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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보좌의 영광을 보는 사람
총신대학교 신학과 문현화
이사야 6장 1~8절
선지자는 크게 둘로 나눈다. 책을 쓰는 선지자와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선지자는 책을 쓰지 않은 선지자이다. 대선지자 4명 소선지자 12명이다. 다니엘서는 12장밖에 안되지만 다니엘을 대선지서에 넣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란 누구인가? 이사야는 선지자의 왕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과 선지서에 기록된 것 이라고 할 때 이사야서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사야를 보통 희망의 선지자라고 하고,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다. 고난 또한 많이 받았다.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기쁨이나 행복한 것을 별로 맛보지 못했다. 그 방면에 이사야는 유대민족의 희망을 노래한 사람이다. 특별히 39장까지는 고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것을 많이 기록되었지만 40장부터는 하나님의 위로가 계속된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내는 장면이다. 웃시야 왕 때인데 성경에서는 웃시야왕은 하나님의 기이한 도움을 받았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웃시야는 전쟁에 이김으로 높이 들림을 받았었지만 시간이지나면서 마음에 교만이 들어온다. 제사장이 하는 일을 제가 하겠다고 하다가 문등병에 걸려 별궁에 갇혔다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다. 이러한때 이사야가 웃시야 왕이 죽던 때이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은 것에 마음 아파하면서 나라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이러할 때 갑자기 환상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데 그 주변에 스랍들이(천사)있는데 그 모습을 보았더니 날개가 여섯 개가 있었다. 앞에 있는 날개로는 눈을 가리고 뒤에 있는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또 다른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한다.
영의 세계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우리가 바로 설 수 없다. 옛날 요셉은 꿈을 잘 해석했고, 많은 사람들이 환상(비전)을 보았다. 예수 믿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환상을 보아야 하며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오늘 날은 이러한 것들을 부정하고 인간의 이성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것들은 마귀의 역사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으로 무엇이던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선진국들도 쇠퇴해지고 있다. 한국의 중심부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주신다. 한국의 방위사업은 미국의 턱 밑까지 쫒아온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백성이 될 것이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음의 청결한 사람을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우주에 충만한 분이시다. 또한 영이시다. 사람의 모습을 찾아오셨는데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했던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하는데 뜻이 내가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은 세 가지로 설명을 했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했다고 말씀한다. 옷자락은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외국사람들의 말: 한국 사람들은 옷을 잘 입는다.(공감^^) 옷은 추위와 더위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외부에 거친 것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는다.
하나님의 언약과 위에 두 천사가 날개를 펴고 보호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들어있는 언약을 보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우리마음에 언약을 모시고 살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지켜준다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옷자락은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혈루증으로 열두 해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깨끗하게 나음을 입는다.
둘째는 스랍천사들의 모습을 보자, 그들에게는 여섯 개의 날개가 있었다. 여섯 날개가 있다고 해서 날아가는데 쓰지 않고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많은 일들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얼굴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뒤에 있는 두 날개로는 자기의 발을 가렸다고 표현하다. 우리는 두 발을 가지고 우리가 가야 할 곳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잘 분별하여야 한다. 이 세상 나를 높여 주는 곳, 내 영광을 받은 곳에는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발을 가지고 땅끝(복음을 전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에 그 분의 영광이 가득했다고 하는데 연기로 표현하다. 이것을 향기이다.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구름이 백백하더라. 구름, 연기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향기이다. 성도들의 기도도 향기라고 표현한다. 이런 놀라운 강경을 보면서 자기를 발견한다. 자신의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며 망하게 되었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지 알게 된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지만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언제인가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며 깨져야 한다. 악하고 추한 자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이사야는 이런 자신을 발견하고 탄식하고 몸부림칠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내신다.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고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는 멸망으로 향하고 있다. 하나님은 일군을 찾고 계신다. 그들이 천국으로 향하여 가기를 원하신다. 이런 주님 앞에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느낀점: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나서 수년간 내 마음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있는 모든 생각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추하고 악하며 더러운지 깨닫게 해주셔서 사람 앞에서 숨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끊임없이 정결함을 구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을 많이 보냈는데 이러한 과정을 이사야 선지자도 겪은 고통임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정결함을 구하는 시간들을 겪고 나서는 나의 얕은 어리석은 사람의 지혜를 다 걷어 가셨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대신 말도 조금 어눌해지고, 사람들 앞에 인정받을만한 그 무엇도 내게 없음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올해부터 교회사역을 시작하면서 별로 말재주도 없고, 특별하게 잘 하는 것이 없는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면 합당한 은사나 지혜를 주셔야 되지 않겠느냐고 많이 기도하는 요즘 조금은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리요
대하 2:1~6
다윗은 이스라엘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다. 현재 이스라엘국기의 별도 다윗의 별이라고 한다. 다윗은 백전백성의 장군이며 위대한 사람 이였는데 그가 가장 소원했던 것이 있다. 결국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데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방치해 놓고 살았으니 사울이 복을 받지 못한 것을 당연한 것이다. 다윗은 이런 언약궤를 모셔오기 위해 성전을 짓고 싶어 한다.
