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건 버너드, 미건 양 말일세. ‘말일뿐이에요!’하고 내뱉았지.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아무 뜻이 없다는 것을 바로 꿰뚫어 본 거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듣고 있었는데 말일세.”
“나한테는 지당한 말로 생각되었었는데.”
“지당하지, 실로. 문제는 그것을 그 아가씨가 알아차렸다는 걸세.”
“그럼, 그때 자네는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이야기한 것은 하나의 짧은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거였네. 그것을 나는 멋대로 되풀이하고 있었지. 미건 양을 빼고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네.”
“왜 그렇게 했나?”
“그건……일을 진행시키기 위해서였네! 모두에게 할 일이 있다는 그런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지. 뭐랄까……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네!”
“그렇게 해서 무엇인가에 이르리라고 생각하나?”
“아, 그건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는 소리죽여 웃었다,
“비극 한가운데에서 희극을 시작하는 셈일세. 음, 그렇지 않은가?”
“무슨 뜻인가?”
“인간 드라마라는 걸세, 헤이스팅즈. 글쎄, 잠시 생각해 보게. 여기에 공통의 비극에 묶여진 세 사건의 인물이 있네. 그러다가 제2의 드라마가 시작되네. 전혀 다른 것이 말일세. 자네는 영국에서의 내 첫 번째 사건을 기어갛고 있나? 그렇지, 벌써 여러 해 전 일이로군. 나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함께 있게 해줬지. 그 가운데 하나를 살인되로 체포함으로써 말일세! 그렇지 않고는 해결 방법이 없었을걸!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걸세. 헤이스팅즈, 나는 늘 생각하지만, 살인 사건은 위대한 결혼 중매인이라네.”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포아로, 그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걸세. 다만……”
“아니, 그럼 자네는 어떤가?”
‘나?“
“그렇게. 모두들 흩어져 간 뒤 자네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았나?”
“그리 무감각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렇지. 그러나 그 곡이 자네의 생각을 나타내고 있었지.”
“정말인가?”
“그렇고말고. 콧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네. 그것은 의식 밑에 마음을 나타내거든. 자네가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던 곡은 확실히 전쟁 무렵에 유행하던 거였지. 다시 한번 해보겠나?”
나는 낮은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때로 나는 빨강 머리가 좋아
때로 나는 금빛 머리가 좋아
(에덴에서 스웨덴을 거쳐서 온 사람이야)
“이 이상 분명한 게 또 있나? 하기야 나는 금빛 머리 여자 쪽이 빨강 머리 여자보다 가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얼굴이 좀 빨개지며 소리쳤다.
“아니, 포아로.”
“아주 당연한 일이지. 프랭클린 클라크가 갑자기 버너드 양을 마구 동정하기 시작한 것을 보았겠지? 그 사나이가 몸을 얼마나 앞으로 내밀고 그녀 쪽을 보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소러 그레이 양이 얼마나 언짢아해 하고 있었는지 자네는 알아차렸을 걸세. 그리고 도널드 프레이저가……”
“포아로, 자네의 머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감상적이로군.”
“그것은 내 머리에 가장 없는 점일세. 감상적인 것은 자네라네, 헤이스팅즈.”
나는 그 점에 대해 강력히 반박하려 했으나 마침 그때 문이 열렸다. 놀랍게도 소러 그레이가 들어왔다.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다시 돌아와서 미안합니다, 포아로 씨. 당신에게 얘기해 두고 싶은 게 있어서……”
“알겠습니다, 그레이 양. 앉으십시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잠시 알맞은 말을 찾는 듯 머뭇거렸다.
“포아로 씨, 아까 클라크 시는 제가 제 의사로 캠비사이드를 떠난 듯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분은 아주 친절하고 훌륭하세요.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곳에 그냥 있을 생각으로 있었어요. 골동품 수집에 대한 일이 무척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클라크 부인이 저한테 나가 달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분은 병이 많이 진행되어 처방약 대문에 머리가 혼란되어 계세요. 의심이 많아져 여러 가지 상상을 하시지요. 그분은 저를 얼마나 싫어하셨는지 끝내 저를 그 집에서 나오도록 하신 거예요.”
