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불꽃이 점화돼 타올랐다. 남과 북이 하나 되었다. 김영남, 김여정의 영접장소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의 말마따나 “북에서 오신 귀한 손님”덕에 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날씨가 풀렸는지 어쨌든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9일 저녁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은 1주일여 전 리허설 당시의 기온에 비해 무려 15도 정도 더 올랐다고 현장 기자가 전했다.
전 세계 92개국 292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제23회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와 북한은 맨 마지막 91번째로 입장했다. 공동입장이었다. 영문으로 'KOREA', 한글로 '코리아'라고 쓴 팻말 뒤로 한반도기를 앞세운 200여명 선수가 들어섰다. 기수는 한국 남자 대표 원윤종(봅슬레이)선수와 북한의 황충금(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선수가 하나 되었다.
먼저 입장한 각 국 선수와 3만5천여 명 관객들이 모두 기립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귀빈석 뒷좌석에 미리 서서 대기하던 북한측 대표단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소위 ‘백두혈통’이라 김씨 왕조 일가를 선전하는 공포통치의 대명사 최고 권력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박수를 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곧 김영남 단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과도 악수를 교환했다. 김여정과는 첫 만남이자 올림픽스타디움 입장 시 귀빈들과 나눈 첫 악수에 이어 두 번째 악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첫 번째와는 악수에 담긴 의미도 분명 달랐을 것이다. 평창 올림픽을 기화로 적대관계인 헌법상 북한 국가수반과 명실 공히 실질적인 북의 최 측근 실세와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며 평화무드를 향한 순조로운(?) 출발을 한 것이다.
이에 앞서 남과 북 선수들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으로 하나 된 남북을 일궜고, 양 진영의 국적기가 북과 남을 오갔다. 꽉 막혔던 땅의 육로와 하늘, 바닷길이 순식간에 열리기도 했다. 개막식 선수단 입장에서는 남북 선수들이 하나의 깃발, 하나의 유니폼, 하나의 음악(아리랑)에 맞춰 춤을 추고 손에 손을 흔들며 감격의 웃음을 나눴다. 남북의 최고위급국제대회 개회식에서 남북한이 공동 입장한 것은 2007년 중국 창춘 동계 아시안게임 이후 11년 만이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래 10번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압권은 또 있었다. 성화 봉송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축구의 안정환 선수가 들고 뛰던 성화봉이 인계된 것도 하나된 남북이었다.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박종아 정수현 선수가 성화대를 향해 계단을 뛰어 올라가면서 축제는 절정으로 치닫고 남북이 성화최종 주장임을 일깨우는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 최고 결정의 순간까지 남과 북은 손에 손을 마주잡고 뛰었다. 바로 남북이 평창에서의 주역이요, 주인공으로 우뚝 선 순간으로 보였다.
모두가 여망하는 대로 남북이 분단의 갈등과 분쟁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끄는 주인공이 되기를 소원할 것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따져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서 주인공은 개최국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에서 오신 귀한 손님”들이 주인공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일방적이고 편협적인 사고라 할 것인가.
2018년 1월1일 북한 김정은 신년사로부터 올림픽 개막식 2월9일까지 40여일 사이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지 기획과 연출, 시나리오까지 전체 각본의 가필(加筆)은 김정은의 손짓 눈짓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남 하루 전 일방적으로 일정을 연기했다 1월21일 서울에 온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으로부터 시작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예술단, 응원단, 모란봉 92호와 한반도기, 그리고 2월9일 서해 직항로 하늘 길로 북한에서 온 귀한 손님들이 최고의 주역이지 않았을까?
거기에 우리 선수들은 조연이요, 올림픽스타디움에 꽉 들어찬 3만5천여 관객은 이 드라마를 위해 아무 불편 없이 동원된 단역배우라면? 하나 구태여 그것도 문제될 게 없다면 조연이 됐든 단역이 됐건 모두의 바람은 더 이상 이 땅에서 천안함 피격이나 연평도 포격,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같은 일촉즉발의 전쟁위협이 없기를 바라는 한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간 거듭되던 북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 북한 집단의 위협은 일단 올림픽을 계기로 수면 아래로 잠복된 듯하다. 압박과 제재 이면 ‘평화’를 주창하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이목을 더 이상 회피하기도 어려울 수 있음이다. 단일팀이 물꼬를 텄고, 한반도기와 성화 주자들이 불을 붙였다.
북한 대표단이 10일 청와대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 면담을 통해 어떤 화두를 분명히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화두가 합당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납득할만한 가치도 제시해야 한다는 점, 그것을 우리도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제시하고 또 받아들이게끔 해야 한다는 일이다. 그래서 북한 대표단의 청와대 예방에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가 주시하는 것 아니겠는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9일 평택 제2함대사령부를 예방해 동행한 故오토 웜비어 부친인 프레드 웜비어씨를 포함한 미 의회 연두교서 발표장(1.30)에 참석한 지성호 씨 등 탈북자들과 면담에서 “북한의 독재정권은 (주민을 억압하는) ‘감옥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 대표단의 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두고선 “전 세계가 오늘 밤 북한의 ‘매력 공세(a charm offensive)’를 보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 후 “북한의 ‘미소 외교’에 눈을 빼앗겨선 안 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중구조 북한의 진면목을 정확히 들여다보라는 경고로 해석되기도 한다.
대부분 한국 사람은 다 아는데, 알면서도 저들에 넘어가고, 애써 넘어가고 싶어 하는 일부계층, 일부부류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채찍으로 들린다면. 바라건데 이제라도 더는 속아주지도, 일부러 넘어가주는 통 큰(?) 배포 일랑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이다.
모두가 승리하는 성공 올림픽이 되기 위해 다함께 지피는 성화의 불꽃이 되기를 소망한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