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27. 마흔세번째주 .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 .
신앙고백
찬송 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여
기도 조용림 권사,염성섭 장로,이원준 장로,하경숙 권사
성경말씀 빌립보서 2:17~18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바울처럼 살 수는 없을까?
찬송 463 험한 시험 물 속에서
광고 시립 전환을 위해 기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배후 당회 월례회
찬송 464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 주님도 아프고 , 나도 아프잖아요.
요즘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국내.외 돌아가는 세상이 참 옹졸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이렇게 옹졸하게 살았습니다.
내 이익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건강을 잃게 되고
그래서 웃을 일도 없으니 얼굴이 굳어갑니다.
그런데 우리 요양원에 오면 웃게 됩니다.
우리 권사님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나, 안보나 전혀 개의치 않고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시는 우리 선생님들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얼마나 해학humor이 많습니까?
고난이 많았던 민족이라서 한도 많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해학이 발전했습니다.
요즘 붉게 익은 감이 지천입니다.
그래서 우리 박영숙 집사님도 마당 가에 있는 감을 따서
우리 요양원에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지난주에 주방 가에서
우리 남궁화자 선생님과 백 권사님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땡감을 우려서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감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남궁화자 선생님이 우리 백 권사님께
땡감 땡감 하다가 영감따러 가실 거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잘못 들었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호호호 히히히 웃는 소리가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땡감땡감하다가 영감따러 가느냐는 소리에
목사인 저도 혼자서 키득거리며 웃었습니다.
자, 웃어봅시다.
하하하하
좋습니다.
이렇게 사는 겁니다.
17절입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사도바울의 이 마음을 목사인 저는 알겠습니다.
사도바울이 죽음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사도바울이 옥중에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
깊이 배어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도바울은 죽는 것조차도 나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쁨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도 사람입니다.
옥중에서 절박했던 사도바울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목사인 제 마음이 많이 아려옵니다.
엊그제 우리 박복례 어르신이 밤12시 즈음에 익산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구토 증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응급실에 가자마자 접수를 마치고
병상에 누워계신 박복례 어르신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습니다.
냉냉함이 있었습니다.
눈동자도 또렷해서 채기가 아닌가 하고
혈액검사, 복부 엑스레이 검사를 했습니다.
혈액검사 결과 너무나 깨끗하고 엑스레이 결과도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의사께서 맞던 주사를 빼고 가셔도 됩니다.
그런데 90이 되신 우리 박복례 어르신께서
응급실에 누워있으면도 제가 의사와 하는 말을 듣고서
맞던 주사를 다맞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사를 다맞고 새벽 3시 즈음에 퇴원했습니다.
어떻습니까?
90이 되신 우리 권사님들도 항상 죽어야지 하면서
항상 병원, 약을 끼고 살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명에 대한 아쉬움들이 많습니다.
우리 유태규 집사님도 7년 전부터 술 마시지 말라고 별의별 협박까지도 했습니다.
그리고 간경화로 의사선생님께서 3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비웃듯 술을 마셔대지 않았습니까?
밥도 안 먹고 술로만 배 채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더라도 밥은 먹어라.
그래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더이상 우리 어르신들을 돌볼 수도 없는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컨테이너 방에서 살라고 하고 맘대로 술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가 증인입니다.
똥, 오줌을 가리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오늘 죽을지 낼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목사인 저도 다급해졌습니다.
유태규 집사님을 불러서 마지막 유언처럼 말했습니다.
유태규 집사님, 만약 죽기라도 하면 하루장으로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을 쏟으며 목사님 살려 주세요.
애원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요양원에서 다시 살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술을 입도 대지 않습니다.
외출도 삼가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많이 살아야 한.두달정도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입니다.
지금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사도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옥중에서 순교를 했습니다.
17절입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구약시대에는 양을 잡아서 제사(뒤시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제사입니다.
그리고 봉사는 헬라어로 레이투르기아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희생과 봉사입니다.
그래서 삶이 예배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자기희생이 없습니다.
그리고 봉사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반성을 해야 합니다.
때론 사회봉사 단체만 못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리겠다고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관제로 드린다는 헬라어로 스펜도마이입니다.
제물 위에 술, 기름 같은 것을 붓는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의 예배 위에
자신을 관제灌祭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아름답습니다.
죽음으로 사도바울 자신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세상에 이런 목사님 계십니까?
지금 부자세습으로 사회 지탄을 받고 있는 명성교회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들이 얼마나 사회의 지탄거리입니까?
부끄럽습니다.
저는 엊그제 퇴사한 우리 반하순 집사님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 반하순 집사님은 퇴사하고도
우리 성도님들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미용 봉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작은 일 같지만 위대한 일입니다.
60이 넘어서
내 몸도 아파 죽겠는데
실업급여로 밥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매월 찾아와서 미용 봉사를 합니다.
그래서 목사인 저는
말로만 감사합니다.
말로만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사치레를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보답을 합니다.
그런데 목사인 제가 점심 먹자고 하면 나오겠습니까?
우리 권선희 권사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함께 나오시라고.
그리고 저는 우리 진인섭, 이재열 성도님을 모시고 가서
함께 장어구이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장어구이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박종희 주임 이야기도 했습니다.
우리 박종희 주임이 엊그제 아침 일찍 3층으로 뛰어 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설동주 집사님이 고집이 셉니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거절하고 있으니
목사님께서 달래 주시라고.
그러면서 우리 박종희 주임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늙으면 고집부리지 않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라 합니다.
목사인 저도 매일 인생 공부를 합니다.
제 인내심과 기다림은 이제 70점 정도 됩니다.
그리고 남이 나와 다르다고
비난하지 않는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남이 나와 같아야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 염 장로님과 목사인 제가 다른 것이 마땅합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인격을 쌓아야 합니다.
목사인 저는 지금 이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남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점수는 30점입니다.
더블어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다른 것입니다.
셋째는 남을 헐뜯는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점수는 50점입니다.
목사인데도 이렇게 형편없는 점수입니다.
목사인데도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처럼 죽기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을 위해서 목사인 제가 죽을 수 있겠느냐 물으시면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성도님 중에서도 목사님 위해서 죽겠느냐고 물으면
아니요!
라고 드러낼 수는 없겠지만
그럴 겁니다.
베드로도, 가룻유다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눈먼 자를 보게 할 때에는 목숨까지도 받칠 듯
호언장담하지 않았습니까?
마가복음 14장17~21절입니다.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절,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절,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자니라
21절,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니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국, 돈의 문제입니다.
돈이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돈을 너무나 좋아해서 탈입니다.
어제 유엔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 1,100만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북한 김정은은 백마 타고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얼마나 뻔뻔합니까?
이런 사람이 북한 지도자입니다.
북한에는 인물이 그렇게도 없는가 봅니다.
이럴 때 안중근 의사 같은 사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북한을 변화시킬 영웅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위대한 민족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남북이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여야가 싸움질만 하고 있습니다.
17절입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10월 26일,
어제가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일본 법정에서 한 말입니다.
모두 들으시오.
조선의 국모를 죽인 이토는 무죄,
국가의 원수를 죽인 나는 유죄
일본법은 왜이리 엉망이란 말이오,
안중근 의사가 쓴 글씨가 있습니다.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
스스로 교만한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대한민국 검찰도 안중근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검찰이 왜이리 엉망이란 말이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울 때 영웅이 난다고 합니다.
영웅들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처럼
주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기쁨으로 바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