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3]
나는 아내가 우동가게에 나가 일하는데 자극을 받아 돈벌이가 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은행원을 하다가 세상에 나오니 적합한 일이 별로 없었다. 한번은 벼룩시장 광고에 실린 야간 경비원 일에 경험삼아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경비업체 직원을 만나서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학력은 고교 졸이라고 적었다. 혹시 대학졸업자라고 하면 채용을 거절한다는 직업소개소의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채용이 되었다. 월급은 2000년 당시에 70만원 가량 된다고 했다. 근무조건은 이틀 일하면 하루 쉬는 조건이었다. 급여는 적었지만 오후 6시부터 근무가 시작되기 때문에 주간에는 독서나 집안 일등 일상적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더욱이 야간에 개인 자택 경비 일을 하면 아는 사람을 만날 염려가 없었다. 나는 직업소개소에 소개비 10만원을 지급하고 내가 일할 장소로 갔다.
경비할 집은 세검정에 있는 대한항공 창업주이며 회장 조중훈씨의 집이었다. (대지 규모 약 2천평에서 3천평으로 추정) 그런데 나는 6시 이후 야간에 근무하기 때문에 그 집안사람하고는 한 번도 집안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 집 이름은 부암장이라고 하였는데 예전에 최고 권력자의 비서실장인 이후락씨가 살던 집이었다. 담장 아래는 중국요리집 하림각과 사우나탕이 있었다. 그 집의 구조는 위쪽에 본채가 있고 아래쪽에 별채가 있었다. 본채는 아들 내외(조양호사장 부부)가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지금은 비어있고, 별채(2층 양옥)에 회장 부부와 가정부가 살고 있었다. 그 밖에 넓은 정원과 경비통제실을 포함한 경비동(警備棟) 둘, 법당 한 채, 지하창고, 각종 꽃들이 있는 온실, 차고, 본채 앞 경비초소 1개 등이 있었다. 법당은 불교 전국신도 회장을 할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도였던 예전 집주인 이후락씨가 세운 것이었다.
경비직원은 재벌회장의 계열회사(정석산업)에서 파견한 경비실장과 경비원 두 명이 있었고 사택 안을 이동하며 야간경비만 전담하는 나를 포함한 외주용역 경비원 6명이 있었다.
경비실장은 회사의 부장급 사원이었고, 회장의 출입 시에는 직접 문을 열고 닫는 역할을 하였다. 그밖에 회장 운전수와 온실농장 관리인이 있었다. 계열회사의 경비실장과 경비원은 회사의 정규직원으로서 월급도 괜찮았고, 자녀 학비를 포함한 각종 혜택도 있었다. 경비실장은 회장사저의 각종 심부름과 CCTV를 활용한 주간 경비를 전담했고, 경비원 두 명은 교대로 주간 순찰 및 경비업무와 야간 숙직, 본채와 별채의 난방 보일러 관리 등을 맡았다. 경비실장은 오후 여섯시면 퇴근했다.
그러나 진작 궂은일을 하는 사람은 야간 경비 아웃소싱 업체 소속인 우리들이었다. 우리는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하루 밤 내내 순찰을 하거나 초소에서 머물며 경비업무를 수행했다. 집이 몹시 넓어서 한 바퀴 순찰을 도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루에 세 사람이 교대로 순찰을 한 명당 4~5회씩 실시했다. 순찰 코스는 먼저 순찰키와 무전기 랜턴을 들고 경비통제실에 있는 순찰 포인트에 첫 키를 돌리고, 다음에 법당 앞 순찰 포인트, 다음에는 본채 앞 순찰 포인트, 다음은 본채 지하실 순찰 포인트, 다음은 지하창고 순찰 포인트 2곳, 다음은 농장 앞 순찰 포인트, 다음은 본채 앞 경비초소 순찰 포인트, 마지막으로 별채 두 곳의 순찰 포인트의 키를 돌리면, 전체 10곳의 순찰을 모두 끝낸다. 그런데 아침에 순찰이 모두 끝나면 우리는 마당청소까지 하여야 했다.
본채의 경비초소와 별채의 정문 앞에서는 다음 교대 자가 올 때까지 의자에 앉아 경비를 선다. 순찰 중 어려운 점은 지하창고에 내려가 순찰을 돌 때이다.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창고는, 밤에는, 귀신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느낌을 갖게 한다. 들은 얘기로는 전에 근무하던 경비원이 창고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튀어 나왔다고 한다. 시커먼 물체는 집에 나돌아 다니던 야생 고양이였다. 그러나 그는 귀신이 나타난 것으로 착각하고, 뒤로 넘어져 기절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바닥에 오래 쓰러져 있다가 다음 근무자에게 발견되어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한다.
