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하남29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기본 자료실 스크랩 [마가복음 성서주해] 1장-8장
하남 추천 0 조회 141 15.06.10 16:5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성서주해] 1장-8장

 

[마가복음 성서주해] 1장1-2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복음 또는"evangel"이라고 하는 술어는 기독교의 교도들이 최초로 창안한 낱말이 아니다.반대로 그 개념은 이교 문화에서나 유대인 문화에서나 공히 중요한 뜻을 지닌다.로마 사람의 이해를 가지고 말한다면"기쁜 소식"은 황제 종교와 관련이 있고 황제의 생일,등극이나 집권을 계기로 범세계적으로 축제를 하는 것이었다.황제 시대의 비문이나 파피루스 사본에 보면 그와같은 이야기나 축제가"복음"(evangels)이었다.소아시아의 프리네(Priene)에서 발견 한 기원전 9년부터의 일력비문日曆碑文은 황제 옥타비안(아구스도)에 대하여 언급하기를"세상을 위한 신神의 탄신일은 기쁜 소식의 시작이니 그러므로 선포하는 바이다"하였다.이 비석문은 참으로 묘하게 마가복음의 머리말과 유사하며 고전 사회가 이해하는 복음의 내용의 요소를 잘 해명한다.즉,"범세계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불러 들일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이러한 관점에서,로마 사람들은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선포한 마가의 의도를 이해할 것이다.예수님의 공생애의 막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마가는 예수님의 오심이 인류의 사정을 과격하게 변화시킬 새로운 상태를 불러들일 한 사건임을 선포한다.....2세기 이전에는"복음"이라는 낱말이 아직 특정한 종류의 문서가 아니었다.복음의 의미가 이와같이 변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을 권위로 선포할 정전적正典的 복음에 관한 2세기의 음미와 평가를 반영한다......마가복음1:2에 나오는 "선지자 이사야"의 것이라고 하는 언급은 뒤에 따라오는 인용을 소개하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요한의 자기自己이해理解라고 하는 입장에서 맥락이 파악되어야 함을 뜻한다.요한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것을 알고 있다.그리고 이 부름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기본 조건이 이사야의 예언이었다.요한에게 이사야의 말씀이외의 다른 지시가 필요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부단히 1:10 이하;2:9이하;4:10;6:10 이하에 그리고 도처에(et passim) 반영된 바와 같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성서주해] 1장3-8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유대 광야의 키르벳 쿰란에 중심을 둔 에세네파의 사회의 발견은 요한이 상당 기간 거기에서 보냈을 것이라고 하는 추측을 갖게 하였다.쿰란의 문서는 세례 요한이 계약 契約 신앙인들과 공통적인 이념을 함께 하였고 그러한 이념중에는 광야에 중심을 둔 성경의 전통과 메시아 소망에 의하여 고양된 위기 의식과 성령에 대한 강렬한 기다림이 있었다.세례요한이나 쿰란의 사람들이나 저희들이 광야에 머물러 있어야 할 사실을 이사야40:3로 설명하였다.그러나 쿰란의 계약 신앙인들과 세례 요한을 정밀하게 비교하여 보면 차이가 너무나 커서 양자의 접촉이 있었다고 보는 일이 중요하지 않게 생각된다.만일 과거에 세례요한이 한 번은 쿰란 사회와 교섭이 있었다고 하면 그가 그 전통과 단절하였으며 전적으로 차질이 있는 노선상에서 자기의 운명을 찿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백성들이 요한의 부름에 귀를 귀울이고 광야로 그를 찿아 나아갈 때에 뉘우침과 고백 그 이상의 것이 거기에 내포되어 있다.저희들이 광야라고 하는 심판의 장소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하고 있는 아들인 이스라엘의 지위가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여짐으로 재정립되어야만 하는 것이다.광야로 따라나옴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지금껏 불순종과 반항의 역사였음을 시인하고 그 역사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소원을 말하여 준다.요한의 사죄의 선포는 하나님께서 심판만이 아닌 은혜도 주신다고 하는 확신을 제시한다.....그를 위하여 세례 요한은 히브리 사람의 종들도 시키지 않는 그러한 천한 일이라도,그러니까 주인의 신을 벗기는 일이라도 자기는 자격이 없어 감당할 수 없다고 확언하였다.(예,Mekilta ,Exod21:2"히브리 노예는 그의 주인의 발을 씻어서는 안 된다.자기의 몸으로 신을 접촉해서도 안된다.또한 그의 물건들을 앞에 들고 운반하여서도 안 된다....그러나 그의 아들이나 제자는 그렇게 하여도 무관하다."TB Ketuboth 96a에 보면"노예는 제자가 자기 선생에게 하는 모든 일이나 시종을 자기 주인에게 할 것이지만 주인의 신을 푸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첫번째 출애굽이 하나님의 영의 지도아래에서 광야로 들어가는 행진이었던 것과같이 두번째의 출애굽이 성령께서 새롭게 출현하실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하는 예언자들의 선포가 있다(사 32:15;44:3).요한은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예언자의 약속이 성취됨을 기대하면서 백성들을 광야로 부른다.

WBC

"세례자 요한"마가만이 요한의 신분을 표현하기 위하여 분사형을 사용하고 있다.명사적 분사인 '세례자'라는 단어는'세례 시행자'Baptist라는 동의어(밥티스테스)보다 더 역동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세례 의식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이 유대 공동체의 일원이 되거나,혹은 완전한 에세네파 회원으로서의 자격을 취득한 수도자가 되는,개종자들에게 시행하는 세례와 쿰란 종파의 세례의 입회적 특징과는 대조적으로,요한의 세례는 입회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요한의 세례는 주의 임박한 종말론적인 시대의 관점에서'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였다.그러므로 그의 세례의 특별한 형식과 의미가 자신이'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기 때문에,그는'세례 요한이라고 불려졌던 것이다...."요단강"Wadi-el-Kelt근처의 여리고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Chadschle강은 요한의 세례가 베풀어진 장소였다.낮으 요단 계곡은 광야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광야에서'의 요한의 전파와'요단강'에서의 그의 세례가 반드시 장소상의 불일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엘리야와 요단강의 연관성(왕하2:6-14,참조,왕하5:8-14)은 우연의 일치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초기의 랍비 전승은 특히 요단강을 정결 의식의 장소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카톨릭 새번역

"세례"라는 낱말은 신약성서에서 요한과 그리스도의 세례를 가리키지만,본디는 유다교에서 제의적祭儀的 더러움을 정화하기 위한 침수沈水나 세정洗淨을 뜻하였다(유딧12,7;집회34,25;마르7,4;히브6,2;9,10).기원후 1세기 말부터는,유다교에서 개종자를 완전히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해한 침수 예식을 볼 수 있게 된다.그 곳에서는 장차 이루어질 근원적인 정화에 대한 기대 속에,서원을 한 회원들이 날마다 침수로 자기 몸을 정화하였다(규칙서2,25-3,12).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다르다.이 세례는 심판의 때,곧 시간이 찿을 때 행해질 세례에 대한 마지막 준비로서 모든 이에게 단 한 번 베풀어졌다.그 전제 조건은'회개'이고,그 목적은 세례가 행해지는 그 순간에,또는 하느님의 나라가 선포될 때에 선물로 베풀어지는'죄의 용서'이다(이사1,16;4,4;에제36,25)

 
  [마가복음 성서주해] 1장9-11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처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인정을 받은 곳이 광야였고 그리고 특히 호세아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들임을 다시 광야에서 새롭게 하실 그 날을 미래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출4:22이하,예레미아2:2,호세아11:1-3) 예수께서 광야로 들어가신 것은 진정한 단 하나의 출애굽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옛 약속이 성취되었다.많은 무리가 요한에게 나아갔으나 예수님만이 광야로 되돌아감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살려고 하는 결심을 뜻하고 있음을 이해하셨다.성령과 비둘기의 유비類比는 성경 이후의 유대주의 또는 구약으로 연관되는 테두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두 가지 해석이 그 중 두드러지고 있어 소개한다.(1) 이 말씀은 창세기1:2 내용과 암암리에 연관이 있다.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깊은 물위에 운행하시더라"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벤 조마(Ben Zoma,A.D90년경)의 해석에 따르면,비둘기의 행동인 것이다.비둘기의 강림은 천체天體들을 있게하실 때의 우주적 의미와 일치하는 신창조를 뜻한다. 후기전승은 창세기1:2에 있는 성령을 메시아의 영이라고 확인하고 있고 그 영은 온 민족이 회개로 준비가 될 때까지 이스라엘에 찿아오지 않는다고 하였다.그러나 드문 경우에 랍비들은 비둘기를 성령의 상징으로 보았다.(2) 랍비들은 일반적으로 비둘기를 가리켜 이스라엘 사회의 상징으로 더 많이 해석하였다.....두번째 귀절(내가 너를 기뻐하노라)은 (동사가 직설법 부정 과거이다) 역사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어떤 특정적 역활에서 행동을 선택하였음을 의미한다.

