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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8: 14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 2 )
5]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암 8:4-14) / 이필재 목사
유대 베들레헴 근처에 드고아라고 하는 지방이 있었습니다.
이 동네에 남의 집의 양을 대신 길러주고 그 품삯을 받아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수입이 너무 적어 생계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몇 그루의 뽕나무를 길러 그 잎을 따서 양장업자에게 파는 일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도 도저히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뽕잎을 파는 일이나 남의 양을 대신 길러주는 일은 유대 나라에서 가장 취급을 받지 못하는, 할 수 없이 마지막에 하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노동을 해도 그날 하루의 식량이나 겨우 구할 정도였습니다. 오늘 등장하는 아모스라는 예언자가 바로 이 사람입니다. 그가 예언자로서 부름을 받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자신의 지독한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호세아는 가정생활의 비극에서 예언자로 출발하게 되었고 요엘은 자연 재해의 영감적 시각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모스는 가난 때문에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뼈아픈 가난의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 부조리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이 사회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제도적으로 일한 것의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이런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 사회적 공평(Social Justice)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고, 오늘날로 말하면 사회 복음(Social Gospel)을 예언하게 된 것입니다.
신학에서 이 사회 복음(Social Gospel)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을 잘하면 사회를 구원하는 복음이 되지만, 조금만 잘못 가면 공산주의 개념과 같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러운 분야입니다. 중남미 지역에서 해방신학자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들이 바라보는 사회 복음은 무엇인가? 신학적으로 살펴봤을 때 "이익의 공동분배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회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복음이 들어와 예배를 드리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교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시간이 걸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여성해방신학이 100년 넘게 걸렸습니다. 교회에서 여성 지도자를 길러 내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장로교회 출석을 했고 거기서 자랐기 때문에 장로교회 신학을 공부하고 장로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장로교에서 오랫동안 평생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소속해있는 장로교단을 봐도 여성해방신학의 문제는 100년 이상 걸렸습니다.
교회가 여성 지도자는 아예 길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자 목사도 안 세우는 겁니다. "여자들은 지도자가 되지 마라!" 교회 안에서도 그것이 100년 넘게 시간이 갔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성차별입니다.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전도사 시절에 헌신예배를 드리게 되면 전도사인 저에게 설교를 많이 하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늘 설교를 하시니까 청년 헌신예배, 여전도회 헌신예배처럼 특별 예배는 제가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린 날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 날이 되면 여선교회 회장이 사회를 보고 부회장이 기도하고 총무가 광고를 하기 때문에 이 세 사람은 며칠 전부터 벌벌 떨며 기도를 합니다. "사회 잘 보게 해주십시오." 예배에 깨끗하게 입고 나가야 한다며 한복도 새로 맞춰 입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예쁘게 하고 밤새도록 엎드려서 잠을 자고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자들은 강대상에 올라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이런 성차별이 있었습니다. 여성 지도자들은 안수문제로 여성 지도자를 길러 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강대상에 여자들이 못 올라왔습니다. 저 밑에다 조그만 강대상을 만들어놓고 거기 올라오는 것도 황송해서 벌벌 떨면서 기도를 하고 사회를 보고, 그러면서 저는 남자니까 전도사라고 강대상에 올라와 설교를 했습니다. 한참 있다 여선교회 회장들이 저한테 와서 조금 따지는 식으로 말들을 합니다.
