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단(義化團) 사건과 선교사들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니라.” (요한계시록 16:8-9)
중국에서 제 2차 아편 전쟁이 서방 국가의 승리로 끝난 후, 1860년 천진조약을 통해 외국인의 중국내 거주와 토지 매입이 허용되면서 가톨릭교회의 선교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습니다.
1897년 12월에 칭타오(靑道)에서 두 명의 독일 가톨릭교회 신부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독일은 즉시 군대를 파견하여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면서, 산동성에 조차지(租借地:외국의 땅을 일정 기간 동안 다스림)를 요구하자 의화단(義化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년간 가뭄에 흉작이 계속되자 배고픈 백성들은 한(恨)이 맺혀, 누군가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희생양을 찾았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표적이 양귀(洋鬼:서양 귀신:사람들)이었습니다. 양귀들이 들어와 살면서, 조상신이 분노하여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여겨, 양귀 축출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의화단 사건입니다.
이 때 중국 정부의 실권자였던 서태후(西太后)의 후원을 받은 의화단이 외세 배척를 표방하고, 산동성과 화북성 등지에서 일어났는데, 이 운동은 반(反)제국주의와 애국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의화단 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가톨릭교회의 신부가 36명, 수녀가 11명, 희생된 중국인 교인이 2만 3천여 명에 이르렀고, 개신교회 선교사 135명, 선교사 자녀들 53명, 중국인 교인 약 1만 8,000명이 처참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순교자들이 나온 것은 일반 서양인들은 주로 항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신속히 피신할 수 있었지만, 선교사들은 내지(內地)에 살면서 선교를 했기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었던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많은 시민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서양 제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거리, 네덜란드, 벨기에, 에스파니아 등과 일본까지 가담해서 청나라 군사들과 전쟁을 벌렸는데, 오합지졸들에 보잘 것 없는 무기로는, 기관총과 대포로 중무장한 서양 제국과는 대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서방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자, 서안(西안(安)에 피신해 있던, 당시 실권자 서태후는 청국군의 패배 소식을 듣고 이홍장을 내세워 미국의 중재로 협상을 벌렸습니다. 북경에서 1901년 12월 23일 ‘신축(辛丑)조약’(베이징의정서)을 채결하면서 전쟁은 일단 끝이 났습니다.
이 조약에 의해 청나라는 순교한 신부, 수녀, 선교사, 선교사 자녀들에 대한 보상금과 선교부에 속한 예배당, 성당, 학교, 병원, 인쇄소, 고아원, 양노원, 직업훈련소 등이 화재로 전소한 시설들과 기타 파괴된 시설에 대한 보상금을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교회는 이에 대한 보상을 거절하고 그 돈을 희생당한 중국인 교인 유가족에게 돌려주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북장로교회 총회에서 파송한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의화단 폭도들이 한 선교사의 집에 쳐들어왔습니다. 선교사 부부와 아이들의 손을 묶어 끌어내는데, 같이 있던 처녀 선교사도 끌어내 묶으려 했습니다.
집 주인 선교사가 “우리는 여러 해 이곳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니 죽여도 좋지만, 이 여자 선교사는 어제 저녁에 이곳에 도착해서 단 한 사람의 중국 사람도 만난 일이 없고, 아무 일도 한 일이 없으니 살려 주세요.”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눈이 뒤집힌 폭도들은 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모두 끌고 나가 무자비하게 몽둥이로 패서 죽여, 선교사 가족들과 함께 이 처녀 선교사도 순교자의 반열에 그 이름을 올랐습니다.
초기교회의 교부(敎父:초기 교회의 지도자, 감독) 중 한 분인 터툴리안(Tertullian)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고,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렇게 많은 신부, 수녀, 목사, 사모, 자녀들이 순교의 피를 뿌린 중국 대륙에 복음의 씨앗이 사방에 뿌려져 많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1912년 로마 가톨릭교회 전체 신자가 100년간 약 7배로 성장해 143만 명으로 늘어났고, 1914년 개신교의 수찬자(受餐者:성찬식에 참석하는 세례교인)가 25만 명에 이르렀고, 약 30만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중국은 아직 공산당 체제 하에 있어서, 정부가 인정하는 삼자교회(三自敎會)는 정부의 통제를 받으면서 예배를 드리지만, 정부의 간섭을 거절하는 처소교회(處所敎會) 혹은 지하교회(地下敎會)는 많은 핍박을 하는 정부에 맞서 굳세게 신앙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난당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의화단 사건으로 순교한 이들의 후손들과 오늘도 고난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계속 기도드립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