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오전 7시10분 서울 행운동 집을 출발하여 올림픽대교를 타고 춘천을 잇는 동서고속국도로 진입했더니 8시를 넘기면서 강원도 땅을 밟았다. 단풍이 산정상은 어느 정도 들었지만 아래는 별로다.
올해 대회는 공지천이다. 따라서 남춘천역 앞부터 <대구시청 마라톤회> 등 아마추어 마라토너를 태운 수 십대의 버스와 자가용이 이어져 거북이 걸음이다. 불과 그 2km의 거리를 빠지는데 30분이 소요됐다. 나는 친구 승완이와 공지천 입구에서 내려서 걷기로 하고 妻와 딸에게 가까이에 주차하고 오라했다. 왜냐하면 오늘 출전자가 2만800여명이라고 하니 주차는 물론 테이핑 서비스 등도 북새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테이핑 서비스를 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배번호가 6581로 E그룹 출발선에 섰다. 배번호 아래에 옷핀으로 고정한 달성목표 쪽지를 다시 보았다. 5km 29분․․․20km 1시간 55분․․․35km 3시간 24분․․․골인 4시간 9분으로 정했다. 봄에 달린 동아일보 기록보다도 9분이나 늦추었다. 왜냐하면 재작년과 지난해 모두 32km 지점 전후에서 근육경련이 났기 때문에 초반은 물론 서면사무소에서 춘천댐을 치고 오르는 중반과 소양2교를 지나는 후반까지 페이스조절을 하기 위해서다.
오전 10시 정확히 엘리트그룹이 출발했다. 차례로 A그룹과 B그룹 등에 이어 우리 E그룹이 출발했다. 나는 오전 10시 14분 20초경 스포츠시계를 눌렀다. 뒤 이어 F그룹에서부터 J그룹까지 뒤 따를 것이다.
5km지점 송암스포츠타운 앞부터 한림대학 연수원 입구 사이 1.5km 내외에 달하는 첫 번째 오르막이 나타났다. 여성 최고 마라토너 권은주씨의 말처럼 상체를 앞으로 조금 숙이고 보폭을 짧게 하여 체력고갈을 최소한으로 했다. 나를 추월하는 주자가 많다. 그렇지만 초반에 오버페이스는 후반에 지친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개의치 않고 평정심을 찾고 달렸다.
이어지는 내리막에서도 의식적으로 속도를 내지 않고, 내 몸이 가는 만큼만 달리다 보니 신연교와 덕두원교, 강서중학을 차례로 지난다. 경쾌한 관악기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신매대교 로터리에 중동고등학교 밴드부 재학생과 졸업생이 한데 어우러져 내는 소리다. 그 뒤에 크게 붙어 있는 현수막은 더 크게 보였다. 선후배간 스포츠를 향한 정이 돈독해 보여 보기 좋았다.
지난해까지 없었던 신매대교 중간지점에서 반환하여 하프지점을 통과한다. 바로 신매로터리인데 중동고 밴드부도 쉬고 있다. 발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 3km 내외의 거리를 달리는데 어쩌다 들리는 소리는 <화이팅! 힘내세요!!>이고, 답하는 소리도 힘이 들어서인지 짧게 <네>가 전부다. 그 외 앞뒤로 100m 사이에서 내가 들은 소리는 500여명의 발자국 소리 뿐이었다. 22km지점을 지나자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모두가 말을 나누는 것 조차 아낀다.
SK고향주유소에서 춘천댐을 오르는 구간은 은근한 오르막으로 기권자들이 여기저기 속출했다. 숨을 크게 세 번 들이켰다 내쉬었다. 오색단풍이 들어있는 주위 경관도 둘러보았다. 오늘 대회를 위해 힘들게 연습했던 순간순간을 떠 올린다. 동생 여옥이의 직장암수술이 완쾌되길 기원하면서 달리다보니 춘천댐에 올라섰다. 왼쪽의 드넓게 펼쳐진 푸른색의 춘천호를 바라보면서 두 팔을 벌려 심호흡을 하고, 늘어뜨려서 몇 차례 털면서 뛰었다.
