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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반 고흐 카페
저-신시아 리일런트
출- 문학과 지성사(72쪽)
독정- 2021.10. 14
<카페>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한 번이라도 봤던 사람은 극장이 마법으로 가득한 세계라는 걸 알 것이다. 극장은 사방을 둘러싼 벽 속에서부터 영원토록 마법을 간직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반 고흐 카페는 운이 좋은 곳이다. 부러진 팔을 고치거나 이를 뽑던 건물이 아니니까. 병원 건물의 벽은 마법을 품고 있는 벽하고는 다르다. 극장의 벽은 마법을 품고 있다. 마법은 강렬한 말이고, 잘못 쓰일 때가 많은 말이다. 어떤 이들은 하늘에서 마법이 생긴다고 하고 지옥에서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고흐 카페에 가본 사람은 한때 극장이었던 이 건물 자체에서 마법이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된다. 파이를 진열한 회전대 위에서 미소 짓고 있는 도자기 암탉, 여자 화장실 곳곳에 그려진 자줏빛 수국 꽃, ‘당신은 우리를 감동시킬 멋진 사람일 거예요.’ 라는 노래를 연주하는 조그만 갈색 전축에서부터 마법이 시작된다. 그렇게 마법은 캔자스 플라워스의 고흐 카페에 깃들여 있고. 저절로 마법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순간 사람들과 동물들과 사물들은 마법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동시에 마법에 감동 받고는 곧장 소문이 퍼져 나간다. 반 고흐 카페라고, 꿈같이 신비로운 카페가 있어요. 그림처럼 아름답고 멋진 카페랍니다. 꼭 한번 가 보세요. 아주 오래 머물고 싶어질 거예요. 그런데 어떤 것은 잠깐 머물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주머니쥐는……
<주머니쥐>
컌자스는 풍경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고장은 아니다. 그저 편편한 곳이다.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고흐 카페의 주인은 마크라는 젊은 남자와 마크의 딸 클라라다. 클라라는 카페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법의 실마리라고나 할까 열 살배기 이 여자 아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믿었다.
“저기 좀 봐요, 주머니쥐예요!”
클라라가 제일 먼ㅁ저 주머니쥐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주머니쥐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걸 즐기고 있었다. 코를 긁적이고 눈을 깜박거리며 사람들과 눈을 맞췄다. “안녕!” 사람들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중요한 이야기가 생겼다. 주머니쥐가 사람들을 서로 끌어당기게 해 준다는 것이다. 서로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가서게 해 준단다. 다퉜던 두 친구가 오늘 주머니쥐가 매달린 나무 옆 보도에 서 있었다. 주머니쥐가 거꾸로 매달린 채 눈을 깜박거리자 두 친구가 서로 예기를 주고받았고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고는 파이를 먹을 카페로 들어갔다. 젊은 부부 한 쌍은 그 전날 앞뜰에서 고함을 질러 대며 다퉜는데, 다음 날 주머니쥐 곁에서 입을 맞췄다는 이야기. 두 이웃이 그 전날 음악을 크게 틀었다가 다퉜는데 다음 날 주머니쥐가 쳐다보는 가운데 악수를 나눴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점점 불어났다. 사람들은 주머니쥐한테 먹일 음식을 카페 바깥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아내 잃은 남자 하나가 어느 날 아침에 차를 몰고 지나가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던 길에 반 고흐 카페 앞을 지나다가 주머니쥐를 발견했다. 주머니쥐를 보고 있다가, 나무 아래서 머핀이랑 감자 부스러기를 먹는 배고픈 동물들도 보게 되었다. 남자는 지금껏 어느 누구도 못 본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자 차를 돌려 살던 곳, 자기 농장으로 되돌아갔다. 자기 농장을 떠돌이 동물을 돌보는 집으로 바꿨고, 그러자 동물들이 찾아와서 남자의 외로움을 씻어 주었다. 그날 뒤로 주머니쥐는 사라졌지만 머지않아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이를테면 번개가 칠 때……
<번갯불>
번개는 지금껏 마크 자신한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요리를 하다가 시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딸과 막 빗줄기 솟으로 발을 들여놓으려는데 번쩍 , 번갯불이 내리쳤다. 카페가 쾅하고 소리를 냈고 마크 손에 들린 열쇠가 자묵쇠 속에서 녹아버렸다.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때 이후로 카페에 있는 모든 것이 옆으로 기울었다. 금전등록기 위의 글씨고 조금씩 비뚤비뚤해졌고, 암탉의 미소도 약간 일그러졌다. 손님들은 카페로 들어서면서 모자를 떨어뜨렸다. 클라라는 번개가 원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마크가 시를 쓰는 동안 달걀은 저 혼자 그릴을 찾아 올라가 익은 다음 뒤집어졌다. 감자튀김은 알맞게 파삭파삭하게 익혀졌고 까맣게 타는 일이 없었다. 마크는 빠른 속도로 글을 썼다. 마크는 냅킨에
<너무나 고요히 푸른
기다림과
기다림의
은빛 기나긴 반> 시를 썼다.손님 칼라가 남차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파이를 먹고 입가에 묻은 파이를 냅킨으로 닦아 내곤 곧장 카페를 나가 자기 트럭으로 갔다. 마크가 쓰는 시들이 미래를 예언했다. 계산서 뒤쪽에 이런 시가 적혀 있었다.
