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3.水. 성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을 듯한 가을날과 봄날
08월28일, 오늘의 이름은 月요일.
설혹 어쩌다 알게 되더라도 안다고 하지 말자, 세상일들을.
미국에 와서 닷새 밤을 자고 엿새째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실질적으로 미국에서 온전하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인 날인 셈이다. 내일 아침에는 아침 식사를 하고는 곧바로 공항으로 출발해야하니까. 이번 미국방문길은 7박8일로 그다지 길지 않아서 사실 말이지만 비행기 경비만 따지더라도 본전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짧은 방문이다. 지난번 방문길은 한 달 가까이 혹은 세 주 이상 머물렀다가 한국으로 돌아갔으니까 다른 주州도 여유 있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뉴욕 주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뉴욕을 거쳐 뉴멕시코 주와 텍사스 주와 테네시 주와 역시 인디애나 주에서부터 시작해서 일리노이 주와 시카고와 미시간 주와 뉴욕을 돌아보면서 아들아이와 딸아이를 다 만나보았으나 이번에는 뉴욕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뉴욕과 더불어 샌프란시스코와 LA 등 서부 권을 돌아보려고 했으나 계획이 바뀌는 바람에 짧은 일정으로 뉴욕에만 머무르다가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도 기간이 짧긴 짧았지만 뉴욕에만 있으니 세상의 관점을 뉴욕에다만 놓고 뉴욕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는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뉴욕 복판의 빌딩 1층에도 비어있는 공실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어 임대중이라는 안내문을 자주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USA TODAY WEEKEND유에스에이 투데이 금요일자 주말판을 보면 네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있어서 IN NEWS, IN MONEY, IN SPORTS, IN LIFE 등으로 뉴스난, 경제난, 스포츠난, 그리고 사람·영화·TV·음악·여행 등을 취급하는 난欄해서 네 개의 블록으로 꾸며져 있다. 그런데 뉴스 섹션에 현직 대통령인 도날드 트럼프의 정면 사진이 세 번이나 등장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 뉴스에서나 신문에서 대통령 동정이나 행사 관련 이야기로 도배를 했던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이런 형태는 다분히 정치적 후진국에서 통용되는 언론의 행태들이라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아니, 자칭타칭自稱他稱 정치 선진국인 미쿡에서 웬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가 밀어붙여 진행 중인 중요한 정책 현안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건이 발생했든지 아니라면 트럼프라는 인물이 모든 이슈의 초점이 되고 있든지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미국의 트럼프와 트럼프의 미국이 사뭇 어긋나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트럼프와 미국을 떼놓고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을 바라보는 타자들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긴 세상을 둘러본다면 그 나라를 말하면 다른 모든 것에 앞장서서 오직 유일하게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기는 하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블리디미르 푸틴 등이 그러한데 도날드 트럼프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 아침부터 눈을 뜬 채로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일단 새벽 외출은 자제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에 빠져보았다. 그러다가 깜빡 옅은 잠에 다시 들기도 하고, 그리고 그 짧은 동안에 뭔가 다사多事하고 분망奔忙한 꿈을 꾸기도 하는 등 밝은 아침의 빛 속에서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번뜩 들어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호텔 로비로 주르르 내려가 보았다.
