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리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1831-1901)은 미국 25대 대통령(1896-1901)으로, 재임 기간에 중요한 일을 많이 했다. 20세기에 미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대통령이라고도 말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정규 교육을 받았다. 남북 전쟁이 발발하지 북군으로 참전하였다. 1896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와서 당선되었다.
보호무역 정책으로(높은 관세 부과로) 경제를 회복시켰다.
금 본위제를 채택했디.(이때는 금 본위 주의자와 은 본위 주의자 간의 다툼이 심했다.
19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상대로는 반제국주의자인 윌리엄 J 브라운이었다. 미 대선은 국내정치 뿐 아니라 미국외교정책 상에서도 고립주의냐 혹은 미국의 새로운 제국주의 정책을 펼치느냐의 대결이 되면서, 찬반을 묻는 국민 투표가 되었다.
맥킨리 대통령은 해외 확장을 국가의 사명이라는, 제국주의 정책을 밀고 나갔다. 그리고 브라이언 후보에 대해 미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모르는 무식한 자라고 비난했다. 브라이언은 이에 대해 맥킨리 정책은 공화주의가 아닌, 제국주의라면서, 미국 헌법을 무시하고, 헌법 밖의 방법으로 통치한다. 우리의 국민이 될 수 없는 먼 섬을 위해 싸우는 것에 반대한다고 하였다. 윌리엄 매킨리후보는 국가의 건국 원칙인 공화주의를 저버렸다고 비난했다.
이 논쟁에서, 20세기에 들어선 미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선거였다. 맥킨리가 승리함으로, 미국은 팽창주의로 나아갔으며, 그 경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맥킨리의 미서전쟁 승리는 미국이 세계 질서에 새로운 지위를 얻었고, 대중의 열광이 미국을 뒤덮었다. 상승세를 타는 경제와 함께 미서전쟁이 승리하자. 브라이언은 매킨리를 이길 수없었다. 윌리엄 매킨리가 재선에 성공한다
미서 전쟁에서 스페인에 승리함으로 미국은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세력권으로 편입하였다. 필리핀은 2차 대전까지 미국의 식민지였다.
1901. 9. 6일, 뉴욕주 버팔로에서 열린 박람회에 참석하여 연설 도둥에 총격으로 9월 14일 사망했다. 뒤 이은 대통령이 시어도어 루즈벨트이다.
그의 재임 중에 일어난 미-서 전쟁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을 이끌어 냈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은 세계의 강국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