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오백열세 번째
인생은 낯선 것과 친숙해지는 여행
젊은 시절 등산하러 유명한 산들을 찾아다닐 때는 몰랐습니다. 그저 남들보다 열심히 걸어서 먼저 정상에 오르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정상에 서서 ‘내가 왔노라’하고 ‘야호’를 외치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즐거움으로 산행을 즐겼습니다. 그 뒤엔 같이 온 사람들과 도시락을 펼쳐놓고 가볍게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며 ‘이 맛이야!’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마도 자기 과시에 자족했던가 봅니다. 남보다 건강하다고, 힘이 있다고 자랑하려고 산에 오르는 꼴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남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산을 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어느 유명 작가가 경험담을 들려줬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빠른 걸음으로 가는데, 아주 느긋하게 걷는 사람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해지기 전에 목적지까지 가려면 좀 더 빠른 걸음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늦으면 다음 날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면서 이 아름다운 경치를 어떻게 훌쩍 지나칠 수 있느냐고 하더랍니다. 그제야 그는 비로소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었답니다. 누군가가 그랬지요. 산에 오를 때는 보지 못했던 풀과 꽃, 산을 내려올 때에야 본다고. 우리네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먼저 도달하겠다고 부지런히 달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허전함을 느끼게 되면서 어떤 길을 어떻게 달려왔는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지요. 우리는 마라톤을 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게 아니라는 뒤늦은 깨달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라도 천천히 둘러보며 가야겠다고, 여전히 끝을 모르고 달리는 사람도 있지 않으냐고 자위하지요. 여행은 낯선 것과 친숙해지는 일입니다. 그래야 사랑할 수 있지요.