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룩의 옷을 입기 위해
창 39: 11-12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
어떤 한 여성이 난생 처음으로 기차를 타게 됐답니다.
그녀는 기차에 올랐지만 자기 자리를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리를 찾아서 앉았는데 왠지 처음 타는 기차인지라 답답했어요.
오래전 얘깁니다.
그래서 그녀는 창문을 좀 열려고 하다가 조금 연다는 게 많이 열었어요. 조금 닫는다는 게 너무 많이 닫아버렸어요.
그래서 그걸 닫았다 열었다 하면서 균형을 맞추느라고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는 햇볕을 가리도록 커튼을 조정했습니다.
그래서 신발을 벗고 의자에 올라가서 자기 가방을 들어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하려고 모자를 하나 새로 샀는데 그 모자를 어디에 놓을까 고민합니다.
선반 위에 올려놓으니까 누가 가져갈 것 같고 어디 걸어 놓으면 찢어질 것 같고 무릎에 놓으니 흘러내려서 짓밟힐 것 같고 여기저기 놓다가 결국은 무릎에 놓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곤 가방에서 빗과 거울을 꺼내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좀 편안하게 잠을 자야겠다했는데 갑자기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승객 여러분 이미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짐을 가지시고 이제 순서대로 내리시기 바랍니다.”
이분이 너무 당황해서 한 마디를 합니다.
“이렇게 빨리 올 줄 알았으면 쓸데없이 수선떨지 말걸.”
어찌 보면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인생은 총알 같이 빠르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속절없이 빠르다고 합니다.
세월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고 세월은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한 번의 소중한 세월을 보내는데 우리가 탐욕의 노예가 되고 죄악으로 인생을 낭비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한 번의 기회를 정말 소중하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처럼 귀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거류민과 나그네로 지낼 때 영혼을 거스르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부르신 이와 같이 너희가 이 땅에서 거룩한 자가 되라”고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인생을 끝내고 천국 문에 이를 때 주님은 우리에게 뭘 물으실까요?
네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업적을 세웠느냐? 얼마나 화려한 인생을 살았느냐? 이것을 묻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단 한 가지, “너희가 진정 거룩한 삶을 살았느냐”하는 것을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거룩한 삶을 살았던 한 인물을 또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요셉입니다.
요셉은 정말 노예라는 인생의 밑바닥의 자리에 있었지만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 치로 애썼던 사람이었습니다.
몇 시간에 걸쳐서 이미 제가 요셉을 설명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그의 몸에서 채색 옷이 벗겨지고 그는 노예의 옷을 입고 노예로 팔려갔는데 이집트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그는 시위대장의 눈에 들고 그 집에 가정 총무로 세워지게 됐습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가정 총무의 옷이 입혀지고 그 집의 모든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까지 위임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보디발의 부인이 용모가 빼어난 요셉을 보고 연모하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심지어 요셉을 사랑하게 됐고 자신과 동침하자고 요셉에게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은 번번이 그는 거절했지만 여인의 요청은 끈질기고 집요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안채에 볼일을 보러 들어갔을 때 마침 방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이 안주인이 요셉의 겉옷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오늘 나와 동침하자고 그는 간절히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은 뿌리쳤지만 여인은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실랑이 속에서 요셉은 겉옷은 벗겨지고 되고 요셉은 옷을 버려두고 그 자리를 뛰쳐나오게 됐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도망 나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보면서 요셉이 아주 중대한 실수를 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요셉은 그 옷을 버려두고 나오면 안 됩니다.
그 옷은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결정적으로 그 옷을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그냥 뛰어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얼마든지 요셉에게 누명을 씌울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다음 구절을 읽어보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셉을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이 이제는 증오의 눈빛으로 그 하인 놈이, 그 종놈이 나를 겁탈하려 했다고 요셉을 향해서 그는 삿대질을 하지 않습니까.
오늘 요셉은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법정에서 백 마디의 말보다도 결정적인 증거물이 더 효력이 있기 때문에 요셉은 적어도 그 옷만은 가지고 나와야만 했습니다.
