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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무산(70m), 봉재산(73.5m), 북산(140)m, 견자산(60m), 남산(南山, 222.5m)/강화
■산행일자; 2021. 9.25(토). 날씨; 맑음. 산행거리; 11.7km. 산행시간; 5시간15분.
■교통편;
<갈 때> : 강화터미널(08;25)[10번 군내버스]-연미정(08;40) 하차.
(대림경동아파트 버스정류장 06;10[1002번버스] 탑승---(06;20~06;30/10분) 마곡역(중앙차로)에서 [3000번 버스]탑1승--- 강화터미널 (08;00) 도착)
<올 때> : 남문근처 계림가든 씻고 새옷 환복후 뒷풀이 (14;00~15;00/60분)--강화터미널(15;10)-고촌역(16;40)-김포골드라인/9호선-가양역(17;00)
■ 산행코스 : 연미정-강화둘레길1코스-학무산-48번도로 굴다리 통과-대월로-봉재산-산성길-북산-동문로-견자산-산성길-남문-남산왕복-남문
■견자산(見子山)은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 강화군(江華郡) 강화읍(江華邑)에 왕이 아들을 기다리던 의미의 견자산(見子山)이있다. 이곳에는 현충탑(顯忠塔)이 있고, 매년 현충일 6월 6일이면 많은 뜻 있는 분들과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분들의 고귀한 뜻을 기린다.
현재는 견자산-충혼탑-나라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7백여 년 전 이미 이 산은 한 임금이 나라의 힘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던 산이었다.
13세기 초, 세계 제국을 이루려는 몽골 군대의 침략에 맞서 고려(高麗)의 고종(高宗) 임금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다. 그리고 내성(內城), 중성(中城), 외성(外城) 등 3중의 성곽을 쌓으면서 하루 빨리 몽골 군대를 쳐부수고 다시 개경(開京)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했다. 그러나 전쟁은 예상 외로 길어졌고 육지에 있는 고려 백성들은 몽골군의 만행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더구나 몽골군의 제6차 침입 때(1254)는 고려 백성 26만 명 이상이 몽골 군대에 인질로 끌려가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강화도의 고종 임금은 더 이상 육지 백성들의 고통을 두고 볼 수 없어 몽골 군대와 회담을 하기로 했다.
어느 날 몽골의 사신과 고려의 사신이 만났다. 몽골 군대가 고려정부에 요구한 것은 첫째, 강화도의 고려 정부는 빨리 개경으로 나올 것. 둘째, 고려의 왕이 원나라에 들어와 원(元)의 황제에게 인사드릴 것이었다. 쉽게 말해 빨리 육지로 나와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고종 임금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생각해 그들의 조건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여러 차례의 회담 끝에 우선 고려의 임금 대신 왕자가 원나라 황제에게 인사를 하러 가기로 약속했다. 처음에는 임금의 먼 친척 중에서 사람을 골라 원나라로 보냈으나 나중에는 왕의 친아들 안경공 창(?)을 보내야 했다.살아온다는 보장도 없이 아들을 머나먼 적국으로 보낸다 생각하니 고종의 마음은 여간 아픈 것이 아니었다. 고종은 밤잠을 설치는 날이 잦아졌다.“아! 가슴이 답답하구나. 여봐라, 인근 정자산(亭子山)으로 바람을 쐬러 갈 터이니 준비를 하거라.”고종은 신하들과 함께 궁궐을 나와 인근의 산으로 올랐다. 이곳은 정자가 있어 정자산(亭子山)으로 불리고 있었다. 임금은 정자에 앉아 북쪽을 바라보며 적국으로 떠난 아들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옆의 신하에게 말을 했다.