"여자들을 강대상에 올라가지 말라고 해서 밑에서 항상 하는데 왜 사찰 아줌마는 반바지만 입고도 막 돌아다니나요?" 이러며 따지기도 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여성 안수 문제는 장로교단에서 100년이나 넘게 걸렸습니다. 겨우 이제 와서 성차별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여성해방신학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 문제에 대한 교회의 해결 방법! 이 문제는 예배만 드리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문제 때문에 수없이 많이 부딪혀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당면하고 있는 복음의 길이 뭡니까? 통일신학입니다. 남북통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있다면 이렇게 분단된 조국으로 그냥 이대로 영원히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이 분단된 조국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 화해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이 신학의 방향이라고 해석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공산당들은 다 없애버릴 것인가, 아니면 화해해서 어떻게든 통일의 길을 갈 것인가? 이런 문제는 잘하면 복음이 되는데 조금만 잘못해도 공산주의와 같이 되어버리니까 이것이 매우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가 보니까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데모를 많이 하는 문화입니다. 지금도 끊임없습니다. 어디를 가 봐도 시뻘건 글씨로 "결사반대"가 붙어 있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요즘은 평화적 시위도 문화화 되어가고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데모를 하면 최루탄, 곤봉, 쇠파이프, 화염병 등 극렬성의 데모를 하는 문화였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렇게 날마다 문제화 되고 있는 노사 간의 복음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교회가 어떠한 신학의 방향으로 잡아나갈 것인가? 이런 문제는 잘 해결되면 함께 사는 사회, 복음이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빗나가도 공산주의같이 되어버립니다. 어떤 때는 어떤 사람이 피땀 흘려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노력도 하지 않고 건달패로 사는 사람들이 시기로 인해서 함께 망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지난번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 지도자들을 몇 명 만났는데 저한테 한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나는 한국을 한 번도 안 가봐서 좀 가보고 싶은데 어떻게 나를 도와줄 수 있습니까?" "그러죠. 저한테 다 편지 보내세요. 제가 초청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왜 오려고 하시는 겁니까?" "중남미 일대는 이익의 공동분배라고 하는 사회복음 때문에 해방신학이 많이 나왔는데 나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한국이 그렇게 노사 간에 문제가 많다고 하니까 내가 한국에 가서 노사문제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한번 오세요. 한국에서 데모하는 것도 구경하고 왜 하는지 이유도 밝혀보고 이게 과연 훌륭한 것인가 신학적으로 봤을 때 잘못된 것이냐 이런 것을 좀 평가해 보세요."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르헨티나는 과거에 세계 6대 강국 안에 들었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4대 강국까지 갔다고 자부한다는 겁니다.
제가 배울 때는 6대 강국이라고 배웠습니다. 가보세요. 나라가 얼마나 크고 자원이 많습니까? 정말 잘 살 수 있는 좋은 나라인데 왜 이렇게 망했느냐 말입니다. 제가 가서 집회할 때 빈민촌 거리를 막고 경찰차 10대가 보호해 주면서 청년들 4000여명이 밤 1~2시까지 집회를 했습니다. "여기 빈민촌을 보세요! 여기서는 하루에도 사람이 몇 명씩 죽어나가는 험악한 빈민촌인데 당신은 어떻게 여기 와서 집회를 하십니까?"
"나도 모릅니다. 주체하는 사람들이 여기서 하자고 해서 내가 왔을 뿐이고, 여기서 이렇게 하게 된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주 무사히 잘 끝났는데 "4대 강국이었던 나라가 이렇게 빈민촌이 생기고 이렇게 못살게 된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나의 판단에는 가장 큰 이유가 잘못된 노조운동 때문에 이렇게 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노사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니까 내가 한번 가서 연구해 볼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모스가 부르짖었던 사회복음 문제는 도대체 뭐였느냐?
아모스는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회를 보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그 노력한 열매가 내게로 오는 사회가 아니다. 이게 제도적으로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사회가 아니다.' 사실 세상에는 이런 문제가 항상 있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습니다. 미국이 노예 해방을 한 것이 1863년입니다. 그러니까 불과 140년 좀 넘은 근래 역사입니다. 그러면 그때 노예들을 보세요. 평생을 일해도 자신의 소원은 성취될 길이 제도적으로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냐? 그러면 노예를 해방시켜야 될 것 아닙니까? "네가 벌어서 네가 먹어라!" 이렇게 해줘야 될 것 아닙니까?
저는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의 찰스턴(Charleston)에 있는 노예 시장 건물을 과거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해서 비행기를 6시간 동안 타고 일부러 찾아갔습니다. 가보니까 정말로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보존하는 곳입니다. 큰 슈퍼마켓처럼 "Slave market"이라고 노예시장이라는 간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여기서 노예를 팔았다." 저 아프리카 잠비아 쪽에서 노예들을 싣고 온 첫 번 항구가 찰스턴으로, 거기에서 노예들이 전국으로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들어가 보면 감옥소같이 창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흑인들을 다 잡아다 놓고 시장 보러 온 사람들이 빙 둘러서 봐서 남자나 여자나 마음에 들면 "너 나와!" 데리고 가 "얼마야?" 돈 지불하고 사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닙니다. 노예입니다. 평생 죽도록 일해도 자기가 죽도록 일한 것의 열매가 자기에게 안 오는 제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냐?'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뒤집어엎어서 전쟁을 일으켜서 해방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됐습니까? 요즘에는 세계 운명이 흑인 여자 손에 달려 있습니다. 흑인 여자 하나 신경 잘못 건드리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릅니다. 곤잘레스 미국 법무장관이 흑인 아닙니까? 흑인이든 백인이든 상관없이 자기가 노력한 것에 대한 열매가 자기에게 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계 민주국가나 선진국가나 다 삶의 철학이 분명합니다. "네 생활은 네가 책임져라."그래서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그 열매가 내게로 와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고 내가 게으르고 타락하면 그 고난이 내게 오도록 "네가 네 인생을 책임져!"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모스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사회를 만들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제도적으로 그것이 안 되어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오늘 말씀에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신발 한 켤레 값으로 노예 하나를 사면 그 사람은 평생 그 값입니다. 자기 발전을 향해서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사회이다. 누가 만들었느냐? 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고 날마다 인신매매를 하면서, 사람들이 도저히 발전할 기회를 안주는 제도적 장치를 하고, 자기들만 그 열매를 따먹고 앉아있는 사회가 도대체 무슨 사회냐?"
