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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미술 [原始美術, primitive art]
나이브 아트 [naive art] - 앙리 루소, 앙드레 보샹, 카미유 봉부아,
큐비즘[cubism] - 피카소
포비즘[fauvism] - 알프레드 앙리 모이어, 마르크 샤갈
서양 미술사를 서술한 대부분의 저서의 첫장은 원시미술 부터입니다.
그리고 그내용의 대부분은 라스코의 동굴 벽화, 알타미라 동굴벽화등 선사시대인들의 벽화 또는 암각화에 대한 설명이고
물론 뮐렌도르프의 비너스상도 항상 빠지지 않는 중요한 유물이죠. 어디서나 볼수 있는 원시미술에 대한 설명을 다른시각으로
해볼수는 없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고민중에 현대회화에서 원시미술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들추어가며 글을 시작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Henri Rousseau (le Douanier) (French, 1844–1910)
The Repast of the Lion 1907 Oil on canvas
44 3/4 x 63 in. (113.7 x 16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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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성실 하지만 손재주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함석공이였는데 집안사정 때문이었는지 20살때 자원하여 군에 입대 합니다.
육군으로 입대한 그는 군악대로 배치를 받게됩니다. 거기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로 복무하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의가사 제대한후 파리에 거주지를 정하게 됩니다. 파리 세관의 세관원이란
직업을 갖게된 그는 어려운 환경속에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선량하고 과묵한데다가
성실한 그에겐 르 두아니에(Le Douanier:세관원)란 애칭이 생겼고-24년간이나 근속하여 2등
서기로 퇴직하였죠-1885년 살롱 드 샹젤리제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여러
살롱전에 자신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는 67세의 나이로 생을 다하게 되는데 그의 작품이 어느정도 평가를 받게 되는것은 그가 죽기
5년전 60세가 넘어서부터 입니다. 평가라기 보다는 주목이었다는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죠.
1905년 피카소와 아폴리네르등이 그의 작품을 주목하면서 부터이니까요, 사실 그에대한 실질적인
평가는 대부분의 불우한 대가가 거쳤던 것처럼 그의 사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작품은 독특한 그의 화법과 내용덕분에 생존시에는 찬사보다는 조롱과 조소의 대상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취미로 그리는 일요화가란 말을 들으며 작업을 했을까요.
당시에는 전혀 볼수 없었던 어둡고 칙칙한 색감과 밋밋한 터치.
인상파의 거센 풍랑속에서 그런 색과 붓놀림을 사용할수 있었다는건
용기가 아니었으면 무지 덕분이었을겁니다.
여기 저기 곳곳에 숨어있는 새들과 사자와 악어들을 성인용 동화책 이야기처럼
풀어 나가는 그의그림은 당시에는 놀랍다기 보다는 황당한 이야기였겠죠.
재주는 없지만 성실한 아이가 그려내는 크레파스화처럼 그의 그림은 성실한 밀도로
가득차있지만 별로 기교스럽지도 우아하지도 않습니다. 이작가는 앙리 루소였습니다.
후대 평론가들은 그의 이러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선입관 없는 미술의 양식문제에 구애되지 않는
자연과 현실의 시각적인 대상에 대하여 경건할 만큼 소박한 태도로써 건강한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그림을
나이브 아트 [naive art] 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일본쪽에서 들어온 말인지는 확인 되지 않지만 소박파(素朴派)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유파입니다.
루소외에 앙드레 보샹, 카미유 봉부아, 레온 그레프등 많지는 않지만 어느한정된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이러한 나이브 아티스트들은 출현하고 있습니다.
Andre Bauchant ,1873~1958 (앙드레 보샹)
지나치다 싶게 꼼꼼히 모든것을 그리려다 보니 오히려 원근법은 무너지고 전체 화면은 평면화되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앉아 있는 두사람의 표현이 오히려 정감이 가게 만듭니다.
커다란 소나무와 해안 절벽을 따라 삼각구도를 만들어 내지만 소나무의 윗부분이 지나치게 잘려 나간듯한 느낌도 듭니다.