“참 이상하구나. 궁궐에서는 아무리 왕자를 생각해도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데 이 산에만 오르면 왕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나는구나.”그 후부터 임금은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정자산(亭子山)으로 올라 북쪽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임금의 정자산(亭子山) 행차는 백성들에게는 커다란 구경거리였다. 그럴 때마다 백성들은 먼 발치에 서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을 하곤 했다.“오늘도 임금님께서 행차하시나 본데, 정자산(亭子山)으로 가시는 거겠지?”“정자산(亭子山)에 올라 왕자님 생각을 하면, 그의 얼굴이 잘 떠오른다고 해서 산에 오르신대요.”“임금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정자산(亭子山) 주위 동네의 사람들은 임금의 행차만 보면 자연스럽게,“아, 임금님이 또 아드님을 보러 산으로 가시는구나.”하고 말했다.이리하여 정자가 있어 정자산(亭子山)이라 불리던 이 산의 이름이 아들을 본다는 뜻으로 ‘볼 견(見)’, ‘아들 자(子)’자를 써서 견자산(見子山)이 되었다. (인천광역시 홈)
■북산(北山, 126m)은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소재하는 강화산성의 내성상의 산이다. 강화산성(江華山城)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로들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았고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고 한다.강화산성 내성은 동서남북으로 난 대문 4개, 비밀통로인 암문 4개, 물이 흐르는 수문 2개,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남장대와 북장대가 있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강화산성의 내성은 약 1,200m(3,874척)에 걸쳐 토축(土築)됐다.현재의 강화읍을 둘러싸는 형태로, 북쪽으로는 북산(北山, 126m) 남쪽으로는 남산(南山, 222.5m), 동쪽으로는 견자산(見子山, 75m), 서쪽은 북산(北山, 126m)과 고려산(高麗山, 436.3m)의 산줄기가 이어지는 능선을 이용해 축성되었다. 사적 13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남산(南山, 222.5m)은 강화산성의 내성상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남산은 강화산성의 줄기로 강화읍내를 보호하기위한 읍성으로구한말 외세의 침략을 당했던 곳이기도 하다.당시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은 강화 초지진으로 침입을 하여 강화읍성내 고려궁지에 있는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수많은 고서들을 약탈해 갔다. 얼마전 프랑스에서 일부를 영구 임대형식으로 반환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 당시 프랑스 병사들이 많이 놀랐다는데.. 강화의 아무 초가집에 들어 가도 그들의 집엔 각종 서적이 즐비해 문화 충격을 받았단다. 산은 낮지만 상당히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가파른 길을 20분만 오르면 남산 정상 남장대에 이른다.북으론 강화산성의 북산이, 동으론 멀리 서울의 북한산, 양천 및 일산이, 서쪽으론 고려산, 혈구산 남쪽으론 진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개성의 송학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연미정(燕尾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시대의 누정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중종 5년(1510년)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한다. 인조 5년(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2021.9.25(토) (05;55) 아파트를 나와 아파트앞 대림경동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06;10)[1002번버스]를 타고 마곡역 중앙차로역에 도착합니다. 마곡역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06;20~06;30/10분) 약 10분 기다려 [3000번 버스]를 탑승 강화터미널 (08;00) 도착) 합니다. (08;05) 도착한 석봉님 만나 강화터미널(08;00~08;25/15분)에서 [10번 군내버스]를 타고 연미정 정류장에(08;40) 하차 합니다.
나이가 드니 고장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작년부터 '백내장 끼'가 있다 하더니 금년에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는 동네 안과의사의 권고에 따라 수술을 결심하고 영등포구청장을 지낸 친구 박충회님의 백내장 수술 후일담과 병원(여의도 JC빛 안과병원) 추천 받아 2021.9.21(화) 왼쪽눈, 2021.9.22 (수) 오른쪽 눈을 수술 받았습니다. 수술시간은 10~15분정도 간단한 수술이고 뒷날 안대 푸니 시력이 확실히 좋아 지는데 수술후 관리가 힘들군요. 약 15일~30일 동안 눈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하는 것과 시간 맟추어 안약 넣은 것이 일입니다.
수술후 10일차 되는 날이기에 심한 운동(눈에 땀이 들어가는 운동)은 안된다는 의사의 권고도 지켜야 되겠기에 교통이 불편한 안내산악회의 함안의 자양산을 포기하고 가벼운 강화둘레길과 강화산성길에 있는 학무산(70m), 봉재산(73.5m), 북산(140)m, 견자산(60m), 남산(南山, 222.5m)을 진행합니다.
0km 0분[연미정](08;45)
연미정을 구경하고 나서 강화둘레길 1코스 도로(연미정길)를 따라 들어간다. (09;30) '해온마을' 표지석 서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능선 방향으로 도로 따라 들어선다. 고개에서 이정목 (강화나들길) 방향 좌측으로 들어서자 물탱크가 있고 부드러운 능선을 완만하게 올라선다. 능선봉우리(75m봉)에는 묘가 있고 완만히 내려서면 묘지에 철망울타리를 따른다.
