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의 [건강포커스] "사회관계망 자살 시도에 노출된 청소년, 자살 시도 위험 높아"라는 기사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이후, 작품 속 주인공의 죽음을 모방한 사례가 잇따르면서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이후 여러 연구에서 자살에 대한 반복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이후의 자살 행동 증가와 관련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SNS 시대에는 어떨까요.
오늘날 청소년에게 미디어는 더 이상 TV나 신문처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매체가 아닙니다. 또래 친구와 대화하고,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일상을 지켜보는 생활 공간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SNS에서 접하는 자살·자해 관련 콘텐츠는 단순한 정보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SNS 이용 자체가 곧바로 자살 위험을 높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살·자해 관련 콘텐츠에 대한 노출, 사이버불링, 문제적 SNS 사용, 온라인에서의 사회적 고립이나 부정적인 상호작용 등이 청소년의 자살사고 및 자살행동과 관련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청소년에게 또래의 고통은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SNS 속 또래는 낯선 타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학교생활, 비슷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게시물을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자신과 상대방의 경험을 겹쳐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이런 경험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소비하면서 그것이 유일한 현실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특히 이미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는 청소년에게는 타인의 위기 상황이나 극단적인 표현이 부정적인 정서와 결합되어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구에서도 SNS의 자살 관련 콘텐츠와 상호작용이 자살 관련 행동과 연관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2. 문제는 SNS 자체보다 디지털 환경의 상호작용입니다
흔히 “SNS를 많이 해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SNS를 사용하는 시간 자체보다 어떤 콘텐츠를 접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사이버불링이나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지, 그리고 SNS를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유일한 통로처럼 사용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SNS 이용과 자살 관련 위험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며, 연구에서도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이 함께 보고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청소년의 SNS 사용을 무조건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와 학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가 SNS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 콘텐츠를 보고 난 뒤 아이의 기분은 어떻게 달라질까?”
“온라인에서 누구와 연결되어 있을까?”
“힘든 일이 있을 때 온라인에서만 위로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질문은 단순한 사용시간 관리보다 아이의 디지털 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3. 베르테르 효과만큼 중요한 것은 파파게노 효과입니다
SNS가 위험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같은 디지털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요청하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입니다. 자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움을 받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접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 요청과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WHO 역시 자살을 선정적으로 다루기보다 회복과 대처, 도움 요청을 보여주는 보도가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청소년의 SNS 사용을 무조건 제한하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유해한 콘텐츠의 확산을 줄이는 플랫폼의 책임도 필요합니다. 동시에 청소년이 온라인에서 어려움을 표현했을 때 또래나 어른이 이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적절한 도움으로 연결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돼.” 라는 말보다
“요즘 많이 힘들었구나.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안전한 관계일지 모릅니다.
청소년에게 SNS는 이미 또 하나의 생활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위험하다고만 규정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이 반복해서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힘든 사람이 자신의 어려움을 표현하고 필요한 도움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속 신호를 혼자 읽어내기 어려울 때, 언제든 전문 상담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세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닌 안전한 연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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