나는 이 아가씨의 용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흔히 사람들이 하듯 사실을 꾸미려 하지 않고 더없는 솔직함으로 요저믈 파고든 것이다. 내 마음은 그녀에 대한 찬탄과 동정으로 가득해졌다.
나는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오다니 정말 훌륭합니다.”
그녀는 조금 미소지으며 말했다.
“언제나 진실을 말하는 게 좋지요. 저는 클라크 씨의 기사도 정신 뒤에 숨어 있고 싶지 않아요. 그분은 정말 기사 같은 분이세요.”
그 말에는 뜨거운 광채가 있었다. 확실히 그녀는 프랭클린 클라크에게 아주 열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포아로가 말했다.
“정말 정직하게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레이 양.”
소러 그레이는 슬픈 듯이 말했다.
“제게는 큰 타격이었어요. 저는 클라크 부인이 저를 그토록 싫어하고 계시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지요. 사실을 말하면 오히려 저는 늘 그분이 저를 좋아해 주고 계시다고 믿었었어요.”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살아가는 동안에 참 여러 가지 것을 배우게 돼요.”
그녀는 일어났다.
“이것만 말씀드리면 돼요. 실례했어요.”
나는 그녀를 아래층까지 바래다주었다.
방으로 돌아오자 나는 말했다.
“그 아가씨는 아주 훌륭해. 용기가 있어, 그 아가씨는”
“그리고 계산도.”
“무슨 뜻인가, 계산이라는 것은?”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다는 뜻일세.”
나는 의심스럽게 포아로를 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아가씨야.”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지. 그 모로코 크레이프와 은빛 여우 목도리는 최신 유행일세.”
“자네는 마치 양품점 점원 같군, 포아로. 나는 다른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네.”
“자네는 발가벗고 사는 식민지로 가는게 좋아.”
내가 화가 나서 대꾸하려고 하자 그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헤이스팅즈. 아무래도 나는 오늘 오후의 대화에서 벌써 어떤 뜻이 담긴 이야기가 나왔었다는 그런 인상을 털어 버릴 수가 없네. 이상해. 정확하게 어느 것이라고 끄집어 낼 수는 없지만……머리 속을 스쳐 간 인상……그것이 무엇인지, 전에 들었던가 본 듯한 생각이 든단 말일세.”
“처스턴에 대한 일인가?”
“아니, 처스턴이 아니야. 더 전의……뭐, 좋아, 그러다 생각이 나겠지.”
그는 나를 보았으나 - 아마 내가 그리 주의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 웃어버리고 다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아가씨는 천사야. 그렇잖은가? 에덴에서 스웨덴을 거쳐서 온 사람 말일세.”
“놀리지 말게, 포아로.”
< 클라크 부인 >
우리가 두 번째로 찾아갔을 대, 캠비사이드에는 깊숙이 가라앉은 우수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기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안개 짙은 9월 어느 날로, 소리없이 스며드는 가을 느낌이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확실히 거의 침묵에 빠져든 듯한 그 집의 상태에서 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래층 방들은 닫혀진 채였고, 우리들이 안내된 조그만 방은 축축한 냄새가 풍겼고, 갑갑했다.
부지런해 보이는 간호사가 풀이 빳빳한 소매를 잡아당기며 나왔다. 그녀는 활발하게 말했다.
“포아로 씨 되시지요? 저는 캡스틱 간호사예요. 클라크 씨 편지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포아로는 클라크 부인의 용태를 물었다.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한다면 말예요.”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한다면>이라는 말은 죽음의 선고를 받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이라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좋아지시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 새로운 조치를 취해 더욱 편안히 계실 수 있게 해드리고 있지요. 로건 선생님도 지금 용태에 만족하고 계세요.”
“그러나 이제 결코 회복도리 수 없다는 게 확실합니까?”
캡스틱 간호사는 이 노골적인 물음에 좀 놀란 듯했다.
“오, 그런 뜻으로 뚜렷이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에요.”
“카마이클 경이 돌아가신 일이 부인에게 큰 충격이었겠지요?”