지금 웬만한 나라들은 대한민국을 비롯해서 자기가 노력하면 자기에게 열매가 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게을러서 일을 안 하는 사람은 고난이 자기에게 오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는 뭐냐?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에게나 희망이 주어질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 아모스가 사회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하고 설교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설교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너희들 왜 노느냐? 우리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아침 9시, 11시, 오후 3시, 오후 5시에 각각 나가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6시가 되어서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는데 오후 5시에 온 사람은 1시간만 일했는데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아침 9시에 일한 사람도 똑같이 주었습니다. 그러면 주인의 기업 정신은 뭡니까? 손해는 좀 봤지만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업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회는 조금은 손해를 보면서도 나눔이 있을 때 나도 행복해지는, 이런 철학으로 우리가 살아야 함께 사는 사회가 된다는 겁니다.
"만약 오후 5시에 일한 사람도 9시부터 써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가서 하루 종일 즐겁고 행복하게 일을 했을 텐데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었다. 그 사람들도 이 저녁에 그 정도의 돈은 손에 들고 가야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 아니냐?" 이런 기업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예수님이 설교하신 적이 있습니다. 경제력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좀 지독하다는 평가를 세계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소문난 것이고 실제입니다. 유대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돈 문제에 있어서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생각은 "궁핍한 자는 영원히 궁핍하게 두어야만 우리가 그 열매를 먹을 수 있다." 신 한 켤레 값으로 노예를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놓고 도무지 풀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모스도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 수 밖에 없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제도를 개혁하는 설교를 합니다.
아모스 성경에 보면 저주 신학의 설교를 많이 합니다.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는 자들아 들으라."하면서 설교를 합니다. 우리 60대 이후 사람들은 다 기억납니다. 토지개혁이라는 역사입니다. 대지주가 땅을 많이 가지고 소작인들에게 땅을 나눠 세를 주고 일 년 수확의 50퍼센트 이상을 가지고 오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소작농들은 10년을 피땀 흘려도 자기 소유의 땅은 한 평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제도적으로 안 됩니다. 평생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좋은 제도가 아니다." 그래서 정부의 힘으로 소작농들이 하는 모든 땅을 그들이 소유할 수 있도록 토지 개혁을 시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지금도 경제 발전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제도적 불행 속에서 사는 나라들입니다. 중국이 어떻게 저렇게 잘사는 나라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중국의 학자들을 만나서 얘기해 보세요. 우리가 들은 얘기는 등소평 때문에 이렇게 잘살게 되었다고 다들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것이 되지 않는 제도였었는데 이제는 "네가 벌어서 네가 먹어라" 자본주의 시장 경제 구조를 받아들이니까 하루아침에 달라져서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중국이 세계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강대국이 될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모스는 자신이 "이 사회는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다. 가난한 사람은 영원히 가난해야 되는 이 제도가 무슨 제도이냐? 이것을 없애서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그것이 하나의 사회 복음, 사회 정의이지 하나님의 정의란 도대체 뭐냐?" 이렇게 막 저주하는 겁니다. "앞으로 이 나라는 하나님이 저주하셔서 국토의 황폐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사실 BC 721년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타는 불꽃의 저주! "앞으로 불이 바다를 삼키게 될 것이다. 육지까지 다 먹으려 할 것이다. 극심한 가뭄이 와서 너희들이 아무리 수고해도 먹지 못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환상적 저주 설교를 하면서 제도 개혁을 하는 내용이 이 아모스의 기록입니다. 그러니까 영광을 누리던, 기쁨을 누리던 자들이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아모스라는 놈이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있어? 한창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그래서 여러보암 왕과 제사장 아마샤가 예언 활동의 금지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모스! 너 하지 마라!" 왕의 명령으로, 또 최고 제사장 아마샤가 "너 하지 마라!"라고 해서, 활동을 중지 당하고 쫓겨나게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에서 그 당시 역사를 좀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유대 나라는 우리나라같이 남북으로 갈려져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1세는 북쪽 건국의 아버지입니다. 존경을 많이 받았는데 북쪽 지방은 이스르엘 평야가 있는 곡창 지대입니다. 얼마나 풍요로운 곡창지대인지 이 땅을 뺏기 위해서 24번이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땅 때문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겁니다.