더더욱 그 가정 총무의 옷은 어떤 것입니까?
그가 정말 뼈 빠지게 고생한 대가로 얻은 그의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시대의 옷이라는 것은 뭡니까?
신분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많이 받을 때, 그는 채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색동옷 비단 옷입니다. 형들과는 구별되는 옷이었습니다.
더구나 많은 노예들 가운데 그가 가정 총무 자리에 올랐다면 그 옷은 분명히 달랐을 것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옷, 선망의 대상이 되는 옷이었습니다.
아마 그 집에 있는 많은 노예들은 나도 저런 옷을 언제 입어보나! 나도 요셉처럼 가정 총무가 되면 너무 좋을 텐데. 모두가 부러워했던 옷이었습니다.
그 옷은 바로 권력의 상징이요. 명예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 옷을 거기에 두고 왔다는 것은 요즘 말로 표현을 한다면, 정말 너무너무 좋은 아파트 한 채를 날려 버린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평생의 소원이 40평짜리 아파트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것을 그냥 날려버리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요즘 신의 직장으로 말하는 공기업이 있습니다.
똑같은 대학 졸업자이지만 임금이 다른 회사에 비해서 월등하게 높고 신분이 안정된 공기업을 ‘신의 기업이다.’ 라고 말합니다.
신의 기업. 바로 그런 직장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좋은 일할 자리, 직업을 포기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요.
여러분 그런데 오늘 요셉으로 하여금 이 좋은 가정 총무의 옷을 포기하게 하신 분이 누구실까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이 유혹의 자리, 이 범죄의 자리를 뛰어 나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요셉은 자신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 여인의 손을 피하기 위해서 겉옷을 벗어 던지고 뛰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런 범죄의 자리를 피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셉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당당히 맞설 수 있습니다.
자기의 입장을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일단 옷을 벗어 던지고 그 자리를 피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그렇게 요셉을 밀어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마음속에 “야! 가정 총무의 옷을 빨리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나와라! 거기 너무 위험한 자리니까.”
만약에 요셉이 그 여인과 겉옷을 붙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면 아무리 강한 요셉일지라도 마지막에는 허물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겉옷을 던져 버린 채, 뛰어 나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마 보디발의 부인은 그날은 단단히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요셉 이 놈, 오늘 내가 그냥 보내주지 않을 거야!” 그래서 미리 그 여인은 환경을 조성했어요. 자기 가족이나 자기 종들을 다 다른 방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오늘 그 내실에는 요셉과 안주인 둘만이 은밀하게 마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은밀한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믿음 하에서 과감하게 그 자리를 떨치고 옷을 벗어 던진 채로 뛰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일을 하신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거룩을 지켜주시기 위해서 요셉을 강제로 떠밀어서 밀어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마 수많은 요셉들이 그 자리에서 희생당했을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옷을 벗어 던지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머물렀더라면 어떤 결과가 됐을 까요?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오늘도 수많은 요셉들이 그 자리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요셉이 그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귀한 가정 총무의 옷이지만 나오는 성결의 사람이 되길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을 밀어내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냥 그것은 예수님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이 비둘기 같이 순결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누누이 강조 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마태복음 5장 선상수훈 그것은 예수님의 정말 때 묻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말씀입니다.
그 “엑기스”의 말씀에서 예수님 뭐라고 하십니까?
아주 무서운 말씀 하십니다.
“너희 오른 눈이 너로 하여금 범죄 하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 보다 한 눈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무슨 얘기입니까?
그것만 아닙니다.
“너희 오른 손이 너희를 범죄 하게 하거든 그 손을 잘라버리라. 양손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 보다 장애인이 되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훨씬 낫다. ”
무서운 말씀 아닙니까?
여러분.
