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삐리 2학년 시절이니 코밑에 수염이 막 시커멓게 자랄 때 이지 싶다.
아마도 1976년 늦은 봄과 이른 여름사이에 .............악동시절... !
한강의 북쪽 어귀 에 살던 중학교 동창 녀석이
우리 동네쪽 잠실 시영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지금이야, 포장이사다 뭐다 해서 짐 꾸리고,날라주고
가재도구 정돈은 물론, 은밀한 속곳까지 가지런히 정리해주는
편한 세상 되었으니 힘은 좀 들어도 이삿집의
흥겨운 풍속을 보는 것이 아주 드물지만,
그 때만 해도 짐꾸리는 것은 여자의 일,
나르는 것은 남자의 일로 정확하게 역할 구분이 되어 있었고
어른들 에게는 이사짐 나르기가 일종의 품앗이 처럼 주고 받는
집안의 큰 일이 되었던 시절.. 이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힘 밖에 없었던 젊은 청춘 넷이 모였다.
전 날 모여 거의 밤새 키득거리며 놀았어도,
담 날 이사짐 나를 때면 큰 이불보따리는 서로 짊어 메려
몸싸움을 벌이고, 엄마가 아끼는 자개농을 나르다 귀퉁이에
상채기를 내도 서로 시치미 뚝 떼며 실실 거리고
고추장 담긴 큰 항아리를 나르다 뚜껑을 떨어뜨려 깨먹어도
전혀 심각하지 않았던 열 여덟 살 아이들이 연출하는
이삿 날의 풍경은 하나의 놀이 마당 이었다.
5층의 아파트 옥상이면 의례히 있던 이삿 짐 나르기 곤도라가
그 기능을 발휘 못하는 고철이 되어버려
4층까지 날로 들어 올리는 일이 꽤나 힘들었어도
오후 두세시 정도에 우리가 할 일이 모두 끝나니
제법 따사로운 햇 살이 내리 쬐는 앞 마당 잔디에서
시켜준 짜장 곱배기로 늦은 배를 채우고 있던 무렵....
한 넘이 갑자기 긴장하며(?) 은밀하게 손짓을 한다.
모두가 의아해 하며 시선을 돌려보니 ...흐~미! 이거시 모다요?
이사한 그 집 옆동의 3층 창문에 여고생인 듯한 가시나의 모습이 걸려 있다.
그 당시 남자아그 들이 유달리 선호하던 양갈래 딴 머리에 하얗고
참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 애도 이삿짐 나르기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우리들의 부산스런 움직임에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한 듯 했다.
악동들 넷이 모였으니 세상에 무슨 일인 들 못하랴..
우리 잡넘 들은 그 때부터 그 창가에 시선을 집중시켜 놓고
그 애가 보이기만 하면 내려 오라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움 인지, "별 꼴 다 보겠네.." 하는 비아냥 인지
그 여자애는 잠시 얼굴을 보여주며 쳐다보다 쏙 하며
안으로 숨어들어가고 그런가 하면 잠시후 다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쳐다보기도 하며...애간장을 태웠다.
시간이 꽤나 흘러갔다.
어차피 우리는 제각기 집으로 가야만 하고
결국 남는 녀석은 그 때 해골모양의 교표에 여름이면 제법
멋깔스런 벙거지를 쓰고 다녀 여고생들 에게
제법 인기가 있던 중앙고에 다녔던 그 녀석이다.
그 때 당시 서울에 고등학교가 남녀 합해 148 개교가 있었던가.
특히, 여고에 대해서는 30 미터 후방의 뒷 모습만 보아도
어디에 있는 어느 여고 인지 알 정도로 그 계보에
달통해서 애들의 연애상담과 연애편지 대필등을 해주고
버스 회수권이나 토큰을 받아 쏠쏠한 부업의 재미를
보고 있던 내가 그랬다....흐흐흐~!
"자, 이제는 네 것이다..시간도 네 것이고
이 자리도 네 것이다.. 한 번 버틸 때 까지 버텨 봐라."