“포아로 씨,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건강과 체력을 함께 가진 분들과 마찬가지 뜻에서의 충격이란 그리 대단치 않아요. 클라크 부인 같은 용태에서는 사물이 몽롱해지니까요.”
“이런 것을 질문해서 실례입니다만, 부인과 카마이클 경은 서로 깊이 사랑하고 계셨나요?”
“그렇고말고요. 두 분은 아주 행복한 부부였어요. 클라크 경께서는 보기딱할 정도로 부인 일을 걱정하고 계셨지요. 그래서 그분은 언제나 수심에 잠겨 계셨어요. 그럴듯하게 꾸민 희망으로 기운을 찾는 그런 분은 아니셨어요. 처음에는 아주 마음에 걸려 하시는 것 같았지요.”
“처음? 나중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까?‘
“무슨 일에나 익숙해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렇잖아요? 게다가 카마이클 경께서는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으니 말예요. 취미란 남자분들에게 있어 큰 소일거리가 되지요. 쓸만한 물건이 나오면 사러 가시고, 그 뒤에는 그레이 양과 함께 집안 진열실의 목록이며 진열을 바꾸는데 정신을 쏟으셨어요.”
“아, 그래, 그레이 양이었지요. 그분은 여기를 떠났다지요?”
“네, 정말 안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부인들이란 병중에 있으면 여러 가지 것을 상상하곤 하지요. 게다가 토론의 여지가 없었지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나았어요. 그레이 양은 이해심이 있는 분이에요.”
“클라크 부인은 내내 그녀를 싫어했습니까?“
“아니오,. 싫어했다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사실을 말하면 처음에는 오히려 좋아하는 듯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제 얘기로 지체하셔서는 안 되겠네요. 클라크 부인이 걱정하고 계실 테니까요.”
그녀는 층계를 올라가 우리를 2층 방으로 데려갔다.. 본디 침실이었던 곳을 기분좋은 거실로 바꾼 방이었다.
그녀는 안쓰러울 만큼 여위어 얼굴은 잿빛이었고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의 바싹 마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좀 먼 곳을 꿈꾸는 듯한 눈길로 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눈동자가 핀 끝쯤밖에 되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캡스틱 간호사가 높고 밝은 목소리로 소개를 했다.
“만나고 싶어하시던 포아로 씨세요.‘
클라크 부인이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오, 포아로 씨세요?”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친구인 헤이스팅즈입니다, 클라크 부인.”
“두 분 다 잘 와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멍한 권유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침묵이 이어졌다. 클라크 부인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뒤 그녀는 스스로를 격려하듯 말했다.
“카의 일 때문에 오셨었지요? 카가 죽은 일 때문이었지요? 네, 그랬었어요.”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한층 더 멍하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제가 먼저 가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그녀는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카는 아주 건강했어요. 그 나이치고는 이상할 정도로요. 결코 앓는 일이 없었어요. 이젠 거의 60살이 다 되었지만,. 50살쯤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요. 그래요, 정말 건강해서……”
그녀는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포아로는 어떤 종류의 약효능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것이 사용자에게 얼마나 무한한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지도 알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클라크 부인은 다시 갑자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정말 잘 와주셨어요. 저는 프랭클린에게 말했지요. 시동생은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프랭클린이 바보짓을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그는 금방 말려들고 말아요. 그토록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는데도 말예요. 남자란 모두 그렇지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같이. 프랭클린은 특히 그렇답니다.”
포아로가 말했다.
“그 분은 아주 솔직하지요.”
“그래요. 게다가 또 기사도적인 데가 있어요. 남자란 그런 식으로 바보랍니다. 카도 역시……”
그 목소리가 꺼져갔다.
그녀는 열이 오르는 듯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모두 멍청해서……몸이란 귀찮은 것이에요. 포아로 씨. 특히 그것이 우세하게 될 때에는. 그만 다른 것은 생각지 못하게 되고 말지요. 이 괴로움이 없어지든가, 없어지지 않는가 그것만……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게 되고 말아요.”
