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탄다는 건
하희경
“오빠가 어렸을 때 울면서 엄마한테 그랬대. -엄마, 나 지연이란 결혼하기 싫어. 안 할 거야!”
“정말, 왜 그랬대?”
“엄마가 물어보니까, 엄마랑 아빠랑 결혼했으니까 가족은 결혼해야 하는데, 자기는 다른 애랑 결혼할 거라며 엉엉 울어서, 엄마 아빠가 한참 웃었대.”
무심코 듣다가 푹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조용히 듣기만 하던 내가 물었다.
“학생, 미안하지만 그때 오빠가 몇 살이었어요?”
학생 눈이 동그래진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는데 웬 할머니가 끼어드나하는 눈치다. 다행히 기분 나쁘지는 않은지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오빠가 다섯 살 때였어요.”
“그 나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한참 엉뚱한 생각할 때잖아.”
친구들이 옆에서 거든다.
그 말에 또 웃음이 났다. 본의는 아니지만 잠시 엿들었던 그들의 대화도 충분히 엉뚱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여름 땡볕에 지치고, 학생들이 바글거리는 차에 오르며 느꼈던 피곤함이 말끔해진다. 어제는 욕설까지 섞어가며 함부로 말하는 애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싱그러운 십대를 만나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학생들에게 ‘느닷없이 이야기에 끼어들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괜찮다한다. 꽃같이 향기로운 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게 된 걸 감사하며 창밖을 보았다. 비 개인 오후의 햇살도 부러운지 버스를 훔쳐본다.
학생들과 말 섞은 지 오래되었다. 십여 년 전, 테크노벨리에 있는 학교 근처에서 조그맣게 슈퍼를 운영할 때가 마지막이었다. 우연찮게 학교 입구에서 삼 년 조금 넘게 장사를 했다. 가게 앞에 공원처럼 한가한 공간이 있어, 작은 동물들을 키우면서 마치 소꿉놀이하듯 지냈다. 토끼와 화초닭, 강아지, 그리고 다람쥐, 기니피그 등을 아침에 꺼내 놓고 저녁이면 들여놓았다. 학생들과 아파트 아이들까지 일부러 보러 오곤 해서 수다를 많이 했다. 마치 슈퍼가 아닌 작은 동물원을 운영하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내 아이들도 집에서 크고 작은 소리로 나름 흥겨웠는데, 시간은 어느새 총총 달아나고 늙어가는 두 부부만 남았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집안 공기도 까무룩 주저앉는 것 같았다. 북적거리는 장터에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조용한 집이 답답했다.
그때부터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노인만 남아 병원에 가거나, 풀기 없이 시간만 죽이는 무료함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오래된 팬티 고무줄처럼 늘어진 생활에 활력을 찾고 싶었다. 103번 버스를 타고 시민대학이라는 평생교육원에 가기 시작했다. 운동하고, 악기도 만져보고, 요리와 빵 반죽도 해보고, 평생 해보지 못한 것들을 조금씩 맛보았다. 쉼 없이 일만 하던 터라 무엇을 해도 재미있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글쓰기였다. 평생의 취미라는 게 독서뿐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여타의 다른 활동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까다롭게 굴었다. 기본적인 지식은커녕 가방끈마저 짧은 내가 가까이하기엔 제법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말주변이 없어 제대로 표현하지 못 했던 감정들을 종이 위에 펼쳐 놓고 낱낱이 햇살을 쬐어주는 일이 마음에 들었다. 지난날 두서없이 읽은 글자들이 발효되지 못한 채 숨죽어 있었다면, 글쓰기 할 때 꺼내 쓰는 단어들은 통통 튀면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서툴고 민망한 글이 많지만 그래도 쓰는 순간이 좋다.
나에게 있어 버스를 탄다는 건 빛을 향해 가는 것이다. 햇살 담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 벗들이 모여 있는, 서로의 글을 나누고 응원하면서 좀 더 잘 쓰기 위해 노력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니까. 그뿐인가, 버스는 때때로 글쓰기 재료를 주기도 한다. 어제는 큰소리로 통화하면서 눈살 찌푸리게 하는 할머니가 이야기 거리가 될까 싶더니, 오늘은 지구에 말간 웃음을 퍼뜨리는 학생들이 글 씨앗을 건넨다. 데굴데굴 구르는 글 씨앗을 싣고 버스가 달린다. 햇살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