언약궤가 올 때 바지가 벗겨지는 것을 모르고 어린아이처럼 춤을 춘 것만 봐도 얼마나 성전 짓기를 원했을 것인가를 알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다윗을 성전을 짓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성전의 의미는 평화이다. 그렇게 볼 때 다윗은 많은 평화와는 다른 전쟁을 많이 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 평화가 있을 것을 알았겠지만 솔로몬이 그 성전을 짓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오늘날 성전은 예수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친히 성전이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는 우리 몸을 성전이라고 표현한다. 마지막 때는 거짓선지자가 가득할 것이다. 예수님을 잘 믿던 사람들과 교단들이 동성애를 지지한다. 이러한 때 화려한 건물만 보고 교회를 찾아가서 잘못된 가르침을 하는 목회자를 만나면 안 된다. 우리의 몸이 성전임을 기억하고 성경대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윗은 전쟁을 많이 해서 피를 많이 흘려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우리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화려했던 성전들은 다 허물어진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물론 말세에 일어나게 될 이야기들을 말씀해 주셨다. 마지막 때에는 정말 우리가 신앙생활 하기가 어려운 때이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건물을 찾아다니는 것 보다 먼저 해야 되는 것은 마음의 성전을 잘 지어야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특히 요즘 성령의 역사를 차단하는(성령은사 종료론)일들이 많다. 이런 속에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기 어렵다. 마음의 성전이 지어진 사람을 기도할 줄 안다. 또한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한다. 요한복음말씀처럼 성령과 진리고 예배할 수 있다. 마음의 성전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늘 찬양 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찬양 할 수 있다. 성령 안에서 날마다 예배하고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날 타락해가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산제사를 드려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 마음에 성전을 잘 짓는 것이다. 이세상사람들은 평화를 구하는데 어떻게 평화를 찾는다. 그 방법은 전쟁을 한다. 엄청난 군사와 무기 개발을 해야 한다. 전쟁을 위해서는 군대들은 훈련을 받는다. 믿는 우리들 또한 깨어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된다. 주님 앞에 진실한 예배와 기도를 드려야 한다.
솔로몬은 우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평화를 만들 생각을 한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주변 왕국들에서 올 정도였다. 전쟁을 통한 것이 아닌 지혜를 받아 이 땅에 평화를 만드는 것이 왕에게도 영광이라는 것이다. 왕들은 재물들은 물론 자기 딸들까지고 아내로 삼게 한다. 그러니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지혜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조국 통일이라고 하는 큰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전쟁하지 않고 통일이 되어야 한다. 기근과 한국의 문화 매체들은 백성들을 통제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고 가고 있다. 김정은정권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역사적인 전환점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평화를 이루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의 성전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평화의 왕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주님과 교통하면서 기도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다 되어야 한다.
느낀점: 마지막 때가 점 점 가까이 올수록 하나님을 알고 세상을 아는 깊은 지혜가 있어야 됨을 깨닫는 요즘이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이 말씀 구절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저녁이다.
때를 아는 사람
왕하 5 20~27
오늘 말씀은 게하시가 나병환자가 된 내용이다. 엘리사가 지금이 어찌..
게하시는 불만이 조금 생겼다. 은과 금을 하나도 받지 않는 엘리사야게 못 마땅했던 것이다. 우리는 어렵게 훈련을 받고 있는데 필요한 돈을 돌려보내니 불만스러웠던 것이다. 20절에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 무엇이든지 받아오리라.. 라고 말한다.
나아만 장군이 주는 것을 그냥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행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유대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로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하시의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보고 우리고 이러한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그 시대에 어마어마한 사람이였는데 그를 섬긴다는 것은 복을 받은 것이다.
게하시의 결정적인 죄는 첫째 탐심이다. 이 탐심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억제하는 것이 인격이다. 성경은 이 탐심을 우상이라고 하며 예수님은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수 없는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재물은 하나님과 맞먹은 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재물에 대한 욕심를 버려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라고 말한다. 탐심이 내 마음속에 들어있으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비웃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소경이라고 다섯 번이나 표현한다. 탐심을 가지면 하나님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도 보지 못한다. 우리는 탐심을 경계해야 한다.