카톨릭 새번역

하늘이 갈라졌다는 것은 그것이 천처럼 찢어졌다는 것이다(15,38참조).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서 개입하신다는 표징이다(이사63,19).이 약속의 실현은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이루어진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의 직역:"나는 너에게 호의를 가졌다"곧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이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히브리 말이나 아람 말과 같은 셈족 말에서 처럼,지속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그래서 우리는 현재로 옮긴다.

 
  [마가복음 성서주해] 1장16-20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WBC

복음서에서는 디베랴 바다(요21:1;참조,6:1) 게네세르 바다(요세푸스 전쟁사 3.10.7) 게네사렛 호수(눅5:1;참조,8:22,33) 갈릴리 바다 등으로 불리고 있다.히브리어나 아람어의'얌'과,코이네 헬라어의'달라사'는 바다 혹은 호수로 번역되어 진다.그러나 '달라사'는 일반적으로 바다를 뜻하였고 (참조,칠십인역의 느34:11) 복음서에는 눅5:1만이 좀더 정확하게'호수'(리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때문에 우리는 이 바다가 내륙의 담수호임을 인정하면서도 좀더 보편적인 영어 번역인'바다' 즉 '갈릴리 바다'라고 계속 부르게 될 것이다....."그물을 던지는 것을" 동사'암피발론타스'는 사람의 손으로 고기떼를 향하여 둥굴게 펼쳐지는 그물을 던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어떤 이들은 시몬과 안드레가 강을 걸어서 건너는 중이었다고 판단한다.그러나 던지는 그물은 배에서 사용되는 것이었다.1:16-18에서의 배에 대한 언급의 부재가 반드시 그 배의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참조,4:1,35)...Wuellner의 연구는 예수 시대의 '어부들'을 일반적으로 단순하고 무식하고 하류층에 속하는 노동자들로 풍자하는 설명의 그릇됨을 증명하고 있다.어업은 중요 식량중의 하나를 공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고기잡는 일은 팔레스틴을 포함한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매우 인기있는 직업이었다.성경에서 일반적인 어부상은 '고용된 일꾼'쪽에 가까운 반면에(참조,1:19-20) 이들 네 제자들은 배와 고기잡는 장비를 소유하고 경영하는 또 다른 계층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들은 고기잡는 일에 고용된 노동자들이기보다는 경영자에 가까웠다(Wuellner,"Fishers of Men",47-61)....베드로와 안드레는 육지 위에 혹은 배위에 서서 손으로 던진 투망을 사용하고 있으나,야고보와 요한은 여러사람이 필요하고 배를 사용하여야 하는 훨씬 더 큰 그물(예인망,NIC)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가복음 성서주해] 1장21-31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WBC

Daube는 '권세'는 단순히 전승을 전수하는 서기관들의 초보적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임명된 랍비로서,율법을 가리칠 수 있는 '자격증서'(히브리어,레슈트)를 지니고 있음을 뜻하는 전문 용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Argyle은 그러한 수준의 권위가 예수 당시의 유대교에서 존재했느냐는 별도로,칠십인역에서 15회 사용된 권세(엑수시아)중에 한번도1:22의 '엑수시아'의 배후에 있는  히브리 용어로 짐작되는 '레슈트'라는 말의 번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논증했는데,그것은 타당성이 있다...."서기관들"은 전문적으로 율법을 다루는 특정한 집단이었다.비록 바리새파,사두개파,에세네파 등과 같은 여러 종교집단들이 자체로 서기관을 보유하고 있었지만,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은  바리새파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참조2:6) 때때로'랍비'라고 불리워졌던 서기관들은 적어도 율법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임무를 지니고 있었다(Gnika,1:79).즉(a)그 시대에 통용되는 율법을 발전시키고 해석하는 일(b)학생들에게 율법을 가리치는 일(c)재판정에서 일을 보는 것이다.....Kock는 병행 구절에 대한 연구에서 악마가 이름을 사용하느 것은 찿아보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그리고 이름이 언급되는 소수의 병행 본문들은,귀신 축출자를 능가하는 힘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쫓는 방법이라기보다는 귀신 축출자의 신성에 대한 인식과 승인 그리고 악마의 복종을 암시한다...."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이는'열병에 걸려 기운이 없어 누워 있다'로 번역될 수도 있다.여기서 치유는 질병의 증상이라기보다 질병 그 자체인 열병이 오래되었음을 말해준다.치유가 귀신 축출의 언어로 묘사되어질 때,누가의 설명은 열병과 악마의 일반적인 연관성을 반영하고 있다(4:39  꾸짖으시며,막1:25 꾸짖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임명받은 랍비의 권위는 결단을 선포할 수 있으며....여기서 과시된 권세는 결단의 권세만이 아니라 결단을 강요하는 권세인 것이다.장로들의 전통만을 인용하는 하는 랍비적 해석과 대조되는 여기에는 예언이 있다.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함께있는 권세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는 선포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께로 받은 사명과 권세를 전제한다(예수님과 랍비가 교훈의 문제로 벌어진 간격은 자료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 그 자체에서 찿아야 한다.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인식自認識의 사실에서 찿아야 한다).

200주년 신약성서주해

가파르나움(카펠나움)은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갈릴라이아)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입구에서 서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곳(텔 흠,Tel Hum)에 있는 포구,거기에는 로마군 편제를 본뜬 헤로데 안티파스의 소부대가 주둔해 있었다(마태8,5-13=루가7,1-10)....율사들은 언제나 구약성서와 조상들의 전통을 근거로 율법을 가르치 데 반해 예수님은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신국神國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 내용과 양상이 매우 새롭고 힘찼다.그러나 마르코는 예수님이 권위있게 가르치신 까닭을 달리 설명하여 그분은 당신 말씀을 구마驅魔행동으로 뒷받침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27절!).율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기원전 450년경 예루살렘에서 활약한 에즈라를 율사의 시조로 꼽는다(LXX 8,3)예수님시대 율사들은 대부분 바리사이파에 속했다.그들은  12,28-34를 제외하면 언제나 예수님의 적수로 등장한다.예수님시대 바리사이파(화리사이오스) 율사들 가운데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가 양대 산맥을 이루어 맞섰으나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부터는 힐렐 학파가 우세하게 되었다.율사들은 주로 규범(히브리어로 할라카)과 史話사화(하가다)를 익히고 전하기를 업으로 삼았다.즉 율법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는 決疑論결의론을 전개하고 송사를 판결했다(할라카).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전설을 학당이나 회당에서 가르쳤다.

페데리꼬 바르바로의 마르코복음서

당시의 율법학자들은 성서연구의 전문가였지만 그 문자에 포로가 되어서 벌써 그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몸에 벤 질서를 터전으로 번잡스런 분류나 별 가치없는 논리의 유희에 빠진 율법학자의 격언을 듣는 것과 싱싱하고 생기발랄한 마음을 찌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었다.정녕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었다.....호숫가 지방에서 흔히 일어나는 열병의 발작인 것 같다.물론 베드로는 장모가 앓고 있는 것을 몰랐다....열병 뒤에는 몸이 노곤하여 쉬어야 하는 것이 상례였지만 그런 증상도 없었다.장모는 곧 시중을 들 수 있었다.아무런 휴유증 없이 곧 일어나 일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으로 된 치유임을 나타낸다.

 
  [마가복음 성서주해] 1장35-45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요세푸스는 갈릴리를 많은 큰 동리가 집결되어 있는 땅이라고 설명하며"도성들이 밀집하여 있고 많은 동리마다 어디나 사람들이 넘치고 있다.왜냐하면 땅이 비옥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가장 작은 동리라도 인구 15,000이 넘었다.라고 하였다.1:38에서 마가는 큰 도시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리의 구성을 하고 있는 커다란 농경읍農耕邑을 설명하는 적절한 낱말을 사용하였다.명백히 마가는 소국가와 그 안에 있는 동리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톨레미(Ptolemy)체계의"토파키"(toparchy,小國家)로 구성된 동리들이 함께 묶여 있고 그 중 제일 큰 동리가 각 지역의 수도 역활을 하는 그러한 행정 조직 속에 몇몇 분봉왕이 헤롯의 지배아래 있었다.따라서 예수님은 갈릴리를 통하여"토파키"의 수도에 위치한 회당에서 설교하는 사역에 집중하셨으며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요구를 전하셨다.....문둥환자들은 예루살렘과 옛날부터 성벽이 있는 도성을 빼놓고는 아무 곳이나 선택하여 살 수 있었다.심지어는 중간벽을 세워 회중과 구별할 시설이 있으면 회당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 두 가지 배려가 있기는 하나 문둥명은 그 병에 걸린 개인이나 그가 살고 있는 공동체나 그가 근접하여 살고 있는 공동체에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가져왔다.이러한 배경으로 예수께서 그를 깨끗하게 해주셨다는 치유사건을 觀照관조해야 한다.마가의 기사에 나오는 그 문둥병이 眞性진성이냐 아니면 다른 만성 피부병이냐 하는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西方서방의 본문을 따라"격분된 감정으로"(moved with indignation),이렇게 받아들이면 이 문구의 주어가 누구인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이 어구의 주어를 예수님이라고 가정하면 이 격분의 감정은 죄의 파괴와 산자에게 모진 운명을 씌운 비참한 운명,특히 한 문둥병자에게 강요한 비참한 운명에 대한 義憤의분의 표시로 이해할 수 있다.