“알겠습니다, 클라크 부인. 이것이 인생의 비극적인 한 면입니다.”
“그것이 저를 바보로 만들어 버려요. 당신에게 이야기하려던 것을 생각해 낼 수가 없군요.‘
“카 마이클 경이 돌아가신 일에 대해서가 아니었습니까?‘
“카가 죽은 일? 네, 아마도 그랬을 거예요. 가엾은 미친 사람, 그 살인범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요즘은 너무 소란 떨며 스피드만 내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견딜 수 없게 된 거지요. 저는 언제나 미친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의 머리는 이상하게 느끼고 있을 게 틀림없어요. 그리고 감금되어……얼마나 무섭겠어요. 하지만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그들이 사람을 죽인다면……”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쯤 불쾌한 듯이. 그리고 물었다.
“아직 잡히지 않았겠지요?‘
“네, 아직 못 잡았습니다.”
‘그날 틀림없이 이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많은 피서객들이 있었습니다, 클라크 부인. 마침 여름 휴가 때여서요.”
“그랬었지요. 잊고 있었어요. 하지만 피서객들은 바닷가에 있으며 집 쪽으로 오지 않아요.”
“그날 수상한 자는 집 가까이에 오지 않았습니다.”
클라크 부인은 갑자기 기운차게 되물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지요?”
포아로는 좀 놀라는 듯했다.
“하인들과 그레이 양이 말했습니다.
클라크 부인은 아주 또렷하게 말했다.
“그 여자는 거짓말쟁이에요!”
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포아로가 내 쪽을 흘끗 보았다.
“저는 그 여자가 싫었어요.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어요. 카는 완전히 믿고 있었지요. 그녀가 고아여서 이 세상에 오직 혼자뿐이라는 말을 늘 했었어요. 고아가 뭐 나쁘지요? 때로는 아버지나 주정꾼 어머니가 있어 봐요. 그렇게 되면 불만이 많아지지요. 그 여자가 용감하고 일을 잘한다고 했지만, 저더러 말하라면 그녀는 자기 일을 깨끗이 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 용감하다는 것도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 게 뭐예요.”
캡스틱 간호사가 끼어들어 말했다.
“그렇게 흥분하시면 안 돼요. 지치시면 안 됩니다.”
“저는 곧 그 여자를 내쫓았어요! 프랭클린은 그 여자가 내 말벗이 될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소리를 했지요. 정말이지 그런 말벗이라니! 빨리 없어져 주는 게 훨씬 낫지. 저는 그렇게 말해 주었어요! 프랭클린은 바보예요! 시동생이 그 여자한테 걸려들지 않기를 바래요! 프랭클린은 소년처럼 아무 분별이 없어요! 저는 ‘석 달치 월급을 주겠어요. 그 대신 곧바로 나가줬으면 해요. 나는 하루도 그 여자가 이 집에 있기를 바라지 않아요!’라고 말해 줬지요. 병들어 누워 있는 일에도 좋은 점은 있어요. 사람들이 결코 거역하지 않으니까요. 프랭클린이 제 말대로 해서 그 여자가 나갔어요. 아마도 순교자처럼……더욱 온순하고 더욱 용감하게!”
“어머나, 그렇게 흥분하시면 안 돼요. 몸에 나빠요.”
클라크 부인은 손을 흔들어 캡스틱 간호사를 비키게 했다.
“당신도 그 여자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보예요.”
“어머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저는 그레이 양을 좋은 아가씨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소설 속에서 빠져나온 사람같이 로맨틱하고……”
클라크 부인은 힘없이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견딜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젠 가버렸어요. 바로 나가 버렸지요.”
클라크 부인은 신경질적으로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으나 말은 하지 않았다. 포아로가 말했다.
“어째서 그레이 양이 거짓말쟁이라는 겁니까?”
“거짓말을 하니까 그런 거예요. 그 여자는 당신에게 집 쪽으로 수상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면서요?”
“네.”
“그러니 말예요. 저는 이 눈으로 이 창문으로 봤어요. 정면 출입구 층계 있는 데서 그 여자가 전혀 본 적 없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걸 말예요.”
“그게 언제 일입니까?”