도로에 내려서고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갈림길에서 강화 둘레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능선길을 오른다. 능선 우측으로 비켜 완만히 내려서니 (09;47)묘지로 조망이 좋다. 조망즐기고 다소 가파르게 올라가니 (09;55)학무산 정상이다.[2.6km][70분]
2.6km 70분 [학무산](09:55)
정상표시는 없다. 정상 봉우리는 너른 편으로 묘들이 점령해 있다. 철망울타리에 학무산 정상 표지기 걸고 인증한다. 여기서 우측으로 꺾어 완만히 내려가니 자동차전용도로에 이르고 마을로 내려선다. 48번 도로 굴다리(대산1교)를 통과하여 교회를 바라보면서 진행한다. (10;10)대산침례교회를 지나 강화나들길을 버리고 좌측 샛길로 들어선다. 도로(대월로)변 인도를 따라 봉재산으로 향한다. 꽃무리마을 지나 (10;21)대월초등학교를 지나고 고개마루 들머리에서 좌측으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길은 뚜렷하고 능선이라기보다는 토축산성과도 비슷한 강화산성길 표지기가 안내하는 강화산성길이다. (10;35)봉재산정상에 선다.[1.8km][40분]
4.4km 110분[봉재산](10;35~10;45)[10분]
안평님등 선답자님들의 표지기 몇장이 걸려 있다. 펑퍼짐 바위에 자리잡고 커피도 마시고 과일도 먹으면서 약10분간 휴식시간 갖고 되돌아 내려 도로(대월로) 고개 마루에 되돌아와 도로(대월로) 건너 임도 따라 오른다. 차가 다닐수 있는 임도 길이다. 임도 3거리에서 강화산성길 표지기가 걸린 우측임도로 10여m 진행하니 좌측 산길로 진입하는 곳에 강화산성길 표지기 걸려있다. 임도 버리고 곧바로 북산으로 올라서는 숲길로 들어서 능선길을 따른다. 능선길이 급경사 길이다. 좌측으로 변곡되어 급경사길 오르니 (11;10)북산 정상이다.[0.8km][25분]
5.2km 145분[북산](北山)(11;10)
북장대가 있던 터로 산성 꼭대기다. 반바지님의 북산 정상표지판 걸려있다. 고려산이 조망되고 봉재산으로 내려서는 강화산성길이 있다. 후답자를 위해 표지기 한장 걸어둔다. 산성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서고 안부를 지나 봉우리에 올라서고 우로 틀어 다시 가파르게 떨어져 내려간다.
(11;21)안부 갈림길. 정자쉼터다. 이정표(동문/ 강화산성)에서 산성을 벗어나 좌측 동문 방향으로 골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도로에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11;32)강화중학교를 지나 도로(동문로)에서 우측도로 따르니 우측에 길건너 동문이 건너보인다. 동문로 이정표 (강화산성)에서 좌향 복원된 산성에 올라서고 허물어진 산성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간다. 견자산 정상이다.[1.5km][38분]
6.7km 183분 [견자산](見子山)(11:48 ~11;50)[2분]
반바지님의 강화지맥 견자산 정상 표지판이 나무에 매여있고 근거리에 충혼탑이 있다. 고려 고종이 몽골에 인질로 간 왕자를 생각하고 자주 이 산에 올라 북녘을 바라보며 아들을 그리워하였다고 하여 견자산(見子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정자산이라고도 한다.
(11;52)가파르게 내려서는 산성으로는 나무들이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오랜 세월동안 산성에 자리하고 자랐을 나무들을 문화재 보호를 위해 베어진 것인데 차라리 그루터기를 없애버렸으면 좋을 것 같다. (12;00) 안부에서 나들길을 따라 우측 마을로 내려서 강화대로에 이른다. 도로따라 (12;10) 남문에 도착한다.[0.9km][20분]
7.6km 205분 [남문](12;10)
강화 남문은 강화산성 중 내성에 연결된 것으로 동서남북 사대문 중 하나로 안파루(晏波樓)다. 지금의 안파루는 1711년 조선 숙종 37년 강화 유수 민진원이 건립한 것이다. 강화 내성은 고려 무인정권의 집권자 최우가 대몽항쟁을 이유로 강화로 천도하여 축조한 성이다. 1232년 고려 고종 19년에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로 온 고려는 강화도에 성과 궁궐, 관청을 개성과 비슷하게 지었다. 주변은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있다.
