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안공(遂安公)대경(大儆)가 후예 종손
이어가기의 비운적 운명이아라 할까 ※
지금 필자기 이글을 집필하면서 머언 하늘를 우룰어 봅니다 마치 주마등같이 먼저 인간 생의 고향 즉 돌아온 저세상으로 가신 수안공(遂安公) 대경(大儆증 이조판서(吏曹判書)을 위시한 모든 조상님들이 상공을 매암돌며 우리 현서면가(西面家) 일명 서촌가(西村家)라함 의 후손들을 위로 하듯 소용돌이치는 양 회오리처럼 저의 뇌리를 스치고갑니다 저는 펑펑 쏟아지는 하염없는 눈물를 흘리며 외처봅니다 두둥실떠가는 뜬구룸이 위로하듯 미소짓는걸까요
[ 조상(祖上)님들 어찌하옵니까 이망극함을 우리 서면가의 면면히 이어지는 종손가의 종손의 생손들이 아슬아슬 이여야 저만 합니까 부디 종손의 생손울 부하게 내리게 점지하여주십시오 할아버님들 -------] 저는 황공하게도 수안공 13대 종손으로 또 내자식놈이 그 대를 이으리라 믿으오나 너무도 자손의 숫자가 미미하개 태어나는 현실에 이처럼 푸념하듯 창공을 향에 염원을 외치는 누를 범하고 사연의 까닭을서면가 식구들에 고하고져합나다 서면가의 병자(炳字)에서 6대조 통덕랑(通德郞)이시며 진사(進士)이신 사안(士安) 하주(夏柱) 할아버님까지는나름대로 위로 7대조 한명(漢明).8대조 언보(彦輔) 9대조 참군공(參軍公) 정기(鼎基)세분이 외독자로 점점이 이어지더니 6대조 사안 하주(夏柱)우리서면 한마당 조부님떄 즉 현재 서면가 일대의 후손들의 조부님들이신 병자에서 오대조가 되시는 3형재분들 태환(泰煥).진환(晉煥).계환(啓煥).나으시니 서면가 우리 후손들이 자손 번창하여 발안에서 3마장거리 세면의 집성촌을 이루다 점점히 흩어져 타지에거하는 세면유가들이 많아 진겄입다 그중 맏이이신 필자인 나의 4대조 고조부이며 무과주부(武科主簿)치덕(致德) 할아버님 형님 무과첨정(武科僉正) 치신(致信) 이분이 필자의 4대고조 큰할아버님이며 종손이시나 자손이무하여 아우이신 필자 고조부 큰아드님 진택(鎭宅) 필자의 큰증조님을 양자하신다 허나 그분이 생산하신 자손 조승(祖承) 외아드님 역시 자손이무하여 진택 큰조부님 아우이신 진혁(鎭赫) 즉말하자면 필자의 친증조부께서 생산하신 나의 조부 기준(基濬) 일명 덕준이라고도 하며 덕수라고 불리우시던분(실은 이분이 나의 조부님이신대 위로 근준(謹濬)이라는 형님이 계시였으나 자손이 무하시었으며 필자 조부이신 기준 조부님이 아직 자손을 생산하시기 전이라 필자의 선친이신 6촌형님댁의 손으로 필자 당숙 인목(仁穆)씨를 양자하십니다 필자 큰 증조부 진택 할아버님 의 자 조승(祖承)일명 공서아른도 자손이무하니 이무슨 운명인가 할수없이 신미보에 기재 되엿듯 우리선친 민근(敏根) 일명 정봉(定鳳) 이라고도한 필자의 선친께서 형재를 여럿 생산하시였으며 또한 필자의 숙부이신 용근(龍根)일명 정용(定龍)어른께서도 제조회사 삼원기계 대표이사를 지낸 병찬(炳瓚) 나의 사촌 형님을위시해 여려 자손을두시니 소의 기계유씨 마포 시대를 열어 필자도 사촌 형님과 같이 삼원기계를 창립 활동하여 나도 임원을것처 정년퇴임후 인생말년이글을 쓴다 그럼 다시 종손가 이야기를 쓰자 필자는 위로 형님 둘이 계시었으나 모두 미장가 시절요절하야 필자본인이 잇기애 종손가 번창해갈 것을 기대하여 여기 비운의 이야기를 기록 합니디 다행 스러이 필자에게는 형재의 자식이잇고 나의 사촌들여럿과 손주들이생산되여 있어 종손가의 지지멸멸의 염여는 없으나 어찌 우리나라 종손가의 운명은 이모두 비슷한 운명을 않고가는걸까, 그래서 나도 기계유씨 대종회에 1991년 완성된 족보 신미보 제작시 대대적으로 참여하여 우리서면가 유씨들 남녀 합처 500 여인의 족보 제작시 조선조 고종황재시절 기계유씨중 유준이라는 분이 개신교를 도입한 죄로 제주감영에 영치 되어 있을 때 전국의 모든 기계유씨 일문를 조사 하라는 조치에 우리 세면가도 풍지박산을 못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감 스럽게도 필자 구대조 참군공(參軍公) 정기(鼎基) 어른께서 그당시 경복궁 수비근위대 장급으로 일를 하던 시절 우리나라에 도입된 구교 일명 천주교가 들어와 민간인은 물론 궁중에도 은밀히 예수교를 믿는일들이 비일하여 우리 참군공도 열루되여 관직에서 물러난 경력이 있음이 드러나 몇백년후 고종황재시절 세면종손가가 일시에 풍지평판이 일어나 수원 종가의재산과 종산의 유지가 어려와 지는운명이되여 종손가의 모든 생활, 교육.