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5. 31 주일예배 설교
팔복(3), 온유한 자의 복(마태복음 5:5)
우리는 지금 생존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강한 자만이 땅을 차지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주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실 이 말씀은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전혀 납득이 안 되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 있다.”는 이 구절의 말씀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드려야 할까? 본문 말씀을 함께 나눌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눈을 밝히셔서 이 말씀의 비밀을 깨닫고, 온유한 자가 되어서 땅을 기업으로 받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먼저 본문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온유한 자’는 과연 누구인가?
☞ 그는 한 마디로 ‘주님의 말씀에 잘 길들여진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온유하다’는 것의 개념을 이야기할 때, 주로 바보 같을 정도로 온순하고 나약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만약 이 개념이 맞다면 충청도 사람들이 가장 온유한 사람들이고 가장 복된 자들이 아닐까?
예) 팔 꺽은 것에 대한 충청도 사람의 반응 : 아퍼유 하지 마세유! → 팔부러진다니까유! → (팔 부러진 후) 그봐유 부러졌잖아유~~.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온유’의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온유의 개념(온순한 것)과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온유’라는 말의 헬라어는 ‘prau?"’(프라우스)인데, 이것의 의미는 ‘잘 다스려지고 길들여졌다’는 뜻이다. 이것은 원래 맹수를 조련시킬 때 사용하는 단어다. 맹수 속에는 난폭한 기질이 있다. 그런 맹수의 난폭한 기질이 훈련을 통해 인간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길들여진 상태를 온유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온유’의 개념을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온유한 자’란 죄성(罪性)으로 말미암아 마음대로 행동하는 우리의 마음과 정서가 주님의 말씀으로 잘 다스려져서 온전한 인격을 소유한 자를 말한다.
예) 자동차의 브레이크 장치
브레이크가 잘 들지 않는 자동차는 무서운 파괴력을 갖는다. 그러나 브레이크가 잘 드는 차는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열심이 있고, 능력 있고, 물질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여 지지 않으면 그 열심, 그 능력, 그 물질이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이러한 의미에서 ‘온유한 자’란 자신의 능력과 재능과 자신의 물질과 자신의 모든 것이 왕이신 주님 안에서 통제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면 구체적으로 누가 온유한 자인가?
1. 자신에 대한 비난과 공격에도 ‘쉽게 분노하지 않는 자’이다.
한 마디로 온유한 자는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
1) 요셉
형들에게 배신을 당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그 좋은 청춘을 노예로서 한 맺힌 인생을 살았다. 우여곡절 끝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판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찾아왔을 때 그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했고 아버지 야곱이 죽은 뒤 그 가솔들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창세기 50:15-21).
2) 다윗
다윗은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 도망가고 있는데, 사울왕의 후손인 ‘시므이’라고 하는 자가 나타나서 계속 다윗을 쫓아다니면서 욕하고 조롱하고 저주하며 심지어는 돌을 던진다(사무엘하 16:5-8). 보다 못한 부하가 “저 놈을 당장에 찢어 죽이겠습니다.”라고 하자 다윗은 부하를 만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몸에서 난 자식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 그러는 것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하나님이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실테니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실 것이다.”(사무엘하 16:12)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바로 이런 온유한 사람이다. 특히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에서는 이런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있는 한 교회는 든든히 서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유한 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고 길들여진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할 일 많은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불의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내는 자’이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9)라고 말씀하신 대로 정말 온유하신 분이셨다. 온유함 그 자체이셨다. 그러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것을 보시고 분노하셨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마태복음 21:12-13).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깊은 사랑이 거룩한 분노를 낳았던 것이다.
우리 역시 불의 앞에서는 거룩한 분노를 내어야 한다.
하지만 거룩한 분노를 분풀이(감정풀이)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즉 거룩한 분노, 정당한 분노에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내 체면 깎였다고 내 감정풀이하면서 화내는 것을 거룩한 분노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분노는 분풀이지 거룩한 분노가 아니다.
거룩한 분노는 다른 사람들과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정당하게 내는 분노이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분노이며 이것이 바로 온유이다.
거룩한 분노를 행하는 온유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그러면 온유한 자가 누리게 되는 복은 무엇인가?
☞ 그것은 마태복음 5:5에 의하면 한 마디로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다.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여기서 '땅'은 헬라어로 ‘ge’(게)인데, ‘세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온유한 자가 세상을 상속받는 복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강한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내 자녀가 좀 더 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보라. 그 동안 역사를 지배해왔던 수많은 영웅들과 침략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알렉산더, 시저, 나폴레옹, 히틀러 등을 보라.
그들은 일시적으로 땅을 차지했을지 모르나 그들의 최후는 언제나 패망이었다.
나폴레옹은 고백하기를, “나는 말발굽으로 온 유럽을 정복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정복하였다”라고 했다.
그렇다. 강한 바람이 사람의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사람의 옷을 벗기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강한 자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사람의 마음의 마음을 사로잡고, 세상을 정복하며,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다.
예) 칼빈의 온유한 모습
칼빈이 스트라부르크에 공부하러 가면서 제네바에 들렀다. 그때 자기 친구 파렐과 교인들이 “당신이 필요하다”고 붙드는 바람에 유학을 포기하고 제네바에서 열심히 사역했다. 하루에 세 편씩 설교하고 복음사역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사역하고 있는데 몇 년 뒤에 제네바 국회에서는 그를 추방시켜버렸다. 그는 생애에 가장 불명예스럽게 추방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아무 원망도 안 하고 스트라부르크에 가서 열심히 공부했다. 3년이 지난 뒤에 다시 제네바에서 칼빈을 불렀다. “이제 보니 당신이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가지 않는다. 제네바를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그런데도 그는 갔다. 더 열심히 사역해서 마침내 제네바 시(市)를 기독교화 시켰다. 제네바를 차지한 것이다. 이게 바로 온유한 자의 모습이다. 그렇다. 온유한 자는 마지막에 땅을 소유하고 세상을 차지한다(다스린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땅(세상)을 차지하고 다스리기 원하는가? 그러면 온유한 자가 되라.
누가 온유한 자인가? 마음이 주님의 말씀으로 잘 다스려진(길들여진) 사람이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에 대한 중상모략이나 공격에 쉽사리 분노하거나 보복하지 않는다. 원수에 대하여 길이 참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공공의 유익을 해치는 이러한 불의에 대해서는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믿음의 싸움을 하는 자이다.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구절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것은 “온유한 자(주님의 말씀에 길들여진 자)가 되라. 그래서 온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가 되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아무쪼록 이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온유한 자가 되라. 그래서 온 땅(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