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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회 정토원순례
2553(09).7.24 정명 서용칠
09년7월 24일20시
전국이 흐리고 비가온다는 뉴스를들으면서 양재역 서초구민회관에서 출발했다
목적지 경남 진영읍 봉하마을과 정토원에 가는길인데 그곳에는 오늘밤 시간당 30mm 의 비가내리고 호우주의보가 내린단다
회색의 도시 마음마저 허전한것이 무엇인가 잃어버린듯허허롭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질식할것같다
12명이 간다고 약속하여 12인승 승합차를 12만원씩이나 드려서 가는 나들이인데 정작 5명이동참하여 맥이풀리는 여행길같다
그러나 남행으로 갈수록 밤하늘은 넓어지고 맑아지고 높아지고있었다
밤여행길은 많은것을 생각하게하고 앞으로나아가는 미래가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과거를 보는여유로움이있었다
23시에 선산휴계실에서 늦은 야참을 드는것도 기나긴 겨울밤 참쌀떡을 사먹는 재미에 비견되는 추억감이였다
길을 잘못들어 아래는 시퍼런 밤강물이 넘실되는 뚝방길을 헤메기도하고 차안에서 밤새 이야기 나누면서 봉하마을 정토원에 당도한시간은 날짜변경선을 넘어 새벽 02시였다
애초에 종무소에 1박2식 하기로 예약을 하였기에 그저 새벽 01시쯤에 도착하면되였다
우리는 한시간 늦은 약속시간이 마음에걸리고 조용한 새벽공기를 흔들어놓을수가없어 읍내로 차를돌려 하룻밤 뉘울수있는 숙소를 찾는데 1시간여를 보내고서 모텔을찾아 무디어진 길손의 다리를 쉬기로하였다
집에서도 자리목을 바꾸어도 잠을청하지못하는 나의 예민한 잠길을 고이들일수가없었다
새벽 세시에 눈을붙였으나 짧은한여름밤 뒤척이는 길이는 길기만하였다
겨우 두시간 잠을설치고 인근식당에들러 아침을먹고 다시정토원을찾았다
뜻밖에도 동산불교대에서 오신 법사님들은 요사체에서 아침공양하십시오 라는 방송이들리는것이였다
우리일행을 반겨주는 사람있어 기분이좋았다
밤새 종무소에서는 불밝히고 우리를 기다렸다고한다
삼천리 금수강산 어디아닌곳 내가 딛고있는 이땅이 정토인데 우리는 왜 정토원을 찾아 밤길을달리고 6시간을 길에 던지고 일기불순의 예고를 들어가면서 찾아나섰을까
봉하마을도 보기위함이였다
기상청에는 박수무당을 초빙하던가 신경통환자를 예보관으로 모심이 어떨까
호들갑에 겁주는 일기예보 때문에 도반들이 동참하지않은사람도있는데
비는 구경도못하고 날씨만 좋왔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가가있고 노후의 집이있고 49재를 지낸곳이있고 부엉이 바위와 사자바위을 보기위해서 500리길을 갔다
방송을 뒤로하고 壽光殿으로먼저갔다
대웅전격인 수광전은 아마도 무량수 무량광의 아미타불을 모시는큰법당인것이다
3배를 올리고 하단 우측 한쪽에 전 노대통령의 영정이 A4용지만한 사진한장에 다기그릇이 있을뿐이였다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이것은 검소하고 소박한것이 아니라 너무도 초라한것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49재 지내고 산소를 조성하는동안 이곳에 유골을모셨는데 여법하게 위의를 갖추어졌는줄알았는데 어머니인듯 할머니한분의 영정과 함께 나란이 놓여있었다
감로다 한잔을 받쳐 올리고 제례 3배를 드렸다
요사채에 들러 30분 예정으로 선진규 원장님을 친견하였다
한눈에 절도있고 건강하시고 올곧은분으로와닿았다
그러나 대화는 1시간 20분동안 우리들을 맞이하여주시며 많은이야기를 하시며 들으시고 참으로 복 많이지으신분이였다
34년생으로 동대를 졸업하고 객원교수를지내고 전국신도회장을역임하시고 국민훈장 목련장(대통령)을 수상하셨다
관심깊은 말씀으로 동산불교대학과의 인연이야기를 많이들려주셨다
이제 한국불교는 재가운동이 일어나야 불교가 바로설것이며 초랭이를 입어서는않되고 반드시 법복을 입어서 위의를 갖추어야한다고하셨다
포교사복을 입고 철학관하는사람도있다 이는 절대않되는일이며 한국불교를 망치는일이라 걱정도하여주셨다
동산불교반야회의 무진장스님이 년간 310여회를 법문할 때 원장님은 280 여회 전국을 다니면서 강연과 법문을 하였다