보존의 유지가 궁핖해지니 필자의 조부가 구한말 시절부터 유람과 방랑의 시기를 맏는 파국에이르럿던 시절이 있엇다 허나 우리선친과 숙부가 일본의 침략으로 외정이 시작된 경성 지금의 서울 마포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나의 선친이 크게 성공하여 필자에 어린시절 세면종손가의 풍족함으로 오늘 내가 잇기까지의 종손가가 유지지속되는 국면에이른다 선친께서 말씀 하시기를 [전국의 우리기계 유씨들이 80%가 기독교 신자이나 나는 선언한다 나는 우리 가문을 지키기 위해 무신논자로 살터이니 나는 개념 하지 말고 어떠한종교도 믿고 안믿는건 본인 의사에 맏낀다] 하신 말씀이 있어 필자는 무신론자도 유신론 자도 아닌 자유인이 되어 우리 세면종손가를 굳건히 지키다 생을 마감 할 것이다 그간 우리 족보기재도 종손가가 지지멸멸흘러 부실하다 선친께서 당부하시기를 너는 역사 공부를 게을리 하지말고 알아 두어 가내 가화만사성의 표본이되라는 당부가 있어 필자는 학창시절 역사 공부에 열중하여 모교 숭문중고등학교시절 나의 있지못할 스승 권정식 역사와 한문선생 이 학교에 일년내내 숙직을 서시며 나와 선후배 3인을 3년간 개인지도도 하시였으며 그분의 안내로 해하동 역사 총각선생들이 운영하는 과외 지도도 열심히 밭아 다른공부는 모자라른 편이나 역사공부에 좋은 고육이 있어 내오늘 종사 일를보매 크게 도움이되고잇다 다시 신미보 제작 시절부터 이야기를 하자 족보를 보면 알지만 종손가의 이어점이 니의 큰조부님에서 끝이나 종친이모여 네가 종손이니 그리 이으라 하였으나 내가 만류 하엿다 이유는 이러하다 [여러분 지금은 조선 시대가 아님니다 꼭 그 자리에 손을 잇는것보다 거기서 종손있기가 머물었으면 자손이 무하다 하고 끝을 냅시다 그러나 족보를 주시하면 결국 내게 제일 종손이 되는 분명한 일를 양자를 잇는다는 빌미를 제공 한다면 후손들이 볼떼 아리송해지는 것보다 자손이무함 이라하면 외 무슨 일로 그선이 끊켰는지 쉽게 알수 있지않습니까 하니 모두 수궁 하여 이제 앞으로 종손가의 선잇기는 끊키면 끊키는대로 기록해 후손들이 얼른 알수 잇게하기로 합시다] 하니 모두 고개를 끄덕여 1991년 신미보도 2017년 정유보 족보도 내뜻대로 진행 되어 제작되였으니 종손 찾는분들은 끊어진 이음을 계속 하기보다 다음 우선자를 찾아 보시면 됩니다 유의 하여 이해 해주시기 바랍니다.사실 신미보 제작시에는 나의 사촌 형님 병찬(炳瓚)이 자본을 투자하고 집안내 나이드신 조카님순재(順-在)님께서 글씨솜씨가 뛰어나 수단일맏고 필자는 역사공부를 한덕분에 모든인지사실를 확인 조카님과 때로는 도청 시청 군면 구청등을돌며 종인 사실유무들를 역사적으로 증명 올바르게 500여 종인 들기록에 만전을기해 작성 족보를 완성수단 하였습니다 유의 하여 주십시오 종친여러분 저는 마포에서 태여나 누대를 이고향을 지키는 지킴으로 거듭나며 이고장 사람들이 노년기가 되어 저세상으로 돌아갈 죽음의조인 연령이 되면 옛시인의 구시조를 응용 읊어대는 유행시가 있어 여기 적어봅니다 푸르ㅡ른 창공위 북악산을 바라보며[ 잘있거라 삼각산아 다시보마 한강수야 벼랑청 남쪽하늘을보며 돌아오마 관악산아 동녘의 기슭 하늘을 향해 기다려라 복사봉아 그꼭지점 독막골 혈매기(이고장에서는 설매기라고부름)를 두루치고지나 서쪽하늘의 아우봉 한강수의 도도함을보며 너를 어찌할고 밤념의 푸르른물결아 돌아올 때 화안대소로 맞이해다오---] 애끌는 이고장 선인들의 고향으로 돌아 서는 애처러운 모습입니다 두둥실 떠가는 뜬구름의 한점 흘러가는 인생의 역정도 필자도 팔십 고령의 죽음에조에 들어 영원한 세면가의 발전들이 벽재의 선산이며 발안의 선산이며 천마산선산이며 우리 세면가의 모든 종산을 종인들 자주 찾아 조상의 한과 뜻을 기려 나갈 것을 두손모아 기원 하며 두서없는 필을 각필합니다 가정모두에게 행복함을 조상님들 영전에 업디여 빕니다 건강하시고 평안 하옵소서 가정내내--------
2017년 8월 말복을자내며
수안공(遂安公)13세 종손 병은(炳銀)이사모의곡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