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3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 은혜목회정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이것은 우리가 다 소원하고 이루어야 될 것입니다. 한국 사람을 위시한 동양 사람들은 대체로 연초가 되면 운을 찾습니다.
운이 좋으면 금년에 잘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운세를 믿다가 망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아주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운수대통이란 없습니다. 형통하게 되는 길이 있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원칙을 따라 가야지 운세를 따라 움직이면 다 망합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은 다윗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명하는 명령입니다.
세상에 가장 진실하고, 가장 믿어도 좋을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말입니다.
아버지보다 더 진실한 얘기를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말은 믿어도 좋을 말입니다. 그것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이기 때문에 그 말은 더 진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말이고, 죽음을 앞에 두고 남기는 유언이니 그보다 더 들어야 될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별 볼일 없는 사람이 형통한 길을 얘기하면 누가 듣겠습니까?
다윗은 전쟁이면 전쟁, 정치면 정치, 종교면 종교, 인생이면 인생 그 무엇으로도 그를 능가할 수 없을 만큼 성공한 경험이 가장 많은 왕중의 왕입니다.
이 다윗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식에게 남기는 말이기 때문에 대단히 소중하며 우리가 들어서 우리 인생길에 하나의 레일처럼 깔아놓아도 아주 손색없는 교훈이기에 20 년의 첫 주에 들으면 좋을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법칙 네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냥 잘되는 것이 아니고, 잘 될 수밖에 없는 원칙을 따라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가장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원칙 속에 있습니다.
1. 강자의 형통입니다.
대장부란 말은 강자가 되란 말입니다.
강자에는 폭군적인 강자도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대장부란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그런 강자가 아닙니다. 멋있는 강자입니다. 힘은 있는데 너무 치사한 강자가 있습니다. 그저 힘만 있는 그건 대장부가 아닙니다.
"솔로몬아 너는 힘이 있어라. 너는 왕이다. 너에겐 막강한 힘이 있다. 그런데 그 힘 가지고 치사하게 살지마라. 그런 졸장부가 되지 말고, 힘을 가졌거든 대장부적인 품위있고, 여유있는 멋있는 강자가 되라."
이것이 아버지가 주는 첫째교훈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힘을 배양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기에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연습합니다. 강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훈련하고, 쌓고, 반복하고, 노력해야 강자가 됩니다. 먹는 것부터 사는 것 전반을 노력하는 것이 강자인데 그 노력을 하되 그냥 폭군적인 힘만 기르지 말고 그 힘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멋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장부란 멋있는 강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멋있는 강자가 없습니다.
제가 목회하던 교회에 조현철 선생님이라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중등부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그 분을 잊지 못합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니 머리는 박박 깍은데다 옷도 변변치 않은 모습으로 다녔습니다. 동네를 왔다갔다하니까 동네 건달들이 불렀습니다. ROTC장교인데 사복으로 입고 다니니까 만만하게 본 모양입니다. 고2.3학년이나 된 애들이 선배를 보고 돈을 요구하고, 담배를 달라고 하며 때렸습니다. 이 선생님이 보니까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보니 아무리 때려도 넘어지지도 않고 다 막아내는 겁니다. 아이들이 주춤했습니다.
이 때 이 선생님이 "다 끝났냐? 가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중에 제일 큰 애 한 명이 딱 무릎을 꿇고 "미안합니다."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조선생님은 그냥 집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아이들을 같이 때리거나 가만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에 가려고 하자 이 녀석들이 "선생님! 형님" 하면서 따라 오며 용서해 달라고 붙잡습니다. 아이들이 후한이 두려워서 울며 따라오더랍니다. 그래서 빵집에 데리고 가 빵을 사주고 "이제 됐지. 그만 가봐라" 그래도 가지 않더랍니다.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 하며 아이들이 감동을 해서 가지 못하더랍니다. 그렇게 맞고도 얼굴도하나 안찌푸리고 화도 안내니까 너무 멋있게 본 겁니다.
그러자 이 선생님이 "난 별거 아니다. 그냥 여기 있는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군대 갔다가 휴가 나온거야"라고 하자 "저희도 그 교회가면 안되겠습니까?" "뭐하려고 교회에 나오려고 하냐?" "선생님께 좀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에 아이들을 다 데리고 나왔습니다.
저는 그 분을 잊지 못합니다.
힘 가지고 뭐합니까? 힘 가진 사람이 약자를 짓밟고, 뭉개고, 들이박습니다. 우리 사회는 강자가 약자를 지나치게 짓밟는 사회입니다. 강자가 멋이 없습니다. 좀 봐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한 힘은 힘이 아닙니다.