우리들엑게 공부하고 헛되이시간을 낭비하지말라고당부하였다
정토원의 인연은 차라리 필연이며 운명인듯하였다
23년전 이곳에오시여 도량을 짓고 경내를 정리하고 청소년 수련관을 운영하고 노대통령과의 인연은 전생의 이야기를 하는듯했다
노대통령의 서거와 49재의 뒷이야기는 사뭇진지한 표정이였고 말씀을 차마하지못하시였다
다만 모든의식은 조계종 총무원에 의뢰하여 집전하였고 설법도 스님에게 맡기였고 모든 재정관계는 공개하였고 당신은 돈을 절대 관여하지않으셨다
정토원이 세계의 초점을 받으며 시선집중된것만이라도 그어떤 돈을 들여서도 광고가되였겠는가 라고반문하시면서 유발법사가 뒤에있었다는 것으로도 만족한다하였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삼킨 한여름의꽃 500년의 배롱나무꽃 아래서 기념촬영을하고는 경내를 돌아보고는 점심공양하라는 말씀을남기고 우리일행은 산으로 들었다
봉화산(140m) 야트막한 산을 돌아보기위해 오르기시작했다
7부쯤에 있는 호미든 관음상을 친견할 때 서러움의 눈물인듯 갸녀린 안개비가오기시작했다
그러나 우산을 쓸정도는 아니지만 내눈물대신 하늘이 울어주는듯해서 자꾸만 눈시울이붉어졌다
눈물은 가장 귀한 약재이다
슬플때울면 진정제가 되고 가슴이아플때 울면 진통제가되여주고 격렬할 때 흘리는 눈물은 안정제가 되어준다
같이 울어주는사람이 있다면 내마음을 주어도되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생각하는 숲을거닐때 이길이 노무현이 젊었을때 고시공부를 하면서 무엇인가 골돌이 생각을 나누었겠지 하며 사자바위에 당도했다
아방궁이라 세상을 들썩이던 집은 여염집이며 오리농장의 논들이 가지런히 고즈녁하게 자리하고 손주를 태우고 자전거를 달리던 논길이 빤히 나를 보는듯했다
나도 손주가있다
매일 아침마다 거울에게 물어본다 이세상에서 제일예쁜 사람어디있니 하고묻는다
거울에서는 내 손주 손자가 튀여나와 대답을한다
여기있지요한다
전직 대통령들은 호가있다
일해 거산 용당 우남 중수등 호가있으나 노무현은 호가 없고 노사모들이 부쳐준 바보란 별호가있다
바보 노무현에게 한가지 묻자 이길밖에 없습니까
손주에게 물어보았습니까
다시 역사의 현장 부엉이바위로향했다
어느덧 이슬비는 그치고 촌 아낙들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눈가를 손수건으로 훔쳐내며 후덥지근한 하늘을 원망하듯 올려다본다
이곳에는 하루에 3천명에서 만이천명이 온다고한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이렇게오고있을까
현장은 흰밧줄로 경계를 둘러쳐놓고 통제하지만 개구멍바지로 모두들 들어가서 바위끝자락까지가서 서보았다
우리는 여기서 합장하고는 삼귀의 반야심경을 모두 한목소리로 합송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다
그러나 난 다시 이땅에오시여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 외상담배 피워물고 껄쭉한 막걸리도 마시고 저들판에서 자전거 달리며 상록수 아침이술 불러보자고기원했다
나는 대통령 선거를 10여번 했지만 내가 지지하여 찍은대통령이 당선된것은 오직 당신뿐이였습니다
대통령 선거때 하 지지율이낮아 나는 14명의 가까운친구에게 이번 대통령은 노무현이가 되야하는 이유를 들이대면서 지지해줄것을 편지로보냈다
만일 노무현이 대통령되여서 기대를 저버리면 나는 우표값 190원*14장을 반환해달라고 청구할것이며 노사모에서 탈퇴하겠다고 약속했다
재미있는것은 친구들의 반응이였다
두사람은 절대 노무현은 당선되지않는다하고 또 두사람은 될것이라하였고 또 두사람은 난 별로이지만 네가 좋와하고 지지한다니까 찍어주겠다고 동정표를 얻었다
8명은 무응답이였다
자! 이제 바보 노무현은 옛날사람이되였으니 난 어디서 우표값을 받을것인가
우리는 다시 벼랑아래로 내려왔다
살아있는모든 생물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불살생을 강조하는것이다
살아있는모든생물은 귀하다
내가 귀하니까 남도 귀하게여겨야한다
그런데 이귀한 생명! 이두려움!! 을 이기고 벼랑끝을 밟고 자기를 학대하는가 !!!