신문에 보니까 가끔 목사들도 범죄 하던데 교회 장로님들도 가끔 오르내리던데 우리 같은 집사야, 평신도야, 난 세례도 안 받았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자녀들을 불꽃같은 눈길로 감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앙의 연수나 그가 어떤 목사나, 안수집사, 타이틀로 그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내 앞에서 성결한 삶을 살았느냐 충성된 사람인가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거룩이란 무엇입니까?
내게 있어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범죄의 자리에 나를 노출 시키는 것이라면 그곳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비록 죄지은 것이 없어도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피하라는 것입니다.
거룩은 내가 입었던 어떤 소중한 옷이라도 미련 없이 벗어버리고 새 옷 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비록 그것이 영광스런 옷일지라도 그것을 미련 없이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허영의 옷도 벗어버리고 자랑의 옷도 벗어버리고 교만의 옷도 벗어버리고 우리 마음에 있는 탐욕의 옷도 벗어버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거룩을 옷 입기 위해서 내가 벗어버려야 할 과거의 누추한 더러운 옷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과연 어떤 옷을 벗어버려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 요셉이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가정 총무의 그 귀한 옷을 포기하고 그 자리를 떠날 때 하나님은 너무너무 기뻐하시고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서 가정총무의 옷을 벗겨버리셨지만, 더 좋은 옷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이집트의 제2인자의 국무총리의 옷을 준비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죄악의 옷을 벗어버릴 때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성결함을 위해서 벗어버렸다면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서 국무총리의 옷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더럽고 누추한 옷을 벗어버릴 때 하나님은 영광된 의의 옷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마다 참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에게서 죄악의 옷을 벗기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의 옷을 벗겨버리셨습니다.
로마병정들은 예수님의 그 옷을 벗겨버리고 그에게 우스꽝스러운 붉은 옷, 홍포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가기 면류관을 씌었습니다.
그의 손에 왕들이 쓰는 호를 장난스럽게 쥐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조롱하면서 침을 뱉고 채찍을 던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의 옷을 벗기기 위해서 자신이 친히 벌거숭이가 되셨습니다.
여러분 나중에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달력의 그림이나 영상을 보면 어떻습니까?
하체가 수건 같은 것으로 가려져 있지요.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이나 연구가들은 예수님은 하체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벌거벗은 그대로 드러내고 계십니다.
왜? 저와 여러분에게서 부끄러운 죄악의 옷을 벗겨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 부끄러움 가운데 자신의 몸을 벌거벗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죄의 옷을 입을 때 마다 예수님은 그 부끄러운 하체를 많은 사람 앞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성경은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에베소서 4장 22-24절.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절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절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아멘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들. 과거의 구속의 옷을 벗어 던져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가 다시는 범죄의 자리로 나가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는 죄의 옷을 우리의 몸에 거쳐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분이 나를 위해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 앞에서 당신의 수치를 드러내셨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그 일을 반복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범죄 하는 자리라면 그것이 어떤 소중한 것이라도 던져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어떤 귀중한 자리일지라도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정부역사는 그렇게 길지는 않죠?
우리가 얼마 전에는 광복 70주년을 보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부가 만들어진지는 70년이 되지 못하죠.
아주 짧은 역사입니다.
그래서 많은 과도기를 보내고 또 우리가 독재정권이라고 하는 어려운 시기도 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민주화에 과도기를 거치면서 사실은 공권력이 잘못된 일을 행하는 것도 누누이 봐왔습니다.
뭐 여러 가지 박종철 치사고문 사건을 통해서 때로는 드러나야 할 것이 은밀하게 숨겨지면서 왜곡된 것도 우리는 종종 봐왔습니다.
때로는 간첩이 아닌 사람들이 간첩으로 몰려서 긴 형을 살고 있다가 나중에 누명이 밝혀져서 다시 풀려나는 경험을 우리는 많이 했습니다.
어떤 과도기에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공권에 있었던 크리스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잘못된 명령을 상관으로부터 받을 때 그것을 행해야만 했고 또 자기 부하에게 그 명령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 일을 행하면서 그는 양심의 거리낌을 받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하나님의 법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갈등합니다.
