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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변천사
25: 1-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5.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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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변동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 이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건강이상입니다. 물질이상입니다. 행복이상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인간은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인간은 멸망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다음에 건강도 물질도 행복도 말해야 합니다. 에덴동산부터 사람들은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났을까요? 시대마다 인간은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났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성전 시대
무성전 시대란 에덴동산 시대를 말합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 무죄시대였던 에덴동산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였던 아담과 하와는 때와 장소의 구별이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곳이기에 에덴동산은 낙원이었습니다.
2. 가죽옷 시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서 동산의 나무들 사이로 숨었습니다. 또한 부끄러움과 수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들어 입은 옷은 금방 찢어지고 말라 시들었습니다. 너무나 불완전한 옷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창 3:21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옷을 벗기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짐승이 피를 흘리고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삽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 값으로 짐승이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3. 돌단 시대
대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는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셨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돌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그 아들 독자 이삭을 바칠 때도 단을 쌓았습니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에 합격한 아브라함은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기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축복의 선언과 함께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브엘세바에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야곱도 벧엘 들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그 곳에 단을 쌓았고, 후일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도 세겜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 이스라엘’ 곧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족장들은 돌로 만든 단을 쌓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4. 성막 시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횃불 언약을 체결하실 때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 예언의 말씀대로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여년 만에 출애굽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까지 왔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꼭대기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셨습니다. 아울러 40일 동안에 걸쳐 성막 제도를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그대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막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약도’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의 지성소에 임재 하셨습니다. 인간은 뜰에 있는 문부터 번제단을 지나 물두멍을 지납니다. 그리고 성소로 들어갑니다. 성소의 성물들을 지나 지성소로 들어가서 법궤위에 있는 속죄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막의 뜰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성막의 뜰은 짐승이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피흘려 죽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성소는 성령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성소 안에 있는 세 가지 성물, 곧 떡상과 촛대와 향단은 모두 성령의 사역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성소는 성부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지성소에 있는 속죄소에서 인간을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5. 장막 시대
법궤를 앞장세우고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나안땅에 입성하자마자 길갈이란 곳에 성막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진을 치기 전에 먼저 꼭 진 가운데 성막을 세웠습니다. 그 후 길갈에서 32킬로 떨어진 실로로 성막을 옮겼습니다.
수 18:1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서 회막을 세웠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실로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복한 가나안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얼마 후 실로의 성막은 텐트형이 아닌 건물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다니던 광야 생활에서 안정된 생활로 바뀌자, 성막의 모습도 이동형에서 고정형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막은 하나님의 전이라고 이름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삼상 1:9에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제사장 엘리는 성막 관리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여 온갖 죄를 다 저질렀고, 그들은 결국 전쟁에 나가 죽고 말았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이스라엘은 법궤마저 불레셋에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실로의 성막은 껍데기만 남게 되었습니다. 법궤 없는 성막은 엔진 없는 자동차와 같기 때문입니다.
6. 성전 시대
다윗은 왕위에 오른 후 맨 먼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왔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였던 다윗은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법궤는 장막에 있는 것이 늘 송구스러워 하루속히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피를 많이 흘린 다윗은 성전 건축의 적임자가 아니어서 그 아들 솔로몬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480년 만에 아버지 다윗이 준비해 놓은 금 은 보석과 레바논의 값비싼 백향목 등으로 7년에 걸쳐 저 옛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에 화려하고 웅장한 성막형 성전을 지었던 것입니다. 성막이 성전화 된 후 낙성식도 대단하였습니다. 소를 22,000마리, 양은 120,000마리를 잡았습니다. 14일간이나 계속된 낙성식이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 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좆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 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같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다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성전은 불타버리고 저들은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이나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룹바벨의 지휘를 받아 다시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7. 교회 시대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헤롯이 지은 제 3 성전이었습니다. 46년 동안에 걸쳐 지은 대단한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자랑삼아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전입니까?” 성막에는 금값만 500억 원 정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전에는 금값만 900조원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성전이 얼마나 아름다운 건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토록 아름다운 성전을 보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주님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AD 70년에 로마 장군 디도가 예루살렘에 쳐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헐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뭉쳐 있기에 구심점을 없애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금을 떼어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돌들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던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짐승의 피 시대가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시대가 개막되었습니다. 교회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는 성전이 무너지고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교회 시대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인 교회에 대하여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칼빈은 말했습니다. “교회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공통되는 어머니여서 하나님의 자녀를 낳고 먹이고 기르는 곳이다” 따라서 교회를 어머니처럼 섬기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R. A. Torray는 말하기를 “신약에는 교회라는 말이 115번 나온다. 누구든지 교회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 된다. 오늘날 교회를 경시하면서 출석을 등한이 하는 이들은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8. 세마포 시대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던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모두 세마포 옷을 갈아입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계 19:8에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고 했습니다.
세마포 옷은 성막이나 성전에서 피를 뿌릴 때 제사장들이 입는 옷입니다. 대제사장도 피를 뿌릴 때에는 세마포 옷만을 입고 피를 뿌렸습니다. 대제사장이 법궤가 있는 지성소로 들어가 피를 뿌릴 때에는 반드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계 19: 13에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에게 의의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시기 위하여, 자신이 피로 물들인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성도들은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입혀주신 의의 세마포 옷을 입고 하나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성경은 가죽옷에서 시작하여 세마포 옷으로 끝나는 책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피 묻은 옷 가죽옷에서 시작하여 피 묻은 옷 세마포 옷으로 끝나는 책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기관이 있습니다. 성막과 장막과 성전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고후 3:12-16에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 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날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어지지 않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성막은 초림 예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성막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니라.” 모세가 기록한 것은 다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말한 것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성막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초림 예수의 모형입니다.
장막은 고난당하신 예수의 모형입니다. 장막은 성막과 법궤가 분리된 형태였습니다. 실로 성막에서 예루살렘의 장막 성전으로 법궤를 옮겨오기까지 112년이나 걸렸습니다. 이것은 고난당하신 주님의 모형입니다. 구약에서는 법궤가 하나님과 인간을 만나게 해주는 중보 역할을 하였고, 신약의 중보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장막 성전의 법궤가 고난을 당한 역사는 신약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역사에다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은 재림하실 예수의 모형입니다. 성전은 부활하신 예수 즉 재림하실 예수님의 모형임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자 유인들이 말하기를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라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성전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구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성막과 성전을 알면, 신약에서 초림 예수와 고난의 예수와 재림 예수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신약이 없어도 구약을 가지고 예수를 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약은 모두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구약은 짐승의 피가 흐르고 있고, 신약은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구약은 짐승의 피로 예배드리고, 신약은 예수님의 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짐승의 피는 일시적이지만 예수님의 피는 영원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내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짊어지셨다’ ‘죽으셨다’ 두 단어입니다. 둘 중에 하나만 빠져도 복음이 아닙니다. 죄를 짊어지지 않고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또 죄를 짊어졌는데 안 죽어도 복음이 아닙니다. 죄의 삭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제물은 짐승이었고, 신약의 제물은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생축 즉 동물이라고 신약과 구약을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즉 엡 5:2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변동의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든지 언제 만나든지 반드시 피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빨래를 짜보아라. 물이 나올 것이다. 성경을 짜보아라. 피가 나올 것이다. 구약을 짜보아라. 짐승의 피가 나올 것이다. 신약을 짜보아라. 예수님의 피가 나올 것이다. 성경에서 피를 보지 못하면 영적 장님이다.”
성막 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더욱 잘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총과 보혈의 공로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 주님께 죽도록 충성을 다 바쳐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