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굴참나무에게 유서를 쓴다'는 시인
서정란 시인의 <동국문학상>수상을 축하하며...
“어린 굴참나무에게 유서를 쓴다//봄이면 잎 피우고 꽃 피워/가을이면 열매 익혀/길짐승 날짐승 먹잇감으로/후드득 떨어주고 가는 굴참나무에게/ 나를 내주고 싶다고//내가 세상에 와서/그 무엇이 되려고 일생을 몸부림쳤던/몸뚱이 하나/어느 것 하나 쓰일 곳이 있다면/우주의 질서를 거스른 적 없는 굴참나무에게/나를 내주고 싶다고//그때 몸 바꾸어 태어나는 일/굴참나무 열매가 되어/주린 창자를 채워줄 때/비로소 살아 이루지 못한 나의 꿈이/완성되는 것이라고//여린 팔로 온힘을 다해 하늘을 밀어 올리는/어린 굴참나무에게 유서를 쓴다."(서정란 시인, 여린굴참나무에게 쓰는 유서)
▲서정란 시인
나는 서정란 시인의 <어린 굴참나무에게 쓰는 유서>란 시를 무척 좋아한다. 굴참나무는 우주의 질서를 거스른 적이 없다. 그런 굴참나무에게 유서를 쓰고 싶다는 시인의 티 없는 마음이 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한 때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아내와 함께 유서 한 장을 딸랑 써 놓고 홀가분하게 여행을 떠나곤 했다. 형식상으로는 아이들에게 남겨주는 유서였지만, 시인이 말처럼 내가 세상에 와서 그 무엇이 되려고 일생을 몸부림쳤던, 어느 곳에도 쓰일 곳이 없는 몸뚱이 하나를 걸림 없이 버리고 싶어서 유서를 쓰곤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만약에 여행을 다니다가 죽으면 찾지도 말고, 찾더라도 화장을 해서 바다에 흘려보내라고 했다. 그것은 여행을 죽도록 좋아하는 아내와 여행을 하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숲 해설가인 나는 굴참나무를 유독 좋아했다. 참나뭇과에 속하는 굴참나무는 토목용, 표고버섯 재배, 땔감 등으로도 쓰이지만, 흉년이 들 때 굴참나무는 도토리 열매를 많이 맺어주어 배고픈 민초들이 도토리를 이용한 묵, 떡, 부침개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우리집 뒤꼍에는 굴참나무로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는데, 6년째 우리에게 맛있는 버섯을 내 주고 있다. 이 굴참나무는 내가 지리산 섬진강변에 살 때 소록도 인근 거금도 송괌에 계시는 스님께서 주신 것이다.
아내와 함께 송광암 참배를 갔을 때 스님께서 몸이 약한 아내를 위해 길이가 2m 정도 되는 굴참나무토막 열 개를 주셨다. 우리는 지리산에서 3년 동한 표고버섯을 따 먹다가 이곳 연천으로 이사를 그 굴참나무를 올때 가져왔다. 지금은 굴참나무가 다 썪어서 껍질이 다 버혀지고, 만지면 바스락 하고 가루로 떨어져 내리지만, 금년에도 예외없이 표고버섯을 내주어 아내와 나는 맛나게 먹었다.
어디 그뿐인가? 굴참나무는 껍질이 1cm 가량이 되면 벗겨서 코르크 병마개로 이용하고, 5, 6년이 지나면 두 번째로 벗겨서 쓸 수가 있고, 그러고도 벌채를 할 때 또 껍질을 벗겨서 사용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굴참나무의 영어표기는 ‘cork oak’라고 한다. 이처럼 굴참나무는 이 세상을 위하여 온 몸뚱이를 미련없이 다 내준다.
그런데… <어린 굴참나무에게>란 시집을 낸 서정란 시인이 제28회 동국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찌나 기쁜지... ‘어린 팔로 온힘을 다해 밀어 올리는 어린 굴참나무에게 유서를 쓴다’는 서정란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갈채를 보낸다.
나는 서정란 시인을 내 블로그에서 온라인으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몇 해 전 가을, 코스모스가 만발한 연천군 임진강 주상절리에서 오프라인으로 우연히 또 만나게 되었다. 임진강 주상절리에 만발한 코스모스 기사를 보고 남편과 구경을 왔는데, 그 코스모스 길에서 정말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를 보고 최전방 오지까지 가을나들이를 왔다고 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이었다.
나는 <동국문학상>이 얼마나 큰 상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린 굴참나무에게 유서를 쓴다는 시인의 수상 소식은 마치 내가 수상을 한 것처럼 기쁘게 한다. 몸뚱이 하나, 어느 것 하나 쓰일 곳이 있다면 우주의 질서를 거스른 적 없는 굴참나무에게 자신을 내주고 싶다는 시인의 순수한 마음은 내 마음과 일맥 상통한다. 그런 서정란 시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