게하시는 둘째로 스승을 몰라봤다. 아주 훌륭한 스승이라고 하는 것은 이정을 했지만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가까이 지내면 상대방을 얕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스승이 재물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왜 그렇게 했을까 생각하며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성경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
게하시가 하나님께 진지하게 여쭤보았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게하시는 거짓말을 한다. 회계할 기회를 주셨을 때 자신을 돌아보고 순종하여야 하는데 게하시는 그렇지 못했다. 선악과를 먹고 난 아담도 마찬가가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받고, 복을 받을 기회를 들을 주셨는데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신앙인들은 회계할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오늘 설교의 핵심은 때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엘리사는 자기를 속인 게하시에게 화를 내지 않고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말한다. 우리는 철들었다는 말은 한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표현하는가? 농사를 지을 때로 제일 중요한 것이 때를 아는 것이다. 전도서에서도 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즉 때를 아는 사람은 철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알아야 하는 것이 때를 잘 아는 것이다. 지금은 영적으로 깨어야 할 때이다. 기도로 말씀으로.. 요한복음 4장23~24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때가 오는데 성령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말씀한다. 좋은 환경과 많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한복음에서 또 추수할 때에 말씀하신다. 지금은 역사적으로도 추수할 때가 되었다. 통일의 때가 되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때가 차가고 있다.
남북통일이 될 때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 세상의 환난과 재앙 가운데서 기도하며 하나님이 추수할 백성들로 준비되면 예수님의 재림이 이 땅위에 이루어질 것이다. 고린도후서 6장2절은 유명한 말씀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를 받을 때라고 말한다. 오늘 날 거짓 선생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예수믿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때를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참선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거짓선지자들은 깨어있을 것을 말은 하지만 강조를 하지 않는다. 주님은 이것을 보시고 어떻게 생각을 하실까? 현대인들은 성령 받는 것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가르친다. 예수님을 3년씩이나 따라다녔던 제자들도 성령을 받지 못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 동안 열심히 기도 하고나서 받게 된다. 우리가 정신 차리고 기도해야 한다. 요즘은 철야기도 금식기도가 없어지고 있는 추세..
영적인 친구를 만나야 한다. 사람은 다 자기와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를 사귄다. 마지막 때일수록 좋은 믿음의 사람들과 교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렘1:11~14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불러서 쓰실 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다는 것이다. 모세를 시기하는 미리암에게 하나님은 내게 선지자들에게는 이상을 나타냈지만 모세는 대면하였다고도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게 되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뿐만 아니라 별을 보여주시며 자손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비전이가 이상을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신령한 꿈이 있어야 한다.
본문에서는 두 가지의 이상을 보여주신다. 살구나무가지이상과 끓는 가마의 이상, 우리가 이 말씀을 유의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살구나무가지를 본 예레미야에게 내 말을 그대로 지켜 행하려 한다고 말씀 하시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살구나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어원의 뜻을 보면 지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내가 내 말을 지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봄에 싹을 튀우는 살구나무가지는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또한 교양하는 가지다라는 뜻도 있고, 보증, 약속, 새로운 생명, 경고하는 가지로 설명을 해 나갈 수 있다.
둘째 환상은 끓는 가마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우려 졌다. 재앙이 북방에서부터 내려온다는 것이다. 오늘 날 북방은 러시야 공산주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들고 있고 정교회의 우상들을 받아들인 나라들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나라들은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들이 되었다.
대한민국도 예수님을 잘 믿으면서 성공한 나라가 되었고, 공산주의인 북한 땅을 감당할 힘을 준비했다. 마지막 때 세계를 감당할 국가가 될 것이다. 북방의 끓는 가마라고 하는데 우리의 마음속에 끓어올라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불타오르고 사명감이 넘쳐야 한다.
사도바울을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태양빛 보다 더 밝은 빛 때문에 눈이 멀게 되었으며 눈을 다시 뜨는 과정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러면서 행16장에는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성령께서 막으신다는 표현도 나온다. 하나님은 마게도냐도 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러한 놀라운 이상을 본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이다. 행10장에서 큰 보자기에 각종 불결한 짐승들이 가득하였고 이것을 잡아먹으라고 하신다. 부정한 짐승을 먹지 않는다는 베드로에게 내가 정결하게 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깨달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이 것을 아신 하나님은 백부장의 하인들을 보낸다. 이에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며 이방선교의 문이 활짝 열린다.
베드로에 이방선교의 문을 열렸고 사도바울도 이방선교에 모든 것을 다해 전한다. 마귀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순순히 이루어지지 않게 방해를 한다. 마귀는 거짓선지자들에게 환상과 이상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대적하게 한다. 일반 백성들은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다 좋아 하고 따라간다. 참선지자들은 고난을 겪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예: 1992년도 다미선교회의 사례
안전한 장치로 성경말씀을 주셨다. 우리는 성경을 계속 읽어야 한다. 성경은 수백번을 읽어도 성경의 내용은 감을 잡을 수 없는 어려운 책이기도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읽어도 가능한 신비의 말씀이기도 한다. 우리는 은혜가 충만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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