나이브 작가들의 그림은 대부분 성실한 밀도라고 할수있습니다. 앙드레 보샹의 이 그림도 성실한 붓터치와 기교적이지 않은
색채의 사용으로 현란한 색채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눈에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건강하고 순수한 표현은 화가들에게 큰 무기가 될수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Camille Bombois, 1883~1970 (카미유 봉부아)
이집트의 벽화양식에서 볼수 있는 정면성의 원칙을 재 시도한듯이 보이는 카미유 봉비아의 정물화는
화병을 비롯해 그려진 대부분의 꽃들과 잎사귀들이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모습이 보이는 시점에서 하나 하나를 성실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생략이나 과장 없이 모든 대상을 그려내려는건 고대 이집트 회화와 아이들의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정중앙의 사물배치를 의도적이라 할수 있겠지만 순박한 그의 그림은 쉽게 기억의 잔상에서
지워지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나이브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보면 어딘가 생소하고 어색하지만 프로패셔널한 작가들의 작품에선 좀처럼 느낄수 없는
생명력을 볼수 있습니다. 선행 학습이 없는 순수한 감성과 거친듯 담백한 표현법에서 우리는 원시인들의 동굴벽화에서
느낄수 있는 감동과 비슷한 것들을 느낄수 있습니다.
마티스의 작품같이 보이는 이작품은 피카소가 만든 것입니다.
1957년 작품인데 우리가 잘알고있는 동굴벽화의 그림을 그대로 차용하고있습니다.
1905년부터 피카소는 마티스와 활발한 교류를 하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마티스의 흔적을 찿는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피카소는 1900년대 초반부터 아프리카 미술과 원시미술에 깊은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많이 제작합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아비뇽의 처녀들은 그가 아프리카 미술과 원시미술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알수있게 하죠.
Faun and Starry Night, 1955
Pablo Picasso (Spanish, 1881–1973)
Oil on canvas
Alfred Henry Maurer (1868 ~1932)
야수파 작가인 알프레드 앙리 모이어의 작품입니다.
나이브 하면서도 원색적이고 다듬지 않은 그의 작품은 야수파다운 힘찬 생명력이 엄쳐 납니다.
인류의 미술 활동은 고대이집트 시기와 그리스, 로마시대의 미술을 거치면서 창작의 기틀이 마련되어 왔다면
중세를 넘어 르네상스시기에 화려한 제작기법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더이상 섬세할수 없고 더이상
완벽하기 어려운 절대미의 극치를 이미 인류는 15세기에 이루었고 그이후 신고전주의와 바로크, 로코코, 사실주의등의
화풍을 통해 아름다움의 표현과 이상화 작업을 반복하게 됩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이전의 미의가치와는 사뭇 동떨어진 작품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러한 그자디 아름답지 못한 그림들에서 느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은 무엇 때문일까요?
엄청난 살육이 자행되었던 1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점점 거대해 지는 산업사회의 압박과 스트레스에 지치고
아파하던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의 원천을 공포만 가득한 현실세계에서 떠나 좀더 근원적이고 유토피아적인것을
찿아 떠나려 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아프리카의 토속미술과 원시미술에서 그 자연적인 힘과 새로운 양식을 찿았던 거죠.
Lions hunting Bison, Chauvet Cave.
A pride of lions hunt bison, one of the rarest scenes ever found in Paleolithic art. Chauvet Cave
물소를 사냥하는 사자(쇼벳 동굴)
몇만년전 사람들이 그린것 이라고 하기엔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거칠고 어두운 동굴의 바위 또는 흙벽위에 그려진 자연스럽고 거침 없는 드로잉과 세부적인 묘사는
숯과 돌과 흙으로 그려지고 채색 된것입니다.
대부분의 동굴벽화는 한사람이 그린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약간의 기술차이들이 보이는 그림들이
섞여 있는데 때 이미 기술의 전수가 이루어 진듯이 보입니다. 원숙한 그림옆에는 약간 뻣뻣하고 미숙한 그림이
모사의 흔적을 남기기도 하며 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그림들이 늘어나고 내용이 풍부해졌을 겁니다.
Horse heads, Chauvet Cave.
Fourteen different animal species are depicted in the Chauvet Cave. Here, three beautiful horses' heads face one another.
Chauvet Cave
말의 머리들(쇼벳 동굴)
Fishtail projectile points excavated from Fell's Cave. 펠스 동굴(남미) 기원정 10,000년경
원시미술은 그 당시인들에게 예술활동이 아닌 그저 생활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았던 그들이 엄청나게 많은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 합니다.