또다시 500m 오르막이 나오고, 내리막과 오르막이 3km 사이에서 네 번이나 나타난다. 어허 그런데 31km 푯말이 나타났다. 내가 재작년과 지난해 모두 저 31km 푯말 앞에서 허무하게 주저앉았다. 두 다리 모두 근육경련이 몇 번씩 일어나 곤욕을 치렀는데 올해는 코스가 다소 쉽게 변경되다보니 32km 지점을 통과하는데도 괜찮다.
다만 도로 차선이 넓어지면서 시야도 같이 넓어지기 때문에 체력 또는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이 뒤따랐다. 권은주 선수의 말이 떠오른다. 시선을 앞 선수 허리춤 또는 10m 바닥을 주시하라 하여 그렇게 하고 달려도 소용이 없다. 마라톤 마의 구간이라 그런가 보다.
<화이팅! 힘내세요!! 멋집니다!!!> 큰 함성이 들린다. 왼쪽 도로에 키가 훤칠한 아들뻘 되는 군인 수십명이 도열하여 큰 소리로 외친다. 나와 함께 달리던 젊은이 몇 몇이 손바닥을 맞춰주고 지나간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너무 힘이 든다. 그 길 300m 달리다 보니 102보충대 정문이 보이고 그런 그 길을 300m까지 군인이 늘어서 열렬히 응원을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오늘 이렇게 이 길을 달리는 2만800여 출전자 가운데 희망자를 대상으로 특별부대로 만든다면 어떨까? 그게 성사된다면 북한의 김정일은 물론 그 아들 녀석도 꼼짝 못 할 텐데…
잠시 엉뚱하면서도 사실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달리다 보니 35km까지 다리근육 통증으로 어려움이 컸었던 <춘마>는 어느새 신동삼거리를 지나 소양2교가 보인다.
이제 남은거리는 2km다. 웃자!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은데 찡그리면 뭣 하나? 고통은 뒤로 하고, 미친놈처럼 마냥 웃으면서 달리자! 지금의 고통이 지나면 말할 수 없는 쾌감이 찾아 올 것이다. 좋은 생각만 하고 달리자!! 그렇게 다짐을 하건만 그 2km는 정말 힘들었다.
<파이팅!!!>거의 3천여명에 달하는 응원 인파속에서 처와 딸이 외친다. 골인지점이다. <우 하하하> 웃어 제키고 싶었지만 올해도 마음뿐이었고 얼굴은 일그러졌다. 곧 문자로 통보 온 나의 기록은 4시간 32분 25초다. 지난해 4시간 38분54초에 비해 6분29초가 빠르다. 재작년 4시간 56분44초에 비해서는 17분50초가 빠른 셈이다. 2주전인 하이서울마라톤대회(4시간25분3초)에 비해서는 난코스로 7분22초가 느리다. 왜냐하면 하이서울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나서는 맥이 풀린 나머지 술자리를 거의 열흘은 해서다.
오늘 우승은 농사를 짓다가 2006년 뒤 늦게 마라톤에 입문한 케냐의 벤저민 킵투 콜룸(31세)으로 2시간7분54초로 상금 5만달러(한화 5천600만원)와 기록갱신 보너스 3만달러까지 받았다.
42.195km를 뛰는 마라톤은 육체를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넣는 스포츠다. 그런데 거기 기묘한 반전이 있다. 고통의 정점에서 잠시 고통이 사라지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다. 이 현상은 두뇌에 엔도르핀 분비와 관계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엔도르핀은 내생적 모르핀의 합성어로 신체 내부에서 생성되는 강력한 진통제로 보면 된다.
모르핀과 결합하는 특수 단백질 수용체가 두뇌 속에서 발견된 것이 지난 1973년이라 한다. 추적결과 모르핀보다 10배나 강력한 성분의 존재가 밝혀졌는데 그게 바로 엔도르핀이다. 한 마디로 천연 아편이라 할 수 있다.