원래 부암장이 있던 곳은 6. 25때 전투가 치열하게 일어났던 곳이며 따라서 시신들이 많이 묻혔던 곳이었다. 오랫동안 근무했던 경비반장은 어느 날 새벽녘에 경비초소에 앉아 있는데, 앞에 소복을 입은 여자가 희미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겨울과 여름에는 근무환경이 몹시 열악하다. 여름에는 숲이 많아 엄청나게 굵은 모기가 사정없이 피부를 물어뜯는다. 모기가 물어뜯고 난 피부는 금방 크게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집이 넓어 지하를 오르내리면서 순찰을 한 바퀴 다 돌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면 눈 청소까지 아웃소싱 경비 몫이었다. 또한 순찰을 하는 도중, 초소가 없이, 겨울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1시간 동안 바깥에서 근무하는 별채 경비는 엄청난 추위를 이겨내야만 했다. 순찰시 지형적인 굴곡이 심한 곳에서는 빙판으로 인해 미끄러져 허리를 다칠 수도 있었다.
정규직 경비와 아웃소싱 경비원 사이의 알력도 만만치 않았다. 첫 번째 순찰 포인트인 경비통제실에 들어갈 때는 문을 여는 소리가 조금 난다. 그런데 K라는 정규직 경비원은 문소리와 키(Key)소리를 크게 내어 자신의 잠을 깨웠다고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원래는 숙직자는 잠을 자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는 정규직 경비라는 우월한 지위를 내세워 우리를 지배하려 했다. 어느 날 조용히 문을 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문을 연 순간 K가 깨어났고 나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나도 화가 나서 같이 맞붙어 싸운 적도 있었다. K는 나이가 많은 아웃소싱 경비반장하고도 상욕을 하면서 싸운 적이 있었다. 요즘 사회에 문제되고 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차별이 하급직업인 경비직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직에 들어올 때의 신분이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상호간에 큰 차이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경비반장도 우리들에 비해서 약간의 특권을 누렸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추위를 견뎌야 하는 별채 경비를 하지 않았고, 순찰도 2회밖에 돌지 않았다.
지하창고에 가면 회장 집에서 먹을 제주 생수가 가득 쌓여 있는데도 우리에게는 수돗물에 보리차를 끊여 먹게 했다. 급여도 다른 건물경비원에 비해서 최하 수준으로 지급했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한 말이 실감났다. 저녁 요기로는 라면을 끓여 먹게 했다. 라면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공급해 주었고, 보통 한 끼에 두 봉지 끊여 먹었다. 아침에는 우유 한 병이 지급되었다.
경비를 선발할 때 호적등본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범법자도 경비직에 들어 올 수 있다. 나는 어느 날 본채 앞 경비초소에서 교대시간에 다음 교대 자와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그는 나에게 사람을 찔러 죽이고 감옥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사건의 내용은 애인과 선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었는데, 옆에서 건달들이 시비를 걸어 애인 앞에서 망신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에 젊은 혈기를 못 참고 격분하여 주방에 있는 식칼을 들고 상대를 찔러 죽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온 후 살길이 막연해서 경비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여기 오기 전에는 급여가 많은 K 일보사 본사사옥에 건물경비를 맡았었다. 그런데 경비조장이 사사건건 간섭하고 못살게 굴어서 참고 참다가 그의 목을 맥주병으로 찌르고 재차 감옥에 들어갔다가 출소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 자에게 잘못 보이다간 나도 그의 칼에 찔리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회장의 차고에는 차가 세 대가 있었다. 벤츠 리무진 한 대, 랜드로버 짚 한 대, 부인용 리무진 한 대가 있었다. 그리고 본채는 비워 있었는데도 건물 안에 있는 그림이나 집기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난방을 가동했다. 집이 없어서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도 있는데, 비어있는 집에도 일 년 내내 비싼 난방이 가동되고 있는 현실이 약간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2일 근무 후 아침에 퇴근 할 때에는 정규직 경비실장에게 반드시 인사를 하고 하루 휴식에 들어가게 했다. 일종의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는 한 달이 채 못 되어 그만두게 되었다. 왜냐하면 순찰키를 돌리는데 손 기술이 없는데다 키가 오래되어 잘 찍히지가 않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야간 근무가 다 끝난 아침에는 경비실장이 그 날 밤 순찰을 확인하기 위해서 순찰키가 찍힌 종이를 체크한다. 그런데 내가 순찰을 돈 시간에 키가 찍혀있지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어 나는 힘을 주어 키를 여러 번 세게 돌렸다. 그러다가 힘을 너무 많이 가하는 바람에 키가 휘어지기까지 했다. 여러 번 그런 일이 발생하자 나는 미안해서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즘 같으면 순찰 키 대신 카드로 대신 찍을 것이다. 내가 그만 둘 때 경비실장이 “혹시 근무하면서 애로점이 없었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떠나는 마당에 K에 대한 일을 거론하고 싶지 않아 별 일이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그만 둔 후 급여 날짜가 되었는데도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용역회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근무기간이 한 달이 안 되어 급여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밤에 잠도 안자며 열심히 근무했는데도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말에 나는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밑바닥 인생이라고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대한 피해자도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총무부장과 통화하고 만약 근무일 수 까지 계산해 주지 않으면 해당 노동부 사무소에 고발하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자 그는 당황한 듯 하였고,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겠다고 하였다. 얼마 후 나는 해당 근무일 수 까지 일당을 계산한 급여를 수령 받을 수 있었다.