현대미술과 원시미술과의 연관관계를 보더라도 많은 작가들이 복잡한 매커니즘과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러 시도로 - 일례로 고갱을 들수 있겠죠 - 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충실하고자 원시미술에 한발을 담고 있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수 있습니다. 이러한 본능 충실 욕구는 현대회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지금도 현대회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커다란 원동력 가운데 중요한 하나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표현활동은 존재의 확인활동
사진은 아르헨티나 지역에서 발견된 노출된 암석에 그려진 핸드 프린팅입니다.(약 3,000년~10,000년전에 제작)
이러한 핸드 프린팅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 된것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선사시대의 유적이 있던곳에는
같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다만 프린팅된 손의 숫자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는 정도 입니다.
자신의 손바닥을 벽에대고 자신의 손을 그려넣었습니다. 또하나의 나를 벽에 그려넣는것.
불안한 현재 내자신의 존재감을 벽에그려넣어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고 무사함을 비는 일종의 주술행위.
이렇게 인류의 조상인 원시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러한 프린팅은 곧 자신의 서명이자
집단에 속해 있는 소속감의 확인이자 공인임을 인증 받는 행위였을 겁니다.
비록 그들은 그러한 행위가 예술이라고 결코 생각 않했겠지만
전편에 말씀드린 아리스토렐레스의
"필요에 의한 기술"과
"기분전환과 쾌락에 위한기술"
두가지 모두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예술의 조건은 어느정도 채워져 있다고도 할수 있을 겁니다.
Lascaux 동굴 벽화(프랑스)
프랑스 도르도뉴현(縣)의 몽티냐크 마을에 있으며. 1940년 이 마을의 소년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동굴의 암벽에 묘사된 그림들은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큰 동물은 550cm, 작은 동물은 100cm 내외의
여러 동물상이 100점 이상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려진 동물에는 말이 가장 많고 다음이 소, 그리고 사슴과 돼지,
이리, 곰, 새상상의 동물과 인물상도 묘사되어 있다. 그중 하나인 황소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18피이트나 되고
벽을 가로질러 있는 말은 절벽 아래로 넘어지고 흩어져있는 들소는 인간의 사냥에 마주해 있습니다.
망간이나 목탄으로 동물의 윤곽을 그리고 황토색과 철이 산화된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간단한 도구를 사용해 채색한 흔적도 보입니다.
동물 종류와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 결과 후기 오리나시안 문화기(BC 15000~13000경)작품으로 추정됩니다.
가장 많이 보이는것은 말그림입니다. 정확한 뎃생과 채색 그리고 넘쳐나는 생명력을 볼수있습니다.
(너무 유명한 그림이라 본문에선 제외합니다.)
일만 오천년전의 작품을 보고 피카소가 왜 "인류의 미술은 하나도 발전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는지
한번 생각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그림을 정밀하게 관찰하면 그림에 돌이나 창등으로 찔린 흔적들이 많이 발견 됩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린후 자신들의 사냥도구로 그림을 실제 사냥감으로 가상하여 훈련을 하거나(사격 표지판처럼)
그러한 행동을 함으로서 실제 사냥에서의 공포심을 없애는 마인드 콘트롤을 했었던듯 합니다.
그러한 행위는 또한 다가올 사냥을 무사히 할수있게 해달라는 자신의 기원이 담겨져 있었을 겁니다.
소그림뒤에 사슴(?)같은 작은 동물들을 보시죠, 이들이 의도적인 원근법을 사용 하였다고 말한다면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최소한 그들은 보이는것을 충실하게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이들 이후의 이집트나 그리스미술에서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표현법(과학적 원근법이 아닌 시각적 표현에서의 자유)이
없어집니다. 중세중반 이후에나 본격적인 원근법이 사용되기 시작하니 이들의 보이는데로 그리는 성실하고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제작 방식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역동적인 방식인지 알수있습니다.
또한 이는 현대 회화에서 많은 작가들이 차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뿔인지 안테나인지 머리에 먼가가 길게 솟아잇는 이동물은 수많은 동물학자나
고고학자들이 연구를 해왔지만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동물입니다.
