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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산 산행기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 4월 정기 산행지로 잡은 주작산(475)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교대역으로 나갔다. 주작산을 서울에서 당일에 다녀오기는 쉽지 않은 먼 거리이다. 해남과 강진 고을의 경계를 이루는 그 곳은 땅 끝이라는 지명이 있을 만큼 최남단 지역으로 남쪽 방향의 직선거리로는 우리 국토에서 가장 먼 곳이다.
이번 산행은 진달래가 한창인 때에 맞춰 가게 된 것이다. 그 수려함이 봄철 진달래 무렵이 절정이기 때문이다. 전국에는 달성 비슬산, 창원 천주산, 경주 단석산, 강화 고려산, 안성 서운산 강원 태백산, 창녕 화왕산, 제주 한라산 등 이 곳처럼 진달래로 유명한 산행지가 몇 곳 있다. 몇 년 전에 다녀온 여수의 영취산도 그 곳들 중 하나인데 이맘때는 전국 각지에서 그러한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찾아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붐비게 된다.
6시 48분 교대역에 도착하니 길에 대형 관광버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치 야외로 나갈 것을 벼르고 있었던 듯이 산행 차림을 하고 나와 출발을 기다리며 설레는 표정으로 예기들을 하고 있었다. 날씨는 쌀쌀한 편이지만 하늘은 맑았다.
올해 봄은 꽃샘추위가 오랫동안 계속되는 특이한 기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매화,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목련 라일락 등이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피는 것이 아니라 거의 동시에 피다지고 있다. 북한산에 오른 지난주에는 눈이 내려 뜻밖의 설경을 보았었다. 그래서 벌써 사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는 시간 흐름의 감각마저 둔해지는 느낌이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로 가다 탄천 휴게소를 들러 잠시 쉬고 호남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갔다. 고향인 전주를 지나다 보니 너른 평야지대 언저리에 푸른 산세가 지나가고 있고 밭갈이를 해 놓은 대지에는 봄볕이 산란하며 무엇이든 무성히 자라나게 할 것처럼 느껴졌다. 버스가 쉬지 않고 정읍 장성 부근을 거쳐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해 나주 방향으로 나가자 우측 차창 밖으로 보이는 댐 주변에 벚꽃이 만발한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통과한 나주시내 느티나무 가로수에는 서울과 달리 벌써 여린 이파리가 피어 살랑거렸다.
11시 30분 우측에 오늘 산행지인 주작산과 같은 산줄기로 연결된 월출산을 보며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산행 출발지인 오소재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당초 도착 예정 시간보다 많이 늦어지고 있어 오늘 예정된 산행을 제대로 마치고 서울에 잘 도착할 수 있을지 모두들 걱정스러워 하는 분위기속에 12시 8분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우측을 돌아보니 남해 바다에 면한 들녘이 바라 보였다. 날씨가 맑아 시야가 좋았다. 청명한 날씨에 밝고 투명한 햇살이 이제 막 깨어나는 초목의 연둣빛 빛깔에 산란하여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지점에서 진행 방행으로 조금 이동한 들머리 입구에서 산행 안내도를 보다 잠시 모여 사진을 찍었다.
12시 15분 산행을 시작했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는 언덕길이 고향 마을의 흙 언덕 같은 느낌을 띠고 있었다. 우측 높은 언덕 쪽에 심어진 나무들이 좌측 아래쪽으로 휘어지면서 터널처럼 나뭇가지가 휘어져 있었다.
조금 완만한 길을 오르다 보니 앞쪽에 바위가 뾰족뾰족 솟아 있는 봉우리가 바라보였다. 그 형상이 오늘 지날 주작산의 지형과 산세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들어서는 길가에는 키 큰 진달래에 연분홍빛깔을 띤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마른 가지 사이로 시야가 트여 꽃잎이 더 화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나무줄기와 꽃 잎 사이의 공기도 더 투명하게 느껴졌다.
