉을 주시니 망극할 따름입니다. 적들의 목을 모조리 잘라오겠나이다.”
“미닌 장군만 믿소.”
로마노프는 출정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미닌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완연함 늦봄인데도 밤은 여전히 추웠다. 오늘도 아무일 없이 지나간 것에 감사하며 새벽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초병들은 시간이 빨리 흘러서 교대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따뜻한 막사 안에이 그리웠다. 코앞에 적이 주둔하고 있었고, 며칠 전에는 큰 전투도 있어서
고참병들이나 신병들이나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초병들이 경계를 게을리 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수시로 순찰장교가 나타나서 만약 그들에게 잠자는 모습이 걸리기라도 하면 바로 사형이었다.
아직 까지는 사형을 당한 초병이 없었지만 전시에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다.
“히이잉”
갑자기 들려온 말 울음소리에 참호에 쳐박혀 있던 초병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의 참호는 진지에서
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서 말 울음소리가 이렇게 가까이 들려올 수 없었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한 고참병이 전방을 주시하기위해 고개를 내밀자 마자 화살이 날아와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이렇게 가까이 초병이 있을 줄 몰랐군”
한 러시아 장교가 식은 땀을 닦아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말에서 내려 조심조심 대한 제국 진영으로 다가가던 미닌의 기병대가 진지를 먼저 발견하고
제압해 나갔다. 하지만 대한 제국의 경계병들은 300미터마다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최초 접촉 후 500미터를 전진하지도 못하고 적 초병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전군 승마하라.”
미닌은 하늘 높이 올라가는 신호탄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이미 자신의 야습이 알려진 바에야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급했다.
“돌격”
“두두두두두두”
수천기의 기병이 일제히 승마하자 마자 앞으로 돌진해 나갔다.
“전투준비”
진영에 울리는 비상전투 명령을 알리는 비상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막사에서 새우잠 자고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창병들이 중앙에 집결하기 시작했고
포병들은 자신의 포로 뛰어가 포격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상시 대기조인 20문을 제외하곤
포사격을 준비하는데 10분이상이 필요했다
“펑펑펑”
이미 조명탄이 장전되어 있던 20문중 10문이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어둠이 걷히면서 병사들의 두려움을 약간이나마 해소시켜 주었다. 적들은 전방에서
넓게 퍼져 몰려들고 있었다. 포격의 피해를 줄이기위해 밀집대형을 포기한 듯 보였다.
“사격 제원이 나왔다. 둘둘공삼 하나삼넷 모든 포는 장전하고 발사명령을 기다린다.”
“온다. 사격준비. 우선적으로 적 지휘관을 노려라”
500명의 특등사수들은 자신의 애마에 올라 가지도 못하고 사령부 주위에 포진하고 정조준을 하고
있었다. 적 기병은 이미 진지 외곽에 쌓아올린 토성을 뛰어넘어 진지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여기저기서 보병들과 기병들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방에 하나씩이다. 자유 사격.”
“텅 텅”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사수들은 총알을 낭비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발에 하나씩이라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미닌의 부대가 잘 하고 있구만 이제 보병을 투입시킨다. 빌헬름경은 보병들이 적 진지를 타고
넘을 때 바로 들어가시오. 포병을 준비시키시오 토성을 무너뜨려야 겠소.”
로마노프에게서 지휘권을 인수받은 니콘공이 병력 투입시기를 조절했다.
“보병 투입”
명령을 접수한 보병부대장들이 명령을 전파했다.
“전군 돌격”
“와와와”
어둠이 병사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감싸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때론 위안이 되기도 한다.
주위에 전우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지 못해서 자신만의 전투에 집중할 수 있었다.
“1번/10번 조준완료”
“장전완료”
비상이 걸리고 제일 먼저 달려온 병사들에 의해 이제 겨우 10문이 발사 준비를 마쳤다.
여단장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발사 명령을 내렸다. 그가 직접 각 포대의 사격을 통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워낙 상황이 급하다 보니 각 포대장들이 해야할 명령을 직접 내리고 있었다.
“발사,”
“꽈광”
“20/30 완료”
“좌로 30 발사”
포병대에서 쏘아올린 포탄들이 1킬로미터를 날아가 돌진하는 보병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화력이었다.
조명탄의 성능이 우수하지 못해서 포병대는 자신의 사거리를 충분히 활용할 수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럴 때 봉황에서 조명탄이라도 떨구어주면 좋았겠지만,
봉황에게는 기본 무장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적들이 몰려온다. 준비하라.”
토성주위에서 방어전을 펼치고 있는 보병들은 적 기병대를 흘려 보내고 이제 적 보병을 상대로
진정한 싸움을 준비해다. 그때 3연대 2중대가 맡고 있는 토성이 굉음과 함께 허물어졌다.
“적의 포격이다. 통신병 통신병?”
3연대장은 급히 무전기를 들고 포병대를 호출했다.
“전방에 적 포병이 전개중이다. 급히 제압바란다. 현지점에서 앞으로 삼백에 천 좌우로 이백.”
연대장의 대포병 제압 사격 요청에 대한 응답이 없었다. 몇 번 좌표를 이야기 하던 연대장이
무전기를 팽개쳤다.
“뭐하는 거야 개새끼들”
연대장은 깜깜한 건너편에서 보이는 불빛을 보고 어림짐작해서 적 포병의 위치를 불러주었다.
그 사이에도 러시아 보병이 토성을 타고 넘어 들었다. 토성의 높이가 채 1미터가 되지 않았고
포격으로 곳곳이 무너져 내려 수만의 병력들이 대한 제국군 진영으로 밀려들어 왔고
그것을 막기위해 처절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조명탄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총소리와 말소리, 고함소리, 울부짓는 소리,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들로 주변이 가득찼다.
“탕”
사령부를 향해 달려오던 적기병이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이제 전장에는 말 위에 있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459여단병력이 사령부를 에워싸고 집결해 있었다.
그들은 근접전에서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병력을 전장에서 잠시 빼내었다.
“적 기병이 남쪽과 서쪽에서 몰려옵니다.”
모든 통신망에서 지원요청이 쇄도했다. 사령실은 난장판을 옮겨놓은 것 처럼 시끌벅쩍했다.
적은 이번 작전에 모든 가용병력을 다 쏟아 붇고 있었다.
새로 나타난 기병대는 아무래도 포병대를 겨냥하고 달려오는 것 처럼 보였다.
“스웨덴 기병인가 ? 포병들은 개인화기로 무장하고 대기하라.”
강신승 중장은 상황이 어렵게 전개되자 오히려 덤덤한 기분이 들었다.
“21사단에게 구원요청하고, 우리는 여기서 오늘 뼈를 묻는다.
21사단을 이곳으로 바로 오게 했어야 했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었다.
“꽈광 과과광”
450여단은 스웨덴 기병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 급히 소총으로 무장했다.
그들에게는 일인당 100발의 탄약만이 지급되어 있었다. 지금 상황으론 턱없이 부족했지만
평시에는 너무 많은 양이였다.