고민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하루라도 거룩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그는 사표를 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 직장을 던져버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는 그의 정직함과 깨끗함이 인정받아서 사회에서 정말 존경받는 인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동료 한사람은 그 직장에 남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정말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거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지나간 정권에 대한 심판이 행해질 때 그 모든 잘못이 치부가 드러나는데 그 중심에 바로 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조사를 받게 되고 재판을 받고 그리고 오랜 감옥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불명예스러운 인생으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심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법이 아닐지라도 수많은 공직자들이 국회 청문회 문턱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장관 후보들. 총리후보들. 어떻습니까?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병역미필 그것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다 드러나지 않습니까?
뭐 물론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겠죠?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왜그럴까요?
우리가 그만큼 정직하지 못했고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종종 깨끗한 사람들이 크리스찬이라고 해서 종종 총리후보에 오르고 내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한 삶을 살기를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얼마 전 신문 뉴스를 보니까 전직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던 분이 파렴치한 방산 비리에 연류 되어서 수갑을 차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습니까?
적어도 해군 참모총장이라면 해군의 가장 우두머리에 서있는 그분들이 그리고 정말 자신의 몸을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 돈 몇 천 만원 몇 억 받아먹느라고 엉터리 무기를 인가해주어서 국방력에 근 엄을 낸다면 나라는 누가 지킵니까?
참모총장이 뒷돈 받아먹고 그 말도 안 되는 무기들을 전선에 놓는다면 전쟁에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이거 매국노 아닙니까?
우리 보통 시민들도 그런 일은 두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의 안위에 관련 된 건데 어떻게 엉터리 무기를 인가해 주고 뒷돈을 받아먹는 것이 해군 참모총장이라고 부끄러워서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썩어 가고 있고 우리 사회가 정의를 잃어가기 때문에 오는 결과가 아닐까요.
오늘도 수많은 크리스찬이나 논크리스찬들은 세상의 죄의 유혹 가운데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로날드 덴 이라는 어떤 경건한 크리스찬이 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이상한 광경을 보았어요.
수많은 돼지 떼들이 한 사람을 졸졸 따라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저럴 수 있나 너무 신기해서 뒷 따라 가보았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을 따라서 돼지들이 도살장으로 다 몰려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얼마 후에 다 죽어서 고기가 되어서 차에 실려서 다시 나오는 거예요.
너무 신기해가지고 그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았어요.
“선생님 제가 신기한 것을 보았는데요. 어떻게 돼지 떼들이 당신 말을 쫒아 다닙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세히 보지 못 하셨군요 제 한 손에는 콩을 든 바구니가 있었습니다. 돼지들이 좋아하는 콩을 길거리에 뿌리니깐 그 콩을 주워 먹느라고 정신없이 저를 따라옵니다.
그러다가 모두 도살장에 끌려와 고기가 되는 것이죠.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로날드 덴은 소름이 끼쳤다고 합니다.
이 무지한 돼지들이 죽음의 자리로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콩 몇 개 얻어먹자고 도살장으로 자발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마귀가 던져주는 그 콩 몇개 주워 먹느라고 자발적으로 지옥으로 달려가는 그 모습이 상상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혹시 여러분 콩을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분계시면 얼른 정신 차리시고 돌아서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정욕의 콩인지 죄악의 콩인지 물질의 콩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돌아서십시오.
돌아서지 않으면 당신은 돼지처럼 도살장에 끌려가는 비참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옥으로 가는 길인 줄도 모르고 따라가는 그런 미련한 돼지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 하나님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의 자리에 있다 면은 우리는 과감하게 그 자리를 피해야 하고 도망쳐야 할 것입니다.
그 더러운 죄의 옷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나는 진정 예수님 앞에 정결한 신부로 준비되어 있나?"
예수님은 다시 오실 우리의 신랑이십니다.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인 우리는 적어도 거룩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공생애의 첫 마디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오늘 이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을 떠나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 아닙니까?