   [마가복음 성서주해]2장1-17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레위는 그러니까 헤롯 안디바에 속하는 유대인 세리였을 것이다(세리는 흔히 징수원 publicans이 아니다.왜냐하면 징세원은 보통의 경우 기마관리騎馬官吏의 로마인들이며 그 부하의 세리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다....).이런 종류의 관리들은 아무 곳에서나 사람들이 증오하며 가장 악한 사람들과 동류라고 취급되었다(유대인의 자료에 의하면 두 계층의 세무 관리를 구별하였다.즉 수입세와 인구세人口稅를 걷어들이는 관리와 교량이나 운하나 국도에서 통과세를 걷어들이는 관리인데 후자가 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세금부과를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이다).한 지역의 징세를 고정액으로 임대하는 습관이 오랜 관례가 되어 있어서 세리들은 할 수만 있으면 그 이상의 이익을 올리려고 하여 마구 혹독한 착취를 하였다.한 유대인이 세무에 종사하면 그는 사회에서 추방된 자로 취급이 한다.그는 재판관이나 법정에서 증인이 될 자격을 상실하며 회당에서 쫓겨나며 사회의 안목으로 그의 수치는 그의 가족 전체에 미치는 것으로 여겼다......"죄인들"이라고 하는 낱말은"하나님의 도덕률을 범한 자들"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통념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왜냐하면 만일 마가가 그것을 의도하였다고 하면"세리와 또 다른 죄인들"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다시 말하여 이 낱말은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저희들이 서기관적 전통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으로 하여 천민이라고 비하하여 가리키는 사람들의 계층적 통칭인 전문어이다....율법의 선생이라고 하면 레위의 집에 모여 온 사람들과 함께 식탁을 중심으로 옆으로 누운 자세로 앉는 것(recline)이 합당하지 않았음을 알았어야 할 것이다.바리새인들은 바리새 전통에 엄격하지 않은 자들과 접촉하여 종교적으로 부정해질까 하여 절대로 저희들만의 사귐을 엄격히 지켰다.저들은 저들과 같은 교사가 율법에 정통하지 않은 자들과 어울려 길게 누워있는 것을 몹시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예수님이 오래된 풍습을 등한시 하므로 불쾌해했다.

WBC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침대'혹은 '의자'와 대조되는'가난한 사람의 침대'를 의미한다....

카톨릭 새번역

당시의 일반 가옥은 단층으로 되었고 지붕은 편편하였다.그리고 집밖으로 난 계단을 통해서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이 지붕 또는 옥상은 나무로 된 들보를 얹고 나무가지나 갈대 같은 것들을 놓은 다음에 흙으로 덮었다(200주년 신약성서주해:흔히 방 한칸에 흙벽을 쳤는데 방바닥은 널찍하지만 흙벽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져서 지붕 면적이라야 두 평방 미터 남직했다.밑은 넓고 위는 좁은 나지막한 굴뚝같은 집이다)..."얘야,너희 죄를 용서받았다"의 직역은 "얘야,너희 죄들은 용서되었다.""얘야"대신에"(내)아들아"로 옮기기도 한다....."영으로 대신에 영안에"라고 옮길 수도 있다.여기에서 "영"은 직관과 정서와 의지의 자리,곧 인간의 내면을 대표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페데리꼬 바르바로의 마르코복음서

거의 모든 율법학자들이 바리사이파에 속해 있었다.율법학자(라삐)는 신학자이며 율법교사들이다.율법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상인,소매업자 혹은 농부로서 굳게 단결되어 있었다.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이러한 단체는 예루살렘뿐아니라 여러 지방에도 있었다(마태오 9:11,14;루가 5:17) 예수님 당시 바리사이파의 수는 6천명 정도라고 했다(유다고사17:2,4).그렇지만 그들의 감화력과 그들의 지도자인 율법학자들의 영향력은 대단히 강력하였다.율법학자란 계급은 기원 전 458년경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히브리 사람들의 단체를 다시 편성한 에즈드라에 근원을 두고 있다...그리이스문화 곧 이교도의 사상관습이 히브리즘에 침입하지 목하게 한 정통파의 지지자들(하시딤 곧 경건한 사람들)이 단결했다.여기서 바리사이파 사람들(분리파)이 생겼다[200주년신약성서주해:기원전 167년에 시작된 이스라엘 독립전쟁에 가담한 경건자들(=히브리어로 하시딤)가운데서 묵시문학적 사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요나단 치세 때(기원전 160-143) 결성한 종파이다.예수님당시 사두가이파,에쎄느파(=꿈란파) 열혈당파와 더불어 큰 종파로 등장했다].그리고 본시 바리사이파는 종교운동의 한 대표였던 그들의 지도자인 율법학자들이 최고의회의 의석을 차지하게 되면서 강력한 정당이 되고 사두가이파 사제계급 및 귀족의 정당과 격심하게 대립하면서 평민의 지지를 얻었다.그 중에는 바리사이파의 사조를 지지하는 사제도 있었고 반대로 사두가이파에 기운 율법학자도 적지 않았다.....예수님께서 전도의 중심으로 삼았던 가파르나움은 헤로데 안티파스와 헤로데 필립보의 영토가 맞닿는 국경에 있었고 다마스커스로부터 지중해및 에집트로 통하는 길에 있었다.그 곳은 통행세와 관세를 거두는 세관이 설치된 중요한 관문이었다.