“적 중심으로 바로 들어간다. 돌격. 필립 중대는 포대를 제압하라.”
빌헬름경이 토성을 넘기 전 소리쳤다.
백명씩 조를 이룬 자신의 부하들이 전투지를 휘저으며 달려 나갔다.
곳곳에서 러시아군이 지른 불로 인해 막사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연기와 시체타는 냄새가 빌헬름의 코를 자극했다.
“헉”
총탄이 날아와 빌헬름의 어깨를 관통했다. 하지만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주위엔 혈전이 벌어지고 있어서 속도를 줄이면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날아들지 몰랐다.
“가자.”
그의 주위를 수십명의 근위대가 애워싸며 전진했다.
달려드는 대한제국군은 마상에서 휘들르는 칼에 맞아 픽픽 쓰러졌다.
삼만의 대한 제국군과 사만의 러시아군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혈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46군단은 모스크바를 공격할 준비를 마치고 내일 아침에 있을 세부작전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기병의 습격을 받기도 했지만 큰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적들은 군단에 접근하기도 전에 469여단에 의해 저지당하곤 했다.
“오늘은 유난히도 별이 많군. 내일은 날씨가 청명하겠어. 모든 병사들은 잘 자고 있는지.”
조만식 소장은 막사를 나와 병사들이 잠들어 있는 막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그는 새벽에 진영을 둘러보곤 하였다. 한참을 돌아다니자
주위가 어렴풋이 밝아왔다. 하루가 또 시작되는 것이다. 어제 온 전문에 의하면 45군단은
첫 전투에서 승리도 패하지도 않은 체 20킬로미터를 후퇴했다.
적잖은 사상자를 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자신이 내일 모스크바를 장악하면 이번 전쟁은
사실상 종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강신승중장이 온 몸으로 러시아군대를 막고 있는 사이
자신은 한 시간이라도 빨리 수도를 점령하고 새로운 법령을 공표해야만 했다.
모스크바 공략의 시작을 알리는 포탄이 모스크바를 향해 우렁찬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100문의 동시 사격은 가히 장관이다. 모스크바 시내는 몇 년전 폴란드군에 의해 철저히 밟히고 나서
다시 대한제국의 포탄에 짓 이겨지고 있었다. 로마노프의 명령의 받은 지방의 영주들은
모스크바에 지원병을 보내지 못했다.
각 지방에서는 로마노프를 인정하지 않는 귀족들이 시시탐탐 반란을 꾀하고 있어서
그들을 경계하기에도 바빴다. 노브로고드에 있는 스웨덴 군은 노브로고드를 떠나지 않았다.
스웨덴은 더 많은 군대를 파견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몇몇 북쪽에서 구원온 병력과 기존의
모스크바 수비대를 합쳐 겨우 일만의 병사가 4만의 대한 제국 군을 맞이했다.
모스크바에 있던 대부분의 귀족들은 대한 제국군이 다가오자 자신의 영지로 피난을 떠났버렸다.
황제가 이끄는 군대가 승리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모스크바를 비워버렸다.
모스크바에는 시민들 5만이 전부였지만 그들은 대한제국군과 싸울 힘이 없었다.
수비대장인 니꼴라이는 포격을 맨몸으로 견디고 있는 자신의 군사들이 불쌍해 보였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유럽의 공격과는 차원이 다른 포격이 지금 모스크바 시내에 퍼 부어졌다.
역부족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동란 중에 성곽은 이미 허물어져 보수하지 못한 곳이
태반이었고 크레물린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어 몰살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스크바를 최대한 빨리 접수한다. 전군 돌격”
어느 정도 포격으로 진입로가 확보되자 조만식은 전군을 동원하여 모스크바를 공격했다.
모든 군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460여단은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성벽을 타고 넘은 선봉을 선 461연대장의 포격중지요청이 있을 때까지
100문의 포가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일순간에 포격이 멈추자 온 주위가 잠깐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포병들은 혹시 있을 지원포격을 위해 장전을 서둘렀다.
조만식소장은 초조히 성곽에 태극기가 걸리길 기다렸다.
“장군님 저기 태극기입니다.”
그때 성곽의 가장 높은 곳을 행해 태극기를 들고 달리는 한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거침없이 올라가 한 손에는 총을 한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두 손을 번쩍들어 올렸다.
그리곤 몇 번 흔들더니 힘차게 내리 꽂았다.
“만세 만세”
사령부 인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만세를 불렀다.
안쪽에는 아직도 전투가 한창이었지만 사령부 요원들은 전쟁이 끝난 것을 직감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모스크바 시민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모스크바 거리는 대한제국 병사들로 가득 찼다.
“여단 병력을 투입해서 패잔병을 소탕한다.”
혹시 있을 지 모를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예비대로 남겨놓은 총병여단을 투입했다.
조만식 소장은 옷깃을 한 번 매만지고는 사령부 이동을 명령했다.
“서둘러라 원정군 사령부가 위험하다.”
21사단장이 기병대를 인솔하며 벌판을 달려 나갔다. 봉황으로부터 급전을 받은 21사단 병력은
46군단의 후미를 뒤따르기 위해서 길을 북쪽으로 잡아 내달리던 중 급히 방향을 남서쪽으로 틀었다.
“통신대, 통신대?”
사단장이 급히 통신대를 불렀다. 벌써 10번째 사단장이 통신대를 닦달했다.
고속 기동을 위해 기본 중장비를 모조리 뒤에 남겨놓고 소수 병력만 남겨놓은 21사는 45군단에
100킬로미터까지 접근하기 전에도 통신이 연결되지 않았다.
언제나 사단장과 함께 움직이는 사단 통신대대장이 계속해서 45군단을 호출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45나와라 45나와라”
보다 못한 사단장이 통신대대장에게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봉황을 부르란 말야 봉황”
통신대대장이 한참이 지나서야 사단장의 고함소리를 알아듣고 봉황을 불렀다.
하지만 봉황에서도 응답이 없었다. 300킬로의 통신대역을 확보할 수 있는 봉황은
지금 45군단 머리위에서 전투중인 45군단에게 정보를 주기에도 바빴다.
“장군님 우측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후퇴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간신히 적 기병대를 물리치고 지휘부를 에워싸고 있던 독립기병대대가 말 위에 올라 연신 총탄을
날려 댔다. 그 와중에 오른쪽을 맡고 있던 8연대 병력이 방어선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지휘부로 향하던 기병대가 강력한 화력에 막혀 방향을 8연대로 틀자 순식간에 전선이 무너져 내렸다.
적의 기병대는 위치를 바꿔가면서 총격을 피해 다녔다. 그들이 몰려 다니는 동안 보병들은
제대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미 조명탄을 다 소비했는지 어둠을 밝히는 것은
막사에 난 불이전부였다. 어둠속에서 말울음 소리와 함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병대는
“이미 아군과 적군이 뒤섞여 있어서 우리는 포병을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적은 토성까지
포대를 끌고와 포탄을 날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파괴력이 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참모진들이 후퇴를 종용하는 시간에도 사방에서 들려왔다.