우리가 돌아가고 나서도 그 녀석은 죽치고 앉아
그 여자애가 얼굴 보이면 손 짓 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하염없이 주저 앉아 버티기....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까지 합하면 총 아홉시간을
오줌보가 터지는 것도 참아가며 한자리를 고수하고 보니
나중에 그 녀석 앉았던 자리의 잔디가 누렇게 찌들었다니 실로,
인간의 호승심이 오기로 바뀌고 단순한 호기심이
죽음을 불사하는 승부로 바뀌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우리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버티기 한판 승"을 거둔
그 녀석은 한 동안 그 여자애와 한강 둔치를
코스 삼아 한 여름 밤의 상열지사를 맘껏 구가 했다 하니
그 날 이사한 놈이 왜 그 놈이어야 했는가 하며
한 동안 우리는 한탄해 마지 않았다.
아~! 9시간만에 항복을 선언하고 다소곳이 내려온
그 여자아이가 끝내 안내려 왔다면 그 결말은 어떠한 것이 었을까 ?
안 내려 왔다면 뭐, 이 얘기도 없는 것이겠고....
그넘 마누라도 읍는게 아닐까?
지겨울 정도로 질긴 그 넘은 10년 열애 끝 으로
결국 주져 앉히고...아들 둘에 딸둘..4남매를 두어...
다복한 삶을 살고 있다.
유난히 성실하고 한국인의 표상인 은근과 끈기의 화신인
그 녀석이 지금 제가 자리한 분야에서
지 녀석 특유의 기질을 발휘해가며 남보다 뒤처지지
않은 것을 보면 헛수고만 허는 맹헌 놈은 아니다.
지금도 가끔은 그 때 그 얘기를 하면 박장대소 하며
친구 넘 마누라 왈 ~~~~~!
"그 끈기에 감동해서 내려온 것은 아니다.
아주 불쌍해 보여 할 수 없이 내려왔다" 라고 하더라나....
내 그리운 시절이여...다시 올순 없는건가....!
|
첫댓글 와 돈님이 ..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들지 않으셨나요 그 시절 다시올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추억과 현실이 ...... 친구분의 끈기에 감탄 ... 잠실 시영아파트 지금도 있어요 재개발 중이지만 ..... 돈님 화사한 미소짓는 하루되세요
시방은 값이 만만치가 않을거유...난 5단지에 살아다가....대치동 으로 이사 했는디...하하하...님도 겁나게 운존 하루 되시길~!
돈님 멀리 오셨네요,,,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지둘리세요...지가 곧 찾아갈텐게...존하루,,,아니 밤 되서유~! 하하하~!
친구와함께 잊지못할 영원할 아름다운 추억이네요,,,고운우정 변치말고 연원하시길 바랍니다
그잡넘 장가들때...아니 발랑 까진 그넘...총각딱지 뗄대...흐흐흐~나가 한수 알켜 존는디..시방은 나보다..더프로가 되가꼬...! 하하하~대구린 훌렁 까진넘이....
곱고 멋진 추억에글 잘보고 감니다,,
머물러 주셔 감사 드립니다...지가 이방은 오늘이 처음인데...환영해주셔 감사...!
그때, 그시절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역시 학창시절..이, 살아가며...아주 귀한 추억이 되지요??
추억은 늘 그렇게 그리울때도 있고 아픔으로 남아질때도 있는것 같아요 누구나 추억은 지나고 나면 늘 그리워 지는건가 봅니다 잘 보고 마음을 이곳에 남겨 보앗습니다^^
그렇지요...나이을 묵으면 추억을 묵는다 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 여인네는 저리도 이쁠꼬 돈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지허고 취향이 같네유...하하하~~존 저녁 시간 되세요~!
멋진 추억에글 감사 하당께요...돈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님의 글 읽고 멋진추억 느끼고 .... 그때 그시절 ..... 참 귀하디 귀하신님...늘 좋은날 되십시요
아름다운 추억이 승화되여 더욱더 빛이 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