산성길을 따라 급경사길을 오른다. (12;22) 산성길 조망터에서 잠시 조망 즐기고 완만한 산성길 진행한다. (12;32)이정표(약수터290m/정상440m/마을)에서 햇살이 따갑고 급경사길인 정상 방향 산성길을 하산길로 예정하고 이정표(약수터440m)방향 우측 숲길로 들어서 편안하게 진행한다. 통나무 의자에서 약10분간 휴게 시간 갖고 허리길 이어간다. (12;46)이정표(남산청하동약수터/진달래꽃길)를 지나 (12;52) 어린이를 위한 조형물터를 통과하여 약수터에서 약수물 한모금하고 넓은길 따르다가 강화산성길 표지기따라 좌측 숲속 오름길 오르니 기도터다. 기도터 바위에서 백내장 수술 안약(13;00~13;06) 약6분 넣고 기도터를 지나 (13;15) 강화산성 남암문에 도착한다. 좌측으로 산성길 따라오니 (13;20) 남산정상이다.[2.4km][70분]
10.0km 275분 [남산](13;20~13;24)[4분]
남장대 누각 서있고 최신식 산불 감시초소도 제일 높은 곳에 서있다. 남장대는 군사시설로 감시와 군대 지휘소의 역할을 한 곳이다. 강화산성에는 남장대, 북장대, 서장대가 있었는데 모두 허물어졌고 남장대만 2010년에 복원한 것이다. 남장대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파괴되었다. 남장대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이 좋다. 멀리 김포 문수산도 보인다. 조망 양호하다. 개성 송악산. 서울 북한산 . 강화고려산이 조망된다.
조망즐기고 산성길 따라 내려선다. (13;30) 이정표(강화산성 남문/아이의 숲/자작나무숲)와 이정표(청화동약수터/선화골약수터)로 돌아와 (13;41) 오래된 삼각점(판독불가)를 지나 안부에서 성곽길 버리고 우측 숲길로 내려선다. 이내 도로에 내려서 좌측으로 차도 따라 진행 남문에 도착한다.[2.3km][36분]
11.7km 315분[남문](14;00)
사실상 산행종료 하고 남문근처 "계림가든" 식당에서 씻고 새옷 환복후 뒷풀이 (14;00~15;00/60분) 합니다. 눈(백내장) 수술후 10일차기 때문에 술을 마실수 없어 석봉님 맥주잔에 나의 사이다 잔 부딪혀 맑고 깨끗한 가을 날씨에 여유로운 무사산행 건배 합니다. 불고기정식 으로 간단하게 뒷풀이하고 강화터미널(15;10)에서 3000번 버스타고 약간 막혀 고촌역(16;40) 도착 김포골드란인/9호선 타고 가양역(17;00)에 도착 (17;10) 귀가 합니다. 환자 케어 하면서 땀나지 않게 천천히 함께 산행해 준 석봉님께 감사드립니다.
08;46 연미정입니다.
08;47 연미정모습입니다.
(09;30) 해온마을 표지석 삼거리에서 우측 능선 방향으로 비포장도로따라 들어갑니다.
09;43 조망1
09;43 조망2
09;55 학무산 정상입니다.
10;10 대산 침례교회를 지납니다.
10;21 대월초등학교를 지납니다.
10;35~10;45[10분] 봉재산 정상입니다.
10;35~10;45[10분] 봉재산 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1;10 강화지맥 북산 정상 표지판입니다.
11;10~11;14 [4분] 북산 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1;10~11;14[4분] 북산 정상 인증산진2 입니다.
11;10~11;14[4분] 북산 정상 가운데 표지기방향으로 올라왔습니다.
11;10~11;14[4분] 북산 정상에서 고려산 방향 조망입니다.
(11;21)안부 갈림길. 정자쉼터입니다. 이정표(동문/ 강화산성)에서 산성을 벋어나 이정표 좌측 (동문) 방향으로 골로 가파르게 내려갑니다.
11;32 강화중학교 정문을 지납니다.
11;48~11;50[2분] 견자산 정상표지판입니다.
11;48~11;50[2분] 견자산 정상 선답자님들의 표지기입니다.
11;48~11;50[2분] 견자산 정상 강화나들길 표지목입니다.
11;48~11;50[2분] 견자산 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1;48~11;50[2분] 견자산 정상 인증사진 2입니다.
11;48~11;50[2분] 견자산 정상 삼각점(판독불가) 입니다.
12;03 마을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많이 달린 탐스런 감나무 입니다.
12;10 남문과 남문 근린공원입니다
12;10 남문 표지판과 주변 풍광입니다.
12;13 남문 "안파루" 입니다.
12;22 성곽길에서 조망1
12;22 성곽길에서 조망2
12;22 성곽길에서 조망3
(12;32)이정표(약수터290m/정상440m/마을)에서 햇살이 따갑고 급경사길인 정상 방향 산성길을 하산길로 예정하고 이정표(약수터440m)방향 우측 숲길로 들어서 편안하게 진행합니다.