“카가 죽은 날 오전……11시쯤이었어요.”
“그 남자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흔한 인상으로, 특히 색다른 점은 없었어요.”
“신사였습니까, 장사꾼이었습니까?”
“장사꾼은 아니지만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한 떨림이 그녀 얼굴에 나타났다.
“이제……그만 가주세요. 좀 피곤하니까요. 간호사?”
우리는 그 말대로 작별을 고했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기차 속에서 나는 포아로에게 말했다.
“이상한 이야기로군. 그레이 양과 낯선 남자에 대한 일 말일세.”
“헤이스팅즈, 그러니 내가 말한 대로 아닌가. 언제나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 법이라고.”
“그녀는 왜 아무도 못 보았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일곱 가지의 다른 이유를 들 수가 있지. 그 하나는 아주 간단해.”
“그것은 나를 공격하기 위해셔인가?”
“아마 자네 재능을 발휘해 줘야 되겠지. 그러나 지금 여기서 우리가 시끄럽게 떠들 필요는 조금도 없네. 가장 좋은 것은 그녀 자신에게 직접 묻는 거야.”
“하지만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겠지.”
“그렇다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되잖겠나, 무척 암시적이지.”
“그런 아가씨가 살인광과 관련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
“그렇네. 나도 그렇게는 생각지 않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마침내 한숨을 섞어 말했다.
“예쁜 아가씨라는 것도 매우 괴로운 일이군.”
“그럴 리 있나,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하네.”
나는 우겨댔다.
“아니, 정말일세. 모든 사람의 손이 그녀가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직 그 때문만으로 그녀에게 적의를 품고 내밀어지네.”
“어리석은 소리 말게, 헤이스팅즈. 캠비사이드에서 누구의 손이 그녀에게 돌려져 내밀어졌나? 카마이클 경의 것이었나? 프랭클린의 것이었나? 아니면 캡스틱 간호사의 것이었나?”
“클라크 부인은 확실히 그랬네.”
“자네는 젊고 예쁜 아가씨에 대한 일이라면 금방 동정심으로 가득 차 버리는군. 나는 오히려 병들어 누워 있는 노부인을 동정하고 싶네. 클라크 부인만이 사물을 잘 보는 사람이고, 그밖에는 그 남편도, 프랭클린 클라크 씨도, 캡스틱 간호사도 모두 박쥐처럼 눈이 멀었을 수도 있잖나. 그리고 헤이스팅즈 대위도. 알겠나, 헤이스팅즈. 여느 사건의 경과에서는 이 세 가지의 저마다 떨어진 드라마는 서로 연관을 가지는 일이 없는 법일세. 그것들은 서로 연관되는 일없이 저마다의 경과를 가졌을거야. 생의 교환, 결합이라는 것이지. 헤이스팅즈,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네.”
“자, 패딩턴일세.”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대답이었다.
누군가가 거품을 터뜨릴 때라고 나는 느꼈던 것이다.
화이트 헤이븐 장에 닿으니 한 신사가 포아로를 만나고 싶다며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프랭클린이나 제프 경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다름아닌 도널드 프레이저였다.
그는 몹시 난처한 듯 말의 불명료함이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포아로는 그가 찾아온 요점으로 그를 무리하게 끌고 가려 하지 않고 샌드위치와 포도주를 한 잔 권했다.
포아로는 그것들이 오기까지 이야기를 혼자서 끌고 나가며 우리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병든 부인에 대해 친절과 동정을 나타내 보였다.
샌드위치와 포도주를 먹고 나자 그제야 겨우 그는 개인적인 화제로 들어갔다.
“벡스힐에서 왔습니까, 프레이저 씨?”
“그렇습니다.”
“히글리 양 일은 잘되어 갑니까?“
“히글리 양이라고요? 히글리 양이라고요?”
프레이저는 그 이름을 이상스러운 듯 되풀이했다.
“아, 그 여자 말입니까? 아니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손을 꼬았다.
그는 갑자기 소리쳤다.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포아로가 말했다.