앞 서 보이던 정상부(340봉)에 올라서니 병풍석 같은 모서리 진 바위들이 서 있었다. 그 비좁은 바위 사이를 빠져 나가니 주변이 훤히 바라보였다. 우측으로 해안을 따라 넉넉해 보이는 평평한 들이 펼쳐 있고 좌측으로는 해남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산세가 바라 보였다. 그렇지만 정작 주작산 주능선의 산세는 앞 봉우리에 가려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산행 시작이 늦어진데다 오소재나 작전소령 방향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외길 정상을 교차하면서 지나가야 되기 때문에 속도를 내어 걷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해남과 강진부근에 걸쳐 있는 주작산은 땅끝기맥에 속하는데, 그 땅끝기맥은 화순 국사봉(499.1과 깃대봉(448) 인근 바람재에서 분기해 월출산(809), 도갑산(376), 월각산(456), 흑석산(650), 서기산(500), 만독산(409), 덕룡산(433), 주작산(475) 두륜산(700), 달마산(489), 도솔봉까지 약 117km 거리의 산줄기이다.
지리산에서 끝나는 백두대간의 큰 기운이 숨을 토하며 호남정맥을 이루어 놓았고, 그 호남정맥이 다 아우르지 못한 국토의 남단에서 땅내음, 바닷내음을 맡으며 일으켜진 산세가 그 땅끝기맥인데, 그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이 산세에 면한 두륜산 대흥사, 만덕산 백련사, 달마산 미황사 등은 특유의 지역적 체취가 베어난다.
주작산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덕룡산(433)이 있고 서남쪽 방향 20km 정도 지점에는 유명한 대둔산(두륜산 700)이 있다, 그리고 정북 방향 80km 정도 거리에는 월출산이 있다. 그처럼 독자적인 산세를 형성하고 있는 땅끝기맥이 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선 내륙쪽에는 해남 등의 고을이 자리 잡고 산줄기 너머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영취산 같은 드넓은 진달래 밭이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은 채 우측으로 펼쳐 보이는 해안 언저리 풍경만이 이곳의 특별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좌측에는 해남의 유명한 윤선도 고택 부근의 지세도 바라보였다. 양촌제 옆 산을 넘으면 윤선도 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윤선도 고택의 해맑은 기운은 바로 이러한 땅끝기맥의 산세와 관련이 있음을 알듯했다. 해남 시내는 만대산(400), 금강산(481), 윤선도 고택의 뒷산인 덕음산(300) 첨봉, 병풍산 그리고 이 땅끝 기맥이 감싸고 지나가며 아늑한 고장의 지세를 형성한다. 시간이 남으면 한번 들러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12시 43분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흙길 바닥에 뿌리마다에서 물이 흥건히 비치는 모습이 보였다. 봄철에 수목의 생명력이 약동하면서 뿌리와 줄기에 순환이 되면서 흐르는 물기가 비친 것 같았다.
12시 47분 앞쪽 길가에 한그루 진달래가 공간을 독차지 하듯 화사하게 핀 모습이 보였다. 군락은 아니지만 영롱한 체취가 느껴졌다. 그 능선 길을 지나가면서 진달래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찍었다.
바위 봉우리 우측으로 해안의 들녘이 깨끗하게 펼쳐 보이는 곳을 지나다 보니 오소재를 1,5km 지나온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서 쉬양리재(작전소령)는 4.2km 남아 있었다. 그렇게 오소재에서 작전소령까지의 5.7km 구간이 주작산의 특징적인 풍경을 이루는 암릉지대로 되어 있는데 봄철에 암릉 사이사이를 수놓은 진달래와 기암괴석의 어우러짐이 이곳의 대표적인 풍광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길을 가다 진달래를 클로즈업해서 찍었다. 막 부풀어 오르는 꽃망울이 활짝 핀 꽃보다 더 생생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다른 나무들의 마른 가지에서도 생명의 꿈틀거림이 느껴질 듯 했다. 잠시 뒤돌아보니 출발지 뒤로 두룬산의 산세가 보였다. 그리고 우측으로 시원스레 해안 인근 들녘이 펼쳐 보였다.