(12;46)이정표(남산청하동약수터/진달래꽃길)입니다.
12;52 어린이를 위한 조형물입니다.
13;15 강화산성 남암문입니다.
13;20 조망1
13;20 조망2
13;20 조망3
13;20 조망4
13;20 조망5
13;20 남산 정상 산불감시탑입니다.
13;20~13;24[4분] 남산 정상 모습입니다.
13;20~13;24[4분] 남산 정상에서 조망입니다.
13;20~13;24[4분] 남산 정상" 남장대"입니다.
13;20~13;24[4분] 남산 정상 조망입니다.
13;20~13;24[4분] 남산 정상에서 조망2 입니다.
(13;30) 이정표(강화산성 남문/아이의 숲/자작나무숲)와 이정표(청화동약수터/선화골약수터)로 돌아 옵니다.
13;41 산성 안부 직전 삼각점(판독불가) 입니다.
13;59 남문 "강도남문 " 현판입니다.
14;00 남문의 "안파루" 현판입니다.
산행지도
로커스맵트랙지도
오록스맵트랙지도
e-동아트랙지도
산행기록표입니다.
산행 실트랙입니다.
첫댓글 배창랑대선배님!
백내장 수술로 가볍게 가까운 강화도로 바람 쐬고 오셨네요.
연미정은 건너편이 한남정맥의 끝머리인 보구곶리 아닐까요?
염하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구요.
일전에 어느 미친놈이 월북루트로 이용했다며 TV에서 시끌시끌하던 곳입니다만
사실은 역사적으로 몽고군과 강화로 피난한 고려조정간에 외교적 담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답니다.
학무산 정상에서 보구곶리로 내려서는 한남정맥 끝 마루금이 정확하게 보입니다.
두꺼비대선배님이 강화도 한바퀴 빙 둘르시며 포스팅을 해주신게 있어 도움이 많이 되네요.
강화지맥이 시작되는 용정리 아래 갑곶돈대도 몽골군과 관련한 지명이라지요.
연미정에서 올라 금새 강화지맥과 합류하고
이후 남산에서 강화도성의 궁궐이 가까운 거리인것 같던데
남문에서 멈추셨네요.
저는 엊그제 춘천지맥을 졸업했는데...
송이재봉이후로 물갈봉까지 배선배님 띠지 계속 확인하면서 함께 걸었습니다.^^
뒤풀이에서 술을 못 드셔서 조금 서운하셨겠습니다만...
학형 석봉님과 함께 천천히 한바리 하신 강화도 서북쪽 산 한바리 수고 많으셨습니다.^^
퐁라라님
춘천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머지않아,,,,,
162지맥 완주 소식도
주실것을 기대합니다.
강(바다)건너가 익숙한 보구곶리 한남정맥의 출발점이구요.
송이재봉 이후 물갈봉까지 안내산악회와 개인산행으로 진행햏던 추억이 새록합니다.
표지기 담아주시어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운데 안산즐산 이어가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
어제 애리랑재~한티재 구간을 걷다가 걸려있는 님의 시그널을 한개 만났답니다.(평소 시그널 글자는 잘 읽지 않아서 그동안 지나쳤는지도~)
첨 만나 본 시그널이어서 반가웠습니다.
건강한 걸음걸음이시길!
이슬하님
낙동정맥 '에메랑재~한티재'구간에서 표지기 만났군요.오래전 건 표지기가 살아있다니 반갑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운데 안산즐산 이어가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
추석 잘 보냈나요..??
뒷풀이는 밴댕이로 하셨지요??
강화 한바리 수고 넘 많으셨습니다.
조진대고문님
건강하시고 안전한 산행이어 가시고 계시지요~?
염려 덕분에 추석명절 잘보냈습니다.
가을이 완연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감사합니다 ~^^
한동안 소식 뜸하셔서 궁금하였는데...
눈 수술하시느라 요양중이셨군요.
경과가 좋으셔서 모처럼 강화의 북산, 견자산, 남산 등을 다녀오신거군요.
빠른 쾌유하시고 멋진 여정이어지시길 빕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에이원회장님
눈이 잘안보여 나이탓이려니 했는데 백내장(카메라렌스에 이물이 끼어 상이 히부였게 보이는증상)
간단한 수술인데 중요기관이다보니
눈에물안들어가도록 세수도 못하고 불편이 많습니다.
이제 14일 경과했으니 어려운 고비는 지난듯합니다.
염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운데 안산즐산 이어가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