적들이 이미 지휘부까지 치고 들어온 듯 보였다.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된 후퇴를 하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두세시간 후면 21기병이 도착 할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버텨보죠. 사령관님 ?”
강신승은 아들이 떠올랐다.
강삼호는 이제 육군사관생도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휼륭한 군인이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애기하곤 했다.
정작 자신은 아버지로서 아들이 어렸을 땐 전장을 떠돌아 다니느라 놀아주지도 못하고,
커서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다. 못 내 아쉬웠다.
“사령관님 ?”
참모들이 자신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나 살자고 나만 도망가란 말인가 ?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후퇴한다.
모든 장비를 버리고 신속이 후퇴한다. 독립대대는 맨 마지막에 후퇴한다. 방향은 21사단.
가용 통신수단을 전부 동원하여 전파하도록”
사령관의 명령에 통신대대와 참모진들이 각 예하부대에 명령을 전파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어서 얼마나 많은 인원이 빠져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말에 오르시지요”
참모장이 말을 끌어다 지휘부에 대었다. 강신승이 말에 오르길 기다리던 본부중대와 통신대대원들이
길을 열며 지휘부를 인도했다. 강신승이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앞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무의식적으로 팔을 들었다.
화살 하나가 날아와 오른팔에 깊숙이 박혔다.
“으윽”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너무 아팠다. 팔에서 오는 통증보다 가슴 깊은 한 구석에서
흘러나와 가슴위로 치솟아 버리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는 총을 빼들고 뒤로 획 돌아 자신에게 활을 쏜 자를 찾았다.
한 러시아 병사가 화살을 메기는지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총을 들어 조준한 강신승이 방아쇠를 당기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활을 들던 병사가
머리가 뒤로 확 져쳐지면서 쓰러졌다.
“가자”
자세를 바로한 강신승이 양발에 힘을 주자 말이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 뒤를 참모들이 뒤따르고 중대원들이 강신승을 앞질러 나갔다.
모스크바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외곽에 수비병력을 배치할 무렵 연락선인 봉황에서
전황에 대한 간략한 연락이 들어왔다. 전문을 받아 든 조만식 소장은 잠시 주위를 물렸다.
그의 두 손에는 원정군 사령부이자 45군단의 전투에 대한 간략한 보고가 들려 있었다.
어제밤의 전투는 양패구상이었다. 월등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밤에 시작된 전투는 포병 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한 상태에서 백병전이 벌어져 기병이 없는 45군단이 거의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 뒤로 또다시 후퇴를 했다. 대한제국 진영에 들어온 러시아군은 곧이어 들이친 21기병사단이
러시아군과 스웨덴군을 끝까지 추격하여 러시아군을 제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강신승중장은 오른쪽팔과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고 치료중이었다. 그는 침상에 누워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부하 4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자신은 이제 은퇴해야할 만한 부상을 입었다. 다리를 뚫고 지나간 화살 때문에 살이 점점 썩어갔다.
그는 옆구리에 찬 권총을 매만졌다. 금속이 가지는 차가운 기운이 손끝을 타고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섬뜻한 살기가 몰려오는 듯 하여 권총을 더욱 세게 휘잡았다.
작은 불씨들
1613 여름
강삼호 사관생도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러시아 원정군 사령관이신 강신승 중장의 자살소식을
교장님에게 전해 들었다. 그의 죽음은 극비로 취급되고, 대외적으론 전사로 처리되어 전사자 규정에
의거 장례식을 치렀지만, 모두를 속일 순 없었어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네. 강군 !”
“아. 네. 아버지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이리라 믿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강삼호는 강신승의 죽음을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그는 타고난 무인이셨다.
자상한 지아비와 아버지는 되지 못했을 망정 제국의 번영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르신 분이셨는데.
차기 천군부를 장악할 인물 중 한명으로 지목되기도 했던 분이 속절없이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건 말이 안돼. 천군부에서 아버지를 버린거야.’
교장실을 나오며 바라본 운동장은 평화롭기만 했다.
한 영웅이 죽든 말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 분통이 터졌다.
러시아는 아직도 정리 전투가 진행중이었다. 모스크바가 대한제국군에 점령되자
폴란드군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그곳을 폴란드의 영토로 공표해버렸고
스웨덴 역시 모스크바 북쪽을 자신의 영토로 천명했다.
로마노프는 천신만고끝에 간신이 전장을 탈출하여 스몰렌스크로 도망갔다가
다시 스웨덴으로 망명을 떠났다.
스웨덴왕은 그를 러시아의 새 왕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며 대한제국만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다.
대한제국은 각지의 반란군을 토벌하느라 두 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자제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들을 공격할 생가이었다.
천인단에서는 새로이 획득된 러시아를 안정시키기 위해 안드레이 고드노프를 러시아 임시 참정관으로
임명하여 행정직을 수행하게 하고 주둔중인 대한제국군에 대한 보급을 책임지게 했다.
러시아에서는 대한제국군과 살아남은 귀족들사이의 죽고 죽이는 숨바꼭질이 한창일 때,
상해함대 사령부는 예상과는 달리 대서양으로의 진출이 어렵게 되자,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좀더 손쉽고 안전하게 대서양으로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원정대를 파나마로 파견하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총10척으로 이루어진 파나마 원정대는 최신식 군함으로 모두 역삼투압식 조수기를
장착하고 있어서 그동안 원양항해의 최대 걸림돌인 식수와 냉각수 문제에 봉착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다. 수송선 반 전투함 반인 이번 함대는 순양함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건조된
함정이 대부분 이었기에 장기간 작전수행능력이 있었다.
모두 원산 조선소에서 건조된 것으로 각 함정은 125미리 함포 다섯문과 40미리 기관포
그리고 최초로 20킬로미터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가 장착되었다.
1613년 6월 10일에 상해를 떠난 파나마 원정 함대는 대권항해를 하지 않고
일본 요코하마에서 이어지는 열도를 따라 괌까지 남하했다. 많은 섬들이 일본함대에 점령당하고
해병대들이 주둔하고 있어서 보이는 섬 꼭대기에는 태극기가 펄럭였다.
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그들은 수없이 많은 군도들을 지나 북위 10도를 기준점으로 동진을 시작했다.
거의 무풍지대나 다름없는 해수면은 잔잔하기만 해서 15노트의 속도를 계속 유지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가끔씩 마주치는 섬들은 기나긴 여정에 청량제 역할을 하곤 했다.
천군부에서 독촉하지만 않았다면 그들은 만나는 섬 마다 한 열흘씩 묵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파나마 함대가 상해를 떠난 지 꼭 한달이 지난 7월 10일 목표지점인 북위 9.00 동경 100.00 지점에
도착했다. (지금의 날짜변경선을 기준점으로 정한 새로운 좌표법)
수송선 갑판에는 봉황이 하늘로 떠오를 준비로 부산했다. 봉황은 대서양까지 약 70킬로를 날아갔다
돌아오면서 수로를 조사하고 주변의 위험요소를 관측하는 임무를수행한다. 갑판중앙에서 봉황요원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바라보던 갑판 요원들이 수측장교의 고함소리에 양현으로 달려가 줄을 잡아 당겼다.