땅끝기맥은 해안선과 나란하게 펼쳐 있어 땅내음, 산내음 바닷내음이 함께 어우러진 감각을 풍긴다. 강진만 건너 천관산 과 더불어 강진만을 양편에서 감싸 안은 형국인데, 그 강진만 안쪽에는 다산 초당 이 있는 귤동마을과 백련사가 위치한 만덕산이 있다. 그 리고 그 너머에는 고금도 등이 있고 그 끝 부분을 완도가 호수처럼 막아서고 있다. 그리고 땅끝기맥 종착지인 부두에서 보길도로 가다 보면 섬들이 마치 바다위에 징검다리처럼 떠 있고, 그 사이 사이에 있는 바다는 호수처럼 보여질 때가 있다. 그처럼 남해 바다는 텃밭 같은 삶터로서 사람들의 삶과 어우러진 풍경을 이루어왔다.
지나는 길은 아직 흙길이었고 좌우로 펼쳐 보이는 풍광과 산세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지나는데 시간이 지체되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기온은 낳지만 햇살은 더 달아오르고 있었다.
앞쪽에서 화들짝하게 한 무리 일행이 자기들끼리 즐겁게 예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 지나다보니 점심때라 여기 저기 모여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길에서 벗어나 식사를 하고 있는 때라 길이 막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1시 봉우리를 지나며 앞을 바라보니 정상부에 바위가 성벽처럼 늘어선 모습이 보였다. 점차 특유의 암릉지대로 들어서게 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나아가니 내가 서 있는 위치의 바위 봉우리와 그 성벽같은 암릉이 앞뒤로 겹쳐보였다. 그 봉우리들을 지나는 동안 날선 바위 길을 조심조심 지나게 되었다. 아까 시작 지점에서 보았던 분이 연신 사진을 찍으며 가고 있었다.
1시 17분 많은 리본이 걸린 봉우리를 지났다. 땅 끝 기맥을 하는 사람들이 표식을 달아 놓은 것 같았다. 앞쪽을 바라보니 조릿대 길 앞에 다시 힘찬 기운을 풍기는 바위 봉우리가 보이고 우측 바위 옆으로는 들녘이 펼쳐보였다. 내리막길을 걸어 안부를 지나다 보니 꽃이 탐스럽게 핀 동백 꽃송이가 보였다. 안부에 닿으니 오소재가 2.8km 떨어진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계속해서 앞 봉우리를 향해 다가가다 보니 많은 일행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들뜬듯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산의 분위기를 더 화들짝하게 달궈 놓은 듯 보였다. 나는 밥을 먹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외길에 양쪽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서 멈추면 시간이 많이 늘어질 것 같았다. 나는 남주작산을 꼭 들러가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능선 길에 최근 놓은 계단을 지나 다시 1시 38분 바위 봉우리에 올랐다. 그 곳이 412봉일 것 같았다. 오소재가 3.0km 쉬양리재 2.8km 이정표가 놓여 있었다. 진행 방향으로 진달래와 솟은 바위가 겹쳐보였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지나온 능선에 솟은 바위들과 멀리 떨어진 산세가 겹쳐 보이며 넓고 그윽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1시 51분 다시 봉우리를 지났다. 그 곳이 419봉일 것 같았다. 그곳으로부터 앞으로 이어지는 암릉 능선이 이곳의 대표적인 장관일 것 같았다. 기암절벽을 이루며 칼날처럼 솟은 바위 능선이 연이어 펼쳐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멈춰 스케치를 했다.
2시 13분 다시 봉우리를 지났다. 우측 멀리 주작산이 보였다. 정작 그 주작산(남주작산)은 평이해 보였다. 내가 정상이 평이해 보인다고 하자 뒤에 오던 분이 “봉황은 벼슬보다 날개가 화려한 것”이라고 했다.
