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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예수님(마 5:23-25)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생각할 수도 없는 너무나도 큰 사랑,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며 살 수 있을까요?
시편 기자는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시 95:6-7)라고 고백했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와 찬양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우리의 영과 진리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예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과연 무슨 일을 중점적으로 하셨을까요?
23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아멘.
예수님은 3가지 사역을 중점적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모든 병을 고치셨습니다.
마태복음 9:35절을 보면, 마태는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예수님의 사역을 세 가지로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중심 사역지는 갈릴리 호수가입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회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는 중요한 사역을 위해서 회당을 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회당이라는 것이 언제 생겼을까요?
회당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 의하여, 회당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이 그리워하는 예루살렘 성전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버렸기에, 그들은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모여, 종교적인 모임을 가졌던 것이 회당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어느 지역이든, 회당이 세워졌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후에도, 회당이라는 것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배우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형식적인 의식에 치중하게 되었다면, 회당은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회당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강연하고, 재판하며, 공부를 하는 학교 같은 다목적 기능을 가진 신앙생활의 센터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의 일상생활의 기반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신앙과 생활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신앙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회당은 신앙생활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삶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이 예배 처소이며, 시청이었고, 재판소였고, 결혼식장이었고, 학교였고, 문화 센터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쉽게 강연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회당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는지,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자, 기도하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면,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려면,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우리 인생사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 중심의 삶,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17절입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아멘.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 외쳤던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사도 바울에게,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대답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라고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돌이키라”
지금껏 걸어왔던 인생의 길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이었음을 알았다면, 이제는 돌이켜, 올바른 길을 걸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귀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온 마음으로 찬양하고, 진실함으로 기도하는 척 할 수 있습니다.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 선거철이 되면, 유명한 정치인들이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선거철에만 나오는 교인이라고 해야 하나요?
우리의 삶에 진정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짜로 믿어야, 진정한 변화가 있게 됩니다.
진짜 성도인가? 가짜 성도인가? 우리는 진짜 성도여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고 책망하셨습니다.
신앙생활하다가, 세상 일에 바빠, 예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 사랑으로부터 멀어졌다”라고 생각되어지거든,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서도,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계 2: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해서도,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도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15-16)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늦기 전에,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간다고 해도, 그것이 세상 방향이라고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조금은 느릴지라도, 더딜지라도, 예수님 방향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엉뚱한 길로 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죽으라고 달렸는데, 엉뚱한 방향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아직 회개하지 않았다면,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회개했다고 한다면, 돌이켜, 바른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라고 외쳤습니다.
우리 한마음교회가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회개하라 돌이키라”고 외치는 믿음의 교회가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모든 병을 고치셨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아멘.
코로나19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마스크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백신을 2차까지 맞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3차까지 맞아야 한다고 하고, 백신 접종을 안하면, 식당 이용조차도 힘들고, 학생들은 학원에 다닐 수도 없게 된 그런 상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세 유럽을 보면, 엄청난 희생자를 낸 큰 재앙이 있었습니다. 페스트균(Yersinia pesti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 흔히 “흑사병”이라고도 부르는 “페스트”입니다. 혈관내 피가 응고되며, 신체 말단이 괴사하면서, 실제로 검은색으로 변했기 때문에, “흑사병”이라고 불렀습니다.
“흑사병”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천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불가항력적인 재앙이었습니다. 유럽 각지에서는 이 질병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대책이 마련되었습니다. 흑사병이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기도와 금식에 의존하였습니다. 부패한 공기가 문제라고 여긴 사람들은 강력한 향기를 내는 방향제를 몸에 지니고 다니며, 좋은 냄새를 맡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면, 의사들 역시, 코 부분에, 방향제를 넣는 새의 부리와 비슷한 주머니가 달린 두건을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밀라노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이 안에 들어 있는 채로 환자의 집을 아예 폐쇄했습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환자들을 마을 밖의 나병 수용소에 격리하고, 출입하는 사람과 물건을 일정 기간 격리하였습니다. 크로아티아 라구사에서는 흑사병이 유행하는 주변 섬들로부터 오는 사람이나 물자를 30일간 격리하는 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감염자와의 접촉이 주된 전염 경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마르세유 지방의 경우, 감염지로부터 도항한 이주자에 대한 40일간의 구금을 통해, 잠복기를 넘기는 방법으로, 흑사병의 전염을 방지하려 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격리와 통제가 그 당시에 시행되었습니다.
여러분! 엄청난 재앙이었던 이 흑사병으로 인하여, 종교개혁의 필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진실한 신앙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료면에서, 생활 위생면에서, 종교면에서,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상황들을 모른 척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아픈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능력과 기적들을 통하여,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이사야 53:5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아멘.
예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육신의 병, 마음의 병, 우리의 아픔으로부터, 우리의 낙심과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기 힘든, 고달픈 세상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만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겨내야 합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눅 14:41)라고 물으십니다.
여러분! 코로나19라는 현 상황을 외면할 수 없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움츠려들지 않고, 믿음으로, 당당하게,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마음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을 수 있는 축복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셨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주변에 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전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평화가 온 땅에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