실제 어떤 그림은 소한마리가 5미터 50센티정도나 될정도로 실제사이즈의 크기로 그려져 있습니다.
말그림이나 바로 이그림에도 나타나지만 동물들의 배가 임신한것처럼
불룩한 이유는 동물들이 많은 새끼를 낳아서 더욱 풍성한 사냥감을 만들어 달라는
그들의 또다른 기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Chauvet Cave 쇼벳 동굴벽화(프랑스)
프랑스 남동부에 있는 쇼벳 동굴 벽화들은
고고학자들이 약 17,000년전에서 31,000년전의 것으로 보고있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작품들로
추정 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이 여러마리가 겹쳐져서 그려진 모습들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번에 여러마리를 많이 사냥할수있도록 비는 일종의 주술적행위이며
그들 나름대로의 부적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고스톱 전문용어로 싹슬이 또는 일타(1) 오피(5)를 위한 사전작업이라고나 할까요?ㅋㅋ,,죄송합니다.
Altamira 동굴벽화(스페인)
길이 270 m. 이곳에서 발견된 동굴벽화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벽화는 1879년 우연히 5세의 소녀에 의하여 발견되었는데, 당시에는 그 진위(眞僞)를 놓고 학회나 언론에서
떠들썩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북에스파냐나 남프랑스에 있는 구석기 동굴에서도 똑같은 벽화나 부조 등이
발견됨으로써 인류 최고(最古)의 경탄할 만한 미술이라는 것이 실증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구석기 후기의 마들렌기(약 1만∼2만 년 이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벽화의 대부분은 천장에 그려져 있고. 매머드 ·들소 ·사슴 등이 흑 ·적 ·갈색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생생한 묘사, 아름다운 색채와 입체감은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이 벽화를 통하여 당시의 예술활동뿐만 아니라
수렵의 방법이나 무기 ·신앙 등을 알 수 있으며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Paradise – The green Donkey Marc Chagall
샤갈의 그림에는 당나귀, 수닭, 비둘기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 합니다.
그림에 따라서 그 역할(상징)이 조금씩 변하기도 하지만 당나귀는 샤갈 자신 또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소재입니다.
동굴벽화에 그려진 수없이 많은 짐승들은 관찰과 표현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벽에 그려진 사나운 표범과 사자는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계대상이자 원시인이 동경하고 동일시 하고픈 수렵의 왕이었습니다.
새끼를 밴 두툼한 복부의 들소는 원시인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꼭 획득해야할 욕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동굴벽화에는 원시인들의 희망과 욕망과 공포와 기원이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샤갈의 그림에도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기도와 욕망과 꿈이 버무러져 있습니다.
동굴벽에 그려진 원시인들의 상징성은 샤갈의 그림에 담겨 있는 상징성과 근원은 같은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담았다는점에서 몇만년의 시차를 느끼지 못하는건
이상한 일이 아닐겁니다.
Acacus 아카서스 동굴벽화(아프리카)
약 12,000년전 제작된 벽화입니다. 그당시에도 기린이 살았었나 봅니다.
기린 엉덩이쪽으로 붉은색 창이 꽂힌것이 보이네요. 역시 풍성하고 무사한 사냥을 기원하는 주술적 그림입니다.
아프리카쪽 벽화는 라스코나 알타미라등 유럽쪽 벽화와 비교해볼때 표현이 단순하고 기교적인면에서
약간 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호주지역에서 발견된 거북이를 그린 암각화입니다. 일명 엑스레이 페인팅이라고도 합니다.
대상의 내부또는 자세한 윤곽을 그려냄으로서 그 사물의 영혼과 대상을 그린이가 소유한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암각화 입니다.
약 3천년전 제작된것으로 추정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동굴벽화입니다.
사람의 크기가 차이가 나는것을 원근법으로 해석하면 않됩니다.
권력이 많거나 힘이센사람은 크게 그리고 힘없는 사람일수록 사이즈가 작게 그린겁니다.
자세히 보시면 몸에 선이하나씩 더 그려진것은 남자,,추가된 선이 없는것은 여자입니다,ㅋㅋ
도대체 15,000년전, 비교적 최근이라고도 할수있는 몇천년전 사람들이 왜 그림들을 그렸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을 예술가라고 칭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그림을 그린이들은 주술사거나 아니면 부족장정도의 계급인 사람이었을 겁니다.
