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게 버거운 사이다
H A P P Y L E T T E R May. 5. F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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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밀도,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게 버거운 사이다
사람들은 가족이라고 하면 타인보다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이라고 인식에 박혀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너무 어릴 때를 제외하고 부부와 자식은 생각만큼 같이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지닌 코로나19로 인해 의도하지 않게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집안의 밀도가 높아졌다.
사람들은 가족이라고 하면 타인보다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이라고 인식에 박혀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너무 어릴 때를 제외하고 부부와 자식은 생각만큼 같이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지닌 코로나19로 인해 의도하지 않게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집안의 밀도가 높아졌다.
가족 간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마찰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행동양식이 자주 눈에 뜨이게 된다는 의미다. 1주일에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20여 시간을 보내면 됐는데 100시간을 넘게 보내면서 많은 갈등도 생겨났다는 뉴스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타인이 아니더라도 가족도 적절한 거리는 필요하다. 자신만 아는 은밀한 사생활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간 속에서 나 아닌 누군가와 너무 가깝게 계속 유지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킨십도 좋은 영향은 미치지만 때와 장소도 있는 법이다. 사람의 성향은 모두 다르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다른 가족이 움직일 것이라는 이심전심은 아주 가끔씩 맞는 법이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마주치는 횟수조차 적은 큰 집에 살면 몰라도 대부분은 조금만 길게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가족 간의 갈등은 자신과 다른 가족과의 밀도를 너무 가깝게 생각하는 데 있다. 경제적인 사유등으로 가족 간의 갈등이 초래되었을 때 다른 가족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것은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가족은 자신이 없어져도 잘 살 수도 있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의 방식이 똑같이 적용된다고 미리 예단하는 것은 가장 큰 착각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자라면 처음에는 자신의 가족의 밀도가 높아지다가 차차 낮아지며 성인이 되면 보통은 마음만 가까이에 있고 몸은 멀어지게 된다. 성인이 되었어도 경제적인 사유등으로 다시 주머니로 들어가는 캥거루처럼 앞으로 그런 일반적인 형태의 가족형태도 달라지겠지만 보편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의미다.
개개인의 밀도가 낮아지다가 다시 높아지게 되는 것은 반려자를 만나면서다. 이때에 상대방의 가족과도 가까워지게 되고 생각은 했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자신의 가족과도 가까워진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돈도 나간다는 의미다. 세상 모든 가까워지는 것에는 보통 비용이 수반된다. 도시의 밀도가 높아지면 기초적인 생활비도 올라가며 밀도가 높은 반짝거리는 것도 비싸며 대중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도 수요가 높아져서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보다 지불해야 하는 돈도 크다. 예를 들어 어떤 음식점이 너무 유명해져서 바글바글하다면 똑같은 음식값을 지불해도 시간적인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반대로 관계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돈으로 치환하는 사람도 있다. 몸이 가까워져야 할것을 경제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상대방 부모에게 무언가의 행동이 필요항때 돈으로 해결한다. 자식에게 해야할 행동을 배우자에게 돈을 주어서 빠져나가는 식이다. 그것이 일상화되면 관계의 밀도가 낮아져서 돈이라는 매개체가 사라지는 순간 그냥 해체되어버릴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적당한 조직밀도를 유지할때 그형태가 유지된다. 엄청난 압력에 의해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원자의 배열이 달라지면 부서지기 쉬운 흑연이 된다. 보통은 다이아몬드에 더 찬사를 보내지만 흑연도 필요할때가 있다. 그때그때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없다. 아무리 비싼 명품이라도 생김새가 비슷한 농협의 마크처럼 무료로 나눠준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만 있으면 소용이 없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마찰열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물론 한겨울에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나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살아간다. 매번 가까운 것이 좋지는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라는 존재는 결혼을 하면 자신의 가족이 자신의 아바타인 것처럼 동일시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가족에게 못하면 마치 자신이 무시당한 걸로 치부한다. 심지어 자신이 더 심한 행동을 했던 것은 용납되지만 상대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일부 남편의 대리 효도 요구로 인해 부인의 스트레스 호소는 새롭지도 않다.
가족 간의 과도해진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마찰열을 해소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부모의 심각한 교육열 역시 과도한 욕심 때문이다. 자식과 부모가 가까워지다 못해 자신처럼 생각하면 자식의 공부는 자신의 공부처럼 바뀐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공부하지는 않는다. 게임에서 자동으로 플레이하는 것처럼 정기적으로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다른 것이 있다면 게임에서는 돈이 안 들지만 현실에서는 돈이 든다는 점이다. 때론 자신에게 지나간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론 겉으로는 너를 위란 것이라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산으로 가서 혼자 살 것이 아니라면 결혼을 하던 안 하던 평생을 가족 간에 밀도를 조절하면서 살아간다. 어릴 때는 부모와의 관계, 커가면서 형제와의 관계(심각한 저출산으로 이건 자동적으로 해소되고 있다), 성인이 되어 결혼하면 상대방과 그 가족 간의 관계, 아이를 낳았다면 다시 자식과의 관계, 자식이 커서 결혼하면 다시 상대방 가족과의 관계등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돌아가는듯하다. 누구나 지옥에서 살기 위한 사명을 띠고 이 땅에 내려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가족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이는 심리적인 밀도기 너무 높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처럼 가족도 그럴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 배우자, 자식으로서의 일반적인 도리는 있을 수 있지만 절대적인 관계는 없다. 분명히 타인과는 다른 밀도를 가진 것이 가족과의 밀도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마냥 가까워지는 것이 버거운 관계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죽기 전까지 그 밀도는 항상 조절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by 나는누군가 https://brunch.co.kr/@hitchwill/6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