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지혜13,5).
무신론
2123“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과 이토록 친밀한 생명의 결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있다.따라서 무신론은 현대의 그
히 중요한 문제로 여겨야 한다.”
2124무신론이라는 용어는 매우 다양한 현상들을 일컫는 말이다.무신론의
흔한 형태의 하나는 자신의 필요와 갈망을 공간과 시간에 한정하는 실천적
유물론이다.무신론적 인본주의는 인간이 “스스로 자기 목적이 되고 고유한
자기 역사의 유일한 창조자요 형성자”라는 그릇된 주장을 펼친다.현대 무
신론의 또 다른 형태의 하나는 단지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해방을 통한 인
간의 해방을 기대하는 것이다.이러한 형태의 무신론은 “종교는 본질상 이
러한 인간 해방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한다.종교가 인간에게 허황된 내세
의 삶에 대한 희망을 일으켜,지상 국가의 건설를 외면하게 하기 때문이라
는 것이다.”
2125하느님의 존재를 배격하거나 거부한다는 면에서 무신론은 경신덕을
거스르는 죄이다.이 죄에 대한 책임은 의향과 정황에 따라 상당히 덜어질
수 있다.무신론이 생겨나고 확산되는 데는 믿는 이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믿는 이들이 “신앙교육을 소홀히 하거나 교리를 잘못 제시하거나 종교,윤
리,사회생활에서 결점을 드러내어,하느님과 종교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
2126흔히 무신론은 하느님에 대한 일체의 종속을 거부하기까지 하는,인간
의 자율성이라는 그릇된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그러나 사실 우리는“신
긍정이 인간 존엄성에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인간의 존엄성은
바로 하느님 안에 기초를 두고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교회는
“자신의 메시지가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열망과 일치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불가지론
2127불가지론 不可知論은 여러 형태를 띠고 있다.어떤 경우 불가지론자들
은 하느님을 부인하지 않는다.오히려 그들은,자신을 계시할 수 없고,그 누
구도 그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수 없는 초월적 존재가 있음을 가정한다.또
다른 경우에 불가지론자들은,하느님의 존재 증명이 불가능하며,하느님의 존
재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하여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다.
2128불가지론은 어떤 경우에는 하느님을 찾는 것일 수도 있다.그러나
무관심주의,존재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회피,윤리적 양심의 게으름 등
을 의미할 수도 있다.불가지론은 흔히 실천적 무신론과 같다.
Ⅳ.“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습을 본떠서 만들지 마라......”
2129하느님의 명령에는 인간의 손으로 하느님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금지
하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다.신명기는 이렇게 설명한다.“주님께서 호렙 산
불 속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날,너희는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으니 매
우 조심하여,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을 만들어 타락하지 않도록 하여라”
(신명4,15-16).이스라엘에게 당신을 계시하신 분은 절대적 초월자이신 하느
님이시다.“그분은 ‘전부’이시다.”그러나 동시에 “그분께서는 그분의 모든 업
적보다 위대하시다”(집회43,27-28).하느님께서는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 ”
(지혜13,3)이시다.
2130그런데도,구약 시대부터,하느님께서는 강생하신 ‘말씀’으로 성취된 구원
을 상징적으로 가리켜 주는 형상들을 만들도록 명령하시거나 허용하셨다.
구리 뱀과 계약의 궤와 커룹 cherubim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2131 787년 니케아에서 열린 제7차 공의회는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에 근거
하여, 성화상 파괴주의들에 맞서,그리스도뿐 아니라 천주의 성모,천사와 모든
성인의 성화상 공경을 정당화하였다.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이 되심으로써 성화
상의 새로운 ‘경륜’이 시작하신 것이다.
2132 그리스도교의 성화상 공경은 우상을 금지하는 첫째 계명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성화에 대한 공경은 그 본래의 대상에게 소급되며”“성화
를 공경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성화에 그려진 분을 공경하는 것이다.”성화에
표하는 공경은 존경을 표하는 공경이지 하느님께만 드러나야 하는 흠숭이 아
니다.
성화를 공경하는 행위는,성화 그 자체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강생하신 하느님
을 알아보게 해 줄 뿐이다.곧, 성화에 표하는 동작은 성화 그 자체에 표하는 동작
이 아니라,나타내고 있는 분께 표하는 동작이다./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제2절 둘째 계명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탈출20,7).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아예 맹세하지 마라(마태5,33-34).
Ⅰ.하느님의 이름은 거룩하시다
2142둘째 계명은 하느님의 이름은 존경할 것을 명한다.이 계명은 첫째 계명
과 마찬가지로 경신덕에 속하는 것이며,거룩한 것에 대하여, 특히 우리의 언어
사용을 규제한다.
2143계시된 모든 말씀들 가운데 독특한 것이 하나 있는데,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을 계시하신 것으로서,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당신
의 이름을 알려 주셨다.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신비 안에서 당신을 계시하
신다.이름은 다만 신뢰하고 절친한 사람에게만 알려 주는 법이다.“하느님의 이
름은 거룩하시다.”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한다.
인간은 사랑이 넘치는 흠숭의 정으로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이름을 상기해야
한다.인간은 오직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하고,찬송하기 위해서가 아니면,자신
이 하는 말 중에 하느님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하지 말 것이다.
2144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경의는,하느님 자신의 신비와 하느님의 이름이 상기
시켜 주는 거룩함 그 자체에 드려야 하는 경의를 표명한다.거룩한 것에 대한
지각 知覺은 경신덕에 속한다.
2145신앙인은 두려움을 물리치고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증언해야 한다. 설교와 교리 교육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흠숭과 경의가 흠뻑 깃들어 있어야 한다.
2146둘째 계명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금한다. 곧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의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것을 모두
금하는 것이다.
2148신성 모독은 둘째 계명을 직접 거스르는 것이다.이것은 생각으로나 말로써
하느님을 증오하거나 비난하거나 도발하고,하느님을 나쁘게 말하며, 그분에 대
하여 불경스러운 말을 하고,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 등이다.야고보
사도는“그 존귀한(예수님의)이름을 모독한”(야고2,7)이를 비난한 바 있다.하느님
을 모독하는 언사를 금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인들,거룩한 물건들을
거스르는 모든 언사에도 해당된다.죄가 되는 행위를 은폐하고,백성을 노예로 만
들며,고문이나 살인을 위해서 하느님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 또한 하느님을 모독
하는 것이다.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하여 죄를 짓는 것은 종교를 거부하게 만든다.
신성 모독은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존경과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에 상반되는
것이다.그것은 그 자체로 중죄가 된다./교회법 제1369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베네딕토16세 전임 교황 장례미사)
사람이 다니면
사람의 길이 생긴다
바람이 다니면 바람 길이 되고
물이 다니면 물길이 열린다
쥐나 새가 오가면
쥐나 새들의 길이 생기는 것처럼
마음이 오가면
마음길이 열린다
얘야
제발 비껴 있지 말거라
봉숭아 꽃물 들인 손으로 가을꽃 꺽어
가슴에 안고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빈손이라도 좋고
찡그린 얼굴이라도 좋으니
내가 찾아가는 마음 길 맞은 편
허전하게 비워 두지는 말아다오
(마음의 길/나태주)
새해에도 행복한 날만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