그러나 안중근 윤봉길 최익현 민영환등 많은 지사들은 망설임없이 생명을 우리들에게주었다
위기간발의 백척간두에서 살려고 머뭇거리면 죽는것이요 뛰여내리면 살아서 큰어른이되는것이다
진영단감이 유명하듯 산자락에는 감이 덜퍽지게 달려 살찌우고있었다
감은 5절을 갖춘나무로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文 - 감잎에 글을써서 사연을 적어보내기도하고 글씨공부를 하였다
武 - 감나무는 단단하여 화살촉을 만들었다
忠 - 감은 겉과 속이 붉은색으로 충신을 이름하였다
節 - 감은 초겨울까지 빨간감이 달려있어굳은 절개의 표상이다
孝 - 감은 연시가되여 치아없는 노인이 들기에좋다
감은 중풍 혈압 숙취에도 좋은 비타민이 풍부한 식품이다
감밭을 예들러 내려오니 아이스케익 장사가 마애불을 친견해야된다며 길손을 잡는다
경남무형문화재 40호인 마애불을 친견하였다
바위틈에 끼여 간신이 몸을 나투신 관세음보살은 원래는 위쪽에 바로선 마애불이였는데 세월의 인연으로 밑으로 굴러떨어지면서 지금의 와불모습이되여 보기에 안쓰럽지만 굴르며 다친데가없이 거의 원형이다
와불처럼 보이는 관세음보살은 여원인과 시무애인으로 중생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있었다
와불윗쪽에 작은 폭포가있어 올려다보며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옆에 작은 바위틈속으로 꾸역 꾸역 사람들이 들어가기에 호기심에 들어가니 불상하나에 노대통령의 영정을 모시고는 수입(?) 잡는것이 좀은 수상한데 문앞에는 맛이간 여인네가 희죽희죽 웃고서있어 잡다한 생각이 다시 겨들어왔다
5분정도 내려오니 위에서 보이던 시뻘건 황토마당의 전 노대통령의 산소가 거북이가 납작 업드린 모양의 형국으로 보인다
선채로 합장하고 예를 올리고 유심히 살피니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한글 글이 보이고 와이샤츠 차림의 영정사진이 아스라이 먼거리처럼 느껴졌다
아직 정리가 않된상태라지만 대통령의 산소치고는 너무나 초라해 속상했다
아주 깡촌의 시골학교운동장인양 시뻘건 황토 바닥에 불과 몇뼙으로 잴수있는 크기에 사진한장이 덩그러니있다
허나 많은 사람들 특히나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와서절을올려 고인은 쓸쓸하지않을것이다
밤에는 부엉이 바위에서 부엉이 벗하여주고 낮에는 뻐꾸기소리 같이하면 이들이 3년 시묘살이 될것이다
상행길은 이곳에 오던 반대길을 택하여 진영읍 - 동창cc - 남해고속도로 - 구마고속도로 - 중부 고속 -영동 고속 -경부고속 길을 갈아타면서 북상하는길은 올때의 밤길을 벗어놓고 12인승 승합차여서 1차선을타고와서 교통체증이없어 좋았다
민족의 강 낙동강을 건너고 기적을 일으킨 한강을 넘을때는 강물만큼이나 이어지는 나의 이력이 긴꼬리를 노을처럼 저물어가고있었다
이번 여행길에는 회장 신현덕 법우가 운전을 10시간이상을 하여주었고 회비돈 아껴써야하고 못오신 법우님들을 위해 절약하자며 개인적으로도 많은 보시 부담을한 법우님들께 고맙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도 헤아릴수가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일밖에없다
건강이 좋지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없다
책을읽을수도글을 쓸수도없다
너무 슬퍼하지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아니겠는가 ?
미안해하지마라
누구도 원망하지마라
운명이다
화장하라
그리고 집가까운곳에 아주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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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다시 한번 또 다녀온 느낌으로..... 동참 못한 회원님께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