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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지 초심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합니다. 등산을 할 때도, 정상을 앞두고는 거의가 깔딱고개를 경험합니다. 깔딱고개를 극복해야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렇듯, 어떤 분야든 끝까지 완주함으로 성공하는 데에는 순탄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서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나 함께 하는 동료들을 통해, 어려움을 겪거나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다는 유혹을 받음으로, 초심을 잃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그러기에, 초심을 유지하고 끝까지 완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업에 성공한 기업가들의 경우를 보면, 그 사업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나 마음의 갈등이 여러 번 있었음을 볼 수 있고,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 역시, 상사나 동료, 직장 환경으로 인해 퇴직하고 싶은 마음의 갈등이 여러 번 있기도 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집니다. 전공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책과 씨름을 해야 하고, 전공분야의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입술이 짖무르거나 건강을 상하는 일들을 겪는 것이 매사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모든 악조건을 끝까지 견디고 완주한 사람만이 성공자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조금 하다가 쉬운 것만 찾거나 일확천금을 찾는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든 완주하지 못하고, 실패자의 자리에 있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여, 주여”만 찾는다고 믿음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세우고, 내가 갈고 닦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믿음 좋은 신앙생활을 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렇게 내 자신의 노력만을 믿고 의지하기에, 하나님을 놓치게 되고, 하나님을 놓치는 순간, 신앙생활을 포기하게 됩니다. 50,000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죠지 뮬러에게 신앙의 어려움이 없었을까요? 그는 처음부터 기도하는 데로 응답을 받았을까요?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에게는 어려움이 없었을까요?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성군이라 불리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심으로 장미꽃의 융단이 깔린 탄탄대로만 걸었을까요? 여러분, 사람도 조변석개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어려움이 있다면, 더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기쁜 일이 있다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께 문둥병 치료를 받은 10인 가운데 사마리아 사람 1인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믿음의 초심을 유지해야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더더욱 충만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시면, 보이는 것만으로 살지 않고, 믿음의 초심을 가지고 일평생을 살아온 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사로잡힌 채 살아왔습니다. 그가 누굽니까? “갈렙”입니다. 갈렙은 믿음과 기도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4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며,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의 초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 146: 5을 보시면,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갈렙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갈렙과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과 은혜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9절을 보시면,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의 간구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합니다.
본문 앞의 6절을 보시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합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하지 않고, “그니스 사람”이라며, 지명까지 밝힌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 치료받은 10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한 1명을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며, 지명을 밝힌 것과 같습니다. 즉, 갈렙은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이 아니라, 에돔이라는 이방 지역의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 이방인의 믿음이 순수 혈통의 이스라엘보다 월등했다는 겁니다. 그의 믿음이 이렇게 월등한 것은, 이스라엘은 눈 앞의 환경에 의해 하나님의 약속을 저 버리고, 논리적인 환경을 따랐으나, 이방 사람인 갈렙은 논리적인 환경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충성한 겁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사실”만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믿음”을 보아야 합니다. 앞서서 인용한 시 146: 5을 다시 보시면,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우리의 도움으로 삼고,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믿음의 초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히 11: 1을 보시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합니다. 민 14: 24을 보시면,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라고 합니다. 바로 이 약속을 45년이 지난 현장에서 갈렙은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요청한 겁니다. 그는 이제 85세입니다. 그의 체력이 45년 전인 젊은 나이의 체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그는 85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헤브론을 차지 할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갈렙과 같이 초심에 의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성실과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성실과 충성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어떠했습니까? 큰 형 엘리압의 말처럼, “교만과 완악함”을 가지고 싸웠습니까? 삼상 17: 45을 보시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했고, 이어 47을 보시면,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고 합니다. 다윗은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웠던 겁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 충성할 뿐, 그의 속내는 자신의 교만에 있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사 41: 10을 보시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합니다. 또, 마 28: 20을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도움이 되시며,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갈렙과 같이 초심을 유지하며 믿음의 성실과 충성으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따르며 간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시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의지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시면,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여호수아에게 갈렙이 찾아와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 갈렙은 여호수아와 직책만 달랐을 뿐, 이스라엘 최고 지도자인 여호수아와 동급이었습니다. 민 14: 30을 보시면,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그랬기에,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가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입니다. 그러기에,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의 원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45년전에 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여호수아에게 헤브론을 자기에 줄 것을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본문에서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라고 함과 45년 전 함께 정탐했던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이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한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면, 피하고 싶은 성읍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노년의 갈렙이 이 성을 요구한 것은, 아낙자손들이 거인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더 거대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세월의 의미는 없습니다. 또,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도 무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지금 나에게 있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믿음도 아니요, 미래의 믿음도 아니며 또, 부모, 형제, 자녀, 배우자의 믿음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만을 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믿음이 확실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행할 수 있도록, 미리 일을 행하십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것이 갈렙의 믿음이었고, 이 믿음으로 갈렙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헤브론 정복하고자 한 겁니다. 갈렙은 전쟁이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만 함께하신다면 자신이 아무리 늙고, 자신의 무기가 아무리 초라한 것일지라도 반드시 승리한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시 33: 16을 보시면,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정중하게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요청한 겁니다. 이러한 갈렙의 신앙이, 성도된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시 28: 7에서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신앙과 요일 5: 4에서,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한 것처럼, 성도된 우리의 믿음만이 세상을 이기고, 우리의 환경과 현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 40: 31을 보시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이렇듯, 성도된 우리의 믿음이 오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을 앙망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의지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4 - 15절을 보시면,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갈렙과 같이 믿음의 초심을 가지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본문에서 “온전히”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밀레”의 의미는 “충만하다, 가득채우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갈렙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향한 충성의 믿음으로 자신을 충만케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고 한 것은, 신 1: 36을 보시면,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를 볼 때,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 보고가 있을 때, 갈렙의 믿음을 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갈렙의 믿음은 자신과 하나님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어, 본문 15절을 보시면,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거인이었습니다. 또한, “아르바”는 아낙 사람들 가운데 신장만 큰 자가 아니고 명성도 매우 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본문에서는 모든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합니다. 본문 15절의 끝 부분을 보시면,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합니다. “전쟁이 그쳤더라”는 이 한 마디에, 갈렙이 초심을 잃지 않은 “한결같은 믿음”을 어여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도 본문의 갈렙과 같이, 믿음의 초심을 유지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해 충성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을 행하십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는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로 인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도 본문의 갈렙과 같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충성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우리가 거하는 환경이나 공간, 그리고 우리가 목표로 하는 그 무엇을 바라보며, “하나님,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간구하심으로, 우리의 소망을 우리의 노력에 근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소망에 근거해야 합니다. 이로서, 우리에게도 “내가 있는 그 곳에 전쟁이 그쳤더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간증들이, 우리의 삶 속에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