“나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당신이 여기 온 것은 누구에겐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옳았던 겁니다. 나는 그런 일에 알맞은 사람이지요. 자, 이야기해 보십시오!”
안심시켜 주는 듯한 포아로의 태도가 효과를 거두었다. 프레이저는 감사하는 듯한 이상할 만큼 유순한 태도로 포아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말고요.”
“포아로 씨, 당신은 꿈에 대해 아십니까?”
그가 그런 말을 꺼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포아로는 조금도 놀란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답했다.
“압니다. 꿈을 꾸셨군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하시겠지요. 그렇다면 제가……그 일로 꿈꾼 것은 여느 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는 사흘 밤 동안 계속 꿈을 꾸었습니다……미칠 것 같습니다.”
“이야기해 보십시오.”
젊은이의 얼굴은 납빛이었다. 눈알이 얼굴에서 튀어나올 듯했고, 실제로 미친 사람 같았다.
“언제나 같습니다. 저는 바닷가에 서서 베티를 찾고 있습니다. 그녀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그녀를 찾아야만 합니다. 저는 그녀에게 벨트를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을 손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
“그러면?”
“꿈이 바뀌어……저는 이미 찾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제 앞에 있습니다. 모래톱에 앉아 있는 겁니다. 그녀는 제가 다가가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아,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계속하십시오.”
포아로의 목소리는 권위있는 사람처럼 단호해져 있었다.
“저는 그녀 뒤로 돌아갑니다. 그녀는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목에 벨트를 감아 잡아당겨……오………잡아당겨……”
그 비명은 아주 처절했다. 나는 의자 팔걸이를 붙잡았다. 그 이야기는 너무나 실감이 있었다.
“그녀는 숨이 막혀서……죽어 있습니다. 제가 목을 조른 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목이 축 늘어져 있는 그 얼굴을 내가 봅니다……그러면 그것은 베티가 아니라 미건 양입니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 떨면서 의자에 기댔다. 포아로가 포도주를 한 잔 더 따라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포아로 씨? 어째서 이런 꿈을 꾸는 걸까요? 날마다 계속해서…….”
포아로가 명령했다.
“포도주를 드십시오.”
젊은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얼마쯤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제가……제가 그녀를 죽인 것은 아닌데도요?”
포아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나는 모른다. 마침 그때 우편 배달부의 노크 소리를 듣고 기계적으로 방을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우편함에서 꺼낸 것은 도널드 프레이저의 이상한 이야기에 대한 내 흥미는 모조리 날려 버리고 말았다.
나는 거실까지 달려갔다.
“포아로, 왔네. 네 번째 편지가!”
그는 뛰어 일어나 낚아채어 종이칼로 봉투를 잘라 테이블 위에 편지를 펼쳤다. 세 사람이 함께 그 편지를 읽었다.
아직 성공하지 못하는가? 흐흐! 흐흐! 너와 경찰은 뭘 하고 있느냐?
그야말로 재미있군. 자, 그럼, 다음에는 어디로 하면 좋을까?
가엾은 포아로여, 정말 안됐군 그래.
처음에는 성공 못 했으니, 몇 번이고 되풀이해 봐.
길은 아직 멀다.
티패럴리? 아니, 그건 훨씬 뒤의 일, T의 차례가 되었을 때에.
다음 차례의 조그만 사건은 9월 11일 던태스터(Doncaster)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럼 안녕.
ABC
< 범인의 인상 >
포아로가 인간적 요소라고 부르던 게 화면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인 듯 여겨진다. 그것은 마치 사람 마음이 엄청난 공포를 견딜 수 없어서 평범한 인간적 관심을 위해 잠시 사이를 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모두 네 번째 편지가 D 살인 계획을 알려 오기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다리는 동안의 분위기가 긴장을 무너뜨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얗고 딱딱한 종이의 비웃는 듯한 활자체와 함께 또다시 사냥이 시작되었다.
크롬 형사가 경찰국에서 달려왔다. 그리고 그가 아직 있는 동안에 프랭클린 클라크와 버너드 양이 나타났다.
버너드 양은 자기도 벡스힐에서 왔다고 말했다.