교회에서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예배를 드리지만은 세상에 나가서는 비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다투고 가증스러운 악을 드러내는 혹시 그런 이중적인 모습은 여러분과 저에게는 없는 것입니까?
우리는 두개의 탈을 쓰고 교회에 오면 거룩이라는 탈을 쓰지만은 세상에 나가면 죄악스러운 가면을 쓰고 죄악에 함께 떠내려가는 돼지와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중심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가증스러운 가면을 벗어 던지고 하나님 앞에서 뼛속까지 의롭고 정결한 자로 우뚝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죄와 싸워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투쟁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자녀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너무나 타락했기 때문에 정직하면 손해 본다, 적당히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면서 뒷돈도 받아먹고 살아야 사람이 살지 어떻게 정직하게 살 수 있느냐?
맑은 물에는 고기가 꼬이지 않는다고 자신을 위로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김영길 총장이 쓴 글을 보니깐 한동대를 졸업한 김용범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유명한 모 대기업에 입사 시험을 치렀는데 당당히 합격을 했습니다. 수 백명의 합격자가 한 곳에 모여서 이제 어느 부서로 발령 받을지 또 한번의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시험지를 받아 봤는데 너무 어려워서 한자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감독관의 자리에 그때 김용범은 그냥 백지 시험지를 들고 당당히 걸어 나가서 제출을 하고 퇴장해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몇일 후에 배속 부서가 게시되었는데 이 김용범이란 청년 백지를 낸 청년이 모두가 선망하는 가장 그 회사에서 가고 싶어 하는 그 부서로 발령이 났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설명 할 수 있겠어요.
어느 조용한날 상사가 이 김용범씨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말이야, 그래도 한 자도 안 쓰고 어떻게 백지를 낼 수 있었나?”,
“예, 너무 문제가 어려워 제가 도저히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상사가 말합니다.
“그렇지, 그 문제는 자네들이 풀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어.
사실은 자네들이 그 어려운 문제를 안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우리는 보기를 원했네.
자네는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성실했어. 그래서 가장 최고의 부서에 자네를 배속하기로 우리는 결정했다네.”
어떻습니까?
여러분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는 것이 결국 잘되는 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살아있고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다면 원래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어 합니다.
내 옆에 믿을 수 있는 사람, 신뢰 할 수 있는 사람을 내 옆에 두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성 어거스틴의 아버지 이야기가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성 어거스틴이 한때 타락했지만 그 아버지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도둑이 많았기 때문에 어느 여행을 할 때 아내가, 아내인 모니카가 그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지만 혹시 도둑맞을지 모르니까 은전 몇 잎 은 이 옷 속에 잘 감춰놓았으니까 그때 필요할 때 비상용으로 쓰라고 이렇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길을 가다가 도둑을 만나가지고 돈을 다 털렸어요.
그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가다보니까 자기 옷 속에 아내가 은전 몇 잎 넣어 준 게 생각이 났어요.
그는 마음에 양심에 걸려서 다시 돌아갔답니다.
그는 도둑에게 가서, 내가 아까는 거짓말을 했다고, 돈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은 아내가 여기다 넣어준걸 내가 몰랐다고, 이것까지 여기 가져가라고,
그랬더니 도둑이 껄껄 웃으면서 내가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고, 아까 뺏은 것 까지 다시 돌려주겠다고, 그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심지어 그럴 정도로 우리의 양심이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선다면 하나님이 요셉의 가정총무의 옷을 벗어버렸지만 그에게 국무총리의 옷을 준비하신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을 준비하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66편에 보니까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아니 한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이하에 보니까 ‘너희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니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앞에 설 때에 주님은 물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느냐?”,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느냐?” 묻지 않으십니다.
“네가 얼마나 거룩하게 살았느냐?” 물으실 것입니다.
진정 여러분이 오늘도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면 다시 말씀을 붙드시기를 원합니다.
다시 기도의 자리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청년이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라” 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붙드십시오.
다시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의 영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