 
 [마르코복음 성서주해] 2장18-28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200주년 신약성서주해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단식하곤 했다"는 마르코가 덧붙인 것이다.본디 이 단원은 "그래서 사람들이 와서 그분께..."로 시작했다.유다교인들은 일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의무적으로 단식을 했다(레위16,29).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의 고행을 본받아(1,6) 자주 단식했던 모양이다.바리사이들은 매주 두 번(루가 18,12)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다(디다케8,1)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보요 술꾼으로"통한(마태11,19=루가7,34) 스승의 영향으로 예수님 생전에는 속죄의 날을 제외하고 단식하지 않았다....율사의 제자는 있을지언정"바리사이의 제자"란 없다.단순히 바리사이 무리라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사실 1세기 교회에도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마태6,16-18;사도10,30;13,2;14,23;27,9;1고린7,5;2고린6,5;11,27).언제 단식 했던가?짐작에 불과하나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금요일에 단식했을 것이다.1세기 말엽에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디다케8,1) 예수님께서 선포하신"하느님의 나라"는 혁신적이고 위력적이므로 그에 맞갖은 "회개"역시 새롭고 힘차야 한다는 뜻이다...안식일에는 39가지 노동을 금지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추수작업이다.그런데 밀이삭을 자르는 것도 추수작업에 해당된다고 보는 법해석이 있었다(미슈나 사바트7,2;예루살렘 탈무드9c,1-7).그래서 바리사이들이 항의한다....예수님시대의 율사들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한해서 안식일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그러나 유다계 그리스도계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이 굶주린 때에도 안식일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다윗의 사례를 내세웠던 것이다[카톨릭 새번역,안식일 준수가 사람에게 심각한 손실을 끼칠 때에는 그의무가 면제되었다(1마카2,39-41참조).어떤 랍비(메나시아)는 탈출31,14와 관련해서"안식일이 너희에게 맡겨진 것이지 너희가 안식일에 맡겨진 것은 아니다"하고 말한 바 있다(마르3,4;마태12,11;루가14,5도 참조)한결같이 예외 규정을 논하는 결의론이다.그리고 아히멜렉 제관 대신"에비아달 대제관"이라고 한 것은 성경 사본이 무척 귀한 때인지라 해당대목을 찿아보지 못하고 어렴풋이 기억해서 전하다가 생긴 착오다....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안식일(토요일)대신에 일요일(주님의 날)을 축일로 지냈다(갈라4,10;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우스가 마그네시아 교회에 보낸 편지9,1)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예언자 시대가 끝나갈 무렵에 다른 동기의 금식이 전통화하기 시작했다[스가랴7:5,8:19에 보면 4,5,7,11번째 달에 있는 금식에 관한 언급이 있다.이들 본문애 대한 랍비의 주석을 보면 금식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타무즈(4번째 달)17일:율법의 비석을 깨뜨린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아브(5번째달)9일:느브갓네살(그리고 후에는 타이투스)이 성전을 파괴한 날을 잊지 않기 위하여,티쉬리(7번째 달)3일:그달리야의 살해(왕하25:25이하)를 잊지 않기 위하여,테베트(11번째 달)10일:바빌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공략한 날을 잊지 않기 위하여(렘52:14)...]....훗날,아비아달이 다윗과 더 친교가 두터운 제사장이 되었으므로 원초적 오류가 이 전승 안에 들어왔을 것이고 그리하여 마가의 손에 전수되었을 것이라고 보며,또는 사본 여백에 기입한 주석적 어구가 본문안에 잘못 들어왔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마가복음 성서주해] 3장 1-19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요세푸스가 한번 언급을 한 것 이외에 어떤 고전문서에도 헤롯당은 나오지 않아 이런 사실로 미루어 저희들은 정식으로 하나의 종파 또는 정당이나 어떤 조직된 집단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 낱말이 라틴어형식에 따른 구성이며(Herodiani) 그 뜻이 헤롯의"추종자들"또는 헤롯의"밀명을 받은자들"(Partisans)이다.갈릴리 지방에서 헤롯당들이라고 하면 헤롯 안디바의 추종자들을 가리킨다.저희들의 명칭은 대다수의 백성들이 그의 통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그러한 지역에서 헤롯에게 충성을 다하는 공적인 저희들의 정치적 태도 때문에 생겨났다.요세푸스에 의하면 그 낱말의 뜻이 헤롯 대왕이 하는 일에 찬성하거나 지지하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다.마가도 동일한 어휘로 이 낱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리적이다.3:6이나 12:13에 나오는 헤롯당은 헤롯 안디바에게 충성과 지지를 바치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을 가리킨다.12:13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저희들의 세금에 대한 관심은 저희들이 헤롯 왕가가 의지하고 있는 로마 정복자에게도 충성하고 있음을 말하여 준다.헤롯당들은 예수님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을 지원하게 되었다.역사적으로 헤롯이 통치하는 갈릴리는 유사 메시아가 일어나 백성의 봉기가 잦은 곳으로 유명하다.저희들은 예수님이 또 이러한 유의 민중소요를 일으킨다고 간파했다....알려진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본문에 보면 레게스(히브리어,동요,소요)는 우뢰의 뜻이 아니다.그러나 연관된 아랍어에 의하면 이 뜻이 있고 따라서 예수님 시대에 이러한 의미의 표현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관용어였을 것이다.

WBC

'시몬'(기원 불명,응답하심,히브리어로는 시므온)은 로마의 통치 기간동안 많이 사용되던 유대식 이름이며 별명이나 성으로 사용하기를 장려했을 수도 있다.그러나 베드로의 사용은 신분을 알리는 차원을 넘어서 그 이름의 의미에 관한 논의로 인도되어 진다.아람어'케파'의 번역어인 베드로(남성형 페트로스)는 본래'바위'보다는'돌'을 뜻하는 말이었다.물론 둘 다 사용된다.희랍어 번역 페트로스는 기독교 이전의 어법에서 고유명사로 사용되지 않았다.그 반면에'케파'는 분명히 기원전 5세기의 본문에서 아람어식 이름으로 사용되어진 것 같다....."세베데(제베다이오스,기원은 히브리어)의 아들 야고보(야코보스,큰 야고보,발 뒤축을 잡은자,기원은 히브리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오안네스,주가 사랑하시는 자,기원은 히브리어)....안드레(안드레아스,사내답다)...빌립(필립포스,말을 좋아하는 사람)...바돌로매(발돌로 마이오스,기원은 아람어)는 아버지의 이름을 딴 것으로'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이다...마태(맛다이오스,하나님의 선물,기원은 히브리어)는 구약의 맛다디아의 약어이다.막2:14에서는 '세리 레위(류이스,친함,연합함,기원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도마(도마스)는..'쌍둥이'를 뜻하는 히브리어'테오마'라는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알패오(알프하이오스,기원은 아람어)의 아들 야고보는 때로 작은 야고보와 동일시 되며(15:40) 아마 그는 알패오의 아들이었던 레위의 형제일 것이다(2:14)...다대오(닷다이오스,도량이 큰 사람,기원은 아람어)는 이곳과 마 10:3에서만 거명되고 있다.누가복음에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되어 있다....가나안인(카나나이오스,기원은 히브리어) 시몬은 종종 열심당 시몬으로 언급된다.왜냐하면 그 이름은 지명으로 오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가나안은 열심 혹은 열심당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나나의 희랍식 음역'가나나이온'이다.그래서 누가는'열심당 시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가룟 유다(이우다스,기원은 히브리어)가 목록의 마지막에 있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그러나 가룟(이스카리오테스,기원은 히브리어)의 기원과 의미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가룟이 수15:25에서(헤브론 근처에 있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렘48:24에서(모압에 있는 것으로) 언급된 도시인 '그리요 출신의 사람'(아스 게리욧,히브리어)을 뜻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마르코복음 성서주해] 3장20-35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200주년 신약성서주해

"누구든지 인자에 대해서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것입니다.그러나 성령에 대해서 독성의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그 뜻인즉 지난날 예수님이 이승에서 활약하실 때에 그분을 불신한 죄조차 용서받을 수 있지만 이제 성령께서 작용하는 초대교회의 선포마저 불신한다면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예수님시대와 성령님시대(교회시대)를 구별하면서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말이겠다.

WBC

"바알세불"(베엘제불)은 정확하게 정의하기가 어렵다.이 용어는 현존하는 유대 문학 작품에서 사용되지 않는다.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히브리 표현이'집주인'을 뜻하는 히브리어'바알제불'이나 혹은 '똥의 지배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바알지불'의 음역이라고 생각한다.Gaston은 이 번역이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고 논박한다.첫째 바알지불은 좀 더 정확하게는 베엘제불로 음역되어지며 더욱기 지불(똥)은 제사를 뜻하는 히브리어 지부아와 언어적 유희를 이루기 위해서 사용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 비록 바알제불의 음역이 적절할 수도 있지만 제불은 어원학적으로'거주지'를 의미하지 않으며 단지 성전이나 하늘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거처를 뜻할 뿐이다.그러면 왜 사단은'(거룩한)거처의 주인'으로 알려졌는가? Gaston은 헬라주의적 시기동안 야웨에'필적할 만한 신'은 희랍어권에서는 올림푸스의 제우스로 아람어권에서는'베엘 세마인'혹은 '하늘의 신'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스라엘은 '마레 세마야'(하늘의 주;참조 단5:35)를 야웨의 이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유대사상과 신약성경에서는 이방신들을 마귀로 간주하였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Gaston은 '바알 제불'[(거룩한)곳의주]이 예수님이 귀신의 왕과 연관되고 '베엘 세마인'(하늘의 주)의 명료한 언어적 유희를 상징하는 '이러한 상황을 위해 특별히 조어되었다'고 주장한다.

   [마가복음 성경주석] 4장1-20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WBC

길은 밭 사이나 밭의 가장자리에 나 있었다.Jeremias는 한 해의 수확이 끝난 후에 사람들이 지나다닌 밭 사이의 길로 이해하며 길 위에 뿌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씨를 뿌리고 난 다음에 땅을 갈아 뒤엎는 고대의 습관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새들이 그것을 먹었다는 사실은 길이 갈아 엎어지지 않은 채로 있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수확이 씨앗들의 생산성과 관련있다고 생각한다면 풍성한 수확이 7.5%와 10%사이의 증가를 뜻한다는 Dalman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이 땅의'비정상적으로' 많은 생산성에 관한 일반적인 강조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Dalman은 또한 낱알 하나가 보통 35배의 낱알들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떤 것은 특별히 80배 심지어는 100배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고 말한다.그러므로 이 비유는 평균을 넘어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상적인 생활의 경험에서 이끌어 낸 이 기사의 신뢰성을 부인할만큼 특별하지는 않는 수확으로 끝을 맺는다.