“클라크 씨께 여쭈어 보고 싶은게 있었어요.”
그녀는 자기 행동을 변명하고 설명하느라 열심인 것같이 보였다. 나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편지 일로 내 머리 속이 가득 차서 다른 일은 자연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크롬 형사는 이 드라마에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 아주 사무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이 편지를 가져가겠습니다, 포아로 씨. 만일 복사한 게 필요하시다면…….”
“아니, 필요없습니다.”
클라크가 물었다.
“당신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크롬 형사님?”
“꽤 광범위합니다, 클라크 씨.”
“이번에야말로 녀석을 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들 자신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크롬 형사님. 관계자 수사대라는 거지요.”
크롬 형사는 다만 정중하게 말했다.
“네, 그렇습니까?”
“당신은 아마추어에 대해 그리 비중을 두시지 않는 모양이군요, 크롬 형사님?”
“당신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힘이 없잖습니까.”
“우리들에게는 우리 나름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도 무언가 도움이 되지요.”
“네, 그렇습니까?”
“당신들 쪽 일도 그리 쉽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크롬 형사님. 사실 ABC한테 또 당한 꼴이 아닙니까.”
크롬 형사는 자기 방법이 실패한 것 같을 때는 자극을 받아 연설조가 되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우리들의 조처에 대해 사람들의 그리 비평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바보 녀석이 이번에는 충분한 경고 기간을 주었지요. 11일은 다음 주 수요일입니다. 신문으로 널리 알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던캐스터에 완전히 경고가 되겠지요. D로 시작되는 이름의 사람은 모조리 조심할 겁니다. 그것은 꽤 효과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대규모로 경관을 배치할 작정입니다. 이미 온 영국 경찰서장들의 동의를 얻어 준비가 됐습니다. 온 던캐스터가, 경찰도 시민도 한몸이 되어 이 한 사나이를 잡을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독한 불운만 따르지 않는다면 놈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클라크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경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군요, 크롬 형사님.”
크롬 형사는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무슨 듯이지요, 클라크 씨?”
“다음 주 수요일에 던캐스터에서 세인트 레저 경마가 있는 것을 모르시는군요?”
크롬 형사의 턱이 처졌다. 이번에야말로 그의 입버릇인 <네, 그렇습니까?>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지, 사태가 매우 복잡해집니다.”
“ABC는 바보가 아닙니다, 미치광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상황을 생각하며 잠시 침묵해 있었다. 경마장의 군중, 열광한 영국의 스포츠팬들, 끝없는 복잡함이었다.
포아로가 중얼거렸다.
“좋은 착안이야. 역시 잘 생각하고 있군, 녀석은.”
클라크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살인이 경마장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아마도 경마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한순간 그 스포츠 팬의 본능이 머리 속에서 순간적인 쾌락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크롬 형사는 일어나 편지를 집었다.
“세인트 레저라니 복잡하게 됐군요. 운이 나브구먼.”
그는 돌아갔다. 복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소러 그레이가 들어왔다. 그녀는 염려스러운 듯 말했다.
“또 새로운 편지가 왔다고 크롬 형사님이 말씀하셨는데, 이번엔 어디지요?”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소러 그레이는 검은 외투에 스커트를 입고 털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금빛 머리 위에는 조그만 검은 모자가 얹혀 있었다.
그녀가 말을 건네고 있는 사람을 프랭클린 클라크였다. 그녀는 곧장 그에게로 가서 그 팔에 손을 얹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던캐스터! 그리고 세인트 레저가 있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물론 모두 현장으로 달려갈 생각이었지만, 경마가 있다는 것은 분명 미리 가상해서 만들어 둔 계획을 복잡하게 있다.
나는 어쩐지 기운이 빠져버렸다. 아무리 사건에 대해 관심이 크다 할지라도 이 여섯 사람의 조그만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날카로운 눈을 한 준민한 수많은 경관들이 여러 곳을 지키고 있다. 거기에 여섯 쌍의 눈이 더해졌다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가?
