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성서가 말하는 환대 / 창세기 18:1-8, 마태복음 25:31-40
환대의 사전적 정의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입니다. 이러한 정의에는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는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실제 창세기 본문(18장)에서도 주인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손님을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유명한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도 이것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림 오른쪽 상단 귀퉁이에 작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2장의 장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기가 살던 땅 ‘하란’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곧 아브라함이 나그네, 떠돌이로서 출발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요. 그래서 그림을 종합해서 전체적으로 보면, 나그네이자 떠돌이인 아브라함이 다른 나그네들을 융숭히 대접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것은 본문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매우 철학적인 의미를 담은 그림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환대’를 떠올리면 주인으로서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서의 이야기는 진정 우리가 주인인지 다시금 생각해보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 집과 우리 공동체, 이 땅과 이 사회의 주인은 ‘나’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는데, 우리가 정말 주인인지 아니면 우리 역시 나그네인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집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의 주인은 이미 여기서 살고 있는 ‘나’ 또는 ‘우리’이기 때문에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을 환대할 것인지 거부 또는 박대할 것인지는 주인인 ‘나’나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할 사항이라고 여깁니다.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환대할지 말지는 내 선택사항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나 역시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가 아닌지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주인처럼 살아가는 것은 실제로 주인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땅과 사회에 잠시 살아가는 나그네이지만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주인처럼 인정해 주시고 대접해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기억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선택사항으로 남겨두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값없이 그저 받아 누리고 있는 것을 남에게는 대가와 비용 같은 조건을 요구하는 행동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흐르도록 하지 않고, 오히려 벽을 세워 가두는 행동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낯선 이들을 환대할지 말지는 ‘나’나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과 사회, 나라의 주인이지만 동시에 손님, 나그네임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환대라는 단어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환대는 영어로 ‘hospitality’입니다. 어원은 라틴어 ‘hospes’에서 파생됐는데, 이는 손님, 나그네, 낯선 사람, 외국인과 집주인의 의미가 같이 있는 단어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환대란, 나 역시 주님 앞에서 나그네임을 기억하는 행동이라고요. 나그네인 나를 주님께서 지금까지 주인처럼 살아가도록 대접해주신 것을 기억하고, 나도 나그네인 다른 사람들을 이 집과 공동체, 사회와 나라의 주인처럼 살아가도록 대접해주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환대입니다. 일견, 세상이 말하는 환대와는 달라 보입니다.
관광 및 숙박업을 포함하여 음료·외식 등 서비스업 전체를 포괄하는 산업을 환대산업(hospitality industry)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업종이 hotel과 레스토랑입니다. 이들 업종은 손님을 아주 정중히 모십니다. 손님의 입장과 편의를 상당히 고려합니다. 그곳에 가면 내가 아주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만큼 귀하게 환대해줍니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비용에 따라 대우의 차이가 있습니다. 비용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차이납니다. 가짓수부터 시작해서 급과 질이 다릅니다. 이처럼 세상의 환대는 더 나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따릅니다.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합니다. 내가 귀한 대접을 받은 만큼 감사한 마음을 담아 비용을 지불하는 것 전혀 문제가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에게 값을 매겨 차등 대우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 땅의 질서 어떤 것인지와 그 한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십니다. 외모·인종·민족·성별·나이·지위·재력·매력·건강·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두를 초대하시고 모두를 환대하십니다. 동등하게, 그저 값없이 당신의 자비와 은혜로 말이지요. 이처럼 세상이 마저 채우지 못하고 따르지 못하는 하나님의 환대를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채우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시며 요구하시는 환대가 무엇인지 우리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이 환대를 행함으로써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환대, 자비와 은혜를 가까운 사람만이 아닌 낯선 자-모두-에게 흘려보내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사람 속에 계신 하나님과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그 존재 자체로 환대 받는- 하나님나라를 우리 삶으로 드러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24년 4월 7일 김소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