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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여행] 산내면 실상사(국보 천국)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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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교 건너기전 석장승 : 절을 향해 건너기 전에 세워진 한쌍의 돌장승 중 오른편 장승은 1936년 홍수때 떠내려 가고 없다.
잡귀를 막기위해 세워진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은 두 눈과 코가 크고 둥글며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손은 창을 든 것 같은
모습이며 "대장군(大將軍)"은 뒤에 만들어진 듯 이렇다 할 특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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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산내면,국보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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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九山禪門)중 첫번째인 실상산문의 본거지 실상사(實相寺)를 찿아가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
나 창문을 열어본다. 밤새 소낙비가 그렇게도 쏟아지더니 어느새 개이고 찌부등한 날씨가 습한 바람
과 함께 아침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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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유난스레 내리고 또 내리는 비. 긴 장마가 기승(氣勝)을 부리며 코로나19와 더불어 전 국민들
을 못살게 짓궂게도 굴고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3번째 남원여행길 차를 몰고 나선
실상사 가는길로 접어들자 또 한차레 비는 퍼 붓는다, 우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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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교를 건너면 만나는 두번째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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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이 감싸 안은 듯 평화롭고 풍요로운 고을 남원시 산내면에 천년 고찰 실상사(實相寺)가 있다.
지리산의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심원, 달궁, 뱀사골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 마천방면으로 가다 보면 만수천(萬壽川)변에 호국사찰로 천 년의 세월을 버티고 지내온 실상사
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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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유랑자에겐 너무나 익숙한 길이다. 이곳역시 예전에 써놓은 여행기가 있지만 어디론가 사라
져 버렸다. 이번 남원 여행에서 옛 추억을 찾아 다시한번 가보기로 마음먹은 천년고찰 실상사는 갠적
으로 5번째 방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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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뱀사골로 여름휴가를 서너번은 왔었다, 카페 회원들과, 부산 처가식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유랑
자 형제 가족들과 등등, 이번엔 순수 남원여행만을 즐기려고 이렇게 또 찾았다. 그래서도 익숙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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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뱀사골 과 달궁계곡 물이 합처 흘러 내리다가 다시 운봉.인월에서 흘러 내리는 임천강이 뱀사골
에서 흘러 내려온 물과 몸을 합치고 그 흐르는 강물과 만나는 지점이 만수천이자 산내면 면소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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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월에서 뱀사골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나타나는 삼거리 부근이다. 이 삼거리에서 동쪽을 향해보면
천왕봉이 손에 닿을 듯 눈 앞에 선하다. 그 발 아래 산내면 입석리 들판이 넓게 펼쳐지는데 그 곳에 천
년고찰 실상사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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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는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만수천을 끼고 풍성한 들판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동으로는
천왕봉과 마주하면서 남쪽에는 반야봉, 서쪽은 심원 달궁, 북쪽은 덕유산맥의 수청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채 천년 세월을 지내오고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사찰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데 비해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는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지리산 사찰 중 평지에 자리한 절은 이 곳 실상사와 단속사가 있는데 단
속사는 폐허가 된채 석탑만 남겨져 있는데 비해 실상사는 여전히 사찰 구실을 하고 있다..