주작산의 전체 형세는 그 이름에서 풍기듯이 주작을 상징한다. 주작은 청룡, 백호, 현무와 함께 사방을 수호하는 사신(四神)가운데 하나로 남쪽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인데 그 형상은 시대마다 약간의 양식적인 변화는 있지만 현실과 상상의 동물이 복합된 붉은 봉황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봉황산의 이름을 가진 산은 상주시 화서면, 영주시와 봉화군, 부석사의 뒷산, 여수 돌산 봉황산, 강원, 홍천군, 광주 서구 풍영동, 삼척시 정상동, 충북, 제천, 충남 공주시 신풍면, 문장대 봉황산, 광주 광진구 하산동 많지만 주작산의 이름을 가진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2시 23분 주변 사진을 설명해 놓은 427봉에 도착했다. 주변이 시원스레 내려보였다. 그 곳이 실질적인 주작산 정상처럼 느껴졌다. 주작산은 형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주작산 군에서 가장 높은 덕룡산 쪽 475봉을 주작산 정상이라고 하고, 남쪽의 주작산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428봉을 주작산(또는 주작산 남봉)이라고 부르고 있다.
주작산은 금강산 만물상처럼 기암절벽이 펼쳐져 있고 봄철에 수놓는 진달래가 주작의 벼슬처럼 기암 사이를 수놓는 장면이 매우 빼어나다. 그러나 산의 형세가 크고 뚜렷하지는 않아서 지도상에서는 잘 나타나 있지 않다. 주 경관을 이루는 것은 기암능선이지만 가장 높은 정상부의 위치는 그 능선을 벗어난데서 혼선이 생기고 있다. 즉 주작산 정상으로 불리는 475봉이나 주작산이라 불리는428봉은 작전소령으로부터 주능선에서 분리되어 있는 모습인데 산세만으로 보면 기암 능선에사 가장 높은 이 곳 427봉이 주봉의 성격이지만 그 곳도 평풍처럼 펼쳐진 능선의 일부라서 주작산을 대표하는 산 명칭으로 삼기에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다.
2시 38분 진행방향을 바라보니 특유의 기운찬 바위 능선이 긴장감 있게 펼쳐 보여 잠시 멈춰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 내림길을 걸어 ‘2시 52분 동굴 터널 같은 바위 사이를 지나다 보니 동백꽃이 수를 놓고 있었다. 다시 외길의 암릉길을 이어 가니 수려한 바위 봉우리가 나타났다.
갈수록 외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특히 절벽을 오르내리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면 꼼짝 없이 기다려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나는 시간을 기약할 수 없어 부담스러웠다. 산 능선 자체는 그리 심한 기복이 없지만 여기 저기 로프에 의지해 지날 만큼 지형이 험준했다.
수려한 봉우리에 가까이 다가서며 오를 채비를 했다. 그 것이 마지막 봉우리일 것 같았다. 그 봉우리를 향해 가다 보니 계단이 놓여 있었다. 그 계단 뒤로 높다란 암릉 벼랑을 오르게 되어 있었다. 그 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지나고 있었다. 벼랑바위를 올라가는 공간이 좁아 발을 디디기 어려운 곳에서 한 분이 기다리다 손을 잡고 끌어 올려주었다.
마지막일줄 알았던 그 정상(425봉)에 오르니 다시 앞쪽에 암릉 산세가 펼쳐보였다. 그 끝 지점에서 우측의 주작산이 이어 펼쳐보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었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다 급한 내림길을 내려섰다.
능선을 지나면서 가끔 두런두런 다른 일행이 자기들끼리 하는 예기를 들으며 실소를 짓게 되기도 했다. 앞에 가던 여자분이 60세를 4학년 20반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내가 그 말들을 누가 지어냈는가 하고 물으니 말공장에서 나온다고 했다.
