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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1월 12일 수요일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성 요사팟 주교는 1580년 무렵 우크라이나의 동방 교회 가문에서 태어났다. 장사보다는 영혼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던 그는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랐던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수도원장까지 맡아 수도회 개혁을 주도하였다. 주교가 된 뒤에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1623년 이교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1867년 비오 9세 교황께서 요사팟 주교를 시성하셨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임금들의 권력과 통치권은 주님께서 주셨다며,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나, 사마리아 사람만 돌아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복음).
제1독서
<임금들아, 들어라. 지혜를 배워라.>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6,1-11
1 임금들아, 들어라. 그리고 깨달아라. 세상 끝까지 통치하는 자들아, 배워라.
2 많은 백성을 다스리고 수많은 민족을 자랑하는 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3 너희의 권력은 주님께서 주셨고 통치권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주셨다.
그분께서 너희가 하는 일들을 점검하시고 너희의 계획들을 검열하신다.
4 너희가 그분 나라의 신하들이면서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5 그분께서는 지체 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6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7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8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9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10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11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4,1-7.11-13)와 복음(요한 17,20-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위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 뒤에도 힘겹게 투병하시면서 퇴직 때까지 성실히 근무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못지않게 수고하신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날마다 아버지의 점심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하셨고, 가려움으로 잠 못 이루시는 아버지와 늦게까지 화투를 치시고는 하였지요. 그러다 졸음이 쏟아지면 가까스로 잠드셨습니다. 어느 날 새벽 어머니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당신을 내려다보고 계셨는데, 연신 눈물을 쏟으셨답니다. “왜 그래요?” 하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울먹이며 말씀하시더랍니다. “나 같은 사람하고 지금까지 살아 주어서 고마워!” 그날 이후 아버지는 전혀 다른 분이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이의 인정과 신뢰를 받으셨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참 좋은 분이셨지만, 가족들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시의 여느 아버지처럼 가부장적이셨고, 술기운을 빌려 자녀들에게 손찌검을 하시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그런 분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입니다. 아버지는 퇴직 뒤에 어머니와 함께 날마다 미사를 다니시고, 두 분은 매리지 엔카운터(ME) 부부가 되어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셨지요.
오늘 복음에서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이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루카 17,15-16). 아버지의 모든 변화는 어느 날 새벽, 이러한 ‘감사’가 아버지의 마음에 찾아들며 시작되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하고 지금까지 살아 주어서 고마워!”(김동희 모세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피정 중에 영적인 여정을 방해하는 4가지 요인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걱정,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 등으로 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제자에게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움으로 물에 빠지는 베드로를 향해 ‘왜 두려워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에게도 ‘왜 두려워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담대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분명히 명령한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어 주겠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은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담대함으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욕망’입니다. 욕망에는 ‘재물욕, 명예욕, 권력욕’이 있습니다. 경건했던 다윗이 충실했던 부하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포도원을 가졌음에도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서 죽였던 것도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자 부자 청년은 슬퍼하면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욕망이라는 전차에서 내려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많이 배웠어도, 능력이 있어도, 성직자라 할지라도 욕망의 덫에 걸리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가 쉽다.” 욕망이라는 전차에서 내려오는 길은 ‘초연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초연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복음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은 하느님의 자리까지 넘보려는 마음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들의 꽃이 저마다 향기를 내며 하느님을 찬양하듯이, 하느님의 작품인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유혹받으실 때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하느님 이외에 다른 것을 섬겨서는 안 된다. 하느님을 시험하면 안 된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교만함’입니다. 아담의 죄는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의 교만함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제자들에게 겸손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도, 하느님의 아들이 구유에 오신 것도 겸손함의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꼴찌가 되어라. 잔치에 초대받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고 끝자리에 앉아라.”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 겸손함은 악의 유혹을 극복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오늘 제1 독서인 지혜서는 우리가 영적인 여정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힘없는 이와 고아의 권리를 찾아 주고, 가난한 이, 불쌍한 이에게 정의를 베풀어라. 힘없는 이와 불쌍한 이를 도와주고,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어라.” 오늘 복음에서는 치유 받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나병 환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사의 감사송은 우리가 감사드려야 할 이유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 옵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마지막은 감사이어야지요>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루카 17,15-16)
처음엔
어떠했든
가는 길이야
어떠하든
마지막은
감사이어야지요
서툰
처음일망정
뒤에라도
곱게 영글도록
마지막은
감사이어야지요
희뿌연
처음 너머
믿음으로
희망을 이룬
마지막은
감사이어야지요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이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치료’와 ‘치유’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치료가 질병으로 인한 증세를 그저 완화시키는 차원의 것이라면 치유는 질병의 원인이 몸에서 완전히 사라져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 열 사람은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았습니다. 곧 병으로부터 해방을 얻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아홉은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서 그저 치료의 차원에 머물렀고, 오직 한 사람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진정한 치유와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참된 치유는 바로 믿음, 그리고 감사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언제나 그분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늘 감사드리면서 참된 치유, 곧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요사팟 쿤체빅(Josaphat Kuncevyc)
신분 : 대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폴로츠크(Polotsk)
활동연도 : 1580?-1623년
같은이름 : 요사파트
성 요사팟 쿤체빅은 1580년경 당시 폴란드 관구였던 현 우크라이나의 볼린(Volyn) 관구에 속한 볼로디미르(Volodymyr)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요한(Joannes)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리투아니아의 동방 교회에 분열이 일어나던 때로 폴란드의 지배를 받던 리투아니아의 동방 교회와 가톨릭 교회가 대립한 상황이었다.