페데리꼬 바르바로의 마르코복음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28년11월경,가까운 언덕에서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있었는데 그 광경이 예수님의 주의를 끌었을 것같다.이스라엘에서는 11월 경에 보리와 밀을 심는다....그분이 그물치듯 동그라미를 그리며 뿌리는 씨의 운명은 여러 가지이다. 이 비유는 팔레스티나의 농사 짓는 형태를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다음과 같은 예외가 되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특히 고지 갈릴래아에서는 밭을 따라 돌 투성이의 좁은 길이 있고 밭을 가로질러 저쪽 밭으로 가는 작은 고랑이 많이 나 있었다....씨 뿌리는 사람이 아무리 주의를 해도 어떤 씨는 자라기에 알맞지 않은 박토에 떨어지게 마련이다.어떤 씨는 길 바닥에 떨어진다.그 씨가 발에 밟히지 않는다면(루가8:5) 곧 새들이 쪼아 먹는다. 다른 씨는 돌이 많은 땅에 떨어졌다.그 곳은 흙이 얇아서 곧 싹이 나오지만 뿌리가 없는 줄기는 상당히 강한 12월 혹은 1월의 태양 때문에 타 버리고 만다.세번째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다.가시덤불이 밑의 부드러운 줄기보다 빨리 성장하기 때문에 씨는 이삭을 내기 전에 막혀 버리고 만다.끝으로 비옥한 땅에 떨어진 씨는 만족할 만한 열매를 맺는다.하나의 씨가 30배,60배,100배나 되는 열매를 맺는다.가장 풍요한 에스드렐론 평원에서도 보기 드문 풍성한 수확이다.에스드렐론 평원의 수확은 많아야 20배.엘 아도룸에서는 6 내지 10배,베들레헴 부근에서는 2 내지 4배밖에 거두지 못한다.그러나 비유에 나오는 풍성한 열매의 수확이라는 말을 듣고도 청중은 놀라지 않는다.모든 것이 풍성하게 열매를 거둔다는 것은 메시아 시대의 하나의 특징이었다.여러 가지 묵시록을 쓴 유다인 저술가들을 메시아 시대가 오면 종려나무가 산과 같이 높이 자라고 한 송이 포도에서 30통의 포도주가 나온다고 한다.어떤 라삐는 메시아 시대에는 밀알이 2,000배가 된다고 하였고 송아지 만한 포도송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예수님께서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묘사를 피하시고 씨가 알맞은 땅에 떨어졌을 때 열매맺는 신비로운 풍요를 약속하신다.

 
  [마르코복음 성서주해] 4장21-41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200주년 신약성서주해

21-25절은 네 가지 단절어(토막구절)를 모아 놓은 집성문인데 짐작건대 마르코가 단절어를 모아 이 자리에 삽입한 것같다.복음사가가 그렇게 한 이유는 21,22절의 단절어들이 자신이 내세운 메시아 사상과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이승의 예수님이 당신 신분을 감추셨지만 그분은 등불이시므로 결국 세상을 비추기 마련이며(21절) 그분이 한 동안 당신 정체를 숨기셨지만 결국 드러나기 마련인 것이다(22절)....그럼 어떤 상황에서 이 상징적 단절어를 발설하셨을까? 갈릴래아 영주 헤로대 안티파스가 잡아죽이려고 하니 피신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루가 13,31-33)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등불을 숨겨둘 것이 아니라.등경위에 놓아 빛을 내게 하는 것처럼 당신은 잠적할 생각이 조금도 없고 드러나게 활약하시겠다는 결의를 나타내신 말씀이리라.

페데리꼬 바르바로

갈릴래아의 작은 집에서 사용되던 작은 등잔은 질그릇으로 된 편편한 접시인데 방을 어느 정도 밝히기 위해서는  촉대燭臺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됫박(로마의 됫박은 8.631리터의 용량으로 팔레스티나의"세하"보라는 13리터의 됫박보다 많이 애용되고 있었다.등불을 켜 놓은 등경에는 나무나 쇠붙이로 만든 것이 있는데 가난한 집에서는 됫박을 뒤집어 놓고 그 위에 등불을 켜 놓았다:마태오복음서) 혹은 침대 밑에 두는 것은 쓰지 않은 낮 시간에만 그렇게 했다......성장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다 자라면 보기에는 그리 눈에 띄지 않은 관목이 된다.베들레헴에서는 2미터 이상 뻗어난다.갈릴래아에서는 호숫가와 요르단 강 기슭을 따라서 3-4미터 높이로 자란다.겨자씨를 좋아하는 작은 새들이 그 가지에 모여든다.작은 것을 겨자씨에 비유하는 것은 항상 잘 인용되었다.라삐들도 겨자씨처럼 작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었다....건너편은 호수 동쪽 기슭을 가리켰다....아람어로 '알 우라'라고 하는 매우 거센 회오리 바람을 말한다.이 호수에는 이러한 바람이 갑자기 일어난다.반시간 사이에 거울 같이 고요하던 호수는 파고 2미터가 넘는 거친 물결로 소용돌이 치게 된다.흔히 있는 호수의 일기 변동이었다.특히 호수 북쪽 지대에서는 서쪽과 동쪽의 좁은 골짜기에서 강풍이 거세게 불어 닥친다.(서쪽의 지중해에서 오는 바람과 동쪽의 시리아 사막에서오는 바람이 이 갈릴래아 호수에서 마주치게 되면 예기하지 못한 폭풍이나 회오리 바람이 분다....보통 키잡이가 앉는  배의 뒤쪽에는 방석이 있었다.예수님은 이를 베개삼아 주무신 것이다.:카톨릭 새번역)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곡식을 측량하는 데 사용한 말을 뜻한다(a bushel measure)을 뜻한다['말'(모디오스)은 라틴어식 표현이며 본래 척도를 뜻하였다:WBC]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다 아는 측량도구이다....짐작건대 식사 때 사용하는 의자를 뜻하는 것 같다...항상 바람이 아침이나 저녁보다는 오후에 세게 불기 때문에 고기잡이는 보통 밤에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그러나 저녁에 일면 그것은 더 위험하고 심각하였다.이런 때의 폭풍은 엄청난 세력을 동반하여 수면을 때렸고 높은 파도가 배를 덮쳐 즉시 위험한 침수가 일어난다.

  [마르코복음 성서주해] 5장 1-20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사봉에 다르면 배가 도착한 곳을 세 가지로 다르게 썼다."게라사 지방","가다라 지방",또"게르게사인의 땅"이다.비판이라는 면에서 보면 게라사 지방이란 읽기법이 확실하며 오늘날 거의 모든 성서학자들이 이것을 지지하고 있다.("게라사인의 고장"이 마르코에게는 호수 동쪽 전 지역을 가리킬 수도 있다.:카톨릭 새번역)그러나 지리면에서 보면 게라사(지금의 게라슈,갈릴래아 호수 동남 60킬로 지점에 있음)라고 생각 할 수가 없다.왜냐하면 돼지들이 갈릴래아 호수에 빠져 죽었다는 뒤의 이야기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마찬가지 이유에서 호수 남동 데카폴리스에 있는 "가다라"라고 하기도 어렵다.그 지방과 호수 사이에는 히포 지방이 있기 때문이다.오리게네스는 겐네사렛 호수에는"게르게사"란 예 도읍이 있고 그 부근에 호수를 깎아지른 듯한 경사가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이것으로 보아 만일 이 지적이 오리게네스의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면 고대의 게르게사는 지금의 꾸르시라는 폐허와 일치되는 곳으로 생각된다.그 곳에서 남쪽으로 2칼로 쯤 되는 곳에"모가에도르"라는 곳이 있는데 복음서의 기록과 잘 들어 맞는다. 이 곳에는 깍아세운듯한 낭떠러지가 많다....그의 이름은 "레기온(군단,대부대)"이다.아우구스또 황제 때 로마 군대는 6,826명의 사병으로 구성되며 그 중 6,100명이 보병이고 726명은 기병이었다[NIC,6,000명의 보병과 120명의 마병과 기술자;WBC,약 4,000에서 6,000명 정도로 구성되어져 있었는 데 예수님 당시와 로마의 통치 기간 동안에는 약 6,000명으로 고정되었으며 그 중 약 5,800명이 보병이었다].여기에 나오는 이 말은  더러운 영이 말하듯 이 불쌍한 사람에게 많은 악령이 붙어 있었음을 의미한다.레지오(그리스어 레기온:군단)라는 라틴어의 낱말은 군대 용어로서 그리스어에도 아람어에도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일어난 사건을 기뻐하기보다 오히려 무엇이라 말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갖는다.예수님의 능력에 대하여 공포를 느낀다.....데카폴리스는 요르단 강 주변의 열 도시를 가리키는 총칭이다(기원전 60년대 폼페이우스가 일정한 정치적 자치권을 부여 하였다). 그리스어를 쓰는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시리아의 총독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상당한 자유를 누렸다.문화와 상업이 발달한 주요 도시 이름은  스키토폴리스(벳산,유일하게 강 서편에 있었다),게라사,히포(=히포스,티베리아 맞은 편),다마스커스,가다라,필라델피아(암만),디온,라파나,펠라,카(=가)나다(canatha) 이다.

