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이사야 64:1-9)
훈육과 학대는 다릅니다. 훈육은 사랑과 용서가 있지만, 학대는 책망과 비난만 있습니다. 아버지는 학대하는 분이 아니라 훈육하는 분입니다. 아버지에게는 사랑과 용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놀랍게 선포합니다.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앗수르 제국이 흥왕하던 시기입니다. 앗수르 제국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까지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남유다에게는 시련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련의 시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토기를 만들 듯이,진흙인 우리를 빚어 만드시고 길러주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을 때, 때리시기도 하시지만 싸매시기고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용서로 훈육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잘못을 고하고 용서 받음을 알고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