이스르엘 평야에서 나는 채소를 로마 사람들까지 갖다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풍부한 생활을 잘 누렸는데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유대 나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그렇게 그리워한단 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남쪽에 있습니다. 못갑니다. 그러니까 여로보암 왕이 방법을 하나 냈습니다. 북쪽 영토 벧엘에다 성소 하나를 건축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그리워하지 말라! 여기 성소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성소를 지은 것이 아니라 우상 성소를 지었습니다.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놓고 "우리 조상이 광야에서 본 금송아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느냐? 내가 이렇게 성소를 만들어 놓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으니 여기 와서 예배드리고 남쪽 예루살렘을 그리워하지 말라." 국민총화, 민심통일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소를 새로 만들었으니 제사장이 필요하게 되어 왕이 제사장을 임명했습니다. 그래서 가짜 제사장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들은 국가가 베풀어 주는 좋은 대우를 마음껏 누리면서 향락적 삶을 누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고,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해야 될 사람들이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의 기갈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가 지금 지적하는 것은 "왜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날마다 향락적으로 먹고 마시는 데에만 도취해 있느냐? 먹을 것이 없어서 기갈이 아니고 마실 것이 없어서 기갈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기갈이 되고 이제 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심판이 임재할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져서 유대 나라는 암흑기의 역사를 살게 됩니다.
예전에 제가 개척교회를 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마을에 가서 전도를 시작하는데 십자가를 메달아 놨단 말입니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이 "이게 뭐야? 아니, 우리 동네에 누가 들어와서 함부로 저렇게 십자가를 세우는 거야?" 그때 제 나이가 29살이었으니까 동네에서 힘 꽤나 쓰는 청년들과 아저씨들이 나와서 "여보쇼! 누가 마음대로 이 동네에 십자가 걸어놓고 이런 일을 하는 게요?" 그러면서 때려잡을 것처럼 주먹 쥐며 겁을 주는 겁니다. "여보쇼! 당신 빨리 십자가 떼!" 저는 당당하게 "나더러 십자가 떼라고 당신들 이렇게 몰려온 거요?" "그렇단 말이야! 빨리 떼!" "나는 십자가를 다는 사람이지 떼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목사야! 내가 달았소! 당신들 중에 누구든지 십자가 떼려면 마음대로 떼! 한 가지 주의를 줄 께! 십자가 떼는 사람은 죽을 지도 몰라! 집안 망해! 알았지? 떼!" 아무도 못 떼는 겁니다.
사람이 다 종교적입니다. 왜? 하나님이 다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막 와서 주먹으로 때려잡을 것처럼 왔던 십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서로 눈치만 보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 저의 음성이 더 커졌습니다. "왜 못 떼? 누가 뗀다고 했어? 네가 뗄 거야? 떼어봐! 당장 죽을 거야!" 마음속으로는 '당장 죽진 않겠지만….' 그때는 저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중에 회개하고 마을에서 제가 살 수 있는 사택을 지어주었습니다.
구약에 보세요. 웃사가 하나님의 법궤를 함부로 손대었다가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적 권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것을 반드시 존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적 권위를 다 무시하고 대제사장들이 설교도 안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없어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저주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설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유익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의 빈곤! 이것이 인간의 위기입니다. 북 이스라엘 나라의 교만은 이스르엘 평야가 주는 일용할 양식의 풍성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행복에 필요한 모든 재료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무엇으로 창조하셨습니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곧 로고스다! 말씀이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교회는 이 말씀을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 서구의 교회가 왜 망한지 아십니까? 말씀이 없어서입니다.
