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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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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마음의 폐허 5 -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 박찬
동산 추천 0 조회 47 13.04.23 11: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마음의 폐허 5 -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 박찬

 

 

   비가 내린다 미친 바람이 불고 온통 캄캄해지더니

홍수처럼 비가 퍼붓는다 그러나 연간 강수량 10mm

이 광막한 모랫벌에 지금 내리는 비가 30mm면 어떻고

50mm면 또 어떠리 흔적이나 남을까보냐 날이 개면

이글거리는 태양빛에 이미 다시 타 들어갈 것을...

이 땅은 오랜 세월 아무것도 기른 적 없으니 꽃이여

필 곳에 가서 피어라 바람이 불면 너에게 날아가

흔적을 남길 것이니 꽃이여 피기 좋은 곳에 가 피어라

이 가슴은 말라 버린 지 너무 오래 되었으니...

 

 

 

 

 

 

************************************************

 

사막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30여년 전, 홍해 변 사막의 도시에 있을 때 2년 동안 딱 한번

비를 맞았는데, 그때 정말 집 생각이 났다.

아라비아사막은 1m만 파내려가도 조개화석을 쉽게 캐낼 수

있다. 해저가 솟아올라 지금은 사막이 되었다는 증표인데

후일 이 광야 혹은 사막을 쏘다니던 기억이 선명하던 날, 나는

'사막의 추억' 시편을 쓰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막의 시를 나는 감별할 수 있다,

(허구의 사막인지, 모래의 바다에서 대필하듯 써내려 간 것인지)

비의 은총은 사막에서도 통한다.

사막에 가면 저절로 시가 써질 것이다.

 

/ 동산

 

 

     외로운 식량

 

****************************************************

 

2007년 1월 19일, 우리는 한 시인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지병인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 박찬 시인은 가족과 지인들의

안타까움과 아쉬움, 눈물을 뒤로한 채, 그의 시처럼 담담히

이승을 떠났다.

시간은 가도 기억은, 사랑은, 그리고 시는 남는 법. 어느덧 시인이

세상을 뜬 지 일 년, 다시금 고인을 추억하며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시인의 마지막 목소리가 아로새겨진

여든여섯 편의 시를 선보인다.

『외로운 식량』은 시인 생전에 여러 문예지를 통해 발표했던

시들과 미발표작들을 모은 유고 시집이다.

 

 

표표히 길 떠나는 자의 뒷모습

 

 

시인은 걷는다.

개화산, 달마산을 지나 백담사에 들러 잠시 숨을 돌리기도 하고,

진도로 산집 나들이를 가기도 하고, 낮이며 밤이며 계속 걷다

아나우 언덕과 타클라마칸 사막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여정은

계속 된다. 그 길에 동행하는 이는 이름 모를 들꽃이었다가,

풀벌레였다가, 하늘이었다가, 바다였다가, 바람이었다.

“한겨울 눈 속에 빨갛게 꽃잎 연”(「애기동백」) 애기동백에게

따뜻한 눈길 한번 주고, “그 맑고 투명한”(「얼음매미」) 얼음매미

소리에 귀 기울이고, “물결 출렁일 때마다 따라 출렁거리다가”

“돛대에 갈매기 날아와 앉”으면 “그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고”

(「물끄러미」) “날이 개면 이글거리는 태양빛에 다시 타들어갈

것 같은”(「마음의 폐허5―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사막에 이르면

바람과 내리는 비에 온몸을 맡긴다. 

그 여정의 끝에 결국 깨닫게 되는 건 “봄꽃,/저 홀로 피었다 지듯

/오직 나 혼자뿐!”(「절름발이」)이라는 사실. 절대고독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한 걸음 한 걸음 끊임없이

걸어가야 할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 거기엔 삶도 죽음도 따로 없다.

생성과 소멸은 대자연의 섭리이고, 대자연이 보듬고 있는

모든 존재는 다만 그 섭리에 따를 뿐이라는 시인의 시선에서

삶을 달관한 이의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느껴진다.