“좌현부터 내린다. 일번부터 차례로 줄 풀어”
유사시 구명보트로 이용되는 각 선박의 좌우현에 매달려 있던 소형 동력선이 줄에 걸려서
흔들거리며 내려왔다. 동력선에는 해병대원 5명과 수심 측정관 2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 수심을 측정하고 내륙 깊숙이 들어가 함대의 이동로를 확보하는 임무를 맡았다.
총 열척의 동력선이 다 내려지자, 동력선들이 수로를 개척하기 위해 함대 앞으로 나아갔다.
해안과는 약 4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서 해안으로 함대가 접근하는데만 해도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 같았다.
30미터짜리 쇠막대기 같은 것이 선미와 선두에 매단 수심 측정선이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측정선 아래에는 음파탐지기가 장착되어 있었으나 그 성능이 의심스러워 확실한 측정을 위해
음파탐지와 직접 측정법이 동시에 수행되었다. 함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0미터의 수심이 확보 되어야만 했다.
“피익 피익 피익”
예정 진행 항로 중심에서 좌측 20미터 위치에서 전진하던 3번 수측선에서 경고음이 들려왔다.
암초가 발견된 것 같았다. 정확한 위치와 위험주변을 탐색하기 위해 3번함이 주위를 맴돌았다.
3번함은 노란색 부표를 하나 떨어트렸다. 부표 아래에 매달려져 있는 50킬로그램짜리 쇠덩이가
줄을 매달고 바닥으로 가라 앉았다. 수심이 15미터를 약간 하회했다.
그럭 저럭 꼬박 3시간이 지나서야 해안 5킬로미터까지 접근한 이만톤급 수송선들이 닻을 내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접근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사이 봉황은 대서양을 왕복을 한 후
보고서를 작성하여 함대 사령관에게 올렸다.
원정대 사령관인 박만우 소장은 앞으로의 세부 계획을 확인하기 위해서 봉황에서 올린 보고서와
각 부서에서 올린 보고서를 책상 가득 펼쳐 놓고 손에는 확인 책철을 잡고서 연필로 하나 하나씩
확인해 나갔다.
“천군부에서 받은 정보와는 많은 차이가 있구만 실제 지형에 맞도록 설계를 수정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는데…. 접안 시설을 먼저 만들어야 하나, 주둔지를 먼저 조성해야 하나 ?”
박만우 소장이 고민하다가 함교와 연결된 전화기 단추를 눌렀다. 연결음이 들리더니
이내 당직장교의 음성이 들려왔다.
“함교입니다.”
“나 박만운데 기상장교 거기 있나 ?”
“충성 대위 이기철.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요”
“충성 대위 소망. 찾으셨습니까 ?”
“어 그래. 자네 앞으로 한달간 기상을 알 수 있나 ?”
“네. 정확한 것은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은 대체로 비가 많이 오는 열대성 기후대입니다.
연중 고온 다습하고 일교차가 큰 편입니다. 그렇게 볼 때 앞으로 비오는 날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람은 그렇게 불지 않을 것 입니다만…”
“되었네 그정도면 충분하군.”
박만우 소장은 일단 주둔지를 건설하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좁은 선상에서의 생활은 장병들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고 땅을 밟으며
생활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사령관님 긴급 전문입니다. 작전실로 와 주십시오?”
갑자기 선실 전체에 비상을 알리는 경광등이 들어왔다. 경고음이 울리지는 않았지만
거의 전투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무슨 일인가 ?
박만우 소장이 송화 단추를 눌렀다 놓았다.
“남쪽으로 약 30킬로미터 이격거리에 대규모 마을이 발견되었습니다.”
“알았네. 지금 곧 가지”
박만우는 널부러져 있는 책상을 그대로 남겨둔체 자신의 방문을 나섰다.
천군부에서 제공한 정보에는 예상 지점에 대규모 마을이 존재할 거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뛰다시피해서 지하 일층에 마련된 작전실에 들어가자
요원들이 모두들 짧게 경례를 했다.
“편히 하게. 자세히 설명해봐?”
“네 금일 해가 지자 봉황이 주변 탐색을 위해 남과 북으로 각각 100킬로를 정찰하기 위해
출항했습니다. 밤이라 만약 마을이 있다면 발견하기 쉬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남쪽으로 내려가던 봉황이 상당히 큰 주거지를 발견했다는 긴급보고가 방금 들어왔습니다.
도시 형대를 갗추고 있는 듯 하다는 의견입니다.”
잠시 보고를 듣고 있던 사령관은 의문 투성이었다.
천군부에서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천군부에서 내려온 정보에는 없는 도시 아닌가 ? 그럼 주변에 더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이 되는데. 걱정이군 우린 해병대가 겨우 일개 연대도 안 되는데 !
음. 일단 주요 지휘관들을 호출해서 대기 시키도록. 봉황에게는 좀더 정밀 정찰을 지시하고.”
통신병들이 각 함을 일일이 호출해서 함장과 주요 지휘관들을 각 함의 통신실에 대기하도록
명령을 전파했다. 함대 전체에 비상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불과 5분도 되지 않아서
통신병이 각 지휘관들의 정위치를 보고했다.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금일 함대에서 남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에
도시가 존재하고 있음을 봉황이 발견했다. 어느 정도 인구가 상주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우리에게 호의적인 집단인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예정된 작업은 이번 건이 해결 될 때까지
연기되며 앞으로 함대는 2급 전투 태세를 항시 유지 한다. 각자의 의견을 말해주기 바란다.”
박만우 소장이 상황설명과 함께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3번함장 마상기중령입니다. 수색대를 투입해서 좀더 정확한 정보를 취합하기 전까진 확정지을 수
없지만, 부관 생각으로는 스페인인이나 포르쿠갈인들이 건설한 도시로 사료됩니다.
자료에 의하면 그들은 이곳에 100년 전부터 식민지 건설을 해 왔습니다.
벌써 이곳까지 진출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공격하여 도시를 접수하는 작전을 건의 합니다.
성공한다면 우리로서는 시간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네는 우리가 겨우 일개 연대병력의 해병대만 보유하고 있는 걸 알고 있나 ?”
박만우 소장은 투입 가능 병력이 소수임을 상기시켰지만 마상기중령은 자신의 뜻을 고집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그정도 병력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잠시 점령은 가능할 지 모르지만 영구 점령을 무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져온 물자로는
장시간 농성이 불가능하고 또 저들이 얼마나 많은 전투 인력을 확보하있는지 모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원주민을 총알받이로 무한대 투입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린 이곳 지리와
풍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월등한 전력우위를 보이지 않는 한 피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단동에서는 이번 건설에 투입될 인부를 실은 1차 수송선이
출발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대비도 아울러 마련해야 합니그러자면 신속히 제압해야만 합니다.”