유랑자는 실상사를 들어가기 위해 낡은 해탈교를 건너기 전에 만나는 한기의 돌장승은 1963년 홍수
때떠내려 간 짝을 그리워하는지 침울한 채 서 있으며 다리를 건너면 1725년 무렵에 만들어진 돌장승
한쌍을 또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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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이곳이 경북도민들을 위해서 이 청정계곡에 댐을 만들겠다고 난리를 치던 때도 있었다, 지역
민들의 결사항전으로 백지화 되긴 했지만.....암튼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실
상사는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의 산문인 실상사파의 본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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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국보 10호로 지정되어 있는 백장암 삼층석탑과 약수암의 목
조탱화를 포함하여 보물이 11점이나 있어 단일사찰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실상사는 지
금으로부터 12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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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칼을 든 중장천왕 과 남 용을 움켜쥔 광목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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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탑을 든 다문 천왕과 북 비파를 든 지국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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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증각대사)은 도의선사와 함께 당나라에 유
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동안 전국의 산을 다
닌 끝에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초로 그의 고향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절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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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각대사의 높은 불심을 높게 기린 흥덕왕이 절을 세울 수 있게 허락해 주었고 왕은 태자선광(太子宣
光)과 함께 이 절에 귀의했다. 풍수지리설에는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
로 건너간다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하고, 그 후 2대조 수철화상을 거쳐 3대조 편운에 이르러서 절
이 중창되었으며 더욱 선풍을 떨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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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조 14년에 화재를 입은 후로 200여년 동안 폐허로 남아있었고 스님들은 백장암에 기거하며
근근히 그 명맥을 이어가다가 숙종 5년(1679)에 벽암스님이 삼창하였고, 1690년에 침허스님을 비롯
한 300여명의 스님이 절의 중창을 조정에 건의하여 1700년에 36동의 건물을 세워 대 가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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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1821년에 의암이 다시 중건하였지만 1882년에 함양 출신 양재물과 산청 출신 민동혁이라는 유
생들이 사적 감정으로 절을 빼앗으면 절터에 많은 전답을 얻을수 있다는 목적으로 불을 질러 아까운
건물들이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은 뒤 그 이듬해 스님들이 십여 동의 건물을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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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梵鐘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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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건물은 보광전을 비롯하여 약사전, 명부전, 칠성각, 선리수도원, 누각등이 있으며 요사채 뒤
쪽으로 극락전과 부속건물이 있다. 사천왕문를 들어서자 절집 넓은 마당에 삼층석탑 두기가 고색창
연(古色蒼然)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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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탑 두기 가운데에 석등과 그 뒤로 보광전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서 있으며 보광전 양 옆으로 약사
전(우)과 칠성각(좌)이 서 있으며 석등 양 옆으로는 명부전과 요사채가 서 있다. 멀리 천왕봉을 바라
보며 지리산의 여러 봉우리를 꽃잎으로 삼은 꽃밥에 해당하는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실상사는 다른
지역의 절들과 달리 평지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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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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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약사전은 몸과 마음의 질병을 낫게 함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서원을 세운 약사여래를 봉안하는 전
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1883년 함양, 산청 유생들의 방화에도 불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특히 ㅈ우앙의 꽃문창살은 단청이 선명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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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사전에는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초기 철불의 걸작으로 꼽히는 실상사 철제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높이가 260cm이며 보물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철불은 두 발의 양 무릎 위에 올려놓은 완전
한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꼿꼿하게 앉아 동남쪽에 있는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광배는 없
어졌고 수미단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대좌가 아닌 흙바닥에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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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여래좌상 (鐵造如來坐像) :높이 2.66m의 철불로, 약사전 내부에 있다. 결가부좌한 상태로 사각대좌 위에 안자 있으며,광배는
사라진 상태다. 보물 제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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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불상과 불상 뒤에는 조선 후기에 그린 약사불화가 있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고 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의 부
족함을 채워주는 현실이익적인 부처님이다. 이처럼 약사여래는 인간의 생노병사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병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 약사신앙이 전래된 이후 계속 신앙되었다..
