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284]常樂我淨[상락아정]
영원하며, 즐거우며, 능동적으로 자재(自在)하며, 번뇌의 더러움이 없이 청정한 덕
상락아정 [常樂我淨]
(기본의미) 열반(涅槃)의 네 가지 덕(德).
영원하며, 즐거우며, 능동적으로 자재(自在)하며,
번뇌의 더러움이 없이 청정한 덕을 이른다.
[불교] 진리와 반대로 생각하는 네 가지의 잘못된 사고방식.
세상의 모든 것을 상(常), 낙(樂), 아(我), 정(淨)이라 생각하고,
반대로 열반의 경지를
무상(無常), 무락(無樂), 무아(無我), 무정(無淨)으로 생각하는 일.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무상(無常)하다.사람도 또한 그와 같다 태어나면서 생노병사(生老病死)에 시달리고,갖고 싶은 것은 가질 수 없고(願不得苦),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고(愛別離苦),원수 같고, 보기도 싫고만나기도 싫은 사람과 함께 해야 하니 고통이다(怨憎會苦),그러므로 태어난 그 자체가 고통이라 아니 할 수 없다(五陰盛苦),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적어도 이 8가지 고통(八苦)을 안고살다 가는 것이기에 삶이란 낙(樂)이 아니고 무락(無樂)이다.<나>라는 것도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물질과 욕망에 얽매여 살고 있고,나라고 여기는 존재도 사대가 화합한 오온인 것을나로 알고 있을 뿐 잠시 이 세상에 머물다 가는무상(無常)한 존재요 허망한 존재일 뿐이다.무아(無我)인데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자유로운 <나>가 있단 말인가?그뿐만 아니라 세상살이란 하나 같이 고통과번뇌가 끊이지 않는데, 어디에 깨끗함이 있단 말인가(無淨)?
그렇지만 사람들은 모든 것이 변함이 없이한결같기를 바라고(常), 고통이 없는 삶을 누리기를 바라며(樂),<나>는 자유롭고 실체를 지니고 이를 인정받는 존재이길 바라고(我),번뇌가 없는 안온(安穩) 세상에 살고 싶어 한다(淨).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중생은무상(無常)한 것을 영원하다고 여기고(常)고통(苦)을 즐거움으로 여기고(樂)오온의 일시적인 집합체(無我)를 나라고 여기고(我)더러운 것(無淨)을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淨).
이렇게 중생들이 무상(無常), 무락(無樂), 무아(無我),무정(無淨)인 것을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여기는 뒤바뀐 견해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을경에서는 범부의 4가지 망견(妄見)이라 하고, 사전도(四顚倒)라 한다.이는 곧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조작(造作)되는 것이기에유위(有爲)의 사전도(四顚倒)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참뜻은 어디에 있는가?<기신론>에 의하면 “일체의 무상(無常)한 것,고통이 많은 것, 자유 없는 것,부정(不淨)한 그것에서 해탈하는 데 있다”라고 한다.그 해탈의 경계를 설명하는 것이<열반경>에서 말하는 ”열반(涅槃)의 사덕(四德)“ 이다.<열반경>에 의하면상(常)이란 생멸변천(生滅變遷)함이 없는 덕(德)이고,락(樂)이란 生死의 고통을 여의고 무위안락(無爲安樂)한 德이고,아(我)란 망집(妄執)의 아(我)를 여의고八大自在가 있는 진아(眞我)를 말하며정(淨)은 번뇌의 더러움을 여의어담연청정(湛然淸淨)한 德을 말한다고 했다.유위(有爲)의 사전도와 배치됨으로이를 무위(無爲)의 사전도라 한다.그래서 유위의 사전도를 끊은 자를 二乘이라 하고,유위와 무위를 끊을 자를 보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경을 보면「여래는 큰 방편이 있어서 무상을 항상 하다 말하고항상함을 무상하다고 말하며,즐거움을 괴롭다고 말하고 괴로움을 즐겁다고 말하며,부정함을 깨끗하다고 말하고 깨끗함을 부정하다 말한다.또 나[我]를 내가 없다[無我] 말하고 내가 없는데 나라 말하며,중생 아닌데 중생이라 말하고 참 중생에겐 중생이 아니라 말한다.또 물질이 아닌데 물질이라 말하고 물질을 물질이 아니라 말하며,진실이 아닌데 진실하다고 말하고진실한데 진실이 아니라 말한다.」라고 했다.(열반경/범행품) 부처님은 왜 이런 상반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가?