마중령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들과 찬성하는 의견들이 개진되었지만 장단점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정보의 부족은 박만우 소장의 판단을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의견들 없나 ?”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좋은 의견이 나오지 않자 박만우 소장이 이제 그만 회의를
종결시키고자 했다. 언제까지 공론만 할 수는 없었다.
“일단 145번함을 극동으로 보내 지원을 요청한다. 145번함은 지금 출항하도록.
내일 수색대를 문제의 지점에 파견한다. 해상로를 통해 침투할 게획을 세우고
작전계획서를 자정까지 올리도록. 동력선들은 밤새 함대 주변을 정찰하고 접근하는 미상의 물체를
차단하라. 일단은 문제의 도시를 점령하는 것으로 하겠다.
그에 맞춰 세부 계획을 내일 정오까지 수립해고 지금 이시각부로 1급 전투 태세로 전환한다. 이상”
1급 전투 태세는 전승무원이 전투태세를 24시간 유지하는 것으로 모든 함포에는 포탄이 장전되고,
각 함의 엔진은 즉시 함을 움직일 수 있도록 유지된다.
아울러 승무원들은 옷을 입고 신발을 착용한 그대로 잠을 자야 했고, 세수도 못했다.
회의가 종료되자 명령을 받은 145번함이 함대를 이탈하여 극동부로 전속 항진을 시작했다.
16세기 초에 페드라리아스가 발보아를 물리치고 이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이래 파나마시는 스페인과
식민지 사이의 약탈물 수송의 중심지로 발전해 있었다.
대대로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 가문의 최고 어른인 페드라리아스 3세가
이상 물체의 발견을 보고 받았지만 그는 인디오들의 장난쯤으로 생각했다. 타원형의 어마어마하게
큰 공 같은 것이 하늘을 떠다녔다는 보고를 듣고 그는 피식 웃었다.
그의 상식으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이었기도 하거니와 이곳 인디오들은 괴상한 전설을
잘도 지어내곤 했기 때문이다. 파나마시는 아주 견고하게 지어진 요새로 포가 20문이나 배치되어
있었고, 페드라리아스의 휘하에 병력만 5천명이 넘었다.
시 외곽에 거주하는 주민까지 합하면 총 인원이 3만이 넘는 대도시다.
새벽에 파나마시를 정찰한 수색 중대원들이 다시 함대로 돌아왔다.
수색 중대의 보고를 받은 박만우 소장은 파나마시 공격을 포기해야만 했다.
함포로는 효과적으로 요새를 공격할 수 없었다. 물론 포병을 대동하지도 않았다.
수송선에 실려있는 것들은 대부분은 건설 기자재와 식량이 대부분이다.
“파나마 공격을 취소한다. 전 함대는 2급 전투태세로 전환하고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50킬로미터이상 북상하여 전진 기지를 건설한다.”
박만우 소장은 일단 이 지역을 벗어나서 좀더 북쪽에 해안 기지를 건설하고,
천군부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기로 했다.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를 공격하기엔 무리였다.
그의 명령에 9척의 함대가 파나마만을 벗어났다.
박만우 소장의 결정은 향후 5년동안 이 대규모 역사에 매달려 하나의 인공호수와 여섯개의 관문을
설치하고 두개의 댐을 건설해야만 하는 대규모 공사를 지연시켰다.
연인원 포로 만명/기술자 오천명/공병여단 이천명 5년동안 총인원 십만명이 투입되는 거대한 공사가
정보 미숙으로 인해 최소한 일년 이상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1613년 여름
천군부는 정복전쟁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시작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의 피해가 민심에 적잖은
영향을 끼쳐서 한족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다행 스러운 일인지 모르지만 군역을 피해
극동부나 섬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광활한 대륙을 경영하기 위해 병력의 부족을 느낀 천군부는 대규모 정복 전쟁을 당분간 지양하고
해군을 통한 대양지배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기존 해군에서 소속되어 있던 해병사단을 통합하여 하나의 군을 형성하고
전략기동군을 창설한다. 전략기동군은 육군의 군사령부와 같은 지위를 확보하고 그에 걸맞는 병력과
함대를 향후 10년안에 보유하게 될 계획이다.
당분간 육군의 팽창은 자제되고 각 국경에서의 국지전 역시 철저히 제한되었다.
20만의 상륙군과, 수송선 100척, 수송호위함 20척 잠수함 5척으로 구성한 해병함대
그리고 항공대를 보유하게 되어 있었다.
천군부에서 해군을 통한 대양확보전략을 수립하자, 천인단에서도 그에 상응하기 위해 외교부의 인원을
대폭 확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주로 러시아와 터키제국을 염두에 두었던 외교부에서는 유럽 각국의
사정을 파악하고 인도와 주변국들에대한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 외교부안에 각국별로 전담부서를
신설했다. 청진에 있는 외국어 학교 졸업생들이 대부분 외교부에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정보부 인원들의 대거 착출도 있었다.
아울러 더 이상 청진의 외국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천군부에서는
그들의 희망에 따라 자국으로 떠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더러는 외교부에 채용되기도 했다.
1613년 8월 극동시
강삼호소위는 작년에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극동군 (제5군) 예하 51기병연대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러시아를 맡고 있는 4군으로 가기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일개 갓 임관한 소위의 의사를 존중할
만큼 한가한 인사위원회가 아니다. 더군다가 그에게는 아버지의 과거가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더더욱 힘든 임지다.
극동시에 도착한 그는 임동표 사령관에게 신고를 마친 후 연대장과 대대장 중대장를 차례로 거쳤다.
사령관을 제외한 누구도 그가 강신승 중장의 아들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강신승중장을 모르는
장교는 없었지만 그들은 러시아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했다. 정보도 빈약하거니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복잡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가 맡은 소대의 소대원들은 기병 연대 구성원이 대부분 그렇듯 전원이 몽고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호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사병들끼리 몽고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는 언제나 소외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해 지는 태평양을 바라보며 강삼호 소위는 생각을 다잡았다. 해가지는 저쪽 조선에는 해가 뜨고
있을 것이다. 멀리 떠나는 자식을 위해 눈물지으시던 어머니가 계신 곳 그곳에는.
‘이래서는 안되겠군. 몽고어를 배우던가 해야지.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하면 안 되지.
그래 여기서부터 기반을 닦자. 극동에서 천천히 시작하는 거야. 언젠가는 기필코 기회는 온다.
그때를 놓치지 않도록… 조금만 기다려라.’
“충성 강삼호 소위”
“아 ! 편히 쉬게”
중대대장은 갓 부임한 소대장에게는 미안했지만 사령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만한 정규 교육을 받은 포병장교가 사령부에는 드물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파나마 원정군이 돌출상황으로 우리에게 지원요청을 해왔네.