약사불상이 다른 불상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한 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 약사불로
신앙되고 있는 불상 가운데는 약그릇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실상사의 약사여래도 약그릇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불상을 통일신라 말 구산선문에서 본존으로 모시던 노사나상(盧舍那像)이라고도
하며, 근래에는 원래의 손이 아미타 수인을 하고 있어 아미타불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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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문 무궁화 문양이 에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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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2대 조사인 수철국사가 약사여래상과 석탑 2기를 세웠다는 설이 있어 현재 약사전에 봉안된
철조여래상은 수철국사가 조성한 약사불이 아닌가 한다. 이 불상은 실상사가 중창될 때까지 들판에 있
었으며, 약사전을 세운 후 그 안에 봉안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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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에는 보화(寶貨)가 많이 들어 있다는 말이 있어 일찍부터 도굴꾼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다. 불
상의 복장품에는 효령대군의 발원문과 사경(射經) 및 인경(印經)이 수백 권이나 있었고, 고려판 화엄
경소 등 보기드문 서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도난 당하였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탔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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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약사여래불상은 9세기에 접어들면서 유행하는 철불(鐵佛)의 초기작품으로써 귀중한 가치를 지
니고 있다. 이 불상은 건장한 신체와 물결식의 옷주름에서 가장 융성했던 시기의 양식이 남아 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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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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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부 전
명부전은 갖가지 지옥의 장면을 그린 시왕(十王)의 그림이나 조각을 모신 전각으로 주존은 지장보살
이다. 실상사의 명부전은 길선당(吉禪堂)의 옛터에 건립된 것으로 장육전(丈六殿) 동쪽에 있던 것으
로 1821년(순조 21)에 의암대사가 옮겨 지은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안에는 지장보살 삼
존상, 시왕상 10구, 판관상 6구, 인왕상 2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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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상 뒤에는 1987년에 조성한 지장시왕도가 있다. 시왕상은 본존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제
1 진광대왕, 제3 송제대왕, 제5ㅓ 염라대왕, 제7 태산대왕, 제9 도시대왕이 있고, 왼쪽으로는 제2 초강
대왕, 제4 와관대왕, 제6 변성대왕, 제8 평등대왕, 제10 전륜대왕이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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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보물 제 37호로 지정되어 있는 실상사 삼층석탑은 높이가 각각 8.4m이며 동탑·서탑으로 불린다. 실
상사 삼층석탑들은 규모, 양식, 보존상태 등이 상륜부는 찰주를 중심으로 보반, 복발, 앙화, 보륜, 보
개, 수연, 용차, 보주의 손으로 만들었는데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그래서 불국사 석가탑의 상
륜부를 만들 때 모델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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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전 앞마당에 서 있는 높이 3.2m의 쌍탑이다. 증각대사 홍척이 실상산문을 창건할 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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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전 앞마당에 서 있는 높이 3.2m의 쌍탑이다. 증각대사 홍척이 실상산문을 창건할 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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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
동·서 석탑의 중간지점에 세워진 실상사 석등(보물 제 35호)은 높이가 5m에 팔각기둥의 전형적인 간
주석과 달리 고복형 간주석을 지닌 석등으로 그 전체적인 형태가 화엄사 앞 석등이나 임실 증기사 석
등과 흡사하며 이 지방에서 널리 유행되었던 석등으로 볼 수 있다. 이 석등의 측면에는 등을 켤 때 오
르내릴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된 석조계단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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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 보물제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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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보광전(普光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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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전
실상사의 대웅전인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원래 있던 금당터의 기단 위에 또 하나의 작은기
단을 만들어 세운 작은 건물이다. 원래의 금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가 큰 건물로 추정되고 있으
며 보광전 안에 흥척대사와 수철화상의 영정 및 범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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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은 현종 5년(1664)에 제작되었으며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지도 비슷한 무늬
가 새겨져 있다. 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천년 세월을 보내오면서 호국사찰로
알려진 실상사에는 유독 일본, 즉 왜구와의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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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칠관음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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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사찰의 전소원인을 정유재란 당시의 왜구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는 부분에서도 일본 과
관련된 전설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천왕
봉 너머에는 일본의 후지산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져 있다 한다. 이 때문에 가람배치도 동쪽을 향해 대
치형을 하고 옆으로 강이 흘러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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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이 있는데 이는 천
왕봉 아래 법계사에서도 전해지고 있어 흥미를 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상사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열도
