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를 끓여먹는 날
“얼마 후에 시리아의 벤-하닷왕이 자기의 전 군대를 이끌고 와서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였다. 그 결과 성 안에 식량이 부족하여 당나귀 머리 하나 값이 은 912그램이었고 비둘기 똥 한 홉에 은 약 34그램이었다.”(열왕기하 6:24-25)
양식이 떨어진 날에는
막내인 나는
쌀가게에 밀가루 한 봉지를 외상으로 받아왔다.
누른 밀가루 봉지를 가슴에 품고
한 칸짜리 사글세 방으로 오는 길은
동네 사람 만나기 싫어, 십리 길이 되는 듯했다.
빨간 다알리아 꽃이 그려진 둥근 알루미늄 밥상 위에
희 뻘건 깍두기 사발 하나
멀건 수제비 네 그릇
가족은 허기진 배를 채웠다.
수제비를 끓여 먹는 날에는
사마리아 성의 여인들의 시퍼런 눈 빛이 떠오르고(왕하 6:29)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누런 밀가루 한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던 소년의 부끄러움이 생각난다.
***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은 시리아군대의 사마리아성의 포위로 인해서 처참한 곤경에 처했다. 양식이 떨어져 서로의 자식을 잡아 연명하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양식이 떨어져 외상 밀가루를 구해 수제비를 먹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래도 먹었고, 살아남았고, 가정은 보존되었다. 가끔씩, 추억의 수제비를 먹을 때면 사마리아성의 비극과 비교가 되어 감사하다.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던 어린 시절을 통해 가난을 알고, 풍요를 누리게 됨을 감사하다.
“주여, 가난에도, 풍요에도 감사함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