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감자 외 /전윤호
아들이 어릴 때
엄마 상 차리는 거 돕는다고
수저를 놓곤 했다
젓가락이 어려워
가끔 머리가 반대로 놓이기도 했다
잘못 놓은 젓가락 한 벌처럼
아내는 나와 반대로 잔다
내가 코를 골기 때문이다
코앞의 맨발은
못생긴 감자 같다
엄지는 너무 크고
새끼발가락은 뒤틀렸다
이십 리 길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다더니
일하느라
지금도 매일 걷는다
내일을 위해 거꾸로 잠든
아내를 바로잡을 수 없다
그저 내 감자가 얼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주는 수밖에
주차장에서 취객이 차를 걷어찼는지
경보기 소리가 오래 울렸다
샘
군대 간 아들이 보고 싶다고
자다 말고 우는 아내를 보며
저런 게 엄마구나 짐작한다
허리가 아프다며 침 맞고 온 날
화장실에 주저앉아 아이
실내화를 빠는 저 여자
봄날 벚꽃보다 어지럽던
내 애인은 어디로 가고
돌아선 등만 기억나는 엄마가 저기 있다
봄
개를 안고
꽃을 보니
겨울이 떠났다
그릇을 굽고
지붕을 고치니
조금만 더 살고 싶다
불쑥
철들려면 멀었는데
자식들은 다 크고
아내는 아프다
바쁜 척 먼저 간 형과
어금니처럼 부서져 나간
친구들
닫힌 문은 늘어 가고
네게 가는 길 멀어지는데
붉은 줄이 간 청구서처럼
불쑥
봄이다
사직서 쓰는 아침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자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
산 채 잡혀먹기 싫은 심정에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 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같은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 전윤호
* 파란 시선 <천사들의 나라> 시집에서
*약력
-강원도 정선 출생
-<현대문학>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시집 <이제 아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천사들의 나라>, <연애소설>, <늦은 인사> 등이 있음
시집의 첫머리에 시인의 말 "경고문"을 옮깁니다.
시는 당신의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읽게 되면 끊기가 어렵습니다.
우울증을 유발하는 자기 비하와 실연
되지도 않은 반항 등이 포함되어 있어
중독되면 통제가 안 됩니다.
일시적인 진통 효과에 속지 마세요.
위생적이지 못한 제조 방식은
이용자의 정서를 오염시킬 수 있습니다.
생활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당히 즐기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여러 번 읽지 않아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
시인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공감되는 시
안선생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