를 두들겨 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와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구전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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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이 속설에 따라 범종의 일본지도를 많이 두드린 탓에 범종에 그려진 일본지도 중 훗카이도
와 규슈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최근의 독도 영유권에 대
한 일본의 망언이 있는 오늘날 한일관계를 두고 볼 때 보광전의 범종에 얽힌 사연이 갖는 의미는 우리
에게 많은 점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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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전설과 구전들을 살펴볼 때 실상사는 일본에 대한 호국사찰이며 불교문화의 큰 도량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실상사는 6,25를 맞아서는 낮에는 국군, 밤에는 공비들이 점거하는 등 또 한차례의 수
난을 겪게 됐는데 용케도 사찰만은 전화를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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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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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각
칠성각은 칠성신을 모시는 불교의 전각으로 사찰의 전각을 그 중요도에 따라 상단·중단·하단으로 나
눌 때 하단에 속하는 전각이다.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을 모신다. 칠성신은 옛날부터 우리나라 민간
에서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주며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는 신으로 믿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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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신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처음에는 사찰의 수호신으로 자리잡았다가 점차 본래의 기능을 되찾아
별도의 전각인 칠성각에 모셔지게 되었다. 정면 1∼2칸, 측면 1칸으로 대부분 규모가 작지만, 삼성각
이라고 해서 칠성신을 산신·독성과 함께 모실 때는 칠성만을 모시는 전각보다 크게 짓기도 한다. 내부
에는 칠성삼존불과 칠여래 등을 한데 그려넣은 칠성탱화를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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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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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광여래·일광여래·월광여래가 삼존불이 되어 중심을 이루고, 삼존불 좌우에 칠여래와 칠원성군
이 배치된다. 또 남극노인성 등 하늘의 천체와 관련있는 신들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전각의 명칭 칠성(七星)은 구체적으로는 탐랑·거문·녹존·문곡·염정·무곡·파군의 일곱 별로, 각각 부
처로 바뀌어 칠여래가 되는데, 예를 들면 제칠파군성군약사유리광여래는 칠성 중 파군이 여래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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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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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칠아미타블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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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락 전
극락전의 옛이름은 부도전(扶道殿)으로 계오대사가 1684년(숙종 10)에 건물을 짓고 부도전(浮屠殿)
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부도전이라 한 것은 근처에 홍척국사와 수철화상의 부도가 있기 때문이다. 1
751년(영조 27)에 포문비구(抱文比丘) 한심(漢諶)이 옛 연하당(蓮荷堂)과 금당(金堂)의 기와를 사용
하여 요사채를 수리하고 부도전(扶道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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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각대사탑 보물 제38호 신라말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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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철화상탑 보물 제33호 신라말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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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철화상탑비 보물 제34호 신라말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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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정조 12년)에 금파 관오대사가 대시주 이휘와 별좌 홍찬, 재민과 더불어 중수하였다. 1832년
(순조 32)에 의암대사가 기봉, 처윤과 함께 중건하여 극락전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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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은 명면 3칸, 측면 2칸인 맞배지붕의 목조건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45호이다. 불단 위에
는 아미타여래좌상이 있으며, 그 좌우에는 목조보살상이 있었으나 몇 년 전에 분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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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요사채는 1932년에 남성법(南性法) 스님이 영원사(靈源寺)에서 옮겨 세운 것으로, 지리산의 기
운이 솟아오르는 명당으로 알려져 수행납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상사에는 이렇듯 호국
의 정신이 흐르며 찬란한 신라불교문화의 숱한 문화재가 잘 보존돼 있는 천년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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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각대사탑비 보물 제39호 신라말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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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정리를 해 보자면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이 곳에는 신라시대의 많은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백장암 삼층석탑은 전형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설계를 하고있어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공예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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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의 문화유적은 보물급에는 수철화상능가보월탑(33호, 905),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34호), 석등(35호, 개산당시),부도(36호, 고려),
삼층쌍탑(37호, 887년), 증각대사응료탑(38호, 861년 이후), 증각대사응료탑비(39호), 백장암석등(40호, 9세기 중엽),철제여래좌상(41호, 개산당시),
청동은입사향로(420호, 1584년), 약수암목조탱화(421호, 1782년)등 국보 11점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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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유형문화재로는 극락전(45호,1684년), 위토개량성책(88호, 토지대장), 보광전 범종(138호, 1694년), 백장암보살좌상(166호,고려),
백장암범종(211호, 1743년)등 5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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