무명(無明)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탐진치(貪瞋痴)의 뇌옥에서고통과 번뇌를 받는 중생들을 그들의 근기(根機)에 따라인도하려는 여래의 깊고 비밀스러운 방편이라고 한다.<법화경> 「비유품」에 이르듯불타는 집에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어린아이들이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유인하여 집 밖으로 끌어내듯열반(涅槃)의 사덕(四德)을 제시함으로써해탈로 유도하려는 것이다.그것이 부처님이 의도하신 비밀스러운 방편인 것이다.(구마함모니불)
<열반경>에서는 말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을무위(無爲)의 사덕(四德)이라고 하고,또 열반(涅槃)의 사덕(四德)이라고 한다.그 열반의 의미는 살펴보자.열반이란 멸(滅), 멸도(滅度), 적멸(寂滅), 불생(不生),무위(無爲), 안락(安樂), 해탈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멸(滅)은 생사의 인과(因果)를 멸한다는 뜻이며,멸도(滅度)는 생사의 인과를 멸하고생사의 폭류(瀑流)를 건너는 것을 의미한다.적멸(寂滅)의 적(寂)은 유무(有無)로 공적안온(空寂安穩)의 뜻이며,멸(滅)은 생사의 대환(大患)을 멸했다는 의미다.불생(不生)은 생사의 고과(苦果)가 재생(再生)하지 못하는 뜻이며,무위(無爲)는 혹업(惑業)과 인연의 조작이 없는 것을 말한다.안락(安樂)은 안온(安穩) 쾌락(快樂)한 것이며,해탈은 갖가지 업의 과(果)로 벗어남을 의미한다.
열반이란 위와 같은 많은 설명이 있지만궁극적으로 보면 <아(我)>의 의미를 깨우치는 데 있다.<대장법수 12>에 이르기를“我란 자재무애(自在無碍)한 것을 말한다.<아(我)>는 망아(妄我)와 진아(眞我)가 있는데외도와 범부는 오온의 몸(五蘊身)에서 억지로주재(主宰)를 세워 我라고 고집하는데 이것이 망아(妄我)이며,부처님이 갖춘 8대 자재를 我라 칭하는 것이 곧 진아(眞我)다.그러므로 我德이라고 한다.”라고 했다.범부나 이승들이 진아(眞我)를 알지 못하고망아(妄我)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상락아정(常樂我淨)을 전도(顚倒)하여무상(無常), 무락(無樂), 무아(無我), 무정(無淨)이란 소견에서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왜 범부와 이승은 이를 알지 못하는가?<기신론>은 이렇게 말한다.「<나>라는 것은 여래장이다.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을 가진 것이 곧 <나>이다.이 <나>란 것이 본래부터 한량없는 번뇌에 덮여 있어중생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중생이 이를 안다면허망하고 무상한 존재라 여기는 <나>로부터벗어나게 되는 것이다.진아(眞我)는 부동(不動)하여 생멸의 변천이 없기 때문이다.」
왜 <열반경>에서는 무상(無常)을 상(常)이라고 했을까?이는 범부나 이승들이”공(空)”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범부나 이승들이 말하는 ”무상(無常)“이란생멸(生滅) 내지 생사(生死)를 의미하는데일체 만법은 공하여 생멸도 없고, 생사도 없기 때문이다.생사가 있고, 변천(變遷)하는 것은 유위법의 세계다.무위법에서는 지음 바가 없기 때문에 일체가 공적(空寂)하여생멸하고 변천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는 이를「물질은 무상하되 또한 잃어버리지 않으며,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또한 무상하되또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법이 무상하면곧 그것은 움직이는 모양[動相]이며,그것은 곧 공한 모양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움직이는 모양”이란 인연으로 생하고변천하다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인연 따라 생하고 멸하는 법(法)은 무상한 것으로 보이지만무상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왜냐하면 공을 깨치면 일체의 법성(法性)은부동(不動)하고 공적(空寂)함을 알기 때문이다.비유하자면 빈 골짜기에 인연을 따라 메아리가 생기고,인연이 사라지면 메아리가 사라지는 것을 무상하다,허망하다고 느끼는 것은전도(顚倒)된 망견(妄見)이라는 것이다.