내 경험을 비춰보면 1주일에 5~6일을 달리는데 하루에 보통 40분에서 1시간 20분 사이를 주로 달리기 때문에 혈중의 엔도르핀은 평소 보다 5배 이상 증가했음을 느꼈다. 러너스 하이 상태에서는 고통이 줄어들 뿐 아니라 유쾌한 감정이 솟아오르고 긴장감도 사라지며, 고도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하지 않는 사람보다 고통을 잘 견딘다. 왜냐하면 규칙적인 운동이 엔도르핀 생성량을 늘리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래서 적절하게 운동하는 사람의 삶은 그만큼 유쾌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2주 후에는 코스가 비교적 쉬운 중앙일보 서울국제마라톤이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다. 그 때까지는 술을 자제하여 3시간 58분대로 나의 기록을 1분이라도 갱신할 각오다.
공지천교에서 바라본 의암호. 이 호수와 저 삼악산을 한바퀴 휘돌면 풀코스.
의암호로 흘러드는 공지천의 교각은 마치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다리 처럼 예술적이다.
출발 40분전인데 지난대회기록 4시간부터 4시간 21분59분 사이 E그룹 대기자 현수막이 섰다.
긴장한 출전자들의 심신을 풀어주는 축하공연. 이날 MBC-TV는 대회 현장을 생중계 했다 한다.
온 몸의 부상방지를 위해, 특히 무릎과 종아리, 허벅지와...
목과 옆구리에 이르기까지 스트레칭은 충분히 해야 한다.
출발 5분전 딸과 기념으로 한 컷!!!
마라톤 전속 사회자 대학후배(배동성)와 도우미의 환호속에 산뜻한 출발~~~
그런데, 골인하는 내 얼굴 보소? 땅에 묻었군 그래.
그래도 완주 했으니 마눌님과 기념사진은 남겨야지.
행사장을 나오기전 아쉬워서 다시 샷.
오전에 출발했던 스타트라인과 아치를 배경으로...
오늘 빠진 살 만큼은 춘천의 명물 막국수, 동동주와.
닭갈비도 제법 익어가고 있군요.
내일 일정이 있어서 친구와 저 막걸리로 두병만 하고...
귀경 길에 가평에서 휘발유를 넣었더니...
당첨! 80kg가 20만원? 1kg는 2천5백원? 내게도 이런 행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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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승완이는 이곳에서도 직업정신을 발휘해서 상위 입상자의 표정을 여러장 담았다.
그 가운데 우승자인 케냐의 벤저민 킵투 콜룸선수는 우승소감을 묻는 취재열기에 싱글벙글.
첫댓글 조꼬꼬의 작년년 춘마후기가 감동적이라 퍼 왔 CCCCCCCCCCCCCUUUUUUUUUUUUUUUU
ㅇㅎㅎㅎ 언제, 저렇게... 저 모교에서 연극무대미술을 배울때 좋았스.....ㅋㅋ
올핸 4시간 9분을 꼬꼬꼬 이루도록^^
ㅋㅋ 알콜을 너무 들이부어서...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할 뿐이라오. ㅎㅎㅎ
나랑 같이 4시간 이내로 달려보자고......
인제는 기록이 다 소멸되어서 내년엔 D그룹으로 강등.....다시 시작해야겠지?
어이쿠~~~!!! 세수 위인 영재친구가 어떻게 느림보와 달리겠다는겨? 난, 이번에 4시간 25분이 목표여...ㅋㅋ
알코올 힘으로 추진력을 발휘하여 -4이룩하길...
빨랑 닭갈비에 ㅋ 한잔....
편히 앉아서 춘천대회 후기글 보니 기분이 째지네 ㅎㅎ 가족이 함께 참가한 행복한 모습이 부럽고 동동주와 막걸리 와~ 입맛 땡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