  [마가복음 성경주석] 5장 21-43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그녀의 처지가 더욱 가련하게 된 이유는 항상 부정하다는 제의법祭儀法에 묶여 있으며 또 그녀와의 접촉의 결과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하는 지극히 불편한 판단에 묶이게 됨으로 아무도 그녀에게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다.그녀가 어떠한 의학적 처리를 받아왔는가는 탈무드에서 짐작할 수 있다.왜냐하면 탈무드에 이러한 질환에 대하여 투약법과 함께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소상히 나와 있기 때문이다.(한 처방을 보면 고무,명반,크로커스 식물 등의 혼합분粉을 술에 타서 한 잔 마셔야 한다. 또 하나의 처방을 보면"너희 혈루증에서 일어나라"하는 대사와 함께 술 속에 담군 페르시아 양파가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애곡의 노래는 제창과 손뼉을 치며 부르는 교창交唱으로 되어 있다.아주 빈한한 사람도 자기 아내가 사망하였을 때에는 최소한의 규모로 피리 부는 사람 둘과 전문적으로 애곡하는 사람 한 사람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회당장의 반열에 있는 사람이고 보니 많은 수의 애곡하는 사람을 고용했을 것으로 보인다.[여인들이 죽음의 춤을 추는 선도자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자리를 정한다.그리하여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자세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장단에 따라 춤을 춘다."저희들이 춤이 점점 격렬하여지고 얼굴이 붉어진다.매장의 시간이 가까워지면 손과 발놀림이 점점 격해진다.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에 당도하고 보니 그 소녀의 시신 앞에서 이러한 혼잡이 진행되고 있었다(참조 5:38)"]....11년과 하루가 지나기 까지는"어린 애"라고 취급하였다.11년과 하루에서 12년과 하루까지는"미성년"이라고 취급하였으며 12년에서 12년 반까지는"젊은 딸"(a young daughter)이라고 보았고 12년반부터 그 이상은 "성인"으로 보았다.혼인 적령기를 결정하기 위하여 이 구분은 중요하였다.

WBC

회당장은 예배를 준비하고 건물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회당장 중의 하나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의장의 직무와 관련 있을 것이다.그러나 행 13:15은 한 사람 이상의 의장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가파르나움 회당의 으뜸이라기 보다는 으뜸들을 관리하는 고문역인 것 같다.:페데리꼬 바르바로)...'야이로'는 히브리어'야이르'(그가 교화하다,민32:41;삿10:3-4;2:5)과 ,야이르'(그가 깨어나다,대상20:5)의 음역이다.

   [마가복음 성경주석] 6장 1-29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마가의 본문은 액면대로 보아 가치절하와 같다.그가"목수가 아니냐"는 우리들과 한가지로 그가 손으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냐 하는 뜻이다[테크톤'목수'라는 낱말은 硬質財料경질재료를 쓰는 기술자를 말한다.다시 말해 나무,철물,석재를 사용하는 건물 시공인을 뜻한다.희랍 교부들은 목재를 취급하는 직공인으로 보는 반면에 라틴 교부들은 일반적으로 쇠붙이를 취급하는 직공인으로 생각한다....장농이나 찬장이나 의자나 벤치(다시 말해서 목재를 사용하는 직공인) 등을 제작하는 자이다....직공인으로부터 고도의 기술인까지 모두 해당한다고 견해를 말한다.그러나 마가의 맥락에서 보면 그러한 생각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부연한 귀절"마리아의 아들"은 아마도 경멸의 의도에서 한 말일 것이다.유대인의 관례에 의하면 한 사람을 가리켜서 그의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하는 때가 없다.과부의 아들인 경우에도 모욕적인 목적으로 내 뱉는 표현이 아닌 다음에야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는다.(사사기11:1 이하)...파송 명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먹을 것과 누울 곳에 관하여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는 종교적 결단을 요구하였다.전도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휴대물로 지팡이와 신발만이 허용되었고 그밖의 것은 아무 것도 허용되지 안 되었다.떡이나 걸인의 자루나 전대 안에 몇 푼의 돈이나(동전의 최하 단위이다.바우어 사전을 보면"몇푼 안되는 잔돈"으로 해석되어 있다.),밤 이슬을 피하여 몸을 보호할 두 벌의 옷도 배재되었다(Power는 목자를 상상하면 이해할 수 있으며 두번째 옷은 밤이슬을 막기 위한 덮개로 필요하다고 제시했다.제자들은 숙객으로서 호의를 받아야 하는 고로 두 벌의 옷이 필요하지 않았다.).제자들에게 친절이 제공되거든 받으라고 지시하셨다.어느 집이든 용납하거든 저희들이 그 촌락을 떠날 때까지 유하여야 한다(속사도시대의 교회는 받아야 할 접대의 기간을 하루나 이틀 정도로 제한하였다.Didache 11:4-5에 보면 3일간의 기숙은 허위로운 의도의 표징이라고 하였다).다시 말하여 더 쾌적한 집이 그 다음에 나와도 그리로 옮겨 감으로 전자의 친절을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헤롯 안디바(Antipas)는 헤롯 대왕과 말타케(Malthace,4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기원전 4년에 부왕이 죽자 39년까지 갈릴리와 베뢰아의 분봉왕이었다.그가 유대인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하였다는 사람이라는 점이 그가 헤로디아와 결혼한 일이나 조상 때부터의 공동묘지인 디베랴를 그의 수도의 위치로 선정한 사실로 잘 알 수 있다.수도의 위치를 불결한 땅에 정함으로써 그는 실제적으로 그 수도권 안에 유대인의 정착민이 들어오지 못하게 제외시켜 버렸다.왜냐하면 정결법에 의하면 그 시는 영원히 유대인에게 더러움을 감염시키기 때문이다.아구스도(Augustus)는 안디바에게 왕실 칭호를 허락하지 않았다.야심 많은 헤로디아에 이끌려 안디바는 와의 칭호를 정식으로 요구하였으나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는 공식적으로 해직되었으며 39년에 추방되고 말았다.마가가 그를 임금이라고 왕실 칭호를 사용한 까닭은 지역적 관례에 따랐기 때문이다....요세푸스는 헤로디아의 첫번째의 남편이 헤롯 대왕과 마리암메 2세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안디바와는 이복 형제라고 말한다 마가는 이 전남편의 이름이 빌립이라고 한다(갈릴리의 분봉왕 AD39년에 사망)..."빌립"하면 헤롯 대왕과 (예루살렘의)클레오파트라(5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후에 이두래와 드라고닛(Trachonitis)의 분봉왕이 된 자인 그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고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살로매의 삼촌이자 첫째 남편).....안디바의 영토는 베뢰아라고 하는 길쭉한 지형을 포함하며 그 지역은 나바티아의 왕국과 접경되어 있다.그가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나바티아의 아레타 4세의 딸인 전처와 헤어져야 한다.....사해의 동북쪽 귀퉁이에 위치하고 있는 베뢰아의 남단접경 마케루스에 유폐시켰다고 말한다....헤로디아는 아리스토불로스(헤롯과 마리엠메1세-2번째 부인-의 아들),안디바의 조카였다.그녀가 2번째 결혼을 하였을 때 나이가 40대였다.그녀와 안디바의 결합은 음행이며 충격이었다.애냐하면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자기 형제가 생존하여 있을 때 그 형제의 처와의 결혼을 분명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레18:16;20:21)..."대신들"(great men)은 분봉왕 행정부의 직속 신복들이다..."천부장"은 라틴어의 1,000명의 부하를 거느린 지휘관인 로마군의 군장관과 같은 뜻이다...."갈릴리의 귀인들"은 생활이 넉넉한 그 지방의 상류인사들로 안디바가 마케루스성에 왔을 때 언제나 함께 자리를 같이하는 헤롯과 친분이 있는 유지라고 생각된다.요세푸스는 헤로디아의 딸의 이름이 살로메라고 하였다.그녀는 성년이 되어 분봉왕 헤롯 빌립(그녀의 삼촌'요단 동쪽의 분봉왕,클레오파트라의 아들)과 결혼하였다.그런데 당시 남편은 이미 상당한 연령이었으며 그 남편이 AD 34년에 사망하자 다른 헤롯가의 사람인 헤롯 아리스토블로스와 재혼하였다(칼키스,지금의 레바논의 왕).살로메가 그 수치스러운 춤을 추었을 때의 나이가 14-15세였다....36년에 아레다왕의 딸이 당한 모욕을 복수하기 위하여 나바티아의 군사가 안디바에게 쳐들어왔고 안디바가 겪은 참패를 가리켜서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살해한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석하였다.