역시 프런트데스크 위에는 08월28일자 월요일 USA TODAY가 가슴높이만큼 쌓여있었다. 그래서 한 부를 챙겨들고 객실로 올라왔는데, 오전 10시경 외출을 하면서 프런트데스크를 보았더니 쌓인 신문이 반으로 줄어들어있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오후4시경에 들어왔을 때 보았더니 다시 신문이 가슴높이로 올라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아마 신문이 떨어지면 계속해서 새롭게 보충해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뉴욕 다른 호텔에 들어갈 일이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역시 대부분 호텔에 USA TODAY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리 가판대에도 이 신문만큼은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현대는 언론과 정보의 시대라서 나는 미국 중앙지 개념의 신문인 USA TODAY에 대한 관심이 끌렸다. 그리고 몇 가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전국지로 발행되는 일간신문인 USA TODAY는 심각하고 중요한 뉴스도 가볍게 다루고 생활과 여행, 스포츠에 비중을 두면서 전국의 날씨를 상세하게 보도하며 짧고 간략한 기사와 대담한 그래픽디자인 등으로 독자를 위한 편집의도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가독성可讀性을 위하여 기사는 단어 600개 이내로 제한하고, 한 문단은 짧은 문장 3개 이하로 구성한다는 편집 특징은 현대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08월28일자 USA TODAY의 일면 머리기사에는 짙고 큰 대문자로 ‘CATASTROPHE’ 라고 여행용 가방을 오른편 옆구리에 낀 채 서로 손을 잡고 하천이 된 도로를 텀벙거리면서 황망慌忙하게 걸어가고 있는 어느 부부의 사진 아래 쓰여 있었다. ‘CATASTROPHE’는 대변동, 파국, 격변이라는 뜻이다.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 주 휴스턴에 남긴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기구독 부수는 30만 부이고, 나머지는 모두 거리 가판대에서 팔리거나 호텔에서 구매하여 분배하는 식으로 팔린다고 한다. 발행부수는 평균 225만 부로, 1982년에 창간되어 세계적으로도 영어사용 신문 중에서 타임스 오브 인디아The Times of India에 이어 두 번째로 발행부수가 많고, 미국 5대신문 중에서 역사는 가장 짧으나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신문이다. 문화와 정보전달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속의 우리들에 비해 세상이 한순간에 디지털화하는 사이에도 미국이 꿋꿋하고도 동시에 아날로그적 사고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배경을 이해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USA TODAY라는 창窓을 통해 들여다본 현대 미국의 한 모습이 미국을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관점에서 역시 무한 호기심을 자극해대는데다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오늘은 아침 겸 점심으로 쉑쉑버거Shake Shack Burger를 먹으러 가자고했다. 뉴욕에 왔으니 쉑쉑버거나 치폴레의 부리또는 꼭 한 번쯤 먹고 싶기도 했다. 서울보살님과 호텔을 나와 딸아이 아파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내일 오전이 되면 나타날 푸름을 가리는 짙은 회색의 구름과 빗방울을 전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맑고 푸르고 선선하고 미세먼지 없이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딸아이 아파트에 들렀다가 함께 E.86th street에 있는 쉑쉑버거 매장으로 향했다. 지금이 점심시간인데도 예전보다 붐비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여기저기에서 북적북적거리면 또 그런대로 융창隆昌한 식욕과 들썩이는 흥취興趣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분위기가 차분한 것이 식사를 즐기기에는 더 좋다. 지난해 여름인가 한국에도 쉑쉑버거가 진출해서 매장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 쉑쉑버거 매장 앞에는 젊은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져있어서 주변 한가한 매장들과 달리 쉑쉑이라는 브랜드의 차별화가 돋보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왜 젊은 한국 사람들이 쉑쉑버거에 환호를 할까? 내가 쉑쉑버거를 한 입 먹은 다음 말했다. 음, 맥도날드 햄버거보다 역시 맛이 있는데. 그러자 딸아이가 한 입 먹고는 말했다. 가격이 두 배잖아요, 아빠! 4년 전에는 학생이었으나 이제는 사회인이 된 딸아이의 현실적 감각이 귓등을 찌르르 울려왔다. 그렇구나, 가격이 두 배라는 사실은 브랜드의 명성과 맛 속에 감춰져버리고 미각을 포장한 만족감만 입술에 남아있는 셈이구나. 검정색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쉑쉑버거 매장 근무자 숫자가 주방에 12명, 그리고 매장에 여섯 명 그러니까 도합 18명가량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더블 패티 쉑쉑버거 한 개와 프렌치프라이와 블랙엔화이트 셰이크 한 잔으로 점심을 마쳤다. 그리고 가면서 생각나면 먹으려고 블랙엔화이트 셰이크 한 잔을 더 시켰더니 사울보살님도 따라서 한 잔을 더 시켰다. 나중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 돌계단에 앉아 사진을 팡팡 찍어대면서 서울보살님 몫까지 셰이크를 다 먹고는 배탈을 슬쩍 걱정했으나 별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그런데 그게 말이지 아이스크림을 먹고 배탈을 걱정하다니 참, 세상이 많이 변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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