귀족 가문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상업에 종사했고, 그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심어 주고자 노력했다. 볼로디미르에서 학교를 마친 그는 부모의 가업을 잇고자 상업을 배우기 위해 빌나(Vilna,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 Vilnius)의 포포빅(Popovyc)이라는 사람의 도제로 보내졌다. 그러나 수도생활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주인의 딸과 결혼하면 사업을 물려주겠다는 제의를 거부하고, 1604년 빌나에 있는 바실리오회의 삼위일체 수도원에 입회하여 요사팟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요사팟 쿤체빅은 1609년에 비잔틴 전례에 따라 사제로 서품되었고, 그 즉시 설교로 유명해진 한편 우크라이나 교회와 로마간의 일치를 위한 지도력을 발휘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함께 입회했던 친구 루트스키(Benjamin Rutsky)는 삼위일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그는 폴란드에 새 수도원을 세우라는 사명을 받고 파견되었다.
1617년 11월 12일 비테프스크(Vitebsk)의 주교로 임명된 요사팟 쿤체빅은 그 이듬해에 폴로츠크의 대주교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혼란하던 교구를 바로잡고 교회일치를 위해 더욱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로마와의 반목, 기혼 사제 문제, 느슨한 규칙, 폐허화된 성당 등을 고치기 위해 시노드를 소집하고 교회개혁에 박차를 가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리투아니아 안에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도 크게 성장하였다.
이즈음에 그와 뜻을 달리하던 일단의 분리파 주교들이 요사팟 쿤체빅은 실제로 라틴 전례의 사제이며, 로마 가톨릭은 리투아니아 민중에게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대립주교를 내세웠다. 그래서 극도의 혼란상에 빠졌지만 그는 온갖 위험을 극복하며 비테프스크로 사목방문을 가던 중 새로운 정교회를 주장하는 분리파에 의해 1623년 11월 12일 도끼와 총탄으로 죽임을 당해 드비나(Dvina) 강에 던져졌다.
교회일치를 위한 열정으로 인해 ‘일치의 사도’로 불리며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는 그의 사망 후에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그의 전구로 인해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1643년 5월 16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67년 6월 29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디다코 (Didacus)
활동년도 : 1400-1463년
신분 : 수사, 증거자
지역 : 세비야(Sevilla)
같은 이름 : 디다꼬, 디다꾸스, 디다쿠스, 디에고
에스파냐의 세비야 근교에서 태어난 성 디다쿠스(또는 디다코)는 한때 은수자로 고적한 삶을 살다가 작은 형제회의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는 카나리아제도(Canary Islands)의 수도원으로 파견되어 문지기 수사로 일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뛰어난 사랑으로 큰일을 이룩하여 성덕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1445년 배우지 못한 그가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된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 번의 임기를 채우고 그만두었다. 그는 여생을 에스파냐의 각 수도원을 다니며 하찮은 일을 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그의 높은 성덕은 작은 형제회뿐만 아니라 온 교회를 비추었다. 그는 1463년 11월 12일 카스티야(Castilla)의 알칼라(Alcala)에서 세상을 떠났다. 디에고(Diego)로도 불리는 그는 1588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