  [마르코복음 성서주해] 마르코복음6장 30-56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마르코는 또다시 7절부터 13절에 걸친 기록으로 되돌아 간다.29년 4월 초였을 것이다.완전히 만족한 사도들은 자기네 성공담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돌아온 곳은 31절로 보아 카파르나움인 것 같다.그래서 그들은  다시 출발하여 호수를 건너서"한적한 곳"으로 갔다.5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을 햏하기에 앞서서 제자들이 간 곳은  베싸이다였다(루가 9:10).호수 동쪽 기슭으로 가기 위해서는 헤로대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나라를 벗어나게 된다.그러나 마르코는 헤로데가 두려워 피하셨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마태오 14장 13절을 보아도 그런 암시는 없다.아마도 세례자의 사형이 있은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났던 것 같다....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루가는"해가 기울기 시작하자"(루가 9:12)라고 하였지만 이 어투는 유다인의 관습으로 미루어 아마 오후 2시 또는 3시경이었을 것이다....대충의 계산에 따르면 하루 한 사람분의 빵은 한 데나리온의 12분의1에 해당한다.그렇다면 200 데나리온으로 2,400명의 하루 치 빵을  살 수가 있다.반 나절을 생각하면 4,800명 분의 빵을 살 수가 있다.그러나 요한 6장 7절을 따르면 200 데나리온이 5,000명 분의 사기에는 충분한 돈은 아니었다.....호수 저쪽 기슭으로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힘 있는 명령은 제자들을 놀라게 했다.얼마 전 예수님께서는 쉬기 위하여 동쪽 기슭으로 가자고 하지 않으셨던가?(6:31)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역풍은 배가 베싸이다에 가는 것을 방해한다.예수님께서는 그리 높지 않은 산에 서서 바람에 시달려 방향을 잡지 못해 고생하는 배를 보신다.역풍에 시달리면서도 제자들은 스승이 지시한 방향으로 가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예수님은 그들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도우려고 오신다.(유대인의 밤을 3등분한 시간이 아니라 로마인의 4등분한 시간을 따라) 아침 3시에서 6시 사이,제자들은 물 위로 자기들을 향하여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다....배가 닿은 곳은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 기슭,수확이 풍요한 겐네사렛 평야이다.이 평야는 티베리아와 카파르나움 사이에 있으며 길이 5킬로,폭 1킬로 반으로 인구밀도가 높았다.이 평야는 낙원이라고 할 만큼 기름졌고 그곳에서 나오는 과실의 맛이 뛰어났다.그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라삐들은 종교행사보다 그 과일을 먹기 위해 축일에 모여 들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예루살렘에는 그 과일을 팔지 못하게 했다.지금도 오렌지,레몬,포도가 유명하다.

   [마가복음 성경주석] 7장 1-23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이 결례의 법은 빵을 취식하기 전에만 공식적으로 요구되는 절차였다.손을 씻는 행위는 손에다 물을 부어 씻는 행위이며 그러므로 3절을 물 속에 손을 담구고 있어야 한다는라고 본 견해를 부당한 것으로 제외시킨다.저자 마가는 정확하게 손을 씻을 만큼의 물이 요구된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이 때의 손의 위치는 손바닥과 손가락을 컵 모양으로 받쳐들고 물을  받아 손가락 전부에 물이 묻도록 한다.물을 부어 지금까지 설명한 방법에 의하여 손을 씻는 형식과 물을 뿌림과 목욕이나 손목까지 물 속에 손을 담그는 형식은 구분하였으며 시장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돌아와서 손을 씻는 일에 대한 언급이 4절에 나오거니와 이 언급은 위에 열거한 형식중에서 3번째의 것임이 분명하다.(시장에서 돌아왔을 경우에는 더 엄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었다.흐르는 물 혹은 50리터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물통에 팔꿈치까지 잠기도록 담궈야만 했다.팔레스티나와 같이 물이 귀한 지방에서는 이런 씼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그러나 라삐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런 씼음을 실천하기 위해 가령 4마일(약 6.4킬로)을 걸을지라도 고생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꼭 지켜야 할 정화의식이 이렇게 엄격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시장에서는 죄인이나 이방인의 상인과 접촉하게 된다.따라서 몹시 더러워질 위험에 있었다.가정에서 쓸 그릇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규정을 따라 이루어졌다.이것은 나무 또는 쇠붙이 잔,접시에 한정되었다.왜냐하면 질그릇은 쓰고 난 후 부수어 버렸기 때문이다.페데리꼬 바르바로)...희랍어'크세스톤'은 랍비적 히브리 문헌에서 빌려온 낱말로 나타난 라틴어 sextarius의 변형일 것이다.그 어의는 측량 용어로 반 리터 또는 1파이트의 액량에 해당한다.그러던 것이 용량에 관계없이 한 주전자 또는 한 물병을 나타내는 것이 되었다.....바리새인은 외양으로는 그들의 경건이 나무랄 때가 없는 사람들이었다.왜냐하면 저희들은 많은 조례와 계명을 힘써 지켰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러한 열심은 저희들이 하나님께 순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이다.예수님의 날카로운 반박은 하나님의 계명과 서기관 전승의 할라카형식을 철저한 대치 상태에 두신다.이론적으로 말하여 구전의 법은 백성들이 율법을 파괴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였다.그러나 실제로는 율법을 가로막아 불가피하게 왜곡과 경화작용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일으켰다.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구전적인 법에 쏟는 과장된 경의는 권위가 일탈한 인간의 규율이 뒷받침하는 거짓 경건의 한 표현이 되고 말았다.예수님은 범주적으로 구전법의 권위를 부정하신다.....만일 아들이 자기 행위를 후회하여 부모들이 그에게서 정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던 모든 도움을 차압하여 버린 그 가혹한 맹세를 완화하려고 하면 그의 맹세는 유효하며 존중되어야 한다고 재량에 의하여 처결한 서기관에게 문의하여 서기관들이 가하다고 말하여야 한다.서기관들이 그 아들로 하여금 자기 부모를 위하여"아무 일도"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 예수님의 진술은 과격하지 않다.일체의 은택을 배제한다고 함은 경제적인 지원을 넘어서서 종교적 의무를 이행할 때 도와주는 일이나 병을 앓을 때 간호하는 일까지도 포함하는 이러한 실제적인 친절까지를 배제한다는 뜻이다....음란(카톨릭새번역,불륜)은  성적 배덕背德행위 전부를 망라한다.간음행위보다 광범위하며 간음행위는 결혼 계약의 파기를 뜻하는 전제이다."음탕"(200주년,카톨릭 새번역,방탕)은 공개적인 배덕을 나타낸다.도적질,살인,간음은 십계명 속에 그리고 호세아서 4:2에 나란히 나온다."탐욕"은 그 낱말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음욕으로 범한 행위 등을 포함한다."악독"은 (200주년 신약성서,카톨릭 새번역,악의) 의도적인 악의가 있는 행위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용어이다."속임"에(200주년 신약성서,카톨릭 새번역,사기) 내포된 의미구성은 간교와 배신이다."흘기는 눈"은(개정개역,질투/200주년'악한 시선,가톨릭 새번역,시기) 냉시冷視에 대한 셈적 표현이다(신15:9;전14:10,31:13).또는 타인의 소유를 질투심으로 바라보는 행위이다."훼방"은 (개정개역,비방/200주년,모독/카톨릭 새번역,중상) "중상"이며 인간에게 향한 행위가 될 수 있다.그러나 구약에서는 항상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무례이며 좀 더 정확한 번역은 "참람"이라고 할 수 있다."교만"은 자기를 예찬하는 목적에서 자아를 표시하는 거만을 뜻한다."광패"(어리석음/개정개역,우매함/200주년,카톨릭 새번역,어리석음)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몰지각한 자의 기승氣勝을 설명하는 뜻이다.

    [마가복음 성경주석] 7장24-37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두로의 베니게 공화국에서 그녀는 헬라화한 시민층의 한 사람이다.날때부터 그리고 문화적 환경의 이유에서 이방 사람이다.그녀를 가리켜 수로보니게 족속(Syrophonitian,희랍어로 쉬롭호이닛사)이라고 한 이유는 행정적으로 베니게는 수리아도에 속하는 것이며 수도가 북아프리카의 (지금의 리비아의)카르타고(Carthage)에 두고 있는 리보보니게(Libophoenicia)와 구별이 되기 때문이다...."개"(직역은 작은 개 또는 강아지)....시돈의 베니게 공화국은 두로(희랍어로 튀로스)의 북향 약 20마일쯤 (30킬로)되는 해안선에 위치하고 있다.짐작건대 예수님은 시돈 지경으로 북향하시다가 동남으로 꺾어 빌립의 지경을 가로질러 데가볼리 지경내에서 갈릴리호반 東岸동안(히포부근)으로 내려오셨을 것이다....그는 귀머거리이며 말을 하기가 어찌나 힘이 드는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낱말 하나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짐작컨대 혀의 발작이 일어나면 안면의 근육까지도 일그러지는 형편이었다.그가 태어날 때부터 벙어리이며 귀먹어리였다면 전혀 언어개념이 있을 수 없다.그러나 이 경우는 그러한 사정이 아니다.그 환자는 후천적으로 어떤 질병의 휴유증이나 외상 때문에 이러한 불구자가 되었으며 한 마디의 말을 하는 데도 심한 고통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고전적 유대주의나 헬라주의에서는 침에 중요한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히브리어(또는 아람어)'엡파다'를 그리스어로 설명해 주고 있다.