-노란색 가득한
당신이 알고 있던 계절은
아마도 봄일 거야-
다음 날 화요일에 이웃 사람이 주디 존스에게 생일 축하로 노란 나팔수선화 꽃다발을 건넸다. 어느 날 아침에 소년이 카페로 들어왔다. 눈물을 꾹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사흘 전에 자기가 기르던 삼고양이를 잃어버렸는데 고양이를 본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클라라는 소년이 가여웠다. 파이를 한 조각 주면서 사람들에게 그 고양이에 대해 물어 보겠다고 했다. 소년이 파이를 다 먹고 카페를 나서려던 순간 ‘오늘의 수프’가 적힌 알림판을 힐끗 바라보더니 소년 눈에 시가 들어왔다.
-검은 딸기는
꾸벅꾸벅 조는
얼굴이 보름달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
소년은 그 자리에 멈춰 알림판을 거듭 읽었다. 클라라에게 자기 고양이 이름이 ‘검은 딸기’라고 털어놓았다. 클라라가 손님들에게 알리자 그때 한 사람이 속삭였다.
“여관!”
맞았다. 여관 이름이 ‘달빛장’이었다. “검은 딸기‘는 달빛장 네온사인 아래 담쟁이덩굴 화분 속에 잠들어 있었다. 다리를 다쳤지만 나머지는 멀쩡했다 소년은 연거푸 함성을 질러 댔다. 그 순간 소년은 너무도 행복했다.
다음 날 카페에선 모두들 저마다 떠들어 댔다. 이젠 마크 시가 예언시라는 걸 확실히 안 것이다. 행운, 앞날의 조짐. 마크의 다음 시는 어떤 예언을 담고 있을까?
<마법의 머핀>
여자가 은박지로 포장한 작은 물건을 함께 내밀며 음료수 값을 계산하고 갔다. 마법의 머핀 두 개를 남겨 둔 채. 마크는 머핀을 먹지 않았는데도 마법의 힘을 얻었다. 마법이란 믿기란 하면 되니까. 클라라는 날마다 머핀을 감싼 은박지를 여는 순간 작은 머핀이 한 개씩 더 늘어난 걸 발견했다. 눈보라를 미리 대비한 사람은 없었고 할인 상점에서 세 장갑을 사 놓은 사람도 없었다. 눈보라가 닥친 그 날, 교회 버스가 달리던 중 버스엔 꼬마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학교 가긴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다. 교회 버스는 미끄러져서 전봇대를 들이박고 카레에서 팔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였다. 보안관과 소방관이 모여서 버스에서 우는 아이들을 꺼냈다. 열네 명이었다. 쪼그만 덩치가 꽁꽁 얼어붙은 채 모두들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어딘가에서 얼굴이나 머리를 부딪친 아이들은 크게 울어 댔다. 아이들을 지역 병원으로 데려갈 길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카페로 날랐다. 마크와 클라라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을 칸막이 방으로 나르고 의자에 앉히는 걸 도왔다. 아이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에 손가락마저 파랗게 얼어 있었다. 모두들 놀랄 만큼 조용했다. 진짜 마법이 시작될 참이었다. 머릿수를 세어 본 클라가가 아이들이 모두 열네 명이라는 걸 알아냈다, 클라라는 그 날 아침에 미리 살펴봤기 때문에 냉장고 속 작은 은박지 꾸러미에 작은 머핀이 열네 개 들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클라라는 은박지 꾸러미를 들고 아이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쪼그만 입마다 하나씩 머핀을 넣어 주었다. 아이들은 차례차레 몸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되살아났다. 이젠 손가락도 아프지 않았다. 얼굴빛도 발그스름하게 바뀌었다 부딪쳐서 생긴 상처 자국도 사라졌다. 배인 상처도 나았다. 아무더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이가 빠진 아이도 없었다. 클라라는 빈 은박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뒤로 여러 날 동안 클라라는 아빠와 드센 눈보라와 마법 머핀 이야기를 주고반곤 했다. 둘은 처음에 머핀을 받았을 때 소원을 빌지 않은 걸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스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카페가 환해졌다. 곳곳에 사탕 지팡이가 내걸렸다. 손님들은 사탕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갔다. 금전등록기 위에 ‘산타에게 축복을’란 글씨를 붙여 놓았다. 낯선 남자가 카페로 들어와 창가 쪽 조그만 검은 식탁으로 가 앉았다.
“선생님이 출연하신 작품을 봤어요.”
마크는 조심스럽게 그 손님에게 말했다. 노인은 얼굴을 붉히면서 미소 지었다.
“고맙소.”