열반의 4덕에서 말하는 <락(樂)>은 어떤 의미인가.열반은 생사의 고통을 여의고 일체 인연의 조작에서 벗어나서안온쾌락하기 때문에 락(樂)이란 한 것이다.그러므로 즐거운데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뀜이라 하니,즐겁다는 것은 여래이며,괴롭다는 것은 여래가 무상하다는 것이다.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여래가무상하고 변이(變異)한다는 것이다.만일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면 이는 즐거운데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여래는 항상 머무니 이것이 즐거움이다.열반은 생사가 없고, 따라서 고통과 번뇌에서벗어난 경지임으로 중생이 느끼는 팔고(八苦)가 없기 때문이다.번뇌는 마음의 동요에서 일어나는 것이다.마음이 고요하다는 것은육진(六塵)의 경계에 꺼들임이 없기 때문이다.
열반의 4덕에서 무아(無我)를 왜 아(我)라고 했는가?세상 사람도 내가 있다고 말하고부처님 법에서도 내가 있다고 말하지만,세상 사람은 비록 나는 있다고 말하나불성(佛性)은 없다는 것이다.이것은 내가 없는 데서 <나>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므로뒤바뀜이라 한다. 부처님 법에서 내가 있다는 것은곧 불성(佛性)인데, 세간 사람들은 불법에는 내가 없다고 말하니,이것은 <나>라는 데서 내가 없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열반의 사덕에 말하는 정(淨)은 어떤 의미인가?열반은 일체 번뇌와 번뇌의 고과(苦果)를 벗어나고생사가 없으므로 정(淨)이란 한 것이다.정(淨)이란 깨끗하다는 말이다.오염됨이 없다는 의미다. 오염이란 곧 번뇌를 의미한다.여래는 “나의 몸에는 한 가지도 부정한 것이 없으니부정한 것이 없으므로 반드시 청정한 곳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했다.번뇌란 심신(心身)을 뇌란(惱亂: 괴롭고 어지러움)하고,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괴롭히는 것이다.번뇌가 사라진 열반은청정(淸靜)무구(無垢)하므로 깨끗하다고 한 것이다.경에서 유위(有爲)의 사전도(四顚倒)를 말하고열반을 빌어 무위(無爲)의 사덕(四德)을 말한 것은여래가 모든 중생을 가엾게 여겨 이들을 제도하여해탈시키고자 함이다.이와 같은 뜻을 깊이 이해할 수만 있다면모든 법이 마치 허깨비와 같은 것[如幻]임을 깨닫게 되고,그것은 다만 생각[憶想]과 말[語言]이만들어낸 법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그러므로 이와 같은 생각이나 말이 만들어낸 모든 법은결국 모두가 공(空)한 것이다.상락아정의 참 의미는 법성을 증득하고,공(空)을 증득함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증득(證得)은 “해탈”을 의미하며또한 ‘생멸이 없는 법인(法忍)’을 말한다.이는 마음의 법[心法]이며,말로 설명할 수 있는 법이 아니다.또 ‘얻는 이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왜냐하면 법에는 성품도 없고취득(取得)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열반경>에서도「마치 세간의 이름 때문에 아는 것이 있고얻는 것이 있는 것처럼, 6도(道)의 다른 것도또한 세간의 이름 때문에 있을 뿐,첫째가는 진실한 이치 때문이 아니다.왜냐하면 첫째가는 진실한 이치 가운데에는업(業)도 없고보(報)도 없으며, 나는 것[生]도 없고없어지는 것[滅]도 없으며, 깨끗한 것[淨]도 없고더러운 것[垢]도 없기 때문이다.」<열반경/무생품>라고 한 것이다.
업(業)도 없고, 보(報)도 없고, 생함도 없고,멸함도 없고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다면열반의 4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여기서 말하는 “첫째가는 진실한 이치”란 무엇을어떻게 수행하라는 것인가.「정혜(定慧)의 근본을 분별함을 사유하며,단(斷)ㆍ상(常)의 두 변(邊)을 버리지 않음을 사유하고,인연에 의해 제법이 생기하는 것을 사유하며,중생과 아(我)와 인(人)과 수명(壽命)은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사유하고, 삼세 중 과거ㆍ미래에 걸쳐 지속하는 법은존재하지 않는다고 사유하며,발하고 행함[發行]이 없는데도인과를 끊지 않음을 사유하는 것이고,법은 공한데도 선을 심기를게을리하지 않음을 사유하는 것이며,무상(無相)인데도중생 제도를 그만두지 않음을 사유하는 것이고,무원(無願)인데도보리를 구하는 일을 여의지 않음을 사유하는 것이며,무작(無作)인데도과보를 받는 몸[受身]을 드러내어버리지 않음을 사유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발보리심경(發菩提心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