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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에 흑인노예들이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다. 이들이 아프리카를 출발하여 북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살아 남았을까? 생존율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그들은 여객이 아니었다. 승선하고 하선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화물이었다. 선적되고 하역되었다. 식구들과 단란하게, 부족들과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었다.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었다. 백인들은 그런 그들을 짐승 잡듯이 사냥했다. 인간사냥이다. 배에 탄 사람의 40%만이 살아 남았다. 운임을 출발시 흑인수에서 도착시 흑인수로 바꿨다. 97.5%로 상승했다. 이해타산의 결과다.
처음에는 토착민인 인디오를 썼다. 병약했다. 노동에 적응해 내지 못 했다. 유럽인으로 대체했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내 손에는 흙을 묻히지 싶지 않았다. 재산을 더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흑인이 대안이었다. 노예무역은 한때 인류의 번창한 사업의 하나였다.목화밭에서, 사탕수수밭에서 부려 먹었다. 밭에서 일한 흑인노예들은 대체 몇 년이나 살았을까? 7년이다.
산업혁명.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의 변화였다. 가내수공업에 의한 소량생산에서 공장에 의한 대량생산으로의 전환이었다. 공장은 도시 인근의 농지에 지었다. 터전을 잃은 농민이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기계화된 공장에서나 탄광에서는 숙련공이 필요 없었다. 어린 아동이 지하갱도에서 삽질을 했다. 부녀자가 방적기 앞에 앉았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보편적이었다. 비용절감의 이해타산이다.
대부분은 도시로 흘러가 빈민이 되었다. 1829년 런던경시청 창설시 걸식하는 부랑 청소년이 8,000명이었다. 영국사회는 밀을 제분한 밀가루로 만든 흰 빵을 먹는, 소수 상류계층이 주인이었다. 대다수는 밀을 그대로 갈아서 만든 검은 빵을 먹는 계층이었다. 양극화였다.
인류는 그런 암울한 시대를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자본주의가 꽃을 피웠다. 산업혁명과 경제개발에 성공한 나라의 국민들은 의식주가 해결되었다. 부를 창출시킨 동인은 투자에 대한 이윤이었다. 이익이 나면 하고, 손해가 나면 하지 않았다. 사람이란 그렇게 고귀한 존재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하여 움직인다.
세상사람들은 평범하다. 자기희생을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내 목숨 던지는 행위는 특이한 케이스다. 그렇다고 해서 악한 존재도 아니다. 그저 그냥 단순하다. 이로우면 움직이고 해로우면 피한다. 이 점을 종종 잊어 버리고 만다. 그 사람도 내 마음 같거니 한다. 나는 그렇게 한 게 아닌 데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한다. 내 마음 같지 않아 상처받고 만다. 실망하고 좌절도 한다.
인간관계의 유형은 네 가지로 갈라진다. (1) no give and no take, (2) no give and take, (3) give and take, (4) give and no take이다. 그렇다면 귀하는 어떤 유형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아서야 세상살기 어렵다. 고립무원의 상태다. 자급자족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 수도 없는 현실이다. 아주 예외적인 타입이다. 주지는 않고 받기만 할 수는 있을 게다. 욕심 많은 사람은 줄 생각이 없다. 내 주머니만 채우려 한다. 연인 사이에서는 받기만 하려고 하는 쪽이 있다고도 한다. 역시 일상적인 세상살이 형태는 아니다.
주기만 하고 받지는 않는다. 이건 성인군자나 가능하다. 간혹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있을 수 있다. 받는 사랑도 좋지만 주는 사랑에서 더 행복감과 충족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보통 스타일은 아니다. 주고 받는 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나에게 득이 되고, 너에게 득이 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서이다. 이게 세상살이의 진리이고 진실이다. 일반적인 현상이다.
무엇이 득이고 이익인가? 무엇을 주고 받아야 하는가? 물질은 명이 짧다. 아무래도 더불어 함께 살고 나누어 보태는 마음이 인간관계의 바탕이다. 관심과 배려야 말로 우리를 살맛 나게 한다.(come2happ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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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보는 좋은 글 감사 합니다.... 나무 관세음 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