오늘 지나는 주 능선은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 않지만 실제로는 더 멀게 느껴졌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암릉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외길을 차례로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3시 10분 절벽에 도착했다. 길게 로프가 매어 있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며 지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좌측으로 바위를 올라 우회하는 도중 디딘 바위가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겨우 그 절벽에 올랐으나 넘어가는 길이 없어서 다시 방향을 틀어 봉우리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 곳을 오르니 능선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다시 잎 봉우리를(408봉) 올랐다. 그 봉우리를 넘어 내려오다 보니 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한 분이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에서 굴러 넘어져 었었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 웃고 있어서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3시 25분 마지막 봉우리(400봉)에 도착했다. 정회장과 운원석, 오경진 건축사가 보였다. 휴양림에서 B조로 출발한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주작산 정상에서 이 쪽 능선을 바라보는 풍광이 좋았다고 했다. 우측으로 남주작산이 보였다. 완만해 보여서 지나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주작산 갈림길로 내려와 우측으로 넘주박산을 향했다. 초입에 임도가 있어 들어설 곳을 두리번거리다 숲길을 찾아 들어갔다. 지나는 길이 매우 완만해서 아까와 달리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다보니 우측으로 지나온 암릉 구간이 바라보였다. 지나올 때와 달리 멀리서 보니 그리 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앞에 다시 봉우리가 나타났다. 그곳이 정상인줄 알고 올라서니 다시 능선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은 완만했지만 그렇게 몇 변이나 봉우리를 지나 주작산에 도착했다.
전주 청주 등에서 온 일행들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나도 기다리다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좌측으로 건너에 덕룡산 산줄기가 지나고 있고 그 앞쪽 아래에는 저수지가 보였다. 주작산에서 내려가다 보니 한 여성분이 길가의 꽃을 보고 노랑 붓꽃이라고 가리켜서 사진을 찍었다. 팔각정이 있는 임도로 나와 다시 숲속 내림길을 따라 내려갔다.
한동안 내려오다 보니 우측 개울가에서 탁족을 하고 있었다. 이직 이른 철인데 그처럼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전에 대간과 낙동정맥 등 긴 거리를 걷고 내려와 시원한 개곡물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곤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들처럼 계곡에 발을 담구었지만 금새 발이 시려워 나오게 되었다.
4시 52분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이 여러 단으로 되어 있어서 올라가면서 일행이 타고 온 차를 찾아보았다. 맨 위단에서 우리차가 보였다. 몇 분이 먼저 앉아 있었다. 주작산을 들르지 않고, 내려온 것 같았다. 차에 배낭을 두고 나와 내려온 주작산을 올려보며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 아주머니, 할머니 들이 펼쳐놓은 나물을 구경하다 두릅을 조금 사면서 일행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5시 20분 주작산 휴양림 주차장을 출발했다. 우측으로 주작산이 보였다. 바위 주름이 봉황의 얼굴 형상처럼 보였다. 주작산의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거기에 있어 보였다.
당초 식사를 하고 바로 가기로 했으나 출발 시간이 늦어 서울 도착이 늦어질세라 식당 예약을 취소했다고 했다. 특유의 별미를 맛볼 수 잇을 것으로 예고까지 해 놓은 상황인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9시경 서해안 고속도로상의 부여백제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하고 11시 2분에 양재역에 내려 일행과 인사를 하고 귀가했다.
(20130413)
첫댓글 김석환 건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상세하고도 맛깔스런 산행기를 읽으니 다시 즐건 산행이 떠올려지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멋지게 나온 나의사진도 있네요. 고맙습니다.
사실적이면서 꼼꼼한 산행기 ! 역시 김석환 건축사님만이 쓸 수 있는것 같습니다 !!!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ㄳㄳ
회장님 많은 회원들과 먼 곳까지 다녀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상준 건축사님 귀경때 속이 안좋으시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편안해지셨는지요? 좋은 풍광을 본 멋진 추억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안치규 건축사님 직분을 마치고 홀가분한 상태로 더 즐거운 시간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길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주작산 돌아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이 붐비는 상황이라 이동에 신경쓰다 보니 더 세세한 아름다움을 다 느끼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초반에는 잘 의식하지 못했는데 기암 봉우리가 연달아 이어지는 능선을 로프에 의지하며 오르락내리락 지나야 하는 암릉의 기세가 대단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