다윗이 지금 아들한테 부탁하는 것이 "막강한 국력과 재산을 가지고 네가 무엇을 하겠느냐? 약한 나라 침략하고 백성을 짓밟는 자가 되지 말고 너는 대장부가 되어라. 이것이 너를 형통하게 만들고 네가 무엇을 하든지 잘되게 만들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2. 현자적 형통입니다.
강한 자만 되어서는 안됩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너는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 계명, 율례, 모세가 가르친 모든 법을 지켜서 네가 잘 되려고 마음을 먹어라"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좀 알라는 뜻입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나라를 망칩니다. 바보가 나라를 망치는 겁니다.
모세의 법은 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각을 주는 말입니다. 알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알고 그 생각을 고치게 하는 것입니다. 많이 알아서 떠들어대는 것이 지식이 아닙니다. 생각을 해야합니다.
모세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하면 사람의 생각을 교정하고 일깨워주는 그런 현명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을 현자적 형통이라고 합니다. 깊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율법 속에 들어있는 구절 구절마다 한 점, 한 획을 통해서 주시는 여호와의 위대한 말씀 속에 우리의 무지를 깨뜨리고 참으로 백성에게 각성을 일으키는 지혜를 현자라고 합니다.
솔로몬의 3000잠언을 만들 때 두 가지를 나누었습니다.
현자냐, 우자냐입니다.
인간의 속에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현자적 유형과 우자적 유형이 있습니다.
어떤 사리를 판단하는 기준에도 현자적 판단과 우자적 판단이 있습니다. 어두움과 밝음이 있듯이, 밤과 낮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흑백 논리를 죄악시 하는데 흑백논리가 가장 선명하고, 가장 정직하고, 완전한 논리입니다.
성경에는 그렇습니다.
선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입니다. 선과 죄는 아주 선명합니다. 그 중간에 무엇이 더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자적 인격, 현자적 판단을 가져야 됩니다.
궁중에서 솔로몬이 배운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법을 알고 따르는 것이 현명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완전하고 현명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현명하게 만듭니다. 과학은 사람을 영리하게는 만들지만 현명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모든 기술은 사람을 영리하게는 만들지만 영리하게는 할 수 없습니다.
3. 효자적 형통입니다.
부모의 뜻과 말과 그 중심을 우리가 깊히 이해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왜 저러실까? 어머니가 왜 저러실까?를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가 우리에게 큰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왜 부모가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할까? 이 세상에 부모가 없으면 누가 나에게 그렇게 해줍니까? 내 부모가 아니면 누가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면서까지 나를 잘되게 하려고 합니까?
성경에서 잘되는 길은 네 부모에게 잘하면 땅에서 잘되고 또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겐 효자적인 형통도 있습니다.
4. 신자적 형통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잘 되려면 그 속에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남을 믿고 다른 사람이 나를 믿어주는 그 신앙과 신뢰가 신탁으로 연결되는 이 믿음의 세계에 있는 사람만 성공합니다. 누가 나를 믿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무엇을 가지고 목사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나를 목사로 알아주지 않으면 약장수처럼 그냥 떠드는 겁니다.
교회가 무엇으로 뭉칩니까?
교회가 무엇으로 유지합니까?
우리가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서로가 신뢰하고, 서로가 알아주고, 밀어줍니다. 이런 믿음의 세계를 모르면 인생이 잘될 수 없으니 너는 신앙인이 되라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믿는 다는 것은 엄청난 힘입니다. 믿어버리면 힘이 납니다. 믿음이 없으면 불안해서 못 견딥니다. 되는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선임자가 후배에게 죽을 날이 임박해서 인생의 마지막 남기는 진실하고 존귀한 말. 오늘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교훈이고 진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하면 좋겠습니까?
힘을 기르십시오.
힘써서 힘을 기르라고 합니다.
힘을 쓰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노력해야 힘이 생기고 그 힘을 통하여 우리는 형통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력하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강한 것을 방해하는 것을 없애야 됩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죄가 폭로되었을 때에는 얼굴도 들지 못합니다. 힘도 못씁니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죄악으로부터 자기를 구해내기 위한 그런 노력도 해야만 강자가 됩니다.
현자적 형통, 무엇을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여러 학문이 있지만 여호와의 말씀. 모세의 법. 그 율례를 생각할 줄 아는 그런 현명한 사람. 입을 열면 그런 지식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현자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효자식은 돈을 빌려주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불효자식은 돈도 갚지 않습니다.
왜 안갚습니까?
망해서 갚을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이 바로 '네 부모에게 잘하면 형통할 것이다'. 신앙인은 어디로 가든지 그 신앙으로 말미암아 신뢰를 얻습니다. 신뢰가 우리 삶을 형통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한해도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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