성직자만 라틴어로 몇 마디 하고 말았으니 교인들이 무슨 은혜를 받아 말씀을 읽고 신앙생활을 합니까? 그래서 지금 변화되지 않았습니까?
어느 날 예수님은 지극히 배고픈 경험을 하시게 됩니다.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재미없다고 고민이 되시면 24시간만 금식을 해보세요. 생각이 금방 바뀝니다. 일 년에 하루 정도 그렇게 금식 기도를 해 보세요. 삶이 풍성해 집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광야에서 굶으셨으니 예수님이 얼마나 배고프셨겠어요? 그런 시간에는 누구도 육신을 가졌다면 먹을 것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저도 삼각산에 여러 번 올라가서 금식 기도를 하면서 며칠씩 굶어봤지만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둥그런 것만 보면 다 빈대떡 같이 보이는데,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 마귀가 와서 "배고프지? 세상은 먹는 것이 복음이야! 이 돌로 떡을 만들어 빨리 먹어! 그리고 배고픈 사람에게 나눠줘! 그것이 복음이야! 다른 생각하지 마!" 그런데 그 극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돼!" 삶의 기초를 말씀에다 두십니다.
칼 마르크스가 본 인간의 문제는 뭔가? "빈곤과 계급이다. 이것을 해결하면 지상은 유토피아다." 그래서 얼마나 장미빛 깃발을 들었습니까?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가 생기고 청년들이 평등원칙의 이데올로기를 아주 신이 나서 따라했습니다. "똑같이 먹고 똑같이 배부르고, 인간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다." 그리고 교회를 다 쫓아냈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났습니까? 그런 나라들은 다 망했습니다.
예수님은 정반대 진리를 주장하셨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영혼의 빈곤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지 말라!" "그러면 뭐가 먼저입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이것이 삶의 기초이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삶의 기초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라는 것이 오늘 아모스의 설교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기갈이 아니요 마실 것이 없어 기갈이 아니요 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있소?" 말씀이 끊어진 사회에서 암흑기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성경의 역사요, 인류의 역사요, 기독교 2000년 역사입니다. 말씀이 끊어진 사회는 그 때부터 암흑기의 사회로 살게 됩니다.
저는 결혼 주례할 때 성경책 한 권을 늘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가치만 깨닫는다면 평생 행복은 계속된다. 문제는 이 가치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있다. 이것 가지고 이 속에 있는 보화를 캐내면서 일평생 살아봐라! 100퍼센트 지속된다." 이런 뜻으로 성경을 줍니다.
제가 숙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성경 아직도 한 번도 안 읽어보신 분은 책 한 권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금년 12월 말까지 한번 다 읽으세요. 아니, 영어로 읽는 것도 아니고 스페인어도 아닌데 한글로 읽는 것을, 한 시간에 마태복음, 누가복음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왜 안하시는 겁니까? 학교나 국가에서 숙제를 내면 밤을 새면서 하면서 목사가 주는 숙제는 제일 꼴찌로 생각합니다. 목사 말도 좀 들으세요.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 어떻게 약속했느냐 하면 "하나님, 이 로고스를 창세기 1장 1절에서 요한계시록 마지막 절까지 내가 평생을 통해서 어느 성경 구절도 내가 다 설교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 해본 성경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몇 번 지나갔습니다. 강해 설교도 하고 몇 번이 반복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저는 설교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말씀을 기초로 해서 영적인 것을 살려할 때 다른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더하여 줄 것이다."
이 순서가 바뀐 사회주의 국가는 다 망했고, 이 순서대로 살았던 서구의 나라들은 다 잘 살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GNP가 얼마인지 아시는 분! 정확하게 16,000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보낸 파송 선교사가 16,000명입니다. 같이 갑니다. 20,000명 선교사 파송할 때 GNP가 20,000불 될 테니 보세요. 말씀을 다 끊어버린 북한! GNP 얼마인지 아시는 분! 960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들으라! 말씀이 끊어진 사회는 암흑기 역사가 시작된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다. 이것을 왜 모르느냐?" 아모스가 그 사회에서 지금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과 함께 인생이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은 말씀을 접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무엇이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말씀 가운데서 해답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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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인생을 걸고, 움직일 시기는 지금 뿐입니다,
과거는 잊으세요, 결국은 현실이 가장 소중하고, 미래는 꿈이 랍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마음으로 좋은 꿈 그리시길 기원합니다.💖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잠 10:21).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