 
   [마가복음 성경주석] 8장 1-26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광주리는 한 사람이 운반 할 수 있는 중량의 넉넉한 크기의 줄 또는 부대로 만든 바구니이다(행 9:25,사도 바울을 성에서 달아 내릴 때 사용한 바구니와 동일한 용어의 역어이다)그러므로 일곱 광주리에 가득한 부스러기의 양은 6:43의 바구니(다시 유대인 성인이 평상시 갖추는 의복과 함께 몸에 붙이고 다니는 가는 가지로 엮은 바구니이다.바구니안에는 점심이나 일상용품들이 들어 있다)보다 용량이 큰 용기 속에 있는 양이다....달마누다는 여기 본문에 나오는 것 이외에는 완전히 알려져 있지 않다.유사귀절인 마태복음 15:39 에 보면 마가단이 나오고 있고 호반의 동편 옛 거라사 근처에 위치하였다.....kopp는 달마누다가 막달라와 같은 장소임을 거의 자신하고 있는데 이 지점은 호반 서안의 디베랴 가까이에 있는 읍이다...."하늘로 부터"라는 어구는 셈어의 관용구로서"하나님으로부터"의 뜻이다....갈릴리 바다를 건너 예수님과 12제자는 바다 건너 동북에 위치한 벳세다 율리아스라고 하는 고올란인들의 수도에 찿아오니 이 곳은 헤롯 빌립의 통치구역이다(참조 6:45).이 고장은 갈릴리 바다 주변에 위치한 크기로 말하면 市시이나 행정조직으로 말하면 부락의 조직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며 따라서 23절에 기술하고 있는 마가의 지식이 정확함을 일러 준다.[벳세다는 벳사다 율리아스이며 분봉와 빌립이 인구의 증가와 고을의 크기로 하여 한 부락에서 시작하여 큰 도시로 육성하였다. 그러나 새로 조직하고 새 명칭을 주었음에도 (고올란인들의) 지방 도시로 머물러 있고 괄목할 만한 신 도시로 크지 못하였다....요세푸스는 갈릴리에 위치하고 있는 큰 농촌부락에 대하여 이러한 견해를 말한 일이 있다. 즉"여기에 나오는 많은 부락은 사람들이 가득하며 그 땅이 비옥하여 가장 작은 부락일지라도 15,000명 이상의 인구가 밀집되었다."마을"에 대한 마가의 기술은 정확하다.]...이 사람은 나면서부터의 맹인이 아니다.날 때부터의 맹인은 어떠한 대상물도 본 일이 없으니 나무라고 시각적으로 표현 할 능력이 없을 것이다.오히려 그의 시력이 없어지면서 영상이 제한을 받다가 사라져 간 것이다.사람의 모습을 나무와 같다고 하 말은 그가 상당한 시간동안 시력이 없었음을 말해준다.24,25절에 기록된 시력의 확실하고 점차적인 회복은 그 사람의 흥분을 담아 놓고 있으며 시력을 되찿는 일에 대한 그의 집중적 참여와 함께 끝내 완전히 회복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만일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의도가 이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하신 것이면 지금까지 타처에서 치유가 있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을 공연히 들끌게 하여 계획된 사역을 진행하는 일에 지장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필요한 선행죄를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1:44이하)

WBC

어떤 학자들은 바리새인의 누룩(거짓되고 모순된 경건심)을 헤롯의 누룩(세상 사람들의 불신)과 구별하고자 한다.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둘 사이에 공통점을 찿고자 한다.어떤 학자들은 누룩이 혁명적인 메시아(바리새인들)나 권력의 통합(헤롯)에 이루어지는 단일국가를 희망하는 동일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민족주의를 표상한다고 말한다.이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메시아 대망이나 편협한 민족주의를 제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데리꼬 바르바로

때는 7월 중순 팔레스티아의 더위가 극성을 떨칠 때이다.장소도 외딴 곳으로 데카폴리스에서는 도읍과 촌락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가장 가까운 곳이 가마라,가다라 혹은 히포 부근일 것이다....만일 그가 메시아라면 지금까지의 예언자보다 뛰어난 분이므로 그들보다 더 뛰어난 일을 해야 한다.예언자들은 모세의 경우처럼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거나(출16:12이하),엘리아처럼 3년간의 가뭄뒤에 비를 내리게 했다(열왕 상18:44이하).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면 마음대로 일식을 일으키거나 갑자기 천둥을 치게 하거나 혹은  하늘에 새로운 별을 나타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모두가 이 표속에서 하느님의 능력을 보고 아무도 그것을 악마의 힘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라 했다.

 
  [마가복음 성경주석] 8장 27-34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인솔하시어 벳세다 북쪽 약 25리되는 곳에 있는 헤롯 빌립의 저택이 있고 가이사랴 빌립보가 가장 중요 행정중심인 이두래 지경에 찿아오셨다.그 수도는 헤르몬 산의 경사가 아래로 흘러 요단강의 수원지가 있는 경치 좋고 땅이 비옥한 것으로 유명한 고장에 위치하고 있다.처음 이 지방을 아구스도(Augustus)에게서 수여받은 헤롯대왕은 희랍신 판(Pan)에게 헌납한 동굴 가까운 곳에 황제의 이름으로 바친 신전을 세웠다.그후에 기원전 3년에 빌립이 파네아스(Paneas)의 주변 부락을 개척하여 자기 저택지로 삼았고 신도시의 이름을 시이저(케사르 티베리오,그리이스 발음으로는 카이사르,기원14-37년/페데리꼬 바르바로)를 따라 명명하였다.이와같이 이 고장은 로마인들의 깊은 소굴이다(벳세다와 대조적으로 가이사랴 빌립보는 순수한 헬라주의의 의미로 간주되는 도시이다.가이사랴 빌립보는 광범위한 행정구역을 지배하며 그 도시자체에 통용이 되는 주화를 주조하였다.마가의 귀절에 郡군단위의 수도와 주변의 동리들이 언급되어 나온다.....이 명사가 복수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왜냐하면 대제사장은 한 직무에 한 사람씩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요세푸스에 의하면 복수의 의미가 실무를 맡고 있는 대제사장과 함께 전직 대제사장이나 선출된 대제사장 가족들을 추가한 개념이라고 한다....'인자'는 순수한 희랍어 관용구가 아니며 아람어 bar-nash/bar nasha'의 자역字譯이라고 함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마가는 베드로가 사용한 어세를 표현하는데 잇어 마귀를 침묵시킬 때에 복음서에서 일관하여 사용하고 있는 동일한 강렬한 언어(rebuked:책망하다.참조 1:25)를 사용하여 그의 충동적행위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메시아"와 고난을 하나로 일치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이사야 53장에 대한 탈굼으로 잘 예증이 된다.거기에 보면 왕이신 메시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해석이 제시된 바 있으나 고난은 백성과 관계있다고 하였다.베드로가 책망한 내용은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내용이 너무나 과격하게 새로운 내용이며 그리하여 그 새로운 사실에 대하여 제자들이 그 사실을 받아 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을 증명하여 준다.거부당할 메시아는 유대인의 신념과 소망에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그러한 이유에서 베드로의 반발은 이해가 되나 그러나 외람된 말이며 용납이 될 수가 없다...여기에 있는 사상은 "너의 분수로 돌아가라" 다시 말하여 나의 진실한 제자가 되어야 하며 하나님보다 사탄을 위하여 말하는 자가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질적으로 말하여 세상은"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이다.이 표현은 우상 숭배에 몰락하고 있는 동시대인들을 비난한 예언자들의 준엄한 말에 의해 채색된 표현이다(참조,사 1:4,21;겔 16:32;호 2:4).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께 타협이 없는 불굴의 충성을 보여 주고 있는 성도들을 부인함으로 표현된 태도는 음란한 성격인 세상을 재인정하고 하나님께 불성실해도 괜찮다는 태도이다(NASV,Adulterous/공동번역,절개없고/200주년,간음하고).

 

 http://blog.daum.net/evangerlist/4439671?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