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맥줏집 사장님 : 서정일의 출구
전새벽
18세기 시인 윌리엄 쿠퍼가 이렇게 말했다. “신은 기묘한 방식으로 일하신다.” 그런데 인생을 조금만 살다보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신은 기묘할 뿐 아니라 매우 과격한 방식으로 우리네 인생을 가이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우악스런 손길로 풍선 짓누르듯 인간을 쥐어짜는 신의 모습을 만난다. 이래도 배길 수 있겠어? 뱉어내! 네가 가진 것을 펼쳐 보이란 말이야!
라는 식으로.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도 좋고, 팔자라고 불러도 좋다.
호칭 따위는 관계없다. 중요한 것은 뭔가 작용한다는 것.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말이다.
정일이 형이 그런 우악스런 신의 손길을 느꼈던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뺑뺑이로 진학한 중랑구의 면목고등학교에서 만난 또래들이 너무 거칠어 적응을 할 수가 없던 것이다.
당시 급우들이 어느 정도로 꼴통이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 가지 예면 충분한데,
옆 학교의 여학생을 윤간(!)까지 했다고 하니 이런 것을 보고도 신이 과격파가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신이 그 이후 이 가엾은 여학생과 답 없는 십대의 짐승들을 어디로 이끌고 갔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정일이 형은 분명한 곳으로 이끌려갔다.
그곳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많은 의문들이 생겼다. 고작 열일곱의 사내들이 어떻게 이 정도로 추악해질 수 있는지, 왜 자신만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이런 곳으로 진학하게 되었는지,
세상에는 왜 괴로움이 존재하는지,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지! 괴물들이 득실득실한 학교는 진저리가 났고,
세상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1989년도의 일이다.
형은 이 혼란의 도가니를 벗어날 출구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게 어떤 형태든 상관없었다. 담배를 배운 것도 그 무렵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그래서 그 뒤로 그는 골초가 되었다’라는 식의 결론으로 끝이 난다면 신은 아주 악취미를 가진 존재이지 않겠는가. 다행히 누군가 나타났다. 북공고에 다니던 친구였다.
북공고가 어디냐, 바로 서태지가 다녔던 학교 아니냔 말이다.
서태지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음악을 하는 친구가 함께 음악을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음악이라. 담배보다는 확실히 훌륭한 출구라고 정일이 형은 생각했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가 거셌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부깨나 하던 아들이니 딴따라를 하겠다는 얘기를 집에서 반길 리가 없었다.
그러나 형은 겨우 찾았다고 생각한 음악이라는 출구에서 도저히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냈다.
부모님이 나에 대해, 적어도 공부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말게 하자,
그것이 그의 결심이었다. 그러면 음악 하겠다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시겠지.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성적을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전교
7등에서
250등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그가 택한 싸움이었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이제 우리가 어른이 되었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뮤지션의 팔자를 타고 난 사람들은 그런 싸움을 하지 않는다. 불모한 싸움을 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기타를 사고 묵묵히 크로매틱을 연습한다. 곡을 짓고 드러머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그는 열일곱에 불과했고,
음악을 하려면 일단 저항해야한다고 느꼈다. 아, 안타까운 열일곱이여! 음악을 하려면 음악을 했어야했거늘.
당연한 얘기지만, 정일이 형의 성적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음에 불구하고 형의 부모님은 음악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연주하고 곡 쓰는 것을 포기하고 듣는 것만 열심히 들었다.
턴테이블이 없었으므로, LP로 나온 음반은 무용지물이었다. 대신 킹 크림슨이니,
클라투니 하는 밴드들의 음반을 카셋트 테이프로 겨우겨우 찾아다녔다. 그러나 자유롭게 노래하는 그 시절의 뮤지션들은 형에게 창문이 되어주었지만 출구는 되지 않았다.
답답함은 끝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만남이 있었다.
고교생임에 불구하고 조선일보와 한겨례 신문을 비교해 읽으면서 그 차이점을 조목조목 따져대는, 세상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삼학년 선배를 만난 것이다. 그때까지 헤르만 헤세를 최고로 꼽던 형은 선배의 영향을 받아 김용옥 선생을 읽기 시작했다. 거기가 첫 번째 출구였다.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쏟아지는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십대가 끝났다. 정일이형은 철학과에 진학했다.
철학과를 졸업한 형은 측정기술 벤처회사에 취직한다. 그리고 교토의 호리바 제작소로 이직을 했다가, 스위스 회사로 옮겨 태양광 관련 업무를 했다. 닥치는 대로, 내키는 대로,
먹고 살 일을 걱정하며 이십대와 삼십대가 흘러갔다.
삶에 부딪히며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사방에서 벽이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든 재미있게 살고 싶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글루처럼 자란 벽이 머리 위까지 덮어가고 있었다. 직속 상사와도, 경영진과의 관계도 좋았는데 내 인생,
이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회사일 말고 형에게는 자신 있는 것 두 가지가 있었다. 맥주와 음악이었다.
그 두 개를 합치니 자연스럽게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년 반 동안 양조장을 쫓아다니며 맥주를 공부해 성수동에 수제 맥줏집을 차렸다.
그것이 지금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탭 하우스 숲’이다. 처음 반년은 회사를 다니면서 운영했다. 그러다가 가게의 수익이 어느 정도가 되자 과감히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탭 하우스 숲’은 이제 영화
<타짜>와 <도둑들>로 유명한 최동훈 감독 같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성수동의 핫플레이스가 되어있다.