서류를 보니 자네는 포병과를 부전공으로 공부했더군. 본토에서 정식 포병도착할 때까지
자네를 파나마 원정군에 임시로 배속시키라는 명령이야. 할 수 있겠나 ?”
좋은 기회였다. 전쟁터에 있어야만 전공을 세워 승진할 기회를 남들 보다 빨리 잡을 수 있었다.
“네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좋군. 그곳은 고온 다습한 지역이니까 각별히 신경써야 할 거야? 잘 알아서 하겠지
자세한 것은 대대 인사과에 들러서 알아보도록 그만 나가봐”
“충성”
생각보다 그에게 기회가 빨리 왔다. 길어야 육개월 동안의 파견 근무라 그 사이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그래도 극동부보다는 기회가 많게 느껴졌다.
1614 봄
8기병사단이 다시 제 4군으로 배치이동 되었다. 러시아 잔당들에 대한 정지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병이 가진 기동력이 필요했다. 8기병사단장은 2기병대에서 줄곧 군생활을 해오고 시베리아와
만주벌판을 달렸던 김경환 소장이 임명되었다.
그는 과거 칙차족을 대한제국으로 병합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로 동연배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진급이 늦었다. 그가 순수 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주변의 입방아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유독 그가 가는 곳에는 전투가 없는 평화로운 곳이어서 전공을 세울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벌써 5년째 소장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내년에는 중장으로 승진하던가 아님 군복을 벗어야만 했다.
그의 사단은 노보그라드 모스크바에 이르는 경계선의 북쪽을 방어하고 투시노에 사령부가 위치했다.
상황실에는 각 중대와 대대의 이동상황이 4시간 단위로 기록되고 상황판에 기록되었다.
부대 기호들과 그들의 상태를 나타내는 기호가 나란히 놓여진 상황판은 어지럽게 흩트려져 있었고
상황실 직원들은 각 부대의 상황을 침착하게 확인해 나갔다.
볼고라드와 치흐빈쪽에서 작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우려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상황판은 그들의 정보를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대략 이십여명의 러시아 귀족 잔당인 것으로
판단되어서 인지 아무도 그곳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김경환 소장은 잠시 상황실의 상황판을 들여다보고는 자신의 집무실에 돌아와 연병장을 바라보았다.
사단 본부에 마련된 신병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신병들이 한창 제식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간간히 그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나 그렇듯 모든 사단 사령부에는 자신의 병사를 직접 훈련시키길 원했고, 몇몇 보직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시행되고 있었다. 자신의 사단특성에 맞는 신병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키고,
자신의 부대에 대한 애착심과 함꼐 훈련을 같이 받았다는 동기애와 전우애를 키우는 데는 그만이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의 주 목적이 발틱해와 대서양으로의 진출이었는데 여기서 폴란드와 스웨덴에게
발목을 붙잡혀 있으니 큰일이군. 윗 대가리들이 한참 고심하겠어. 벌써 여름이니 올해는 더 이상의
대규모 전쟁은 없을 것 같은데. 이거 완전히 강중장의 전철을 밟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군인이 전장에서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자신의 부하를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살을 택한 강중장이
안타까웠다. 그가 권력암투 중 수뇌부에 의해서 제거되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긴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21기병사단을 46군단으로 보내지 않고 본대에 합류시켰다면 괴멸이라는 상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경환소장은 후자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는 사령관의
상황판단과 결정의 오류로 인해 45군단이 재편성되는 불운을 겪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모스크바 행정관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장군님.”
안드레이 고두노프가 가벼운 차림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의 딸 나타샤가 통역을 겸해서
동행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지금 4군 사령부에서 근무중인 조선인 장교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투시노에 8기병사령부가 설치되고
김소장이 사령관으로 부임할 때 인사를 하곤 처음으로 부대를 방문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고두노프가 김소장에게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행정관님. 따님도 오셨군요. 이리 않으시지요.”
창가에서 떨어져 반가운 얼굴로 그는 손님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김대위 여기 차좀 부탁하네.”
“여름이군요. 어디 야유회나 갔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많이 바쁘시지요.?”
나타샤는 아버지와 김소장이 인사말을 나누는 사이 집무실을 살짝 둘러보았다. 벽에는 산수화가
한 폭 걸려 있고 8사단을 상징하는 노란 금줄로 화려하게 장식된 사단기가 눈에 들어왔다.
“네 그렇지요 뭐, 하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한가해 졌죠. 그 썩어빠진 귀족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충 같은 작자들을 모조리 잡아다 멀리 보내버리고 나니, 한결 일하기가 쉽습니다.”
“아하 그렇긴 하겠네요. 일반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 여전히 곳곳에서 우리에게 맞서는 무리들이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어서 백성들을 행정관님께서 잘 어루만져 주셨으면 합니다. 아시겠지만
저희 대한제국는 노예제도나 신분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모든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요. 러시아인들이 그 제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천주학을 접하고 느낀 바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한제국에서 지원을 확실히 해주고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저야 뭐 싸움만 할 줄 아는 사람이니 알아서 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자 차 드시지요. 용설차라고 하는데 마실수록 그 향과 맛이 깊습니다.”
“용설차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바가 있지요. 이런 좋은 차를 맛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눈 고드노프는 나타샤와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마차에 올랐다.
흔들리는 창너머로 가로수들이 지나갔다. 모스크바를 떠난 지 5년만에 재 입성한 그는
요즘 활기찬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귀여운 내 딸. 남편은 잘 해주냐. 어쩐 일로 이번에는 오래 있는구나.
올 때마다 얼굴만 비추고는 부리나케 사라토프로 내빼더니 말야. 혹 싸웠느냐 ? 사위 진급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옆에서 잘 거들어 줘야지. 이번이 소령으로 진급하는 첫 시험이라며.
떨어질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쯧 쯧”
평소와 다른 딸애의 행동에 불안한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붉히는 딸이 더 수상하기만 했다.
“저 아이를 가졌어요 그래서 잠시 며칠 쉴려구요. 그이도 허락했다구요 뭐. !”
아버지의 잔소리에 뾰루뚱해진 나타샤가 입술을 앞으로 삐죽 내밀었다.
“그게 정말이냐 ? 정말 잘 되었구나. 허허.”
“근데 아버지. 대한 제국의 기병대는 정말 대단하더군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 어떻게 저런 무서운 군대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단 말야. 듣기로는 기병대보다 훨씬 우수한
부대도 많이 있다더라 무슨 기갑사단이라나 뭐라나 아뭏든 잘 모르겠지만 대단한 부대라고 하더군.
기병사단과 기갑사단이 싸우면 기병사단은 전멸한다더구나.
우리 러시아가 저들의 기술을 배운다면 아주 유용할 텐데. 언제 그런 날이 옰 수 있을는지.”
비록 지금은 대한제국에 봉사하는 관리에 불과하지만 그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손자 때에는 자신의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만 했다.
아버지의 꿈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나타샤는 불안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천주학에 대한 이해도 불충분했다.