마치 내 생각에 대답하듯 포아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학교 선생같이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힘을 분산시키면 안 됩니다. 우리들의 생각에 방법과 순서를 정리해 가며 이 사건에 다가가야 합니다.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진실을 추구하며 찾아가야 되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신에게 자기는 범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찾는 사나이의 몽타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소러 그레이가 힘없이 한숨을 지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지요. 만일 우리가 스스로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기만 한다면. 나는 그 지혜는 거기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기만 하다면.“
클라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 사나이가 나이가 들었는지 젊었는지, 흰지 검은지!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그 사나이와 만난 적이 없으며 이야기한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모두 했습니다.”
“모두 한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그레이 양은 카마이클 경이 살해된 날 낯선 사람을 만나 이야기한 일이 전혀 없다고 했지요?”
소러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정말 그렇습니까? 당신이 정면 출입구 층계 있는데서 한 사나이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클라크 부인이 창문으로 보았다고 하던데요.”
“그분이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저를 보았다고요?”
그녀는 정말 놀란 모양이었다. 그 청순한 눈길을 분명 진실되게 여겨졌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틀림없이 클라크 부인이 잘못 아셨을 거예요. 저는 결코……오!”
그 외침은 느닷없이 그녀 입에서 새어 나왔다. 볼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생각났어요! 어쩌면 이럴 수가! 깨끗이 잊고 있었어요. 하지만 중요한 일은 아니에요. 자주 양말 같은 것을 팔러 오는……뭐랄까, 군대에 갔다 온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지요. 아주 귀찮게 굴었어요. 그래서 겨우 쫓아 보냈었지요. 마침 홀을 지나가는데 문가로 와서 벨도 누르지 않고 말을 걸더군요. 하지만 조금도 나븐 일을 할 것 같은 느낌은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잊고 있었던 거예요.”
포아로는 머리를 감싸쥐고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는 무언가 격렬하게 중얼거리고 있었으므로 모두들 말없이 그쪽을 보고 있었다.
“양말……양말……양말……양말……이거야……양말……양말……이것이 열쇠다. 그렇지……석 달 전……그리고 그날……그리고 지금. 그래, 알았어!“
그는 일어나 긴박한 눈길로 나를 보았다.
“기억하고 있나, 헤이스팅즈? 앤도버의 그 가게에서 2층으로 올라가 침실로 들어갔을 때, 의자 위에 새 양말이 한 컬레 있었지. 그리고 이제 이틀 전 내 주의를 불러 일으켰던 게 무엇인지 알게 됐네. 그리고 당신이었지요? 미건 양.”
그는 미건 쪽을 돌아보았다.
“살해된 그날 베티에게 주려고 새 양말을 샀다고 하며 어머니가 울고 계셨다고 말한 것은.”
그는 우리를 둘러보았다.
“아시겠지요! 세 번이나 되풀이된 같은 단서입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미건 양이 말했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과 연관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알았습니다. 애셔 부인의 이웃에 사는 파울러 부인이 한 말입니다. 무슨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 이야기며 양말 이야기를 했었지요. 미건 양, 어떻습니까, 어머니가 양말을 사신 것은 가게가 아니고 집집을 돌아다니는 행상인에게서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요……그래요……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겨우 생각나는군요. 어머니는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가엾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프랭클린이 소리쳤다.
“그러나 어떤 연관이? 그런 남자가 양말을 팔러 왔다는 것이 어떻다는 겁니까?”
“알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일 수 없습니다. 세 가지 사건, 그때마다 한 남자가 와서 그곳을 살펴보고 간 겁니다.”
그는 소러 그레이 쪽으로 빙그르르 돌아앉았다.
“제발! 그 남자의 생김새를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녀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말할 수 없어요……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안경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초라한 외투를 입고 있었지요……”
“더 자세히, 소러 양.”
“등이 구부정했어요……모르겠어요. 저는 거의 보지 않았는걸요. 주의를 끄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포아로는 신중하게 말했다.
“말씀대로입니다, 그레이 양. 이 살인 사건의 모든 비밀은 당신이 그 범인의 생김새를 묘사해 주는 데 걸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나이가 분명 범인이기 때문입니다. 주의를 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신이 살인범의 생김새를 말해 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