첫댓글 26년 전의 일을 놀라운 기억력으로 소상히 써주셔서 실감나게 잘 읽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고, 명색이 재벌인데 그리도 급여가 인색했다니 혀를 차게 되네요.
그리고 한 달을 못 채웠다고 급여를 못 주겠다니, 그런 횡포도 없네요.
따끔하게 잘 말씀하셔서 권리를 찾으셨다니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떠나실 때 K에 대한 일을 거론하지 않으신 대목에서 다저스님의 훌륭하신 인품을 느낄 수 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저의 부족한 글에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 주시는 항아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ㅡ 급여는 정석기업에서 (조중훈회장을 지원하는 한진 계열사)파견하는 정규직 경비원 대우는 높은 수준인 반면 저희같은 아웃소싱 경비직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대우를 한 것입니다.
아마 이 점에 대해서는 조중훈 회장도 전혀 보고를 받지 않았을 것 같고 관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약자에게 항상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즉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세계이고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입니다 ㅡ
다저스님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네와는 차원이 다른 집의 사는 모습도 들여다 보게 되었네요..
지킬게 얼마나 많길래 경비원을 저렇게나 많이 쓸까요.ㅎㅎ
호기심에 금방 읽었네요..
서울의 SKY 대학을 졸업하신것도 숨기시고 고졸이라고 하셔서
경비일까지 마다하지 않으시면서
가장의 역할을 다 해내시고
그 외에 여러가지 일하시며 고생하셨을
다저스님께
존경의 마음까지 생기네요..
이제는 몸과 마음이
모두 평안하게 노후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정신병원에서 보호사로 일했다는 체험기까지 읽어 보신다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정규직장을 그만두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보면 밑바닥 인생이 어떻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헙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드님인 예수그리스도도 성장기에 목수라는 힘든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우리의 힘든 삶과 연대하고 일치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ㅡ
다저스님~~^
지난 힘든일들도
지나고나면
모두 추억이되여
이렇게
초연하게 글로
남겨지네요.
어쩌면.
힘들었던시절조차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요.
지나놓고 보면 아무리 힘든 일도 초로와 같은 인생 길에서 봄밤에 들녂에서 꾼 하루밤의 꿈에 불과하죠ㅡ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님댁 이야기에
깜짝 놀랐네요..
제가 1996 년까지
한진 그룹 건설회사에서
비서로 근무하여
조중훈 회장님댁 부암장 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지만
경비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았고 고생을 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ㅠㅠ
어쩌면 그렇게 오래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시어 글을
쓰신것도 대단하지만
은행에서 근무하시고 퇴직하셨는데도 가장의 책임을 다하시느라 험한일도 개의치
않으시고 열심히
살아오신 다저스선배님께
존경하는 마음을
드립니다~^^
보라님은 그러면 정석기업도 잘 아시겠네요ㅡ 한진그룹 건설회사 회장 비서로 근무하실 정도면 대단한 실력과 용모로 발탁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진그룹 회장은 조중훈 회장님 한분 이셨고
저는 건설회사 에
서 전무님 비서로 근무했어요..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계열사중 하나였는데 인하대를 포함 그룹 계열사 빌딩 용역업무를 주로 하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당시 부암장 회장님댁도 관리를 했었군요..
다저스선배님 글로인해 30여년전 추억을
소환하게 되었네요..ㅎㅎ
은행에서 퇴직하신 분이
밑바닥 에서 좋은 경엄을
하섰군요 ᆢㅎ
사람사는곳에는 직업이
천칭만칭 이지요
엽집 아저씨가 경비일 하시는데 요즘에는 월급도 많이받는다 하면서 괜찮은것
갔다고 하네요 ᆢㅎ
좋은경엄 하섰네요ᆢ
대상님 저의 글에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ㅡ저는 낮에도 일하는 경비직은 노출 때문에 하지 않았습니다ㅡ
참말로,
인간사 다양합니다~~`
늘 고마운 지금 이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