마크과 조용한 스타는 엣날 영화 얘기를 주고받았고 클라라는 잠자코 얘기를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천진난만한 아빠 얼굴을 보고 있었다. 마치 어린 소년 같았다. 무턱이나 기쁜 것 같았고 흥분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가볍게 몸을 떨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떤 일로 저희 카페에 오셨나요?“
마크의 물음에 노인는 외투 속으로 손을 넣어 낡은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아람다운 청년이 양복 조끼를 입고 실크해트를 쓰고 오래 된 극장 앞에 서 있었다. 마크는 유심히 사진 속 건물을 들여다봤다.
“혹시 이 건물은?”
“맞아요.”
1923년에 찍은 사진 속 그 건물은 당시에 이 곳이 극장이었음을 말해주었다.
“그해 여름에 이 친구하고 만나서 여기서 함께 공연을 했지요.”
클라라는 자신이 지금 영화에 출연하는 것처럼 가슴이 쿵쿵 뛰었다. 카페가 남자에게 빨려드는 것도 느껴졌다. 엣날 무대에서 최초로 마법을 펼친 사람 가운데 하나였던 남자를 향해 손길을 내미는 것이 느껴졌다. 저녁 때 문 닫을 시간에 노인은 창가에 좀더 앉아자 있겠다고 했다. 마크는 클라라를 집에 데려다 주고 몇 시간 지나 카페로 되돌아왔다. 그가 죽었다는 걸 알아챘다. 마크는 노인의 손에서 이미 노학게 삭아 바스러진 신문 기사 조각을 발견했다. 기사는 1926년에 그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노인의 다른 손엔 아까 보여준 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노인이 자신을 안식처로 데려다 줄 친구를 기다린 일 역시 멋진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카페에 들른 방랑자가 스타만은 아니었다. 갈매기일지라도 마법은 그래도 지나치는 일이 없다.
<변덕스러운 갈매기>
갈매기가 날아와 지폐를 낚아채어 삼켜 버렸다. 사람들은 어머니들이 아이한테 얘기하듯 “이 돈으로 점심 먹으렴.” 했고 갈매기는 그 말을 오해해서 돈을 삼켜 버린 것이다. 지붕의 오븐 환기구 옆에 갈매기가 살고 있다는 건 희한한 일이었다. 클라라가 감자튀김 몇 개를 흔들어 대자 갈매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 고양이가 나타났다. 클라라는 고양이가 누군가의 눈 장화를 질질 끌고 길을 건너는 걸 보며 바야흐로 마법이 시작되려는 모양이라고 확신했다. 클라라가 고양이를 찾아 보도 위아래를 둘러보고 쓰레기통 옆쪽과 뒷골목을 살피다가 갈매기와 고양이가 있는 걸 보았다. 사람들은 지붕 위에서 로맨스가 싹트는 광경을 보았고 <플라워스 신문>사진 기자의 눈길을 끌었고 다음날 행복해하는 갈매기와 고양이 얼굴이 온 나라 신문에 실렸고 마크와 클라라는 전국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전국에서 카페로 편지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갈매기 깃털을 하나 구할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담고 있었다. 갈매기 깃털이 자기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리라 믿었다. 클라라는 갈매기 몸에서 깃털을 뽑을 생각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몰려오자 클라나는 감자튀김을 들고 바깥에 나가 갈매기들에게 말했다.
“캘리포니아로 가.”
갈매기들이 떼 지어 나타난 게 마법 때문인 줄 알고 있던 클라라에게 다음날 아침에 갈매기들이 뒷문 옆에 놓다 둔 편지 가방 스무 개를 모조리 먹어 치운 걸 알아차렸다. 갈매기 깃털을 원하는 사람들이 보낸 정신 나간 편지가 깨끗이 사라진 대신, 지붕엔 행복한 뚱보 갈매기 쉰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마크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클라라도 믿음을 되찾았다. 좋은 일은 계속 벌어졌다. 커피를 마시러 온 여자들이 세워둔 트럭 옆면에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트럭 옆면에 ‘켈리포니아, 아메리카 이삿짐 센터.’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클라라가 카페에서 본 최고의 마법이었다.
<작가>
남자는 작가였다. 작가는 회색 고래를 보려고 태평양으로 가는 길이었다. 글쓰길 포기하고 전화번호부 책 배달 일을 해서 오리건으로 가는 교통비를 마련했다. 지금 작가는 낡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뜻을 알아들었다. 작가는 이 카페와 같은 이름의 화가가 일평생 판매한 그림이 한 점뿐이라는 사실도 떠올렸다. 자신의 가슴 속에 책이 한 권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새로운 책 제목은 ‘반 고흐 카페’였다. 지금껏 작가한테 필요했던 건 오로지 이 제목을 알아내는 일이었다.
-카페에서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 건 클라라의 믿음 덕분인지 모른다. 늘 자기 둘레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음 깊이 기억하고 받아들이면서 틀림없이 멋진 일이 일어니라라. 기대하는 믿음 말이다. 클라라처럼 생각하고 믿으면 우리 둘레에서도 온갖 신비로운 일이 일어날 테지요. 원래 신비로움으로 그득한 세상 모습이 그제야 환히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옮긴이 이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