위에서도 누차 이야기 했지만 그들은 그림을 그리며 풍족한 사냥감과 부족의 안전을 빌었을 겁니다.
아리스토렐레스의 이야기처럼
"필요에 의한 기술"과 "기분전환과 쾌락에 위한기술" 중 전자의 개념이 좀더 강하다고 할수 있지만
그들은 분명 인류 최초의 artist였던건 부정할수 없습니다.
Venus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美)와 풍요(豊饒)의 여신.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농경생산과 관련된 풍요다산(多産)열락, 음탕의여신을 지칭 합니다.
윗쪽 사진은 잘알려진 뷜렌도르프의 비너스입니다.
BC 24,000∼22,000년제작,1883년에 발견 크기 : 석재, 11.1cm
아래 사진은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비너스 상입니다.
상, 하 사진 모두 그리스신화적 개념의 비너스는 절대 아닙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많은 노동력만이 부족의 안전과 풍족한 먹거리를
보장할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따라서 이시기에는 건강하고 많은 아이를 출산할수있는 여인이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여인상이었습니다. 수유를 위한 거대한 유방과 순산을 위한 튼튼한 골반과 자궁을 가진 여신을 숭배하며
부족의 영화를 기원했을듯 합니다.
이후 그리스시대에는 신(神)도 인간화 됩니다. 그리스신화에선 신들끼리 질투하고 전쟁하고 사랑도 합니다.
인간과 같은 신, 그들은 신에게서 인간의 이상향을 추구합니다. 더이상 여자에게서 다산만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스톤헨지-공중에 걸쳐 있는 돌
‘공중에 걸쳐 있는 돌’이라는 의미의 스톤헨지는 세계 곳곳의 환상열석(環狀列石) 중에 가장 유명합니다.. 크게 보면 바깥쪽은 동심원, 안쪽은 말발굽 형태의 석주들이 이중으로 늘어서 있는 형태며, 바깥쪽 석주와 석주 사이에는 문미석이라고 부르는 가로돌을 올렸습니다. 외부 도랑의 지름이 약 100m이며, 중심에는 제단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돌이 놓여 있습다. 원의 북동쪽 방향에는 힐스톤(Heelstone)이라는 돌이 놓여 있는데, 하지(夏至)날 태양이 힐스톤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떠오른다고 합니다. 이는 건축자들이 상당한 천문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스톤헨지가 천체관측용이라는 추측을 낳게 합니다.
기원전 3500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고인돌이라는 유적이있죠
스톤헨지와는 돌이라는 재료상의 공통점은 있으나 고인돌은 주로 묘지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스톤헤지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고 할수 있습니다.
북방식(탁자식)고인돌은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이며,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은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입니다.
우리나라 중부 이북 지방에는 북방식 고인돌이, 중부 이남 지방에서는 남방식 고인돌이 주로 분포합니다.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은 개석식이라 합니다.
(용량관계상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점 죄송하게 생각 합니다)
원시 미술을 정리 하며 계속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과연 이들의 미술 활동을 예술의 범주에 넣을수 있는냐 하는것입니다, 글중에 몇번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인용해
'예술(Art)'라는 명칭을 붙이려 애쓰기는 하였지만 글을 써내려 가면 갈수록
'이건 억지 스러운데?' 라는 생각에 혼란 스러웠습니다.
이런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일부러 첫장에 예술에 대한 정의를 올려 놓았었는데도 말입니다.
분명 그들(원시인)은 예술행위를 하지 않았던건 사실 입니다.
그들의 행위로 나타난 부산물들(동굴벽화, 토기등)은 예술품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삶의 결과물이자 부적이었이었으며 꿈(욕망)의 표현이자 기원이었습니다.
고고학적 입장에서 보면 소중한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적이자 보물이라 할수있지만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며 감상하기에는 뭔가 중요한 한가지가 빠진듯한 이 느낌은 미숙한 제가 앞으로 많은 시간을
더 고민해야할 부분인것 같고 이 고민은 다음장인 이집트 미술에서도 한동안 이어질듯 합니다.
첫댓글 잘~~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