천주학의 기본은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였다. 거기에는 절대자도 지배계급도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백성만이 존재했다. 이미 조선반도에서는 그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서 백성이 자신의 행정관을
선출한다 하였다.
“아버지. 그런 말씀은 조심해서 해야 할 듯 합니다. 사방에 대한제국의 눈과 귀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셔야만 합니다. 더 높이 가시려다가는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부디 자중하십시오.”
나타샤의 말에 고드노프는 흠칫 놀랐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나타샤가 예지능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기회를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러시아에서 대한제국군을 잘 이용하면 자신이 황제가 될 수도 있었다.
영국의 왕 제임스 3세는 자신의 궁안에서 세계사를 읽고 있었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대한제국에서는
중학생이 공부하는 역사교과서인데 아랍어로 번역된 것을 이스탄불에서 어렵게 구하여 다시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요즘 유럽의 지식인들은 대한제국에서 발행되는 책을 구하려고 혈안이었고,
그들의 말을 배우기 위해 대한제국인을 구하는데 아낌없이 돈을 지불했다.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제국에 대해 알 필요성을 느낀 것도 이유였지만 그들의 책은
새로운 사상과 정보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3 세가 한창 몽고제국의 발전부분을 읽고 있을 때 베이컨 검찰총장이 들어왔다.
“베이컨 프란시스경 어서오시오.”
“평안하셨습니까 폐하 ? “
“늘 그렇지요. 오늘은 방문일정이 없는 걸로 아는데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군 총장.”
“그러하옵니다. 폐하. 우려할 만한 대자보가 옥스포드 대학에 붙었습니다.
여기 그 필사본을 가져왔습니다만, 내용이 선동적이고 폭동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건네준 필사본에는 제임스 3세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왕권신수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농민의 자유를 위해 지식인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천주학인가 뭔가 하는 학문에 물든 자들의 소행인 것 같군.”
“바로 보셨습니다 폐하. 몇몇은 아에 자기들과 뜻이 맞는 자들을 모아 단체를 구성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다 큰 문제는 몇몇 귀족들도 이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임스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귀족들이나 그러겠지 하지만 지킬게 많은 대다수의 귀족들은 그렇지
않을 거야. 이런 현상이 비단 영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 그리고 과거에도 그랬고 ?”
지금 유렵은 구교와 신교의 대립에 천주학이 끼여들면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게르만 민족에게서 시작된 이 대립은 조만간 피를 보는 싸움으로 발전할 것 처럼 보였다.
거기에 영토확장을 노리는 스웨덴의 아돌프가 싸움을 부축이고 있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불순한 세력은 처음부터 뿌리뽑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폐하.”
“좋을 대로 하시오. 그것에 관해서는 총장에게 전권을 일임할 테니까. 그건 그렇고 저 대한제국은
참 대단한 나라요. 그들이 사용한다는 총과 대포는 위력이 대단하다지. 어떻게 그런 걸 만들 수
있었을까 ? 러시아 전쟁에 참여한 스웨덴군은 대한제국의 총을 몇 정 구해 가지고 있다는데
우리도 좀 구해봐야 되겠어. 필요하다면 거금을 들여서라도 말야. “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터키대사와 인도 총독에게 명령서가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래 그랬었지. 맞아. 그때가 두 달이 넘은 것 같은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군.
그래 또 다른 보고할 것은?”
“없습니다. 폐하.”
“그럼 식사나 하고 가지. 베이컨경은 소시지를 좋아하나 몰라.”
모스크바에서 북북동쪽으로 야로슬라블스키 샤세를 따라 70㎞ 지점에 이르면 세르기예프가 있다.
이 도시는 러시아 정교의 메카로, 시내 중심에 16세기에 세워 성 삼위일체 세르기우스 수도원이
성벽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성 안에는 14부터 세워지기 시작한 사원이 장엄하고 화려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사원은 건축중이었다.
1612년 폴란드의 러시아 침공시 모스크바의 크레믈린궁이 함락당하자 이 도시는 저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8기병사단의 예비병력인 4연대 병력이 총출동하여 이 도시에 들어온 것은 1614년 8월 15일이다.
드미트리 포자르스키공과 연대한 평민출신 카즈마가 대한제국에 저항의 깃발을 올리고 세르기예프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었고 수도원은 그들을 후원한다는 첩보가 입수되어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준비하던 중 이였지만, 모든 나라에는 정신적 문화적 지주 역할을 하는 곳이 있 듯 세르기우스
수도원은 수세기에 걸친 러시아인의 정신적 긍지와 영혼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는 러시아 정교
중심지이어서 군사적 행동을 자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요 인물이 수도원에 들어왔다는 정보는 더 이상 4연대를 묶어둘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침내 김경환 소장은 4연대를 보내 도시를 장악하고 각 수도원을 수색하도록 명령했다.
삼천명의 기병이 도시안으로 들어오자 길거리에 놀던 아이들이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각자의 아이들을 급히 대리고 집으로 들어간 주민들은 문을 걸어 잠궜다.
순식간에 한산한 거리로 변한 도시는 황량한 바람과 발 발굽소리만이 들려왔다.
“1대대는 우스펜사원을 수색하고 2대대는 트로이츠키사원을 3대대는 각 교회와
요주의 인물의 가택을 수색하라. 반항하면 사살해도 무방하다.”
이종환 연대장의 명령을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김경환소장은 천천히 말을 몰아 시청으로 향했다.
그를 경호 기병대가 에워싸며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고 4대대 병력이 뒤를 따랐다.
수도원 중앙에 자리잡은 우스펜스키 사원에 도착한 김태성 중령은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의 사원과
비슷한 사원 앞에서 잠시 대대병력을 정지시켰다. 클레믈린 궁을 본떠서 만든 것 같은 사원은
규모가 궁보다 더 커보였다.
두개 중대로 주위를 포위하도록 하고 두개 중대를 이끌고 사원으로 들어가자 왠 소란이지 모르는 듯
사원을 책임지고 있는 자가 나타났다.
“무슨 일로 신성한 사원을 소란스럽게 하십니까 ?”
“나는 8기병사단 4연대 1대대장 김태성중령이요. 당신은 누구요 ?”
“니는 이곳 사원을 맡고 있는 주님의 종 세르기우스주교입니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시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속히 군대를 사원 밖으로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
전혀 굽힘이 없는 주교의 말에 대대장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이 저들의 정신적 지주를 맡고 있는 자의 소임을 다 하는 듯 보였다.
“세르기우스 주교님 이셨군요. 저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어서 잘 모릅니다만,
이곳이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마침 주교님이시니 잘 되었군요.
지금 사원에는 모두 몇 명이 기거하고 있습니까 ? 그들을 모두 한곳으로 모아주셨으면 합니다만.
제 말씀대로만 하시면 아무일 없이 우린 사라질 것입니다.
그게 모두를 위해 좋을 듯 싶습니다. 주교의 판단에 맡기겠소.”
김태성중령이 주교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강한 어조로 위협했다.