“신기하게 가게를 열고 난 뒤에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 라고 정일이 형은 말한다. 시그니쳐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저온조리법을 공부하고 프렌치 마리네이드를 연구하느라 홍보다운 홍보를 할 시간이 없었는데도, 가게를 열고나니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형이 선곡목록에 넣으면서 ‘이런 음악 과연 누가 알고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음악이 흘러나올 때도, 최감독만큼은 “닉 드레이크,
언제 들어도 좋아!”라고 감탄을 했다. 같은 뮤지션에 열광한다는 것은 멀리서 보면 별 의미 없는 일인 것 같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굉장한 경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뮤지션이 초야에 묻혀있을 수록 감동은 배가 된다. 그런데 뮤지션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음악과 미술,
영화와 시와 철학과 죽음과 삶에 대해 밤새 떠들었다. 공간은 아늑했고 술은 넘쳐났다. 형은 숲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진짜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
서로가 서로의 팬임을 자처하는,
내가 이 세상에 아주 아주 많았으면 하는 그런 관계들이 숲에서 자라났다.
숲에서 잘 팔리는 것은 정일이 형이 개발한 양고기 콩피와 열 가지 수제 맥주다.
숲의 양고기는, ‘양고기 전문가’라는 명함을 들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우리 형이 먹어본 양고기 중 제일 맛있었다고 했던 음식인데, 과연 메뉴 제일 위에 올라와 있다.
그리고 가게를 들어가면 전면부에 눈에 띄는 열 개의 맥주 탭이 숲의 메인이다. 직접 개발한 레시피들이라고 하는데, 특히 1번에서 4번까지는 꿈같은 맛이 난다.

숲에서 팔리는 것 중에 음식과 음료 외에 다른 것이 있는데 바로 그림이다. 상해의 화가 거리 같은 곳에서 직접 구매해 가게에 걸어둔 그림들이 입소문을 타, 동네 맥줏집에 사람들이 그림을 사러 오는 어쩐지 우스운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탭 하우스 숲’은 상수동의 사랑방이 되었다. 그런 얘기를 들려주면서 함께 맥주를 마시는 형은 시도 때도 없이 바깥을 향해 손을 흔들고 인사를 나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낯이 익은 단골들인 것이다. 지역 친화적, 이라고 그는 ‘숲’의 가치를 명확히 한다. 그러나 그 지역이 상징하는 것은 그곳의 사람들, 그러니 숲은 성수동에 있을 필요도, 서울에 있을 필요도, 심지어는 반드시 한국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그가 언젠가 다른 곳에 또 숲을 세울지, 모를 일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좋아하는 맥주를 마음대로 따라 먹는 정일이 형의 모습은 충분히 자유로워 보인다. 그가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처음 받았던 질문, 왜 이 전공을 택했냐는 물음에 그가 답했던, 그가 그토록 추구했던 ‘자유’에, 그는 조금 가까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확장공사 이후 수익성 문제라던가, 골치 아픈 일들은 여전히 있지만 삶은 충만하다. 이제는 출구가 꽤 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격주로 팟캐스트 <토요일 토요일은 맥주다>를 녹음하고, 주기적으로 신메뉴를 개발하고,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커나가는 세 아이를 바라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그래도, 회사 다니다가 자영업을 하려니 힘든 일 많았죠?”라는 질문에 형은 대뜸 “화장실.”이라고 답한다. 화장실?
회사 시절, 형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용역업체들의 견적을 비교해 업체를 선정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하면서는 자신이 화장실을 치우고 있다는 것이, 날마다 쓰고 난 휴지며 여성용품을 치우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화장실을 청소하며 한 가지를 결심했다. 유명인이 단골이거나 말거나, 나는 매일 똥 묻은 휴지를 내다 버려야하는 동네 맥줏집 주인이다. 건방 떨지 말자, 고.

우리가 작은 동네 맥줏집을 찾아가는 것은 거기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걸린 그림, 흘러나오는 음악, 크리스마스 조명과 깨진 벽, 지워진 메뉴, 입간판의 드로잉 모든 것에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사연들이 모여서 근사한 이야기가 된다. 나는 오늘도 근사한 이야기 들으러 ‘탭 하우스 숲’에 간다. 거기에 인간 서정일이 있다. 바에 서 있을 때는 뉴질랜드 램의 숄더 랙이니, 향신료가 들어간 뱅쇼니 그럴싸한 지식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장사가 끝나면 또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그는 동네 맥줏집 사장이다. 거기가 형의 출구다.
첫댓글 음악을 하겠다고 부모를 속이고 그러나 부모가 이겨 철학과를 나오고...
어쨌든 철학이 있는 맥주집이군 ^^
숲이 출구라니. 아이러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