 

 

 백모란 지던 시절
 그 시절 시들듯 시들어 갔네
 꽃 같던 모습
 뚝뚝 지는 꽃처럼
 빗방울 후드득 떨어지고
 하늘은 다시 맑았네
 뒷산 불던 바람 자연하고
 흰 구름 둥둥 여여하였네

 그 시절 시들듯 그도 시들어 갔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네
 꽃잎만 한 잎
 뚝! 떨어졌을 뿐

                                      

―「그 시절」 전문

 

 

들판으로 소풍 가듯 죽음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여로

 

 

시인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 읽는 유고 시편들의

행간에 언뜻언뜻 운명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운명의 그림자는

결코 시인의 시에 그늘을 드리우지 못한다.

 

 

 혼자는 외로운 것일까…… 나는 늘 혼자였는데…… 그래도 외롭다는

생각은 한 적도 없는데…… 그런데 오늘 문득 한 생각 떠오른다……

이제는 가도 되겠다…… 조용히 돌아가도 되겠다 싶다……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고 슬그머니 가기 참 좋은 때인 것 같다……는……

 ……
 오늘은 참 별이 유난히 많이 떠 있다


 ―「적막한 귀가」 중에서

 


 지루하고 막막한 날이 끝나간다
 그 끝에서 홀로 붉게 타는 칸나여, 안녕!
 다시는 못 볼 푸른 하늘이여, 너도 안녕!
 

―「소리를 찾아서―서래봉 가는 길」 전문

 

 

 

이 시집을 다 읽고 책장을 덮기 전, 맨 마지막에 실린 「소리를

찾아서―서래봉 가는 길」을 다시 한번 소리내어 읽어보면, 붉은

칸나에게도 푸른 하늘에게도 “안녕!”이라고 작별인사를 고하고

뒤돌아서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시인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르는

듯하다. 그는 그렇게 떠나갔지만 그의 시는 언제까지고 우리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그의 시 세계는 자연적인 죽음의 경계선에 의해 단절되지 않는다.

그의 시적 추구의 본령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과하면서도

그 이분법적 틀 속에 휘둘리지 않고 이를 포월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영생하는 대자연의 이법과 ‘도(道)’의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 홍용희 문학평론가

 

 

사랑, 그 한마디 말만 꽃처럼 골라 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무엇일까.

가장 절실하게 말했으므로 가장 기쁘게, 눈물겹게 남을 말은

무엇일까. 삶이 그린 만화경, 그 모든 인연의 최후는 무슨

말이라야 할까. 그 말은 “개화산 미타사 미륵불 아래” “별빛”

처럼 필 것이다.


시인 박찬, 그는 이 시집 도처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 “지루하고 막막한 날이 끝”나갈 때 “고요가 집 안에

가득 깔렸다”. 그리고 “미묘한 기류에 온몸이 간지럽다”.

그리하여 그는 그날 “홀로 붉게 타는 칸나”에게, “푸른 하늘”

에게도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정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친구 박찬, 시인의 임종 순간을 그의 유가족들로부터 전해들은

적 있다. 아내와 두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다만 “사랑해”

라고 말했다. ‘사랑!’, 그 한마디 말만 꽃처럼 골라 물고 그는

“흰 구름 둥둥 여여하”듯 그렇게 고요히 떠나갔다.

 

- 문인수 시인

 

당혹스럽다. 그는 지금 어디에나 있고 어느 곳에도 없다.

그가 저 건너로 넘어가기 전에 새겨놓은 숨결들은 고즈넉한

채로 낭랑하게 울렁거린다.

나는 문득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넘어갔으나 넘어가지 않은 시심들이 가쁘게 매혹적이다.

나는 그에게 멈칫멈칫 다가간다. 망설임이 아니라 설렘이다.

그늘진 자리에 스며든 감성이 빚어올리는 깊은 사유가

절절하다. 낮은 듯 높고 높은 듯 낮은 다감한 시들이 그와

나의 경계를 적신다. 아프지만 기쁘다.

 

- 정우영 시인

 


박찬 시인 (1948~2007)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월간 『시문학』에 「상리마을 내리는 안개는」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수도곶 이야기』

『그리운 잠』

『화염길』

『먼지 속 이슬』

실크로드 문화 기행집

『우는 낙타의 푸른 눈썹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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