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수난성지주일 (나해)
마르코 11,1-10 2024. 3. 23~24(토-주일).
① 예루살렘 입성기념식 복음을 읽고 붙이는 설명
오늘은 예수님의 수난성지주일입니다.
분은 복되시어라.’ -------- 이 말로 입성기념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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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마르코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읽은 후, 강론.
이사 50,4-7 필리피 2,6-11 마르코 14,1-15,47 (짧은 15,1-47)
2024. 3. 23-24.(토-주일).
주제 :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
오늘은 올해 사순절의 여섯째 주일이며, 다른 표현으로는 주님의 수난 성지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사순절의 남은 기간을 생각하면, 이제 부활절로 기억하는 날짜까지는 한 주간이 남았습니다. 이번 주간 토요일에 우리는 부활을 말할 것입니다.
오늘 여섯째 주일인, 수난 성지주일은 예수님께서 한 주간 후, 사람으로서 삶을 마치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기 전,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신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생명의 모습을 담은 올리브 나뭇가지를 꺾어서 흔들며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셨습니다. 다윗 임금의 오랜 도성,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소리를 지르며 맞이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동쪽, 올리브산의 너머에 있던 벳파게와 베타니아에서 아무도 태운 일이 없던 어린 나귀를 타셨고, 올리브산을 내려와서 서쪽에 있던 다윗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일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하고 외치며 예수님을 하느님의 축복을 입은 분으로 생각하고 외치며 뒤따랐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신 일을 전하는 마르코 복음에서 만난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삶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보잘것없고 힘을 드러내지도 못할 어린 나귀를 타고 다윗성으로 들어오는 예수님을 보면서 복되다고 외쳤고, 다윗 임금의 왕위를 차지할 사람으로 생각했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던 2000년 전쯤, 히브리 민족이 세운 세상의 나라는 없었습니다. 이미 역사로는 500년 이전에, 그 나라의 이름은 사라졌고,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하느님의 축복을 입었다고 사람들이 노래한 그 시간에는 로마제국에 병합되어 로마제국의 동쪽 변방에 있던 한 장소였을 뿐이었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다윗성에 들어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던 찬란하고도 위대한 사람으로 예수님께서 다윗 임금이 사용한 도성에 거창하게 들어오셨다면, 어쩌면 유대인들이 작당하여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고 했던 일 대신에 로마제국의 힘으로 그 소란은 중지되었을 것입니다. 나에게만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일은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전형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면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사는 시기가 달라서 함부로 말할 내용은 아닙니다만,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영광의 소리를 들으면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셨지만, 그 한 주간에 사람들의 배반을 겪으면서 로마 민족의 손으로 죽음을 만나시게 됩니다. 우리가 금요일이면 만나게 될 내용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화를 말할 때, 한자로 ‘조변석개’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표현에는 좋은 뜻은 없다고 하겠지만 사람의 마음이 일관성을 드러내지 못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조삼모사 혹은 조사모삼’이라는 표현으로, 원숭이를 빗대어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상황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오늘 기념하는 전례에,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왕이라는 놀라운 표현까지 들었습니다만 한 주간이 지나면서 왜 그렇게 상황이 돌변한 상황을 맞이했을까요? 알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지나치게 크면, 문제가 생깁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일을 해결하거나 완벽하게 할 방법은 없는데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는 아무것도 돕지 않으면서 수없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상이 된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채울 방법이 없으므로 죽음의 길로 가는 일이 정해진 순서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사람들이 드러내는 영광의 소리 뒤에 따라 나오는 엄청나게 비극적인 일도 함께 생각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이루려는 사람이겠습니까?
세상에서 으뜸인 존재로 살도록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내가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산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