“지금 사원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백명이 안됩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
낌새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챈 주교가 뭔가를 얻어내려는 모양인지 말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건 알 거 없고 모두 모이라 하시오. 이십분 드리겠소. 그 이후로는 제 부하들이 사원 구석구석을
수색할 것 입니다. 수색과정에서 생기는 불상사는 모두 주교의 책임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시간이 없는 듯 하니 서두르는게 좋을 듯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맞추었다.
뭐라 애기를 하려다만 주교는 몸을 돌려서 사원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참. 내가 깜박 잊은게 있는데 사원 주위는 이미 포위되었소.
만약 담을 넘는 자가 있으면 죽음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 이점을 주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한차례 어깨를 들썩인 주교는 급히 시종을 거느리고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약속된 이십분이 지났군 이제 가보자고 얼마나 모였나.”
김중령이 탄 말이 움직이자 1/2중대 병력이 따각따각 거리며 잘 놓여진 돌길을 따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사원의 광장에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얼추 200여명이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모여있었다.
“1중대는 여기 모인 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2중대는 사원을 철저히 수색하라.
그동안 얼마나 훈련이 잘 되었는지 보겠다. “
말에서 내린 수백명의 병사들이 각자 맡은 건믈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시작하고 광장 한 켵에서는
사람들의 분류작업을 시행했다. 주변 경비를 맡은 1중대원들은 말에서 내리지 않은채 자동소총을
앞으로 하고 주위를 내려 보았다.
김상일 하사가 이끄는 분대가 들어간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듯 청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작은 나무망치를 한 손에 들고 분대원들이 바닥과 벽을 두드리며 방안을 돌아다녔고
집기들을 이리저리 옮겼고 천장 수색도 놓치지 않았다.
“땅땅땅. 이상없습니다.”
“다음방으로 가자.”
2중대원들이 온 사원을 휘집고 다녔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건물을 수색해 나가는 그들은
오랜 훈련을 거친 듯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특별히 시가전과 시가수색에 중점을 준 훈련을
이수한 대원들의 몸 동작은 한치의 헛점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땅땅땅 덩덩덩. 여기가 이상하군.”
아름다운 벽화주위로 소리가 판이하게 들려왔다.
“아깝군 이런 벽화를 내 손으로 홰손해야 하다니 말야. 통역관과 주교를 불러라.”
급히 달려나간 사병이 통역관과 주교를 대리고 왔다. 그곳에는 대대장도 같이 왔다.
“충성”
“수고가 많구만. 이곳이 이상한가 ?”
벽을 손을 치면서 대대장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술작품에 손대기가 어쩐지 꺼려집니다. 대대장님.”
“그렇군. 주교님. 우린 이 벽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주교님께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만.”
통역을 전해들은 주교는 얼굴색이 흙빛이 되어 갔다.
“안됩니다. 이 벽화는 러시아의 대화가 안드레이가 직접 그린 벽화로 그 가치가 이루말할 수 없는
성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주교님께 부탁드리는 것 아닙니까. 우리 대한제국은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국가
입니다. 부디 대한제국의 명성에 먹칠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교님께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김태성중령의 협박어린 부탁에도 세르기우스 주교는 벽화에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그는 벽화를 등지고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보였다.
“이거 안되겠군. 주교를 밖으로 끌어내고 수색을 계속해라.”
“네 대대장님.”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달려와 버티는 주교를 개머리판으로 한번 갈기고는 질질 끌고 가자
한 병사가 다가와 벽화주위에 아이 머리가 들어갈만한 구명을 내고는 가슴에 달려있는 사과탄
비슷한 것에서 안전핀을 뽑아 들었다. 손에 들려진 사과만한 것들 서너개가 구멍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하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메케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온 방을 가득 메웠다.
장병들이 우르르 방문을 닫고 나갔다.
“아무도 없나보군 한참이 지났는데도 반응이 없으니 말야. 이만 가지.”
문 바깥에서 잠시 기다리던 김중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콜록 콜록 기침하는 소리 울부짓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럼 그렇지 자식들이 꽤 오래 버텼군 그래. 한번 들어가 볼까 도데체 누가 이렇듯 요란한지.”
병사들이 방독면을 쓰고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닥은 온통 오물들로 가득 찼고
여기저기 고통에 사람들이 벽을 붙잡고 정신없이 신음하고 있었다.
김상일 하사는 방안을 돌아 다니며 몽둥이로 사람들의 머리통을 한대씩 갈겨주었다.
대충 정리가 끝나고 한사람씩 질질 끌려 방에서 나왔다.
“어라 대단한 인물들이야. 그렇지 않나 2중대장.”
“네 그렇습니다.”
“자네는 이들이 누구라 생각되나.”
“잘 모르겠습니다만 숨어있어야 만 될 사람들일 것입니다. “
“그렇겠지. 일단 투시노로 연행해가자고 잔챙이가 아니길 빌어야지.
대충 이곳 수색도 거의 끝나가는 것 같은데 말야.”
여기저기서 그렇게 질질 끌려나온 사람은 족히 50명은 넘어보였다.
그 중에는 제법 귀족티가 나는 소년도 있었는데 대략 18세정도 보였지만
그가 누군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줄에 꽁꽁묶인체 일렬로 세워져 시청으로 연행되었다.
“주교님. 주교님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주교님이 아니셨으면 꼭꼭 숨어 있는 이놈들을 어떻게
체포 할 수 있었겠습니까 ?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하지만 주교님도 아시다시피 제국에서 공표한
종교법에는 종교단체는 영리사업이나 재산증식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사원에는 필요이상의 황금이 많더군요. 모두 자선사업에 사용되리라 믿겠습니다.
이런 휼륭한 주교님 같은 분만 계신다면 러시아 민중들도 모두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거듭 주교님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주교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대대장이 수도원을 떠났다.
“언제 그 말코 같은 주교가 협조했다고 그렇듯 감사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
수도원 정문을 지나자 작전참모가 의아한 표정으로 대대장에게 물었다.
“그거 말야 ! 잡힌 놈이나 모여있던 놈들은 그게 거짓말인 줄 알까 모를까 ? 하하하하.”
세르기예프 시청 광장에는 여기저기서 잡혀온 자들이 꽁꽁 묶인체 나뒹글고 있었고
삼천명의 기병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장님도 안녕히 계십시오.
아무쪼록 이 도시를 잘 관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고두노프의 먼 친척뻘인 자르고스키가 연신 허리를 굽여 인사하며 김경환 소장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출발. 서둘러 사령부로 돌아간다.”
“출발”
포로들을 앞에 세우고 3대대가 앞길을 열었다. 하루 종일 세르기예프시를 들쑤시고 다녔던 기병들이
사라지자 자르고스키는 안도의 한숨을 쉬였다. 그는 포로들 중에 언 듯 로마노프 전 황제를
본 듯 하였지만 그가 이곳에 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잘 못 보았거니 생각하였다
첫댓글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즐독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